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자들을 감옥에 넣을 수는 없어도 교육 정도는 가능하다고 생각했기에 전화를 건 것이다.“넌 진짜 정이라곤 하나도 없구나? 이 상황에 너처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야, 독한 년!”“내 눈엔 너희가 더 너무하고 더 독해! 나 아니었으면 너희들 지유 집단 폭행하고도 남았을 거야.”여자들이 이런 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생각에 치가 떨린 나민우가 그들을 질책했지만 단발머리 여자는 제 잘못은 모르고 계속 우겨댔다.“내가 날 보호한다는데 그게 뭐가 잘못된 거야?”그에 어이가 없어진 나민우가 뭐라 더 말하려고 하자 온지유가 그의 팔을 잡아 오며 말렸다.“그만해도 돼, 저런 애들이랑 말 섞어봤자 좋을 거 하나 없어.”그 순간 나민우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물론 온지유는 별 생각 없이 한 행동이겠지만 온지유만을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나민우는 제 팔을 잡아 오는 손길에 아무렇지 않을 수 없었다.너무 좋아하지만 좋아한다는 말조차 못 했던 여자가 제 팔을 잡아 오니 나민우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에 잠겼다.그리고 하필 이 모습을 다시 돌아오던 여이현이 보게 된 것이다.치켜뜬 눈에서 한기를 내뿜고 있는 여이현의 그 모습을 강하임도 눈여겨보고 있었다.이건 틀림없는 남자의 소유욕이었고 분노였다.“온 비서님, 왜 갑자기 이렇게 많은 사람들 틈에 섞여 있어요?”강하임은 차가운 표정으로 일부러 온지유를 크게 불렀다.그에 뒤를 돌아본 온지유도 여이현의 누구 하나 잡아먹을 듯한 그 특유의 냉한 표정을 보아낼 수 있었다.“이 사람들이 저한테 시비를 좀 걸어서요, 이미 경찰 불렀어요.”말을 하면서도 온지유는 강하임을 뚫어지게 쳐다봤다.하지만 이내 제 생각이 부질없음을 느꼈다.이 사람들은 다 제 동창이었고 만월 파티를 앞당긴 것도 모금을 위한 것이기에 강하임이 아무리 저를 싫어한다 해도 이런 판까지 짤 만큼 한가해 보이지는 않았다.그에 강하임도 웃으며 대꾸했다.“그럼 다행이네요. 대표님, 가서 물건부터 챙기시죠, 곧 있으면 불꽃 축제 시작하
온지유가 입을 열었다.“됐어요. 그럴 필요 없어요.”가끔 그녀는 여이현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저 동창들과 모임을 가졌을 뿐인데 여이현은 어딘가 단단히 꼬여 있었다.만약 그녀의 설명을 제대로 들어주기라도 했다면 이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먼저 가지 않았을 것이다.“민우야, 방금은 고마웠어.”뭐가 어찌 되었든 나민우가 나타나 준 덕에 그녀의 문제는 해결되었다.나민우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뭘, 난 아무것도 한 것도 없는데.”나민우가 뭐라 더 말하려던 순간 온지유가 먼저 입을 열었다.“난 그럼 돌아가 볼게. 나중에 다시 연락하자. 그땐 내가 한턱 살게.”“내일 오후에 시간이 있어.”그저 예의상으로 한 말이었지만 나민우는 진지하게 받아들였다.살짝 어안이 벙벙해졌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그럼 내일 내가 주소 문자로 찍어 보내줄게.”“응, 알았어.”나민우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떠나가는 모습을 보았다....여이현은 비록 먼저 걸음을 옮기긴 했지만, 뒤에는 강하임이 따라오고 있었다.그러나 그는 강하임과 함께 불꽃놀이를 구경하러 가지 않았다.걸음을 멈추던 그는 강하임과 거리를 두었다.“강하임 씨, 난 불꽃놀이에 관심 없어요. 혹시 혼자 구경하고 싶지 않은 거라면 내 비서한테 같이 구경하라고 말해두죠.”강하임은 순간 당황했다.“대표님, 방금 분명 저랑 함께 보러 가자고 약속하셨잖아요...”“미안해요.”차가운 얼굴로 이 말을 내뱉은 뒤 얼어붙은 강하임을 신경 쓰지도 않은 채 방금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갔다.강하임은 점점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얼굴이 새빨갛게 되어 버렸다.그녀는 여이현과 온지유 사이에 뭔가가 있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여이현이 먼저 자신과 불꽃놀이를 구경하러 가자고 했기에 드디어 그와 둘만 있을 기회가 생긴 것으로 생각하며 기대했다.그런데 아니었다.정말이지 괜한 기대를 한 것이다.여이현은 배진호에게 연락했다.연결된 후 그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
