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시내로 나가 탕비실의 음료를 구매했다. 탕비실의 음료는 주로 이 가게에서 구매하곤 했다.일은 금방 끝났다.하지만 온지유의 일은 조금 더 까다로웠다.여이현이 마시는 커피 원두는 예약이 필요했다.다행히도 재고가 있었다.온지유는 그쪽으로 갔다.“온지유 언니, 여 대표님이 마시는 그 커피 원두가 그렇게 귀한가요? 예약까지 해야 하다니.” 이윤정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희귀한 커피 원두가 있다니.온지유는 말했다. “여 대표님이 좀 까다로워서 그래요.”여이현은 그 커피 원두만 마셨다.이윤정은 부자들의 세계가 참 좋다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커피 원두조차도 최고급이었다.온지유는 이미 점장과 약속을 했고 가게에 들어가자마자 물었다. “점장님, 준비됐나요? 항상 같은 것으로 부탁해요.”점장은 약간 난처해 보였다. “온지유 씨, 딱 한 봉지만 남았는데 아마도...”그녀는 말을 흐렸고 곤란한 기색이 역력했다.온지유는 상황을 알아채고 옆을 바라보니 거기에는 강하임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누군가 했더니 온지유 비서였군요. 이런 취향이 있을리는 없을 테니 여이현에게 줄 커피 원두를 사려는 건가요?”온지유는 대답하고 싶지 않아 대신 물었다. “점장님, 이 봉지는 제가 예약한 거 아닌가요?”“맞습니다. 그런데 강하임 씨도 우리 가게에 많은 돈을 쓰셔서 그녀가 양보하지 않겠다고 하네요...” 점장은 매우 곤란해 하며 누구도 건드리지 않으려 했다.강하임이 일어서며 말했다. “점장님, 걱정 마세요. 이 커피 원두는 가격이 올랐으니 돈은 충분히 있습니다. 나는 희귀한 걸 좋아하거든요.”그녀는 가방에서 카드를 꺼내며 온지유에게 말했다.온지유는 불편함을 느끼며 말했다. “모든 일은 선착순이 있잖아요. 점장님, 만약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여진그룹이 돈이 없을 것 같나요?”점장은 누구도 건드리지 않으려 하며 말했다. “온지유 씨, 강하임 씨, 두 분이 반반씩 나누는 건 어떠신가요? 새로운 재고가 들어오면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당신 말 다 했어요?” 강윤희가 그녀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여기 여이현 오빠도 없고 우리 할아버지도 없으니 내 앞에서 시치미를 떼지 마세요. 본성을 드러내, 나쁜 여자야!”강윤희의 말에 온지유는 잠시 멍해졌다.자신이 어쩌다 나쁜 여자가 된 걸까?그녀와는 아무런 원한도 없는데 강윤희의 입에서 나쁜 여자가 되었다.온지유는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고 강윤희가 자신보다 몇 살 어리고 강태규의 손녀라서 어릴 때부터 부모 없이 자란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양보했다. “당신들이 좋아한다면 가져가요. 별거 아니예요.”이윤정은 여전히 불만이었고 그녀는 온지유를 위해 한마디 하고 싶었다.하지만 온지유는 말했다. “이윤정, 갑시다.”이윤정은 말했다. “그러면 여 대표님의 커피 원두는 어떻게 해요? 없지 않나요? 여 대표님이 마시지 못하면 당신을 탓하지 않을까요?”“괜찮아요.”강윤희는 온지유가 잘난 척하는 걸 보고 차갑게 웃었다. “가식 떨지 마요. 당신들이 양보한다고 내가 감사할 줄 알아요? 당신 때문에 할아버지한테 혼나고 망신당한 건 아직 해결하지 않았어요. 난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온지유는 강윤희가 아직 어리다고 생각해서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강하임은 사실 커피 원두가 필요하지 않았지만 온지유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었다. 지난번에 자신이 곤란했던 것처럼 말이다.그녀는 자신이 여이현이 불꽃놀이를 보러 갈 수 있었던 그 좋은 기회를 온지유 때문에 망쳤다고 생각했다.강하임은 강윤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윤희야, 아까 고마워. 너 또 나를 도와줬네.”강윤희는 말했다. “당연하지. 다음에 온지유가 너를 괴롭히면 나한테 말해. 내가 널 지켜줄게.”“윤희야, 너 정말 착하구나.” 강하임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이 여자 정말 속이기 쉽다고 생각하며 차갑게 웃었다. 그녀는 계속 말했다. “나에게는 너뿐이야.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하지만 온지유가 여이현 앞에서 무슨 말을 하면...”“그럴 리 없어. 이현 오빠는
