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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1화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배진호는 정중하게 말하며 여이현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여이현의 안색은 약간 풀렸고 그도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온지유는 원래 집에서 밥 먹으려고 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침실을 정리하는 정미리에게 말했다.

“엄마, 저 잠깐 나가 봐야 해서 먼저 식사하세요.”

정미리가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이니?”

“회사 일 때문에요.”

정미리는 온지유에게 다가가 말했다.

“지유야, 이만 퇴사하고 다른 일을 찾는 건 어떻겠니? 세상에 좋은 직장은 많단다.”

이혼한 후에도 여이현의 곁에 남아서 일하는 건 아주 어색한 일이다. 그래서 정미리는 내심 그녀가 퇴사하기를 바랐다.

“알겠어요.”

온지유도 당연히 같은 생각이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여이현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니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단호한 정리였다.

밖으로 나간 온지유는 다시 여이현의 집으로 돌아갔다. 도우미들은 여전히 그녀를 사모님이라고 부르면서 인사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온지유는 신발을 벗으며 도우미에게 물었다.

“스웨터를 못 찾았다고요?”

자초지종을 몰랐던 도우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무슨 스웨터요?”

온지유는 고개를 들었다.

“대표님이 찾아달라고 연락하지 않았나요?”

“아뇨, 대표님은 전화가 없으셨는데...”

온지유는 침묵에 잠겼다. 여이현이 애초에 전화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유 씨?”

한 여자의 목소리에 온지유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주소영은 식탁에 앉아서 보양식을 먹고 있었다.

온지유는 그녀의 차림새를 묵묵히 바라봤다. 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던 볼품없는 소녀가 이제는 명품을 걸치고 있었고 혈색도 부쩍 좋아졌다. 마치 이 집의 안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이 집에서 살기로 했다. 이건 여진숙이 말을 꺼내고, 여이현이 묵인한 일이다.

주소영은 손에 들고 있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지유 씨라고 부르는 건 너무 서먹한 것 같아서 그냥 언니라고 부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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