운전기사라는 직업을 선택할 때부터 배진호는 그에게 온지유와 여이현의 관계에 대해서 말해주었다.여이현은 차에 타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담배만 피워댔다.그 말인즉슨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었다.게다가 방금 여이현이 온지유의 행방을 쫓으라고 했고 당장이라도 달려나갈 기세를 전부 보지 않았는가.여이현은 눈을 가늘게 접었다.새로 채용한 운전기사를 힐끗 보았다.운전기사는 키도 크고 말랐을 뿐만 아니라 피부가 조금 까무잡잡했다.그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배 비서가 주의할 것을 말해주지 않았나 보죠?”운전기사는 부정했다.“배 비서님께서 설명하셨습니다. 대표님, 저도 이런 말을 하는 게 주제넘다는 것을 잘 알지만... 저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그만 말씀드린 겁니다. 저와 제 아내가 그랬거든요. 제가 제 아내를 오해하고 절대 먼저 사과하거나 상황을 물어본 적이 없었지요. 제 아내도 저한테 설명해 주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나중에 제가 돈을 벌기 위해 다른 도시로 갔을 때 제 아내에게 다른 남자의 아이가 생겼더군요. 결국 저는 영원히 제 아내를 잃게 되었어요.”여이현은 입술을 짓이겼다. 몇 초의 침묵 끝에 그는 낮게 갈린 목소리로 말했다.“시동 걸어요.”나민우와 거리를 유지하는 건 이성 친구 사이에서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게다가 얼마 전 나민우는 온지유를 도와주었을 뿐 아니라 지금은 그녀를 태워 데려다주려 했으니 온지유는 나민우가 고마우면서 미안했다.나민우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바로 그녀의 마음을 눈치채고 웃으며 말했다.“온지유, 우린 동창이고 친구잖아. 내가 아니라 다른 애들이었어도 네가 이 야밤에 혼자 집에 돌아가려고 한다면 태워줬을 거야.”온지유는 미소만 지었다.방금 나민우가 그녀의 앞에 차를 세웠을 때 사실은 타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는 늦은 밤이라 위험하다고 했다.게다가 콜택시 앱에서도 근처에 소환 가능한 차량이 없다는 문구가 떠 있었다.나민우는 말을 기분 좋게 잘하
온지유는 평온한 얼굴로 담담하게 말했다.“전 사실만 말씀드렸을 뿐인걸요.”“너...!”여진숙은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이때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여이현이 돌아온 것이다.“현아, 마침 잘 왔구나. 네 아내가 나한테 어떻게 대들었는지 아니? 정말이지 교양이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구나!”그녀는 얼른 걸음을 옮겨 여이현에게 다가가 고자질을 했다.여이현은 성큼성큼 집 안으로 들어왔다. 깊은 두 눈으로 온지유를 보다가 여진숙에게 시선을 돌렸다.“가만히 계셨으면 지유가 대들었겠어요? 지유는 제 곁에 있을 때 한 번도 그런 적 없다고요. 제 앞에서는 늘 온화한 사람이에요.”다리가 긴 탓에 몇 걸음 만에 그녀의 앞으로 왔다.그녀보다 큰 체구에 온지유는 압박감을 느꼈다. 게다가 그의 몸에선 짙은 담배 냄새가 났다.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여진숙은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며 하마터면 분노를 참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굴릴 뻔했다.“너, 너 정말 이젠 날 신경 쓰지 않겠다는 거니?!”“방에 올라가서 기다려.”여이현은 온지유에게 말했다.정신을 차린 온지유의 그의 말대로 방으로 올라갔다.여진숙은 직설적이었다.“여이현, 너 대체 언제까지 날 피할 거니?”그러자 그가 픽 웃었다.“대체 누구한테서 그런 말을 배우신 거죠?”그가 누구를 만나든 말든 그의 자유였다.누구도 그의 선택에 좌지우지할 수 없다. 그가 두려움을 느낄만한 사람도 없었기에 더욱 누군가를 피할 필요가 없었다.“네가 날 피하지 않은 거면, 그럼 그동안 왜 난 널 만날 수 없었던 거지?”여진숙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여이현은 처음부터 그녀를 상대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다음부터 사람 거슬리게 하는 일은 하지 마세요. 그렇지 않으면 짐 싸서 내쫓을 테니까요.”말을 마친 그는 바로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여이현!”여진숙은 화가 치밀어 그의 이름을 불렀다.“난 네 엄마라고! 날 엄마라고 생각하긴 하니?!”그는 걸음을 멈추었다. 고개를 돌려 여
여이현은 그녀에게 이런 요구를 하면서 왜 본인이 한 짓에 대해서는 이런 요구를 하지 않은 걸까?여이현은 미간을 찌푸렸다.“내가 뭐?”온지유는 그를 빤히 보았다.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어쩌면 말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주먹을 꽉 움켜쥔 그녀는 그의 시선을 피해버렸다.“아무것도 아녜요.”여이현은 이상함을 느꼈다. 그녀는 입술을 달싹이며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가 물어보려고 할 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사장님, 사모님!”도우미가 두 사람을 불렀다.여이현은 문을 열어줄 수밖에 없었다.도우미는 초대장을 여이현에게 건넸다.“사장님, 이건 강태규 회장님댁에서 온 초대장입니다.”카드 위쪽엔 ‘축하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커다랗게 있었다.“네, 내려가 보세요.”여이현은 초대장을 열어보았다. 강태규의 칠순 잔치 초대장이었다.그는 강태규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였지만 강태규의 생신 잔치에 별로 참석하지 않았었다.