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이현이 무릎을 꿇자 그의 뒤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그를 따라 무릎을 꿇었다.이 놀라운 장면에 사람들은 상당한 압박감을 받았다.정미리는 깜짝 놀라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섰다.온지유도 충격을 받았다.정미리는 더 말을 보태고 싶었지만 여이현의 모습에 그 기세가 누그러들었다. "이현아!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어서 일어나!"여이현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어머니, 지유를 제게 맡겨 주세요!"여이현은 다른 사람들에겐 냉정할지는 몰라도 온지유의 가족들 앞에서는 항상 온화하고 예의 발랐다.정미리가 아무리 여이현에게 불만이 많고 그와의 결혼에 대해 회의적일지라도, 자존심 강한 여이현이 몸을 낮추는 모습을 보자 한 번 더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정미리는 고민에 빠졌다."미리야."임수경이 그들의 상황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을 보고 말했다."지유는 이혼한 게 아니었어?"정미리는 당황한 듯 임수경을 바라보며 말했다."곧 이혼할 예정이었는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괜찮아 이해해. 이분도 꽤 성의가 있어 보이네."임수경은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하며 말했다."만약 아직 두 사람이 되돌아갈 생각이라면 우리도 강요하지는 않을게. 모든 건 지유의 뜻에 달려 있어. 인연이 없다면 우리도 더 이상 방해하지 않을게."임수경은 복잡한 문제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그리고 일어나 떠날 준비를 했다.정미리는 미안한 마음에 황급히 말했다."돌아가게? 정말 미안해. 이렇게 될 줄 꿈에도 몰라서 괜히 폐를 끼쳤네.”"괜찮아, 너무 신경 쓰지 마. 두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더 중요하지."임수경의 가족은 이 상황이 두려워 얼른 떠나고 싶었다.혹시라도 폭력배와 얽히게 될까 봐 조마조마했다.정미리는 연신 사과하며 그들을 배웅했다.이 상황에 정미리는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아직도 일어나지 않을 거니? 사람들 다 떠났잖아.""어머님 화가 풀릴 때까지 여기서 무릎을 꿇고 있을게요."여이현이 말했다.정미리는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지만 여이현이 최선을
그 말에 여이현의 표정이 복잡해지며 얼굴빛이 어두워졌다.온지유는 자신이 한 말이 얼마나 상대의 가슴을 에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한번 결심한 일은 결코 몇 마디 말로는 돌아서지 않을 것이다.온지유는 고개를 돌려 침착하게 식당을 떠났다.여이현은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있었다.식당을 나서자 온지유는 마음속에 있던 억눌림이 한순간에 풀리며 시원해졌다.여이현을 떠나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을까?사랑한다고 하지만 그 말에 얼마나 진심이 담겨 있을까.한 남자의 입에서 나온 사랑을 믿는다면 나중에는 그 사랑으로 더 큰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대표님, 따라 안 가시는 건가요?"배진호는 여이현이 그 자리에 멈춰 서 있는 것을 보고 오히려 더 초조해졌다.여이현이 말했다."얼마나 싫어하는지 봤잖아요. 여기서 더 쫓아가도 정만 더 떨어질 뿐이겠죠.""그러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정말로 사모님을 포기하시겠어요?"배진호가 물었다.여이현은 당연히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KTBC에서 인터뷰를 요청했었죠?""네?"배진호는 순간 여이현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여이현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안에 남아있을 정미리를 먼저 떠올렸다."사람을 보내서 어머님을 먼저 모셔다드려요."막 정미리의 신뢰를 조금 되찾았는데 또 잃어버릴 수는 없었다.--온지유는 집으로 돌아오다 인명진의 집 앞을 지나며 잠시 멈춰 섰다.온지유는 빨간 머리 여자가 했던 말을 잊지 않았다. 인명진이 키운 딸기는 다른 사람은 절대 건드릴 수 없다고 했다.그가 딸기를 얼마나 아끼는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인명진은 딸기를 먹지 않는다.먹지 않으면서도 온지유에게 줬다는 점이 이상했다.문을 두드려 물어볼까 하다 시간을 보니 지금은 인명진이 아직 집에 없을 것 같았다.온지유는 잠시 망설이다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열쇠로 문을 돌리던 참에 마침 인명진이 돌아왔다."인명진 씨."온지유가 그를 불렀다.인명진은 기운이 없어 보였지만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바로 고개를 들었다.그 목
