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금방 회사 앞을 떠났다. 점점 멀어지는 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온지유는 주먹을 꽉 쥐었다.“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대표님과 아는 사이였던 거예요?”“저렇게 안고 갔는데 모르는 사이일 리가 없죠. 대표님이 저희 책임을 물으면 어떡하죠?”직원들의 말소리를 듣고 온지유는 저도 모르게 우울해졌다. 그녀는 여이현이 여자에게 매정한 모습도, 다정한 모습도 전부 본 적 있다. 기준은 여이현이 그 여자에 대한 마음에 있었다.여이현은 노승아를 좋아한다. 그래서 자그마한 상처도 용납하지 못하고 당장 병원에 데려갔다. 주소영도 마찬가지다. 사고가 나기 바쁘게 그녀는 병원에 가고 있다.직원은 잔뜩 당황한 표정이었다. 자신 때문에 주소영이 사고를 당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직원은 온지유가 아직 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황급히 다가갔다.“온 비서님, 만약 대표님이 책임을 물으시려고 한다면 대신 설명 좀 해주세요.”온지유는 정신 차리고 감정을 다잡았다.“사고는 우연히 일어난 거예요. 여러분이 자책할 필요는 없어요. 대표님이 나중에 책임을 물으시면 제가 설명할게요.”“고마워요, 온 비서님.”직원들은 안심하며 말했다.온지유는 고개를 끄덕이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여이현이 주소영을 데리고 나간 지 10분도 안 돼서 사무실에는 온통 그 소식뿐이었다.사람들은 여이현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겼다고 떠들어댔다. 그는 여전히 그런 타입의 여자를 좋아한다면서 말이다.온지유는 여이현이 어떤 타입의 여자를 좋아하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노승아와 주소영은 어떤 유형인지, 그리고 자신은 그들과 얼마나 다른지 생각했다.‘언제쯤이면 나도 대표님의 취향이 되어서 사랑을 받을까?’그녀는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너무 순진하게 느꼈다.타고난 성격은 이미 정해져 있다. 성격을 바꾼다고 해도 잠깐의 관심만 가질 수 있을 뿐이다. 그럴 바에는 자신답게 사는 게 나았다.퇴근 후, 온지유는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강태규를 찾아갔다. 온경준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뿐더러 정미리가 돌봐주고 있어서 가지
강태규는 윗세대와 공감할 수 있었다. 전쟁 끝의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막강한 실력이 있어야만 다른 나라에서 무시하지 않아. 정말 어렵게 얻은 평화인데 잘 지켜내야지.”온지유는 윗세대의 잔혹함을 직접 겪지 않았다. 그래도 강태규의 벨 에포크가 젊은 시절에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그는 나이가 들어도 나라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열정적인 사람이다. 지금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강태규는 눈가가 붉어졌다.온지유는 그의 말을 주의 깊게 들으며, 그의 다리에 남아 있는 총상 자국을 보았다. 그것만 봐도 그들의 고생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었다.“어르신, 우리나라는 충분히 강해요. 더군다나 인재도 많으니 전쟁이 일어날 일은 없을 거예요.”온지유는 그를 안심시키려고 했다. 그러자 강태규는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너무 자만해서는 안 된다.”이때 그는 무언가 떠오른 듯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그래도 인재가 많은 건 사실이야. 이현이 같은 녀석도 있고. 젊은 나이에 벌써 큰 공을 세웠잖니. 그 녀석은 원래 내 후계자였어. 고집스러운 늙은이가 가업을 잇게 한다고 데려가지만 않았어도... 이현이가 나를 따랐었다면 아마 나보다 더 대단한 공을 세웠을 거야.”온지유는 깜짝 놀랐다. 여이현이 회사를 물려받기 전이라면 아마도 그녀가 처음 여이현과 만났던 시기일 것이다.‘혹시 그때 임무 집행 중이었을까?’“지유야, 난 널 믿으니까 하는 말이야.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안 돼.”“네, 알겠어요.”언젠가 여이현이 두 가문이 가까이 지내지 않는 것은 의심을 피하기 위함이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강태규가 여이현과의 사이를 비밀로 하려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온지유는 그의 말을 마음에 새겼다.그녀는 강태규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담요를 덮어 주었다. 다행히 바람은 따뜻했다. 강태규의 안색도 좋아 보였다.온지유는 강태규가 단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요즘은 치아가 받아 주지를 않아서 못 먹는 것으로 알