소리를 듣고 온지유는 무의식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녀의 시선이 골목길을 향했고 몇 명의 금발 남자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이 남자들은 마르고 건방져 보였으며 여자아이의 옷자락을 보고 온지유는 어렴풋이 강윤희가 생각났다.저 여자아이 강윤희 아니야?강윤희는 그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얼굴에는 당황과 두려움이 가득했으며 이런 상황을 처음 겪는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매우 난감해 보였다.“너희들 다가오지 마! 나를 건드리기만 하면 우리 할아버지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강윤희는 어릴 때부터 호강하며 자라서 이런 곳에 온 적도 없었고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한 적도 없었다. 원래 강하임과 함께 식사하러 가려던 참에 강하임이 전화를 받느라 잠시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길을 잃고 이런 음침한 곳에 다다른 것이었다. 그녀는 강하임을 찾으려 했지만 돌아서자마자 몇 명의 남자들이 수상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이 그녀를 보자 마치 굶주린 늑대처럼 그녀를 쳐다보았고 그런 눈빛을 처음 본 강윤희는 금세 겁에 질렸다.“이 아가씨 괜찮네. 옷도 좋은 걸 입고 있으니 값나가는 물건이 많을 거야.” 이 남자들은 약물 중독자들로 팔에는 수많은 주사자국이 있었고 강윤희가 입고 있는 명품 옷을 보고 돈을 좀 뜯어내려고 했다.“아가씨,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우리 형제들에게 돈 좀 주면 좋지 않겠어?” 그들은 강윤희를 노려보며 말했다.강윤희는 몸을 더듬었지만 그녀는 현금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현금은 물론이고 휴대폰도 깜빡하고 가져오지 않았다. 그녀는 휴대폰이라도 있으면 강하임에게 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왜 이렇게 멍청한지 한탄하고 있었다.“돈 없어요.” 강윤희는 경계하며 말했다.“다가오지 마세요!”남자들이 강윤희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자 그녀는 뒤로 물러서며 방어 도구를 찾으려 했지만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돈이 없다고? 너의 차림새를 보니 부잣집 딸 같구만. 돈이 없으면 부모님께 돈을 가져오라고 할 거야.
강윤희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천 원?” 돈을 들고 있는 사람이 욕심을 부렸다. “이 아이가 천 원밖에 안 될 리가 없잖아.”온지유가 말했다. “이건 우리가 가진 현금 전부예요. 더 많이 원해도 없어요. 그녀를 풀어주세요. 자신들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좋을 겁니다.”“우릴 겁주려는 거야?” 그들은 비웃었다. “우리가 겁에 질린 줄 알아? 너희들 몇 명은 천 원보다 더 가치가 있지. 최소한 10만 원은 되어야지.”온지유가 말했다. “10만 원? 누가 현금 10만 원을 가지고 다녀요? 이건 현실적이지 않아요. 이렇게 하죠, 그녀를 풀어주면 내가 돈을 찾아다 줄게요.”“우리를 어린애로 보냐? 풀어주면 너희 다 도망갈 거 아냐!”그들은 또 말했다. “너희들이 꽤 괜찮아 보이니 업소에 팔아도 몇 만 원은 벌겠지. 몸값을 지불하려면 대가를 치러야지!”온지유는 그들이 탐욕스럽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말했다. “좋게 말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군요. 그녀를 풀어주고 이 천 원을 가져가세요. 그렇지 않으면 경찰을 부를 수밖에 없어요.”온지유는 휴대폰을 꺼내자 그들의 얼굴이 변했다. “경찰? 너희가 경찰 부를 시간이나 있겠냐?”그들은 온지유에게 달려와 그녀의 휴대폰을 뺏으려고 했다. 그 순간, 온지유는 다른 손으로 호신용 스프레이를 들어 그들의 눈에 뿌렸다.“아악--”“이윤정!” 온지유가 소리쳤다. 이윤정은 당황했지만 온지유가 성공한 것을 보고 그녀도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스프레이를 뿌렸다.“때려 죽여! 때려 죽여! 때려 죽여!”이윤정은 마구 발로 찼다. 그들은 속임수에 걸려 눈을 문지르며 고통스러워했다.온지유가 강윤희에게 말했다. “강윤희, 빨리 이리로 와요!”강윤희는 이미 겁에 질려 있었고 다리가 후들거렸고 온지유의 외침을 듣고 겨우 정신을 차렸다. “네!”강윤희는 온지유 쪽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 중 한 남자가 강윤희의 다리를 잡았고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말
이윤정과 강윤희는 겁에 질려 큰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다행히 차가 튼튼해서 유리가 뚫리지는 않았다.“빨리 막아! 도망가지 못하게 해!” 남자들이 온지유의 차 앞에 서서 온지유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포위했다.“우리 형제들을 다치게 하고도 도망가려고? 차로 우리를 깔아뭉개고 갈 거 아니면 못 가! 당장 내려!”남자들은 화가 나서 미쳐 있었고 그들은 차 안에 있는 그녀들을 향해 차를 부수기 시작했다. 강윤희는 얼굴이 창백해졌고 눈물을 흘리며 겁에 질려 있었다.이윤정은 그 남자들이 비록 말랐지만 힘이 세다는 것을 보고 걱정스러웠다. “온지유 언니, 어떡하죠? 이제 어떻게 해야 해요?”온지유는 시간을 확인하고 그녀들을 안심시켰다. “겁내지 마세요. 괜찮을 거예요.”“이렇게 좋은 차를 타고 있으면서 천 원으로 우리를 속이려 해? 정말 우리를 거지로 보는 거야? 우리를 무시하는 거냐?”남자들은 차를 발로 차고 부수며 고함쳤다. “내려!”차문이 여러 번 부딪혀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온지유도 내심 두려웠다. 그들이 차를 부숴버리면 정말 큰일이었다.“내가 나가는 게 낫겠어요. 문제를 일으킨 건 나니까 내가 책임져야 해요.” 