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쪽 집안 사람들은 동시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여진숙은 주소영을 바라보며 충격에 빠진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 기다리다가 다시 물었다.“방금 뭐라고 했어? 내 아들의 아이를 가졌다고?”주소영은 마음이 불안했다. 이런 말을 꺼낸 결과를 몰랐기 때문이다.하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저... 대표님의 아이를 가졌어요.”이번에는 모두가 똑똑히 들었다. 처음 만난 여자가 여이현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말이다.온경준과 정미리는 잠시 넋이 나갔다가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엇보다도 여이현이 다른 여자를 만났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온지유가 그동안 여씨 가문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안 봐도 짐작할 수 있었다. 반대로 여진숙은 매우 기뻤다. 그녀의 입장에서 상대가 누구인지는 크게 상관없었다. 그저 여씨 가문의 후손을 낳아주기만 하면 되었다. “그게 정말이니?”여진숙은 급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임신한 지는 몇 달 되었니?”여진숙이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고 주소영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일이 생각보다 훨씬 쉽겠는데...?’“그게... 한 달 좀 넘었어요.”여진숙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아직 티가 안 나겠구나. 초기에는 무조건 조심해야 해. 이현이도 참... 이런 일은 나한테 말해줬어야지.”여진숙은 주소영의 손을 잡으며 친절하게 대했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여이현의 얼굴은 점점 굳어갔다.“아직 확정되지 않은 일을 말해서 뭐 해요.”여진숙은 주소영이 온지유를 난처하게 만든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아이까지 있다니,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이현아, 자신의 명예를 걸고 이런 거짓말을 할 여자는 없단다. 이 아가씨가 누군지 소개해 봐.”여이현은 입을 꾹 다물었다.모든 증거가 주소영이 그의 방에 들어갔다고 나타냈다. 하지만 그의 직감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그는 여러 번 조사를 지시했지만, 완전히 사라진 CCTV 기록 탓에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더군다
온지유는 여진숙의 성격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단지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서였다.정미리는 원래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여진숙의 발언에 화가 치밀어 올라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이런 일이 있는데도 참 당당하네요. 착각하지 마요, 이 관계에서 잘못된 건 결혼 중에 다른 여자를 만나 임신까지 시킨 당신 아들이니까요!”여진숙이 반박했다.“당신 딸년이 애를 낳지 못하니까 내 아들이 겉도는 거 아니에요!”여이현이 차갑게 말했다.“그만해요!”여진숙은 점점 창백해지는 그의 얼굴을 보고 말을 멈추었다.“알았어, 그만할게. 얼른 침대에 가서 누워 있자.”이때 온경준이 말했다.“지유야, 이제 그만하고 돌아가자.”온지유도 이곳에서 백번 말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았어요, 아빠.”그녀는 묵묵히 온경준의 곁으로 걸어갔다.그녀의 단호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여이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그녀를 끝까지 바라보았지만, 끝내 붙잡는 말을 하지 못했다.“이현아.”여진숙이 그를 부축하면서 불렀다. 주소영도 달려와서 함께 부축했다.“들어가자. 뭐 볼 게 있다고.”여이현은 두 사람을 밀어내며 냉정하게 말했다.“배 비서!”그동안 투명 인간처럼 가만히 있던 배진호가 급히 다가와서 말했다.“제가 부축할게요!”여이현은 배진호의 부축을 받으며 침대로 돌아갔다.여진숙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여이현은 자꾸만 그녀에게 거리를 두었다. 아무래도 전에 그녀가 너무 매정하게 군 탓일 것이다.그래서 그녀는 이제 성깔을 죽이고 여이현에게 잘해주려고 했다. 그런데도 여이현은 낯선 사람보다도 못한 대우를 해줬다.딱히 할 말이 없었던 여진숙은 주소영에게 물었다.“너 이름이 뭐라고 했지?”주소영은 여진숙이 온지유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자신감을 얻었다. 그래서 어른이 좋아할 만한 태도로 얌전하게 대했다.“주소영입니다.”여진숙이 다시 물었다.“소영아
