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여진숙이 받아들이지 않았는가.그녀는 여진숙의 앞에서 대놓고 싫은 티를 낼 수 없었다.그리고 악녀가 되기도 싫었다.한참 후.누군가가 노크했다.방에 있던 주소영은 노크 소리에 물었다.“누구세요?”“저에요. 노승아.”주소영은 머뭇거리다가 문을 열어주었다.노승아는 무언가가 담긴 그릇을 들고 서 있었고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쉬고 싶다고 하셔서 제가 국 좀 떠왔어요. 아주머니께서 끓이신 건데 아주 맛있거든요.”주소영이 대꾸했다.“전 입맛이 없네요.”주소영은 국그릇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곤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혹시 저 때문에 입맛이 없는 거예요?”주소영이 급히 말했다.“아녜요. 정말 그런 거 아녜요.”“그럼 됐어요.”노승아는 친근하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아직 어리니까 그냥 언니라고 불러요. 혹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말해도 돼요. 제가 도울 수 있는 건 다 도와줄게요.”열정적인 그녀의 모습에 주소영은 조금 당황했다.“전...”“괜찮으니까 불러봐요. 전 외동딸이라 어릴 때부터 여동생이 그렇게 갖고 싶었거든요. 마침 소영 씨가 저랑 닮았으니까 언니 동생처럼 지내고 싶어서 그래요.”노승아는 뭔가 생각난 듯 말을 이었다.“참, 제가 비서한테 아이 옷 좀 사 오라고 했어요. 마음에 드나 안 드나 한번 봐줘요. 혹시 마음에 안 들면 우리 같이 가서 다른 거로 바꿔요.”말을 마친 뒤 노승아는 쇼핑백에서 아이의 옷을 두 벌 꺼냈다.순간 주소영은 그녀에게서 친근감을 느꼈고 바로 모성애가 가득한 눈길로 그녀를 보았다.“괜찮은데 뭘 이런 걸 다 사 오셨어요. 제 아이 옷을 선물해준 사람은 언니가 처음이에요. 하지만 아직 임신 4주 차라 배도 그렇게 나오지 않았어요.”그녀는 노승아가 꺼낸 아이의 옷을 받았다.아직 아이의 옷을 사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그런데 이렇게 자그마한 옷을 보니 아주 귀엽게 느껴졌다.노승아가 말했다.“일찍 준비해두면 좋죠. 소영 씨 아이는
그녀의 말에 주소영은 순간 두려움을 느꼈다.온지유는 여이현을 좋아하고 있기에 깔끔하게 이혼해줄 리가 없었다. 정말로 그녀를 속이려고 그렇게 말한 것일까?예전에도 온지유는 그녀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너무 여이현에게 푹 빠져 있지 말라고. 그런데 온지유도 여이현에게 푹 빠져 있지 않은가.그녀는 지금 임신한 상태이다. 어쩌면 앞으로 온지유는 그녀의 아이를 없앨 계획도 세울 수 있었다.주소영은 본능적으로 배를 감쌌다.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절대 온지유의 뜻대로 되지 않게 이 아이를 지켜내리라 다짐했다.노승아는 그런 주소영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럼 푹 쉬어요. 제가 가져온 걸 꼭 마시고요. 아이한테 좋은 거예요. 전 이만 나가볼게요.”말을 마친 뒤 노승아는 방 밖으로 나왔다. 그녀의 입가엔 비릿한 미소가 걸려있었다.노승아가 했던 말 때문에 주소영은 불안감을 느꼈다.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그러다가 온지유의 숙모와 사촌 여동생이 떠올랐다. 두 사람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온지유는 진술을 마치고 경찰서에서 나왔다.“지유야!”온재준이 경찰서 앞에 서 있었다.그는 온경준과 닮지 않았다. 나이는 50대에 얼굴은 누렇게 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주름이 가득했다. 담배꽁초를 바닥으로 던져 발로 비벼 끄면서 따져 물었다.“네 숙모는?”온지유는 눈앞에 있는 삼촌에게 딱히 별다른 정이 없었다.그녀와 온재준은 어릴 때부터 친하지 않았다.장수희는 항상 온재준의 앞에서 나쁜 말을 해댔고 두 사람의 사이를 이간질했기에 그녀와 온재준의 사이는 좋지 않았기에 한 번도 그녀를 안아준 적이 없었다.어릴 때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랑 같이 살았었다. 장수희는 그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녀를 더 예뻐한다고 생각했고 온채린에게 관심이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두 사람에게 아주 불만이 많았다.온재준은 그런 장수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고 그녀의 가족에게 관심을 끊어버렸다.온지유는 무뚝뚝한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했다.“몰라요. 들어가서 경찰에게 물어보세요.”“채