강윤희는 눈물을 흘리며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지금은 당신 문제만이 아니예요. 얌전히 있어요. 아직 조금 더 버틸 수 있어요.” 온지유는 그녀를 안심시키려 했지만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쾅--남자들이 차문에 구멍을 냈다. 유리 조각이 그녀들에게 튀었다. 온지유는 반사적으로 머리를 감쌌다.“안 나오면 어떻게 되는지 보게 될 거야!” 그들은 차문이 뚫리자 더욱 거세게 유리를 부수려 했다. 그때 경찰차 소리가 들려왔다.이 순간 온지유는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드디어 시간이 된 것이다. 강윤희를 구하러 가기 전에 이미 경찰에 신고해 둔 것이다. 지금까지 시간을 버텨온 것뿐이었다.소리를 듣고 남자들은 예민하게 반응하며 당황했다. “경찰이다, 경찰이 왔어!”그들은 들고 있던 돌을 버리고 사방을 둘러
강윤희는 물병을 받아 한 모금 마셨지만 너무 겁에 질려 목에 사레가 들렸다.“천천히 마셔요.” 온지유가 말했다.강윤희는 병뚜껑을 조심스럽게 닫고 온지유를 바라보며 머뭇거렸다가 결국 말을 꺼냈다. “아까 고마웠어요. 당신이 아니었다면 난 아마 큰일 났을 거예요.”온지유는 농담조로 말했다. “평소엔 꽤 강한 척 하더니 방금은 꽤나 겁먹었더군요.”강윤희는 입술을 꼭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알아요. 두 번이나 당신을 곤란하게 했는데 당신이 날 비꼬는 것도 당연해요.”“됐어요. 차에 타요. 집에 늦게 돌아가면 할아버지가 걱정하실 거예요.” 온지유가 강윤희를 구한 건 강태규를 생각해서였다. 강태규에게는 손녀 하나뿐이니 구하지 않으면 그 분이 틀림없이 마음 아파할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까지 냉정할 수 없었다.강윤희는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 “강하임, 내 핸드폰이랑 가방이 하임에게 있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요!”온지유는 강윤희의 말을 듣고 의문이 들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물었다. “강하임과 아까 같이 있지 않았어요? 어떻게 혼자 남게 된 거죠?”강윤희는 말했다. “하임이가 일이 있어서 나는 강하임과 함께 있지 않았어요. 하지만 같이 식사하기로 약속했어요.”강하임이 근처에 있었는데 이렇게 큰 소동이 일어났는데도 모르고 있었을까? 그런데 지금까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가 아는 강하임은 그렇게 쉬운 사람이 아니었다. 강윤희를 바라보니 그녀는 전혀 의심하지 않는 듯했다. 온지유는 말했다. “강하임이랑 헤어지고 나서 바로 위험한 상황에 처했는데 그녀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게 말이 돼요?”강윤희는 온지유를 보며 말했다. “강하임을 의심하는 거예요?”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어요. 우리는 그렇게 좋은 사이인데 어떻게 손 놓고 있을 수 있겠어요? 그녀는 아마 몰랐을 거예요.”온지유는 입을 다물었다. 강윤희는 순진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어릴 때부터 귀하게 자라서 모두가 그녀를 사랑했고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을
연이어 질문을 쏟아내는 여이현에 온지유는 무엇부터 답해줘야 할지 곤란했다.“그저 가벼운 상처라 괜찮아요.”온지유는 이윤정을 보고도 아랑곳하지 않는 여이현의 모습에 한편으로 걱정이 들어 서둘러 그의 품에서 떨어졌다.“연락은 왜 안 받았어?”여이현은 여전히 신경 쓰이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무슨 일이 있었는데?”여이현의 시선이 강윤희 쪽으로 향하며 그녀의 존재를 인식했다.강윤희는 어색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입을 열었다.“이현 오빠...”그리고 말을 멈췄다.“형수님은 저를 구하려다... 저도 충분히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어요. 너무 저를 탓하지 않으셨으면 해요.”강윤희는 온지유가 자신을 구해줄 줄 꿈에도 몰랐다.그 위험한 상황에서, 온지유를 적대시한 적도 있는 자신을 설사 낯선 사람이 구해주더라도 온지유만은 그저 힐끗 쳐다보고 갈 뿐일 거로 생각했다.강윤희는 자신을 구해준 온지유를 볼 얼굴이 없었다.그러면서 자신이 예전에 한 행동들에도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온지유는 다른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리는 말처럼 상대하기 어려운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강윤희는 자책하며 여이현이 자신을 탓하지 않기를 바랐다. 향후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했다.“널 구했다고?”여이현은 두 사람 모두 꼴이 엉망진창인 채로 경찰차에서 내려온 것을 보고 다시 눈살을 찌푸렸다.“넌 어쩌다 놀러 나가서 위험한 일에 말려든 건데. 보디가드는 어디두고?”“전...”그런 끔찍한 곳에 갈 줄 강윤희가 알기나 했을까.“저는 친구랑 같이 간 거예요.”“어떤 친구?”“강하임이요.”여이현은 입술을 꽉 깨물고 다시 물었다. “그 친구는 어디 갔는데?”“저도 잘 모르겠어요.”여이현은 냉랭하게 말했다.“그 친구랑 같이 놀러 가서, 너는 위험에 처하고, 걔는 사라지고, 거기에 구해달라고 온지유를 불렀다고.”강윤희는 그 말에 또 눈가가 붉어졌다.온지유가 말을 가로챘다.“그럼 그런 상황에서 보고만 있겠어요?”“무슨 일이었는데?”여이현은
