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가져왔어요.”온지유는 가방에서 옷을 꺼내며 말했다.“이거 맞죠?”불쾌한 듯 찌푸려진 여이현의 미간도 그녀가 가져온 옷을 보고 나서 조금 풀렸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불만스러운 말투로 물었다.“옷을 가져왔으면서 왜 다른 사람을 보내?”온지유는 주소영을 바라보며 말했다.“그건 주소영 씨한테 물어봐야겠네요. 제가 말렸는데도 고집을 피운 사람은 주소영 씨예요. 그 책임까지 저한테 묻지 마요.”여이현의 시선이 다시 주소영에게로 향했다. 주소영은 그의 동정을 얻고 싶었지만, 냉랭한 시선에 잘못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저... 저는 단지 오빠를 신경 써서 돌보고 싶었을 뿐이에요. 죄송해요. 제 잘못이에요. 다음번에는 주의할게요.”여이현의 목소리는 차가웠다.“나가.”주소영은 여이현에게서 이런 냉정함을 처음 느꼈다. 지금의 그는 그녀를 가여워하던 예전의 그와 전혀 달랐다.‘전에는 날 대학까지 보내주려고 했으면서... 이제는 나도 팔자 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주소영은 온지유 때문에 여이현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만약 온지유가 없었다면, 여이현은 여전히 그녀에게 친절했을 것이다. 여이현의 냉정함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주소영은 눈물을 닦으며 병원을 나섰다. 그렇게 급하게 길을 가다가 누군가와 부딪혔다.“아!”노승아는 서둘러 오다가 누군가와 부딪혔고,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 하이힐을 신었던 그녀는 발목을 살짝 삐끗하고 얼굴을 찡그렸다.주소영은 울며 말했다.“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눈은 장식이에요? 그러게 왜 병원에서 뛰어다녀요?”김예진이 화를 내며 노승아를 부축했다.“언니, 괜찮아요?”노승아는 눈물을 뚝뚝 흘리는 어린 소녀를 보며 안심시키듯 말했다.“발목 삔 거 아니에요? 병원에서 검사 받아보는 게 어때요?”“아니에요, 괜찮아요.”여이현이 걱정됐던 노승아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나는 신경 쓰지 말고 할 일 해요.”잠시 후, 노승아는 여이현의 병실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간 그녀를 본 배
“어떻게 걱정하지 않을 수 있어요? 오빠가 병원에 입원했잖아요. 제가 입원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저는 다시는 오빠가 병상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도 너무 힘들었다고요. 촬영이 뭐가 중요해요. 차라리 촬영을 안 하는 한이 있더라도 오빠 곁에 있을래요.”노승아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이 말을 듣고, 여이현은 예전에 그가 크게 다쳤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는 노승아가 그를 구해줬다.“그런 일은 없을 거야.”노승아는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전에도 같은 약속을 했어요. 저를 슬프게 하고 싶지 않다면 제발 다치지 말아요. 오빠 몸을 혹사하지 말라고요!”여이현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적이 있었다. 그때 노승아는 7일 밤낮을 지키며 거의 눈을 붙이지 못했다.그 이후로, 여이현이 조금이라도 다치면 노승아는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작은 상처조차 그녀에게는 큰 상처였다. 그녀는 그가 다시 혼수상태에 빠질까 봐 두려워했다.이게 바로 그녀가 촬영장을 떠나 병원으로 달려온 이유다. 그녀는 그를 잃을 수 없었다. 그가 아무리 선을 긋더라도, 그녀의 마음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의 삶에 그녀의 일부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여이현도 그 사실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노승아가 그에게 베푼 은혜는 영원히 잊을 수 없었다.그래서 그는 그녀의 일이라면 무엇이든 도와주려고 했다. 그녀가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되었을 때도 그녀가 다시 삶의 희망을 찾도록 도와주고 싶었다.“알겠어.”여이현이 대답했다.같은 시각, 온지유는 병실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밖에서 음식을 사 왔다. 배진호가 여이현이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체력이 떨어졌다고 말해주었기 때문이다.건강을 회복하려면 잘 먹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녀는 여이현이 좋아할 만한 음식을 사 왔다. 그는 매운 음식이나 단 음식은 좋아하지 않고, 주로 담백한 음식을 선호했다. 온지유는 그의 입맛을 잘 알고 있었고 맞춤하게 준비
