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의 안색이 순식간에 변했다.“그게 무슨 헛소리야?”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주변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또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당장 저년 입을 막지 못해?! 당장!”말을 마친 그녀는 더 좋은 방법이 생각난 듯 말을 바꿨다.“아니야, 그냥 혀를 뽑아버려야겠어. 영원히 말하지 못하게.”율은 그 뒤로도 한동안 온지유를 어떻게 괴롭힐지 종알댔다. 덕분에 온지유도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사람은 당황할수록 더 과장된 행동을 한다. 신무열의 말을 들어서인지 그녀는 괜히 더 도발하고 싶어졌다.“하.”온지유는 차가운 웃음소리를 냈다.“왜 그래? 무서워? 지금 당장 싹싹 빌면 시체 정도는 남겨줄게.”“내 질문 아직 대답하지 않았어요. 입을 막으려고 하는 걸 봐서 내가 맞는 말을 했다는 거죠? 날 죽인다고 해도 가짜가 진짜로 변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닥쳐! 그 입 다물어!”율은 온지유가 무릎 꿇고 비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사람이라면 죽음을 두려워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지금까지 그녀를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온지유를 제외하면 말이다. 온지유의 행동은 그녀의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남겼다.“날 닥치게 하려면 그냥 죽여야 할 거예요.”단단히 빡친 율은 얼굴이 다 일그러졌다.“내가 못 할 줄 알아?”그녀는 경호원의 손에서 비수를 받아서 들었다. 그리고 바로 온지유의 얼굴에 댔다.“죽는 게 무섭지 않다면, 차라리 죽여달라고 빌게 해주겠어. 네 얼굴 껍질을 도려낼 거야! 그러면 더 이상 널 사랑할 사람이 없겠지. 네 힘줄도 전부 뽑아내서 평생 불구자로 살게 해줄게.”율은 말하는 것만으로도 흥분되었다.온지유는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차가운 칼은 그녀의 얼굴에 닿았다. 아픈 느낌이 있기는 했지만 그녀는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율을 바라봤다.“왜 이렇게 얼굴에 집착해요? 혹시 말 못 할 과거라도 있었어요? 지금 얼굴이 가짜인 건 아니죠? 성형의 흔적이 약간 있는 것 같기도...”“너...!”율은 황급히 얼굴을 가렸다. 그녀는
“그건 아가씨 마음에 달렸어. 오래 살고 싶으면 기도라도 하든지.”김명무가 차갑게 말을 이었다.“얌전히 있어.”말을 마친 김명무는 그냥 떠나버렸다.온지유는 가둬지지 않았다. 그녀는 이곳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이때 Y국 여자 몇 명이 걸어왔다. 그녀는 먼저 인사를 했지만 대꾸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들은 그저 머리를 푹 숙인 채 피할 뿐이었다. 사극에서 보던 궁인과 같은 모습이었다.‘여기 도대체 뭐 하는 곳이야?’그녀는 김명무 등이 떠난 방향을 바라봤다. 고압 전선으로 둘린 벽을 뚫고 도망갈 방법은 없어 보였다. 그녀는 마당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마당은 아주 넓었다. 벽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20분은 걸렸다. 그리고 360도 고압 전선이 있어서 도망갈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쨍그랑!이때 온지유는 무언가 깨지는 소리를 들었다. 곧이어 채찍 소리가 들려왔다.“악! 때리지 마세요! 잘못했어요! 다음부터 조심할게요!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여사님!”“용서? 이게 벌써 몇 번째야? 여기 사용인은 다 내가 교육해. 잘못을 했으면 맞아야지.”거친 목소리가 잇달아 들려왔다. Y국어이기는 했지만 온지유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가까이 다가가 보니 뚱뚱한 여자가 여린 여자아이를 때리는 것이 보였다. 기껏해야 15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는 머리를 감싼 채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손은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 되어 피를 흘리고 있었다. 몸에도 상처는 적지 않게 났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채찍은 상처가 있는 곳도 가차 없이 내리쳤다. 그녀는 비명만 지를 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현장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도 가만히 있었다. 괜히 입을 열었다가는 함께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맞아 죽어도 다 네 팔자지. 네 팔자가 사나운 걸 어쩌겠어.”유젠은 한창 때리다가 갑자기 멈춰 섰다. 온지유가 그녀의 손을 틀어잡은 것이다.“계속 때리다가는 진짜 죽을 거예요. 그릇 하나 깬 걸 목숨으로 갚아야 하나요?”유젠은