강태규도 굳이 그가 말하지 않아도 그의 마음을 알고 있었고 무조건 참석하라고 강요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번은 강태규에게 아주 중요한 날이기도 했다.그러니 이번에는 꼭 참석해야 한다.게다가 강태규는 예전에 군인 생활을 오래 했었기에 검소하고 낭비를 싫어하는 사람이었다.이번에도 집안에서 잔치할 것이 분명했으니 그들도 올 것이다.그의 미간이 구겨졌다. 조금 고민되었으나 강태규의 나이도 나이인지라 그가 많이 이해해줘야 했다.여이현은 고개를 돌렸다. 온지유는 이미 침대에 누워있었다.“온지유, 내일 저녁 나랑 같이 생신 잔치에 가줘.”“누구 생신 잔치인데요?”온지유는 딱히 관심이 없는 목소리였다.“강태규 어르신.”온지유는 일어나 앉았다.“어르신의 생신 잔치라고요?”“그래, 칠순 잔치.”온지유는 순간 나민우와 한 약속이 떠올랐다.“내일은 안 돼요. 다른 일정이 있어요. 그리고 어차피 전에도 혼자 참석했었잖아요.”두 사람은 비밀리 혼인신고를 했기에 그
온지유는 소파로 다가가 선물 상자를 열어 안에 있는 치마를 꺼냈다.짙은 초록색의 드레스였다. 치맛자락이 크고 튜브톱 디자인으로 옷감도 좋아 만지면 아주 보드라웠다. 최근 패션 잡지에서 본 적 있었다. 유명 패션디자이너의 신상으로 소개된 드레스였다.디자이너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그녀가 디자인한 대부분 가격이 20억 정도 했다.온지유는 순간 노승아의 드레스가 떠올랐다. 그것도 여이현이 20억 주고 구매한 것이었다.그녀는 여이현을 보며 물었다.“너무 비싼 거 아니에요?”돈은 여이현에게 그저 숫자에 불과했지만, 그는 온지유의 기쁨을 사고 싶었다.“너한테 어울릴 것 같아서 샀어.”“그럼 노승아 씨한테 사주신 드레스도 노승아 씨한테 어울릴 것 같아서 산 건가 봐요?”온지유의 입이 제멋대로 먼저 움직였다.말을 마친 그녀는 바로 후회했다.갑자기 왜 이 일이 떠올랐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를 꽤나 난감하게 만들었다.입술을 짓이기며 여이현의 비웃음을 들을 준비를 했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의아한 온지유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그런데 그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웃고 있는 것이다.웃는 둥 마는 둥하는 눈빛을 본 그녀는 순간 겁이 덜컥 났다.“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그 일이 꽤나 신경 쓰였나 봐.”여이현이 물었다.온지유는 대답하지 않았다.사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그녀가 기억하는 것은 이것뿐이 아니었다. 일찌감치 그 기억들을 머릿속에서 지워야 했지만 지워지지 않았다.여이현은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차가운 두 손을 잡으며 담담하게 말했다.“그때 그건 내가 돈을 빌려줘서 산 거야. 나중에 돈을 벌게 된 후 다시 나한테 갚았어.”온지유는 놀라웠다.“돈을 빌려줬다고요?”“그래.”여이현은 계속 말을 이었다.“넌 20억이 정말로 뉘 집 개 이름인 줄 알아? 뭐 물론 너한테 쓰는 돈은 아깝지 않지.”온지유는 그때 그 일을 지금까지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게다가 노승아는 그 일로 일부러 그녀에게 도발도 했었
하지만 온지유는 여전히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여이현이 아주 가볍게 한 이 한마디는 다소 차가우면서도 허탈하기도 했다.‘내가 너무 많이 생각한 거겠지.’온지유는 이 습관을 고칠 수 없었다. 그녀는 항상 여이현의 말에서 그의 감정을 분석하려고 했다.그녀는 그의 희로애락이 신경 쓰였다.사실 그녀는 그 정도로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강태규 집에 들어서자 이미 많은 사람이 도착해 있었다.대략 열몇 분 되어 보였다.정장을 입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군복을 입고 있는 사람도 있었는데 몹시 위풍당당해 보였다.강태규는 새 옷이 아닌 세월의 흔적이 있는 한복을 입고 있었다.여이현이 말했던 것처럼 강태규는 절약 정신이 있는 사람이었다.강태규는 사람들이랑 얘기를 잘 나누고 있다고 여이현과 온지유가 온 것을 보고 얼굴에 미소를 활짝 띠었다.“이야, 이현이 왔구나. 지유도 왔네.”강태규는 지팡이를 짚으며 연신 일어서며 그들을 반겼다.온지유는 강태규가 몸을 많이 움직이지 않게 하려고 무의식적으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어르신!”“지유야.”강태규는 온지유를 보더니 말했다.“오늘 이쁘게 입고 왔네. 이현이 이 자식 드디어 네게 이쁜 옷을 사줬나 보네!”강태규의 말에는 조롱이 섞여 있었다.온지유는 웃으며 대답했다.“지난번에 뵀을 때 두 번 다 제가 일하고 있어서 좀 심플하게 입었던 거예요. 사실 이현 씨가 많이 사줘요.”온지유는 그래도 여이현을 감싸며 예쁜 말을 해댔다.이건 이미 그녀에게 습관처럼 되었다.강태규가 말했다.“그러면 됐어. 아내를 아낄 줄 아는 남자가 잘 되는 거야.”여이현을 바라보는 강태규의 눈빛도 호호 웃음기가 담겨 있었다.“어르신.”여이현은 매우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몸은 좀 나으셨어요?”강태규가 대답했다.“이미 나았어. 걱정하지 마. 난 네 할아버지보다 몇 년 더 살았으니 이젠 충분해!”여이현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런 말씀을 하시면 안 돼요.”여이현의 안색이 변한 것을 보자 강태규는 또 경쾌하게 말