온재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계속 담배를 태웠다.“너는 애가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나한테 돈이 있었으면 당연히 갚았을 거 아니니? 나중에 갚는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돈이나 내놓으면 돼.”“전 삼촌한테 빌려줄 돈 없어요. 다른 일도 있으니까 전 이만 먼저 가볼게요.”온재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서는 그녀의 모습에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해 담배를 바닥에 던지며 흉악스럽게 소리를 질렀다.“온지유. 너 나한테 자꾸 그러면 안 될 텐데. 나중에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두렵지도 않냐?!”온지유는 그대로 시동을 걸어 떠나버렸다.그녀는 온재준이 뭘 원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그의 가족은 끝이 보이지 않는 블랙홀 같았다. 그녀가 돈을 빌려주기만 하면 그들은 앞으로도 계속 찾아와 돈을 요구할 것이다.마침 두 사람의 모습을 구석에 숨어 있던 주소영이 전부 보고 있었다.온재준은 화가 나 미칠 것 같았다. 흉악한 얼굴로 온지유가 떠나간 자리를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던 주소영은 무언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했다.이번엔 반드시 온지유를 이 세상에서 치워버릴 생각이었다. 더는 자신에게 위협이 될 수 없게, 아이에게도 해가 되지 않게 말이다.그녀만 처리한다면 어쩌면 자신이 여씨 집안 안주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주소영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온지유는 운전하고 있었다. 마침 걸려온 백지희의 전화에 블루투스를 연결해 받았다.백지희는 금방 하던 일을 마치고 그녀에게 연락한 상태였다.“너 정말로 여이현과 이혼할 거야?”온지유가 답했다.“이혼 서류도 이미 전해줬어. 그 사람만 작성하면 바로 구청으로 갈 거야.”백지희는 궁금했다.“여이현이 흔쾌히 사인해 주겠대?”온지유는 뜸을 들였다.“아니, 그런 말은 하지 않았어. 하지만 사인 안 하겠다고도 하지 않았어. 어차피 난 그 사람과 결혼한 후 3년 뒤에 이혼하기로 계약했었어. 전에도 나한테 이혼하겠다고 했었으니까 아마 사인해 줄 거야.”그녀가 만약 그
배진호는 하는 수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러나 곧바로 다시 걸려왔다.“대표님,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배진호가 말했다.여이현은 오늘의 신문을 읽고 있었다. 고개를 들자 핸드폰은 다시 울리고 있었고 화면엔 백지희의 이름이 크게 떠 있었다.평소였다면 백지희는 그에게 연락할 일이 거의 없었다.만약 그에게 연락했다고 해도 전부 온지유와 관련된 것이었다.여이현은 신문을 내려놓았다.“주세요.”배진호는 핸드폰을 여이현에게 건넸다. 전화를 받자마자 다급한 백지희의 목소리가 들렸다.“여이현 씨,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예요! 정말로 지유가 죽든 말든 신경 쓰이지 않는 거예요?!”다급한 목소리에 여이현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틀어 물었다.“무슨 일인데요?”“지유가 연락이 안 돼요!”백지희는 계속 말을 이었다.“분명 한 시간 뒤에 저를 데리러 오기로 했거든요? 그런데 아직도 연락이 안 돼요. 지유는 시간을 칼같이 지키는 사람이에요. 절대 아무 이유도 없이 약속 시간을 어길 사람이 아니라고요. 분명 무슨 일이 생겼을 거예요!”여이현의 미간이 확 구겨졌다. 마음속에 들끓던 분노도 가라앉았다.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백지희에게 말했다.“지유가 어디로 간다고 말한 적 있어요?”백지희는 후회되었다. 그때 한 시간 동안 뭐하러 가는지 물어보았었다면...“아니요. 안 물어봐서 모르겠어요.”“일단 알겠어요.”여이현은 백지희와 더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었다. 어떻게든 온지유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기에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그의 팔에는 여전히 주삿바늘이 꽂혀 있었다. 걸리적거렸는지 망설임도 없이 확 빼버렸다.느껴지는 통증을 참아가며 일어나 배진호에게 말했다.“얼른 차 대기 시켜요!”배진호는 그가 걱정되었다. 하지만 지금 온지유는 연락되지 않았기에 사람을 찾는 것이 먼저였다.여이현은 옷을 챙겨 입고 병실을 나가려 했다. 마침 그의 상태를 확인하러 온 의사가 들어왔다.“여 대표님,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가요? 수술 부위 아직 회복되지 않았습니