강태규는 온지유를 경고하고 싶었다. 여이현을 잘 단속해야 한다고 말이다.강태규가 아픈 몸으로 자신까지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온지유는 미소 지은 얼굴로 대답했다.“알았어요. 이번에는 저도 이미 아는 일이라 괜찮아요. 시간이 늦었는데 이만 들어갈까요? 이러다가 감기 걸리시겠어요.”“그래.”강태규도 눈치껏 입을 닫았다.강태규를 병실에 바래다준 다음 온지유는 산부인과에 가봐야 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했다. 이때 마침 주소영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지유 씨, 병원에서 잠깐 만날 수 있을까요? 저 할 얘기가 있어요.”온지유는 바로 주소영의 병실로 향했다.병실 밖에 서 있던 배진호는 온지유가 온 것을 보고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오면 안 되는 곳에 오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사모님이 어떻게 오셨어요?”억지 미소를 지은 배진호와 달리 온지유는 아주 무덤덤했다.“무슨 일 있어요?”“아... 저 일단 대표님한테 와보시라고 할게요.”배진호의 반응에 온지유는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저한테 숨길 일이라도 있어요?”배진호는 말할지 말지 한참이나 망설였다. 그러다가 병실에 있는 주소영을 힐끗 보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냥 직접 들어가서 확인하세요.”온지유는 병실 안의 주소영을 힐끗 봤다. 그녀는 어두운 안색과 반대된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지유 씨, 왔어요.”그녀는 침대에서 내리려다가 다시 발을 올리며 말을 이었다.“죄송하지만 제가 침대에서 내릴 수 없어서요. 대표님이 조심해야 한다고 그렇게 잔소리를 하고 갔어요. 괜찮죠?”배진호는 주소영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 거슬렸다. 없는 말을 지어내는 능력이 이토록 뛰어난 줄은 오늘 처음 알았다.온지유도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겉으로 티 내지 않았다. 그녀는 아주 사무적인 말투로 물었다.“어디 다쳤어요?”“피부가 살짝 까진 게 전부여서 큰 문제는 없어요.”‘그런데도 입원했다고...?’“하지만 알고 보니 제가 임신했더라고요.”이 말을 들은 온지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배진호는 허락을 구하는 듯 온지유를 힐끗 봤다.“나가요.”배진호는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주소영은 이제야 이불을 거두고 몸을 일으키더니 기대하는 표정으로 배를 쓰다듬었다.“대표님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저도 알아요.”온지유는 주먹을 꽉 쥐었다. 주소영은 여전히 머리를 숙인 채 말을 이었다.“제가 그분을 닮아서 대표님이 좋아해 주시는 거라면서요? 저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해요. 제가 바라는 것도 아이가 무사히 태어나는 것뿐이에요.”말을 마친 주소영은 온지유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계속 말했다.“지유 씨도 알죠? 그분 이름 승아라고 하던데?”온지유의 안색은 창백해졌다. 주소영이 이것까지 알 줄은 몰랐던 것이다.“대표님이 알려줬어요? 자기는 승아라는 사람을 좋아하고, 주소영 씨는 대용품이라고요?”“대용품이고 뭐고, 저는 신경 쓰지 않아요. 제 출신에 이 정도 사랑받을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해야죠.”여이현이 직접 말하지 않은 한 주소영은 절대 알지 못할 일이다.마음이 차갑게 식은 온지유는 손톱이 살에 박힐 정도로 힘껏 주먹을 쥐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녀는 여전히 노승아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했다.“지유 씨는 대표님한테 이런 사랑 받아본 적 없죠?”주소영은 대놓고 온지유를 자극했다. 온지유는 절대 자신의 위치에 오르지 못할 것이라는 맹목적인 자신감이 담긴 눈빛으로 말이다.“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저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온지유는 피식 웃었다.“아니에요. 지구는 누구 한 명 사라져도 계속 돌아요. 대표님한테서 벗어나면...”그녀는 지난날을 떠올리며 가볍게 말했다.“나는 오히려 더 잘 살 수 있을 것 같네요.”주소영은 살짝 놀랐다. 그녀가 이토록 덤덤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누군가를 좋아한다고 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는 법이다. 이게 바로 주소영이 생각하는 사랑이다.‘무슨 포기가 이렇게 빨라? 그래, 내 앞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게 틀림없어.’어찌 됐든 주소영은 현실에 만족스러웠다. 아이라는 보험이
