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사실 비밀이라고 할 수도 없어요. 오빠는 오래전에 결혼했다는 걸 인정했거든요. 하지만 아내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아요.”“노승아 씨는 알아요?”“네. 하지만 말할 수 없어요. 괜히 비밀 결혼인 게 아니니까요. 결혼한 지 한참 됐는데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로 예민한 문제예요.”“...”“저는 할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 다음에 같이 커피라도 한잔해요.”말을 마친 노승아는 차에 올라탔다. 강하임은 제자리에 덩그러니 서서 한참이나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차에 오르고 시선이 차단된 다음, 노승아는 그녀를 바라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언니, 이럴 때 기선 제압해야지 왜 가만히 있었어요? 대표님이 언니를 좋아한다는 걸 밝혀야 그 여자들이 귀찮게 굴지 않을 거 아니에요!”김예진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말했다.만약 예전 같으면 노승아도 오늘처럼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강하임과 여이현이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챈 다음에는 달랐다.두 사람은 같은 학교 출신이라고 했다. 여이현이 학교에 있은 시간이 별로 길지 않았는데도 인상이 깊을 정도면 무언가 일어났을 게 분명했다.“그 여자 절대 내 드라마를 본 적 없어.”“네? 그건 어떻게 알았어요?”노승아는 손톱을 바라보며 말했다.“핸드폰에 내 이름을 검색한 기록이 있었어. 팬은 무슨, 그냥 말 걸려고 급하게 찾아봤던 거야. 나랑 오빠 사이가 궁금했겠지. 저 여자 보통내기가 아닌 것 같아. 괜히 엮여 봤자 좋을 게 없어. 운 좋으면 도움받을 수도 있겠지.”김예진은 이제야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언니 진짜 똑똑해요!”강하임은 제자리에서 한참이나 생각에 잠겼다.‘여이현이 결혼했다고? 말도 안 돼!’그녀는 섬뜩한 눈빛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우리의 약속은 잊은 거야? 내가 성인이 된 다음 결혼하기로 했잖아! 나랑 그런 약속을 해놓고 어떻게 다른 여자랑 결혼할 수 있지? 도대체 누구랑 결혼한 거야?’노승아의 대답은 아주 애매했다. 정
여이현은 살짝 기대되었다. 한 번도 누군가를 기쁘게 하기 위해 선물을 준비한 적이 없었기에, 온마음의 반응이 궁금했다.하지만 막상 사무실에 도착하니, 온마음의 자리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그는 가까이 다가가 컴퓨터가 꺼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 다가오는 이윤정에게 차갑게 물었다.“온 비서는 어디 있죠?”이윤정은 서류 다발을 들고서 대답했다.“온 비서님은 10분 전에 나가셨어요. 친구랑 저녁 약속 있다고 하던데요?”여이현의 얼굴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친구랑 저녁 약속? 남자일까, 여자일까... 그 전에 오늘은 나랑 밥 먹자고 하지 않았나? 이건 혹시 거절...?’여이현은 굉장히 언짢았다. 깊고 날카로운 눈동자도 순식간에 서늘해졌다.그의 점점 어두워지는 안색을 보면서, 이윤정은 도망가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그가 왜 갑자기 화났는지 몰랐지만 일단은 급히 말을 덧붙였다.“이런 말을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알기로는 여자분과 약속을 잡은 것 같습니다.”여이현은 여전히 차가운 얼굴로 사무실을 나섰다. 아래층에는 배진호가 기다리고 있었다.오늘의 식사를 위해 그들은 많은 준비를 했다. 배진호는 여이현이 혼자 나오는 것을 보자마자 급히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건네며 미소를 지었다.“대표님, 이건 주문하신 꽃입니다. 사모님께서는 데이트한다고 위에서 준비하고 계시죠?”꽃은 여이현의 눈앞에 다가왔다. 그는 배진호가 말을 끝마치자마자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배진호는 웃는 얼굴 그대로 얼어붙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그러나 여이현의 감정 변화는 대부분 온지유 때문이었다.“대표님... 혹시 사모님께서... 먼저 가신 건 아니겠죠...?”그는 자신이 잘못 생각한 것이기를 바랐다.여이현은 입술을 굳게 다물며 분노를 억누르다가 말했다.“차에 타요!”“네!”배진호는 오늘 두 사람의 사이가 조금이라도 나아질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이 너무 터무니없었던 것 같다. 그는 꽃다발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는