여이현은 황급히 핸드폰을 들어 CCTV에 찍힌 남자의 종적을 보았다.상대는 아마도 자신의 행동이 CCTV에 찍힐 거라곤 인지하지 못한 것 같았다. CCTV를 피하긴 했지만, 구석에 있던 또 다른 CCTV에 옷 갈아입는 모습이 고스란히 찍혔다.납치범을 찾는데 시간이 꽤나 걸렸다.하지만 결국엔 찾아냈다.“당장 출발해요.”그들은 빠르게 납치범이 종적을 쫓아 떠났다....온지유는 엄청난 피로감을 느꼈고 온몸에 힘도 없었다. 분명 쉬고 있음에도 깊은 잠에 빠져 눈을 뜰 수가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그녀는 어렴풋이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다.“이제 어떻게 하죠?”“납치까지 했는데 당연히 깔끔하게 처리해야죠!”여자의 목소리도 들려왔다.“처리하라니요? 지금 나더러 사람을 죽이라는 소린가요? 이 아이는 내 조카예요. 안 돼요, 돈을 더 줘요!”온재준은 조금 망설여졌다. 그는 온지유를 죽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여이현한테 전화를 걸어서 돈을 달라고 해야겠어. 아내를 살리고 싶으면 어떻게든 돈을 주겠지!”“미쳤어요?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온재준이 핸드폰을 꺼내자 여자는 당황한 듯 그를 말렸다.“여이현이 알게 되면 우리 둘 다 죽은 목숨이라고요. 그쪽이 온지유를 여기까지 납치했으니 어쩌면 이미 알아내서 여기로 올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얼른 처리해야죠. 더 큰 화를 입기 전에!”온재준은 눈앞에 있는 여자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자꾸만 처리하라고 말하는 것이 너무도 거슬렸다.“아니, 내 골칫거리를 해결해 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설마 처음부터 다른 목적이 있었던 거예요?”여자는 바닥에 누워있는 온지유를 보았다. 아직도 살아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여자는 아주 초조해졌다.“우린 모두 한 사람을 미워하고 있어요. 온지유가 그쪽한테 어떻게 대했는지 기억이 안 나는 거예요? 그쪽 상황을 알고도 무시했잖아요. 아니지, 오히려 불구덩이로 밀어 넣었잖아요. 그런데 이제 와서 왜 가족인 척하는 거예요? 얼른 처리해요. 그래야 모든 게 해결되니까요!”
“저한테 돈이 있어요. 그러니까 저 좀 살려주세요!”온지유의 몸엔 옷이 젖을 정도로 식은땀이 났다. 그녀는 입을 크게 벌려 숨을 몰아쉬었다.그녀는 일단 살고 봐야겠다고 생각했다.두 눈에 점차 초점이 생기고 그제야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그녀는 아주 어지러운 창고에 두 손 묶여 있었다.눈앞에 있는 사람을 본 그녀는 창백해졌다.“삼촌.”온재준은 차가운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이제야 날 삼촌이라고 부르는 거니?”온지유는 온재준이 자신을 납치할 줄은 몰랐다.그녀도 더는 온재준에게 무언갈 바라지 않았다.“어떻게 해야 절 풀어주실 건가요?”“아까 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나? 돈이 있다고.”온재준은 말을 이었다.“이 카드에 돈이 있는 거, 맞지?”온재준이 들고 있던 카드는 여이현이 준 카드였다.“네, 있어요.”온재준은 바로 미소를 지으며 탐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얼마 들어 있는데?”온지유가 물었다.“그 돈을 주면 절 풀어주실 거예요?”그가 그러겠다고 말하려던 순간 갑자기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안 돼요!”창고엔 다른 사람도 있었다.온지유는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여자는 어두운 구석에 숨어 나오지 않았다.“풀어주면 안 돼요. 풀어주면 아저씨는 감방에 가게 될 거라고요!”여자의 목소리를 듣고도 온지유는 상대가 누군지 알아채지 못했다.여자는 일부러 자신의 목소리 톤을 바꾸었다. 행여나 온지유가 자신인 것을 알아챌까 봐 말이다.“삼촌, 여기 다른 사람도 있네요.”온재준이 말했다.“그러게 순순히 내놓으라고 할 때 내놓았으면 좋았잖아. 네가 안 내놓고 버티니까 이렇게 된 거잖아.”“그래서. 비밀번호는 뭔데?”그는 또 물었다.온지유는 그가 들고 있는 카드를 보았다.“제가 그걸 알려드리면 절 풀어줄 거라는 확신은 어떻게 하죠? 삼촌이 데리고 온 사람은 아마도 내 목숨이 목적인 것 같은데요.”반응이 이토록 격렬한 것을 보니 여자는 온재준을 이용해 그녀를 납치한 것 같았다.