“예진아, 쉿.”노승아가 그녀의 말허리를 자르곤 다시 여이현에게 입을 열었다.“난 괜찮아.”시선을 돌리자 붉게 부어오른 그녀의 발목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배 비서, 얼른 승아를 데리고 의사한테 가세요.”“네, 대표님.”그러자 노승아가 말했다.“병원 갈 필요 없어. 이 정도는 그냥 파스 뿌리면 괜찮아져. 촬영할 때는 이것보다 더 많이 다쳐서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비서님, 의사 대신 약 좀 사다주세요.”배진호는 여이현을 보면서 그가 지시를 내리기를 기다렸다.여이현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가서 약 사와요.”“네, 대표님.”배진호는 바로 자리를 떴다.오랜만에 만났던지라 노승아는 그간 그가 아주 그리웠었다. 촬영하느라 바쁘다고, 온지유 앞에서 자신을 난처하게 한 일로 삐진 척하면서 그를 보러 가는 것을 참고 있기도 했다.하지만 이번에는 아주 잘 찾아온 것 같았다. 적어도 여이현이 전처럼 그녀를 대해주고 있지 않은가.전과 다르지 않은 그의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안심이 되었다.노승아는 과도를 들어 그에게 사과를 깎아 주었다.“다쳤으면서 나한테 연락도 안 하고. 아주머니 아니었으면 난 지금도 몰랐을 거야.”말을 마친 그녀는 그의 대꾸를 기다렸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여이현은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대체 누구의 연락을 기다리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멈칫하던 그녀는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 지유 언니를 지켜주다가 다친 거지? 그런데 지유 언니는 어디에 있어? 몸까지 날려서 구해줬는데 널 간호하러도 안 온 거야?”여이현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온지유는 날 위해 도시락 사러 갔어.”노승아는 입술을 틀어 물었다. 온지유의 행동이 딱히 맘에 들지 않았다.“밖에서 파는 음식은 대부분 깨끗하지가 않아. 네 입맛에도 잘 맞지 않을 거야. 그럴 바엔 차라리 아주머니나 집안 도우미한테 도시락 싸다 달라고 해. 아니면 내가 만들어서 가져와도 돼.”“번거롭게 그럴 필요
그녀는 시동을 다시 끄고 노승아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노승아는 그녀가 산 도시락을 들고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왜 들어오지도 않고 가요? 제가 오빠랑 대화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불쾌하던가요?”“할 말 있으신 건가요?”온지유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앞까지 다가온 노승아를 보았다.“아직 제 말에 대답하지 않으셨잖아요.”온지유는 시선을 거두고 담담하게 말했다.“혹시 그거 알아요? 아무것도 없으면서 뭔가 있는 척 연기를 하고 다른 사람 앞에서 으스댈수록 원하는 걸 더 얻을 수 없다는 말이 있거든요.”노승아가 이 틈을 타 자신을 비웃으려는 의도를 눈치채고 있었다.아마 그녀의 앞에서 자랑질할 생각이겠지.노승아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졌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온지유의 모습을 아주 싫어했다.“뭘 연기하고 있어요. 분명 불쾌하잖아요. 제가 이현 오빠랑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현 오빠 마음엔 항상 제가 있거든요. 그쪽도 잘 알 거 아니에요. 이현 오빠는 절 위해 연예 기획사도 세웠어요. 제가 연기하고 싶다고 하니까 바로 좋은 감독과 배역을 알아봐 주었다고요. 이것이 뭘 의미하고 있겠어요? 이현 오빠 마음속에 저밖에 없다는 소리잖아요. 그리고 온지유 씨는 어차피 버려질 패에 불과하죠. 이현 오빠가 언제든 버릴 수 있는 패 말이에요!”그녀의 말에 온지유는 결국 주먹을 움켜쥐었다.순간 여이현과 여희영의 대화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녀는 확실히 하나의 패에 불과했다. 여이현에게 회사 지분을 가져다줄 수 있는 패였다.3년 결혼 생활의 희생자기도 했다.이렇게 모욕을 당하고 있어도 나중엔 쉽게 버려지는 패였다. 그럴 바엔 마지막까지 자신의 체면이라도 지키는 것이 나았다.그녀는 싸늘한 눈빛으로 노승아를 보았다. 노승아는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전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거예요. 이현 오빠에겐 쓰레기가 필요 없거든요!”말을 마친 뒤 노승아는 온지유의 앞에서 그녀가 사 온 도시락을 쓰레기통에 버렸다.노승아는 일부러 그녀의 앞에서 버린 것이었다.온지