아린은 한참 달려서 돌아갔다. 그녀가 돌아온 것을 보고 사람들은 드디어 한시름 놓았다.“아린아, 너 어디 갔었어? 다들 찾았잖아.”“대장님 어디 있어요? 대장님을 만나야 해요!”아린은 빨개진 눈시울로 급하게 말했다.“아직 안 돌아왔어. 지유 씨는? 널 찾으러 간 사람 놔두고 왜 혼자 왔어?”“선생님이 잡혀갔어요. 빨리 대장님을 만나야 해요. 그래야 선생님이 살 수 있어요. 대장님은 어딜 간 거예요? 연락해서 알려야 해요.”“네가 실종한 걸 알자마자 지유 씨가 사람을 보냈어. 소식을 들었다면 금방 돌아올 거야.”아린은 급한 마음으로 기다렸다.잠시 후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아린은 여이현이 돌아온 것을 직감하고 후다닥 달려갔다. 차에서 내린 여이현은 진지한 표정으로 걸어왔다.“선생님이 납치됐어요! 빨리 구해주세요, 대장님!”“누구한테?”“몰라요. 저도 알아내지 못했어요. 근데 선생님을 잡으러 온 건 분명해요. 선생님 지금 엄청 위험할 거예요. 빨리 찾지 않으면...”아린이 준 단서는 별로 없었다. 그런데도 여이현은 알 것만 같았다.그들은 Y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곳에서 원한이 있는 사람이라면 전부터 알았던 사람일 것이다. 특히 노승아가 가장 큰 문제였다.여이현은 차가운 목소리로 지시했다.“당장 출발해!”...같은 시각, 온지유는 아직도 유젠은 붙잡고 있었다. 그녀는 채찍의 끝자락을 들고 별로 힘도 쓰지 않은 채 유젠을 포박했다.유젠은 항상 이런 식으로 여자아이들을 괴롭혀왔다. 남자들은 그녀를 도와주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었다.기선제압을 하더라도 가장 강한 사람에게 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온지유의 생각대로 유젠은 꼼짝 못 하며 말을 바꿨다.“저기... 이것부터 풀어줘. 말로 해결하자, 말로. 어차피 아가씨 여기서 도망 못 가. 괜한 데 힘쓰지 마. 안 그러면 맞는 것보다 더 한 일이 생길 거야.”“이걸 놓으면 바로 죽을 것 같은데요? 그쪽 여기 관리자죠? 내 손에 붙잡고 있으면 조금이라도 더 살 수 있을 것
유젠이 말했다.“아가씨 여기 사람 아니지? 우리 여긴 노예가 흔해 빠졌어. 앞으로 어떻게 살지나 걱정해.”온지유가 이곳에 왔다는 것은 노예가 되었다는 말이다.그녀는 이 넓은 마당에서 모든 사람이 투명 인간이 되려는 것처럼 존재감을 낮추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보니 맞을까 봐 그랬던 것이었다.애초에 도망갈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불법적인 일을 하는 곳에서 해방을 기대하는 건 말이 안 됐다.“여기 혹시 법로의 관할 구역이에요?”이 말을 들은 유젠은 안색이 확 변했다.“이게 무슨 소리야? 아가씨, 그분은 입에 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당장 입 다물어!”법로는 그들도 두려워하는 존재인 모양이다.“법로랑 만난 적 있어요?”유젠은 창백한 안색으로 대답했다.“우리는 뵐 자격 없는 분이야. 그분 얘기는 하지 말라니까. 아니면 큰 화를 입을 거야.”그 말인즉슨 이곳은 법로의 구역이 맞았다. 다행히 그녀의 운이 따라줘서 맞게 찾아왔다.그래도 모험은 모험이었다. 자칫하면 그녀도 여기서 생을 다 할지도 몰랐다. 과연 살아서 나갈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지금은 유젠을 붙잡고 있지만, 평생 이러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앞으로 그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가 가장 큰 문제였다.“여사님, 언니는 좋은 마음으로 저를 도와주려고 한 거예요. 벌해도 저를 벌하세요. 언니는 잘못한 거 없어요.”여자아이는 무릎 꿇고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온지유가 도와준 것이 고맙기도 하고, 유젠이 온지유에게 험한 짓을 할까 봐 걱정되기도 했다.유젠이 이런 말을 듣고 자신을 봐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온지유도 알았다.“나는 노예가 아니에요. 김명무라는 남자가 나를 데려왔어요. 율이 누군지는 알죠?”“율?”유젠은 의심하는 말투로 이어서 물었다.“율이 아가씨는 또 어떻게 알아?”“글쎄요. 그리고 나 여기서 나갈 생각 없어요. 그냥 좀 자유롭게 살고 싶을 뿐이에요. 율이가 데려온 사람을 그쪽들이 죽일 수는 없잖아요. 내 시체를 보게 된다면 율이 어떻게 할 것 같아요