“우리 자주 보네요? 또 볼지는 모르겠지만 이웃인 것 같으니 잘 부탁드려요, 홍혜주예요.”“온지유예요.”온지유는 홍혜주의 흐트러진 옷차림에 자연스럽게 그쪽 방향으로 생각이 갔다.하지만 그렇게 큰 소리가 날 일은 아닐 텐데.홍혜주는 가슴 앞에 양손을 꼬아 안고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듯 말했다."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당신이 바로 옆집에 살고 있었네요.""무슨 일인데요?"온지유가 한 마디 덧붙였다."아까 두 분 괜찮았던 거예요?"홍혜주가 되물었다."어머, 소리가 많이 컸나요?""조금요.""미안해요, 시끄럽게 굴어서."홍혜주가 웃으며 말했다."다 끝났으니, 이젠 편히 잘 수 있을 거예요."몇 마디를 주고받은 후 홍혜주는 온지유를 한번 바라보고는 천천히 돌아섰다.옆집에서 더 이상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을 확인한 온지유도 문을 닫았다.낮에 인명진의 손에는 상처가 나 있었고, 밤에는 홍혜주가 와서 큰 소란을 일으켰다. 상황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하지만 결국 남의 일인데 온지유가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온지유는 다시 침대로 가서 잠을 청했다.다음 날, 온지유는 편집장으로부터 인터뷰를 맡으라는 지시를 받았다.보통은 취재기자가 맡는 일이다.안정희는 아침 일찍부터 부서에 와서 온지유를 기다리고 있었다. 온지유가 도착하자 안정희가 웃으며 말했다."성운그룹에 대해 들어봤죠? 그곳의 대표가 마침내 우리 KTBC와의 인터뷰를 수락했어요. 정오 12시에 약속이 잡혀 있으니 지유 씨와 아영 씨가 다녀와 줘요."온지유는 성운그룹에 대해 당연히 들어본 적이 있었다.비록 여진그룹과는 협력한 적이 없지만 성운그룹이 외식 업계에서 손꼽히는 기업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성운그룹의 대표는 올해 50대 중반으로, 기사에서 그의 이야기를 몇 번 본 적이 있었다.그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여 회사를 설립한 인물이었다."저와 아영 씨만 가나요?"온지유는 자신이 없었다."저는 방송국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경험이 부족해요. 경험이 있는 다른 사
온지유는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공아영은 기자로서 성공하고 싶은 순수한 열망이 있는지도 모른다.하지만 온지유는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자의 일이 흥미로웠을 뿐이었다.어떠한 성취를 이루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야망이 없었다.공아영의 순수한 모습을 보며 온지유는 미소 지었다."아직은 생각해 본 적 없네요. 아영 씨랑 저는 다르잖아요.""그러네요, 지유 씨는 저와 달라요. 지유 씨는 여기 오기 전에 이미 많은 걸 이뤘다는 걸 까먹고 있었어요. 여이현 씨의 전속 비서였고 여진그룹의 일은 다 지유 씨 손을 거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잖아요. 그런 일을 그만두고 나왔으니, 당연히 저보다 훨씬 먼 곳을 보고 있겠죠?"공아영은 늘 온지유를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온지유는 무슨 일을 하든 항상 완벽했고, 미숙한 공아영을 이끌어 함께 나아갔다.공아영은 그런 온지유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자 했다."나도 그냥 평범한 사람이에요. 너무 높이 평가하지 마세요."온지유가 말했다."전 아영 씨보다 훨씬 더 오래 일했잖아요. 아영 씨도 경험을 더 쌓고 성숙해지면 꼭 저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거예요.""지유 씨는 어쩜 겸손하기까지 하지."공아영이 웃으며 말했다."지유 씨와 함께 일할 수 있는 건 정말 내 행운이에요. 같이 있다 보면 왠지 운도 더 좋아지는 것 같다니까요.""그럼 앞으로도 계속 운이 좋아지길 바랄게요."온지유는 장난스레 공아영에게 말했다.그 말에 공아영은 온지유의 어깨를 치며 해맑게 웃었다.온지유는 성운그룹 대표에 대한 자료를 거의 다 조사했다.성운그룹 대표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한 후 두 사람은 출발했다.공아영은 처음으로 가는 외부 취재에 긴장했다. 성운그룹에 도착하자 옷매무새를 다듬고 몇 번이나 거울을 들여다보았다.차에서 내리기 전에 공아영이 물었다."지유 씨, 저 괜찮아요? 지유 씨 발목 잡거나 그러진 않겠죠?""이미 충분히 예쁘고 단정해요."온지유의 인정을 받고