“왜 그래?”온지유가 갑자기 얼어붙은 것을 보고 백희지도 장난을 멈췄다. 그리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물었다.그러다가 머리를 돌리자 불청객 여이현이 떡하니 서 있는 것이 보였다.백지희도 당황했다.‘여이현이 어떻게 여기에...?’그러나 이곳에 온지유보다 더 떨리는 사람은 없었다. 원래는 백지희와 수다 떨려고 만난 것인데, 얼마 지나지도 않아 여이현이 나타난 것이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감정을 정리하며 당황함을 감추려고 했다. 여이현은 여전히 불쾌한 표정으로 얼굴을 굳히고 있었다. 차갑기 그지없는 얼굴이었다.온지유가 백지희와 즐겁게 웃고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은 잊힌 것 같아 더욱 불쾌해졌다. 그는 천천히 다가가 온지유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뭐가 그렇게 좋아?”그의 날카로운 시선은 두 사람이 주문한 디저트, 그리고 레스토랑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택배 상자와 그 아래 숨겨진 몇 권의 책에 머물렀다. 온지유는 황급히 책과 택배 상자를 손에 쥐고 뒤로 숨겼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지희랑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다가 장난을 쳤어요.”“맞아요, 맞아요.”백지희도 말을 덧붙였다.“여이현 씨가 따라올 줄은 몰랐네요. 우리 지유랑 그렇게 떨어지기 싫었어요? 우리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오셨네요. 만약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적지 않게 놀랐을 거예요.”백지희는 온지유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논담으로 말했다. 하지만 웃고 있는 사람은 백지희밖에 없었다.주변은 정적에 휩싸였고 백지희는 어색하게 입을 다물었다. 여이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예리하게 온지유의 손을 바라봤다.“평소 그렇게 틱틱대던 분이 오늘은 왜 이렇게 친절할까요?”두 사람 사이의 은밀한 신호를 여이현도 느꼈다. 그는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백지희는 혹시라도 무언가 들킬까 봐 안절부절못했다. 그럴수록 여이현의 의심은 점점 더 켜져 갔다.“저는...”백지희는 설명하려고 했다.“지희도 이제 반쯤 사업가가 됐으니, 이현 씨랑 친해져
여이현은 온지유를 바라보며 물었다.“소설? 이건 왜 숨긴 거야? 내가 보면 안 되는 거라도 있나?”백지희는 곧바로 해명했다.“자고로 로맨스 소설은 방에서 몰래 읽어야 맛있어요. 그리고 살짝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잖아요. 아무튼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세요!”다행히도 온지유는 언제나 신중하게 행동한다. 그녀는 육아 책과 같은 것을 함부로 꺼내 놓지 않았다. 육아 책은 이미 가방에 숨겨져 있었고, 밖에 있던 것은 페이크로 함께 산 소설뿐이다.온지유는 여이현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아서 모든 준비를 철저하게 했다. 이토록 작은 부분도 결코 놓치지 않았다.그녀는 여이현과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모든 의심이 그녀가 임신한 것이 아닌지 확인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지금으로서는 임신 여부를 떠나 여이현의 강압적인 태도에 화가 나서 떠나고 싶었다. 그녀는 가방을 챙겨 들고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여이현은 책을 테이블 위에 던지며 언성을 높였다.“온지유, 거기 서!”온지유는 그의 말에 반응하지 않고 계속 걸어 나갔다. 여이현은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내 말 안 들려? 이제 내 말도 안 듣겠다는 거야?”온지유는 손을 뿌리치지 못하고 뒤돌아보며 대답했다.“대표님, 저는 퇴근했어요. 지금은 제 자유 시간이에요. 근데 왜 대표님 말을 들어야 하죠?”이 말에 여이현은 잠시 넋이 나갔다. 두 사람의 관계에서 여이현은 항상 이득을 보는 쪽이었다. 그만큼 온지유가 순종적이라는 말이다. 직장이든 집이든 간에 그녀는 항상 그를 배려해 줬다.여이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예전에는 안 이랬잖아.”온지유는 그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어쩐지 약간 불안해 보였다. 그의 목소리도 전처럼 강압적이지 않았다.그녀는 자신의 손을 빼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맞아요, 예전에는 안 이랬죠. 이현 씨한테 큰 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순종적이기만 했어요. 심지어 이현 씨가 원하는 건 전부 해줬죠. 이현 씨 입장에서는 제가 하는