벽에 박힌 총알과 끊어진 채찍을 바라보며 유젠의 안색은 빠르게 변했다.“빠, 빨리 경비를...!”생명의 위협을 느낀 유젠은 머리를 감싼 채 도망갔다. 온지유를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하지만 별로 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전쟁을 겪은 사람은 폭죽 소리도 총소리로 착각하는 법이니 말이다.총소리는 한 발만 들려왔다. 한참이나 잠잠하자 유젠은 머리를 빼꼼 내밀어 상황을 확인했다.온지유는 유리를 통해 거대한 몸집의 남자가 걸어오는 것을 확인했다. 상대는 무표정한 얼굴로 성큼성큼 걸어와서 문을 열었다.그 순간 방안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유젠은 멍한 얼굴로 물었다.“요... 요한 님... 여, 여긴 어떻게...?”요한은 신무열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이곳에 직접 등장한 것이다. 요한쯤 되니까 총을 쏠 수도 있었다.온지유의 앞으로 가서 멈춰 선 요한은 차갑게 말했다.“이 사람, 건드리지 마.”유젠은 눈에 띄게 멈칫했다. 온지유가 한 말이 당연히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이었던 것이다.유젠이 말이 없는 것을 보고 요한은 예리한 눈빛으로 다시 물었다.“내 말 못 들었어?”“들었습니다. 들었습니다.”유젠은 황급히 대답했다. 그리고 눈길 하나로 모든 사람을 물러나게 했다.눈치 보던 온지유는 이때다 싶어서 다친 여자아이를 부축했다. 그녀는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유젠은 이미 요한을 뒤따라 떠나버렸다.어쩔 수 없이 온지유는 여자아이를 부축해서 원래 곳으로 돌아갔다.같은 시각, 요한은 유젠에게 다시 한번 경고했다.“잊지 마. 내가 계속 지켜보고 있을 거야. 만약 저 여자를 건드리면 조각 나서 개밥 그릇에 담길 줄 알아.”“네, 걱정하지 마세요! 직접 전하신 말을 제가 어떻게 잊겠어요. 무조건 따를게요.”요한은 신무열 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요한의 사격 실력도 이미 잘 알려졌다. 그를 건드리는 건 죽겠다는 것과 다름없었다.한참 침묵에 잠겨 있던 요한은 유젠을 향해 발길질했다.“아악!”돼지 멱 따는
이곳에서는 폭력이 당연한 것이었다. 심지어 약물 실험과 각종 인체 실험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정말 죽는 편이 나을 정도로 잔인한 일들이었다.이야기를 듣고 난 온지유는 비참한 느낌이 들었다. 여자아이는 피식 비웃으며 말했다.“여기서는 시체도 다 쓸모가 있어요.”여자아이는 시체가 어떻게 이용되는지 또 설명해 줬다. 온지유는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이곳은 노예 수용소도 아닌 그냥 지옥이었다....한편, 같은 공간의 다른 방에는 호화로운 장식으로 꾸며진 고급스러운 방이 있었다. 율은 이 방 안에 있었다.그녀의 테이블에는 값비싼 보석들과 정교한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여유 적적하게 즐기기만 하면 된다.갑자기 드르륵 소리가 나더니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건장한 남자 두 명이 들어왔다.율은 그들의 착장만 보고 누구인지 알아챘다. 곧이어 검은 망토로 몸을 가린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검은색 가면을 쓰고 있어서 얼굴은 물론 눈조차 보이지 않았다.율은 즉시 일어나서 공손히 남자에게 다가갔다.“아버지.”남자는 율과 멀지 않은 곳에 멈춰 섰다. 그리고 목이 망가진 사람과 같은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율아, 너 요즘은 뭘 하고 있니?”율은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가 찾아온 게 우연이 아님을 알았다. 그녀가 이곳에 온 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딱히 한 건 없어요...”남자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한 게 없다고? 난 네가 누군가 데려왔다고 들었는데?”남자는 율이 앞으로 몇 걸음 다가갔다. 율은 긴장한 기색으로 말했다.“그 사람이 먼저 저를 괴롭혔어요. 저 거의 죽을 뻔했어요. 그래서 복수하고 싶었는데, 하 장로님이 막더라고요.”율은 남자의 얼굴을 볼 수 없는데도 반응을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남자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기분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그녀는 주먹을 꽉 쥐며 덧붙였다.“아버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걔는 그냥 평범한 여자인데 왜 장로님의 보호는 받는 거죠? 혹시 장로님을 믿고 저를 괴롭히는 건 아닐까요