“위험한 걸 알면서 왜 나선 건데?”“전...”여이현은 그녀의 말을 끊고 계속 이어 말했다.“만약 제때 대처하지 못했으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는데?”온지유는 실패했을 경우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잘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기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타이밍을 잘 맞춰서 괜찮을 거로 생각했어요.”“온지유, 여태껏 자라오면서 크게 다친 적이 한 번도 없지?”여이현은 심각한 표정으로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온지유의 변명은 그의 가슴에 비수를 꽂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만약 그녀가 큰 사고를 당했다면, 그때는 이미 늦었을 것이다.온지유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잠시 멈칫했다.그리고 여이현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그녀는 어릴 적부터 꽤 평온한 삶을 살아왔다.전에 한 번 납치된 적이 있는 것을 제외하면.그래도 다치지는 않았고, 가장 큰 타격은 여이현이 대신 입었었다.온지유는 말했다.“크게 다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찰과상 정도는 있었지만요.”“만약 경찰이 마침 도착하지 않았거나, 제때 도망치지 못했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야? 그대로 맞고만 있을 거야? 다른 사람을 구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다치지 않도록 했어야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할 건데?”“그냥 사소한 문제였어요.”“다음에도 그냥 사소한 문제일까?”여이현의 목소리는 무거웠다.“강태규의 손녀라서 구해준 건 알지만, 나는 너에게 어떠한 위험도 없었으면 해. 다른 사람을 보호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보호하도록 해. 어디에 있든지 나에게 전화하고, 내가 바로 갈 테니까.”그는 온지유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것만 같았다.온지유를 걱정하는 말을 계속하고 있었다.여이현은 그저 자신이다 치는 걸 두려워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 말에 온지유는 조금 마음이 움직였다.“힘든 상황에 부딛혔을 때, 한 번이라도 나를 생각해 본 적 있어?”여이현이 다시 물었다.그 말에 온지유는 말문이 막혔다.온지유는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
그저 분위기를 몰 뿐 아무도 진담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하간에 데리고 온 파트너가 있다고 해서 그 상대가 정말로 결혼할 상대인 것은 아니었고 어쩌면 놀다가 질릴 놀이 상대일 수도 있었다. 남자는 다 그러했으니까.양시은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들이 하는 농담에 토가 쏠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이때 나도현이 차가운 목소리로 그들의 웃음소리를 멈추게 했다.“최근에 확실히 있죠.”그 순간 그들은 목에 무언가라도 턱 막힌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큼, 큼큼... 제가 눈치가 없었네요. 이분이 대표님께 그런 사람일 줄은 몰랐네요.”웃음거리로 만들던 사람이 헛기침해대며 말했다. 양시은은 당연히 눈앞에 있는 사람들을 가소롭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제때 나서준 나도현 덕에 가슴 한구석이 따스해진 기분이었다.비록 술자리라곤 했지만 사실상 사업을 논의하는 자리였고 나도현의 위치와 성격 탓에 아무도 그에게 술을 잔뜩 따라줄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몇 잔 마시게 되었다.술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때 양시은은 나도현에게서 은은하게 나는 술 냄새를 맡게 되었다. 술에 박하잎이라도 들어간 것인지 어딘가 시원하게 느껴지기도 했다.“나도현, 내 목소리 들려?”양시은은 그가 취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손을 들어 그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그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정말로 취한 건가...”“안 취했어.”이때 갑자기 그가 입을 열었고 양시은은 깜짝 놀라게 되었다. 그다음 순간 그녀는 시원한 그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양시은은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얼른 차창을 닫으려고 그를 밀어냈다.“이거 놔. 창문 안 올렸단 말이야.”“싫어.”나도현의 담담한 말에 그녀는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고 하고 싶지 않았다.그의 손이 그녀의 등을 스쳐 지나가더니 버튼을 눌렀고 창문이 스르륵 닫혔다. 양시은은 그제야 안도했고 입술 위로 차갑고 부드러운 무언가가 닿았다. 박하 잎을 입에 머금은 것처럼 시원했다.나도현은 그녀의 머리를 잡고는 다정한 키스를 쏟아부었고 차 안의 분위기