그러나 여이현은 쉬고 싶다는 이유로 만나주지 않았다.배진호는 병실 문 앞을 가로 막고 서 있으며 공손하게 말했다.“노승아 씨, 대표님께선 쉬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다시 촬영장으로 돌아가시라고 하셨습니다.”노승아가 말했다.“괜찮아요. 전 이미 오늘 쉬고 싶다고 감독님한테 말씀드렸거든요. 감독님도 그러라고 하셨으니 오빠가 퇴원할 때까지 여기 있어도 돼요.”배진호는 조금 난감해져 에둘러 말했다.“대표님께선 지금 쉬고 싶답니다.”노승아는 병실 안을 힐끔 보았다. 배진호의 뜻을 알고 있었던 그녀는 더는 억지를 부리지 않았다.“그럼 이것만이라도 오빠한테 전해 줘요. 마침 집으로 돌아가 아주머니께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 할 생각이었거든요.”“네, 노승아 씨.”배진호는 그녀가 건네는 서류를 받아들었다. 하지만 서류에 적힌 글씨를 보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노승아는 그렇게 작별 인사를 하곤 떠났다.그녀의 매니저가 말했다.“언니, 왜 안 들어가요? 어렵게 온 기회인데...”“괜찮아. 조급할 것 없어. 어차피 앞으로 나한테 기회가 많이 차려질 테니까. 일단은 이현 오빠네 집으로 가자.”그녀에겐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병실 안.배진호는 아직도 망설이고 있었다.노승아가 건넨 서류를 여이현에게 전달해야 할지 말지 말이다.여이현은 눈을 감고 있었지만, 그가 곁에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입을 열었다.“할 말이 있으면 하세요.”배진호는 하는 수 없이 그 서류를 그에게 건넸다.“대표님, 이건 아마 온 비서님의 서류 같습니다.”그제야 여이현은 눈을 떴다. 하지만 그의 두 눈에 ‘이혼 신고서'라는 커다란 글씨가 들어왔다.그의 표정이 바로 굳어졌다.“언제 온 거죠?”배진호가 답했다.“노승아 씨가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아마 온 비서님이 노승아 씨한테 준 것 같습니다.”여이현은 이혼 서류를 손에 들었다. 믿을 수 없어 서류를 다시 한번 꼼꼼히 확인해 보았다. 그러다가 발견한 온지유의 사인에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원래부터 좋
그녀는 온지유가 가지 못하게 꽉 붙잡았다. 지금 이 순간 온지유를 죽이고 싶은 충동도 생겼다.“넌 처음부터 불운을 몰고 다니는 년이었지. 너만 없었으면 우린 전부 다 잘살고 있었을 거야. 네 아빠도 우리 가족을 도와주고 행복하게 살았을 거라고. 네가 중간에서 이간질하는 바람에 네 아빠는 더는 내 남편을 도와주지 않겠다고 한 거야. 이 악랄한 X! 오늘 반드시 널 죽여버릴 거야!”장수희는 손을 뻗더니 그녀의 머리채를 잡으려고 했다.그녀는 반사적으로 피하면서 장수희를 밀어내려고 했다.장수희의 손톱은 조금 길었기에 결국 그녀의 얼굴에 상처를 내고 말았다.“저기요, 아주머니. 여긴 경찰서예요. 경찰서에서 이러시면 폭행죄로 구치소에 들어갈 겁니다!”장수희는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잡아가! 어디 한번 잡아가 보라고! 그전에 내가 반드시 이 X부터 죽이고 갈 거야! 이 X 죽이고 지옥 갈 거라고!”경찰의 만류에도 계속 손을 뻗는 장수희에 결국 경찰은 그녀를 제압하는 수밖에 없었다.제압당한 장수희는 버둥거리며 온지유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온채린의 안색이 창백해지고 눈물이 떨어졌다.“엄마, 제발 진정 좀 하세요. 엄마가 구치소에 들어가면 저는 어떻게 하라고요.”온채린은 온지유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빌었다.“언니, 잘못했어요. 전부 저랑 엄마 탓이에요. 그러니까 한 번만 봐주세요. 맹세할 수 있어요. 앞으로는 절대 언니 가족 찾아가 힘들게 하지 않을게요.”온지유는 자신의 볼을 만졌다. 그러자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장수희의 손톱에 긁힌 것이 분명했다.하지만 이제 더는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그녀는 고개를 떨구어 온채린을 보았다. 그녀의 눈빛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절대 합의는 없다고.장수희는 그렇게 경찰에게 끌려나갔다. 끊임없이 저주를 퍼부으며 말이다.“죽어! 죽어버리라고!”온채린은 울면서 따라갔다. 그럼에도 장수희의 두 손엔 차가운 철수갑이 채워졌다....노승아는 여이현의 본가로 왔다.여진숙은 그녀가 올 것을 알고
여진숙이 급히 말했다.“서로 만난 적이 있다고 했으니 잘됐구나. 승아야, 저 아이는 주소영이라고 한단다.”“그리고 얘는 노승아란다.”주소영은 노승아를 자세히 훑어보았다.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듯 다소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아주머니, 이분이 혹시... 대표님의 첫사랑인가요?”그녀는 여진숙이 자신의 아이를 받아주었으니 자신도 받아줄 거로 생각했다.그런데 아니었다.노승아는 여이현의 첫사랑이란 칭호를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다.“안녕하세요. 아주머니께서 이미 저한테 소영 씨에 대해 말씀해 주셨어요. 이현 오빠 아이를 배서 지금 집에서 태교에 집중하고 있다면서요.”주소영은 무의식적으로 배를 감쌌다. 행여나 노승아가 자신의 아이를 해칠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노승아도 그런 그녀의 마음을 눈치채고 말했다.“아, 걱정하지 말아요. 이현 오빠 아이라고 했으니까 당연히 잘 대해줘야죠. 아이를 낳고 나면 소영 씨는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거예요.”주소영은 그래도 의심이 갔다.“정말로 제가 아이를 낳아도 괜찮아요?”노승아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전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에요. 절 믿지 못하시겠다면 아주머니를 믿으셔도 돼요. 어차피 그 아이는 아주머니 손주잖아요. 그러니 당연히 해칠 리가 없죠.”여진숙은 당연히 손주를 원했다.“소영아, 넌 아무 걱정 말고 태교에 집중하거라. 승아는 내 친딸이나 다를 바 없는 아이란다.”그 말을 들은 주소영은 어딘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노승아가 여이현의 첫사랑이라고 했으니 그럼 언제든지 그녀의 자리를 빼앗을 수 있었다.온지유를 쫓아내고 나니 이번엔 노승아가 나타났다.딱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하지만 노승아를 아주 살갑게 대하는 여진숙의 모습을 보니 노승아를 아주 마음에 들어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두 사람과 계속 대화를 이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핑계를 댔다.“아주머니, 전 피곤해서 방으로 돌아가서 쉴게요.”여진숙은 주소영의 핑계를 눈치채지 못했다.“그래, 올라가서 쉬어라.”노
