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은 온지유와 만난 뒤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았다.둘은 꽤 친한 사이로 보였다.여이현은 이 사람에게 어느 정도 기억이 있었다. 분명 회사에 있는 누군가일 것으로 생각했다.온지유가 떠난 후, 그 남자는 쓰레기통에서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그의 행동에 여이현은 심기가 불편했지만, 지금은 그만이 진실을 알고 있을 것이기에 참고 조사를 계속했다.도세원은 프로그래밍에 몰두하고 있었다.여진그룹 같은 큰 회사에서는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 중소기업에 있을 때는 일인자였지만, 여기에는 그와 비슷한 수준의 프로그래머가 열 명은 족히 되었다.성공하기 위해서는 두각을 나타내야 했다.전 직장을 떠난 것도 더 높은 곳으로 가고 싶어서였다.그는 한시도 쉬지 않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식사도 간단히 빵 몇 조각으로 때우고 있었다.도세원이 손에 든 빵을 입에 넣으려던 순간, 그의 옆에 사람들이 웅성웅성 몰려 들었다.고개를 들어 곁을 쳐다본 도세원은 놀란 나머지 손에 든 빵을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다.“대표님!”눈앞에는 여이현의 모습이 있었고, 그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압박감이 느껴졌다.도세원이 급히 일어섰다.“대표님, 무슨 일입니까?”여이현은 온지유와 비슷한 나이대의 남자를 바라보며 차분히 물었다.“도세원씨 맞나요?”“네, 제가 도세원입니다.”도세원은 왜 여이현이 자신을 찾아왔는지 알 수 없어 물었다.“혹시 제가... 뭘 잘못한 게 있을까요?”도세원은 여진그룹에서 열정을 다해서 일하고 있었고, 혹시 모를 실수에 해고당하고 싶지 않았다.여이현은 말없이 대표 사무실로 걸어갔다.그리고 도세원을 재촉했다."서 있지 말고 이쪽으로 오세요."“아, 네!”도세원이 급히 사무실로 따라 들어갔다.사무실에는 여이현과 도세원 둘만 있었다.도세원은 숨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여태 여이현과 직접 대면한 적은 없지만, 그의 성격을 소문으로 알고 있었고, 공기에서 전해오는 압박감을 느낄 수 있었다.여이현은 소파에 편안하게 앉아, 도세원을 바라보며 말했다.“온지유
도세원은 의아한 표정이었다. 여이현이 일에 관해 말하러 온 줄 알았지만, 상황을 설명하지도 않은채 온지유가 병원에 간 경우만 묻고 가버렸다.온지유가 임신한 것이 여이현과 무슨 관계라도 있는 걸까?도세원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단 직장만 잃지 않았으면 된 거로 생각했다.여이현은 엘리베이터에 타서 주머니에 손을 넣어 분노를 감추고,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장 온지유가 어디 있는지 알아내요!"‘감히 나 여이현을 배신하다니. 천하의 끝까지 도망가도 잡아 올 것이다!’배진호는 여이현히 이렇게 화난 눈빛을 처음 봤다. 마치 사람을 잡아먹을 듯한 기세였다.온지유의 행방을 묻기 시작한 후로 배진호는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온지유가 발견된 날은 큰 일이 일어나리라 생각했다.그녀가 스스로 운이 좋기를 바랄 뿐이었다.--“에취—”온지유는 갑자기 나온 재채기에 눈물이 찡 났다.휴지로 대충 눈물을 닦고 다시 문서를 작성했다.누가 뒤에서 몰래 말하고 있기라도 한 건지.‘요즘 사이가 안 좋아진 사람이 있었나?’‘새 일자리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으니, 그럴 리는 없을 텐데.’"지유 씨, 편집장님께서 이 뉴스 기사를 수정해달라고 하시네요."온지유는 동료가 건넨 문서를 받아 들고 대답했다."네, 바로 수정할게요."온지유는 방송국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었다.전부터 뉴스에 관심이 많았기에, 이 일을 선택했다.이전부터 매거진 에디터인 진솔과의 관계가 있었기에 추천으로 이곳에 오게 되었다.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지만, 온지유의 풍부한 경력 덕분에 인턴이 아닌 정직원으로 시작할 수 있었고, 이미 방송국의 공식 계정을 맡아 독자들의 투고를 기사로 편집해 계정에 게시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단순히 타이핑만 하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내용이 빈약하면 구독자는 찾아오지 않는다.편집자는 독자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필력과 좋은 소재가 필요했다.그래도 온지유는 이 업무에 꽤 잘 적응하고 있었다.대학 시절 문학