온지유와 마주친 배진호는 우뚝 멈춰 서서 물었다.“사모님, 두 분 오늘 함께 식사 하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온지유의 눈가에 눈물이 차오른 것을 보고, 배진호는 두 사람 사이에 다툼이 있었음을 직감했다.“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표님이 많이 반성하고 계세요. 보세요, 오늘 꽃다발까지 준비하셨어요. 사모님을 위해서요.”배진호는 두 사람이 빨리 화해하기를 바랐다.그는 여이현의 아래에서 오랫동안 일해왔다. 그래서 더 잘 알았다. 여이현은 누군가를 위해 꽃다발을 준비할 위인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여이현은 연애하는 법을 전혀 몰랐다. 정확히는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정성을 쏟을 여자가 없었던 것이다. 여이현이 온지유에게 마음을 쓰고 있다는 것은 그녀를 신경 쓰고 있다는 의미였다.온지유는 배진호가 들고 있는 꽃을 보고 담담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전에 온 비서라고 부르기로 했잖아요? 왜 또 사모님이라고 부르세요. 이제 그 호칭은 쓰지 마세요. 저는 이제 평범한 직원일 뿐이에요. 그리고 이 꽃은 진짜 중요한 사람한테 주길 바라요.”“아니에요. 사모님보다 더 중요한 사람은 없어요!”배진호는 어떻게든 좋게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온지유는 여이현에게 더 이상 아무런 기대도 하고 싶지 않았다.지금 그녀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단지 이혼, 그리고 깔끔한 이별일 뿐이었다.“사모님...”점점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배진호는 뒤쪽에서 다가오는 여이현에게 말했다.“대표님, 빨리 쫓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사모님이 화가 많이 나신 모양이에요.”그는 여이현보다 더 걱정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결혼을 구하기 위해 속이 다 타들어 갔다.반대로 여이현은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배진호에게 물었다.“아까 지유가 우는 것 같던데, 내가 제대로 본 게 맞나요?”“네. 저도 봤습니다. 많이 힘들어 보였어요.”“그런 눈으로 끝내자는 말은 왜 할까요? 나랑 있는 것이 그렇게 힘들었던 건가요?”“그럴 리가 없어요!”배진호는 급히 말했다.“여
“무슨 일인데 그렇게 급하게 마셔?”맞은편에 앉은 최주하가 물었다.그들은 나이트클럽에 있었다. 음악의 사운드는 크고 열정적이었다. 무대 위에서는 섹시한 여자가 춤을 추고 있었다. 모두가 이 밤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분위기 또한 시끄러웠다.여이현이 이 온 것은 단지 마음이 답답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시끄러운 곳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반대로 최주하에게는 일상과 다름없었다.“아무것도 아니야.”여이현은 온지유와의 갈등을 말하고 싶지 않아 얼굴을 굳힌 채 생각에 빠졌다.최주하는 와인을 가볍게 홀짝였다. 품에는 진한 메이크업을 한 여자를 안고 있었다.“왜, 연애가 또 잘 안돼?”“에이, 설마...”지석훈이 잘 아는 양 입을 열었다.“이현이 형이 어떤 사람인데. 안 넘어올 여자는 없어.”“너 그 여자 얕보지 마. 지난번 온지유 씨가 다른 남자랑 말 좀 했다고, 이현이 질투를 얼마나 하는지... 내가 그 산 증인이다, 이거야.”지석훈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물었다.“결혼한 사이에 그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해?”“둘 다 닥쳐!”여이현은 날카롭게 말을 끊었다. 최주하도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똑똑한 사람이라면 무조건 알 수 있었다. 여이현의 결혼 생활에 적신호가 떴다는 것을 말이다.그는 한 번도 이런 모습을 보인 적 없었다. 전에는 외박을 밥 먹듯이 하며 온지유는 완전히 없는 사람 취급했다. 지금도 몸은 이 자리에 앉아 있지만, 마음은 온지유에게 가 있는 듯했다.“도현이 있었으면 좋겠다. 도현이는 제대로 분석할 수 있었을 텐데. 아무래도 변호사니까 이런 문제 자주 보지 않겠어?”최주하가 다시 말했다.“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냥 형이 취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내가 지난번처럼 전화를 걸어 볼게. 아무리 매정한 여자라고 해도 걱정을 안 할 수 없을걸.”두 사람이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 여이현은 점점 짜증이 났다. 온지유의 이름 석 자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지만, 모든 말에 그녀가 들어있었다.“내가 언제 온지유랑 관련 있다고 했
온지유는 별다른 감정 없는 얼굴로 한동안 셔츠의 자국을 응시했다.여이현이 접대하는 자리에서 어쩔 수 없이 여자들과 어울려야 한다는 점은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어떤 사람도 그의 셔츠에 립스틱 자국을 남긴 적은 없었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셔츠를 꼭 잡았고, 셔츠는 그녀의 손에서 점점 구겨지기 시작했다. 이때 욕실 문이 열리고 그녀는 벌떡 정신을 차렸다.여이현은 욕실에서 나와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그녀를 보고 물었다.“왜 거기에 그러고 서 있어?”온지유의 감정 변화를 알아채지 못한 그는 시간을 한 번 확인한 후 다시 말했다.“평소에는 잠들었을 시간 아니야? 오늘은 왜 안 잤어?”