율의 눈에 섬뜩한 기운이 스쳤다. 그래도 이미 온지유를 이곳으로 데려왔으니 절대 살아서 나가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하지만 남자가 떠난 지 반 시간도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그녀의 방문을 두드렸다.“들어와요.”율의 대답을 듣고, 한 남자가 몸보신을 위한 인삼탕을 들고 들어왔다. 남자는 그녀 앞에서 공손하게 말했다.“아가씨, 법로 님께서 건강을 챙기라고 하시며 이 인삼탕을 가져다드리라고 하셨습니다.”“여기 둬요. 옷 갈아입고 먹을게요.”율은 인삼탕을 힐끗 본 후 등을 돌렸다. 인삼탕은 이곳에 와서 꽤 자주 나왔다. 그래서 그녀는 이미 인삼탕에 질려 있었다.남자는 그녀의 말대로 인삼탕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법로 님께서 반드시 다 드시는 걸 지켜보라고 하셨습니다.”율은 말없이 옷을 갈아입고 나서 테이블 앞에 앉아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닭고기 냄새와 한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하지만 그녀는 숨을 참고 억지로 탕부터 마셨다.“좀 유연하게 대처할 순 없나요? 꼭 내가 다 먹는 걸 지켜봐야겠어요? 내가 그렇게 약골은 아니잖아요.”남자는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저는 지시에 따를 뿐입니다.”율은 답답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저 손을 흔들며 그를 내보냈다.“알겠어요. 나가요.”지난날의 모든 고통을 견뎌온 그녀가 인삼탕 따위에 굴할 리가 없었다.“네.”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갔다. 율도 머리를 질끈 묶고 베일을 쓴 후 방을 나섰다.그녀는 온지유를 보러 가려고 했다. 하지만 조금 전의 남자가 다시 앞을 가로막았다. 남자는 공손하지만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법로 님께서 당분간 아가씨가 푹 쉬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지 마세요.”이 말을 듣자 율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돌아다니지 말라니, 이건 그녀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었다.마음속에 화가 났지만, 그녀는 표현하지 않았다. 억울한 마음으로 돌아선 그녀는 김명무에게 몰래 문자를 보냈다.[온지유의 상태를 확인하고 영상 찍어줘요.]그녀가 발이 묶인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녀에
온지유는 이곳에 와서 남자를 본 적 없다.여자아이가 대답하려고 한 순간 문이 열리고 유젠이 들어왔다. 그녀는 온지유를 바라보며 말했다.“너, 나와.”온지유는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온지유가 멀어지는 것을 보고 여자아이도 미간을 찌푸렸다. 쉬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 찰나 유젠이 데리러 왔으니 말이다.‘이제 결국 벌하려는 건가?’여자아이의 얼굴은 차분했다. 시선도 차갑기 그지없었다.그녀는 주먹을 꽉 쥐었다. 죽더라도 유젠은 꼭 데려가겠다고 다짐했다. 안 그러면 그녀가 지금껏 한 고생이 헛될 것 같았다.같은 시각, 온지유는 조심스럽게 경계하며 유젠을 뒤따랐다. 유젠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한동안 걷다가 한 남자 앞에 가서 멈춰 섰다.남자는 온지유도 아는 사람이다. 바로 얼마 전 그녀를 구해준 적 있는 요한이라는 사람이었다.“요한 님, 말씀대로 데려왔으니 저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유젠은 빨리 나가고 싶은 듯 빠르게 말하며 몸을 돌렸다. 요한의 발에 차였던 곳이 아직도 아팠다. 뼈가 바들바들 떨리는 것 같은 정도였다. 그러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유젠이 떠나고, 이 공간에는 그녀와 요한만 남게 되었다. 요한은 검은색 카드를 건넸다. 위에는 검은색 밧줄이 감겨 있었다.“이걸 가지고 있으면 아무도 건드리지 못할 거예요. 이곳을 떠나지 않는 전제하에 어디든 갈 수 있어요.”온지유는 카드를 바라보며 물었다.“무열 씨의 뜻인가요?”신무열은 그녀가 이곳에 있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녀가 위험에 처한 줄 알고 요한도 보낸 것 같다.근데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카드를 주면서 왜 나가지는 못하게 하는 걸까? 온지유는 알 수 없었다.요한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어떻게 알았어요?”요한은 한 번도 온지유 앞에서 정체를 밝힌 적 없다. 심지어 별다른 말을 한 적도 없다. 하지만 온지유는 신무열의 정체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가 신무열의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다.‘도련님이 알려줬나?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도련님은 함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