다급한 상황에서 온지유는 힘껏 상대방의 등을 쳐대며 크게 외쳤다.“누구야, 놔, 빨리 놓으라고!”남자는 말을 듣지 않고, 온지유가 때리고 욕하는 대로 두고는 빠르게 앞으로 걸어갔다.온지유는 흥분한 나머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고, 그저 그의 손에서 벗어나려는 본능뿐이었다.온 지 며칠 되지 않은 새로운 환경에서 주위에 위험한 곳이 있을지 알 수 없었다.온지유는 다칠까 두려워 일단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아무리 물고 때려도 상대방은 그녀에게 해를 가할 의사가 없었다.이건 강도가 아니었다.또한 이렇게 큰 소리로 외치는데도 겁먹지 않는 것을 보면, 설마...온지유가 상황을 파악할 때쯤, 남자는 그녀를 다시 바닥에 안정적으로 내려줬다.그를 알아본 온지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당신...”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을 때, 온지유는 그들 사이가 이미 이렇게 틀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이젠 이름을 부를 마음이 들지 않았다.온지유는 입을 닫고 그를 마주하고 싶지 않아 빠르게 돌아서 걸어갔다.“날 보자마자 도망가는 걸 보니, 양심에 찔리기는 하는가 보지?”남자가 차갑게 말했다.온지유는 발걸음을 멈추고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온지유가 떠난 이후, 여이현은 그녀를 잡지 않았다.여이현은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온지유는 그가 다시는 자신에게 신경 쓰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고, 자연스럽게 그대로 이혼할 거라 생각했다.정밀 온지유를 찾고 싶었다면 처음부터 찾아냈을 것이다.헤어진 지 며칠이나 지난 후에 찾아왔다는 것은, 새로운 집념이라도 생겼음을 의미하는 걸까?“전 명확하게 말했어요. 이혼 합의서도 준비되어 있으니, 서명하기만 하면 당신은 자유로워요. 그런데 왜 절 찾아온 거죠? 우리 관계는 이 지경이고, 이미 보기 흉해졌지 않아요. 아니면 대표님께서 이미 예약을 마쳤으니, 당장 함께 이혼 신고하러 가겠다는 건가요?”온지유는 시험 삼아 물었다.등을 돌리고 있어 그의 표정이나 감정을 알 수 없었지만, 발걸음 소리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그럼, 네 배 속의 아이는 뭔데?”여이현은 거의 소리치듯 외쳤고, 눈에는 불꽃이 일었다.그 말을 듣고 온지유는 눈을 크게 뜨며 충격을 받았다.여이현이 갑자기 온지유의 임신 소식을 알게 된 것은 상상치도 못한 일이었고, 순간적 적절한 변명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여이현은 그녀의 멍해진 눈빛을 보며 모든 것이 사실임을 깨달았다.그는 비웃으며 말했다.“할 말도 없나? 평생 누구에게도 배신당한 적이 없는데, 네가 첫 번째네.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까!”온지유는 그의 뜨겁고도 위험한 손길을 느끼며 그가 지금 와서야 자신을 찾은 이유가 임신 소식을 알게 되어서라는 것을 깨달았다.여이현의 위험한 눈빛을 보며 그녀는 더욱더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온지유는 한 손으로 배를 감싸며 말했다.“임신한 게 사실이라 해도, 우리 사이의 계약을 어긴 건 아니에요. 서로 간섭하지 않기로 한 건 당신이 한 말이니, 약속을 지키길 바라요. 어차피 우리 결혼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고, 이혼하면 당신도 다시 결혼할 수 있잖아요.”“아이의 아빠는 누구야?”여이현이 이를 악물고 물었다.온지유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떨며 눈을 감았다.“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당신은 아니에요!”“석이의 아이야?”여이현은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석이가 대체 누군데? 나민우...?”“아니에요!”온지유가 단호하게 말했다.“그럼, 누구야?”여이현은 그 사람에 대해 매우 궁금했다. 온지유가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하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은 이 남자는 대체 어떤 사람인지.온지유는 다시 말했다.“제 사생활일 뿐이에요. 지금 말할 의무는 없어요. 그럼, 대표님, 이미 늦었으니 저는 돌아가서 쉬어야 할것같네요. 내일도 출근해야 하거든요.”온지유는 그의 손을 피해 여기서 벗어나고 싶었다.여이현이 그녀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면 배 속의 아이도 무사하지 않을 것이다.온지유는 자신의 아이를 잃고 싶지 않았다.여이현은 온지유가 떠나려 하자 얼굴이 차갑게 변하며 다시 품속에 끌어안아 가두
온지유는 여이현의 뺨을 세게 때렸다.여이현은 피하지 않고 그대로 그녀의 손길을 받았다.얼굴에는 선명한 자국이 남았다.그는 고개를 잠시 돌렸다가 다시 온지유를 차갑게 쳐다보았다.온지유 역시 충격을 받아 자기 손을 바라보았다. 힘이 많이 들어가 손이 얼얼했다.온지유는 이렇게 반응한 것에 본인도 매우 놀랐다.여이현과 7년을 함께 지내면서 어떤 갈등이 있어도 손을 대본 적이 없었다.그녀뿐만 아니라 여이현도 자라면서 아무에게도 맞아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온지유...”여이현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온지유는 저리는 손을 거두며 변명했다.“고의가 아니었어요… 당신이 이상한 짓을 하지 않았다면 때릴 일 없었잖아요!”여이현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온지유는 이제 자신을 떠날 용기도 생기고, 때릴 용기도 생겼다. 