최근 온지유는 거의 그를 기다리지 않고 잠에 들었다. 예전에는 그가 돌아와야만 안심하고 잠들 수 있었는데 말이다.지금은 그가 늦게 돌아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잠들었다. 물론 온지유가 잠자는 시간까지 그가 상관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전과 다른 세세한 변화에서 오는 기분의 낙차가 도무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선명했다.그가 술을 먹고 돌아왔는데도 온지유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 그녀는 그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이건 노승아가 물어봐야 할 일이다. 애초에 립스틱 자국의 주인이 노승아일 수도 있었다.“옷은 세탁기에 넣어줄게요.”온지유는 차분하게 말하고 밖으로 나갔다.여이현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그녀의 말투에서 느껴지는 냉기를 알아챘던 것이다.‘이제는 나를 쳐다보는 것도 싫다는 건가?’생각하다 보니 여이현도 기분이 나빠졌다. 그는 이불을 덮고 옆으로 누워 잠을 청하려 했다.온지유가 돌아왔을 때, 여이현은 등을 돌린 채 이불을 단단히 덮고 있었다. 이미 잠들었는지 다른 움직임은 없었다.온지유는 그를 방해하지 않고 마찬가지로 등을 돌려 누웠다.두 사람 사이에 드넓은 강이 있는 것 같았다.잠시 후 여이현은 이불을 걷어냈다. 잠들기는커녕 땀만 흠뻑 났다. 그는 고개를 돌려 깊은 잠에 빠진 온지유를 확인했다. 그녀는 그의
만약 회사에 여이현을 대표할 다른 사람이 있다면 온지유는 무조건 알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임원들이 모두 자리를 비워서 그녀가 직접 갈 수밖에 없었다.“그럼 어쩔 수 없이 제가 가야겠네요. 서연 씨도 같이 가요.”“네.”송서연이 대답했다.온지유는 몇몇 사람과 함께 출발했다. 송서연은 신입사원으로서 회사 업무를 익혀야 했고, 온지유는 가는 길 내내 주의할 점을 당부했다. 어떤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항구에 도착했다. 배는 이미 항구에 와 있었고, 금강의 사람들이 그곳에서 화물을 내리고 있었다.온지유가 차에서 내리기 바쁘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왜 대표님이 아닌 온 비서가 온 거죠? 온 비서가 언제부터 대표님 대행까지 했어요?”온지유는 머리를 돌렸다. 강하임은 팔짱을 낀 채 그녀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대표님이 오늘 좀 바빠서요. 제가 대표님 대신 금강과 협상하는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에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세요.”강하임은 온지유가 점점 눈에 거슬렸다. 따지고 보면 그녀가 여이현의 비서로 등장한 첫 순간부터 눈엣가시 같았다. 왜 꼭 여자 비서를 써야 하는지 의아하기도 했다. 남자 비서가 체력적으로 훨씬 낫지 않는가?온지유가 여이현의 아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순간, 그 의문은 완전히 풀렸다. 온지유는 그녀가 경계해야 하는 상대가 틀림없었다.“이해 못 할 건 없지만, 온 비서가 월권한 것 같은데요. 온 비서의 권력이 언제 이렇게 커진 건가요?”강하임은 냉정한 말투로 물었다. 눈빛에는 온지유에 대한 적의로 가득했다.“이미 말씀드렸잖아요. 대표님이 오늘 바쁘다고요.”“저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봐요.”강하임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 시선에 그녀는 몸이 뚫릴 것만 같았다. 그래도 강하임의 말에는 대꾸하지 않았다.그녀는 강하임과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는지 이해할 수 없을 따
문이 쿵 하고 닫히고 문지원과 지석훈은 현관에서부터 거실 소파까지 키스를 멈추지 않았다.소파에 쓰러질 때 문지원이 머리를 부딪힐까 봐 지석훈은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받쳐주었는데 키스는 여전히 멈추지 않았고 서로의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졌다.“잠깐만요.”문지원이 말했다.지석훈이 멈추려 하지 않자, 그녀는 아예 손으로 밀어내며 말했다.“내려가서 사와요.”지석훈은 붉게 달아오른 문지원의 얼굴을 보며 무언가 떠올리더니 고의로 안 간다고 했다.“안 써도 돼.”그는 문지원의 귓불을 깨물었고 숨소리도 점점 더 거칠어졌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안다고 한번 건드리면 멈출 수가 없었다.하지만 문지원은 확고했다.“안 돼요. 사 와요.”지석훈은 하는 수 없이 일어나서 문지원의 입술에 입 맞추고 옷을 입었다.“알았어. 기다려.”아파트 입구에 바로 편의점이 있기에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지석훈은 얼마나 급했는지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손에 핑크색 물건을 들고 들어왔다.그동안 그의 욕망은 추호도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 활활 타올랐다.지석훈은 뒤에서 문지원을 껴안으며 속삭였다.