그녀의 말을 들으니 온재준은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그에게 다가온 여자는 분명 다른 목적이 있어 그를 이용하는 것이었다.하지만 온지유는 이러나저러나 그의 조카였다.그는 정말 머리가 아팠다. 누군지도 모를 여자에게 이용당하고 있었으니 말이다.그는 고개를 들어 여자가 있는 쪽을 보았다.여자는 다급해진 나머지 화를 내면서 말했다.“저 여자는 지금 이간질을 하는 거예요. 만약 제가 아저씨한테 이 방법을 알려드리지 않았다면 온지유가 아저씨한테 돈을 드리겠다고 했을까요? 저희는 지금 협력하고 있는 사이라고요!”뭐가 어찌 되었든 온재준은 자신의 목적은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는 온지유를 보았다.“지유야, 카드 비밀번호를 알려주면 절대 널 다치게 하지 않을 거라고 맹세하지.”온지유는 쉽게 그를 믿을 수가 없었다.망설이고 있던 때 밖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려왔다.온재준은 순간 당황하게 되었다.그는 바로 온지유를 잡아 끌어당기고는 칼을 그녀의 목으로 들이밀면서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밖에 누구야!”온지유는 그가 들이민 칼을 보았다. 감히 숨도 크게 쉴 엄두가 나지 않았다.여자는 누군가 왔다는 소식에 더 다급해졌다.“온지유는 지금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는 거라니까요!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면 이미 알려줬겠죠. 아저씨는 온지유에게 속은 거예요!”“온지유! 감히 날 속여?!”온재준은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 그는 이를 빠득 갈았다.온지유는 누가 올 거라는 것을 몰랐다.순간 희망이 생겼다.칼은 여전히 그녀의 목에 드리워졌고 어느새 베어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녀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아니에요. 삼촌, 삼촌이 절 여기로 납치했잖아요. 전 그동안 정신을 잃은 상태라 아무한테도 연락하지 못했다고요. 전 그냥 살고 싶을 뿐이에요. 지금 가진 것 돈 외엔 아무것도 없어요. 카드 비밀번호는 지금 당장 알려드릴게요. 그러니까 이 칼 좀 치워주세요.”“그 칼을 내리면 여이현이 아저씨를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두 여자의 목소리에 온
하긴 그는 망설임도 없이 그녀에게 200억이 든 카드를 준 사람이었다. 그러니 10억은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온지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가슴 한구석이 시큰해졌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확실히.매번 잘해준 탓에 그녀는 가슴이 아팠고 포기하기가 힘들었을 뿐 아니라 고통스러웠다.온재준은 활짝 웃으며 바로 자신의 계좌번호를 알려주었다.여이현은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연락했다.“당장 이 계좌번호로 10억을 넣어요!”구석에 숨어 있던 여자는 순간 초조해졌다.‘안 돼, 절대 안 돼!'‘어떻게든 온지유를 죽여야 해!'이때 문자 알림 소리가 들려오고 온재준의 핸드폰에 문자가 떴다.문자를 클릭하니 은행에서 10억이 들어왔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그는 문자를 보며 0을 하나씩 세어보았다.10억!정말로 10억이었다.살면서 이렇게 큰돈을 가져본 적은 처음이었다.온재준은 아주 기뻤다. 흥분한 채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그럼 내가 온지유를 풀어주면 날 어떻게 풀어줄 거지?”여이현이 말했다.“여기 차가 있습니다. 차를 타고 가세요. 전 막지 않을 겁니다.”“그럼 내가 갈 수 있게 비켜줘.”온재준은 밖에 세워진 수많은 차를 보았다.차를 타고 도망간다면 안전은 확보할 수 있을 것이었다.게다가 통장엔 10억이 있으니 먹고 살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되었다.나중에 때가 되면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해외로 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다시 시작할 생각이었다.모든 것이 다 나아질 것이다.상황을 지켜보던 여자의 눈빛은 싸늘해졌다. 더는 이곳에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다행히 그녀는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뒷문을 알아두었었다. 여자는 그들이 온재준에게 정신이 팔린 사이 몰래 빠져나갔다.온재준은 온지유를 붙들고 밖으로 나왔다.여이현도 따라 나왔다. 그의 손엔 식은땀이 가득했다. 온지유의 목에 흐른 피를 보았기 때문이다.행여나 자신의 실수로 온지유가 크게 다칠까 봐 두려웠다. 그랬기에 그는 더 조심스러웠다.온재준은 온지유를 끌고 차 옆까지 왔다.