“뭐라고요?”주소영은 사색이 된 얼굴로 현실을 부정했다.“아닐 거예요. 제가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요. 시간이 전부 맞아떨어져요. 그 사람은 대표님이 틀림없어요.”“나도 그렇게 믿고 싶다. 그쪽에서 여자를 찾기 시작한 걸 보도 나도 네가 계 탄 줄 알았다고, 이 년아. 근데 우리가 착각했어. 네가 그날 밤 만난 남자는 여이현 대표가 아니라... 웬 50대 아저씨야.”주소영의 안색은 삽시에 창백해졌다. 그녀는 자신의 배를 바라보면서 언성을 높였다.“그러니까 지금 제가 그 50대 아저씨의 아이를 가졌다는 거예요?”엄청난 소식에 그녀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녀의 기쁨도 헛되고 말았다.애초에 기대를 하지 않았으면 실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그날 밤 만난 남자가 여이현이라는 것을 안 순간 그녀는 인생 역전의 기회가 찾아왔다고 믿었다. 잘생기고 돈 많은 남자 덕분에 팔자를 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 남자가 여이현이 아닌 다른 사람이라니... 그녀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소영아, 우리 정신 차리자. 그 남자 나이가 많아도 돈은 꽤 있어. 너 하나 평생 먹여 살리는 건 얼마든지 가능해.”마담은 이미 현실을 받아들인 듯했다. 그녀도 실망하기는 했지만, 현실을 부정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그녀가 원하는 것은 오직 돈뿐이다. 50대 남자에게서도 돈은 빼먹을 수 있기에 크게 걱정할 것도 없었다.하지만 주소영은 아니었다. 전화를 끊은 다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꿈에서 살고 있었다.“아, 아니야. 나는 대표님의 아이를 가졌어. 남들은 다 부러워서 거짓말하는 거야. 믿으면 안 돼!”그녀는 배를 끌어안으며 미친 듯이 중얼거렸다....병원에서 나간 온지유는 바로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그녀는 거리를 따라 걸으며 밤바람을 쐬었다. 기분은 여전히 저조했다. 만약 두 사람이 그날 밤에 만난 것이라면 주소영의 아이는 절대 여이현의 아이일 리가 없다. 그 전부터 만나는 사이였다면 모를까...그녀가 알기로 주소영은 우연
여이현의 말에 배진호는 순간 넋을 잃었다. 그날 밤 여이현과 만난 여자가 주소영이라면 틀림없이 그의 아이를 가졌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이때 여이현이 말했다.“가요.”“네.”배진호는 차를 시동 걸었다. 그러자 여이현이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말했다.“차에서 내리라는 말이었어요.”“대표님, 아직 참석해야 할 모임이 있어요. 다들 기다리고 있는데... 그리고 여기에는 보는 눈이 너무 많아요.”배진호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이곳이 위험해 보였다. 온지유에게는 별문제 없겠지만, 여이현에게는 달랐다. 더군다나 여이현은 절대 이런 곳에 오지 않을 성격의 사람이었다.여이현은 배진호를 응시하며 담담하게 말했다.“배 비서 이런 분위기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어요?”“네?”배진호는 순간 여이현의 질문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 여이현은 마치 그를 위해 놀아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했기 때문이다.의도가 어찌 됐든 여이현의 날카로운 눈빛 앞에서 그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네, 좋아합니다.”“그럼 내려요.”여이현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다가 먼저 차에서 내렸다. 그러고는 묵묵히 오가는 사람을 바라봤다.그는 이런 곳에 사람이 몰리는 이유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짧은 한순간의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달려오는 것도 당연히 이해하지 못했다.이런 생각과 함께 그는 경멸 어린 미소를 지었다.“조심하세요, 대표님.”배진호는 옆에서 그가 사람들과 부딪힐까 봐 조심스럽게 길을 터주었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온지유를 따라갔다.나민우와 함께 고리를 던지며 즐거워하는 온지유를 보자, 그의 눈살은 더욱 깊어졌다. 어린아이도 유치해 할 놀이에 왜 이토록 즐거워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온지유는 50개의 고리를 들고 있었다. 4000원에 50개, 가격도 꽤 저렴했다.그녀는 가장 먼 곳에 있는 도라에몽 인형을 원했다. 덩치가 크고 거리가 멀어서 맞추기 가장 어려운 것이었다.그래도 사람들은 항상 최고를 원한다. 고리 던지기에서도 마찬가지다.“난 도저히 안 되겠
다행히 사장님은 미리 대비하고 있었던 터라 총을 쏘기도 전에 몸을 피하고 있었다.“배 비서, 명중했어요?”여이현은 신경이 온통 다른 곳에 쏠린 듯한 모습으로 물었다.“...”배진호는 안색이 창백해진 여이현을 보며 말했다.“명중할 뻔했어요!”나민우는 온지유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이렇듯 즐겁게 웃는 모습을 처음 보는지라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며 다정하게 물었다.“이젠 감 잡은 거야?”“응, 감 잡았어. 너무 재밌어.”온지유가 웃었다.사장님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웃음을 지었다.“아이고 젊은이 대단하네요. 저 뒤엣것을 맞추는 사람은 아주 드물거든요!”그는 얼른 도레미몽 인형을 온지유에게 건넸다.온지유는 인형을 끌어안았다. 뭔가 원래부터 자신의 것이었던 것처럼 편안한 것이 아주 만족스러웠다.