‘왜 전에 이현 씨가 말한 걸 들은 적 없었던 거지?’하지만 두 사람 사이가 원래 계약서로 묶여있어서 상대방을 너무 간섭하지 않는 것은 제일 기본이었다.그리고 그도 남김없이 전부를 드러낼 수는 없었다.온지유는 얼른 자기의 시선을 거두었다.갑자기 누군가가 수습하는 소리가 들렸다.“어르신, 저희도 어르신의 뜻을 다 이해해요. 저희도 군말할 생각이 없어요. 그저 사실이 그런지라 전 부대장님도 어르신을 위해 불평하는 거예요. 어르신도 어쨌든 윗사람인데 안 지 얼마 안 됐죠? 제가 보기엔 이현이 쟤, 어르신도 안중에 없는 거 같아요.”온지유는 이 사람들이 여이현을 잡고 안 놔주는 것을 들으면서 다시 여이현을 올려다보았지만, 그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예전의 여이현 성격대로 라면 그는 이 사람들이 이렇게 대놓고 앞에서 비난하게 놔두지 않았을 것이었다.아마도 강태규의 체면을 봐서 가만히 있는 것 같았다. 필경 이 사람들은 다 강태규랑 친한 사람들이었다.“이현아, 우리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걸 탓하지 마. 아무래도 같이 생사를 나눈 사이인데 아무리 겸손하게 처사한다고 해도 결혼 같은 대사를 우리한테 통지하지 않은 건 너무 하잖아. 아니면 설마 너 결혼을 억지로 한 거야?”전세봉은 입가에 씩 미소를 지으며 이번 연회에서 여이현을 골탕 먹이지 않으면 가만히 있을 기세였다.온지유는 비록 이 사람들이 도대체 왜 여이현을 겨냥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여이현이 마치 그들의 눈에 든 가시가 된 것을 보면서 왜 그동안 여이현이 주동적으로 강태규랑 왕래하지 않았는지를 대충 알 것만 같았다.여이현이 아무리 강태규의 곁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고 해도 아마 이 사람들 때문에 기피한 것 같았다.온지유는 이 사람들이 호시탐탐하게 여이현을 노려보는 것을 보며, 그녀는 주동적으로 여이현의 손을 잡고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아니에요. 여러분들 오해하신 거예요. 이현 씨는 저를 존중해 준 것뿐이에요. 제가 공개하지 말자고 했어요. 제가 이 사람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그저 분위기를 몰 뿐 아무도 진담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하간에 데리고 온 파트너가 있다고 해서 그 상대가 정말로 결혼할 상대인 것은 아니었고 어쩌면 놀다가 질릴 놀이 상대일 수도 있었다. 남자는 다 그러했으니까.양시은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들이 하는 농담에 토가 쏠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이때 나도현이 차가운 목소리로 그들의 웃음소리를 멈추게 했다.“최근에 확실히 있죠.”그 순간 그들은 목에 무언가라도 턱 막힌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큼, 큼큼... 제가 눈치가 없었네요. 이분이 대표님께 그런 사람일 줄은 몰랐네요.”웃음거리로 만들던 사람이 헛기침해대며 말했다. 양시은은 당연히 눈앞에 있는 사람들을 가소롭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제때 나서준 나도현 덕에 가슴 한구석이 따스해진 기분이었다.비록 술자리라곤 했지만 사실상 사업을 논의하는 자리였고 나도현의 위치와 성격 탓에 아무도 그에게 술을 잔뜩 따라줄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몇 잔 마시게 되었다.술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때 양시은은 나도현에게서 은은하게 나는 술 냄새를 맡게 되었다. 술에 박하잎이라도 들어간 것인지 어딘가 시원하게 느껴지기도 했다.“나도현, 내 목소리 들려?”양시은은 그가 취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손을 들어 그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그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정말로 취한 건가...”“안 취했어.”이때 갑자기 그가 입을 열었고 양시은은 깜짝 놀라게 되었다. 그다음 순간 그녀는 시원한 그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양시은은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얼른 차창을 닫으려고 그를 밀어냈다.“이거 놔. 창문 안 올렸단 말이야.”“싫어.”나도현의 담담한 말에 그녀는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고 하고 싶지 않았다.그의 손이 그녀의 등을 스쳐 지나가더니 버튼을 눌렀고 창문이 스르륵 닫혔다. 양시은은 그제야 안도했고 입술 위로 차갑고 부드러운 무언가가 닿았다. 박하 잎을 입에 머금은 것처럼 시원했다.나도현은 그녀의 머리를 잡고는 다정한 키스를 쏟아부었고 차 안의 분위기