그녀는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여진숙이 받아들이지 않았는가.그녀는 여진숙의 앞에서 대놓고 싫은 티를 낼 수 없었다.그리고 악녀가 되기도 싫었다.한참 후.누군가가 노크했다.방에 있던 주소영은 노크 소리에 물었다.“누구세요?”“저에요. 노승아.”주소영은 머뭇거리다가 문을 열어주었다.노승아는 무언가가 담긴 그릇을 들고 서 있었고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쉬고 싶다고 하셔서 제가 국 좀 떠왔어요. 아주머니께서 끓이신 건데 아주 맛있거든요.”주소영이 대꾸했다.“전 입맛이 없네요.”주소영은 국그릇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곤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혹시 저 때문에 입맛이 없는 거예요?”주소영이 급히 말했다.“아녜요. 정말 그런 거 아녜요.”“그럼 됐어요.”노승아는 친근하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아직 어리니까 그냥 언니라고 불러요. 혹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말해도 돼요. 제가 도울 수 있는 건 다 도와줄게요.”열정적인 그녀의 모습에 주소영은 조금 당황했다.“전...”“괜찮으니까 불러봐요. 전 외동딸이라 어릴 때부터 여동생이 그렇게 갖고 싶었거든요. 마침 소영 씨가 저랑 닮았으니까 언니 동생처럼 지내고 싶어서 그래요.”노승아는 뭔가 생각난 듯 말을 이었다.“참, 제가 비서한테 아이 옷 좀 사 오라고 했어요. 마음에 드나 안 드나 한번 봐줘요. 혹시 마음에 안 들면 우리 같이 가서 다른 거로 바꿔요.”말을 마친 뒤 노승아는 쇼핑백에서 아이의 옷을 두 벌 꺼냈다.순간 주소영은 그녀에게서 친근감을 느꼈고 바로 모성애가 가득한 눈길로 그녀를 보았다.“괜찮은데 뭘 이런 걸 다 사 오셨어요. 제 아이 옷을 선물해준 사람은 언니가 처음이에요. 하지만 아직 임신 4주 차라 배도 그렇게 나오지 않았어요.”그녀는 노승아가 꺼낸 아이의 옷을 받았다.아직 아이의 옷을 사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그런데 이렇게 자그마한 옷을 보니 아주 귀엽게 느껴졌다.노승아가 말했다.“일찍 준비해두면 좋죠. 소영 씨 아이는
“그 얘기는 그만하자. 정말 조사해 보고 싶다면 개인 물품이라도 확보해야 해.”“다 검사해 봐야 해. 일상생활을 담은 동영상이 있으면 가장 좋을 거야.”“그래야 판단할 수 있거든. 그렇지 않으면 다른 것들은 다 소용없어.”지석훈은 몇 마디 하고는 바로 최주하를 돌려보내려고 했다.“날 놀리려고 온 거냐? 넌? 그쪽 상황은 어떤데?”지석훈도 사람을 비웃는 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그 말에 최주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떠하긴. 당연히 다 정상이지. 나처럼 인내심이 있는 사람이 드물잖아.”최시후와의 싸움을 뜻하는 말이었다. 지석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그만 가. 나 이제 쉴 거야. 방해하지 말고 얼른 가. 얘기는 나중에 하자.”그는 귀찮은 듯 손을 저었다. 최주하도 별다른 얘기가 없이 어이없는 웃음만 지으며 돌아섰다.최주하가 떠난 후, 지석훈은 일어나 앉아 복잡한 표정으로 앞을 주시했다.아까 문지원이 있을 때, 그는 큰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려고 할 때, 최주하가 들이닥쳐 이런저런 쓸데없는 얘기를 하는 바람에 결국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였다.이제는 사람들이 다 갔으니 드디어 조용히 생각해 볼 수가 있었다. 강윤슬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되짚어보았다.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마음이 쓰이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자존심 때문에 이러는 건지?그러나 무엇이 됐든 강윤슬이 그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그는 안타까운 마음보다는 속으로 비아냥거렸다. 이 순간이 너무 어이가 없었다. 한편, 문지원은 차를 몰고 집으로 향했고 마침 비서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대표님, 지금 아주 심각한 상황입니다. 얼른 오셔야 할 것 같아요. 저도 뭐라 자세히 설명을 해드리리가...”전화기 너머로 비서는 우물쭈물했다.난감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집안에 문제가 생긴 바람에 회사는 지금 그녀 혼자 돌볼 수밖에 없었다.사실 문지원은 원래 회사의 임원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그녀가 회사를 짊어지