꽉 쥔 주먹의 관절에서 소리가 났다.화난 여이현의 모습에 온지유는 조금 두려웠고, 그가 마찬가지로 손을 올릴까 봐 겁이 났다.하지만 여이현은 그저 온지유를 차갑게 쳐다보며 말했다.“그 남자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거야?”온지유는 아이의 진실을 그에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온지유는 여이현과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이 아이는 그녀가 결정할 문제다.이기적일 수는 있지만, 그가 노승아와 몰래 눈치 보며 얽혀있는 것보다야, 차라리 시원하게 관계를 끊는 것이 나았다.여이현이 만약 그녀가 임신한 것을 알게 되면, 아이를 지우든, 낳아 키우든, 어떤 선택도 온지유가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온지유는 여이현과 아무런 연관도 갖고 싶지 않았고, 이 아이가 온지유의 것이 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마음이 약해져서는 안 된다.아이의 존재를 안 여이현이 오늘은 남기길 용서한다 해도,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면 다시 이혼을 원할 것이고, 아이의 양육권은 그에게 박탈될 것이다.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온지유는 여이현이 자신과 잘 지내리라고 믿을 수 없었다.예전에는 많이 양보를 해왔지만, 이번만
심지어 약까지 써가며!아이를 지우라는 요구조차도 듣지 않으려 한다.눈앞에서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으려 하다니.감히 이 여이현을 두고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여이현은 결국 온지유의 손을 놓고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하지만 그의 눈빛은 차가웠고 이미 온지유에게 크게 실망한 모습이었다.“온지유, 넌 꼭 후회할 거야!”단호한 몇 마디였다.그 말을 들은 온지유의 상처 입은 얼굴을 뒤로 한 채 돌아섰다.온지유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고, 한 방울 두 방울 흘러내렸지만, 고집을 꺾지는 않았다.여이현은 더 이상 뒤돌아보지도 않고 온지유의 시야에서 사라졌다.온지유는 그 자리에 웅크려 앉아, 붉어진 자기 손목을 꽉 잡고 고개를 떨구었다.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회오리쳤다.온지유는 공허했다.그러나 이런 공허함을 처음부터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단지 몇 번이나 실망을 겪고 나서야 혼자 있는 것이 좋다고, 이 결혼을 포기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온지유는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했다.더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지 않을 거라 여겼는데, 여이현은 다시 나타났다.다시 절망의 날들로 데려갔다.그래, 온지유는 더 이상 불안한 삶을 원하지 않았다.그녀의 선택은 옳았다.그리고 후회해서는 안 된다.온지유는 흐르지 말았어야 할 눈물을 닦고, 일어서서 다시 용기를 내어 미소를 지어 보였다.앞으로의 삶은 나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더 좋아질 것이다.온지유는 여이현이 모든 것을 잘 이해하고 다시는 찾아오지 않기를 바랐다.또한, 이번 일을 겪고 난 여이현도 다시는 온지유를 찾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남자란 자존심이 있어야 하고, 체면도 중요하니까.미련이 남아 있었더라도, 온지유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밴 것을 알고 났으니, 이제는 더욱더 그녀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온지유는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집으로 걸어갔다.피곤했다. 그냥 푹 자고 싶었다.--여이현은 차 안에 앉아 차갑게 굳은 얼굴로 앞을 주시하며 칼날 같은 시선을 보냈다.그래도 풀리
몇 초간의 정적 후, 온지유가 안정희를 보며 말했다.“제가 여진그룹 대표의 인터뷰를 맡는다는 말씀인가요?”안정희는 손을 모으고 일어나며 여유롭게 말했다.“맞아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여이현씨를 인터뷰하는 일은 쉽게 맡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당신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온지유는 파일을 닫으며 말했다.“제가 여진그룹에서 나왔다는 건 이력서에서 잘 확인하셨을 거라 믿어요. 제게 다시 돌아가라 하시는 건가요?”온지유는 방송사에 입사할 때 여진그룹에 알리지 않고 떠났었다. 여이현과 결코 가볍지 않은 갈등을 안고 있는데, 다시 돌아가는 것은 모욕적인 일이었다. 여이현의 말처럼 후회하게 될 것이다.안정희가 온지유와 여이현 사이의 관계를 알 리가 없었다.“지유 씨가 여진그룹에서 나왔으니 서로 조금은 아는 사이잖아요. 이 일은 지유 씨 밖에 못 해요.”온지유는 파일을 책상 위에 놓으며 말했다.“편집장님, 죄송해요. 