여진숙은 창백한 안색의 여이현을 다시 바라보며 생각했다.‘이 아가씨를 좋아한다는 것은 아직 승아를 잊지 못했다는 뜻이겠지. 일을 더 쉽게 해결할 수 있겠어.’주소영은 여이현을 힐끔거리면서 여진숙에게 말했다.“제가 이현 오빠 곁에서 돌보고 있을까요?”“그럴 순 없지.”여진숙은 그녀가 이곳에 있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임신 중인 애가 간병은 무슨... 이현이를 돌봐 줄 사람은 많아. 넌 나랑 집에 돌아가자꾸나. 넌 네 몸만 잘 돌보면 돼.”주소영은 그래도 여이현을 돌보고 싶었다. 온지유가 없는 지금이 그의 곁에 있을 수 있는 최적의 기회였다. 하지만 여진숙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던 그녀는 순순히 머리를 끄덕였다.“네, 아주머니.”그녀의 눈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하지만 괜찮았다. 여이현이 퇴원하면 집에 돌아갈 것이고, 그때는 자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여진숙은 노승아를 생각하며 마음이 복잡했다. 여이현이 다치고 입원해 있는 상황에서 온지유와 완전히 틀어졌으니, 노승아가 오면 그 틈을 탈 수 있다고 생각했다.마음속으로 줄곧 노승아를 며느리로 인정했던 그녀는 급히 핸드폰을 꺼내 들고 메시지를 보냈다.[승아야, 이현이 다쳤어. 빨리 와줘.]같은 시각, 노승아는 촬영장에서 메이크업을 받고 있었다. 30분 후 아주 중요한 씬을 촬영해야 했다.이 드라마는 유명한 감독의 작품이다. 비록 그녀가 주인공은 아니지만, 비중이 꽤 큰 조연 역할을 맡았다. 사실상 조연의 캐릭터가 주연보다 좋아서 여이현이 특별히 얻어준 것이다.이 드라마가 방송되면 무조건 큰 히트를 칠 것이다. 그렇다면 이후 어떤 작품이든 출연할 기회가 생긴다.노승아는 성공을 위해 열심히 촬영에 임하고 있었다. 당분간은 여이현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 시기만 잘 넘기면 곧 여이현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여이현이 그녀를 이렇게까지 도왔으니, 그의 마음속에 그녀가 있다는 것은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었다. 조만간 이 이상의 관계도
노승아가 말했다.“저 병원에 가야 해요.”“승아 씨가 병원에 가면 촬영은 어떡해?”오랜 경력을 가진 감독조차도 병원을 핑계로 촬영을 중단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실은 이현 오빠가 다쳐서 입원했어요. 아무래도 걱정돼서 빨리 가 봐야 할 것 같아요.”감독은 여이현의 이름을 듣고 조금 물러섰다. 애초에 노승아는 여이현의 추천으로 이 드라마에 출연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그래, 그럼 하루만 쉬지.”감독은 속으로 불만이 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자 노승아는 웃으면서 말했다.“감사합니다, 감독님. 촬영이 끝나면 오빠랑 함께 식사 대접할게요.”노승아는 황급히 촬영장을 떠났다. 다른 배우들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감독님, 노승아 한 사람 때문에 저희 스케줄 다 엉망진창이에요. 저는 어머니가 아픈데도 돌아가지 못했는데, 왜 노승아만 특별 대우를 받는 거예요?”감독은 차갑게 대답했다.“노승아라서 그래. 내가 낙하산을 무슨 수로 이겨.”이 말에 배우들은 전부 입을 다물었다.“노승아는 도대체 뭐가 저렇게 당당할까요?”매니저의 말에 장다희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대답했다.“감독님이 저렇게 말씀하셨는데 어떡하겠어. 노승아는 우리랑 다르잖아.”“하긴, 아주 많이 다르죠. 노승아는 연기의 연자도 모르잖아요. 인공 눈물을 써야 눈물 흘릴 수 있는 주제에 무슨 촬영을 한다고...”장다희는 무표정한 얼굴로 현실을 받아들였다.“사람마다 타고난 운명이 다른 법이야. 어떤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주연인가 보지.”장다희는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왔다. 그녀는 노승아와 같은 사람들을 하도 많이 봐서 이제는 놀랍지도 않았다.노승아는 첫 작품부터 중요한 배역을 맡았다. 이미 다른 배우들보다 몇 단계 위에 있다는 말이다.감독은 투자자의 낙하산인 그녀에게 언제나 특별 대우를 해왔다. 여이현의 눈치를 보면서 그녀에게만 최고의 스태프를 제공했다. 이건 주연도 없는 대우였다.노승아의 주위에는 또 여이현이 배치한 일고여덟 명의 조수가 있었다. 그중 아무도 그
아무리 화가 나도 자신의 몸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 하지만 여이현은 배진호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지유의 냉정한 뒷모습으로 가득했다.‘감히 나보다 먼저 등을 돌려?’여이현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온지유한테 전화해요.”배진호는 잠시 멍해졌다. 여이현이 무엇을 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두 사람의 결혼이 이 지경에 이른 것도 그에게는 큰 충격이었다.그동안 두 사람은 결혼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배진호는 온지유가 조용한 성격이라서 그런 줄 알았고, 여이현이 그녀의 생각을 존중해 그런 줄 알았다.하지만 결국 그것은 사랑 없는 결혼이었던 것이다.