그녀는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최주하를 향해 미소를 짓더니 이내 욕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문지원의 모습을 보고 최주하는 참지 못하고 지석훈을 놀리기 시작했다.“너 이 자식, 상상도 못 했어. 이렇게 여자랑 같이 있을 줄은...”“쓸데없는 얘기 그만해. 왜 찾아온 거야? 전화에서 말했던 그 사람은 또 누구고?”지석훈은 최주하와 실없는 장난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남녀 관계의 일에 대해서는 그도 확실히 뭐라 할 수가 없었다. 강윤슬에 대한 그의 마음은 복잡했다. 눈시울이 붉어진 그녀를 보고 마음이 흔들렸던 건 사실이다. 가슴이 아팠고 그녀를 품에 꼭 껴안고 달래주고 싶었다.그러나 오랜 시간 상처를 받고 나니 이젠 강윤슬에 대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조차 몰랐고 그래서 빨리 화제를 돌리고 싶었다. 달라진 그의 표정을 보고 최주하는 장난스럽게 입을 열었다.“그래. 그만 놀릴게.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찾아온 이유는 최지후 때문이야. 전에 최지후의 곁에 사람을 붙였었잖아? 지금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인지에 대해서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최주하는 여울 쪽의 상황에 대해 그한테 대충 말해주었다. 그 당시 여울은 최지후의 변화에 대해 그한테 자세히 얘기했었다. 최지후의 상태가 좋았다가 나빴다가, 어떤 때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할 때도 있다고 했다. 예전 같았으면 다른 생각이 들었거나 잠시 고민해 봤을 것이다.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그래서 네 뜻은 최지후가 조현병을 앓고 있단 말이야?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고 검사를 받아야 해.”“다만 검사를 받으려면 많은 절차가 필요하고 본인이 직접 가야 해.”지석훈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그 얘기에 최주하는 머리가 지끈거렸다.최지후의 약점을 잡게 된다면 최지후를 처리하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최지후가 직접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게 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그의 사람이 가까이 다가간다고 하더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울을 최지후에게 보내 그의 일
최주하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그냥 그런 사람이 있어. 뭘 그렇게 꼬치꼬치 캐물어?”그의 말에 지석훈은 자신의 짐작이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내 직업이 뭔지 잊었어? 나 의사야. 이런 질문에 대해 명확하게 물어야 나도 상황에 맞는 약을 처방할 거 아니야?”“그런 그렇지만 자세하게 확인이 안 돼.”여울이 제공한 정보에 따르면 최주하는 최지후에 대해서 추측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지석훈은 이 방면에서 전문가였다. 그래서 일부러 전화를 걸어 물어본 것이었지만 구체적인 세부 사항은 아직 명확하게 설명할 수가 없었다.“전화로 얘기할 문제가 아니야. 지금 어디야? 내가 그쪽으로 갈게.” 그 얘기에 지석훈은 고개를 돌리고 옆에 있는 문지원을 쳐다보고는 결국 별장의 위치를 알려주었다.“웬일이냐? 별장에서 휴식을 다 하고?”지석훈은 최주하를 무시한 채 핸드폰을 한쪽에 던져버리고 담담한 얼굴로 문지원을 쳐다보았다.“이런 얘기 말고 나한테 할 얘기 더 없어?”그가 강윤슬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강윤슬한테 끌려다닌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여자한테 매력이 없는 남자는 아니었고 그동안 그한테 다가오는 여자들도 많았었다. 다만 강윤슬을 위해 여자들을 함부로 만나지 않았고 다른 여자는 눈에조차 넣지 않았다.그런데 문지원의 모습에 그는 조금 놀랐다. “내가 한 말은 다 진심이에요. 이 관계에서 내가 손해를 본 건 아니라는 뜻이에요. 우리 둘 다 성인이잖아요.”“그러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말아요. 나 먼저 씻을게요.”문지원은 침대에서 뛰어내려 지석훈의 욕실로 들어갔다. 한편, 지석훈은 가만히 침대에 누워있었다. 사실 담배를 한 대 피울 생각이었는데 방금 강윤슬이 들이닥친 바람에 그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마음에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오랫동안 마음에 두었던 여자인데... 그러나 그동안의 굴욕과 상처로 인해 그는 이제 자신의 마음을 잘 모르겠다. 가끔은 사실 지금 이대로도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이 걱정할 필요도 없고 혼자만의
