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젠이 말했다.“아가씨 여기 사람 아니지? 우리 여긴 노예가 흔해 빠졌어. 앞으로 어떻게 살지나 걱정해.”온지유가 이곳에 왔다는 것은 노예가 되었다는 말이다.그녀는 이 넓은 마당에서 모든 사람이 투명 인간이 되려는 것처럼 존재감을 낮추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보니 맞을까 봐 그랬던 것이었다.애초에 도망갈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불법적인 일을 하는 곳에서 해방을 기대하는 건 말이 안 됐다.“여기 혹시 법로의 관할 구역이에요?”이 말을 들은 유젠은 안색이 확 변했다.“이게 무슨 소리야? 아가씨, 그분은 입에 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당장 입 다물어!”법로는 그들도 두려워하는 존재인 모양이다.“법로랑 만난 적 있어요?”유젠은 창백한 안색으로 대답했다.“우리는 뵐 자격 없는 분이야. 그분 얘기는 하지 말라니까. 아니면 큰 화를 입을 거야.”그 말인즉슨 이곳은 법로의 구역이 맞았다. 다행히 그녀의 운이 따라줘서 맞게 찾아왔다.그래도 모험은 모험이었다. 자칫하면 그녀도 여기서 생을 다 할지도 몰랐다. 과연 살아서 나갈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지금은 유젠을 붙잡고 있지만, 평생 이러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앞으로 그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가 가장 큰 문제였다.“여사님, 언니는 좋은 마음으로 저를 도와주려고 한 거예요. 벌해도 저를 벌하세요. 언니는 잘못한 거 없어요.”여자아이는 무릎 꿇고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온지유가 도와준 것이 고맙기도 하고, 유젠이 온지유에게 험한 짓을 할까 봐 걱정되기도 했다.유젠이 이런 말을 듣고 자신을 봐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온지유도 알았다.“나는 노예가 아니에요. 김명무라는 남자가 나를 데려왔어요. 율이 누군지는 알죠?”“율?”유젠은 의심하는 말투로 이어서 물었다.“율이 아가씨는 또 어떻게 알아?”“글쎄요. 그리고 나 여기서 나갈 생각 없어요. 그냥 좀 자유롭게 살고 싶을 뿐이에요. 율이가 데려온 사람을 그쪽들이 죽일 수는 없잖아요. 내 시체를 보게 된다면 율이 어떻게 할 것 같아요
벽에 박힌 총알과 끊어진 채찍을 바라보며 유젠의 안색은 빠르게 변했다.“빠, 빨리 경비를...!”생명의 위협을 느낀 유젠은 머리를 감싼 채 도망갔다. 온지유를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하지만 별로 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전쟁을 겪은 사람은 폭죽 소리도 총소리로 착각하는 법이니 말이다.총소리는 한 발만 들려왔다. 한참이나 잠잠하자 유젠은 머리를 빼꼼 내밀어 상황을 확인했다.온지유는 유리를 통해 거대한 몸집의 남자가 걸어오는 것을 확인했다. 상대는 무표정한 얼굴로 성큼성큼 걸어와서 문을 열었다.그 순간 방안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유젠은 멍한 얼굴로 물었다.“요... 요한 님... 여, 여긴 어떻게...?”요한은 신무열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이곳에 직접 등장한 것이다. 요한쯤 되니까 총을 쏠 수도 있었다.온지유의 앞으로 가서 멈춰 선 요한은 차갑게 말했다.“이 사람, 건드리지 마.”유젠은 눈에 띄게 멈칫했다. 온지유가 한 말이 당연히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이었던 것이다.유젠이 말이 없는 것을 보고 요한은 예리한 눈빛으로 다시 물었다.“내 말 못 들었어?”“들었습니다. 들었습니다.”유젠은 황급히 대답했다. 그리고 눈길 하나로 모든 사람을 물러나게 했다.눈치 보던 온지유는 이때다 싶어서 다친 여자아이를 부축했다. 그녀는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유젠은 이미 요한을 뒤따라 떠나버렸다.어쩔 수 없이 온지유는 여자아이를 부축해서 원래 곳으로 돌아갔다.같은 시각, 요한은 유젠에게 다시 한번 경고했다.“잊지 마. 내가 계속 지켜보고 있을 거야. 만약 저 여자를 건드리면 조각 나서 개밥 그릇에 담길 줄 알아.”“네, 걱정하지 마세요! 직접 전하신 말을 제가 어떻게 잊겠어요. 무조건 따를게요.”요한은 신무열 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요한의 사격 실력도 이미 잘 알려졌다. 그를 건드리는 건 죽겠다는 것과 다름없었다.한참 침묵에 잠겨 있던 요한은 유젠을 향해 발길질했다.“아악!”돼지 멱 따는