온지유는 당황스러웠다. 왜 이런 곳에 수영장이 있는 걸까.온지유가 아직 멍해 있던 그때, 수영장 안에서 첨벙 소리가 나며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온지유는 튀어 오르는 물을 채 피하지 못해 급히 손으로 얼굴을 막았다.첨벙대는 소리가 사그라들고 나서야 온지유는 손을 내렸다. 풀 안에서 누군가가 수영을 하고 있었다. 일렁이는 물속에 있는 사람은 큰 키에 오랜 운동으로 단련된 탄탄한 근육을 가진 뛰어난 몸매의 남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성운그룹의 대표는 50대가 넘은 사람이 아니었나? 어떻게 이런 젊은 몸을 갖고 있는 거지?'온지유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가며 상황을 파악하려는 동안 그 남자의 실루엣이 점점 더 익숙하게 느껴졌다.그리고 남자가 다가와 물 위로 올라왔을 때, 온지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이현 씨? 왜 당신이 여기에 있는 거죠?"남자는 얼굴의 물기를 닦아내며 자신에 찬 눈빛으로 온지유를 바라보았다."왜 내가 있으면 안 되는 거지?"온지유의 얼굴은 차갑게 굳었다."성운그룹의 대표는 어디에 있죠?"온지유는 이곳에 인터뷰를 하러 온 것이지 여이현과 놀음하러 온 것이 아니다.여이현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넓은 어깨를 수영장 벽에 기대며 옆에 놓여있던 와인을 가볍게 홀짝였다.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온지유는 다시 물었다."대답하세요. 왜 여기 있는지 물어봤잖아요. 저는 일을 하러 온 거지 당신과 쓸데없는 시간을 보내러 온 게 아니에요."여이현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넌 정말 일에 있어선 항상 성실하네. 나를 보고 처음 입 밖에 낸 말도 일이라니."온지유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상황을 파악했다."설마..."방금 리셉션 직원이 대표가 이 안에 있다고 했던 말을 떠올린 온지유는 성운그룹이 여이현에게 인수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네 추측이 맞아. 이제 성운그룹은 내 거야."여이현은 온지유의 의심을 알아차리고 바로 말했다."너희가 인터뷰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야."온지유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
여이현은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의 깊은 눈동자와 뚜렷한 이목구비, 그리고 물방울이 턱을 타고 목을 지나 가슴으로 스며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비록 온지유가 여이현과 7년을 알고 지내고 3년을 부부로 지냈다 해도 이런 장면을 보면 여전히 어색함을 느꼈다.온지유는 겉으로는 차분한 척했지만 여이현 쪽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며 말했다."먼저 말씀해 주셨다면 좋았을 텐데요. 전의 일은 다른 사람이 먼저 맡아갔어요. 편집장님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잖아요."온지유의 말을 들은 여이현은 더 이상 따지지 않는 대신 물었다."이번에는?""제가 여기까지 온 걸 보면 여대표님도 제가 이번 일에 진심이었다는 걸 아시겠죠."온지유가 말했다.온지유는 항상 둘은 부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려고 했다.아니, 애초에 그들은 부부였던 적이 없었다. 결혼 관계는 있었지만, 결코 행복이나 즐거움을 누리지 못했다.여이현은 말했다."그렇다면 시작하지."여이현은 여전히 수영장에 있었고, 옷을 입지 않은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온지유가 다시 말했다."대표님, 수영장에서 나와서 옷을 입으시는 게 더 편하지 않을까요?""온지유 기자의 전문성이 아직 부족해 보이네."여이현은 오히려 온지유의 직업정신을 의심하며 말했다."기자는 언제 어디서나 인터뷰를 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온지유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다른 누가 수영장에 있더라도 이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대표님도 아시겠지만, 저는 방송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전문적인 기자들과 비교하면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너그럽게 이해해 주세요."온지유는 예의를 갖추며 말했다.여이현은 두 손을 수영장 밖에 걸쳤다. 그의 팔은 길고, 근육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으며, 손가락 사이로 혈관이 도드라져 강한 남성미를 뿜어냈다."그럼 이리 와."여이현은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온지유는 잠시