“남은 건 어떻게 할 생각이야?”나민우가 물었다.“흐음, 그냥 다 맞춰보지 뭐. 그러다가 또 맞출 수 있으면 더 좋고.”“응, 알았어.”나민우는 그녀의 말대로 남은 것을 전부 던져 시도했다. 신기하게도 그가 던지는 족족 맞춰 들어갔다. 비록 아무것에도 쓸데가 없는 작은 물건들이었지만 즐겁긴 했다.그러나 옆은 난리판이었다.사장님은 위험하다고 생각해 얼른 입을 열었다.“아이고 젊은 양반, 내가 환불해 줄게요. 환불해 줄 테니까 그만 해요!”배진호는 얼른 사장님을 달랬다.“사장님 괜찮아요. 저희가 망가뜨린 건 이따가 전부 살게요.”탕 소리가 나고 장난감 총의 탄알이 옆에 있던 도자기 인형에 맞춰졌다.도자기 인형은 순간 깨져버렸다.“이보게 젊은이, 풍선을 쏘는 거 아니었나요? 왜 자꾸 여기로 쏴요!”사장은 기분이 나쁜 듯 이내 장난감 총을 제공한 사장한테 화를 냈다.“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에요? 제 장사가 잘되니까 질투해서 손님한테 여기로 쏘라고 시킨 거죠?!”그러자 장난감 총 가게 사장님도 불쾌한 듯 말했다.“아니, 그쪽이 장사 잘된다고 나도 장사 잘되지 말란 법 있어요? 여기 줄 수 있는 손님들 안 보여요
배진호는 땀을 삐질 흘렸다. 여이현은 그의 밥줄이었기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여이현의 좋지 못한 안색을 발견한 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대표님, 화내지 마시고 온 비서님도 계속 놀고 싶은 것 같은데 함께 하자고 할까요?”여이현은 불쾌한 어투로 말했다.“누가 같이 놀고 싶다고 했죠.”그의 말에 온지유는 아쉬운 것이 없다는 듯 나민우에게 말했다.“저쪽에 재밌는 거 더 많아 보이니까 우리 저쪽으로 가자.”“그래.”나민우는 고개를 돌려 여이현을 보았다.“그럼 여 대표님, 전 이만 가볼게요.”두 사람은 걸음을 옮겼다.여이현은 그런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더니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고 누가 들어도 불쾌함이 느껴지는 어투로 말했다.“배 비서, 저 두 사람이랑 같이 놀고 싶어요?”“네, 네!”배진호는 바로 그들을 불렀다.“온 비서님, 전 함께하고 싶어요.”말을 마치자마자 여이현도 따라갔다.두 사람은 나민우와 온지유의 뒤에서 걷고 있었고 시선은 당연히 도레미몽을 품에 꼬옥 안고 있는 온지유에게로 향했다.“흥, 고작 인형 하나 가지고 뭘 저렇게 좋아하는 건지.”방금 그녀가 기뻐하는 모습은 꼭 보물이라도 발견한 사람의 모습 같았다.분명 하잘것없는 싸구려 인형을 안고 있었음에 말이다!그가 거액을 주고 낙찰받은 에메랄드 보석 팔찌를 그녀에게 주었을 때도 방금처럼 기뻐하지 않았다.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체 온지유의 머릿속엔 무엇이 있는지 말이다.값비싼 물건보다 노력해서 얻은 싸구려 인형을 그녀는 더 좋아했다.“여기는 표창을 던질 수 있나 봐.”온지유는 꼭 자객처럼 가면을 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신기한 듯 말했다.그들이 내놓은 1등 선물은 20번의 기회 중 10번만 지정한 곳을 맞추면 얻을 수 있다고 했다.아직 1등 선물을 받아간 사람은 없었다.이것은 아주 큰 도전이었다.흥미를 느낀 온지유는 시도해보고 싶었다.여이현은 관심을 보이는 온지유의 모습에 배진호에게 시켜 결제하라고 했다.배진호는 이번이 여이현이 실력을 보여줄 기회인
강윤슬의 이런 모습은 여자인 문지원이 봐도 마음이 아팠다. 하물며 오랫동안 강윤슬을 사랑한 지석훈의 마음은 오죽할까? 아마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플 것이다.그러나 그는 여전히 차가운 얼굴로 문지원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고 강윤슬의 말에 마음이 약해지지도 않았다. 그것도 모자라 강윤슬을 향해 싸늘하게 한마디 했다.“여자들은 늘 그러잖아. 늦게 온 사랑은 싸구려라고. 우리 남자들도 그래. 나 이제 예전처럼 선배를 사랑하지 않아. 그러니까 선배는 임혁수한테 가.”“임혁수가 선배를 많이 사랑하고 있을 거야.”강윤슬이 임혁수의 사랑을 원했다면 아마 벌써 그와 함께 살았을 것이다. 이렇게 지석훈을 찾아올 리가 있겠는가? 사실 남자든 여자든 모두 마찬가지이다. 사랑할 때는 상대를 보물처럼 여기다가도 사랑하지 않으면 헌신짝 취급을 한다. 한번 마음먹었으면 되돌아보지 않을 것이고 아무리 사랑해도 다시는 돌아서지 않을 것이다. “아니. 이제 장난 그만 쳐. 이런 말 듣고 싶지 않아. 네가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오길 바라. 돌아와 줘.”강윤슬은 목이 멘 목소리로 말을 하면서 눈물이 마치 끈 떨어진 진주처럼 흘러내렸다. 그녀의 이런 모습에 마음이 약해지기 싫었던 그는 아예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 순간, 그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 “얼른 가. 나도 할 일이 있어. 선배가 이러고 있으면 내가 어떻게 볼일을 봐?”지석훈은 그게 어떤 일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듣는 순간, 강윤슬은 깨달았다.지금 두 사람의 옷차림을 보면 두 남녀 사이에 할 일이라는 게 또 뭐가 있겠는가?울면서 애원했지만 지석훈은 요지부동이었고 그녀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그래. 지석훈, 잘 들어.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다시는 나 찾아오지 마.”눈물을 닦으며 말하던 강윤슬은 이내 뒤도 안 돌아보고 별장을 뛰쳐나갔다.강윤슬이 떠난 후, 지석훈은 바로 문지원을 밀어냈다.그의 마음속에 강윤슬이 1 순위라는 걸 문지원은 잘 알고 있었다. “쫓아가 보는