‘좀 안타깝네...’전에는 여이현이 온지유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보니 그렇게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배진호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네, 대표님.”그는 온지유에게 전화를 걸었다.같은 시각, 온지유는 부모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일찍이 퇴원하고 싶어 했던 온경준은 골절이 심각하지 않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얼마 전 퇴원했다.병원에서 일어난 소란으로 인해 그들은 말을 잃었다. 표정도 잔뜩 처져 있었다.이때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장수희와 온채린은 명예훼손과 공공질서 위반 혐의로 경찰서에 있었고, 증거가 명확한 관계로 법적 책임을 져야 했다.경찰은 온지유에게 고소할 것이냐고 물었다. 온지유는 지금의 상황부터 정리한 후 경찰서에 가려고 했다.잠시 후 전화가 다시 울렸을 때 그녀는 당연히 경찰서에서 온 전화인 줄 알았다. 그래서 자리를 피하며 정미리에게 말했다.“엄마, 저 전화 좀 받을게요.”“그래.”정미리는 곧 이혼할 마당에 온지유가 시댁에 있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지유야, 네 방은 금방 정리해 놓을게. 당분간 여기서 지내자.”온지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사모님...”배진호는 일단 입을 열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온지유는 배진호의 목소리를 알아채고 물었다.“무슨 일인가요?”그녀는
배진호는 다시 여이현을 바라보며 말했다.“스웨터는 왼쪽 드레스룸에 있으니, 도우미한테 말하면 된다고 하십니다.”여이현이 미간을 찌푸렸다.“외투는요? 베이지색 외투.”“그 외투는 옷장에 걸려있어요.”온지유가 전화 건너편에서 듣고 대답했다.“스웨터는 됐고 양복을 챙겨줘. 파란색 넥타이도 같이.”“하... 파란색 넥타이는 여러 개 있어요.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거죠?”“세로 줄무늬 있는 거.”“그건 넥타이 상자 28번째 칸에 있어요.”온지유는 이제 여이현의 질문을 예상한 듯 한꺼번에 말을 퍼부었다.“양복과 셔츠는 드라이클리닝 맡긴 걸 제외하고 모두 옷장에 있어요. 겨울옷은 제가 분류해서 드레스룸에 정리해 놨어요. 도우미 아주머니한테 말하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넥타이는 모두 같은 곳에 있고, 칸마다 색깔별로 분류해 뒀어요. 배 비서님이 가도 틀릴 일 없을 거예요...”여이현이 무엇을 묻든 온지유는 바로 답할 수 있었다. 그녀는 외투, 스웨터, 심지어 넥타이의 무늬와 손목시계의 브랜드까지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그녀는 술술 대답할 수 있었다. 여이현의 비서로 일한 3년 동안 그의 취향과 스타일을 완벽하게 파악한 덕분이었다.그녀는 이를 비서로서의 본분, 그리고 아내로서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온지유가 말을 마친 다음 전화 건너편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오랫동안 대답이 없자,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배 비서님, 더 필요한 게 있을까요?”배진호는 당황한 표정으로 여이현을 바라보았다. 여이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온지유가 빈틈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온지유도 알았다. 여이현이 일부러 트집을 잡으려고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녀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다른 일 없으면 이만 끊을게요.”온지유는 배진호가 대답할 틈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 같으면 그녀는 여이현이 필요로 하는 것을 곧바로 배달해 줬을 것이다. 지금 와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배진호는 정중하게 말하며 여이현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여이현의 안색은 약간 풀렸고 그도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온지유는 원래 집에서 밥 먹으려고 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침실을 정리하는 정미리에게 말했다.“엄마, 저 잠깐 나가 봐야 해서 먼저 식사하세요.”정미리가 고개를 들었다.“무슨 일이니?”“회사 일 때문에요.”정미리는 온지유에게 다가가 말했다.“지유야, 이만 퇴사하고 다른 일을 찾는 건 어떻겠니? 세상에 좋은 직장은 많단다.”이혼한 후에도 여이현의 곁에 남아서 일하는 건 아주 어색한 일이다. 그래서 정미리는 내심 그녀가 퇴사하기를 바랐다.“알겠어요.”온지유도 당연히 같은 생각이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여이현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니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단호한 정리였다.