전 못 맡겠어요...”온지유는 죽어도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고, 신분을 바꿔서여도 마찬가지였다. 여이현과는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았다. 특히 이번에는 여이현이 더는 그녀에게 좋은 얼굴을 해주지 않을 것이기에 더욱이나 얼굴을 맞대고 싶지 않았다.나정희가 말했다.“아까도 말했잖아요? 익숙함을 벗어나야 한다고요. 여이현씨를 인터뷰하는 일은 쉽지 않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그도 옛 동료인 지유 씨에게는 호의적일 거예요.”이 작업은 계속 지연되었고,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온지유가 이곳에 온 것은 운명이나 다름없었다.“이 일을 마치면 온지유씨의 능력도 증명될 거고, 앞으로의 업무 배치도 더 수월해질 거예요. 좋은 기회가 보이면 가장 먼저 지유 씨를 생각할게요.”안정희는 온지유를 바라보며 말했다.“지유 씨가 여진그룹이라는 큰 나무를 버리고 방송사에 온 것도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서겠죠. 이번 일은 좋은 기회이지 않나요?”온지유는 이유를 물었다.“편집장님은 제가 여진그룹과의 갈등으로 회사를 나왔다고는 생각하
온지유는 방송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동료들의 이름은 기억하지만, 모든 사람과 말을 나눠 본 것은 아니었다.눈앞의 채미소와도 말을 나눈 적이 없었다.“그렇다고 들었어요.”온지유는 파일을 주워서 정리했다.채미소는 기분이 언짢아 보였다.“편집장님이 왜 이런 중요한 일을 지유 씨에게 맡긴 거죠? 지유 씨는 이제 온 지 얼마 안 되는데, 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온지유는 채미소의 말에서 비꼬는 느낌을 받았다.“저도 제가 이 일을 맡기에는 능력 부족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이런 상황에 익숙했던 온지유는, 이 일이 매력적인 과제일 수 있음을 알고, 채미소를 쳐다보며 물었다.“이 일, 하고 싶어요?”채미소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고, 온지유와 더 이상 엮이는 것이 자신의 급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듯 편집장의 사무실로 들어갔다.온지유는 채미소의 오만함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가 이 일을 맡고, 편집장님이 동의해 주는 것이 온지유에게는 더 좋았다. 방송국의 경쟁은 치열해서 많은 사람들이 10년을 일해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그러나 온지유는 큰 기업들을 상대하는 데서 경험이 많았고, 여이현과의 인터뷰는 있으나 마나였다. 안정희가 온지유를 이 일에 배정한 것은 능력을 봐서가 아니라, 온지유가 여이현 옆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이 인터뷰를 할 확률이 더 높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지유 씨, 미소 씨는 원래 이런 성격이에요. 자존심 강하고 자기가 제일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옆자리 동료인 공아영이 말했다.공아영은 나이가 많지 않았고, 방송국에 온 지 1년도 안 된 신입이다. 뉴스 관련 전공 졸업생이지만 경력이 부족해 주로 글 작성만 해왔다. 귀엽고 순진한 여자아이였다.온지유는 파일을 정리한 후 자리에 앉아 말했다.“고마워요, 전에도 이런 사람들을 만나 본 적 있어서 어떤 타입인지 알겠네요.”경쟁이 심한 곳일수록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방송국에서는
문이 쿵 하고 닫히고 문지원과 지석훈은 현관에서부터 거실 소파까지 키스를 멈추지 않았다.소파에 쓰러질 때 문지원이 머리를 부딪힐까 봐 지석훈은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받쳐주었는데 키스는 여전히 멈추지 않았고 서로의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졌다.“잠깐만요.”문지원이 말했다.지석훈이 멈추려 하지 않자, 그녀는 아예 손으로 밀어내며 말했다.“내려가서 사와요.”지석훈은 붉게 달아오른 문지원의 얼굴을 보며 무언가 떠올리더니 고의로 안 간다고 했다.“안 써도 돼.”그는 문지원의 귓불을 깨물었고 숨소리도 점점 더 거칠어졌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안다고 한번 건드리면 멈출 수가 없었다.하지만 문지원은 확고했다.“안 돼요. 사 와요.”지석훈은 하는 수 없이 일어나서 문지원의 입술에 입 맞추고 옷을 입었다.“알았어. 기다려.”아파트 입구에 바로 편의점이 있기에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지석훈은 얼마나 급했는지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손에 핑크색 물건을 들고 들어왔다.그동안 그의 욕망은 추호도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 활활 타올랐다.지석훈은 뒤에서 문지원을 껴안으며 속삭였다.“당신이 뜯어줘.”문지원의 귓불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직접 해요.”