이곳에서는 폭력이 당연한 것이었다. 심지어 약물 실험과 각종 인체 실험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정말 죽는 편이 나을 정도로 잔인한 일들이었다.이야기를 듣고 난 온지유는 비참한 느낌이 들었다. 여자아이는 피식 비웃으며 말했다.“여기서는 시체도 다 쓸모가 있어요.”여자아이는 시체가 어떻게 이용되는지 또 설명해 줬다. 온지유는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이곳은 노예 수용소도 아닌 그냥 지옥이었다....한편, 같은 공간의 다른 방에는 호화로운 장식으로 꾸며진 고급스러운 방이 있었다. 율은 이 방 안에 있었다.그녀의 테이블에는 값비싼 보석들과 정교한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여유 적적하게 즐기기만 하면 된다.갑자기 드르륵 소리가 나더니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건장한 남자 두 명이 들어왔다.율은 그들의 착장만 보고 누구인지 알아챘다. 곧이어 검은 망토로 몸을 가린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검은색 가면을 쓰고 있어서 얼굴은 물론 눈조차 보이지 않았다.율은 즉시 일어나서 공손히 남자에게 다가갔다.“아버지.”남자는 율과 멀지 않은 곳에 멈춰 섰다. 그리고 목이 망가진 사람과 같은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율아, 너 요즘은 뭘 하고 있니?”율은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가 찾아온 게 우연이 아님을 알았다. 그녀가 이곳에 온 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딱히 한 건 없어요...”남자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한 게 없다고? 난 네가 누군가 데려왔다고 들었는데?”남자는 율이 앞으로 몇 걸음 다가갔다. 율은 긴장한 기색으로 말했다.“그 사람이 먼저 저를 괴롭혔어요. 저 거의 죽을 뻔했어요. 그래서 복수하고 싶었는데, 하 장로님이 막더라고요.”율은 남자의 얼굴을 볼 수 없는데도 반응을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남자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기분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그녀는 주먹을 꽉 쥐며 덧붙였다.“아버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걔는 그냥 평범한 여자인데 왜 장로님의 보호는 받는 거죠? 혹시 장로님을 믿고 저를 괴롭히는 건 아닐까요
율의 눈에 섬뜩한 기운이 스쳤다. 그래도 이미 온지유를 이곳으로 데려왔으니 절대 살아서 나가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하지만 남자가 떠난 지 반 시간도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그녀의 방문을 두드렸다.“들어와요.”율의 대답을 듣고, 한 남자가 몸보신을 위한 인삼탕을 들고 들어왔다. 남자는 그녀 앞에서 공손하게 말했다.“아가씨, 법로 님께서 건강을 챙기라고 하시며 이 인삼탕을 가져다드리라고 하셨습니다.”“여기 둬요. 옷 갈아입고 먹을게요.”율은 인삼탕을 힐끗 본 후 등을 돌렸다. 인삼탕은 이곳에 와서 꽤 자주 나왔다. 그래서 그녀는 이미 인삼탕에 질려 있었다.남자는 그녀의 말대로 인삼탕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법로 님께서 반드시 다 드시는 걸 지켜보라고 하셨습니다.”율은 말없이 옷을 갈아입고 나서 테이블 앞에 앉아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닭고기 냄새와 한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하지만 그녀는 숨을 참고 억지로 탕부터 마셨다.“좀 유연하게 대처할 순 없나요? 꼭 내가 다 먹는 걸 지켜봐야겠어요? 내가 그렇게 약골은 아니잖아요.”남자는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저는 지시에 따를 뿐입니다.”율은 답답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저 손을 흔들며 그를 내보냈다.“알겠어요. 나가요.”지난날의 모든 고통을 견뎌온 그녀가 인삼탕 따위에 굴할 리가 없었다.“네.”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갔다. 율도 머리를 질끈 묶고 베일을 쓴 후 방을 나섰다.그녀는 온지유를 보러 가려고 했다. 하지만 조금 전의 남자가 다시 앞을 가로막았다. 남자는 공손하지만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법로 님께서 당분간 아가씨가 푹 쉬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지 마세요.”이 말을 듣자 율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돌아다니지 말라니, 이건 그녀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었다.마음속에 화가 났지만, 그녀는 표현하지 않았다. 억울한 마음으로 돌아선 그녀는 김명무에게 몰래 문자를 보냈다.[온지유의 상태를 확인하고 영상 찍어줘요.]그녀가 발이 묶인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녀에