그 순간 발걸음 소리가 들려와 여울은 황급히 고개를 돌려보았다. 최지후가 그녀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오고 있었고 얼굴엔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전에 그가 했던 행동이 떠오른 그녀는 저도 모르게 몸을 덜덜 떨고 말았고 최대한 태연한 척하려고 애를 썼다.“누구와 문자를 주고받는 거지?”최지후가 점점 더 그녀에게 다가가고 두 사람의 거리는 손바닥 한 뼘 정도만 남게 되었을 때 그는 갑자기 손을 들어 그녀의 턱을 올렸다. 손아귀에 힘을 주고 있었던지라 느껴지는 통증에 여울은 미간을 구기고 말았다.“딱히 특별한 사람은 아니에요. 제 동창이 며칠 전에 저와 마주치고는 다음에 만나자고 문자 보내고 있었던 거예요.”“그래.”그러자 최지후의 목소리가 온화해졌다. 만약 두 사람 사이를 모르는 사람이 보았더라면 정말로 그의 성격이 좋은 줄 알았겠지만 그와 함께 지내고 있는 여울은 그가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 순간 그는 손을 올려 그녀의 머리채를 확 잡아당겼다. 하마터면 넘어질 뻔한 여울은 겨우 다시 중심을 잡았다. 머리에서 전해지는 고통에 그녀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고 이 상황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다.“지금 날 속이고 있는 거지? 여울, 왜 내 말을 안 듣는 거지? 내 말을 안 들으면 벌을 받는다는 것도 알고 있을 텐데.”최지후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그녀는 그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 안방까지 끌려들어 가게 되었고 문을 닫고 나서야 그는 손을 내려놓았다.여울은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게 되었다. 얼른 이곳을 도망치고 싶었지만 엄청난 위압감을 내뿜는 최지후가 눈앞에 있었다.“내가 널 위해 선물을 준비했어. 네가 좋아할지는 모르겠네?”최지후는 말을 하면서 옆에 있던 상자를 들고 왔다. 상자를 열자 안에 있는 물건이 보였고 여러 가지 도구가 담겨 있었다. 여울은 보자마자 몸이 심하게 떨려왔다. 누가 사람을 고문하는 도구를 좋아하겠는가. 그러나 그는 끊임없이 그녀에게 물으며 대답을 들으려 했
“전 지후 씨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 가요. 제가 요즘 얌전하게 잘 지내고 있었잖아요. 아니면 제가 손을 다쳐서 마음에 들지 않는 거예요? 그런 거라면 괜찮으니까 저한테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요. 어차피 지후 씨도 제가 반항하지 않을 거라는 거 잘 알잖아요.”여울은 담담하게 손을 내밀고 있어 최지후는 더 화가 났다.“대체 뭐 하자는 거야? 난 그냥 무심코 한 말이었다고. 내가 너한테 그렇게 나쁜 사람이었나? 그리고 내가 말했잖아. 너한테 손을 대는 일은 없을 거라고. 전에도 일부러 그런 거 아니라고. 넌 대체 누구 지시를 받고 여기로 온 거냐? 모르는 사람 없으니까 지금처럼 건방지게 굴지 않는 게 좋을 거야.”그의 말을 들은 여울은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분명 함께 지낸 시간이 많았는데 이런 식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으니 말이다.“전 확실히 지후 씨와 만날 수 없는 계층의 사람이었지만 고의는 없었어요. 그래도 우리가 함께 지낸 시간이 얼마인데요. 전 지후 씨와 함께 지내면서 전보다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네요. 지후 씨에게 전 그렇게 가치가 없는 사람인가요?”예전의 여울이었다면 이런 말을 꺼내는 건 상상조차 못 했을 것이지만 이미 최지후의 경계심이 어느 정도 풀어졌던지라 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최지후는 확실히 감 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조금 전까지 화내고 있다가도 갑자기 즐거워하면서 성격도 이상했다. 만약 예전이었다면 그녀는 아마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하지만 손을 다치고 난 후 여울은 최지후가 자신을 많이 봐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예전에 보여주지 않았던 행동도 보여주고 있었던지라 여울은 전보다 더 대범해지고 점점 비꼬는 어투로 그와 말을 했다.“제가 그렇게 거슬리면 지금 바로 나갈게요. 그래도 전 지후 씨한테 진심이었어요. 아무리 지후 씨가 저한테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도, 정말로 절 해치려고 했다고 해도 전 지후 씨 곁에 있고
“왜 강윤슬이 화가 나든 말든 신경 쓰는 거죠? 내가 전에 했던 말을 귓등으로 들은 건가요? 이 카드의 주인이 나예요, 그쪽이에요?”그의 말을 들은 비서는 황급히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전 혹시나 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될까 봐 걱정되는 마음에 오지랖을 부렸습니다.”지석훈은 비서가 무슨 말을 하든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 전화를 끊은 후 문지원의 오빠를 찾는 것에 다시 집중했다.문지원도 걱정 가득한 얼굴이었다. 예전에는 그나마 준비라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수상해도 너무 수상했고 더 복잡해졌다.“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확실히 알아낸 거예요. 직접 가기 싫은 거라면 제가 대신 가서 확인해 드릴 수는 있는데... 그게 가격이 조금 비쌀 거예요.”일전에 지석훈이 눈앞에 있는 탐정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들은 그녀는 탐정을 떠보기 시작했고 확실히 어딘가 수상했다.