더 이상 강윤슬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던 그는 문지원에게 눈빛을 보냈다.곁으로 다가가자 그가 문지원의 허리를 껴안았다. “선배, 문지원이랑 있으면 나 편해. 사랑은 일방적인 게 아니야. 선배도 그걸 알았으면 좋겠어.”“아니. 이 여자가 너한테 순종하는 거 네가 많이 도와줬기 때문이야. 네가 지석훈이 아니었다면 네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문지원이라는 여자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겠지.”강윤슬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문지원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자신을 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걸 잘 알면서도 문지원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지석훈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어찌 그의 말에 따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석훈 씨한테 순종하는 거 맞아요. 나한테 잘해주니까요. 결혼도 안 한 남녀가 만나겠다는데 뭐가 문제예요?”문지원은 강윤슬을 똑바로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강윤슬 씨, 나랑 석훈 씨가 만나는 게 불만인 거죠? 우리 두 사람은 당신한테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았어요. 석훈 씨가 프러포즈를 했을 때, 받아들이지 않고 임혁수 씨를 찾아간 건 바로 당신이에요.” 프러포즈하던 날, 그곳에는 강윤슬과 지석훈 두 사람뿐이었다. 그런데... 지석훈이 이 일을 문지원에게 알려준 것일까?문지원의 차가운 눈빛을 보니 그녀를 무시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이건 우리 두 사람 사이의 일이에요. 당신이 끼어들 자리가 아니란 말이에요. 지석훈, 너 꼭 이 여자 앞에서 나한테 망신을 줘야겠어?”강윤슬은 흥분된 표정을 지으며 문지원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그녀가 지석훈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이지 않은 건 확실히 두 사람 사이의 일이었다.다만 문지원이 이 얘기를 꺼낸 건 강윤슬이 더 이상 이렇게 집착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이었다. 게다가... 지석훈은 문지원에게 아무 말도 한 적이 없었다. 어떤 일들은 그녀도 단지 두 사람의 대화에서 눈치를 챈 것뿐이었다. 먼저 포기를 한 사람은 강윤슬이었기 때문에 지석훈이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무슨 할 말이 있겠는
지금까지 강윤슬의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그러나 아무리 강윤슬이 후회한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여전히 그의 앞에서 당당했고 고개를 숙이려 하지 않았다.지석훈은 고개를 돌리고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선배 곁에는 이미 임혁수가 있잖아.”“임혁수만으로는 만족 못 하는 거야?”그의 말에 강윤슬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녀와 지석훈 사이의 가장 큰 문제는 임혁수였다. 비록 그녀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임혁수와 아무런 사이도 아니고 그저 단지 과거의 아쉬운 감정만 남아있는 것이었지만 지석훈은 그리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았다. “혁수 씨 얘기가 왜 또 나와? 설마 나더러 혁수 씨를 쫓아내라는 거야? 어떻게 쫓아내니? 이혼하고 혼자 아이를 돌보고 있는 사람인데.”“어찌 됐든 알고 지난 사이인데. 임혁수도 임혁수지만 만약 네가 그렇게 된다면 나도 널 도와줬을 거야.”그녀는 지석훈을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고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듯했다.그도 더 이상 그녀를 바로잡고 싶지 않았다.“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선배 자유야. 하지만 나랑 선배 사이는 이제 완전히 끝났어.”“아니지. 시작한 적이 없으니까 끝낼 것도 없지 뭐.”오랜 시간 강윤슬의 옆에 있었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그의 마음을 받아준 적이 없었다. 강윤슬은 아예 그를 남자 친구의 후보로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 정도의 위치만 했어도 오랫동안 함께 있다 보면 남자 친구로 변할 법도 한데, 그녀는 아니었다. 지금 그의 옆에 문지원이 나타난 걸 보고 강윤슬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걸까?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가. 혼자 돌아가지 말고 임혁수한테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고 해.”그녀의 안전이 걱정되긴 했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차가웠다. 그런 그의 모습에 강윤슬은 가슴이 너무 아팠다.한없이 다정하고 그녀에게 고분고분하던 남자가 이제 더 이상 그녀를 쳐다보지 않고 있다. “정말 내가 너한테 사정까지 해야 하는 거니? 아니면 혁수 씨를 쫓아내야 네 화가 풀릴 거니?”그래야