밖으로 나간 온지유는 다시 여이현의 집으로 돌아갔다. 도우미들은 여전히 그녀를 사모님이라고 부르면서 인사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온지유는 신발을 벗으며 도우미에게 물었다.“스웨터를 못 찾았다고요?”자초지종을 몰랐던 도우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무슨 스웨터요?”온지유는 고개를 들었다.“대표님이 찾아달라고 연락하지 않았나요?”“아뇨, 대표님은 전화가 없으셨는데...”온지유는 침묵에 잠겼다. 여이현이 애초에 전화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지유 씨?”한 여자의 목소리에 온지유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주소영은 식탁에 앉아서 보양식을 먹고 있었다.온지유는 그녀의 차림새를 묵묵히 바라봤다. 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던 볼품없는 소녀가 이제는 명품을 걸치고 있었고 혈색도 부쩍 좋아졌다. 마치 이 집의 안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그녀는 이 집에서 살기로 했다. 이건 여진숙이 말을 꺼내고, 여이현이 묵인한 일이다.주소영은 손에 들고 있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지유 씨라고 부르는 건 너무 서먹한 것 같아서 그냥 언니라고 부를게
온지유는 주소영의 행동을 말없이 주시했다. 아무리 곧 이혼할 사이라고 해도, 그녀가 썼던 침대에 다른 사람이 손대는 것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주소영이 침대에 손을 대려고 한 순간 그녀는 주소영의 손을 잡았다.“어떤 스웨터인지는 알아요?”주소영은 잠깐 멈칫하더니 아주 쉽게 대답했다.“그냥 스웨터일 뿐이잖아요. 저도 가져다줄 수 있어요.”주소영은 온지유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자신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온지유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이 자리에 앉고 싶은 거죠? 그러면 자격이 있는지 한 번 확인해 봐야겠어요.”그녀는 침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대표님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아주 명확해요. 예를 들어, 스웨터도 날에 따라 무슨 색깔을 입을지 달라져요. 잘못 고르면 아주 난감해질 거예요.”“헛소리하지 마요!”주소영은 당연히 믿지 않았다. 그녀는 온지유가 한 모든 말이 자신을 물러서게 하려는 속셈이라고 생각했다.“날씨가 추워졌으니, 오빠는 두꺼운 옷을 입고 싶어 할 거예요. 그냥 따뜻하기만 하면 돼요. 애도 아니고 설마 옷 색깔을 가리겠어요?”주소영은 옷장을 열었다. 옷장 안의 옷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그녀는 가장 눈에 띄는 스웨터와 외투를 골라서 들었다.“아무튼 이건 제가 가져다줄게요.”그녀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비록 여진숙은 집에서 쉬기만 하면 된다고 했지만, 그녀는 여이현과 함께 있는 편이 더 좋았다.‘만나지 않으면 언제 정이 생기겠어? 온지유는 비서 생활을 7년이나 했다고 했지? 그런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결혼할 수 있었던 거야.’그녀는 자신도 온지유처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젊고, 예쁘고, 열정도 있었다. 온지유처럼 평범한 여자가 가능하다면, 그녀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밖으로 나가는 주소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온지유는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여이현의 까다로운 성향을 생각하며 이내 결심했다.온지유는 옷장을 열어 겨울옷을 꺼내고, 그중 여이현이 찾았던
나도현은 요즘 너무 피곤한 상태였기에 양시은은 더 이상 그를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그런데도 나도현은 여기까지 찾아왔다.“왔구나. 안 올 줄 알았는데...”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손목이 부러질 뻔한 양시은은 왠지 모르게 서운한 마음을 느꼈다.사람은 누구나 그런 듯했다. 어떤 상황에서는 강하게 버티면서도, 누군가에게서 걱정과 관심을 받으면 그 마음을 견디기 힘들었으니 말이다.나도현은 눈시울이 붉어진 양시은을 품에 안으며 어깨를 미세하게 떨렸다.“미안, 늦었어.”양시은은 나도현을 밀어내지 않고 그에게 조용히 기대었다.소란을 일으킨 사람들은 순조롭게 연행되었다.양시은은 나도현의 차에 타려던 찰나, 어떤 수상한 여인이 카메라를 들고 몰래 다가오는 걸 포착했다.“저 여자 파파라치야!”양시은이 소리쳤다.나도현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녀를 노려봤다. 그의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에 파파라치는 깜짝 놀라며 도망치기 시작했다.