“당신이 뜯어줘.”문지원의 귓불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직접 해요.”“해줘.”문지원은 하는 수 없이 떨리는 손으로 비닐 포장을 뜯었다.지석훈은 그녀를 들어 올렸고 문지원은 그가 리드하는 대로 움직였다.일이 끝난 다음에도 지석훈은 부족했던지 문지원의 쇄골에 키스하더니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왜 갑자기 이렇게 열정적이야?”“싫어요? 그럼, 다음부터 조심할게요.”“아니, 너무 좋아. 다음에도 계속해.”지석훈은 그녀의 얼굴을 돌려 키스하며 말했다.두 사람은 그 뒤로도 이러한 관계를 서로 묵인했다.문지원은 가끔은 자기 집에 가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지석훈의 집에서 지냈고 시간이 지나면서 지석훈의 집에는 그녀의 물건들이 화장품부터 시작해서 일상용품, 그리고 여성용품들까지 추가되었다.그들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금방 두 사람의 관계를 알
지석훈이 말했다.“그 사람을 괴롭히지 마.”지석훈이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강윤슬도 잘 알고 있다.강윤슬의 기쁨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이 떨릴 정도의 차가움에 소름이 끼쳤다.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를 억지로 숨기며 말했다.“석훈아, 오랜만에 연락해서 한다는 말이 그거야?”“선배, 너무 심했어. 나는 혁수가 아니라서 선배의 마음을 받아줄 수 없어. 그러니까 나한테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혁수한테 신경 써.”“혁수는 이제 아이까지 있어. 그리고 나한테 이제 관심이 없어.”지석훈이 바로 이어서 말했다.“나도 선배에게 관심이 없어.”강윤슬은 한 사람의 말에 이토록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강윤슬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지석훈은 또 말했다.“선배가 나를 받아준 적이 없으니 우리 사이에 끝나고 말고 할 건 없잖아. 그리고 우리 사이 일에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강윤슬은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석훈아, 너한테 문지원 씨가 다른 사람이야?”지석훈은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강윤슬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액자를 바라보았는데 사진에는 지석훈이 젊은 시절의 최고의 미소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녀를 향했던 지석훈의 최고의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모두 사라져서 안타까울 뿐이었다.그리고 지금 강윤슬은 똑같은 눈빛으로 문지원을 바라보고 있다.문지원은 강윤슬의 눈빛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불편했다.“윤슬 씨, 무슨 일로 보자고 하신 거죠?”두 사람은 커피숍에 앉아 있었다.강윤슬은 길거리에 오고 가는 차들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가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문지원을 향해 물었다.“석훈이한테서 저에 대해 들은 적 있어요?”“조금요.”강윤슬은 쓴웃음을 지었다.“그렇겠죠. 석훈이랑 나 워낙 아무런 관계가 아니니까요. 다만 예전에는 내가 석훈이를 쳐다보지 않았다가 나중에는 후회했죠. 시작한 적도 없는 관계이니... 그냥 방금 한 얘기는 잊어버려요.”문지원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강윤슬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문지원은 어른을 마주하는 것 같았다.“아무것도 아니에요.”지석훈은 그녀가 반쯤 울리는 것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나한테도 속일 생각하고 있어?”문지원은 뭐라고 대답할 생각이 없었다.지석훈은 그녀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은 듯 다른 말로 그녀를 앉혀 식사 하게 하였다.마침, 문지원은 급하게 회사에서 나와서 아직 먹지 않았다.오늘뿐만 아니라, 요 며칠 동안 주주들과 상의 하느라 바빠서 그녀는 종종 하루에 두 번, 심지어 하루에 한 번 밥을 먹었다.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초췌하여 지 씨 아버지께서 한눈에 알아차리지 않았을 것이다.지석훈은 병원 식당에서 준비한 도시락을 가져왔다.병원의 식당은 바깥 식당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영양 균형이 잘 잡혀 있다. 그는 마치 진작에 그녀와 함께 식사하기로 계획한 것처럼 미리 두 개를 준비하였다.조용히 도시락을 먹으며 문지원은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하여 지석훈이 입을 열었을 때도 반응하지 못하였다.“요즘 뜻대로 안 돼?”“조금.”문지원은 무의식으로 대답하고 살짝 굳었는데 지석훈은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지 의사 선생님, 계세요?”