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68화

Author: 류한나
노승아가 말했다.

“저 병원에 가야 해요.”

“승아 씨가 병원에 가면 촬영은 어떡해?”

오랜 경력을 가진 감독조차도 병원을 핑계로 촬영을 중단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실은 이현 오빠가 다쳐서 입원했어요. 아무래도 걱정돼서 빨리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감독은 여이현의 이름을 듣고 조금 물러섰다. 애초에 노승아는 여이현의 추천으로 이 드라마에 출연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 그럼 하루만 쉬지.”

감독은 속으로 불만이 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자 노승아는 웃으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촬영이 끝나면 오빠랑 함께 식사 대접할게요.”

노승아는 황급히 촬영장을 떠났다. 다른 배우들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감독님, 노승아 한 사람 때문에 저희 스케줄 다 엉망진창이에요. 저는 어머니가 아픈데도 돌아가지 못했는데, 왜 노승아만 특별 대우를 받는 거예요?”

감독은 차갑게 대답했다.

“노승아라서 그래. 내가 낙하산을 무슨 수로 이겨.”

이 말에 배우들은 전부 입을 다물었다.

“노승아는 도대체 뭐가 저렇게 당당할까요?”

매니저의 말에 장다희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감독님이 저렇게 말씀하셨는데 어떡하겠어. 노승아는 우리랑 다르잖아.”

“하긴, 아주 많이 다르죠. 노승아는 연기의 연자도 모르잖아요. 인공 눈물을 써야 눈물 흘릴 수 있는 주제에 무슨 촬영을 한다고...”

장다희는 무표정한 얼굴로 현실을 받아들였다.

“사람마다 타고난 운명이 다른 법이야. 어떤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주연인가 보지.”

장다희는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왔다. 그녀는 노승아와 같은 사람들을 하도 많이 봐서 이제는 놀랍지도 않았다.

노승아는 첫 작품부터 중요한 배역을 맡았다. 이미 다른 배우들보다 몇 단계 위에 있다는 말이다.

감독은 투자자의 낙하산인 그녀에게 언제나 특별 대우를 해왔다. 여이현의 눈치를 보면서 그녀에게만 최고의 스태프를 제공했다. 이건 주연도 없는 대우였다.

노승아의 주위에는 또 여이현이 배치한 일고여덟 명의 조수가 있었다. 그중 아무도 그
Locked Chapter
Continue Reading on GoodNovel
Scan code to download App

Related chapters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69화

    아무리 화가 나도 자신의 몸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 하지만 여이현은 배진호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지유의 냉정한 뒷모습으로 가득했다.‘감히 나보다 먼저 등을 돌려?’여이현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온지유한테 전화해요.”배진호는 잠시 멍해졌다. 여이현이 무엇을 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두 사람의 결혼이 이 지경에 이른 것도 그에게는 큰 충격이었다.그동안 두 사람은 결혼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배진호는 온지유가 조용한 성격이라서 그런 줄 알았고, 여이현이 그녀의 생각을 존중해 그런 줄 알았다.하지만 결국 그것은 사랑 없는 결혼이었던 것이다.‘좀 안타깝네...’전에는 여이현이 온지유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보니 그렇게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배진호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네, 대표님.”그는 온지유에게 전화를 걸었다.같은 시각, 온지유는 부모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일찍이 퇴원하고 싶어 했던 온경준은 골절이 심각하지 않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얼마 전 퇴원했다.병원에서 일어난 소란으로 인해 그들은 말을 잃었다. 표정도 잔뜩 처져 있었다.이때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장수희와 온채린은 명예훼손과 공공질서 위반 혐의로 경찰서에 있었고, 증거가 명확한 관계로 법적 책임을 져야 했다.경찰은 온지유에게 고소할 것이냐고 물었다. 온지유는 지금의 상황부터 정리한 후 경찰서에 가려고 했다.잠시 후 전화가 다시 울렸을 때 그녀는 당연히 경찰서에서 온 전화인 줄 알았다. 그래서 자리를 피하며 정미리에게 말했다.“엄마, 저 전화 좀 받을게요.”“그래.”정미리는 곧 이혼할 마당에 온지유가 시댁에 있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지유야, 네 방은 금방 정리해 놓을게. 당분간 여기서 지내자.”온지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사모님...”배진호는 일단 입을 열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온지유는 배진호의 목소리를 알아채고 물었다.“무슨 일인가요?”그녀는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70화

