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아의 얼굴은 순식간에 빨개졌다. 눈앞도 약간 흐릿했다.“그걸로 협박이 될 거로 생각해? 죽고 싶지 않으면 입 다물고 있어! 그럼 좀 봐줄 수도 있으니까.”노승아는 완전히 입을 다물었다.온지유는 하도 긴장해서 식은땀에 흠뻑 젖었다. 그녀는 홑몸이 아니었다. 그녀는 임신한 몸이기에 함부로 행동할 수 없었다.“넌 아직도 살아있을 줄 몰랐네.”흉터남은 온지유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여이현이 신경 많이 쓴 모양이야.”“그게 여이현 씨랑 무슨 상관이죠? 저희 헤어진 거 몰라요? 살인 충동이라면 제가 더 강할 것 같네요.”흉터남은 또 노승아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네가 좀 똑똑한가 보구나. 자기 아버지랑 아주 똑같네.”온지유가 물었다.“도대체 저는 왜 납치한 거예요? 여이현 씨가 무슨 일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랑은 상관없잖아요.”“그래, 상관없지. 여이현이 너랑 헤어진 것도 알고 있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두 년 다 잡아 오는 게 안전하지 않겠어?”흉터남은 아무런 실수도 없어야 했다. 한쪽은 여이현의 아내고, 다른 한쪽은 애인이었다. 실수가 없기 위해서는 양쪽 다 잡아야 했다.더군다나 노승아의 아버지는 그를 함정에 빠지게 했다. 더욱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죽게 되더라도 혼자 죽지는 않을 것이다.“사람들이 쫓아왔어요!”홍혜주는 긴장한 기색으로 달려와서 말했다.“준비를 하려면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해요.”홍혜주를 발견한 온지유는 잠깐 멈칫하다가 시선을 돌렸다. 별다른 감정을 내비치지 않았다.그녀는 홍혜주가 왜 이곳에 있는지 몰랐다. 그래도 흉터남이 추격을 피할 수 없다는 것과 이곳에 남아 있다가는 자신도 죽으리라는 것은 알았다.흉터남은 차가운 눈빛으로 홍혜주를 바라보다가 배를 퍽 찼다. 뒤로 쓰러진 홍혜주는 힘겹게 다시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인명진은? 너희 둘도 날 배신했지? 이제 다 컸다고 나는 안중에도 없는 거 아니야?”“저는 죽어서도 아버지를 따를 거예요. 하지만 명진이는 잘 모르겠어요. 만약 죽이라
“닥쳐!”홍혜주는 차갑게 말을 이었다.“난 생명의 은인에게 목숨을 바칠 뿐이야.”“미쳤어? 뭐가 됐든 이제 끝장난 사람이야. 넌 개처럼 이용당하고 있다고!”“입 막아.”홍혜주의 명령이 떨어지기 바쁘게 누군가 악취 나는 걸레를 가져와 노승아의 입을 막았다.“읍!”그 역겨운 냄새에 노승아는 구역질이 났지만, 어떻게 벗어날 수 없었다.홍혜주는 온지유를 바라보았다. 온지유도 그녀를 응시했다. 그녀의 눈빛에서는 중요한 정보를 알 수 있었다. 그녀는 흉터남을 돕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녀를 도우려 하고 있었다.온지유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홍혜주는 안심시키려는 듯 미소를 지었다.그런데도 온지유는 마음이 불안했다. 홍혜주가 그녀를 위해 해독제를 찾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지난번 홍혜주가 말했던 것처럼, 그녀를 돕겠다고 했던 말은 사실이었다.그러나 해독제가 진짜 흉터남의 손에 있는지는 미지수였다. 그녀는 홍혜주가 이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기를 바랐다.온지유는 홍혜주의 팔을 잡았다. 하지만 그녀를 가볍게 손을 뿌리치고 나갔다.밖에서는 총성과 폭발음, 그리고 비명이 섞여 들려왔다.온지유는 이런 장면을 처음 봤다. 몸이 후들후들 떨리더니 얼굴은 창백해졌다. 흉터남과 부하들은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이때 홍혜주가 말했다.“다시 기둥에 묶을게요.”온지유와 노승아는 마당의 두 기둥에 묶였다.“하하하하!”흉터남은 죽음도 두렵지 않은 듯 웃음을 터뜨렸다.“이런 날이 올 줄은 또 몰랐군.”그는 마당의 의자에 앉아 여유롭게 차를 마시며 그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발걸음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그리고 한 무리의 사람이 안으로 들어와 그를 향해 총을 겨눴다.흉터남의 부하들도 마찬가지로 총을 들고 그들을 겨냥했다. 흉터남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인질이 있었기에 안 되겠다 싶으면 다 같이 죽을 생각이었다.총을 바라보고 있자니 온지유는 피비린내가 맡아지는 것 같아서 구역질이 났다. 마음속에서는 공포가
