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요?”주소영은 사색이 된 얼굴로 현실을 부정했다.“아닐 거예요. 제가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요. 시간이 전부 맞아떨어져요. 그 사람은 대표님이 틀림없어요.”“나도 그렇게 믿고 싶다. 그쪽에서 여자를 찾기 시작한 걸 보도 나도 네가 계 탄 줄 알았다고, 이 년아. 근데 우리가 착각했어. 네가 그날 밤 만난 남자는 여이현 대표가 아니라... 웬 50대 아저씨야.”주소영의 안색은 삽시에 창백해졌다. 그녀는 자신의 배를 바라보면서 언성을 높였다.“그러니까 지금 제가 그 50대 아저씨의 아이를 가졌다는 거예요?”엄청난 소식에 그녀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녀의 기쁨도 헛되고 말았다.애초에 기대를 하지 않았으면 실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그날 밤 만난 남자가 여이현이라는 것을 안 순간 그녀는 인생 역전의 기회가 찾아왔다고 믿었다. 잘생기고 돈 많은 남자 덕분에 팔자를 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 남자가 여이현이 아닌 다른 사람이라니... 그녀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소영아, 우리 정신 차리자. 그 남자 나이가 많아도 돈은 꽤 있어. 너 하나 평생 먹여 살리는 건 얼마든지 가능해.”마담은 이미 현실을 받아들인 듯했다. 그녀도 실망하기는 했지만, 현실을 부정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그녀가 원하는 것은 오직 돈뿐이다. 50대 남자에게서도 돈은 빼먹을 수 있기에 크게 걱정할 것도 없었다.하지만 주소영은 아니었다. 전화를 끊은 다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꿈에서 살고 있었다.“아, 아니야. 나는 대표님의 아이를 가졌어. 남들은 다 부러워서 거짓말하는 거야. 믿으면 안 돼!”그녀는 배를 끌어안으며 미친 듯이 중얼거렸다....병원에서 나간 온지유는 바로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그녀는 거리를 따라 걸으며 밤바람을 쐬었다. 기분은 여전히 저조했다. 만약 두 사람이 그날 밤에 만난 것이라면 주소영의 아이는 절대 여이현의 아이일 리가 없다. 그 전부터 만나는 사이였다면 모를까...그녀가 알기로 주소영은 우연
여이현의 말에 배진호는 순간 넋을 잃었다. 그날 밤 여이현과 만난 여자가 주소영이라면 틀림없이 그의 아이를 가졌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이때 여이현이 말했다.“가요.”“네.”배진호는 차를 시동 걸었다. 그러자 여이현이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말했다.“차에서 내리라는 말이었어요.”“대표님, 아직 참석해야 할 모임이 있어요. 다들 기다리고 있는데... 그리고 여기에는 보는 눈이 너무 많아요.”배진호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이곳이 위험해 보였다. 온지유에게는 별문제 없겠지만, 여이현에게는 달랐다. 더군다나 여이현은 절대 이런 곳에 오지 않을 성격의 사람이었다.여이현은 배진호를 응시하며 담담하게 말했다.“배 비서 이런 분위기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어요?”“네?”배진호는 순간 여이현의 질문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 여이현은 마치 그를 위해 놀아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했기 때문이다.의도가 어찌 됐든 여이현의 날카로운 눈빛 앞에서 그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네, 좋아합니다.”“그럼 내려요.”여이현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다가 먼저 차에서 내렸다. 그러고는 묵묵히 오가는 사람을 바라봤다.그는 이런 곳에 사람이 몰리는 이유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짧은 한순간의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달려오는 것도 당연히 이해하지 못했다.이런 생각과 함께 그는 경멸 어린 미소를 지었다.“조심하세요, 대표님.”배진호는 옆에서 그가 사람들과 부딪힐까 봐 조심스럽게 길을 터주었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온지유를 따라갔다.나민우와 함께 고리를 던지며 즐거워하는 온지유를 보자, 그의 눈살은 더욱 깊어졌다. 어린아이도 유치해 할 놀이에 왜 이토록 즐거워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온지유는 50개의 고리를 들고 있었다. 4000원에 50개, 가격도 꽤 저렴했다.그녀는 가장 먼 곳에 있는 도라에몽 인형을 원했다. 덩치가 크고 거리가 멀어서 맞추기 가장 어려운 것이었다.그래도 사람들은 항상 최고를 원한다. 고리 던지기에서도 마찬가지다.“난 도저히 안 되겠