심호흡을 하던 강윤슬은 그 순간, 지석훈을 되찾아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녀는 임혁수의 손을 뿌리쳤다.“석훈이한테 볼일이 있어. 먼저 갈게. 혁수 씨는 딸이랑 당분간 이 별장에서 지내. 나중에 돈이 생기면 헐값에 넘겨줄게.”말을 마친 그녀는 이내 자리를 떴다. 워커홀릭이었던 지석훈은 병원에서 일하는 것 외에는 다른 곳에 가지 않았다.그러나 오늘 그는 병원에 있지 않았고 병원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그가 휴가라는 걸 알게 되었다. 지석훈의 별장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었던 터라 그녀는 그에게 연락도 하지 않고 바로 그의 별장으로 향했다.문을 두드리는데 뜻밖에도 문을 연 사람은 문지원이었다. 문지원도 그녀를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예의 바르게 입을 열었다.“잠깐만요. 석훈 씨 불러줄게요.”사실 문지원은 별장에 오래 있을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옷이 마르지 않았고 지석훈을 생각해 비서한테 옷을 가져다 달라고도 하지 못했다.어찌 됐든 지석훈은 그녀를 도와준 사람이었고 누군가한테 연락해서 별장으로 오라고 한다면 두 사람 사이를 오해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윤슬이 이렇게 찾아와 마주칠 줄은 몰랐다. 강윤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녀의 시선은 문지원에게 떨어졌다.문지원은 지석훈의 흰색 셔츠를 입고 있었고 그녀의 목덜미에 붉은 자국이 몇 군데 있었다. 성인인 강윤슬이 어찌 그걸 보고도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를 수가 있겠는가?이젠 정말 늦은 것 같다. 만약 일찍 깨달았더라면 지석훈은 여전히 그녀의 곁에 있었을까?강윤슬은 문지원을 가로지나 빠른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가 지석훈을 찾았다.마침 그가 샤워 가운을 입고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고 두 사람은 계단에서 마주쳤다. 180cm가 훨씬 넘는 큰 키, 어두운 눈빛이 그녀에게 떨어졌다. 입술을 오므리고 있던 그녀는 먼저 그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석훈아, 나 결심했어. 전에는 내가 잘못했어. 네 마음도 몰라주고. 하지만 이제는 알 것
또한 회사에 임혁수의 자리를 만들어주었다.임혁수도 자신이 입만 열면 그녀가 절대 거절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건 강윤슬이 완전히 자신에게 빠져드는 것이었다. “나도 이젠 귀국한 지 꽤 되었고. 너... 내가 한 번 결혼한 적은 있지만 누구에게나 과거가 있는 거잖아. 내 과거에 대해 감출 생각은 없어. 우리 딸도 너 많이 좋아하고. 우리한테 기회가 있을까?”임혁수는 강윤슬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다시 돌아왔지만 그녀는 사귀자는 말도 없었고 정신이 딴 데 팔려 있을 때가 많았다. 아마도 지석훈 생각을 하고 있는 거겠지. “아니. 혁수 씨가 돌아온 건 기뻐. 당신을 도와준 건 그저 친구로서 도와준 것뿐이야. 그리고 나 계모가 될 자신 없어.”임혁수의 딸이 예쁜 건 맞지만 아직 엄마가 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을 거절할 줄은 생각지도 못하였다. 임혁수 때문에 지석훈의 프러포즈까지 거절한 강윤슬인데...게다가 그를 회사로 끌어들였고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사람들은 알만큼 다 알고 있었다.그는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왜? 예전에 널 두고 떠난 건 내 잘못이야. 하지만 이제는 내가 돌아왔잖아. 하루라도 젊을 때 같이 있자. 아이가 싫다면 아이는 우리 엄마한테 맡길게.”“강윤슬, 나 더 이상 널 잃을 수가 없어.”그의 목소리는 울컥했고 말을 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강윤슬은 그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어찌 됐든 한때는 많이 좋아했던 사람이고 사랑했지만 얻지 못했던 사람이었으니까. 임혁수가 돌아온 것만으로도 그녀에게는 아쉬움을 달래준 셈이었다.지석훈이 그날 프러포즈를 할 때, 임혁수의 전화 한 통에 그녀는 바로 그를 향해 달려갔다.공항에서 임혁수와 그의 딸을 마주한 순간, 임혁수는 여전히 멋진 남자의 모습이었다. 다만 시간이 흐르고 나니 젊은 날의 아쉬움도 이제는 서서히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게다가 그동안 지석훈 때문에 마음의 상처도 많이 아물게 되었다.지석훈...
