노승아는 결국 죽었다. 여이현의 눈앞에서.잔인한 체벌에 노승아는 그 짧은 시간에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되었다.그녀는 친모의 손에 이끌려 노석명에게 보내지게 되었고 노예 수용소에서 한동안 생활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실험은 너무 고통스럽고 잔인했다.죽는 그 순간 그녀는 여전히 자신을 낳아준 친아버지가 누군지 몰랐다.그녀는 죽어서도 편히 눈을 감지 못했다.죽기 전 그녀가 했던 말이 여전히 여이현의 귓가에 맴돌았다.“여이현, 내가 널 얼마나 오랫동안 좋아했는데. 넌 항상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지. 나도 알고 있어. 네가 지금 온지유를 위해 나한테 복수하고 있다는 거. 내가 죽어도 너희 둘은 행복하게 살지 못할 거야. 내가 저주할 거니까! 너랑 온지유는 절대 행복하게 살 수 없어!”노승아에게 내린 체벌은 목숨을 잃을 정도가 아니었다.그러나 노승아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죽을 줄은 몰랐다.여이현은 그럼에도 냉담하게 말했다.“용경호, 노석명이 실험을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나? 노석명을 찾아서 이 시체를 선물로 줘.”“대장님, 노승아 씨가 한 말을 너무 마음에 담지 마시길 바랍니다. 죽음이 닥쳐오니 두려움에 헛소리하는 겁니다. 죽기 전 다들 한 마디씩 내뱉은 말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면 그럼 세상 사람 전부가 예언가가 아니겠습니까?”여이현의 옆에 있던 용경호는 어두워진 여이현의 안색을 발견하곤 행여나 노승아가 한 말을 신경 쓸까 봐 얼른 몇 마디 보탰다.사실 그는 노승아가 이런 식으로 죽어버리는 건 너무 가벼운 벌이라고 생각했다.노승아가 한 짓이 수도 없이 많았고 심지어 도망치기도 했다.이런 범죄자라면 시체를 뜯어 짐승에게 먹이로 던져줘도 시원찮았다.하지만 그들은 군인이었고 이런 일을 할 수 없었다.여이현은 입꼬리를 올리더니 픽 웃었다.“당연하지.”노승아가 죽었다는 소식은 빠르게 노석명의 귀에도 들려왔다. 여이현은 애초에 노승아의 죽음을 숨길 생각은 없었고 오히려 더 소식을 퍼뜨리고 있었다.
노석명은 권력을 갈망했다. 오래전부터 살면서 그는 깨달은 게 있었다. 바로 여진숙은 자신과 같은 길을 걸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게다가 노승아는 사랑에 눈이 먼 사람이었다. 한번 남자에게 빠지면 앞뒤 가리는 것이 없었다.원래는 마지막까지 노승아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여이현과 신무열이 나타나 그의 계획을 망가뜨려 버렸다.‘안 돼, 이렇게 포기할 순 없어. 난 반드시 내가 원하는 자리까지 올라가고 말 거야.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고. 난 계속 도망만 치면서 살지 않을 거야!'노석명은 전화를 끊은 후 바로 결정을 내렸다.Y 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동맹군에게 빌붙으면 된다.다만 그가 앞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어도 뒤에서 따라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고개를 돌리니 김명무는 따라오지 않고 제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멍하니 서 있는 김명무의 모습에 노석명은 순간 화가 치밀었다.“뭘 멍청하게 서 있는 거야! 죽고 싶어?”노승아를 향한 김명무의 마음을 그는 바로 눈치챘었다.남자가 큰일을 하려면 시답잖은 감정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게다가 지금 그를 따라는 사람은 김명무 뿐이었다.김명무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마치 잘못을 저지르고 혼나는 아이의 모습처럼.“장로님, 용서해주십시오. 아무리 생각해도 전 장로님과 함께 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전 아가씨 찾으러 갈 겁니다.”노석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김명무의 말을 듣고 있다고 총을 꺼냈다. ‘쿵!'미처 피하지 못한 김명무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노석명은 이내 멈추지 않고 쓰러진 김명무를 향해 한 발 더 쐈다. 지금 이 순간 노석명의 눈빛은 아주 싸늘했다. 김명무는 짙은 피비린내를 맡게 되었고 눈앞도 빨간 액체로 가려졌다.어떻게든 일어서보려고 했지만 온몸에 힘이라곤 하나도 없었고 그저 눈을 뜬 채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점점 숨소리가 약해졌다.다만 아쉬웠던 것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노승아의 얼굴을 보지 못한 것이다. 노승아를 지키는 임무도 완성하지 못했다. 그는 더는 자신에게