밖에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곧 수술이 있기에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네, 알겠어요.”지석훈이 대꾸하자 곧 밖에 있던 사람들이 급히 떠났다.문지원은 이제야 그녀가 바빠서 몸을 뺄 수 없다는 것은 사실 선츠도 비슷하고, 심지어 지나쳐도 모자랄 정도였다는것을 깨달았다. 의사는 워낙 바쁜 직업이라.그런데 그는 이렇게 바쁜데도 시간을 내서 문지원을 위로하려고 하다니... 문지원은 갑자기 양심이 은근히 아파 났다.지석훈은 한쪽에 걸려 있는 흰 가운 외투를 입고 문지원을 쳐다보았다.“난 먼저 일하러 갈게 넌 여기 있을래 아니면 먼저 돌아갈래? 먼저 돌아가면 저녁에 널 찾으러 갈게.”문지원은 도시락을 다 먹고 내려놓았다. “먼저 돌아가 있을게요.”지석훈은 고개를 끄덕이고 떠났다.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돌아간 후 지석훈이 그녀를
그 남자는 분명히 강윤슬한테 평범한 사람이 아닐 것이니 문지원은 돌아가서 주의하기로 결정했다.“화닝 빌딩의 프로젝트에 대해 귀 그룹의 요구 사항을 문정 그룹에서 보았어요. 우리 그룹에서는 두 가지 사항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첫째, 우리는 보수와 지불이 불균형하다고 생각해요. 귀사는 모든 재료를 최고 수준으로 배분할 것을 요구하지만, 이익은 10% 미만만 이에요.”“둘째, 우리는 자체 인력이 있으며, 채용 측면에서 귀 그룹에서는 간섭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해요.”이것이 바로 문지원이 오늘에 온 목적이었다.문지원은 성격이 매우 좋은 사람이기에 일반적으로 갑방이 제시한 조건이 너무 지나치지 않으면 그녀는 그 조건들을 진지하게 경청하지만 이번에 강윤슬은 너무 심했다.심지어 강윤슬 자신조차도, 한 짓이 좀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갑방이 협력 파트너에게 이래라저래라 심지어 무슨 사람을 쓰는지까지 상관 한다니 한 일이 너무 심했다. 그리고 10%도 안 되는 이윤을 양보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계약서에서 말하는 ‘두 그룹이 함께 이기자'는 말장난을 하는 것은 문자께임으로 사람을 놀리는 거짓말인 것같앗다.강윤슬은 그녀가 왜 왔는지 진작 알고 있기 하나도 놀라지 않았다. “너무하다고?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고객이 신이라는 말은 누구나 다 알아.”“고객이 이렇다 하지만 갑방이 프로젝트를 당신들에게 맡기고 당신들도 받아들였는데 지금 할 수 없다고 하면 계약을 위반한 것이야. 계약을 위반하면 두 배의 계약금을 물어내야 하는데, 이 돈을 문정 그룹에서 감당할 수 있어?”그 전에 문지원은 강윤슬에 대해 악감정이 없었다.비록 그녀와 지석훈은 알려지지 않은 과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문지원은 정말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는 상대방의 악의를 느낄 수 있지만, 왜 사람들은 모두 근거 없는 악의를 가지고있는지 몰랐다.문지원은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강윤슬 씨, 저에게 불만이 있으면 저에게 말해주세요. 그러나 협력에서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았
문지원은 강윤슬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모르지만, 그녀는 반드시 가야 했다.한바탕 망설인 후, 그녀는 빠르게 결정 하였다. 가야 할 바엔 가자, 무슨 칼산 불바다도 아니고...강윤슬이 근무하는 회사는 규모가 상당했고, 국내에서 100위 안에 드는 대기업이다. 큰 회사답게 프런트 데스크 직원도 교육이 잘 되어 있다.“문 대표님, 강윤슬 대표님이 위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프런트 데스크에서 엘리베이터로 안내하였다. “이쪽으로 오세요.”문지원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 있는 강윤슬의 사무실에 도착했다.문지원은 강윤슬이 기다릴 줄 알았는데 그녀의 비서가 말했다.“대표님이 회의하느라 바쁘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문지원은 이 말투가 아주 익숙하였다. 그녀는 강윤슬이 자신을 놀리고 있는 것 같았다.그녀가 소심인 배 한 것이 아니라 전화는 부재중이고,직접 왔는데 바쁘다고 하니, 일부러 그녀를 피하는 것 같았다.문지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협력을 위해 특별히 진심으로 여러분을 찾아왔는데 만약 여러분이 문 씨와 협력할 마음이 없다면, 직접 말하면 될 테니 저를 원숭이로 놀릴 필요는 없어요.”“그럴 리가요.”비서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 하였다.아마도 그들은 생김새가 온화하고 사람들에게도 대부분 선의를 가진 문지원이 이렇게 기세등등한 면이 있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뭐라고 하든 간에 문지원은 이미 결정하였다. “5분, 5분만 더 기다릴게요.”“5분후에 오지 안으면 합작이 무산된 걸로 칠 것이에요.”협력은 물론 중요하지만, 자신의 체면을 땅에 떨어뜨리는것은 안 되였다. 적어도 문지원은 그런 천덕꾸러기가 아니었다.그녀는 강윤슬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랐지만 언젠간 알게 될 것이니 급하지 않았다.5분이 지나자, 문지원은 떠날 준비를 했다.강윤슬은 하이힐에 리듬을 타며 느릿느릿 걸어왔다.“일이 좀 있어서 늦었어. 죄송하네.”그녀는 손을 내밀고 입가에 선의의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눈빛으로 문지원을 응시하