“잠시만요. 저도 할 말이 있어요. 해남 구역의 경쟁입찰은 이미 제가 손에 넣었거든요.”이때 나태욱이 갑자기 손을 들며 끼어들었고 사람들은 놀란 표정을 짓게 되었다. 양시은도 놀란 눈빛을 하며 그를 보았다.해남 구역의 경쟁입찰을 나태욱이 이미 손에 넣었다니...다들 수군거리고 있던 때에 나태욱은 턱을 괴며 건방진 미소를 지었다.“다들 모르셨어요? 아, 제가 말해준다는 걸 깜빡하고 있었네요. 그래도 큰일이라 다들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말을 하면서 그는 나도현을 보았다. 그 순간 회의실 안 분위기는 차갑게 얼어붙었고 양시은은 걱정 어린 눈길로 나도현을 보았다.“그럼 다른 프로젝트를 논의하죠. 회사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이것 하나뿐인 건 아니니까요.”나도현은 그녀의 생각보다 더 차분하고 이성적이었고 심지어 흐름이 끊기지 않게 했다. 하지만 나태욱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회의는 계속 진행되었지만 이번에 민망해진 사람은 그들이 아니었다. 여하간에 방금 자랑을 했지만 무시를 당하지 않았던가. 민망한 사람은 나태욱이었다.회의가 끝나고 양시은은 서류 정리 때문에 늦게 나오게 되었다. 나도현은 아직 멀리 가지 않았고 일부러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그녀를 기다려주고 있었다.양시은이 그를 따라잡으려 할 때 나태욱이 갑자기 그녀를 불러세웠다.“양 비서, 나한테 아직 일 잘하는 개인 비서가 없는데 이번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만 형한테 말해서 나한테 오는 건 어때요?”또 그녀를 자신의 편으로 들이려는 속셈이었다. 나태욱은 자신이 말을 꺼내기만 하면 안 넘어갈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 듯했지만 그녀는 정말로 넘어가지 않는 사람이었다.“괜찮아요. 전 이미 지난번에 분명하게 말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전 대표님 곁이 아니라면 다른 곳에 갈 생각은 없네요.”그러자 나태욱이 픽 웃었다.“양 비서, 정말로 그렇게 붙어 있으면 형이 양 비서랑 결혼해줄 줄 알았어요? 그만 포기해요. 우리 고집 센 아버지는 절대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해 줄 리가 없으니까.”양시은은 걸음을
잘됐다며 칭찬을 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부정적인 목소리도 들려왔다. 하지만 손실을 최소화한 것이고 더는 변호사도 아니었던지라 변호사가 회사를 운영한다는 불만 가득한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오성 구역은 재개발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유진혁이 했던 짓에 관해서도 뭔가를 알아내게 되었다.“유진혁이 요즘 자주 도박장에 나타난다고 하더라고요.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현금을 들고 자주 나타난다고 했으니까 제 생각엔 아마 그 배후가 계좌이체 하는 수단이 아닌 현금으로 거래하는 수단으로 유진혁과 연락하고 있는 것 같네요.”양시은의 추측에 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고개를 돌리자 나도현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비서는 손가락을 들어 자신을 짚으며 멍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또 제가 가요?”나도현의 확고한 눈빛에 비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개를 끄덕였고 신세 한탄했다. 이때 양시은이 끼어들었다.“저도 갈 수 있어요. 소식은 제가 알아낸 거니까 제가 가서 알아보는 게 더 나을 것 같네요.”나도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양시은이 나도현을 설득하려고 머리를 굴리던 때 의외의 대답이 들려왔다. 나도현이 그녀의 말에 동의한 것이다.“너무 깊게 파지는 마. 알아볼 수 있는 것만 알아보고 안 되면 그냥 사람만 데리고 오면 돼.”아주 강압적인 어투에 양시은은 고개를 들어 그를 볼 수밖에 없었다. 변호사를 그만둔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위압감이 넘치는 한 회사의 대표님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이내 그녀는 비서와 함께 알아보러 떠났고 뜻밖에도 너무도 순조로웠다. 돈거래가 이루어지는 곳에서 그들은 유진혁을 잡게 되었다.거래가 이루어지는 곳은 어느 한 수영센터에 있는 사물함이었다. 그들이 찾아갔을 때 마침 유진혁이 수상한 모습으로 돈을 세고 있었고 굳이 그들이 사물함을 열어볼 것도 없이 돈과 유진혁을 손에 넣게 된 것이다. 그들에게 붙잡힌 유진혁은 빠르게 입을 열었다.“난 두 사람이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요. 애