    배진호는 다시 여이현을 바라보며 말했다.“스웨터는 왼쪽 드레스룸에 있으니, 도우미한테 말하면 된다고 하십니다.”여이현이 미간을 찌푸렸다.“외투는요? 베이지색 외투.”“그 외투는 옷장에 걸려있어요.”온지유가 전화 건너편에서 듣고 대답했다.“스웨터는 됐고 양복을 챙겨줘. 파란색 넥타이도 같이.”“하... 파란색 넥타이는 여러 개 있어요.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거죠?”“세로 줄무늬 있는 거.”“그건 넥타이 상자 28번째 칸에 있어요.”온지유는 이제 여이현의 질문을 예상한 듯 한꺼번에 말을 퍼부었다.“양복과 셔츠는 드라이클리닝 맡긴 걸 제외하고 모두 옷장에 있어요. 겨울옷은 제가 분류해서 드레스룸에 정리해 놨어요. 도우미 아주머니한테 말하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넥타이는 모두 같은 곳에 있고, 칸마다 색깔별로 분류해 뒀어요. 배 비서님이 가도 틀릴 일 없을 거예요...”여이현이 무엇을 묻든 온지유는 바로 답할 수 있었다. 그녀는 외투, 스웨터, 심지어 넥타이의 무늬와 손목시계의 브랜드까지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그녀는 술술 대답할 수 있었다. 여이현의 비서로 일한 3년 동안 그의 취향과 스타일을 완벽하게 파악한 덕분이었다.그녀는 이를 비서로서의 본분, 그리고 아내로서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온지유가 말을 마친 다음 전화 건너편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오랫동안 대답이 없자,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배 비서님, 더 필요한 게 있을까요?”배진호는 당황한 표정으로 여이현을 바라보았다. 여이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온지유가 빈틈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온지유도 알았다. 여이현이 일부러 트집을 잡으려고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녀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다른 일 없으면 이만 끊을게요.”온지유는 배진호가 대답할 틈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 같으면 그녀는 여이현이 필요로 하는 것을 곧바로 배달해 줬을 것이다. 지금 와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71화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배진호는 정중하게 말하며 여이현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여이현의 안색은 약간 풀렸고 그도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온지유는 원래 집에서 밥 먹으려고 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침실을 정리하는 정미리에게 말했다.“엄마, 저 잠깐 나가 봐야 해서 먼저 식사하세요.”정미리가 고개를 들었다.“무슨 일이니?”“회사 일 때문에요.”정미리는 온지유에게 다가가 말했다.“지유야, 이만 퇴사하고 다른 일을 찾는 건 어떻겠니? 세상에 좋은 직장은 많단다.”이혼한 후에도 여이현의 곁에 남아서 일하는 건 아주 어색한 일이다. 그래서 정미리는 내심 그녀가 퇴사하기를 바랐다.“알겠어요.”온지유도 당연히 같은 생각이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여이현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니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단호한 정리였다.밖으로 나간 온지유는 다시 여이현의 집으로 돌아갔다. 도우미들은 여전히 그녀를 사모님이라고 부르면서 인사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온지유는 신발을 벗으며 도우미에게 물었다.“스웨터를 못 찾았다고요?”자초지종을 몰랐던 도우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무슨 스웨터요?”온지유는 고개를 들었다.“대표님이 찾아달라고 연락하지 않았나요?”“아뇨, 대표님은 전화가 없으셨는데...”온지유는 침묵에 잠겼다. 여이현이 애초에 전화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지유 씨?”한 여자의 목소리에 온지유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주소영은 식탁에 앉아서 보양식을 먹고 있었다.온지유는 그녀의 차림새를 묵묵히 바라봤다. 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던 볼품없는 소녀가 이제는 명품을 걸치고 있었고 혈색도 부쩍 좋아졌다. 마치 이 집의 안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그녀는 이 집에서 살기로 했다. 이건 여진숙이 말을 꺼내고, 여이현이 묵인한 일이다.주소영은 손에 들고 있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지유 씨라고 부르는 건 너무 서먹한 것 같아서 그냥 언니라고 부를게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72화

    온지유는 주소영의 행동을 말없이 주시했다. 아무리 곧 이혼할 사이라고 해도, 그녀가 썼던 침대에 다른 사람이 손대는 것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주소영이 침대에 손을 대려고 한 순간 그녀는 주소영의 손을 잡았다.“어떤 스웨터인지는 알아요?”주소영은 잠깐 멈칫하더니 아주 쉽게 대답했다.“그냥 스웨터일 뿐이잖아요. 저도 가져다줄 수 있어요.”주소영은 온지유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자신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온지유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이 자리에 앉고 싶은 거죠? 그러면 자격이 있는지 한 번 확인해 봐야겠어요.”그녀는 침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대표님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아주 명확해요. 예를 들어, 스웨터도 날에 따라 무슨 색깔을 입을지 달라져요. 잘못 고르면 아주 난감해질 거예요.”“헛소리하지 마요!”주소영은 당연히 믿지 않았다. 그녀는 온지유가 한 모든 말이 자신을 물러서게 하려는 속셈이라고 생각했다.“날씨가 추워졌으니, 오빠는 두꺼운 옷을 입고 싶어 할 거예요. 그냥 따뜻하기만 하면 돼요. 애도 아니고 설마 옷 색깔을 가리겠어요?”주소영은 옷장을 열었다. 옷장 안의 옷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그녀는 가장 눈에 띄는 스웨터와 외투를 골라서 들었다.“아무튼 이건 제가 가져다줄게요.”그녀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비록 여진숙은 집에서 쉬기만 하면 된다고 했지만, 그녀는 여이현과 함께 있는 편이 더 좋았다.‘만나지 않으면 언제 정이 생기겠어? 온지유는 비서 생활을 7년이나 했다고 했지? 그런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결혼할 수 있었던 거야.’그녀는 자신도 온지유처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젊고, 예쁘고, 열정도 있었다. 온지유처럼 평범한 여자가 가능하다면, 그녀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밖으로 나가는 주소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온지유는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여이현의 까다로운 성향을 생각하며 이내 결심했다.온지유는 옷장을 열어 겨울옷을 꺼내고, 그중 여이현이 찾았던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73화