온지유는 추호도 버둥거리지 않았다. 답을 알기에 두렵지 않은 것이었다.그녀는 여이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인파 속에서도 한눈에 알리는 우월한 남자였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그녀가 넘볼 수 없었다.기분 탓인지 오늘따라 여이현이 낯설어 보이기도 했다. 그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녀를 보호해 줄 거라는 느낌도, 그녀를 사랑한다는 느낌도 없었다.그녀는 한없는 실망 속으로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여이현은 고민되는 것이 있는 듯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럴 수록 온지유는 더욱 실망할 뿐이었다.“빨리 골라! 안 그러면 둘 다 죽여버릴 거니까!”흉터남은 마음이 급했다. 그는 주사기를 휘적대며 선택을 강요했다.너무 오래 묶여 있었던 온지유는 몸이 저리기 시작했다. 임신 때문에 원래도 잘 안 올라오던 숨이 더 심해졌다. 안색은 아주 창백했다.노승아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누가 봐도 지켜주고 싶은 불쌍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여이현에게 모든 기대를 걸었다.여이현은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한 사람을 가리켰다. 그의 손끝이 가리킨 사람은 노승아였다.온지유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반대로 노승아는 상기된 표정으로 여이현을 바라봤다. 아주 행복한 모습이었다.‘이현 오빠가 나를 선택했어! 나를 살려줬다고! 이현 오빠는 나를 좋아하는 거야!’그녀는 더욱 힘차게 몸부림쳤다. 이제 드디어 풀려날 수 있는 줄 알았다.그러나...“하하하!”흉터남이 섬뜩한 웃음소리를 냈다. 곧 온지유의 밧줄이 풀리더니 휘청거리며 바닥에 쓰러졌다.그녀가 쓰러지는 것을 보고 홍혜주가 움찔했다. 그러나 아직은 움직이지 않고 주먹만 움켜쥐었다.온지유는 여전히 넋이 나가 있었다. 여이현이 자신을 포기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풀려나서 어리둥절했던 것이다.그녀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이성을 잃은 흉터남을 바라봤다. 흉터남의 표적은 그녀가 아니었다. 그는 독기 서린 눈빛으로 여이현을 바라보고 있었다.“자신이 죽는 것보다 사랑하
호텔 바닥은 아수라장이었다.잠에서 깬 지유는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지유는 미간을 주무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커다란 몸집을 가진 남자가 옆에 누워 있는 걸 발견했다.지나칠 정도로 잘생긴 얼굴은 조각과도 같았고 눈매도 깊고 진했다.아직 깊은 잠이 들어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지유가 몸을 일으키자 이불이 그녀의 몸에서 미끄러져 내렸고 뽀얗고 매혹적인 두 어깨에 어젯밤 남긴 흔적이 보였다.지유가 앉았던 자리에 선명한 핏자국이 보였다.시간을 보니 어느새 출근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유는 바닥에 널브러진 출근룩을 다시 집어 들어 얼른 갈아입었다.스타킹은 이미 남자에 의해 찢겨 있었다.지유는 스타킹을 돌돌 말아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하이힐을 신었다.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깔끔하게 차려입은 지유는 어느새 워커홀릭 비서로 완전히 돌아왔고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들어온 사람은 청순한 미녀였다.지유가 부른 사람이었다.이현의 취향이 이런 여자였다.지유가 그 여자에게 이렇게 말했다.“침대에 누워서 대표님 깨나길 기다리면 돼요. 다른 건 한마디도 하지 마요.”지유는 고개를 돌려 아직 단잠에 빠진 남자를 힐끔 쳐다봤다. 억울한 마음에 코끝이 찡해졌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방에서 나왔다.지유는 두 사람이 어젯밤 잠자리를 가졌다는 사실을 이현이 아는 게 싫었다.그들 사이에 계약에 의하면 아무도 모르게 3년간 결혼을 유지하면 바로 이혼할 수 있었다.이 기간에 선을 넘는 행동은 그 어떤 것도 용납되지 않았다.지유는 7년째 이현의 비서로, 3년째 이현의 와이프로 있었다.졸업한 그날부터 이현의 곁을 한시도 떠난 적이 없었다.같은 날, 이현은 지유에게 두 사람은 그저 상사와 부하의 관계일 뿐 이 관계를 뛰어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지유는 복도 창가에 서서 어제 일을 떠올렸다. 이현은 그녀를 안고 침대에 누워 ‘승아’라는 이름을 연신 불러댔다.지유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승아는 이현의 첫사랑이었다.이현은 지유를 승