하지만 결국 도망치지 못하고 붙잡혔다.나도현은 파파라치의 카메라 안에 있는 사진을 확인한 후, 안색이 어두워졌다.양시은도 처음엔 그 이유를 몰랐으나 카메라를 건네받고서야 깨달았다.카메라의 메모리 카드엔 두 사람의 사진이 가득했는데 심지어 지난번에 하민이를 데리고 문구점을 갔을 때 찍힌 사진도 있었다.양시은은 화가 나서 손이 떨렸다. 파파라치 여자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녀는 이 사람이 바로 하민이가 부딪혔던 그 여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지난번 우리가 부딪혔던 그 사람 아니세요?”“아니에요...”양시은은 처음에 확신이 없었다. 겨우 한 번 마주친 사람을 쉽게 기억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파파라치가 급하게 부인하는 태도를 취하자 그녀는 더욱 확신했다.“역시 맞았네... 그러니까 왜 부딪혀 놓고 아무 말도 안 하나 했지.”알고 보니 그때부터 몰래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었던 것이다.양시은은 최근 온라인에서 떠들썩하게 퍼진 사진들을 떠올리며, 그 여자가 한 짓이라는 의혹을 품었다.“혹시 인터
그 남자는 손을 뻗어 양시은을 잡으려 했고 그녀는 급히 피하려 했지만 결국 손목을 잡혔다. 손목에서 느껴지는 아픔에 양시은은 입을 열었다.“뭐 하시는 거예요?”양시은은 다른 손으로 휴대폰을 들고 바로 신고 전화를 걸려고 했으나 그 남자는 그녀의 휴대폰을 빼앗아 바닥에 내팽개치는 것이었다.휴대폰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액정이 깨져버렸다.양시은은 자기가 너무 성급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이 이 사람들을 과소평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경찰에 신고해 보든가.”그 남자는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멀리서 차준기가 이 상황을 보고 급하게 달려오려 했다.“시은 씨, 잠깐만요. 제가 갈게요.”“오지 마세요!”양시은이 그를 불러 세웠다.그녀는 자기가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이상 다른 사람까지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양시은의 급박한 목소리에 차준기는 발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초조함은 여전히 그의 마음속에서 가시질 않았다.그는 한시도 마음 편히 있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다.그 남자는 양시은이 차준기와 대화하는 걸 보고 실눈을 떴다. 그는 양시은도 나진 그룹의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했다.“역시 너도 그 회사 사람이지? 나도현이 널 보낸 거야? 그놈은 무슨 생각으로 널 보낸 거지?”“예쁜 여자분이 이런 위험한 일에 나서면 안 될 텐데...”그 말이 떨어지자 사람들은 모두 불쾌한 웃음을 터뜨렸다.그 남자가 하는 말을 들은 양시은이 차분하게 물었다.“저희 대표님을 아세요?”그녀는 손목에 느껴지는 통증을 참아가며 여전히 마음속에는 나도현을 떠올리고 있었다.‘나도현을 알고 있는 걸 보면 역시 일부러 나진 그룹을 타깃으로 삼는다는 건데... 배후에서 이 사람들을 조종하는 사람이 누구지?’그 남자의 눈빛이 점점 더 위험하게 변했다. 그는 손에 힘을 더 세게 주면서 말했다.“지금 나를 떠보는 거야?”말로 그 남자를 떠보려는 작전은 실패했지만 양시은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녀는 남은 손으로 가방에서 호신용 스프레이를 꺼내더니 그의
나도현은 차갑고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고 한 번 결정한 일은 절대 바꾸지 않는 사람이었다.‘대표님의 결정을 바꿀 수 있었던 사람이 있다니...’양시은은 조금 당황스러웠다.그녀는 택시를 타고 오성 구역으로 갔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녀는 나도현이 왜 가지 말라고 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그쪽 때문에 우리 어머니 병이 엄중해졌잖아요! 빨리 돈이나 갚아요.”“여러분, 저 사람들을 막아야 해요. 저 사람들은 우리 집을 철거하려고 하거든요!”마을 사람들이 몇 명의 힘없는 사람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몽둥이와 삽이 들려 있었고 누가 봉기를 일으킨 것만 같았다.하지만 그들은 정의로운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 중앙에 서 있는 중년의 남자는 땀을 흘리며 간절히 말했다.“저희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그저 새집을 지을 뿐이에요. 새집을 짓고 나면 들어와서 사셔도 좋다고 했잖아요. 이사 비용도 드리겠다고 했고요.”“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그까짓 몇 푼 안 되는 돈 때문에 내가 너희들 눈치 보면서 살아야 해?”한 사람이 소리를 질렀다.그 비명을 선두로 비난의 소리가 이어졌다.상황이 점점 심각해지자 양시은은 급히 차준기에게 물었다.“사태가 안 좋게 흘러가는 것 같은데... 