다행히 사장님은 미리 대비하고 있었던 터라 총을 쏘기도 전에 몸을 피하고 있었다.“배 비서, 명중했어요?”여이현은 신경이 온통 다른 곳에 쏠린 듯한 모습으로 물었다.“...”배진호는 안색이 창백해진 여이현을 보며 말했다.“명중할 뻔했어요!”나민우는 온지유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이렇듯 즐겁게 웃는 모습을 처음 보는지라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며 다정하게 물었다.“이젠 감 잡은 거야?”“응, 감 잡았어. 너무 재밌어.”온지유가 웃었다.사장님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웃음을 지었다.“아이고 젊은이 대단하네요. 저 뒤엣것을 맞추는 사람은 아주 드물거든요!”그는 얼른 도레미몽 인형을 온지유에게 건넸다.온지유는 인형을 끌어안았다. 뭔가 원래부터 자신의 것이었던 것처럼 편안한 것이 아주 만족스러웠다.“남은 건 어떻게 할 생각이야?”나민우가 물었다.“흐음, 그냥 다 맞춰보지 뭐. 그러다가 또 맞출 수 있으면 더 좋고.”“응, 알았어.”나민우는 그녀의 말대로 남은 것을 전부 던져 시도했다. 신기하게도 그가 던지는 족족 맞춰 들어갔다. 비록 아무것에도 쓸데가 없는 작은 물건들이었지만 즐겁긴 했다.그러나 옆은 난리판이었다.사장님은 위험하다고 생각해 얼른 입을 열었다.“아이고 젊은 양반, 내가 환불해 줄게요. 환불해 줄 테니까 그만 해요!”배진호는 얼른 사장님을 달랬다.“사장님 괜찮아요. 저희가 망가뜨린 건 이따가 전부 살게요.”탕 소리가 나고 장난감 총의 탄알이 옆에 있던 도자기 인형에 맞춰졌다.도자기 인형은 순간 깨져버렸다.“이보게 젊은이, 풍선을 쏘는 거 아니었나요? 왜 자꾸 여기로 쏴요!”사장은 기분이 나쁜 듯 이내 장난감 총을 제공한 사장한테 화를 냈다.“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에요? 제 장사가 잘되니까 질투해서 손님한테 여기로 쏘라고 시킨 거죠?!”그러자 장난감 총 가게 사장님도 불쾌한 듯 말했다.“아니, 그쪽이 장사 잘된다고 나도 장사 잘되지 말란 법 있어요? 여기 줄 수 있는 손님들 안 보여요
배진호는 땀을 삐질 흘렸다. 여이현은 그의 밥줄이었기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여이현의 좋지 못한 안색을 발견한 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대표님, 화내지 마시고 온 비서님도 계속 놀고 싶은 것 같은데 함께 하자고 할까요?”여이현은 불쾌한 어투로 말했다.“누가 같이 놀고 싶다고 했죠.”그의 말에 온지유는 아쉬운 것이 없다는 듯 나민우에게 말했다.“저쪽에 재밌는 거 더 많아 보이니까 우리 저쪽으로 가자.”“그래.”나민우는 고개를 돌려 여이현을 보았다.“그럼 여 대표님, 전 이만 가볼게요.”두 사람은 걸음을 옮겼다.여이현은 그런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더니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고 누가 들어도 불쾌함이 느껴지는 어투로 말했다.“배 비서, 저 두 사람이랑 같이 놀고 싶어요?”“네, 네!”배진호는 바로 그들을 불렀다.“온 비서님, 전 함께하고 싶어요.”말을 마치자마자 여이현도 따라갔다.두 사람은 나민우와 온지유의 뒤에서 걷고 있었고 시선은 당연히 도레미몽을 품에 꼬옥 안고 있는 온지유에게로 향했다.“흥, 고작 인형 하나 가지고 뭘 저렇게 좋아하는 건지.”방금 그녀가 기뻐하는 모습은 꼭 보물이라도 발견한 사람의 모습 같았다.분명 하잘것없는 싸구려 인형을 안고 있었음에 말이다!그가 거액을 주고 낙찰받은 에메랄드 보석 팔찌를 그녀에게 주었을 때도 방금처럼 기뻐하지 않았다.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체 온지유의 머릿속엔 무엇이 있는지 말이다.값비싼 물건보다 노력해서 얻은 싸구려 인형을 그녀는 더 좋아했다.“여기는 표창을 던질 수 있나 봐.”온지유는 꼭 자객처럼 가면을 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신기한 듯 말했다.그들이 내놓은 1등 선물은 20번의 기회 중 10번만 지정한 곳을 맞추면 얻을 수 있다고 했다.아직 1등 선물을 받아간 사람은 없었다.이것은 아주 큰 도전이었다.흥미를 느낀 온지유는 시도해보고 싶었다.여이현은 관심을 보이는 온지유의 모습에 배진호에게 시켜 결제하라고 했다.배진호는 이번이 여이현이 실력을 보여줄 기회인