“지후 씨라고 불러.”여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화를 내며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그녀는 얌전히 그의 뜻에 따랐다.“지후 씨, 걱정하지 말아요. 약속은 반드시 지킬게요. 그리고 나 얌전히 있을 거고 당신 화나게 하는 일 없도록 할게요.”갑자기 그가 그녀를 내동댕이쳤고 갑작스러운 힘에 여울은 바닥에 쓰러졌다.그는 익살스러운 광대라도 보듯 웃음을 터뜨렸다. “날 화나게 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 며칠 동안은 손도 치료할 생각 말고. 당신은 좀 아파야 해.”“알았어요.”여울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최시후는 빠르게 돌아섰다.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그녀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최지후는 사람이 아니었고 앞으로 그녀의 처지는 더욱 곤란해질 것이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최주하한테 2억이라는 돈을 받고 최지후의 옆에 있겠다고 약속까지 했는데...앞으로 아무리 힘이 들어도 그녀는 억지로 견뎌낼 수밖에 없었다.한편, 최주하는 지석훈을 찾아갔고 지석훈은 문지원과 함께 있었다.지석훈은 여전히 기분이 안 좋아 보였고 담배를 계속 피웠다.그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강윤슬 씨한테 가봐요. 강윤슬 씨가 먼저 당신한테 고개를 숙였잖아요. 난 진심이라고 생각해요. 당신이 찾아간다면 강윤슬 씨도 당신을 받아줄 거예요.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하는 건 좋은 일이잖아요.”“서로 오해를 풀고 한 걸음 다가선다면 강윤슬 씨는 분명 당신을 선택할 거예요. 두 사람한테는 좋은 결과예요.”문지원은 그한테 많은 얘기를 했다. 그를 설득하고 두 사람을 화해시키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이 말을 할 때 문지원은 가슴이 답답했다. 지금 이 순간의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지석훈은 피식 웃었다.“우리 조금 전까지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야. 당신의 생각대로라면 내가 당신한테 책임을 져야지. 그런데 강윤슬을 찾아가라고? 문지원, 당신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나랑 이렇게 헤어져도 좋아?”이 세상에서 보답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여울은 최주하에 대해 자신의 태도와 충성을 표했다.그녀의 이러한 모습을 본 최주하는 반신반의하며 조롱이 섞인 말투로 입을 열었다.“나한테 충성하는 거 맞아? 돈에 충성하는 거 아닌가?”그의 말에 그녀는 조금 난감해졌다. 처음에는 정말 방법이 없어서 그랬던 것이다. 그날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최주하를 봤고 그녀는 그한테 애원했다.어쩔 수 없이 막다른 골목에 몰리지 않았다면 최주하에게 애원하지도 않았을 거고 자존심까지 다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한테 2억을 줬으니 당신은 저한테 은인이에요. 은인한테 충성을 다하는 건 제가 해야 할 일이고요.”여울은 최주하의 눈빛을 마주하지 못하였지만 자신의 입장을 확실히 표명했다.그녀를 힐끗 쳐다보던 그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됐어. 쓸데없는 얘기는 그만하지. 최지후의 옆에 가 있어. 필요하면 내가 부를 테니까.”“알았어요.”그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여울이 막 돌아서려 할 때 그가 갑자기 그녀를 붙잡았다.“필요한 게 있거나 조금이라도 변화가 생긴다면 바로 연락해. 숨기지도 말고 참지도 마.”“알았어요.”조금 의외였지만 그녀는 여전히 흔쾌히 대답했다. 그와 헤어지고 나서 여울은 최지후의 곁으로 돌아왔다. 최지후는 그녀가 나갔다 온 걸 진작에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자 그녀는 순순히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어디 갔다 왔어?”“잠깐 바람 좀 쐬고 왔어요.”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그의 물음에 대답했다. 최지후의 앞에서 지금 그녀의 모습은 착하기만 한 강아지 같았다. 그러나 최지후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고 이내 그가 그녀의 손을 부러뜨렸다.“아악!”비명을 지르던 그녀는 믿을 수 없는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당신...”내심 불안했다. 최지후가 이렇게 묻고 그녀의 손을 부러뜨린 건 최주하를 만나러 간 사실을 눈치챈 것일까?정말 최지후한테 들켰다면 오늘 그녀는 끝장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울은 더 이상 변명하지 않았다. 최지후가 이