차 비서님께서 부른 사람들은 도착했나요? 빨리 가서 막아야 할 것 같아요.”차준기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아직 안 왔어요. 조금만 더 기다려요.”두 사람뿐이었기에 지금 나섰다가는 저 사람들한테 당하기만 할 뿐, 아무 소용 없을 것이었다.차준기는 자신이 위험하지는 건 상관없었다. 하지만 양시은은 달랐다. 만약 그녀에게 만일의 경우라도 생기면 나도현이 그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었다.그래서 차준기는 양시은을 붙잡고 조심스레 말렸다.“가지 마세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원래 나서려고 했던 양시은은 사람들의 흉악한 모습을 보며 그만두기로 했다.시간은 1분 1초 흘러갔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오지 않았다.그 사람들은 중간에 있는 중년 남자를 잡아가려는 계획을
양시은은 구석에서 집중한 상태로 회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었다.나도현은 겉으로는 회의 내용에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은연중에 양시은을 바라보고 있었다.하지만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그러다 열정적으로 발표하던 팀장이 물었다.“나 대표님, 이 방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나도현은 그 말을 듣지 못했다.“나 대표님?”팀장이 다시 한번 부르자 나도현은 그제야 대답했다.“별로예요. 다시 만들어 오세요.”그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미간을 찌푸리고 화면을 한 번 훑어보더니 단번에 판단을 내리며 냉정하게 말했다.열심히 발표하던 팀장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나 대표님이 기분이 별로 안 좋은 것 같은데... 착각인가?’회의는 절반쯤 진행되다가 중단되었다.차준기가 갑작스레 한껏 심각한 표정으로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나 대표님, 급한 일이 생겼습니다.”나도현은 손짓으로 기획팀 사람들에게 돌아가서 다시 방안을 준비하라고 지시하고는 홍보팀에게는 여론을 처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양시은은 자신의 노트를 쳐다보다가 잠시 멈추고 회의실을 나섰다.“무슨 일이에요? 표정을 보니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아서요.”차준기는 나도현을 한 번 보고 나서 대답했다.“오성 구역 쪽에서... 문제가 생겼거든요.”양시은은 짐작이 간다는 듯한 미간을 찌푸렸다.오성 구역은 바로 나진 그룹이 매입한 땅이었다.그곳에는 대부분 오래된 주택들이 밀집해 있었는데 이미 오래전에 철거해야 했던 곳이었다.비록 이번에는 나진 그룹에서 주도했지만 사실 이 프로젝트는 위에서 내려온 공공사업이었다. 그렇기에 반드시 잘 처리해야 했다. 하지만 철거 과정이 이렇게 어려울 줄 누가 알았겠는가.오성 구역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첫 번째로 할 일은 그쪽으로 사람을 보내는 것이었다.나도현은 차준기를 보며 말했다.“준기 씨가 한 번 가보세요. 절차에도 익숙하시니까요. 사람을 더 데려가도 좋지만 소란이 일어나는 걸 방지해야 합니다. 특히 기자나 언론은
식사를 마친 후, 양시은은 하민이를 유치원에 데려갔다. 거리는 멀지 않았기에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멀리에서 긴 머리에 목도리를 한 여자 선생님이 유치원 입구에서 부모님과 아이들을 맞이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양시은은 그 선생님이 바로 공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공 선생님은 하민이를 보더니 쪼그려 앉아서 말을 걸었다.“네가 하민이야? 참 잘생겼네.”하민이는 얼굴이 빨개져서 부끄러워하며 양시은의 뒤로 숨었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내밀고 선생님을 관찰했다.공 선생님은 그런 하민이를 보고 너무 귀엽다고 생각했다.양시은은 조금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하민이가 좀 낯을 가려서요...”“괜찮아요. 어린아이들이 다 그렇죠. 자, 이제 들어갈게요. 하민이 어머님, 유치원 내부 좀 구경하실래요?”“아니요. 조금만 있으면 출근 시간이라서요. 퇴근하고 구경할게요.”하민이를 선생님에게 맡기고 간단히 인사를 마친 후 양시은은 자리를 떠났다.출근길에 그녀는 깊은숨을 쉬었다.오늘은 하민이의 첫 유치원 등교일 뿐만 아니라 양시은의 첫 출근일이기도 했다.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그녀는 어느덧 나진 그룹 건물에 도착했고 이미 많은 직원들이 출근해 있었다.오늘이 첫 출근이었기에 그녀는 자신의 업무 자리에 바로 가지 않고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회사와 업무에 대해서 익히는 시간을 가졌다.이 모든 건 나진 그룹에서 보낸 비서들이 준비해 주었다.요즘, 나도현은 아버지를 돌보느라, 회사의 여러 일을 해결하느라 바삐 돌아쳤다.물론 나도현은 변호사가 사업에 참여하는 건 규정 위반이라는 변호사로서의 원칙을 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회사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그뿐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하지만 회사의 직원들은 아무도 그의 비밀을 지켜주지 않고 하나같이 그를 대표님이라고 불렀다.“여기가 회의실입니다. 오늘 오전 10시에 중요한 회의가 열릴 거거든요? 비서로서 당신의 업무는 회의 내용을 기록하는 것입니다.”차준기는 양시은