“왜 그렇게 제 오빠가 그쪽에 있다고 확신하시는 거예요? 그쪽으로 가본 신 적도 없잖아요. 그 사람들 말 믿을 수 있는 거 맞아요? 게다가 전 지금까지 오빠가 그곳에 있다는 증거 사진이나 영상도 보지 못했어요. 그런데 몇 마디 말로 저더러 지금 믿으라는 거예요? 제가 그렇게 멍청해 보여요?”만약 지석훈의 말을 듣기 전이였다면 그녀는 믿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이미 수상함을 눈치채고 있었다. 여하간에 회사에 이렇게나 큰일이 일어났고 그녀는 더는 잃을 것도 없었다.탐정은 문지원이 이렇게나 빨리 눈치챌 줄은 몰랐는지 다소 망설이고 있었다. 문지원은 당연히 탐정의 말속에 거짓이 담겨 있음을 알고 있었다.“그동안 탐정님한테 의뢰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전 집안에 일이 생긴 후로 계속 탐정님한테 의뢰를 해왔어요. 그래서 탐정님 실력도 믿고 있고요. 그런데 탐정님이 제 뒤통수 치고 있을 줄은 몰랐네요. 만약 사실대로 말해줄 생각이 없으시다면 전에 받았던 의뢰비를 전부 돌려주세요. 이쯤에서 그만둘 거거든요.”말을 마친 문지원은 상대가 대답하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마음이 급해진 탐정
지석훈은 말하면서 다소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문지원을 보았다. 여하간에 문지원의 손은 강윤슬 때문에 다쳤으니까.“이 일로 나한테 죄책감 같은 거 느낄 필요 없어요. 나한테는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그리고 저도 다른 일로 부담을 느낀 적 없어요. 시간도 이미 많이 지난 일이고 만약 예전이었다면 신경 썼을 텐데 지금은 정말로 아무렇지 않아요. 이제 저에겐 아무 의미도 없거든요.”문지원은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하고 있었지만 지석훈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왜 의미가 없는 건데? 설마 너한테 나는 다른 사람과 같은 존재인 거야?”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지석훈은 저도 모르게 진지해지게 되었다. 그의 말을 듣던 문지원은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아니요. 석훈 씨는 다른 사람과 다르죠. 다르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그동안 나한테 도움도 많이 줬는데 계속 석훈 씨한테 찰싹 붙어서 의지만 하고 살아갈 수는 없잖아요.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리고 석훈 씨와 강윤슬 씨 사이 일도 내가 이러쿵저러쿵 평가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해요. 이미 다 지나간 일인데 더 말해서 뭐하겠어요?”지석훈은 순간 침묵하고 말았다. 그는 문지원의 생각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단순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과장도 없어 오히려 자신의 생각이 더 편협하게 느껴졌다.“그래. 알았어. 얼른 쉬어.”일전에 이미 함께 잔 적이 있었던지라 둘 사이는 전보다 더 가까워졌고 이상하게도 뭐든 더는 서로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만나 함께 생활했던 것처럼 말이다.지석훈은 사실 그녀에게 모든 사람에게도 이렇게 대하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녀의 뒷모습이 너무도 지쳐 보였기에 결국 침묵하기로 했다. 여하간에 어떤 일은 직접 말로 하기 어려웠고 자칫하면 상처 주기도 했으니까. 문지원도 그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같은 시각 강윤슬은 알게 된 소식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한 후 저도 모
“나도 방금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 네가 자꾸 이 시간에 수상하게 이런 모습으로 있는데 누굴 탓하겠어?”여울이 울먹거리자 최지후의 분노는 사그라들고 어느새 미안한 감정만 남았다. 그는 감정 표현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여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너무도 어색했다.“일단 손부터 치료해. 괜히 나중에 다른 사람이 보고 내가 널 학대했다고 오해하기 전에.”말을 마친 그는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떠나가는 최지후의 뒷모습을 보던 여울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일은 그녀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몰래 CCTV까지 설치하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최지후는 원래부터 의심병이 많은 사람이었기에 만약 무언가를 눈치채기라도 한다면 그 후과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최주하가 시킨 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그녀도 어쩔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또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일단 가까운 병원으로 찾아가 손부터 치료하기로 했다.“이번에는 또 왜 이렇게 된 거예요? 지난번까지 멀쩡했던 사람이 왜 이렇게 다친 거예요? 조심하라고 했잖아요. 앞으로 두 달간은 무거운 물건은 들지 말고 집에서 푹 쉬어요. 알겠어요?”의사의 당부에 여울은 씁쓸한 미소만 지었다. 