이 사실을 최주하에게 알려야 했다. 그런데 그가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여울은 고개를 숙인 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냥 평소에 입던 대로 입은 거예요. 일부러 이렇게 차려입은 거 아니고요. 주하 씨한테 꼬리 칠 생각도 해본 적 없어요. 최지후 씨가 저한테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그 2억은...”“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머뭇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최주하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렸다.여울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말 그대로예요. 보통 남자들이라면 제 발로 찾아온 여자를 마다할 리가 없죠. 그러나 그날 최지후 씨는 장소를 옮기자고 하더니... 그 후에는 더 이상 저한테 손을 대지 않았어요. 평소에도 절 없는 사람 취급을 하고요.”최주하의 안색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뭐야? 지금 나보고 들으라는 소리인가?”제 발로 찾아온 여자를 마다할 리가 없다니... 그도 거절하지 않았던가? 여울이 자신을 겨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울은 점점 더 고개를 숙였다. “그런 뜻 아니에요. 전 그저... 최지후 씨에 대해 얘기를 한 것뿐이에요. 가끔은 딴 사람 같아 보일 때가 있어요.”그녀가 자신이 발견한 문제에 대해 말을 하자 최주하는 오히려 침묵했다.가끔 다른 사람 같아 보인다면 조현병에라도 걸렸다는 말인가?그러나 그가 보기에 최지후의 정신 상태는 아주 정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여울이 말한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아주 조금은 최지후가 뭔가를 눈치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당신한테 연락할 때, 나랑 만날 때, 혹시 최지후한테 들킨 거 아니야?”최주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싸늘함과 매서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여울은 그런 최주하의 미움을 살 용기가 없었고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아니에요. 최지후 씨한테 들킨 거 없어요. 그날 갑자기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만약 뭔가를 들켰다면 아마 절 가만두지 않았을 거예요. 당신들한테 전 개미 같은 존재 아닌가요?”
강윤슬의 이런 모습은 여자인 문지원이 봐도 마음이 아팠다. 하물며 오랫동안 강윤슬을 사랑한 지석훈의 마음은 오죽할까? 아마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플 것이다.그러나 그는 여전히 차가운 얼굴로 문지원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고 강윤슬의 말에 마음이 약해지지도 않았다. 그것도 모자라 강윤슬을 향해 싸늘하게 한마디 했다.“여자들은 늘 그러잖아. 늦게 온 사랑은 싸구려라고. 우리 남자들도 그래. 나 이제 예전처럼 선배를 사랑하지 않아. 그러니까 선배는 임혁수한테 가.”“임혁수가 선배를 많이 사랑하고 있을 거야.”강윤슬이 임혁수의 사랑을 원했다면 아마 벌써 그와 함께 살았을 것이다. 이렇게 지석훈을 찾아올 리가 있겠는가? 사실 남자든 여자든 모두 마찬가지이다. 사랑할 때는 상대를 보물처럼 여기다가도 사랑하지 않으면 헌신짝 취급을 한다. 한번 마음먹었으면 되돌아보지 않을 것이고 아무리 사랑해도 다시는 돌아서지 않을 것이다. “아니. 이제 장난 그만 쳐. 이런 말 듣고 싶지 않아. 네가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오길 바라. 돌아와 줘.”강윤슬은 목이 멘 목소리로 말을 하면서 눈물이 마치 끈 떨어진 진주처럼 흘러내렸다. 그녀의 이런 모습에 마음이 약해지기 싫었던 그는 아예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 순간, 그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 “얼른 가. 나도 할 일이 있어. 선배가 이러고 있으면 내가 어떻게 볼일을 봐?”지석훈은 그게 어떤 일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듣는 순간, 강윤슬은 깨달았다.지금 두 사람의 옷차림을 보면 두 남녀 사이에 할 일이라는 게 또 뭐가 있겠는가?울면서 애원했지만 지석훈은 요지부동이었고 그녀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그래. 지석훈, 잘 들어.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다시는 나 찾아오지 마.”눈물을 닦으며 말하던 강윤슬은 이내 뒤도 안 돌아보고 별장을 뛰쳐나갔다.강윤슬이 떠난 후, 지석훈은 바로 문지원을 밀어냈다.그의 마음속에 강윤슬이 1 순위라는 걸 문지원은 잘 알고 있었다. “쫓아가 보는