차는 뒤로 돌며 겨우 멈춰 섰다.운전기사조차 왜 멈췄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때 앞길에서 통제 불능 상태의 트럭이 돌진해 왔다.트럭은 너무 빨리 달려서 그대로 몇십 미터를 미끄러지며 여러 대의 차량을 들이받았다. 날카로운 소리가 귀에 들려왔고 운전기사는 마음이 아찔해 났다.‘만약 방금 양시은이 제때 경고하지 않았다면...’나도현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양시은을 바라보았다. 그는 그녀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려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회전해서 다른 길로 돌아갑시다.”운전기사는 한참 뒤에야 방금의 충격에서 벗어나 차를 다시 운전하기 시작했다.그들이 떠난 뒤, 길은 금세 교통경찰 차량에 의해 둘러싸였고 모든 차는 강제로 에둘러서 가야 했다.차는 안정된 길에서 가고 있었고 운전자도 더욱 긴장하며 운전했다. 사고가 또 일어날까 봐 걱정됐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그 후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무사히 집에 도착한 양시은은 잠든 하민이가 그 위험한 장면을 직접 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린아이의 마음에 트라우마라도 남겼을 것이니 말이다.양시은의 가슴은 아직도 두근거리고 있었다.하민이를 침대에 눕힌 다음 방문을 닫고 나온 그녀는 물 한 모금을 마시며 말했다.“방금 사고는 우리를 노린 거였어.”그 말을 들은 나도현은 실눈을 떴다.양시은은 휴대폰을 꺼내서 방금 받은 메시지를 그에게 보여주었다.“아까 우연히 화면 상단에 뜬 메시지를 보게 됐거든. 거기엔 통제 불능의 차 때문에 일어나는 차 사고가 있을 거라고 적혀 있었어.”“그것도 양채은이 보낸 거야?”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잠시 후, 양시은이 먼저 말했다.“응. 채은이 번호였어. 예전에 몇 번 연락을 시도했을 때는 잘 안됐는데 이번에 다시 나타났더라고.”이렇게 말하는 양시은은 가슴 한편이 아파져 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양시은은 지금까지 양채은의 모습도, 양채은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도 전혀 알지 못했다.그녀의
사실은 나도현을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도 조금 있었다.원래는 이렇게 빨리 동의할 생각이 없었지만 피곤한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바뀌었다.나도현은 그녀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양시은은 거절할 생각이었지만 그의 말이 그녀의 마음을 돌렸다.“입사 축하 선물로 밥 사주는 거야. 꽤 괜찮은 식당이 있거든. 네가 좋아하는 맛일 거야. 우리 돌아가서 하민이도 데리고 가자.”그가 하민이 얘기를 꺼내자 양시은은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하민이는 사실 평소에 외출을 자주 하지 않았기에 그녀는 늘 미안한 마음이 갖고 있었다. 그래서 뭐라도 더 해주고 싶었다.그래서 나도현은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 하민이를 데리고 왔다.마침 아주머니가 저녁 식사를 준비하려 했던 참이었기에 양시은은 그냥 저녁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고 전했다.외식을 하러 나간다는 소식에 하민은 너무 기뻐했다.“엄마, 뭐 먹으러 가요? 저 바비큐 먹고 싶어요!”양시은은 사실대로 이미 레스토랑을 정했놓았다고 하민이를 타일렀지만 그의 반짝이는 눈을 보고 어쩔 수 없이 말을 바꿨다.“그래... 네가 원하는 대로 하자.”그 말을 들은 하민은 아주 기뻐했다.그가 웃는 모습을 보니 양시은도 자연스럽게 입꼬리가 올라갔다.“미안하지만 아까 말한 그 식당은 못 갈 것 같아...”그녀가 말을 끝내지도 못했을 때 나도현이 운전사에게 말했다.“괜찮은 바비큐집으로 가요.”양시은은 고개를 숙이고 심장이 빠르게 뛰는 걸 느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바비큐집에 도착했다. 이 바비큐집은 인테리어가 아주 깔끔한 데다가 테이블도 각각 분리되어 있어서 깨끗했다. 그래서인지 양시은은 더욱 안심되었다. 사실 바비큐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지만 하민이도 있는 만큼 위생에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주문한 바비큐가 나왔지만 그들은 별로 먹지 않았고 대부분 하민이가 다 먹었다.하민이가 얼굴에 기름을 잔뜩 묻히며 먹는 모습을 보자 양시은은 휴지를 가져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닦아주었다.“입에 묻은 것 좀 봐.”“엄