    평소 온지유는 줄곧 조용하고 무심한 태도로 타인과의 마찰을 피했다. 주소영이 아무리 도를 넘더라도 그녀는 무심하게 넘기고는 했다.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주소영이 온지유를 얕보기 시작했고, 자신이 그녀보다 우월하다고 여겨 방자하게 굴었다.온지유가 갑자기 폭발해서 뺨을 때리자, 주소영은 오히려 어찌할 바를 몰랐다. 병실 안에는 여이현이 있었기에 그녀는 맞서기보다는 눈물을 글썽이며 위축된 목소리로 말했다.“제... 제가 잘못했어요.”온지유는 주소영이 연기하는 방식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참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아까랑 태도가 너무 다른데요? 주소영 씨는 제가 일부러 엿 먹인다고 했죠. 스스로 너무 대단하다고 착각하지 마요. 근본 없는 주제에 여씨 가문에 들어오자마자 안주인 행세를 하지도 말고요.”온지유의 말에 주소영은 분노를 억누르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의 자존심은 처참히 짓밟히고 말았다.온지유의 차가운 시선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언니, 제가 잘못했어요. 언니가 오해했어요. 제발 때리지 말아 주세요!”그 순간 병실 문이 열렸다. 여이현은 화가 난 상태로 주소영이 얼굴을 감싸고 우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선명한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여이현은 온지유를 냉정하게 바라보았다. 그녀가 집에 다녀온 사실을 알고 있기에, 주소영이 병원에 온 것도 온지유가 알린 것으로 생각했다.그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온지유에게서는 손톱만큼의 질투도 보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녀는 그가 다른 여자와 만나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다른 여자에게 빠지고 무사히 이혼하는 것이 그녀의 소원일 것이다.“두 사람 여기서 뭐 하는 거야?”주소영은 서러운 표정으로 여이현에게 말했다.“제가 다 잘못했어요. 언니는 오해해서 그런 말을 한 거예요. 오빠를 불쾌하게 한 것도 제 잘못이에요. 하지만 언니가 일부러 저한테 거짓말을 해서 오빠를 불쾌하게 한 건..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74화

    “옷 가져왔어요.”온지유는 가방에서 옷을 꺼내며 말했다.“이거 맞죠?”불쾌한 듯 찌푸려진 여이현의 미간도 그녀가 가져온 옷을 보고 나서 조금 풀렸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불만스러운 말투로 물었다.“옷을 가져왔으면서 왜 다른 사람을 보내?”온지유는 주소영을 바라보며 말했다.“그건 주소영 씨한테 물어봐야겠네요. 제가 말렸는데도 고집을 피운 사람은 주소영 씨예요. 그 책임까지 저한테 묻지 마요.”여이현의 시선이 다시 주소영에게로 향했다. 주소영은 그의 동정을 얻고 싶었지만, 냉랭한 시선에 잘못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저... 저는 단지 오빠를 신경 써서 돌보고 싶었을 뿐이에요. 죄송해요. 제 잘못이에요. 다음번에는 주의할게요.”여이현의 목소리는 차가웠다.“나가.”주소영은 여이현에게서 이런 냉정함을 처음 느꼈다. 지금의 그는 그녀를 가여워하던 예전의 그와 전혀 달랐다.‘전에는 날 대학까지 보내주려고 했으면서... 이제는 나도 팔자 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주소영은 온지유 때문에 여이현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만약 온지유가 없었다면, 여이현은 여전히 그녀에게 친절했을 것이다. 여이현의 냉정함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주소영은 눈물을 닦으며 병원을 나섰다. 그렇게 급하게 길을 가다가 누군가와 부딪혔다.“아!”노승아는 서둘러 오다가 누군가와 부딪혔고,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 하이힐을 신었던 그녀는 발목을 살짝 삐끗하고 얼굴을 찡그렸다.주소영은 울며 말했다.“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눈은 장식이에요? 그러게 왜 병원에서 뛰어다녀요?”김예진이 화를 내며 노승아를 부축했다.“언니, 괜찮아요?”노승아는 눈물을 뚝뚝 흘리는 어린 소녀를 보며 안심시키듯 말했다.“발목 삔 거 아니에요? 병원에서 검사 받아보는 게 어때요?”“아니에요, 괜찮아요.”여이현이 걱정됐던 노승아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나는 신경 쓰지 말고 할 일 해요.”잠시 후, 노승아는 여이현의 병실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간 그녀를 본 배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75화