그녀도 조심하고 싶지만 그녀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최지후는 원래부터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사람이었던지라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심기를 거슬렀다면 절대 의사의 당부를 지킬 수 없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돈을 받고 남의 일을 대신 해주고 있었다. 최주하의 돈을 받았으니 집에서 가만히 푹 쉬는 것은 물 건너갔고 어떻게든 시킨 일을 완수해야 했다. 시킨 일만 빠르게 해내고 떠나버린다면 더는 이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네, 선생님. 고마워요.”그러나 별장으로 돌아갔을 때 최지후는 떠나지 않았고 오히려 별장에 앉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그가 다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여하간에 최지후가 어떤 성격인지 잘 알고 있었고 지금쯤이면 다른 곳에서 볼일을 보고
그렇게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있을 때 다른 한편에서 최주하는 여울의 연락을 받게 되었다.“네?”여울은 자신이 손을 다쳤다는 사실과 최지후가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그에게 연락했다고 말했다.“네가 어떻게 되든 신경은 안 쓰지만 그래도 몸 정도는 챙겨.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 귀찮게 내가 직접 나서야 하잖아. 안 그래?”그 말을 들은 여울은 조금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제가 일부러 제 몸에 신경 쓰지 않는 건 아니에요. 최지후 씨가 그러는 게 조금 무서워요.”여울은 비록 2억을 손에 넣긴 했지만 끝까지 살아 있어야 그 돈을 쓸 기회가 있지 않겠는가. 이대로라면 그녀는 언제 죽게 될지도 모른다.“내가 말했잖아. 몸 하나는 알아서 잘 지키라고. 필요한 게 있으면 내가 최대한 맞춰줄 테니까 나 대신 일 좀 하나 해줘야겠어.”최주하는 원래 더 좋은 방법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기회가 제 발로 들어왔으니 당연히 놓치지 않고 이용해줄 생각이다.“또 뭘 해야 하죠?”예전이었다면 여울은 걱정하고 있었겠지만 지금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최주하가 이러는 것은 순수하게 최지후에게 보복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하지만 다른 것에는 알 리가 없었다.“나도 알아. 지금 네 상황이 확실히 불리하고 힘들다는 거. 그래도 내가 시키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네가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난 네가 해낼 거라고 믿어.”이 말을 한 최주하는 이내 잠깐 망설이다가 지석훈이 했던 말을 해주었다.“내가 이곳에 있는데 CCTV를 설치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리고 CCTV 기계가 어떻게 생겼는지 너도 모르는 것도 아니고.”여울이 몰래 그에게 연락할 때부터 이미 긴장한 상태였다. 만약 정말로 최주하가 말한 대로 CCTV가 설치되어 있고 나중에 최지후가 그것을 발견한다면 그러면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지 않겠는가.“내가 지금 선택의 기회를 줄게.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나중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누구도 몰
“네, 이 산속이 맞습니다. 정 그렇게 믿기 어려우시다면 직접 가보시죠. 하지만 다른 정보는 저희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다른 상황에 비해 지금 이 상황이 제일 이해가 가지 않았다.“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금 이 정보로는 조금 어렵다고 생각되네요.”문지원은 탐정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사실 여전히 걱정되었다.“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전에 있었던 일을 제외하곤 이번 조사에서는 충분히 알아보고 말씀드리는 것이니까요.”탐정이 말을 마쳤을 때도 그녀의 표정은 전보다 더 심각하게 일그러졌다.“네. 알겠어요.”전화를 끊은 문지원은 다소 조급한 얼굴로 앞을 보았다. 전에는 준비가 된 상태라 긴장하지 않았다면 지금은 조금 불안했다.“무슨 일이야?”“아, 우리 오빠예요. 우리 집안의 상황을 석훈 씨도 잘 알잖아요. 그동안 오빠와 연락이 안 되기에 탐정사무소로 찾아가 의뢰했는데 방금 그쪽에서 연락 온 거예요. 어느 산 쪽에서 오빠 소식을 알아냈다고 하는데 가야 할까 고민 중이었어요.”만약 다른 때였다면 문지원은 이렇듯 고민하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 상황은 너무도 예상 밖이었다.“만약 그럴싸한 정보라면 바로 사람을 보내서 알아보거나 제가 직접 가서 확인해볼 텐데 지금 상황이 조금 이상해서요.”지석훈은 조금 의아한 눈빛으로 문지원을 보았다.“정말로 산속에서 찾았다면 더 많은 소식이 들려왔어야 했을 텐데 왜 탐정이 고작 연락 한 통으로 위치만 알려준 거지? 그 탐정 믿을 만한 사람은 맞아?”지석훈이 이렇게 물으니 문지원은 다소 확신할 수 없었다.“네가 네 오빠를 걱정하고 있다는 거 알아. 다른 사람이었어도 너처럼 가족을 걱정했을 거야. 그런데 만약 이 모든 게 누군가 파 놓은 함정이라면? 내가 보기엔 분명 뭔가가 있어.”같은 시각 강윤슬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석훈이가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분명 나한테 푹 빠졌을 때는 그딴 일에 관심이 없었잖아. 그런데 왜 지금은 다른 사람 편을 들어주면서 일부러 이런 말로 나를 화나게 하는 거냐고!