이에 지유가 화들짝 놀라며 하마터면 발을 삐끗할 뻔했다.중심을 잘 잡지 못한 지유는 그렇게 이현의 몸에 기댔다.이현은 지유의 몸이 앞으로 쏠리자 손으로 지유의 허리를 잡아줬다.뜨거운 체온이 전해지자 지유는 어젯밤 그가 저돌적으로 그녀를 덮치던 화면이 떠올랐다.지유는 가까스로 진정하고 고개를 들어 이현의 깊은 눈동자를 마주 봤다.이현의 눈동자는 매우 진지했고 그 속엔 질문과 의혹도 담겨 있었다. 눈빛은 지유를 뚫어버릴 것만 같았다.지유는 심장이 벌렁거렸다.이현과 더는 눈을 마주칠 엄두가 나지 않아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아까 나간 그 여자라고 생각했을 때도 이현은 불같이 화를 냈는데 여기서 만약 지유가 자신이었음을 인정한다면 후과가 그리 좋지는 않을 것이다.하지만 아니라고 하기엔 억울했다.만약 어젯밤 잠자리를 가진 사람이 지유라는 걸 이현이 알게 된다면 결혼 생활을 조금이라도 더 이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그래도 지유는 그와 눈을 마주치는 게 겁나 고개를 숙인 채로 물어봤다.“그건 왜 묻는 거예요?”지유는 사실 남몰래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이현이 코웃음을 치더니 이렇게 말했다.“너는 그런 용기가 없을 것 같아서.”지유는 멈칫하더니 시선을 아래로 축 늘어트렸다.어쩌면 이현은 어젯밤 잠자리를 가진 사람이 지유가 아니길 더 바랄지도 모른다. 계약 결혼일뿐이니 말이다.게다가 며칠만 더 지나면 계약도 끝나간다순간 이현이 지유의 손을 힘껏 낚아챘다.지유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이현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심사하듯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지유는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다.발버둥 치며 손을 빼려 했지만 이현이 지유를 전신 거울 앞으로 바짝 몰아갔다.“뭐 하는 거예요?”지유는 애써 침착한 척했지만 떨리는 목소리가 그녀의 긴장과 두려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너 정말 사무실에서 잠들었어?”지유는 칠흑같이 어두운 이현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혹시나 들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3년 전, 결혼한 첫날 밤, 지유는
고개를 들어보니 승아가 앞치마를 두르고 손에 국자를 들고 있었다.지유를 본 승아는 표정이 살짝 굳었다가 다시 부드럽게 인사했다.“아주머니 손님이에요? 마침 삼계탕을 조금 더 끓였는데 같이 와서 먹어볼래요?”승아의 느긋한 태도는 마치 그녀가 이곳의 안주인인 것 같았다.오히려 지유가 멀리서 찾아온 손님처럼 보였다.하긴 얼마 지나지 않아 지유는 곧 이 집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 된다.지유는 이런 거지 같은 상황에 미간이 찌푸려졌다.이현과 결혼할 때 모든 사람에게 알렸고 승아도 축복을 보내왔기에 지유가 이현의 와이프라는 걸 모를 리가 없었다.승아는 지유가 문 앞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자 얼른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았다.“왔으면 손님이죠. 얼른 들어와요.”승아가 가까이 다가오자 옅은 재스민 향이 풍겨왔다. 이현은 작년 생일에 지유에게 똑같은 향수를 선물했다.지유는 목구멍이 점점 메어와 숨쉬기가 힘들었고 다리가 천근만근인 듯 움직이기 힘들었다.여진숙은 지유가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움직이지 않자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지유야, 여기 서서 뭐 하는 거야? 손님이 왔으면 차라도 내와야지.”지유는 승아와 겨뤄서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물었다.“어머님, 승아 씨가 왜 우리 집에 있는 거예요?”여진숙이 답했다.“승아도 오랜만에 귀국했으니 한 번쯤은 나 보러 와야 할 거 아니니? 왜? 승아가 우리 집에 오면 안 돼? 현이도 뭐라 안 하는데 네가 뭐라고 시비야?”“그런 뜻 아니에요.”지유가 고개를 푹 숙였다.“아, 지유 언니였구나. 이현 오빠가 결혼사진을 보여준 적이 없어서 못 알아봤네요. 기분 상했다면 죄송해요.”지유는 환하게 웃는 승아를 뚫어져라 쳐다봤다.‘허.’하긴 자기가 제일 사랑하는 여자에게 다른 여자와 결혼한 사진을 보여줄 리가 없지.이때 여진숙이 호통치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얼른 승아한테 차를 내주지 않고 뭐 해?”지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놓은 주전자를 들었다.승아는 여진숙과 웃고 떠들며