양시은은 당연히 고분고분 자리를 비워줄 사람이 아니었다.“안 가. 그러니까 쫓아내려고 하지 마.”창가에 서 있던 나도현이 고개를 돌렸고 그의 얼굴엔 그림자가 져서 어떤 표정을 짓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유난히도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하민이 곧 하원 할 시간이잖아. 네가 안 보인다면 하민이가 불안해할 거야.”그의 말에 양시은은 말문이 막혀버렸고 결국 먼저 자리를 뜨는 수밖에 없었다. 떠나기 전까지 걱정되었던 그녀는 비서에게 나도현을 잘 지켜봐달라는 말을 남겼고 비서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회사를 나섰다.하민이를 집으로 데리고 온 뒤 하민이는 집안을 한번 둘러보다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왔다.“엄마, 아저씨는 오늘 오지 않으신 거예요?”“아저씨는 바빠서 못 올 것 같대. 아마 밤늦게까지 일하다가 오실 것 같은데 우리 조금 더 기다려볼까?”나도현이 자주 집으로 찾아와 양시은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하민이 하원도 도와주면서 같이 식사도 했기에 하민이는 이미 그의 존재가 익숙해 져버렸다. 하민이는 떼를 쓰지도 않고 양시은의 말을 듣고는 실망한 기색이 가득했지만 얌전히 기다리려고 했다.다행히 나도현은 밤에 돌아왔다. 어쩌면 하민이가 실망하는 것이 싫었는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도현은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들어왔다.“늦었네. 하민아, 아저씨가 뭘 사 왔는지 알아?”하민이는 기쁜 얼굴로 그가 들고 온 것을 받았고 집안의 분위기도 화목하게 바뀌었다.양시은은 그런 나도현을 위아래 살펴보았고 정말로 괜찮아졌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했다. 저녁을 먹은 후 두 사람은 보기 드물게 서로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나도현도 자기 생각을 말해주었다.“생각해 봤는데 변호사가 될 수 없다면 나진 그룹에 계속 남아 있으려고. 마침 너도 거기서 일하잖아.”양시은은 그의 말에 가슴이 벅차올랐고 믿어지지 않는 듯 말했다.“나 때문에 그러는 거야?”그녀는 나도현이 변호사를 포기하는 것에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이유가 자신일
나용민이 정말로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잘살기를 바랐다면 두 사람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붙여놓으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건 두 사람을 괴롭히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나태욱은 아주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거만하게 앉아있는 그를 내려다보더니 입을 열었다.“난 예전부터 형이 고귀한 척하는 게 싫었어. 어차피 형도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누릴 수 있는 거 누릴 뿐이잖아.”“할 말 끝났으면 나가.”나도현은 더는 나태욱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나태욱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형은 예전부터 가진 것에 만족하지도 않고 아끼지도 않더라.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내가 왔으니 나진 그룹은 더는 형 혼자만의 것이 아니니까 두고 봐.”나도현은 차가운 시선으로 그가 나가는 것을 보았다. 사무실 문이 열리자 양시은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냉담한 표정을 보아 그를 상대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것 같았지만 나태욱은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양 비서, 우리 또 만났네요. 지난번에 내가 말했죠?”“나태욱 대표님.”너무도 대놓고 자신과 거리를 두는 모습에 나태욱은 눈썹을 꿈틀거렸고 뒤를 슬쩍 보더니 이내 씩 웃었다.“우리 형 따라다니느라 많이 힘들죠? 매일 저렇게 차갑고 무뚝뚝한 표정만 짓고 있으니까 보기만 해도 짜증이 나죠? 차라리 내 비서 하는 건 어때요? 마침 내 비서 자리가 비어있거든요.”나도현은 마치 얼음이 뚝뚝 떨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나태욱, 넌 내가 안 보이나 보다?”나태욱이 입을 열려던 순간 양시은의 공손한 거절이 들려왔다.“죄송해요. 딱히 관심은 없네요.”그의 체면이라곤 전혀 챙겨주지 않는 모습에 나태욱은 스쳐 지나가는 그녀를 보며 표정을 굳혔다.양시은은 서류를 나도현의 앞에 내려놓았다.“대표님, 이건 결재가 필요한 서류에요.”말을 마친 그녀는 바로 자리를 뜨지 않았고 오히려 나도현을 빤히 보았다. 나도현은 당연히 그 시선을 모를 리가 없었고 사인을 하면서 말했다.“할 말이 있으면 해