“수술 일정이 이것밖에 없어서 바로 퇴근해도 돼. 가서 물어봐야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그는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었고 이내 차에 시동을 걸었다. 잠시 후, 차가 목적지에 도착하였고 차가 클럽 앞에 멈춰 섰다.문지원은 조마조마했다.이미 붕대를 감고 있긴 했지만 지석훈이 손을 살펴보는 도중에도 통증이 몰려왔다. ‘누구한테 관심을 받는다는 게 이런 느낌이었구나.’손이 밟혔을 때, 그녀는 단순히 계약이 성사되지 않을까 봐 걱정되었고 자신이 괜히 다친 건 아닌지 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녀는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석훈의 관심이 오히려 그녀의 마음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 나랑 강윤슬이 어떻게 되든 이 일은 나랑 관련된 일이잖아. 나 때문에 당신이 이렇게 당하는 꼴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어.”말을 마친 그가 그녀를 데리고 룸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어보니 룸 안에는 강윤슬과 임혁수 그리고 몇몇 사람들이 한창 즐겁게 놀고 있었다.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갈 때, 강윤슬과 임혁수는 키스를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역시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니까. 이제 좀 그만해.”“그러니까. 그리 오래 만났으면 이젠 뜸할 때도 됐잖아.”이 상황이 어이가 없었던 지석훈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어젯밤까지도 울며불며 그한테 매달리던 강윤슬이, 그를 좋아한다고 하던 강윤슬이...이런 싸구려 진심이라니, 그가 테이블 위의 컵을 덥석 집어 바닥에 던졌다.신나게 놀던 사람들은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고 지석훈은 룸 안의 음악을 끄고 차갑게 입을 열었다.“뭐 하나만 물어볼게. 이게 뭐 하는 짓이야?”지석훈은 문지원을 손을 들어 올리며 강윤슬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더 이상 이전의 애틋함을 찾아볼 수가 없었고 분노만 가득했다. “뭐 하는 거야? 여자 친구의 억울함이라도 풀어주려고 온 건가? 그런 거라면 잘못 찾아온 것 같은데? 네 여자 친구는 사업 때문에 스스로 다친 거야.”“그게 다른
“당신이 원하는 사과가 이런 거예요?”문지원은 통증이 몰려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저쪽에 서 있는 두 사람은 별다른 반응이 없어 보였다. 이미 이런 일이 몸에 밴 듯 익숙해 보였다. “묻고 있잖아요.”문지원은 아직도 반쯤 쭈그리고 앉아 있었고 손은 여전히 강윤슬의 발밑에 밟혀 있었다.“뭐 비슷해요.”엄우정은 문지원이 이렇게까지 고집이 셀 줄은 몰랐고 결국 계약서에 대충 사인을 해줬다.이번에는 어떻게든 회사가 잘 운영될 수 있게 되었다.문지원은 두 사람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난 두 사람 사이의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요. 나랑 석훈 씨는 서로 원해서 그런 거예요.”“당신이랑 석훈 씨의 일에 대해 뭐라 평가하고 싶지도 않고요. 그러나 이렇게 해서는 진심을 얻을 수 없을 거예요.”말을 마친 문지원은 계약서를 들고 자리를 떴다.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고 엄우정은 벌컥 화를 냈다. “그냥 이대로 끝낼 거예요? 지석훈은 원래 윤슬 씨한테 충성을 다했어요. 일편단심 당신만 바라보던 사람이 문지원이 나타난 이후부터 딴사람이 되어버렸다고요.”그 말에 강윤슬은 가여운 척 연기를 했다. “그런 말 하지 말아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닐 거예요. 그리고 문지원은 이미 벌을 받았잖아요.”화가 난 엄우정은 펄쩍 뛰었다. “왜 그렇게 착해요? 지석훈이 보는 눈이 없네요. 윤슬 씨 같은 여자를 두고 어떻게...”두 사람은 한동안 계속해서 얘기를 나누었다. 한편, 문지원은 계약서를 회사에 가져다준 뒤 병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병원에 오자마자 수술하러 가는 지석훈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문지원의 손을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시간이 촉박해서 몇 마디밖에 물어볼 수가 없었다.“왜 이래? 일단 가서 치료받고 있어. 수술 끝나면 바로 갈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지석훈은 이미 의사들과 함께 수술실로 들어갔다.그녀는 접수를 마치고 한참을 기다린 끝에 손에 난 상처를 치료하였다. 조용한 곳을 찾아 그를 기다리고 있는데 얼마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