한편,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 문지원은 지석훈으로부터 전화를 받게 되었다. “어디 있어? 우리 집으로 와.”“알았어요.”지석훈의 말이라면 그녀는 거절하지 않았다. 어찌 됐든 지석훈은 그녀한테 도움을 많이 준 사람이니까.만약 지석훈이 없었더라면 그녀의 처지가 얼마나 비참할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잠시 후, 퇴근하고 나서 그녀는 바로 지석훈의 집으로 향했다. 뜻밖에도 그는 나른하게 소파에 앉아 있었고 그녀를 본 순간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가까이 다가가자 그가 그녀의 손목을 확 낚아챘고 그녀는 그의 다리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문지원은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석훈 씨, 날 여기로 부른 건...”차마 입 밖으로 다 꺼내지 못할 말이었다.지석훈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향기가 꽤 좋더라고맛있더라고. 내가 오라고 하니까 이렇게 왔잖아. 그럼 충분한 거 아니야?”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가 저돌적으로 입을 맞춰왔다. 하룻밤의 섹스로는 끝나기가 아쉬웠던 관계, 두 사람은 서로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한편, 임혁수는 강윤슬을 위해 정성껏 장미 꽃다발을 준비했다. 장미꽃은 강윤슬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고 평소에도 장미꽃을 보면 그렇게 오랫동안 기뻐했었다.그런데 어떻게 된 건지 장미꽃을 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지석훈이 떠올랐다. 지석훈은 사업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오로지 의학에만 몰두하여 자신의 노력으로 의학계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예전에 지석훈은 그녀에게 각양각색의 장미꽃을 선물해 주었다. “왜 그래?”임혁수도 그녀가 딴생각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요즘 들어 강윤슬은 툭 하면 정신이 빠진 사람처럼 멍해 있었다.그런 모습을 보고 그는 강윤슬이 변했다는 느낌이 들었다.“아니야.”정신이 돌아온 강윤슬의 말투는 차갑기만 했다.차가운 강윤슬의 태도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예전의 강윤슬이라면 그를 중심으로 맴돌고 있던 사람이었는데...지금 이러는 걸 보면 아마도 지석훈 때문인 것 같았다.“
“왜? 마음이라도 아픈 거야?”“알았어요.”그녀는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잠시 후, 집으로 돌아와 불을 켜던 그녀는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최지후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왜 불도 안 켜고 있어요?”여울은 놀란 가슴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어두컴컴한 게 좋아서.”그가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이리 와봐.”여울은 얌전히 다가가 살짝 몸을 숙여 그의 관자놀이를 주물렀다.“왜요? 기분 안 좋아요?”“응.”무심하게 대답하던 그가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당신은 나 배신하지 않을 거지?”그 말에 여울은 손끝이 살짝 떨렸다.‘설마 최지후가 뭔가 눈치라도 챈 걸까?’그녀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그냥 궁금해서.”그가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당연히 그럴 일 없죠. 난 지후 씨 곁에 평생 있을 거예요.”그녀는 예쁜 말로 골라서 했고 원하는 답을 들은 최지후는 이내 환하게 웃었다.“그래. 당신이 날 배신한다면 내가 당신을 지옥으로 끌고 갈 거야.”농담처럼 들리지만 왠지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졌다. ...“윤슬 씨, 나 어떡하죠? 최근에 회사의 프로젝트들이 지석훈 때문에 다 엉망이 되어버렸어요.”엄우정이 다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지금 이 순간, 그녀는 문지원을 건드린 것이 엄청 후회되었다.강윤슬은 그녀를 보며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 바보같이 왜 일을 만들어서는... 일이 틀어지니까 날 찾아와?’“윤슬 씨, 말 좀 해봐요. 내가 누구 때문에 그런 건데요?”강윤슬이 말이 없자 엄우정은 더 초조해졌다.이번 일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집에도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강윤슬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우정 씨, 석훈이는 이제 우정 씨가 알던 사람이 아니에요. 나도 우정 씨를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모르겠어요.”잠시 머뭇거리던 그녀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문지원 씨를 찾아간다면 어쩌면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몰라요. 문지원 씨는 줄곧 우정 씨와 협력하고 싶어