    “어떻게 걱정하지 않을 수 있어요? 오빠가 병원에 입원했잖아요. 제가 입원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저는 다시는 오빠가 병상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도 너무 힘들었다고요. 촬영이 뭐가 중요해요. 차라리 촬영을 안 하는 한이 있더라도 오빠 곁에 있을래요.”노승아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이 말을 듣고, 여이현은 예전에 그가 크게 다쳤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는 노승아가 그를 구해줬다.“그런 일은 없을 거야.”노승아는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전에도 같은 약속을 했어요. 저를 슬프게 하고 싶지 않다면 제발 다치지 말아요. 오빠 몸을 혹사하지 말라고요!”여이현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적이 있었다. 그때 노승아는 7일 밤낮을 지키며 거의 눈을 붙이지 못했다.그 이후로, 여이현이 조금이라도 다치면 노승아는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작은 상처조차 그녀에게는 큰 상처였다. 그녀는 그가 다시 혼수상태에 빠질까 봐 두려워했다.이게 바로 그녀가 촬영장을 떠나 병원으로 달려온 이유다. 그녀는 그를 잃을 수 없었다. 그가 아무리 선을 긋더라도, 그녀의 마음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의 삶에 그녀의 일부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여이현도 그 사실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노승아가 그에게 베푼 은혜는 영원히 잊을 수 없었다.그래서 그는 그녀의 일이라면 무엇이든 도와주려고 했다. 그녀가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되었을 때도 그녀가 다시 삶의 희망을 찾도록 도와주고 싶었다.“알겠어.”여이현이 대답했다.같은 시각, 온지유는 병실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밖에서 음식을 사 왔다. 배진호가 여이현이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체력이 떨어졌다고 말해주었기 때문이다.건강을 회복하려면 잘 먹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녀는 여이현이 좋아할 만한 음식을 사 왔다. 그는 매운 음식이나 단 음식은 좋아하지 않고, 주로 담백한 음식을 선호했다. 온지유는 그의 입맛을 잘 알고 있었고 맞춤하게 준비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76화

    “예진아, 쉿.”노승아가 그녀의 말허리를 자르곤 다시 여이현에게 입을 열었다.“난 괜찮아.”시선을 돌리자 붉게 부어오른 그녀의 발목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배 비서, 얼른 승아를 데리고 의사한테 가세요.”“네, 대표님.”그러자 노승아가 말했다.“병원 갈 필요 없어. 이 정도는 그냥 파스 뿌리면 괜찮아져. 촬영할 때는 이것보다 더 많이 다쳐서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비서님, 의사 대신 약 좀 사다주세요.”배진호는 여이현을 보면서 그가 지시를 내리기를 기다렸다.여이현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가서 약 사와요.”“네, 대표님.”배진호는 바로 자리를 떴다.오랜만에 만났던지라 노승아는 그간 그가 아주 그리웠었다. 촬영하느라 바쁘다고, 온지유 앞에서 자신을 난처하게 한 일로 삐진 척하면서 그를 보러 가는 것을 참고 있기도 했다.하지만 이번에는 아주 잘 찾아온 것 같았다. 적어도 여이현이 전처럼 그녀를 대해주고 있지 않은가.전과 다르지 않은 그의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안심이 되었다.노승아는 과도를 들어 그에게 사과를 깎아 주었다.“다쳤으면서 나한테 연락도 안 하고. 아주머니 아니었으면 난 지금도 몰랐을 거야.”말을 마친 그녀는 그의 대꾸를 기다렸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여이현은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대체 누구의 연락을 기다리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멈칫하던 그녀는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 지유 언니를 지켜주다가 다친 거지? 그런데 지유 언니는 어디에 있어? 몸까지 날려서 구해줬는데 널 간호하러도 안 온 거야?”여이현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온지유는 날 위해 도시락 사러 갔어.”노승아는 입술을 틀어 물었다. 온지유의 행동이 딱히 맘에 들지 않았다.“밖에서 파는 음식은 대부분 깨끗하지가 않아. 네 입맛에도 잘 맞지 않을 거야. 그럴 바엔 차라리 아주머니나 집안 도우미한테 도시락 싸다 달라고 해. 아니면 내가 만들어서 가져와도 돼.”“번거롭게 그럴 필요