“잠시만요. 저도 할 말이 있어요. 해남 구역의 경쟁입찰은 이미 제가 손에 넣었거든요.”이때 나태욱이 갑자기 손을 들며 끼어들었고 사람들은 놀란 표정을 짓게 되었다. 양시은도 놀란 눈빛을 하며 그를 보았다.해남 구역의 경쟁입찰을 나태욱이 이미 손에 넣었다니...다들 수군거리고 있던 때에 나태욱은 턱을 괴며 건방진 미소를 지었다.“다들 모르셨어요? 아, 제가 말해준다는 걸 깜빡하고 있었네요. 그래도 큰일이라 다들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말을 하면서 그는 나도현을 보았다. 그 순간 회의실 안 분위기는 차갑게 얼어붙었고 양시은은 걱정 어린 눈길로 나도현을 보았다.“그럼 다른 프로젝트를 논의하죠. 회사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이것 하나뿐인 건 아니니까요.”나도현은 그녀의 생각보다 더 차분하고 이성적이었고 심지어 흐름이 끊기지 않게 했다. 하지만 나태욱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회의는 계속 진행되었지만 이번에 민망해진 사람은 그들이 아니었다. 여하간에 방금 자랑을 했지만 무시를 당하지 않았던가. 민망한 사람은 나태욱이었다.회의가 끝나고 양시은은 서류 정리 때문에 늦게 나오게 되었다. 나도현은 아직 멀리 가지 않았고 일부러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그녀를 기다려주고 있었다.양시은이 그를 따라잡으려 할 때 나태욱이 갑자기 그녀를 불러세웠다.“양 비서, 나한테 아직 일 잘하는 개인 비서가 없는데 이번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만 형한테 말해서 나한테 오는 건 어때요?”또 그녀를 자신의 편으로 들이려는 속셈이었다. 나태욱은 자신이 말을 꺼내기만 하면 안 넘어갈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 듯했지만 그녀는 정말로 넘어가지 않는 사람이었다.“괜찮아요. 전 이미 지난번에 분명하게 말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전 대표님 곁이 아니라면 다른 곳에 갈 생각은 없네요.”그러자 나태욱이 픽 웃었다.“양 비서, 정말로 그렇게 붙어 있으면 형이 양 비서랑 결혼해줄 줄 알았어요? 그만 포기해요. 우리 고집 센 아버지는 절대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해 줄 리가 없으니까.”양시은은 걸음을
잘됐다며 칭찬을 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부정적인 목소리도 들려왔다. 하지만 손실을 최소화한 것이고 더는 변호사도 아니었던지라 변호사가 회사를 운영한다는 불만 가득한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오성 구역은 재개발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유진혁이 했던 짓에 관해서도 뭔가를 알아내게 되었다.“유진혁이 요즘 자주 도박장에 나타난다고 하더라고요.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현금을 들고 자주 나타난다고 했으니까 제 생각엔 아마 그 배후가 계좌이체 하는 수단이 아닌 현금으로 거래하는 수단으로 유진혁과 연락하고 있는 것 같네요.”양시은의 추측에 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고개를 돌리자 나도현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비서는 손가락을 들어 자신을 짚으며 멍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또 제가 가요?”나도현의 확고한 눈빛에 비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개를 끄덕였고 신세 한탄했다. 이때 양시은이 끼어들었다.“저도 갈 수 있어요. 소식은 제가 알아낸 거니까 제가 가서 알아보는 게 더 나을 것 같네요.”나도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양시은이 나도현을 설득하려고 머리를 굴리던 때 의외의 대답이 들려왔다. 나도현이 그녀의 말에 동의한 것이다.“너무 깊게 파지는 마. 알아볼 수 있는 것만 알아보고 안 되면 그냥 사람만 데리고 오면 돼.”아주 강압적인 어투에 양시은은 고개를 들어 그를 볼 수밖에 없었다. 변호사를 그만둔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위압감이 넘치는 한 회사의 대표님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이내 그녀는 비서와 함께 알아보러 떠났고 뜻밖에도 너무도 순조로웠다. 돈거래가 이루어지는 곳에서 그들은 유진혁을 잡게 되었다.거래가 이루어지는 곳은 어느 한 수영센터에 있는 사물함이었다. 그들이 찾아갔을 때 마침 유진혁이 수상한 모습으로 돈을 세고 있었고 굳이 그들이 사물함을 열어볼 것도 없이 돈과 유진혁을 손에 넣게 된 것이다. 그들에게 붙잡힌 유진혁은 빠르게 입을 열었다.“난 두 사람이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요. 애