온지유는 깜짝 놀라 거의 비명을 지를 뻔했다. 다행히도 완전히 물속에 빠지지는 않았다.여이현은 한 손으로 온지유의 엉덩이를 받치고, 다른 손으로는 등을 지탱했다. 덕분에 온지유의 머리는 물 밖으로 나와 있어 숨이 막히지는 않았지만, 온몸은 다 젖어 버렸다.수영장의 물은 따뜻해서 춥지는 않았으나, 온지유는 분노와 수치심에 크게 뜬 눈으로 여이현을 똑바로 노려보았다.물속으로 완전히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본능적으로 온지유의 두 손은 여이현의 어깨를 감싸야 했다."무슨 짓이에요?!"온지유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여이현은 온지유를 수영장 가장자리로 밀어붙이며, 두 손으로 그녀의 엉덩이를 받치고 눈을 맞췄다."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네가 가까이 와주지 않잖아."온지유는 여이현을 밀어내려고 했지만 돌처럼 단단한 그를 밀어낼 수 없었다."아까는 진지하게 일할 거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 이게 뭐예요? 인터뷰는요? 여 대표님의 마음이 일에 있지 않다면 나도 그만두겠어요!"온지유는 몸을 일으켜 물에서 나가려 했다.그러나 여이현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일은 당연히 해야지. 온 기자는 너무 일에만 몰두하네. 때로는 마음을 좀 편히 할 필요도 있어."온지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나를 물속으로 끌어들이면 마음이 편해질 거라 생각해요?""잠깐 수영이나 하자고."온지유는 단호히 말했다."이번 인터뷰에 쓴 계약서에 그런 항목은 없어요. 여자와 함께 수영을 즐기고 싶다면 얼마든지 다른 사람을 부르도록 하세요. 저는 수영을 좋아하지 않아요."온지유의 거절에도 여이현은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장난스럽게 물었다."많은 사람들이 나를 한 번 보려고 애를 써도 머리카락 한 올 보지 못하는데 잠깐 같이 수영하자고 한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야? 못 보던새에 온 기자가 나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됐나 보네.""이 시간에 단둘이 함께 있는걸 다른 사람들이 보면 뭐라고 하겠어요? 대표님은 더 이상 대중의 눈치를 볼 필요 없다고 해도, 저는 아직 필요해요.
그 말에 드디어 여이현은 표정을 굳혔다.온지유의 말이 그의 가장 아픈 부분을 건드린 것이다."굳이 지금 그 얘기를 해야겠어?여이현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정확히 짚고 가는 게 서로가 덜 상처 받는 방법이에요."여이현은 온지유를 응시했다. 겨우 이 모든 것을 잊으려 노력했는데, 온지유는 기어코 이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여이현이 말했다."아이는 지우면 될 거 아니야.""그러고 싶지 않아요."여이현은 입술을 꽉 깨물고 한 걸음 양보했다."생각할 시간을 줄게. 네가 결정을 내릴 때까지 난 기다릴 수 있어."온지유는 고개를 들어 여이현을 바라보며 말했다."더 이상 시간이 없어요."여이현이 다시 물었다."그러면 말해봐, 아이의 아빠는 누구야?""전에 말했잖아요, 석이라고요."여이현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마에는 핏줄이 도드라졌다. 그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았다."도대체 그 석이라는 남자가 누군데? 정말 그런 사람이 존재하긴 해?""물론이죠."온지유는 여이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석이는 내 마음속의 영웅이에요. 나를 구해준 영웅이요!"여이현은 열이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온지유의 입에서 수없이 들었던 그 이름,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그 사람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여이현은 단호하게 말했다."만약 그 사람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면? 석이가 가상의 인물이라면? 영원히 네 앞에 나타날 리 없다면? 너 혹시 누구한테 속아서 돈까지 주고 있는 건 아니야?"이 말을 듣고 온지유는 순간 충격에 빠져 여이현을 쳐다보았다.온지유의 상처 받은 눈빛을 마주한 여이현은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가슴이 채찍질 당하는 것 같았다.그녀의 꿈을 깨트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지 들었다.온지유에게 그렇게 소중한, 온지유를 지탱해 주던 그 성을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을까."아니라 해도 네 말만 들으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여이현은 다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는 네가 말하는 석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