Latest chapter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770화

    그는 인명진이 누구인지 몰랐다. 그저 갑자기 나타나 영웅처럼 여자를 구하려는 허세 부리는 젊은 놈 정도로 생각했다. “영웅이 되고 싶으면 주제 파악부터 해라. 당장 꺼져. 안 그러면 매니저 불러서 바로 쫓아낼 테니까.” 손님도 급이 있다. 블랙스페이드 A 카드를 쓸 수 있는 VIP는 일반 손님들과는 대접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인명진은 그를 멍청하게 여기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런 사람과 싸우는 것 자체가 자신을 더럽히는 일이라고 느꼈다.그는 고개를 돌려 은서우에게 말했다. “매니저 불러와요.” “알겠어요. 바로 갈게요.” 은서우는 지금 다른 말이 필요 없다는 걸 깨닫고 곧장 바를 향해 뛰어갔다. 손님은 은서우가 달아나는 모습을 보며 자존심이 바닥에 내팽개쳐진 기분이 들었다. 굴욕감이 분노로 변하며 눈빛이 살기로 물들었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쥐고 거칠게 인명진에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인명진은 이미 단련된 몸이었다. 취객 하나쯤 상대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아까 은서우가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떠오르자 그의 분노는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다행히 그가 제때 도착했다. 아니었으면 은서우는 그들에게 무참히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손님은 순식간에 바닥에 나뒹굴었고 눈두덩이는 순식간에 시퍼렇게 부어올랐다. 그때 매니저가 허겁지겁 달려와 본 것은 VIP 고객이 처참하게 쓰러져 있는 광경이었다. 그는 재빨리 몸을 낮추며 다급하게 손님을 부축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지금 바로 구급차 불러드릴께요.”“너희 술집은 아무 잡것이나 다 들이는 거야? 당장 저 둘을 쫓아내!” 손님은 고함을 지르며 인명진에게 당장 꺼지라고 소리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매니저는 은서우와 손님 사이에서 망설임 없이 손님의 편을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두 사람 모두 손님이긴 했지만 인명진의 소비 수준이 훨씬 높았고 그와 함께 온 사람은 이 술집의 단골 중에서도 최상위급 고객이었다. 매니저의 눈동자가 흔들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769화

    은서우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돈이 필요했고 확실히 일을 해야 했지만 그 정도로 타락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몸을 팔아 돈을 버는 건 감당할 수 없었다. 그녀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나며 공손한 태도로 말을 이어갔다. “손님, 저는 이곳의 서비스 직원입니다. 제 업무는 술을 파는 것에 한정되며 그 이상은 포함되지 않습니다.”“순진한 척하지 마. 여기 온 이상 돈만 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거잖아?” 남자는 은서우를 비웃듯 한 번 쳐다보며 눈빛에 경멸을 숨기지 않았다. “돈은 충분히 줄 테니까 오늘만 잘 해주면 이 술은 내가 다 살게. 못 믿겠으면 너희 매니저한테 나 유인승이 누구인지 한번 물어봐.” 은서우는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를 피하려 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팔 생각이 없었고 고객과 충돌을 일으킬 수도 없었다. 취한 손님은 은서우가 자리를 피하려 하자 바로 화를 내며 일어섰다. 그는 그녀의 팔을 강하게 붙잡고 불쾌한 목소리로 욕설을 쏟아냈다. “내가 너 대접할 기회를 주는 게 영광인 줄 알아야지. 여기 술집에서만 1년에 천만 원은 쓰는데 서비스 직원 하나 못 부르냐?” “손님, 이건 제 업무가 아닙니다. 제발...” “이미 이런 곳에서 일하고 있으면서 무슨 체면을 차리냐?”손님은 은서우의 말을 거칠게 끊으며 말했다.은서우의 눈물이 한순간에 터져 나왔다. 그녀는 그동안 정말 열심히 살아왔지만 하늘은 늘 그녀에게 가혹하기만 했다. “왜 울고 있어? 기분 좋게 나와서 놀고 있는데 네가 다 망쳤잖아.” 손님의 태도는 점점 더 거칠어졌다. 곧 이쪽에서 나는 소란이 남자 매니저의 시선을 끌었다. 그는 다가와 상황을 파악한 뒤 예상한 대로 손님 편에 서서 은서우를 꾸짖기 시작했다. “손님이 한 잔 하자고 하면 그냥 앉아서 같이 있는 게 당연한 거죠. 서비스 직원으로서 어떻게 손님과 시비를 걸 수 있어요?” 은서우는 이제 매니저에게 아무리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매니저는 오직 경제적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768화