양시은은 나도현의 낯빛이 한순간에 차가워지는 것을 직접 목격하게 되었고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전 개인 비서예요.”그녀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상대에게 설명했다. 그 말인즉 억측하지 말라는 의미였고 나태욱은 의외라는 눈빛을 하며 보았다.“우리 형과 사귀는 사이가 아니었어요? 정말로 그런 거라면 미안해요. 난 두 사람이 이미...”“네 알 바가 아니잖아.”나도현이 차갑게 말을 잘랐다.나태욱은 멈칫하더니 시선을 돌려 나도현을 보았다. 두 사람 사이에 더는 대화가 오가지 않았지만 무거운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그는 웃음기 머금은 눈을 하면서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었다.“난 형처럼 고집이 있는 사람이 아니야. 아버지는 무슨 수를 써서 라든 회사를 형에게 넘겨주려고 하지만 형은 계속 변호사로 살고 싶어 하잖아. 이런 부분에서는 난 형에게 한참 미치지 못하지.”말은 이렇게 하고 있었지만 도발하는 의미가 가득했고 나도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아버렸다.“내가 뭘 하든 네 알 바 아니야.”말을 마친 나도현은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고 양시은도 얼른 따라갔다. 그러자 뒤에서 나태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양시은 씨, 나중에 또 봐요.”차에 올라타고도 나도현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고 누가 봐도 잔뜩 화난 모습이었다. 나태욱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눈치챈 양시은은 그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했다.“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시은아, 앞으로 나태욱만 보면 피해 다녀.”그는 고개를 돌리더니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하고 있었고 양시은은 멍해지게 되었다.“들었어?”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나도현의 안색이 조금 풀어졌다. 양시은은 방금 본 남자의 신분을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나태욱이 바로 나도현이 말한 나씨 가문의 혼외자식인 것이다...양시은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나태욱은 나진 그룹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앞으로 다시 만날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다음 날 바로 나태욱이 나진 그룹으로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게 될 줄은
그랬기에 나용민이 쉽게 나도현을 포기할 리가 없었다. 나도현이 한 집안사람도 아닌 양시은을 데리고 온 것부터 불만이었기에 화를 내는 것이다.“나이가 들면서 머리도 녹이 슬어가나 봐요? 지난번에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시은이는 더는 남이 아니라고요.”비꼬는 나도현의 어투에 나용민은 화가 치밀었고 당장이라도 침대에서 뛰어내릴 듯한 모습으로 말했다.“지금 뭐라고 했냐?”나도현은 코웃음을 치면서 머리뿐만이 아니라 귀도 안 좋다고 생각했다. 너무도 모욕적인 표정에 나용민의 얼굴은 빨갛게 되어버렸고 씩씩대며 거친 숨을 내몰아 쉬고 있었다.“내가 왜 너처럼 말도 안 듣는 아들을 낳아서는...”나도현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고 양시은은 나용민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눈치채고 얼른 벨을 눌러 의사를 불렀다. 급하게 달려온 간호사는 어떻게든 나용민의 분노를 가라앉히려고 했고 그들에게 말했다.“환자는 안정이 필요한 상태에요. 그렇게 자극하시면 안 돼요.”나도현은 눈을 내리깐 채 무슨 생각 하고 있는지 몰랐다. 양시은은 간호사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네, 주의할게요. 감사해요.”간호사가 나간 뒤 나용민은 침대에 누워 두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보더니 차갑게 픽 웃었다.“하마터면 화병으로 죽을 뻔했구나. 이 불효자식아.”“변호사 사무소에서 연락 왔었어요. “나도현이 갑자기 입을 열자 나용민은 어딘가 켕기는 구석이 있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나용민이 한 짓이라는 것을 눈치챈 나도현은 더욱 자신이 가소롭게 느껴졌다. 정말로 나용민이 사주한 일일 거라곤 예상하지 못한 양시은은 믿어지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대체 왜 그러신 거예요? 도현은 그동안 매일 회사에만 다니면서 단 하루도 편히 쉬어본 적 없었어요. 매일 쌓인 업무를 처리하느라 쉬지도 못하고, 지난번에는 열이 39도까지 올라갔는데도 이튿날 바로 출근했다고요. 대체 도현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러시는 건데요.”나용민의 눈빛이 어두워졌고 나도현이 아팠다는 얘기를 듣자 눈에 띄게 흔들