“조금만 더 늣더라도 아이를 볼 수 있을거야!” 강윤슬은 여기 오기전에 문지원의 상황을 알아보았기에 그녀의 금황을 알고 있었다. 강윤슬은 지금 기분이 좀 상해 있었다.그녀는 산에서 구출된 여자들을 경멸했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아이를 낳았다고 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날을 누가 알가? 누군가 문지원을 건드린 적이 있는지.문지원의 머리는 세게 부딪힌 것만 같았다. 한바탕 격동이 지나간 후,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려고 손가락을 움직였지만, 자신이 지금 자는 척하고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섣불리 눈을 뜨면 오해받을 수 있기에 문지원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기다리는 과정이 특히 길고 견디기 어려웠는데 마침내 그녀는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다.“나는 지원 씨를 관심하니 그런 것과는 무관해.”지석훈은 담담하게 말했다.이 몇 글자는 문지원의 마음속에서 순간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다.이 말을 들은 강윤슬의 얼굴은 창백해지기 시작 하였다.“지석훈, 너 진심이야?”“응, 난 이전 너한테 예전같은 마음이 없어.”말하면서 지석훈은 돌아섰다.“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를 바래.”강윤슬은 남자의 무자비한 모습을 보며 자신이 남긴 쓴맛을 맛보았다. 이 쓴맛은 옛날 지석훈만 느낄 수 있었던 감정이었다.그녀는 모욕을 참지 못하고 성을 내며 병실을 떠났다.문지원은 계속 자는 척하고 하려 하였는데 머리 위에서 지석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계속 자는 것처럼 있을 거야?”문지원은 천천히 눈을 뜨면서 그를 향해 어색하면서도 예의 바른 미소를 지었다.“배고파? 먹을 것 좀 갖다 줄까?”문지원은 난처해하고 있기에 간절히 바랐다.지석훈은 잠시 나갔다가 돌아올 때 그녀에게 따뜻한 죽 2인분을 가져왔다.문지원이 자신을 보자 그는 천천히 포장을 풀면서 말했다.“나도 마침 배가 고파서 너랑 같이 먹을 거야”문지원은 아주 행복하다고 느꼈다.그녀는 병원에서 이삼일 휴양하고 퇴원했다. 안 그래도 큰 문제는 없는데 그냥 좀 피곤한데 갑자기 저혈당까지 돌발하였기에 쓰러진
깜짝 놀란 지석훈은 급히 문지원을 데리고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그녀가 수면부족으로 쓰러진 것을 알자 지석훈은 무력하고 마음이 약해졌다.“넌 왜 자신을 이렇게 돌보고 있어?”지석훈은 병석 앞에서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문지원은 아직 혼수상태기에 아쉽게도 듣지 못했다. 병원에서 문지원에게 포도당 점액을 처방하여 지금 그 수액을 맞고 있다. 아마도 그녀는 충분히 자야 깨어날 것 같았기에 지석훈은 급하지 않았다. 어쨌든 이미 사람을 찾았고 자신이 직접 그녀를 지켜볼 수 있으니까.“지석훈!”강윤슬이 급히 병실로 뛰여 들어오자 지석훈이 밤을 새워도 잠깐 눈붙일 생각을 하지않고 가만히 병석 앞에서 지켜보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강윤슬이 들어온 것을 보자 지석훈은 무표정하게 말했다.“당신 여긴 왜 왔어?”그의 말투는 아주 평범했지만, 그의 눈빛에는 조그마한 눈물이 고였다. 그는 진작에 마음을 내려놓았기에 그녀에 대해 예전의 느낌은 없었으나 강윤슬은 아직 내려놓지 못하였다.그녀는 원래 지석훈한테 일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손에 있는 일도 돌볼 겨를 없이 서둘러 왔는데 그는 다른 여자 곁을 지키고 있었다.강윤슬은 손바닥의 부드러운 살을 꼬집으며 입가에 보기 싫은 미소를 지었다.“석훈 씨가 괜찮다니 정말 다행이네, 일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 다친 줄 알았어.”말한 후 강윤슬은 병석에 누워있는 문지원을 보며 말했다.“문지원 씨는 괜찮아?”문지원은 눈꺼풀을 움직였지만 뜨지 않았다. 사실 강윤슬이 왔을 때 그녀는 이미 깨어 있었지만 자는 척하였다.강윤슬은 눈을 반짝이며 방금 문지원이 약간 흔들린 눈꺼풀을 보고 자신이 잘못 본 것인가 의심하였다.지석훈은 병석에 있는 문지원을 바라보았지만, 전혀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일이 좀 생겼는데 사람은 괜찮아.”강윤슬은 마음이 더욱 쓰라렸다. “사람이 괜찮은데 왜 여전히 여기에서 지키고 있어?”“병원에 그렇게 많은 환자가 있는데 당신이 이렇게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네.”지석훈은 얼굴을