“해줘.”문지원은 하는 수 없이 떨리는 손으로 비닐 포장을 뜯었다.지석훈은 그녀를 들어 올렸고 문지원은 그가 리드하는 대로 움직였다.일이 끝난 다음에도 지석훈은 부족했던지 문지원의 쇄골에 키스하더니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왜 갑자기 이렇게 열정적이야?”“싫어요? 그럼, 다음부터 조심할게요.”“아니, 너무 좋아. 다음에도 계속해.”지석훈은 그녀의 얼굴을 돌려 키스하며 말했다.두 사람은 그 뒤로도 이러한 관계를 서로 묵인했다.문지원은 가끔은 자기 집에 가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지석훈의 집에서 지냈고 시간이 지나면서 지석훈의 집에는 그녀의 물건들이 화장품부터 시작해서 일상용품, 그리고 여성용품들까지 추가되었다.그들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금방 두 사람의 관계를 알
지석훈이 말했다.“그 사람을 괴롭히지 마.”지석훈이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강윤슬도 잘 알고 있다.강윤슬의 기쁨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이 떨릴 정도의 차가움에 소름이 끼쳤다.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를 억지로 숨기며 말했다.“석훈아, 오랜만에 연락해서 한다는 말이 그거야?”“선배, 너무 심했어. 나는 혁수가 아니라서 선배의 마음을 받아줄 수 없어. 그러니까 나한테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혁수한테 신경 써.”“혁수는 이제 아이까지 있어. 그리고 나한테 이제 관심이 없어.”지석훈이 바로 이어서 말했다.“나도 선배에게 관심이 없어.”강윤슬은 한 사람의 말에 이토록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강윤슬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지석훈은 또 말했다.“선배가 나를 받아준 적이 없으니 우리 사이에 끝나고 말고 할 건 없잖아. 그리고 우리 사이 일에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강윤슬은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석훈아, 너한테 문지원 씨가 다른 사람이야?”지석훈은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강윤슬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액자를 바라보았는데 사진에는 지석훈이 젊은 시절의 최고의 미소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녀를 향했던 지석훈의 최고의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모두 사라져서 안타까울 뿐이었다.그리고 지금 강윤슬은 똑같은 눈빛으로 문지원을 바라보고 있다.문지원은 강윤슬의 눈빛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불편했다.“윤슬 씨, 무슨 일로 보자고 하신 거죠?”두 사람은 커피숍에 앉아 있었다.강윤슬은 길거리에 오고 가는 차들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가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문지원을 향해 물었다.“석훈이한테서 저에 대해 들은 적 있어요?”“조금요.”강윤슬은 쓴웃음을 지었다.“그렇겠죠. 석훈이랑 나 워낙 아무런 관계가 아니니까요. 다만 예전에는 내가 석훈이를 쳐다보지 않았다가 나중에는 후회했죠. 시작한 적도 없는 관계이니... 그냥 방금 한 얘기는 잊어버려요.”문지원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강윤슬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문지원은 어른을 마주하는 것 같았다.“아무것도 아니에요.”지석훈은 그녀가 반쯤 울리는 것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나한테도 속일 생각하고 있어?”문지원은 뭐라고 대답할 생각이 없었다.지석훈은 그녀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은 듯 다른 말로 그녀를 앉혀 식사 하게 하였다.마침, 문지원은 급하게 회사에서 나와서 아직 먹지 않았다.오늘뿐만 아니라, 요 며칠 동안 주주들과 상의 하느라 바빠서 그녀는 종종 하루에 두 번, 심지어 하루에 한 번 밥을 먹었다.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초췌하여 지 씨 아버지께서 한눈에 알아차리지 않았을 것이다.지석훈은 병원 식당에서 준비한 도시락을 가져왔다.병원의 식당은 바깥 식당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영양 균형이 잘 잡혀 있다. 그는 마치 진작에 그녀와 함께 식사하기로 계획한 것처럼 미리 두 개를 준비하였다.조용히 도시락을 먹으며 문지원은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하여 지석훈이 입을 열었을 때도 반응하지 못하였다.“요즘 뜻대로 안 돼?”“조금.”문지원은 무의식으로 대답하고 살짝 굳었는데 지석훈은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지 의사 선생님, 계세요?”