양시은은 돈을 내고 택시에서 내렸다.“기사님, 저 여기서 내릴게요. 감사합니다.”택시에서 내린 그녀는 얼른 검은색 차로 달려갔다.나도현은 창밖에서 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고 그곳에는 양시은이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창문을 열자 양시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나도현, 문 열어줘.”나도현의 눈빛이 흔들리고 손을 뻗더니 문이 열렸다. 양시은은 얼른 차에 올라탔다.“왜 말 한마디도 없이 혼자 여기 온 건데? 하민이 하원 시간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잖아.”“그냥 오고 싶었어.”“비서님한테 이미 들었어.”나도현은 입술을 달싹이더니 아주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어. 누가 사주한 것인지.”그가 변호사 되기를 반대하고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용민 뿐이었고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몰랐다.나용민은 나도현에게 아주 큰 기대를 하고 있었기에 나도현이 그저 평범한 변호사가 되는 것을 반대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 아들이 자신처럼 나진 그룹을 이끄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병문안 갈까 고려하고 있었으니 가기도 전에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시네.”“미안해. 다 내 탓이야...”양시은은 그런 그가 안쓰러우면서도 죄책감이 들었다.“만약 내가 설득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분을 느낄 일은 없었을 거야.”“네 잘못은 아니야. 내 잘못이지.”나도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애초에 조금이나마 기대한 그의 잘못이었다.양시은은 나도현의 냉담한 어투로 기쁨을 느낄 리가 없었고 그가 냉담하면 할수록 더 안쓰러웠다. 그동안 그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만약 그녀가 나도현이었어도 자신의 아버지가 꿈을 방해한다면 숨이 턱턱 막힐 것이었다.“괜찮아. 내가 있잖아.”양시은은 그를 조심스럽게 안아주었다. 그날 밤처럼 자신의 따듯한 체온으로 차가워진 그의 마음을 녹여주려 했다.나도현은 그런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기사님, 병원으로 가주세요.”나도현의 입에선 뜻밖의 말이 나와 양시은은 멍한 눈빛으로 그
대체 누가 나도현의 심기를 건드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싸늘해진 분위기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고 양시은도 협조적이었다.점차 그들의 분위기도 바뀌면서 룸 안은 열기로 가득해졌다. 이때 누군가 무심코 물었다.“양 비서님, 나중에 결혼 계획 있으세요?”나도현은 차가운 눈길로 입을 연 사람을 보았고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비서는 더 긴장하게 되었다.다행히 양시은은 대충 둘러 말했다.“마음이 맞는 사람이 있으면 아마 할 것 같네요. 하지만 아직은 결혼 계획은 없네요.”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그들은 배불리 먹고 즐긴 후 돌아갔다.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셨던지라 해롱해롱한 상태였고 비서는 그들을 집으로 전부 돌려보랬다. 물론 양시은도 술을 마셨지만 두 잔만 마셨던지라 그저 얼굴만 불그스레한 상태였다.“양 비서님은 혼자 돌아갈 수 있죠? 혼자 갈 수 있으면 전 이만 먼저 가볼게요.”비서는 술에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직원을 등에 업고 있었고 그 직원은 비서의 뺨을 찰싹찰싹 때렸다.그런 그의 모습을 보니 양시은은 괜스레 측은한 마음이 들어 그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었다.“네. 전 혼자 갈 수 있어요.”“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비서는 얼른 자리를 떠나버렸다. 양시은이 위험할지 안 할지는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나도현이 곁에 있는 한 양시은이 절대 위험할 리가 없었으니까.직원들이 떠나고 나니 두 사람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나도현은 자연스럽게 양시은의 가방을 들어주며 말했다.“데려다줄게. 가자.”양시은은 자신의 가방을 돌려받고 싶었지만 그의 모습을 보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차피 돌려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으니까.뒷좌석에 앉은 양시은은 뒤늦은 취기에 머리가 어질거렸다. 나도현은 한참 지나도 들리지 않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양시은은 손을 들어 턱을 괸 채 눈을 감고 있었고 잠든 것 같았다.“대표님, 차가 좀 막힐 것 같습니다.”운전기사가 눈치 없이 말하자 나도현은 바로 눈치를 주었다.“목소리를 낮추세요. 길 막히면 다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