최주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역시 그럴 줄 알았어. 문지원 씨 때문이 아니라면 네가 나한테 보자고 할 일도 없겠지.”“말해 봐.”한참을 망설이던 지석훈은 끝내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못했다.“됐다. 술이나 먹으러 가자.”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최주하도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술잔을 들자마자 최주하의 핸드폰이 울렸고 확인해 보니 여울한테서 걸려 온 전화였다. “잠깐 전화 좀 받게 올게.”지석훈은 고개를 끄덕였고 최주하는 밖으로 나오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무슨 일이야?”“볼 일이 있어서요...”전화를 끊고 최주하는 다시 지석훈에게로 다가갔다. “미안하다. 일이 있어서 가 봐야 할 것 같아. 나중에 시간 되면 내가 술 살게.”“됐어. 일 있으면 가.”최주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혼자 술을 마시던 지석훈은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신한 그룹의 그 프로젝트, 나한테 넘겨.”전화를 끊은 후, 그는 눈앞의 술잔을 쳐다보며 깊은 생각에 빠져 버렸다. 자신이 왜 신한 그룹을 겨냥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이 본능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한편, 프라이빗한 호텔에 도착한 최주하는 흰 원피스를 입은 채 소파에 앉아 있는 꽃 같은 여인, 여울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의 눈빛은 아무런 파동이 없었다. “말해.”여울은 그를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주하 씨, 최지후 씨가 저한테 마음을 완전히 연 것 같아요.”그녀의 말대로 확실히 성공적이었다. 현재 최지후는 여울을 완전히 신임하고 있었고 무방비 상태라 그녀에게 많은 편의를 제공한 것도 사실이다.“알아. 하지만 난 더 가치가 있는 것이 필요해.”최주하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왠지 모르게 갑자기 부담감이 확 밀려왔고 최주하가 만족할 만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자신의 처지가 곤란해질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저... 최지후 씨가 최근에 입찰을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입찰 문서를 손에 넣었어요.”그녀는 급히 입을 열
문지원은 이미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였고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라 고통스러웠다. 지석훈에게 붙어있으면 조금은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손을 뻗어 그의 목을 감싸고는 필사적으로 그를 향해 더 가까이 다가갔다. 부드러운 입술이 닿자 흠칫 놀라던 그의 눈빛이 갑자기 어두워졌다.그가 앞에 앉아 있는 운전기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출발해요. 가장 가까운 호텔로 갑시다.”이내 가림막이 내려졌고 문지원은 여전히 끙끙거리며 그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길에 그의 몸도 덩달아 뜨거워졌다. 얼마 후, 차가 호텔 앞에 멈춰 섰고 그가 그녀를 안아 들고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프런트 데스크에 다가가 블랙 카드를 꺼내며 한마디 했다.“스위트룸으로 잡아줘요.”프런트 데스크의 직원은 훤히 다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룸에 들어온 후, 그는 문지원을 침대에 눕혔다. 막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하는데 그녀가 그의 목을 감싸며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가지 마요.”그녀를 한참 동안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문지원, 이건 당신이 선택한 거야.”더 이상 그도 참지 않았고 들끓어 오른 욕정을 드러냈다. ...뜨거웠던 밤이 지나고 아침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잠에서 깨어난 문지원이 몸을 움직이는데 갑자기 온몸이 쑤시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자마자 그녀는 바로 고개를 돌렸고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그가 천천히 눈을 뜨는데 눈빛은 평온하기만 했다.“깼어?”“저기... 우리...”그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지만 지석훈은 아주 자연스러웠다.“걱정하지 마. 책임질게.”“책임... 책임질 필요 없어요. 어젯밤 일은 사고였어요.”어젯밤의 일에 대해 기억이 남아있었고 자신이 약을 먹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이 일로 지석훈한테 뭔가를 요구하고 싶지 않았고 오히려 그한테 고마웠다. 그가 아니었다면 어젯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르니까.“왜? 그렇게 나랑 선 긋고 싶은 거야?”그녀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는 차갑게 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