밖에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곧 수술이 있기에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네, 알겠어요.”지석훈이 대꾸하자 곧 밖에 있던 사람들이 급히 떠났다.문지원은 이제야 그녀가 바빠서 몸을 뺄 수 없다는 것은 사실 선츠도 비슷하고, 심지어 지나쳐도 모자랄 정도였다는것을 깨달았다. 의사는 워낙 바쁜 직업이라.그런데 그는 이렇게 바쁜데도 시간을 내서 문지원을 위로하려고 하다니... 문지원은 갑자기 양심이 은근히 아파 났다.지석훈은 한쪽에 걸려 있는 흰 가운 외투를 입고 문지원을 쳐다보았다.“난 먼저 일하러 갈게 넌 여기 있을래 아니면 먼저 돌아갈래? 먼저 돌아가면 저녁에 널 찾으러 갈게.”문지원은 도시락을 다 먹고 내려놓았다. “먼저 돌아가 있을게요.”지석훈은 고개를 끄덕이고 떠났다.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돌아간 후 지석훈이 그녀를
그 남자는 분명히 강윤슬한테 평범한 사람이 아닐 것이니 문지원은 돌아가서 주의하기로 결정했다.“화닝 빌딩의 프로젝트에 대해 귀 그룹의 요구 사항을 문정 그룹에서 보았어요. 우리 그룹에서는 두 가지 사항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첫째, 우리는 보수와 지불이 불균형하다고 생각해요. 귀사는 모든 재료를 최고 수준으로 배분할 것을 요구하지만, 이익은 10% 미만만 이에요.”“둘째, 우리는 자체 인력이 있으며, 채용 측면에서 귀 그룹에서는 간섭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해요.”이것이 바로 문지원이 오늘에 온 목적이었다.문지원은 성격이 매우 좋은 사람이기에 일반적으로 갑방이 제시한 조건이 너무 지나치지 않으면 그녀는 그 조건들을 진지하게 경청하지만 이번에 강윤슬은 너무 심했다.심지어 강윤슬 자신조차도, 한 짓이 좀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갑방이 협력 파트너에게 이래라저래라 심지어 무슨 사람을 쓰는지까지 상관 한다니 한 일이 너무 심했다. 그리고 10%도 안 되는 이윤을 양보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계약서에서 말하는 ‘두 그룹이 함께 이기자'는 말장난을 하는 것은 문자께임으로 사람을 놀리는 거짓말인 것같앗다.강윤슬은 그녀가 왜 왔는지 진작 알고 있기 하나도 놀라지 않았다. “너무하다고?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고객이 신이라는 말은 누구나 다 알아.”“고객이 이렇다 하지만 갑방이 프로젝트를 당신들에게 맡기고 당신들도 받아들였는데 지금 할 수 없다고 하면 계약을 위반한 것이야. 계약을 위반하면 두 배의 계약금을 물어내야 하는데, 이 돈을 문정 그룹에서 감당할 수 있어?”그 전에 문지원은 강윤슬에 대해 악감정이 없었다.비록 그녀와 지석훈은 알려지지 않은 과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문지원은 정말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는 상대방의 악의를 느낄 수 있지만, 왜 사람들은 모두 근거 없는 악의를 가지고있는지 몰랐다.문지원은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강윤슬 씨, 저에게 불만이 있으면 저에게 말해주세요. 그러나 협력에서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았
문지원은 강윤슬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모르지만, 그녀는 반드시 가야 했다.한바탕 망설인 후, 그녀는 빠르게 결정 하였다. 가야 할 바엔 가자, 무슨 칼산 불바다도 아니고...강윤슬이 근무하는 회사는 규모가 상당했고, 국내에서 100위 안에 드는 대기업이다. 큰 회사답게 프런트 데스크 직원도 교육이 잘 되어 있다.“문 대표님, 강윤슬 대표님이 위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프런트 데스크에서 엘리베이터로 안내하였다. “이쪽으로 오세요.”문지원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 있는 강윤슬의 사무실에 도착했다.문지원은 강윤슬이 기다릴 줄 알았는데 그녀의 비서가 말했다.“대표님이 회의하느라 바쁘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문지원은 이 말투가 아주 익숙하였다. 그녀는 강윤슬이 자신을 놀리고 있는 것 같았다.그녀가 소심인 배 한 것이 아니라 전화는 부재중이고,직접 왔는데 바쁘다고 하니, 일부러 그녀를 피하는 것 같았다.문지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협력을 위해 특별히 진심으로 여러분을 찾아왔는데 만약 여러분이 문 씨와 협력할 마음이 없다면, 직접 말하면 될 테니 저를 원숭이로 놀릴 필요는 없어요.”“그럴 리가요.”비서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 하였다.아마도 그들은 생김새가 온화하고 사람들에게도 대부분 선의를 가진 문지원이 이렇게 기세등등한 면이 있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뭐라고 하든 간에 문지원은 이미 결정하였다. “5분, 5분만 더 기다릴게요.”“5분후에 오지 안으면 합작이 무산된 걸로 칠 것이에요.”협력은 물론 중요하지만, 자신의 체면을 땅에 떨어뜨리는것은 안 되였다. 적어도 문지원은 그런 천덕꾸러기가 아니었다.그녀는 강윤슬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랐지만 언젠간 알게 될 것이니 급하지 않았다.5분이 지나자, 문지원은 떠날 준비를 했다.강윤슬은 하이힐에 리듬을 타며 느릿느릿 걸어왔다.“일이 좀 있어서 늦었어. 죄송하네.”그녀는 손을 내밀고 입가에 선의의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눈빛으로 문지원을 응시하