“이거면 충분한가?”여이현이 물었다.“네 손에 든 것보다 더 귀여운 것 같은데?”“...”온지유는 여이현보다 더 큰 인형을 보았다. 그녀가 들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다. 분명 땅에 질질 끌릴 것이었기에 그녀는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싫어요. 너무 커요.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인형은 아니에요.”여이현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난 이것이 네가 들고 있는 것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니까 이거 들고 있어!”그는 그녀가 안고 있던 인형을 빼서 휙 던졌다.온지유는 자신의 품에 안긴 커다란 인형을 보았다. 너무나도 커서 숨쉬기도 힘들 지경이었다.“여이현 씨, 그만 해요!”온지유는 이 커다란 인형마저 바닥에 던져지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아 겨우 고개를 빼꼼히 내밀며 말했다.여이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싸늘해진 얼굴로 이해가 가지 않는 듯 그녀를 보았다.‘인형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나?'‘내가 더 큰 인형을 안겨주었으니 그럼 더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닌가?'‘왜 화를 내는 거지? 내가 대체 뭘 잘못했는데?!'온지유는 자신의 심한 말에 여이현의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났을 것을 알고 다시 부드러운 어투로 말했다.“이건 너무 크고 무거워서 들고 있기 버거워요.”“내가 도와줄게.”이때 나민우가 렛소 인형을 안으며 말했다.“이러면 되잖아.”“고마워.”온지유는 그제야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었다.배진호는 싸늘해진 분위기를 실시간으로 느끼고 있었다. 여이현의 몸에서는 어두운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이미 그에게도 그 어두운 기운이 닿고 있었다.게다가 온지유는 여이현에게 관심이 없어 더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었다.그는 심지어 여이현이 불쌍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모든 사람들이 여이현을 향해 박수를 쳐주었지만 온지유만은 그러지 않았으니 말이다.“목마르지 않아? 저기 밀크티 가게가 있는데.”나민우가 온지유에게 물었다.“응, 가자. 마침 목이 말랐거든.”온지유가 답했다.두 사람이 자리를 옮기려던 순간 배진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
상처 소독약으로 상처를 소독한 뒤 붕대로 감아주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배진호가 차를 끌고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왔다.온지유는 여이현을 부축하며 차에 태우곤 나민우를 보았다.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던 여이현은 그녀가 정말로 나민우에게 마음이 있다고 생각했다.나민우가 먼저 입을 열어 다정하게 말했다.“먼저 가 봐. 여 대표 다쳤잖아. 아픈 사람을 보살피는 게 더 중요하지.”그는 온지유의 입장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녀가 뭘 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여이현은 그녀의 상사이니 당연히 보살펴야 했다.온지유는 그를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그럼 난 먼저 가볼게. 오늘 같이 놀아줘서 고마워.”“응, 그래.”나민우가 답했다.차 문이 닫혔다.배진호는 원래 다시 차에 타려고 했지만 무언가 생각났는지 웃으면서 나민우의 앞으로 다가갔다.“나 대표님, 고마웠습니다.”그는 예의 있게 감사 인사를 하곤 그가 들고 있던 렛소 인형을 가져왔다.여하간에 이 인형은 여이현이 온지유에게 준 것이니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는 없었다.배진호는 여이현이 오늘처럼 열심인 모습은 처음 보았다.차는 서서히 떠나가고 나민우는 그들이 탄 차를 빤히 보았다. 그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이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누군가가 문자를 보낸 것이다.[저녁 이미 차려놨는데 언제 와?]그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그들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집에 도착한 뒤 온지유는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행여나 표창 때문에 세균에 감염되기라도 했을까 봐 주치의도 집으로 불렀다.의사는 그에게 파상풍 주사를 놓아주었다.여이현은 틈이 날 때마다 나민우와 함께 있던 온지유의 모습이 생각나 떠보듯 물었다.“이번에도 나민우와 우연히 만난 거야?”정말로 우연이었다.온지유가 답했다.“저랑 민우는 그냥 친구예요. 친구끼리 만나는 게 뭐가 잘못된 건 아니잖아요. 게다가 퇴근하고 만난 것이니 업무에도 지장 주지 않았어요.”여이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정말로 그 사람이랑 친구라고 생각하는