나진 그룹은 여느 때처럼 평온해 보였고 아무리 둘러봐도 큰 논란이 일어난 회사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양시은은 프런트 데스크에 가서 나도현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나도현이라는 이름을 듣고는 살짝 웃었다.“그분은 지금 경성에서 가장 유명한 변호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 분이세요. 왜 로펌에 안 가시고 여길 찾아오셨나요?”“안 계시나요? 그럼 언제 돌아오시는지는 아세요?”양시은은 잠시 멍해져서 생각에 잠겼다.‘방금까지도 통화를 했는데 여기 없다고? 그럼 이런 상황에서 어디로 갔을까?’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했다.“죄송하지만 저도 나 변호사님의 개인 스케줄까지 알고 있진 않아서요. 궁금하시다면 직접 전화로 연락해 보시는 게 어떠세요?”양시은은 더 이상 직원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돌아가려고 했지만 그때 프런트 데스크 직원이 다시 말을 걸었다.“잠시만요. 양시은님 맞으세요?”직원이 조금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양시은을 보며 물었다. 그제야 직원은 자신이 양시은의 신분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걸 떠올렸다.그 말을 들은 양시은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맞습니다만... 무슨 일이세요?”“나도현 변호사님께서 떠나시기 전에 당부하셨거든요. 만약 양시은님께서 오신다면 사무실에서 기다리게 하라고 하셨어요.”“그럼 금방 돌아오시는 거죠?”양시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그가 돌아오는 걸 기다리기로 했다.그녀는 나도현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고 혹시나 자기가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양시은은 사무실에서 그를 두 시간 동안이나 기다렸다.나도현이 미팅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녀는 이미 소파에 누워서 잠들어 있었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은 약간 엉켜 있었는데 표정에서는 피곤이 가득 묻어났다.그 모습을 본 나도현의 눈빛이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양시은은 꿈속에서 누군가가 자기를 어루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주 가벼운 터치여서 그저 간지럽기만 했다.그녀는 손을 들어 한 번 툭 치고는 이렇게 중얼거렸
“어떤 일자리를 찾으려고?”“모르겠어. 아직 찾고 있는 중이라...”“그럴 거면 그냥 우리 회사로 오는 건 어때?”나도현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양시은은 잠깐 당황한 듯싶더니 그의 제안을 거절하려 했다.나도현은 마치 그녀의 생각을 예측한 듯 말했다.“결정을 서두르지는 말고. 어느 회사로 가든 월급은 그냥 그 정도일 거야. 우리 회사보다 좋은 대우는 없을 거라는 얘기지.”양시은은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겼다.그녀는 나도현을 바라보며 오랜 시간 고민하더니 말했다.“생각할 시간을 좀 줘요.”나도현은 양시은을 급하게 재촉하지 않았고 그녀에게 3일이라는 시간을 주었다. 세 날 후면 하민이도 유치원에 가게 될 것이니 말이다.그때면 하민을 돌보지 않아도 됐기에 양시은도 마음 편히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그녀는 여러 곳에 이력서를 보냈지만 결과는 생각보다 실망스러웠다.어떤 곳은 급여가 예상했던 것보다 적었고 어떤 곳은 싱글맘인 그녀를 원하지 않았다. 다들 그녀가 아이에게 집중하느라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양시은은 그러한 차별에 화가 났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나도현이 제시한 조건이 제일 좋아 보이기 시작했다.고민에 빠진 그녀는 온지유에게 전화를 걸었다.“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 그래요. 제 친구 얘기인데 말이죠.”여기까지 들은 온지유는 바로 양시은의 고민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뭘 물어보고 싶으신데요?”“제 얘기가 아니에요.”“알겠어요. 본론부터 말해보세요.”양시은은 한숨을 깊이 내쉬고 자신의 상황을 그대로 전했다.그러자 온지유는 예상보다 더 단호하게 말했다.“뭘 더 고민할 게 있나요? 조건이 좋은 쪽을 골라야죠. 당연한 거 아닌가요?”“정말 제 얘기가 아니라요...”“알았어요, 알았어요. 아무튼 제 뜻은 그렇게 고민할 필요 없다는 얘기예요. 그저 일자리를 구하는 것뿐이잖아요. 그냥 상사로 생각하면 돼요.”온지유의 생각을 들은 그녀는 잠깐 생각하다가 전화를 끊었다.하지만 그래도 양시은은 바로 확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