온지유는 이곳에 와서 남자를 본 적 없다.여자아이가 대답하려고 한 순간 문이 열리고 유젠이 들어왔다. 그녀는 온지유를 바라보며 말했다.“너, 나와.”온지유는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온지유가 멀어지는 것을 보고 여자아이도 미간을 찌푸렸다. 쉬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 찰나 유젠이 데리러 왔으니 말이다.‘이제 결국 벌하려는 건가?’여자아이의 얼굴은 차분했다. 시선도 차갑기 그지없었다.그녀는 주먹을 꽉 쥐었다. 죽더라도 유젠은 꼭 데려가겠다고 다짐했다. 안 그러면 그녀가 지금껏 한 고생이 헛될 것 같았다.같은 시각, 온지유는 조심스럽게 경계하며 유젠을 뒤따랐다. 유젠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한동안 걷다가 한 남자 앞에 가서 멈춰 섰다.남자는 온지유도 아는 사람이다. 바로 얼마 전 그녀를 구해준 적 있는 요한이라는 사람이었다.“요한 님, 말씀대로 데려왔으니 저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유젠은 빨리 나가고 싶은 듯 빠르게 말하며 몸을 돌렸다. 요한의 발에 차였던 곳이 아직도 아팠다. 뼈가 바들바들 떨리는 것 같은 정도였다. 그러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유젠이 떠나고, 이 공간에는 그녀와 요한만 남게 되었다. 요한은 검은색 카드를 건넸다. 위에는 검은색 밧줄이 감겨 있었다.“이걸 가지고 있으면 아무도 건드리지 못할 거예요. 이곳을 떠나지 않는 전제하에 어디든 갈 수 있어요.”온지유는 카드를 바라보며 물었다.“무열 씨의 뜻인가요?”신무열은 그녀가 이곳에 있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녀가 위험에 처한 줄 알고 요한도 보낸 것 같다.근데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카드를 주면서 왜 나가지는 못하게 하는 걸까? 온지유는 알 수 없었다.요한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어떻게 알았어요?”요한은 한 번도 온지유 앞에서 정체를 밝힌 적 없다. 심지어 별다른 말을 한 적도 없다. 하지만 온지유는 신무열의 정체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가 신무열의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다.‘도련님이 알려줬나?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도련님은 함부
바닥에 쓰러진 남자는 꼼작하지 않았다.“끌고 가서 개한테 먹여!”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순간 온지유는 죽을지언정 살고 싶지 않아 했던 여자아이의 마음을 이해했다.“그만.”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 명의 남자가 시선을 보냈다.요한을 발견한 순간 그들은 안색이 확 변하며 고개를 숙였다.“요한 님!”요한은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 정신을 잃은 남자를 힐끗 바라보며 살아 있는지 확인했다.“아직 살아 있어. 죽었다고 해도 개 먹이로 버리는 건 아니지. 요즘 노예 찾기도 어려워. 법로 님의 실험이 성공하기 전에는 인원을 아껴야지.”“네, 요한 님.”남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그들은 조금 전의 기세를 잃은 채 한없이 공손하기만 했다.온지유는 이제야 노예 수용소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갈라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젠이 여자 노예의 관리인이라면, 요한은 남자 노예의 관리인인 모양이다.요한은 신무열을 도련님이라고 부른다. 법로도 아는 것을 봐서 신무열과 율은 법로의 자식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이 지옥을 만들어낸 악마는 법로일 것이다.온지유는 주먹을 꽉 쥐었다. 벌써 특권과 같은 것을 얻었으니 법로와 만나는 것도 시간문제인 것 같았다.복잡한 생각을 멈춘 그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저 무열 씨랑 만날 수 있을까요?”“도련님께서 그런 지시는 없었어요. 하지만 이곳에서 돌아다니는 건 문제 없어요. 생각 없으면 이만 돌아가서 쉬고, 괜찮으면 제가 길을 안내할게요.”거절당했다.온지유는 잠시 침묵에 잠겼다가 결국 결정을 내렸다.“안내해 주세요.”“네.”그렇게 온지유는 요한을 뒤따랐다.이곳은 그녀가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넓었다. 마당의 중앙에는 커다란 나무도 있었다. 나무의 가지는 바깥세상까지 뻗어 있었다.요한을 따라 구경하다 보니 성벽과 같은 거대한 벽 바깥에도 경비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요한과 미리 돌아봐서 다행이지, 나무를 타서 도망가려고 했다가 다시 잡혀 오면 정말 죽을지도 몰랐다.아니, 죽는 게 사치