“조금만 더 늣더라도 아이를 볼 수 있을거야!” 강윤슬은 여기 오기전에 문지원의 상황을 알아보았기에 그녀의 금황을 알고 있었다. 강윤슬은 지금 기분이 좀 상해 있었다.그녀는 산에서 구출된 여자들을 경멸했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아이를 낳았다고 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날을 누가 알가? 누군가 문지원을 건드린 적이 있는지.문지원의 머리는 세게 부딪힌 것만 같았다. 한바탕 격동이 지나간 후,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려고 손가락을 움직였지만, 자신이 지금 자는 척하고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섣불리 눈을 뜨면 오해받을 수 있기에 문지원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기다리는 과정이 특히 길고 견디기 어려웠는데 마침내 그녀는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다.“나는 지원 씨를 관심하니 그런 것과는 무관해.”지석훈은 담담하게 말했다.이 몇 글자는 문지원의 마음속에서 순간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다.이 말을 들은 강윤슬의 얼굴은 창백해지기 시작 하였다.“지석훈, 너 진심이야?”“응, 난 이전 너한테 예전같은 마음이 없어.”말하면서 지석훈은 돌아섰다.“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를 바래.”강윤슬은 남자의 무자비한 모습을 보며 자신이 남긴 쓴맛을 맛보았다. 이 쓴맛은 옛날 지석훈만 느낄 수 있었던 감정이었다.그녀는 모욕을 참지 못하고 성을 내며 병실을 떠났다.문지원은 계속 자는 척하고 하려 하였는데 머리 위에서 지석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계속 자는 것처럼 있을 거야?”문지원은 천천히 눈을 뜨면서 그를 향해 어색하면서도 예의 바른 미소를 지었다.“배고파? 먹을 것 좀 갖다 줄까?”문지원은 난처해하고 있기에 간절히 바랐다.지석훈은 잠시 나갔다가 돌아올 때 그녀에게 따뜻한 죽 2인분을 가져왔다.문지원이 자신을 보자 그는 천천히 포장을 풀면서 말했다.“나도 마침 배가 고파서 너랑 같이 먹을 거야”문지원은 아주 행복하다고 느꼈다.그녀는 병원에서 이삼일 휴양하고 퇴원했다. 안 그래도 큰 문제는 없는데 그냥 좀 피곤한데 갑자기 저혈당까지 돌발하였기에 쓰러진
깜짝 놀란 지석훈은 급히 문지원을 데리고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그녀가 수면부족으로 쓰러진 것을 알자 지석훈은 무력하고 마음이 약해졌다.“넌 왜 자신을 이렇게 돌보고 있어?”지석훈은 병석 앞에서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문지원은 아직 혼수상태기에 아쉽게도 듣지 못했다. 병원에서 문지원에게 포도당 점액을 처방하여 지금 그 수액을 맞고 있다. 아마도 그녀는 충분히 자야 깨어날 것 같았기에 지석훈은 급하지 않았다. 어쨌든 이미 사람을 찾았고 자신이 직접 그녀를 지켜볼 수 있으니까.“지석훈!”강윤슬이 급히 병실로 뛰여 들어오자 지석훈이 밤을 새워도 잠깐 눈붙일 생각을 하지않고 가만히 병석 앞에서 지켜보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강윤슬이 들어온 것을 보자 지석훈은 무표정하게 말했다.“당신 여긴 왜 왔어?”그의 말투는 아주 평범했지만, 그의 눈빛에는 조그마한 눈물이 고였다. 그는 진작에 마음을 내려놓았기에 그녀에 대해 예전의 느낌은 없었으나 강윤슬은 아직 내려놓지 못하였다.그녀는 원래 지석훈한테 일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손에 있는 일도 돌볼 겨를 없이 서둘러 왔는데 그는 다른 여자 곁을 지키고 있었다.강윤슬은 손바닥의 부드러운 살을 꼬집으며 입가에 보기 싫은 미소를 지었다.“석훈 씨가 괜찮다니 정말 다행이네, 일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 다친 줄 알았어.”말한 후 강윤슬은 병석에 누워있는 문지원을 보며 말했다.“문지원 씨는 괜찮아?”문지원은 눈꺼풀을 움직였지만 뜨지 않았다. 사실 강윤슬이 왔을 때 그녀는 이미 깨어 있었지만 자는 척하였다.강윤슬은 눈을 반짝이며 방금 문지원이 약간 흔들린 눈꺼풀을 보고 자신이 잘못 본 것인가 의심하였다.지석훈은 병석에 있는 문지원을 바라보았지만, 전혀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일이 좀 생겼는데 사람은 괜찮아.”강윤슬은 마음이 더욱 쓰라렸다. “사람이 괜찮은데 왜 여전히 여기에서 지키고 있어?”“병원에 그렇게 많은 환자가 있는데 당신이 이렇게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네.”지석훈은 얼굴을