    결국 은서우는 경찰을 불렀다. 출동한 경찰은 두 사람을 경찰서로 데려가 상황을 파악한 후 먼저 소태훈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저도 여동생이 있어서 기분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동생분도 이미 성인입니다. 본인의 선택을 존중해야죠. 그리고 이렇게 소란을 피우는 건 명백한 주거 침해입니다.” “죄송합니다. 형사님.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너무 조급했어요. 동생을 좀 재촉하려다 보니 이렇게 되였습니다...” 소태훈은 고개를 숙이며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가 보이는 태도는 너무 자연스럽고 그럴듯했다. 직접 겪지 않았다면 은서우조차 그가 이렇게 능숙하게 거짓된 얼굴을 숨기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은서우 씨, 어르신이 편찮으시다면 확실히 돌아가서 보셔야 합니다. 가족과 갈등이 있다 해도 결국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잖아요. 계속 피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경찰은 계속해서 은서우를 설득했다. 은서우는 그저 대충 핑계를 대며 말했다. “저도 돌아가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에요. 요즘 너무 피곤해서요. 그리고 돌아갈 표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에요.”어차피 오늘은 소태훈을 일단 넘겨야 했다. 이렇게까지 찾아왔으니 첫 번째가 있으면 두 번째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당분간은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결국 경찰의 중재로 소태훈은 물러섰다. 떠나기 전 그는 은서우를 깊고 차가운 눈빛으로 한 번 바라보며 말했다. “먼저 푹 쉬어. 나중에 다시 데리러 올게.” 그 눈빛에서 은서우는 소름이 돋았다. 그의 눈빛은 결코 걱정의 시선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무언의 경고였다. 오늘은 시작에 불과하며 앞으로 반드시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예고였다. 경찰서를 나서며 은서우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예전에 아르바이트했던 술집으로 곧장 향했다. 은서우는 매니저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물었다. “여기 직원 숙소 있나요? 만약 숙소를 사용하게 되면 한 달에 얼마가 차감되나요?” 매니저는 웃으며 답했다. “직원 숙소는 당연히 제공되고 있습니다. 직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767화

    쉴 수 있다면 은서우는 당연히 푹 쉬었다. 최근 들어 너무 피곤해서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을 정도였다. 서랍에서 라면 한 통을 꺼내 먹고 샤워를 하며 피로를 씻어낸 뒤 침대에 누워 편안히 잠을 청하려 했다. 그러나 막 잠이 들려는 찰나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점점 더 세차게. 처음에는 택배 기사일 거라 생각했지만 문을 열고 나서 휠체어에 앉아 있는 소태훈을 보고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의 첫 반응은 문을 닫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은서우, 이제 나랑 말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은 거야?”소태훈이 손을 뻗어 문틈을 막았다. 그의 힘은 엄청나서 은서우가 온 힘을 다해도 그를 밀어낼 수 없었다. 그녀의 저항이 오히려 소태훈을 더 화나게 만들었다. 소태훈은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잡고 말했다. “이번에 온 건 너랑 제대로 얘기하려고 온 거야. 먼저 들어가게 해줘. 천천히 얘기하자.” 은서우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런 말에 속을 리가 없었다. 그를 들여보내는 건 쉬웠지만 그를 내보내는 건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운 일이었다.그녀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우린 할 말이 없어.”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셨다가 어제 밤에 퇴원하셨어. 그걸 너한테 알려주고 너랑 함께 아버지를 보러 가려고 온 거야.”소태훈은 서둘러 말을 꺼냈다. 그는 이 말을 하면 은서우가 마음이 약해져서 함께 가자고 할 거라 생각했다. 은서우는 잠시 흔들렸지만 그들이 예전에 자신에게 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다시 마음을 굳혔다. “난 할 만큼 다 했어. 아버지가 아프시다면 네가 잘 돌봐야지. 왜 날 괴롭히는 거야?”그녀는 발끝으로만 생각해도 알 수 있었다. 만약 소태훈과 함께 돌아가면 그들은 분명 이 이유를 들어 그녀를 강제로 붙잡아둘 것이다. 간신히 빠져나왔는데 다시 바보처럼 돌아갈 순 없었다. “은서우!” 소태훈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변했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은서우는 왜 아직도 가지 않으려는 거지?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766화