온지유가 깨지 않자 인명진은 계속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인명진은 온지유가 깨어날 때까지 몇 번이고 끈질기게 이름을 불렀다.마침내 온지유는 의식이 돌아오고 눈앞에 있는 인명진을 바라봤다.“명진 씨? 여기는... 어디죠?”인명진은 온지유의 물음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얇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로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온지유와 다시 만났을 때는 단순히 기억을 잃고 과거를 잊은 것일꺼라고 착각했었지만 지금의 인명진은 더 심각한 문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온지유의 기억에는 왜곡이 있었다.“지금 우리는 동굴 안에 숨어 있어. 네가 갑자기 열이 나서 더 이상 이동할 수 없었어. 율아, 나 좀 봐. 지금 네게 꼭 전해야 할 중요한 얘기가 있어.”인명진은 온지유가 깨자 약간 거리를 두었지만 여전히 그녀의 어깨를 단단히 잡고 있었다.어깨로 전해오는 힘과 그의 진지함에 온지유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명진 씨, 무슨 말을 하려는 거예요?”인명진은 잠시 침묵한 뒤 신중하게 말했다.“율아, 사실 우리가 만난 건 네가 우리의 실험실에 왔기 때문이었어...”인명진은 과거의 사건을 온지유에게 상세히 설명했다.인명진이 실험실에서 온몸이 타오르는 듯한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온지유는 하얀 공주 같은 드레스를 입고 순진한 모습으로 수용소에 나타나 그와 홍혜주를 보호해 주었었다.노예 수용소에서 그녀의 존재는 매우 이질적이었지만 누구도 감히 율이를 건드릴 수 없었다.율이는 마치 작은 천사처럼 수용소의 사람들을 지키려고 했다.하지만 그녀 혼자서는 모든 사람을 보호할 수 없었다. 노예 수용소의 잔혹함 앞에서 율이의 힘은 한없이 초라했다.가끔 타인이 겪을 일을 목격한 충격으로 그 일을 자신이 겪은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온지유의 잠재의식 속에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이 자리 잡고 있었다.의학적으로는 이를 ‘공감’이라고 한다.인명진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우리가 노예 수용소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건 다 그때 네가 불을 지른 덕분이야. 그 후 네가
게다가 인명진은 온지유를 데리고 함께 망명 중이었다. 지금 이곳에서 온지유를 속일 이유는 없었다. 모든 상황이 확실히 온지유가 바로 율이임을 증명하고 있었다.온지유는 마음속에 품고 있던 마지막 희망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그녀가 바로 진짜 율이였다.자신이 신무열의 여동생이자 법로의 딸이라는 사실을 더는 부정할 수 없었다.Y국은 많은 악행을 저질렀고 여이현과도 적대관계이다.온지유는 목이 멨다. 자신이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율아, 나도 너에게 진실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네가 다른 사람의 기억에 갇혀 사는 걸 두고 볼 수 없었어.”인명진은 온지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의 행복을 바랐다.온지유의 마음 속에는 여이현 밖에 없다는걸 알지만 인명진에게는 온지유만 행복할 수 있다면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았다.온지유는 불현듯 여이현이 자신에게 말했던 석이에 대해 떠올렸다. 드디어 석이가 실재하지 않는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석이는 자신이 만들어 낸 환상이거나 아예 다른 사람의 기억일 수도 있었다.온지유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이 정도면 단순히 공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게 아니란 말인가!온지유는 눈물을 흘렸다. 둘은 현재 연락할 수단도 없었고, 노석명의 추격도 피해야 했다. 지금 이 순간 여이현의 곁으로 가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인명진은 말없이 온지유의 곁을 지켰다. 그는 이 일을 통해 다시 한번 결심했다. 이제는 결코 온지유를 떠나지 않을 것이며, 만약 죽음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면 온지유의 곁에서 그 최후를 맞을 것이다.“나는 밖에 나가서 먹을 수 있는 열매라도 있는지 찾아볼게. 율아, 어디에도 가지 말고 여기서 기다려. 알겠지?”“알겠어요...”온지유는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인명진과 함께 망명하는 이 상황에서 혼자 어디로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그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으려면 지금은 안전하게 숨어 있는 것이 최선이었다....한편 여이