양시은은 당연히 고분고분 자리를 비워줄 사람이 아니었다.“안 가. 그러니까 쫓아내려고 하지 마.”창가에 서 있던 나도현이 고개를 돌렸고 그의 얼굴엔 그림자가 져서 어떤 표정을 짓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유난히도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하민이 곧 하원 할 시간이잖아. 네가 안 보인다면 하민이가 불안해할 거야.”그의 말에 양시은은 말문이 막혀버렸고 결국 먼저 자리를 뜨는 수밖에 없었다. 떠나기 전까지 걱정되었던 그녀는 비서에게 나도현을 잘 지켜봐달라는 말을 남겼고 비서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회사를 나섰다.하민이를 집으로 데리고 온 뒤 하민이는 집안을 한번 둘러보다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왔다.“엄마, 아저씨는 오늘 오지 않으신 거예요?”“아저씨는 바빠서 못 올 것 같대. 아마 밤늦게까지 일하다가 오실 것 같은데 우리 조금 더 기다려볼까?”나도현이 자주 집으로 찾아와 양시은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하민이 하원도 도와주면서 같이 식사도 했기에 하민이는 이미 그의 존재가 익숙해 져버렸다. 하민이는 떼를 쓰지도 않고 양시은의 말을 듣고는 실망한 기색이 가득했지만 얌전히 기다리려고 했다.다행히 나도현은 밤에 돌아왔다. 어쩌면 하민이가 실망하는 것이 싫었는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도현은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들어왔다.“늦었네. 하민아, 아저씨가 뭘 사 왔는지 알아?”하민이는 기쁜 얼굴로 그가 들고 온 것을 받았고 집안의 분위기도 화목하게 바뀌었다.양시은은 그런 나도현을 위아래 살펴보았고 정말로 괜찮아졌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했다. 저녁을 먹은 후 두 사람은 보기 드물게 서로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나도현도 자기 생각을 말해주었다.“생각해 봤는데 변호사가 될 수 없다면 나진 그룹에 계속 남아 있으려고. 마침 너도 거기서 일하잖아.”양시은은 그의 말에 가슴이 벅차올랐고 믿어지지 않는 듯 말했다.“나 때문에 그러는 거야?”그녀는 나도현이 변호사를 포기하는 것에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이유가 자신일
나용민이 정말로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잘살기를 바랐다면 두 사람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붙여놓으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건 두 사람을 괴롭히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나태욱은 아주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거만하게 앉아있는 그를 내려다보더니 입을 열었다.“난 예전부터 형이 고귀한 척하는 게 싫었어. 어차피 형도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누릴 수 있는 거 누릴 뿐이잖아.”“할 말 끝났으면 나가.”나도현은 더는 나태욱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나태욱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형은 예전부터 가진 것에 만족하지도 않고 아끼지도 않더라.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내가 왔으니 나진 그룹은 더는 형 혼자만의 것이 아니니까 두고 봐.”나도현은 차가운 시선으로 그가 나가는 것을 보았다. 사무실 문이 열리자 양시은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냉담한 표정을 보아 그를 상대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것 같았지만 나태욱은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양 비서, 우리 또 만났네요. 지난번에 내가 말했죠?”“나태욱 대표님.”너무도 대놓고 자신과 거리를 두는 모습에 나태욱은 눈썹을 꿈틀거렸고 뒤를 슬쩍 보더니 이내 씩 웃었다.“우리 형 따라다니느라 많이 힘들죠? 매일 저렇게 차갑고 무뚝뚝한 표정만 짓고 있으니까 보기만 해도 짜증이 나죠? 차라리 내 비서 하는 건 어때요? 마침 내 비서 자리가 비어있거든요.”나도현은 마치 얼음이 뚝뚝 떨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나태욱, 넌 내가 안 보이나 보다?”나태욱이 입을 열려던 순간 양시은의 공손한 거절이 들려왔다.“죄송해요. 딱히 관심은 없네요.”그의 체면이라곤 전혀 챙겨주지 않는 모습에 나태욱은 스쳐 지나가는 그녀를 보며 표정을 굳혔다.양시은은 서류를 나도현의 앞에 내려놓았다.“대표님, 이건 결재가 필요한 서류에요.”말을 마친 그녀는 바로 자리를 뜨지 않았고 오히려 나도현을 빤히 보았다. 나도현은 당연히 그 시선을 모를 리가 없었고 사인을 하면서 말했다.“할 말이 있으면 해