“지유 언니 오늘 기분이 별로 안 좋다면서 오기 싫다고 해서 내가 올 수밖에 없었어요.”승아는 얼른 손에 난 덴 자국을 일부러 보여주며 말했다.“오빠도 지유 언니 너무 미워하지 마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거예요. 일을 그르친 건 아니죠?”지유가 회사의 서류를 다른 사람에게 넘긴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이현은 안색이 너무 어두웠지만 승아 앞이라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넥타이를 살짝 풀며 덤덤하게 말했다.“아니야.”이현은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렸다.“왔으니 앉아.”이현의 말에 승아는 내심 기뻤다. 그녀를 받아준다는 건 그래도 미워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회의하러 간다면서요? 내가 방해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이현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이렇게 말했다.“회의 시간 뒤로 30분 미루세요.”승아는 입꼬리가 올라갔다. 전에 인사도 없이 떠나서 혹시나 이현이 원망하면 어쩌지 했는데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잃어버린 시간은 다시 메꾸면 된다.소파에 앉은 승아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해명하려 했다.“오빠,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요. 그때 내가 인사도 없이 떠난 거 잘못한 거 알아요. 근데 지금은 다시 돌아왔으니까...”“먼저 일 처리 좀 할게.”이현이 승아의 말을 잘라버렸다.승아는 하려던 말을 다시 삼킬 수밖에 없었다 바빠 보이는 이현의 모습에 승아는 별수 없이 이렇게 말했다.“오빠 일 끝나는 거 기다릴게.”승아는 방해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남은 반 시간 중 얼마나 더 앉아 있어야 마주 보고 앉아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약간 이현의 속내를 맞히기 어려웠다.진호가 안으로 들어와서야 이현은 하던 일을 멈췄다.이현이 걸어오자 승아가 웃으며 말했다.“오빠, 나...”“손은 아직도 아파?”그녀의 상처를 발견했다는 건 그녀를 걱정한다는 걸까?승아가 잽싸게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이제 안 아파요.”“응.”이현이 가볍게 대답하더니 진호의 손에서 한약을 받아왔다.“귀국해서 계속 속이 안 좋다며, 목
지유는 걸음을 멈췄다. 이현과는 부부 관계에서 오는 조화로움보다는 위계질서에서 오는 거리감이 더 컸다.“대표님, 지시 사항 있으신가요?”이현이 고개를 돌리더니 거리감이 느껴지는 지유의 얼굴을 보며 명령조로 말했다.“앉아.”지유는 이현이 무엇을 하려는지 몰랐다.이현이 지유 쪽으로 걸어갔다.지유는 자신과 가까워지는 이현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순간 이현이 어딘가 달라 보였고 이에 지유는 숨이 가빠졌다.긴장하기도 하면서 어딘가 이상했다.그녀가 딱히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이현이 먼저 그녀의 손을 잡았다.이현의 따듯한 손이 지유의 몸에 닿자 그녀는 마치 데이기라도 한 것처럼 얼른 손을 빼려 했다. 하지만 이현이 너무 꽉 잡고 있어 빼려고 해도 뺄 수가 없었다. 이현은 지유를 확 끌어당기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손 다쳤잖아, 몰랐어?”이현의 관심이 지유는 퍽 의외였다.“난... 괜찮아요.”“수포까지 났어.”이현이 물었다.“왜 나한테 얘기하지 않은 거야?”이현이 큰 손으로 그녀의 상처를 살폈다. 지유는 그런 이현을 물끄러미 쳐다봤다.3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유는 이현의 손을 잡고 그가 따듯함으로 그녀를 이끌어주기를 바랐다.하지만 그럴 기회가 없었다.지유가 포기하려 할 때마다 이현은 다시 희망을 주었다.“큰일 아니에요. 며칠이면 나아요.”지유가 대답했다.“연고 좀 가져오라고 할게.”지유는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느꼈다. 몇 년의 기다림 끝에 이제 좀 보상받는 것 같았다.하지만 지유는 이성적이었다. 이현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이현은 연고를 가져와 그녀의 상처에 발라줬다. 지유는 그녀의 앞에 쪼그리고 앉은 어딘가 조심스러워 보이는 이현에 혹시 자신도 그가 아끼고 사랑하는 여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상처가 나니 그래도 눈길을 주는 이현이었다.7년이나 옆을 지키면서 극진하게 챙겨주기보다 차라리 조그마한 상처를 내는 게 그의 이목을 끄는 데에는 더 낫겠다는 우스운 생각까지 들었다.다친 게 아깝지 않았다.하염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