여이현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몇 초간의 침묵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이 일은 지유가 결정할 일이에요.”신무열은 더 이상 여이현에게 신경 쓰지 않고 법로의 곁으로 가서 그의 얼굴의 가면을 벗겼다. 법로의 얼굴에는 길고 깊은 흉터가 있었다.그 흉텨는 어린 시절 딱 한 번을 본 뒤로 한 번도 가면밖에 드러난 적이 없었다.인명진은 Y국의 의원과 실험실 인력들을 모두 모아 법로를 빠르게 회복시키려 했다.세 시간이 더 지나서야 법로가 깨어났다.법로는 얼굴 위를 덮고 있던 가면의 무게가 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그는 무섭게 소리쳤다.“노석명은 어디 있지?”법로는 노석명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분노했다.심지어 자신의 가면까지 벗기다니!그 모습에 신무열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아직도 노석명을 만나고 싶은가 보죠? 주변에 쓸 만한 사람이 그리도 없으세요?”법로는 그제야 신무열을 바라보았다. 무사히 살아 있는 신무열을 보고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율이는? 율이는 어디 있어?”법로는 이 상황에서도 딸을 잊지 않았다.신무열은 낮게 웃으며 말했다.“지금 그 율이는 노석명의 딸을 얘기하시는 건지, 아니면 아버지 친딸을 얘기하시는 건지요.”법로는 어리석지 않았다. 신무열의 말을 듣고 노석명이 자신의 딸을 율이로 바꿔치기 했음을 깨달았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율이의 행방을 알고 있는 거냐?”신무열의 태도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했다.“아버지는 이미 율이를 본 적이 있으세요.”신무열은 천천히 입을 열었고 법로는 그제야 깨달았다. 온지유를 보았을 때 느낀 친숙함이 그녀가 법로의 친딸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온지유가 바로 그들이 찾던 율이었던 것이다!법로의 머릿속에는 어릴 적 율이가 사탕과 꽃을 들고 자신을 향해 뛰어오던 장면이 떠올랐다.“아버지.”신무열의 부름에도 법로는 잠시 멍해있었다.“그럼 율이는 지금 어디 있느냐?”법로는 초조해졌다. 과거 한 차례의 화재 이후 그는 율이를 잃었다. 결국 유해를 찾지 못했
“지금 아버지 몸은 아주 허약한 상태예요. 노석명이 무슨 약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평생 실험실에서만 지내 오셨으니 본인이 더 잘 아시겠죠.”이 말을 남기고 신무열은 자리를 뜨려 했다.그러나 아직 온지유의 행방에 대한 답을 듣지 못한 법로는 불안감에 휩싸였다.“율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무사한 거냐?”법로의 마음은 불안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신무열은 잠시 멈춰 서며 그를 되돌아봤다.“인명진을 기억하시나요?”법로는 다시금 침통한 표정으로 대답했다.“그 애는 내가 만든 최고의 작품이었다. 당연히 기억하고말고.”인명진은 법로의 실험을 통해 만들어진 존재였고, 그의 중요한 ‘약인’이었다. 그는 오래전 도망쳤지만 법로는 그를 항상 추적해 왔다. 하지만 끊임없는 전쟁 속에서 사람 한명을 찾는 데에 많은 자원을 쏟을 수는 없었다.법로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인명진이 율이를? 율이 행세를 하던 그놈은?”신무열은 냉랭하게 말했다.“율이가 아버지와는 달리 살길을 남길 줄 아는 아이여서 다행이라 여기세요. 노석명이 반란을 일으킬 때 바로 그 인명진이 율이를 데리고 도망쳤습니다.”온지유가 율이임이 확실해지자 신무열은 그녀를 서슴없이 율이라 부르기 시작했다.특히 법로의 앞에서는 더더욱 말이다.“어떻게든 율이를 찾아야 해. 나는 그 아이에게 너무 큰 빚을 졌어... 정말 볼 면목이 없다...”법로는 목이 메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노석명이 율이를 데리고 와줬으니 눈 앞의 일을 마치면 율이에게 제대로 보상을 해줄것이라고 다짐했었다.하지만 지금은 하나 또 하나 폭풍우같이 사건이 휘몰아쳤다.지금의 그에게는 어떤 계획도 율이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신무열은 그런 법로를 비웃듯 차갑게 말했다.“이제 와서 제게 얘기해 봐야 소용없어요. 이미 때는 늦었으니까요.”그렇게 말하고 신무열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법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깊은 후회와 무거운 죄책감에 사로잡혀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돌덩이가 가슴을 짓누르는 것만 같