양시은은 나도현의 낯빛이 한순간에 차가워지는 것을 직접 목격하게 되었고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전 개인 비서예요.”그녀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상대에게 설명했다. 그 말인즉 억측하지 말라는 의미였고 나태욱은 의외라는 눈빛을 하며 보았다.“우리 형과 사귀는 사이가 아니었어요? 정말로 그런 거라면 미안해요. 난 두 사람이 이미...”“네 알 바가 아니잖아.”나도현이 차갑게 말을 잘랐다.나태욱은 멈칫하더니 시선을 돌려 나도현을 보았다. 두 사람 사이에 더는 대화가 오가지 않았지만 무거운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그는 웃음기 머금은 눈을 하면서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었다.“난 형처럼 고집이 있는 사람이 아니야. 아버지는 무슨 수를 써서 라든 회사를 형에게 넘겨주려고 하지만 형은 계속 변호사로 살고 싶어 하잖아. 이런 부분에서는 난 형에게 한참 미치지 못하지.”말은 이렇게 하고 있었지만 도발하는 의미가 가득했고 나도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아버렸다.“내가 뭘 하든 네 알 바 아니야.”말을 마친 나도현은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고 양시은도 얼른 따라갔다. 그러자 뒤에서 나태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양시은 씨, 나중에 또 봐요.”차에 올라타고도 나도현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고 누가 봐도 잔뜩 화난 모습이었다. 나태욱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눈치챈 양시은은 그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했다.“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시은아, 앞으로 나태욱만 보면 피해 다녀.”그는 고개를 돌리더니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하고 있었고 양시은은 멍해지게 되었다.“들었어?”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나도현의 안색이 조금 풀어졌다. 양시은은 방금 본 남자의 신분을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나태욱이 바로 나도현이 말한 나씨 가문의 혼외자식인 것이다...양시은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나태욱은 나진 그룹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앞으로 다시 만날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다음 날 바로 나태욱이 나진 그룹으로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게 될 줄은
그랬기에 나용민이 쉽게 나도현을 포기할 리가 없었다. 나도현이 한 집안사람도 아닌 양시은을 데리고 온 것부터 불만이었기에 화를 내는 것이다.“나이가 들면서 머리도 녹이 슬어가나 봐요? 지난번에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시은이는 더는 남이 아니라고요.”비꼬는 나도현의 어투에 나용민은 화가 치밀었고 당장이라도 침대에서 뛰어내릴 듯한 모습으로 말했다.“지금 뭐라고 했냐?”나도현은 코웃음을 치면서 머리뿐만이 아니라 귀도 안 좋다고 생각했다. 너무도 모욕적인 표정에 나용민의 얼굴은 빨갛게 되어버렸고 씩씩대며 거친 숨을 내몰아 쉬고 있었다.“내가 왜 너처럼 말도 안 듣는 아들을 낳아서는...”나도현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고 양시은은 나용민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눈치채고 얼른 벨을 눌러 의사를 불렀다. 급하게 달려온 간호사는 어떻게든 나용민의 분노를 가라앉히려고 했고 그들에게 말했다.“환자는 안정이 필요한 상태에요. 그렇게 자극하시면 안 돼요.”나도현은 눈을 내리깐 채 무슨 생각 하고 있는지 몰랐다. 양시은은 간호사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네, 주의할게요. 감사해요.”간호사가 나간 뒤 나용민은 침대에 누워 두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보더니 차갑게 픽 웃었다.“하마터면 화병으로 죽을 뻔했구나. 이 불효자식아.”“변호사 사무소에서 연락 왔었어요. “나도현이 갑자기 입을 열자 나용민은 어딘가 켕기는 구석이 있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나용민이 한 짓이라는 것을 눈치챈 나도현은 더욱 자신이 가소롭게 느껴졌다. 정말로 나용민이 사주한 일일 거라곤 예상하지 못한 양시은은 믿어지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대체 왜 그러신 거예요? 도현은 그동안 매일 회사에만 다니면서 단 하루도 편히 쉬어본 적 없었어요. 매일 쌓인 업무를 처리하느라 쉬지도 못하고, 지난번에는 열이 39도까지 올라갔는데도 이튿날 바로 출근했다고요. 대체 도현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러시는 건데요.”나용민의 눈빛이 어두워졌고 나도현이 아팠다는 얘기를 듣자 눈에 띄게 흔들