더 이상 강윤슬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던 그는 문지원에게 눈빛을 보냈다.곁으로 다가가자 그가 문지원의 허리를 껴안았다. “선배, 문지원이랑 있으면 나 편해. 사랑은 일방적인 게 아니야. 선배도 그걸 알았으면 좋겠어.”“아니. 이 여자가 너한테 순종하는 거 네가 많이 도와줬기 때문이야. 네가 지석훈이 아니었다면 네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문지원이라는 여자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겠지.”강윤슬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문지원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자신을 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걸 잘 알면서도 문지원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지석훈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어찌 그의 말에 따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석훈 씨한테 순종하는 거 맞아요. 나한테 잘해주니까요. 결혼도 안 한 남녀가 만나겠다는데 뭐가 문제예요?”문지원은 강윤슬을 똑바로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강윤슬 씨, 나랑 석훈 씨가 만나는 게 불만인 거죠? 우리 두 사람은 당신한테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았어요. 석훈 씨가 프러포즈를 했을 때, 받아들이지 않고 임혁수 씨를 찾아간 건 바로 당신이에요.” 프러포즈하던 날, 그곳에는 강윤슬과 지석훈 두 사람뿐이었다. 그런데... 지석훈이 이 일을 문지원에게 알려준 것일까?문지원의 차가운 눈빛을 보니 그녀를 무시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이건 우리 두 사람 사이의 일이에요. 당신이 끼어들 자리가 아니란 말이에요. 지석훈, 너 꼭 이 여자 앞에서 나한테 망신을 줘야겠어?”강윤슬은 흥분된 표정을 지으며 문지원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그녀가 지석훈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이지 않은 건 확실히 두 사람 사이의 일이었다.다만 문지원이 이 얘기를 꺼낸 건 강윤슬이 더 이상 이렇게 집착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이었다. 게다가... 지석훈은 문지원에게 아무 말도 한 적이 없었다. 어떤 일들은 그녀도 단지 두 사람의 대화에서 눈치를 챈 것뿐이었다. 먼저 포기를 한 사람은 강윤슬이었기 때문에 지석훈이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무슨 할 말이 있겠는
지금까지 강윤슬의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그러나 아무리 강윤슬이 후회한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여전히 그의 앞에서 당당했고 고개를 숙이려 하지 않았다.지석훈은 고개를 돌리고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선배 곁에는 이미 임혁수가 있잖아.”“임혁수만으로는 만족 못 하는 거야?”그의 말에 강윤슬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녀와 지석훈 사이의 가장 큰 문제는 임혁수였다. 비록 그녀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임혁수와 아무런 사이도 아니고 그저 단지 과거의 아쉬운 감정만 남아있는 것이었지만 지석훈은 그리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았다. “혁수 씨 얘기가 왜 또 나와? 설마 나더러 혁수 씨를 쫓아내라는 거야? 어떻게 쫓아내니? 이혼하고 혼자 아이를 돌보고 있는 사람인데.”“어찌 됐든 알고 지난 사이인데. 임혁수도 임혁수지만 만약 네가 그렇게 된다면 나도 널 도와줬을 거야.”그녀는 지석훈을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고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듯했다.그도 더 이상 그녀를 바로잡고 싶지 않았다.“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선배 자유야. 하지만 나랑 선배 사이는 이제 완전히 끝났어.”“아니지. 시작한 적이 없으니까 끝낼 것도 없지 뭐.”오랜 시간 강윤슬의 옆에 있었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그의 마음을 받아준 적이 없었다. 강윤슬은 아예 그를 남자 친구의 후보로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 정도의 위치만 했어도 오랫동안 함께 있다 보면 남자 친구로 변할 법도 한데, 그녀는 아니었다. 지금 그의 옆에 문지원이 나타난 걸 보고 강윤슬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걸까?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가. 혼자 돌아가지 말고 임혁수한테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고 해.”그녀의 안전이 걱정되긴 했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차가웠다. 그런 그의 모습에 강윤슬은 가슴이 너무 아팠다.한없이 다정하고 그녀에게 고분고분하던 남자가 이제 더 이상 그녀를 쳐다보지 않고 있다. “정말 내가 너한테 사정까지 해야 하는 거니? 아니면 혁수 씨를 쫓아내야 네 화가 풀릴 거니?”그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