독기 서린 검은색 눈동자는 온지유를 빤히 노려보고 있었다.율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고생 좀 하라고 데려온 온지유가 요한을 따라다닐 줄은 말이다.요한은 신무열의 사람이다. 더군다나 남자 노예의 관리인으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사람이 온지유를 데리고 산책이나 하고 있었던 것이다.‘여기가 휴양지인 줄 알아?’율은 이를 악물었다. 주먹을 꽉 쥐자 손톱은 손바닥에 박히게 되었다.이때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해 보니 김명무의 문자였다.[온지유 씨가 도련님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도련님께서 블랙카드까지 줬습니다.]모든 글씨가 비수가 되어 그녀의 심장을 찔렀다. 눈이 아픈 건 물론 심장은 뒤틀려지기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분노와 질투가 마음속에서 빠르게 자라났다.그녀는 김명무에게 전화를 걸어 단호하게 말했다.“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여자를 괴롭혀요. 절대 가만히 내버려둬서는 안 돼요. 죽고 싶게 만들어 달라고요!”“...어렵지만 최선을 다 해볼게요. 그런데 도련님 말고도 하 장로님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주세요.”김명무는 고민 끝에 대답했다.안 그래도 기분이 나빴던 율은 김명무의 답을 듣고 더욱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나도 알아요! 그래서 지금 내 명령을 따르지 않겠다는 거예요?”율의 입장에서는 말 안 듣는 수하를 버리고 다른 수하를 들이면 되는 일이었다.“아닙니다.”김명무가 대답하기 바쁘게 율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녀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핸드폰을 꽉 붙들었다. 온지유를 절대 살려두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말이다....한편, 온지유는 재채기를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요한의 안내 덕분에 수용소에 부쩍 익숙해졌다.이때 다급한 남자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이에서 들려왔다.“요한 님, 큰 일 났습니다.”요한의 안색은 빠르게 어두워졌다. 그것만으로도 기세가 훨씬 강해졌다.하지만 온지유를 바라볼 때는 훨씬 가다듬어진 목소리로 말했다.“저는 처리할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 구경하고 싶으면 계속 구경하다가 지내던 곳으
남자는 눈살을 찌푸렸다.“누구야?”지금은 모두 일정대로 움직일 때이다. 그러나 온지유는 이곳에서 통행증과 같은 블랙카드를 들고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다.온지유도 부쩍 긴장했다. 법로의 땅에서 이 정도의 권위가 있는 사람이라면 대단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눈앞의 남자가 어떤 위치에 있을지 그녀는 상상도 안 됐다.그녀는 경계 태세로 말했다.“저는 무열 도련님 쪽 사람이에요. 온 지 얼마 안 돼서 적응 중이에요.”온지유는 아직 홍혜주와 마주치지 못했다. 나민우가 어디에 있는지도 막막했다. 그녀는 빠른 시일 내에 두 사람을 찾아야 했다.할 일이 있다고 생각하니 부쩍 살아갈 용기가 생겼다. 그렇다면 빨리 수용소의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무열 도련님 쪽 사람이라...”남자는 그녀의 말을 반복했다.“네, 저는 할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요.”온지유는 괜한 사람을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공손하게 정체를 밝혔다. 적어도 안 좋은 일을 당하는 일은 없도록 말이다.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시선은 빤히 그녀에게 향해 있었다. 얼굴, 눈, 그리고 뒷모습까지... 만약 하얀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면 장미꽃 옆에 서 있는 모습이 꼭 기억 속의 그녀와 같았다.“다크.”남자가 말했다. 곧이어 건장한 체형의 다크가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다크는 예리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마스크를 쓴 남자에게는 아주 공손했다.“법로 님.”법로는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저 여자 따라가서... 아니다, 무열이를 불러줘.”“네.”다크는 바로 명령을 수행하러 가려고 했다. 그가 몸을 돌린 순간 법로가 또 불러 세웠다.“율이 쪽은 어때?”발걸음을 멈춘 다크는 다시 몸을 돌려서 대답했다.“아가씨는 인삼탕을 안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지금 기분도 약간 언짢으십니다.”“안 좋아해? 그래, 무열이한테 저녁쯤 오라고 전해줘.”“네.”다크를 보낸 후 법로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약 2시간 후, 법로는 직접 율의 방에 나타났다. 정원에 있을 때와 달리 그는 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