온지유가 가장 먼저 그 사람의 모습을 알아차렸다.석양빛을 등지고 선 그는 빛에 감싸여 마치 황금빛 테두리를 두른 듯했다.나민우?!온지유는 순간 그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일어서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비틀거렸다.“민우야...?”인명진은 온지유가 넘어질까 봐 곁에서 조심스럽게 부축했다.나민우도 온지유를 보고 그녀에게 다가왔다.여이현이 통화하는 내용을 들은 그가 그녀를 찾아온 것이다.가끔 떠오르는 기억대로 온지유는 예쁘고 온화한 이미지였다.나민우의 마음속에는 희미한 기억의 파편들이 떠올랐지만 그 기억들을 완전히 붙잡지는 못했다.온지유는 그를 바라보며 과거 노예 수용소에서 나민우를 찾았던 장면을 떠올렸다.그는 자신의 과거를 잊고 있었다.“명진 씨, 민우가 기억을 되찾도록 도와줄 방법이 있을까요?”온지유는 절박하게 물었다.과거를 잊은 사람은 인생에 공백이 생긴 것과 같다.온지유는 자신을 잊는 것은 괜찮아도 가족과 모든 과거를 잊는 것은 나민우에게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했다.“한번 해볼게.”온지유가 하는 부탁을 인명진이 거절 할 리가 없었다.나민우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겨우 온지유를 찾았기 때문이다. 나민우는 모든 것을 잊어도 온지유의 이름만은 기억하고 있었다.그리고 그녀의 옆에 있으면 과거가 떠오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인명진은 자신의 손목에서 피를 흘려 온지유에게 건넸다.온지유는 여전히 거부감이 있었다.“지유야, 나는 너를 해치지 않아. 너도 알다시피 나는 약인이야. 내 피는 네게 도움이 될 거야. 그때 내가 너에게 주었던 푸른 구슬을 기억해?”온지유는 말을 잇지 않았다그 구슬이 주는 편안함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인명진은 설명을 이어갔다.“그 구슬 안에도 내 피가 섞여 있었어. 내 피는 네게 안정감을 줄 거야. 사실 너는 이미 몇 번 내 피를 받아들인적 있어. 너를 데리고 도망쳤을 때에도, 법로가 나를 연구했을 때도...”인명진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멀리서 군복을 입은 남자가 은색 휴대폰을
“그냥 지유로 불러줘요.”그전까지는 인명진과 지낸 시간도 짧았고 이름의 유래도 몰랐기에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지만 율이라는 이름이 법로의 딸에게 붙여진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지금은 사뭇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인명진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난 처음부터 널 율이라고 불렀어. 네가 지금 온지유라는 이름을 쓰고 있어도 너는 여전히 율이야. 과거를 바꾸는 건 불가능해. 태어나는 곳을 선택할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의 출신을 인정하고 알아 갈 필요는 있어.”‘알 필요는 있다’ 라.온지유는 그 말에 웃고 싶었지만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내가 알고 있는 법로와 부하들은 오직 살육과 약탈에 빠져 있었어요. 그 사람은 명진씨를 이런 존재로 만든 사람이기도 해요. 모든 것을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사용하고 있었잖아요.”온지유는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끔찍한 장면들을 하나씩 떠올렸다.과거에 율이로서 Y국에서 어떻게 버텨왔는지 상상할 수 없었다.온지유는 기운이 빠졌다.“명진 씨, 나 좀 피곤한 것 같아요. 잠깐 눈 좀 붙일게요. 이현 씨가 오면 깨워주세요.”온지유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침대에 몸을 누였다.인명진은 조용히 그녀의 곁을 지키며 열을 내려주려 손으로 부채질을 해주었다....한 시간 후, 드디어 여이현이 도착했다.그는 부하에게서 온지유의 위치를 물어본 후 바로 그녀가 있는 텐트로 걸음을 재촉했다.텐트 문을 열자마자 여이현은 온지유의 곁을 지키고 있는 인명진과 멀리 의자에 앉아 있는 나민우를 발견했다.그의 등장에 인명진과 나민우는 무언의 눈빛을 교환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온지유와 여이현 두 사람에게 공간을 남겨 주었다.온지유는 아직 깨어나지 않았고 여이현은 묵묵히 그녀의 곁을 지켰다.잠에서 깬 온지유는 자신이 환각을 보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어서 인명진과 함께 여이현의 부대로 온 것을 기억해 내고 눈앞의 여이현이 환상이 아님을 깨달았다.온지유는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만지려 했고 여이현은 그녀의 손길이 닿도록 가까이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