    남자가 가볍게 웃더니 예상치 못한 말을 꺼냈다. “제 나이가 멫 살인 줄 아세요?” 은서우는 순간 멈칫했다.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일단 대충 짐작해 보기로 했다. “스무 살?” 겉보기엔 열여덟 정도로밖에 안 보여서 일부러 살짝 올려 잡은 거였다. ‘세포 분열이 빠르면 노화가 늦춰질 테니 기껏해야 두 살 정도 차이 나지 않을까?’ 남자는 미소를 깊이 머금더니 낮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서른다섯이에요. 나이로만 보면 어쩌면 당신과 띠동갑일 수도 있겠네요.”남자는 자신이 상장 기업의 CEO라고 말했다. 벌써 서른이 넘었는데도 전혀 늙지 않으니 집에서는 압박이 심했고 본인도 불안해서 치료를 결심했다고 했다. “평생 이대로 살 수는 없잖아요. 이러다 나중에 진짜 괴물처럼 될지도 모르겠네요.” 은서우는 그 말을 듣고도 현실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 ‘서른이 넘었다고?’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겉보기엔 완전히 고등학생 같았으니까. 졸업한 지도 몇 년이나 지난 은서우는 그제서 몸소 깨달았다. 사람은 겉모습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법이다. 연구소를 나오자 은서우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상황은 예상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수술 날짜가 보름 후로 변경됐어요.” 인명진이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차가운 빛이 서린 눈으로 여전히 앞을 응시한 채 기분이 좋지 않은 듯했다. 은서우는 그가 아까부터 계속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듣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하나였다. “원장님이 시간을 버신 거예요?” 인명진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었던 건 고작 이 보름이라는 시간뿐이었다.원래 수술은 며칠 뒤로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수술이 아니었다. 겉으로는 수술이라 부르지만 실상은 인명진과 그들 사이의 한판 승부였다. 성공하면 돌려보낸다. 어차피 그들도 진짜로 무리수를 둘 생각은 없을 테니까. 실패하면? 그럼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765화

    연구원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연구원은 인명진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결국 타협을 선택했기에 그들은 작은 방에 갖혀진 환자를 만날 수 있었다.은서우는 연구원이 귀신에게 쫓기기라도 한 듯 쏜살같이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물었다.“아까 말씀하신 이준서 박사님과 신 선생님은 누구인가요?”인명진이 별다른 감정 없이 설명했다.“이준서는 아까 저희가 만난 그 남자예요. 내과와 외과를 모두 전공한 박사로 해외에서 오랫동안 공부했죠. 그리고 신 선생님은 의학계의 우두머리 같은 존재예요. 케임브리지와 여러 유명 대학에서 강연한 적이 있어요. 아, 그리고 이준서 박사가 신 선생님의 제자거든요.”은서우의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설마 신석림 선생님인가요?”인명진이 그녀를 힐끗 보며 말했다.“맞아요. 은서우 씨가 신 선생님을 많이 존경하나 봐요?”은서우는 자신이 지나치게 흥분한 것을 깨닫고 급히 고개를 숙였다. 아까 긴장된 분위기를 보면 인명진은 그 두 사람과 무슨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다.그녀가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인명진이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신 선생님을 존경하는 건 당연하죠. 명성이 자자하시잖아요.”그는 두 걸음 앞으로 내디디며 은서우와 거리를 벌렸다. 마치 화가 난 듯한 모습이었다.하지만 은서우는 그것이 단순히 자신의 착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원장님이 이런 일로 화를 내는 성격이었나? 게다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왜 화를 내지?’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불필요한 생각을 떨쳐내고 그를 따라갔다.모니터로 관찰했지만 실제로 환자를 만나니 안타까움이 밀려왔다.“인명진 박사님, 오랜만에 뵙네요. 지난번 이후로 꽤 시간이 지난 것 같아요.”열여덟, 열아홉 살 정도로 추정되는 소년이 침대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그의 피부는 눈처럼 하얗고 속눈썹과 머리카락도 모두 하얗기에 놀라울 정도였다.마치 눈의 요정을 보는 듯했다.“알비노 환자예요?”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764화

    남자의 얼굴에 어린 미소가 살짝 옅어지더니 입을 살짝 삐죽이며 말했다.“그 정도로 아까우세요?”인명진은 남자와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기에 아무런 대답 없이 그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은서우도 그 뒤를 바짝 따라갔다.어깨를 스치며 지나갈 때 남자는 그녀의 귓가에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그쪽에게 인명진의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궁금하군요.”은서우는 동작을 멈추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남자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고 그녀가 고개를 돌리는 것을 보며 놀란 듯 눈썹을 추켜세웠다. 마치 그녀가 돌아볼 줄 몰랐던 것처럼 말이다.은서우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럼 어디 두고 보시죠.”그리고는 갑자기 빛나는 남자의 눈빛을 무시한 채 엘리베이터에 발을 들여놓으며 깊게 숨을 내쉬었다.인명진도 그녀가 한발 늦게 들어오는 것을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깨끗이 정리된 병실 안.환자는 환자복을 입고 침대 위에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방에서 움직일 수 있는 범위는 고작 다섯 걸음 정도였다. 침대에서 화장실까지의 거리도 겨우 열 몇 걸음에 불과했다. 그가 사는 병실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좁았다.병실 내부의 시설도 매우 단순했다. TV도 없고 책상 하나와 의자 몇 개, 그리고 침대 옆 탁자 위의 스탠드와 몇 권의 책이 전부였다.방 네 귀퉁이에는 모두 빨간 점이 반짝이고 있었는데 환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한 감시카메라였다.은서우는 실시간 모니터를 통해 이 장면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사람을 데려다 놓고 이런 방에 가둬두면 정말 미쳐버리지 않을까요?”인명진은 모니터를 바라보며 말했다.“이건 규정이라 저도 방법이 없어요.”그가 개입하고 싶어도 개입할 수 없었다.모든 결정은 팀 내부의 투표를 거쳐야 했다. 당시 인명진은 기권했고 팀원 대부분이 투표한 결과가 바로 지금과 같은 상황이었다.스마트 기계의 자외선이 환자의 세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던 그들의 말을 전해주며 인명진은 쌀쌀한 미소를 지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763화