문지원은 지석훈만 홀로 남겨서 이 모든 상황을 마주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안에는 그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마지막으로 문지원은 그 지석훈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 후시경을 통해 보이는 그의 날씬한 실루엣은 차가 나아갈수록 서서히 멀어졌지만 여전히 당당한 모습이 역력했다.문지원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참으며 힘껏 가속 페달을 밟았다.차는 마치 활시위에서 쏘아 올린 화살처럼 순식간에 도로를 벗어나 달려 나갔다.곧바로 마을 사람들은 손에 곡괭이를 들고 몰려와 지석훈을 완전히 포위했다....한편 마을의 경찰서에는 한 통의 신고 전화가 접수되었다.신고자는 네 명의 갇힌 여성을 데리고 경찰서에 도착해 신고했으며 그 모습을 본 경찰 내부 사람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신원 확인 후 이들 여성의 몸에는 장기간 감금과 학대의 흔적이 분명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마을에 아직 한 사람이 남아 있어요. 그 사람을 꼭 구출해 주세요.”문지원은 지친 목소리로 경찰을 바라보며 애원했다.그녀는 중간에 한 번도 쉬지 않고 밤새도록 차를 몰았다. 식사 대신 몇 모금의 물만 마셨다.이제는 배고픔과 피로에 시달려 눈꺼풀이 무겁지만 문지원은 결코 쓰러질 수 없었다.그 이유는 지석훈이 아직 남아있었기 때문이다.경찰은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아직도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고요?”“네. 이름은 지석훈. 마을에 의료 봉사하러 간 의사예요.”문지원은 지석훈에 관한 기본 정보를 말했다.“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지만 마을 사람들이 빼앗을 가능성도 있어요. 이번에 우리가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던 건 다 그 사람 덕분이에요.”그런 사람이 그토록 황량한 산골짜기 같은 곳에 남아 있다는 사실에 경찰서 사람들은 바로 회의를 열어 구조대를 꾸려 밤새도록 그 마을을 수색하기 시작했다.문지원도 따라가겠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경찰들은 그녀의 상태를 보고 처음엔 단호히 반대했다.하지만 문지원은 고집스럽게 말했다.“안 돼요. 꼭 가야 해요. 그 사람이 무사한지 제가 직접 확인해야
지석훈은 그녀들을 방 안으로 들인 후 여성들이 마을에서 겪은 처참한 상황을 듣고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문지원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저는 이들을 데리고 나가고 싶어요. 그들은 원해서 여기에 남아 있는 게 아니에요. 이 산 너머에는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이곳에 남아 그들의 아이 낳는 도구가 되어 살아갈 이유는 없어요.”그 말에 문지원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잠시 침묵에 빠졌다.조수현 역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들 중 일부는 이미 아이를 낳은 상태였고 이곳을 떠난다는 건 곧 자신의 아이를 두고 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어머니로서 쉽게 결단을 내릴 수 없는 일이었지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이곳에 남아 계속 학대받으며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문지원은 지석훈이 망설일까 봐 서둘러 덧붙였다.“서둘러야 해요. 마을 사람들이 곧 우리가 사라진 걸 눈치챌 거예요. 그들이 우리를 찾으러 오는 건 시간문제라고요. 우린 석훈 씨한테 폐 끼칠 생각 없어요. 그저 차 한 대만 빌려주면 돼요.”마을 밖으로 나가는 길은 분명히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석훈이 여기까지 들어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차만 있다면 충분히 탈출할 수 있었다. 문지원은 운전을 할 줄 알았기에 본인이 직접 운전해서 모두를 데리고 탈출할 생각이었다.“걱정할 필요 없어요. 차는 빌려줄 테니까.”지석훈의 말에 문지원은 예상했던 대답이었음에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른 사람들은 더욱 기뻐하며 얼굴에 희망을 띄웠다.눈앞에 놓인 탈출의 기회에 모두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지석훈은 곧장 차를 가지러 갔다. 차 한 대에 모든 인원을 태울 수는 없었지만 최대한 몸을 붙이면 간신히 탈출할 수 있는 인원이었다.문지원은 재빠르게 조수현과 다른 여성들을 차에 태운 후 지석훈이 계속 말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근데 아까부터 왜 말이 없어요? 같이 안 갈 거예요?”지석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눈치 못 챘어? 이들은 남자한테 극도로 두려움을 느끼고 있어. 몇몇은 나랑 눈도 못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