문지원은 지석훈만 홀로 남겨서 이 모든 상황을 마주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안에는 그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마지막으로 문지원은 그 지석훈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 후시경을 통해 보이는 그의 날씬한 실루엣은 차가 나아갈수록 서서히 멀어졌지만 여전히 당당한 모습이 역력했다.문지원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참으며 힘껏 가속 페달을 밟았다.차는 마치 활시위에서 쏘아 올린 화살처럼 순식간에 도로를 벗어나 달려 나갔다.곧바로 마을 사람들은 손에 곡괭이를 들고 몰려와 지석훈을 완전히 포위했다....한편 마을의 경찰서에는 한 통의 신고 전화가 접수되었다.신고자는 네 명의 갇힌 여성을 데리고 경찰서에 도착해 신고했으며 그 모습을 본 경찰 내부 사람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신원 확인 후 이들 여성의 몸에는 장기간 감금과 학대의 흔적이 분명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마을에 아직 한 사람이 남아 있어요. 그 사람을 꼭 구출해 주세요.”문지원은 지친 목소리로 경찰을 바라보며 애원했다.그녀는 중간에 한 번도 쉬지 않고 밤새도록 차를 몰았다. 식사 대신 몇 모금의 물만 마셨다.이제는 배고픔과 피로에 시달려 눈꺼풀이 무겁지만 문지원은 결코 쓰러질 수 없었다.그 이유는 지석훈이 아직 남아있었기 때문이다.경찰은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아직도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고요?”“네. 이름은 지석훈. 마을에 의료 봉사하러 간 의사예요.”문지원은 지석훈에 관한 기본 정보를 말했다.“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지만 마을 사람들이 빼앗을 가능성도 있어요. 이번에 우리가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던 건 다 그 사람 덕분이에요.”그런 사람이 그토록 황량한 산골짜기 같은 곳에 남아 있다는 사실에 경찰서 사람들은 바로 회의를 열어 구조대를 꾸려 밤새도록 그 마을을 수색하기 시작했다.문지원도 따라가겠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경찰들은 그녀의 상태를 보고 처음엔 단호히 반대했다.하지만 문지원은 고집스럽게 말했다.“안 돼요. 꼭 가야 해요. 그 사람이 무사한지 제가 직접 확인해야
지석훈은 그녀들을 방 안으로 들인 후 여성들이 마을에서 겪은 처참한 상황을 듣고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문지원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저는 이들을 데리고 나가고 싶어요. 그들은 원해서 여기에 남아 있는 게 아니에요. 이 산 너머에는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이곳에 남아 그들의 아이 낳는 도구가 되어 살아갈 이유는 없어요.”그 말에 문지원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잠시 침묵에 빠졌다.조수현 역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들 중 일부는 이미 아이를 낳은 상태였고 이곳을 떠난다는 건 곧 자신의 아이를 두고 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어머니로서 쉽게 결단을 내릴 수 없는 일이었지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이곳에 남아 계속 학대받으며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문지원은 지석훈이 망설일까 봐 서둘러 덧붙였다.“서둘러야 해요. 마을 사람들이 곧 우리가 사라진 걸 눈치챌 거예요. 그들이 우리를 찾으러 오는 건 시간문제라고요. 우린 석훈 씨한테 폐 끼칠 생각 없어요. 그저 차 한 대만 빌려주면 돼요.”마을 밖으로 나가는 길은 분명히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석훈이 여기까지 들어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차만 있다면 충분히 탈출할 수 있었다. 문지원은 운전을 할 줄 알았기에 본인이 직접 운전해서 모두를 데리고 탈출할 생각이었다.“걱정할 필요 없어요. 차는 빌려줄 테니까.”지석훈의 말에 문지원은 예상했던 대답이었음에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른 사람들은 더욱 기뻐하며 얼굴에 희망을 띄웠다.눈앞에 놓인 탈출의 기회에 모두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지석훈은 곧장 차를 가지러 갔다. 차 한 대에 모든 인원을 태울 수는 없었지만 최대한 몸을 붙이면 간신히 탈출할 수 있는 인원이었다.문지원은 재빠르게 조수현과 다른 여성들을 차에 태운 후 지석훈이 계속 말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근데 아까부터 왜 말이 없어요? 같이 안 갈 거예요?”지석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눈치 못 챘어? 이들은 남자한테 극도로 두려움을 느끼고 있어. 몇몇은 나랑 눈도 못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