    그러나 곧 인명진의 시선이 은서우에게로 향했다.“뭐 생각나는 거 있나요?”은서우는 고개를 저었다가 망설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생각은 있지만 실제로 그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모든 생각이 단지 생각일 뿐이죠. 원장님, 그건 원장님이 가르쳐준 거예요.”고개를 든 그녀의 두 눈은 초롱초롱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인명진은 그런 은서우를 바라보며 눈부신 그녀의 모습에서 눈길을 뗄 수 없었다.인명진은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그럼 지금 바로 짐을 챙겨서 저를 따라오세요.”그 말을 들은 은서우가 멍하니 서 있는 모습을 보며 그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은서우 씨가 말했잖아요. 실제로 만나기 전에는 함부로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 말이에요. 그럼 지금 바로 가서 봐야죠.”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아니, 놀라움보다는 충격에 가까웠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은서우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몰랐다.‘멸균 장갑과 도구, 그리고 노트도 가져가야 하나?’“거기 다 있으니 이것들은 필요 없어요.”인명진은 이 말과 함께 은서우의 노트만 챙기고 떠났다.“아.”은서우는 자신의 머리를 탁 치며 왜 그렇게 간단한 걸 생각하지 못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말 기쁨에 겨워서 정신이 없었던 모양이다.환자는 병원이 아닌 병원에서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한 요양원에 있었다.겉보기에는 요양원이었지만 실은 연구소였다. 단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요양원으로 위장한 것뿐이었다. 실제로 요양을 받는 노인은 이곳에 단 한 명도 없었다. 그곳에는 오직 멸균 복이나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만이 있었다.요양원으로 들어가려면 신원 확인이 필요했다.인명진이 목에 걸고 있는 카드를 책임자에게 보여줄 때 은서우가 사진을 힐끔 훔쳐보았다.카드에는 인명진의 증명사진이 붙어 있었다. 사진 속의 그는 단정하고 정직해 보였으며 또한 날카롭고 과묵해 보였다.인명진이 먼저 들어가며 말했다.“뭐해요?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어서 따라오세요.”그 말에 정신을 차린 은서우는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762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지? 원장님은 그녀에게 그렇게 잘해주시는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평소 인간관계에 둔감했던 은서우는 드디어 자신의 이상함을 깨달았고 인명진에 대한 감사로 생긴 친근감이 순식간에 크게 줄어들었다.심지어 물러나고 싶은 충동까지 생겼다.인명진은 그녀에게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왜 말을 안 하죠?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지금 말해도 돼요. 마침 같이 해결할 수 있으니깐요.”인명진은 그녀를 위하는 마음으로 이런 말을 한 것이다.하지만 은서우가 어떻게 감히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알리겠는가!인명진이 그녀의 마음을 알게 된 후 그 차가운 얼굴에 떠오르는 혐오스러운 표정을 상상하자 날카로운 무언가에 찔린 것처럼 가슴 한구석에 아릿한 고통이 퍼졌다.인명진의 의혹이 담긴 눈빛을 마주한 그녀는 마음을 애써 안정시키고 아무 일도 없는 듯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온지유 씨는 그날 저와 아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어요.”말을 마치자 남자의 미간이 펴지는 것을 본 은서우는 순간 죄책감이 들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원장님에게 거짓말을 했고 진실 반 거짓 반으로 그를 속여넘겼다.인명진은 아무런 이상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여성의 마음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를 좋아하는 여성들이 다가와서야 비로소 이상함을 느낄수 있을 정도로 둔감한 스타일이었다.게다가 그는 은서우를 믿고 있었다.인명진은 그녀가 온지유의 행동을 개의치 않는다는 것을 알고 평소보다 훨씬 부드러운 태도로 입을 열었다.“서 있지 말고 이리 와서 앉으세요. 이것도 한번 보세요. 최근 검사 결과에요.”인명진이 건넨 것은 혈액 검사 보고서였다.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갔다.은서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검사 결과지를 보고 또 보았다. 여러번 훑어본 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계속 고개를 저었다.“이상해요, 이건 너무 이상해요. 이 세포 수가 왜 또 몇 배나 늘어난 거죠?”인명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그게 바로 제가 은서우 씨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