양시은은 돈을 내고 택시에서 내렸다.“기사님, 저 여기서 내릴게요. 감사합니다.”택시에서 내린 그녀는 얼른 검은색 차로 달려갔다.나도현은 창밖에서 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고 그곳에는 양시은이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창문을 열자 양시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나도현, 문 열어줘.”나도현의 눈빛이 흔들리고 손을 뻗더니 문이 열렸다. 양시은은 얼른 차에 올라탔다.“왜 말 한마디도 없이 혼자 여기 온 건데? 하민이 하원 시간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잖아.”“그냥 오고 싶었어.”“비서님한테 이미 들었어.”나도현은 입술을 달싹이더니 아주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어. 누가 사주한 것인지.”그가 변호사 되기를 반대하고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용민 뿐이었고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몰랐다.나용민은 나도현에게 아주 큰 기대를 하고 있었기에 나도현이 그저 평범한 변호사가 되는 것을 반대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 아들이 자신처럼 나진 그룹을 이끄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병문안 갈까 고려하고 있었으니 가기도 전에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시네.”“미안해. 다 내 탓이야...”양시은은 그런 그가 안쓰러우면서도 죄책감이 들었다.“만약 내가 설득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분을 느낄 일은 없었을 거야.”“네 잘못은 아니야. 내 잘못이지.”나도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애초에 조금이나마 기대한 그의 잘못이었다.양시은은 나도현의 냉담한 어투로 기쁨을 느낄 리가 없었고 그가 냉담하면 할수록 더 안쓰러웠다. 그동안 그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만약 그녀가 나도현이었어도 자신의 아버지가 꿈을 방해한다면 숨이 턱턱 막힐 것이었다.“괜찮아. 내가 있잖아.”양시은은 그를 조심스럽게 안아주었다. 그날 밤처럼 자신의 따듯한 체온으로 차가워진 그의 마음을 녹여주려 했다.나도현은 그런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기사님, 병원으로 가주세요.”나도현의 입에선 뜻밖의 말이 나와 양시은은 멍한 눈빛으로 그
대체 누가 나도현의 심기를 건드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싸늘해진 분위기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고 양시은도 협조적이었다.점차 그들의 분위기도 바뀌면서 룸 안은 열기로 가득해졌다. 이때 누군가 무심코 물었다.“양 비서님, 나중에 결혼 계획 있으세요?”나도현은 차가운 눈길로 입을 연 사람을 보았고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비서는 더 긴장하게 되었다.다행히 양시은은 대충 둘러 말했다.“마음이 맞는 사람이 있으면 아마 할 것 같네요. 하지만 아직은 결혼 계획은 없네요.”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그들은 배불리 먹고 즐긴 후 돌아갔다.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셨던지라 해롱해롱한 상태였고 비서는 그들을 집으로 전부 돌려보랬다. 물론 양시은도 술을 마셨지만 두 잔만 마셨던지라 그저 얼굴만 불그스레한 상태였다.“양 비서님은 혼자 돌아갈 수 있죠? 혼자 갈 수 있으면 전 이만 먼저 가볼게요.”비서는 술에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직원을 등에 업고 있었고 그 직원은 비서의 뺨을 찰싹찰싹 때렸다.그런 그의 모습을 보니 양시은은 괜스레 측은한 마음이 들어 그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었다.“네. 전 혼자 갈 수 있어요.”“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비서는 얼른 자리를 떠나버렸다. 양시은이 위험할지 안 할지는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나도현이 곁에 있는 한 양시은이 절대 위험할 리가 없었으니까.직원들이 떠나고 나니 두 사람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나도현은 자연스럽게 양시은의 가방을 들어주며 말했다.“데려다줄게. 가자.”양시은은 자신의 가방을 돌려받고 싶었지만 그의 모습을 보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차피 돌려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으니까.뒷좌석에 앉은 양시은은 뒤늦은 취기에 머리가 어질거렸다. 나도현은 한참 지나도 들리지 않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양시은은 손을 들어 턱을 괸 채 눈을 감고 있었고 잠든 것 같았다.“대표님, 차가 좀 막힐 것 같습니다.”운전기사가 눈치 없이 말하자 나도현은 바로 눈치를 주었다.“목소리를 낮추세요. 길 막히면 다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