마침 여이현이 외출하고 돌아왔다. 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직원이 내뱉는 말을 듣고 있었다.“대표님, 오늘 오후 한 시에 그쪽으로 보내라고 이미 말해두었습니다.”여이현은 멀지 않은 곳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온지유를 보더니 차갑게 말했다.“온 비서.”온지유는 서둘러 그에게 다가갔다.“네, 대표님.”“오후에 일정이 없으면 따라가죠.”그가 말을 마치자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의외라는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그런 일은 아주 힘들어 여직원들이 아주 꺼렸다. 그래서 전부 남자직원에게 배정된 일이었다.온지유는 이곳의 유일한 여직원이었다.게다가 바깥은 해가 쨍쨍 내리쬐고 있었고 온지유는 치마에 하이힐을 신고 있어 앉기도 불편할뿐더러 그곳을 걸어 다니기도 힘들었다.그러나 여이현의 지시이니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온지유는 바로 대답했다.“네, 대표님.”“그래요.”여이현은 더는 그녀에게 시선을 두지 않았다. 담담히 자신의 사무실로 걸음을 옮겼다.“온 비서님, 제가 도와드릴게요.”이윤정이 그녀를 도와주려고 했다.“괜찮아요. 일손은 부족하지 않으니 그냥 사무실에 남아 있어도 돼요.”오후 한 시는 해가 제일 뜨겁게 내리쬘 때였다.길을 청소하던 환경미화원들도 쉬지 않고 청소하고 있었다.온지유는 생수 상자를 들고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어느새 그녀는 땀을 가득 흘리고 있었다.그렇게 한 상자 옮기고 난 뒤 환경미화원들에게 하나씩 나눠주었다. 그들은 나이가 많았던지라 그녀가 생수를 주니 고맙다며 감사 인사를 했다.“아가씨, 자선활동 하는 김에 우리한테도 생수 나눠주는 게 어때요.”이때 몇 명의 길 가던 남자들이 치마와 스타킹을 신은 온지유를 보고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생수를 달라는 핑계로 다가왔다.온지유도 그들의 불손한 시선을 느끼고 뒷걸음질을 치며 인상을 구겼다.“이 물은 환경미화원분들께 나눠드리는 겁니다.”“아, 특별대우를 하시겠다는 거네요.”남자들은 온지유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온지유는 그런 시선을 아주 혐오했기에 단호하게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최주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곁으로 다가가 말했다.“네 아내는 네 할아버지께서 정해주신 거잖아. 그래서인지 확실히 괜찮은 여자이긴 하네. 얌전하고 말도 잘 듣고 네가 밖에서 여자 몇 명을 만나든 신경 쓰지도 않고 말이야. 이렇게 좋은 아내가 있는데 왜 기분이 안 좋다는 거냐?”여이현은 한참 침묵하다가 말했다.“얌전하고 말 잘 듣는 건 확실히 아내로서 좋긴 하지.”“그런데 왜 네 신경은 온통 저 여자한테 쏠린 거냐. 너 혹시 진짜 좋아하게 된 거 아니지?”최주하는 그의 모습이 이상했다. 아무리 온지유가 괴롭힘당했다고 해도 여이현이 기분 나빠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창밖을 내다보니 온지유는 다른 직장 동료와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내가 보기엔 네 아내 인기 많은 거 같아. 누구랑도 다 잘 지내잖아. 너 예전에 언젠가 이혼할 거라고 하지 않았나? 이혼하게 되면 줄을 설 남자들이 가득해 보이네.”최주하의 말에 여이현은 미간을 확 구겼다. 온지유에겐 사람과 어울려 지내는 일은 확실히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최주하의 말대로 그녀는 누구와도 잘 지냈다.그의 목소리는 더욱 가라앉았다.“너도 온지유는 좋은 아내라며. 그럼 계속 좋은 아내로 남게 해줘야 하지 않겠냐.”모든 생수를 나눠주고 나니 온지유의 옷은 땀으로 잔뜩 젖어 있었다.그녀는 직원들과 사무실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온 비서님, 완전 의외네요. 힘이 그렇게 셀 줄은 몰랐어요. 저희 남자들에게 전혀 뒤처지지 않는 힘이었어요!”그들은 온지유와 대화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랬기에 그녀에 대해 잘 몰랐다.온지유가 그들에게 주는 첫인상은 차갑고 도도하고 힘도 없는 나약한 사람이었다.설령 그들과 함께 일한다고 해도 그저 가만히 있는 꽃병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그러나 막상 그녀와 함께 일하고 보니 차갑고 도도한 느낌은 없었고 오히려 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지냈다.“뭘요. 정말로 힘이 필요한 일들은 여러분들이 해주고 계시잖아요. 전
“다른 사람들은 다 가까이 다가가도 되는데 왜 나만 안 돼? 지금 날 따돌리고 있는 거잖아. 그런데 어떻게 가족처럼 지내? 애초에 날 진짜 가족으로 받아들일 생각도 없었던 거잖아!”소미는 말을 하면 할수록 괴로웠다.만약 온하윤이 세상에서 완벽하게 사라진다면 별이에게 남은 동생은 자신 한 명뿐이라고 생각했다.앞으로 그녀에게만 잘해줄 것이고 모든 사람들의 관심도 그녀에게만 쏟아질 것이니 온하윤 때문에 누군가 자신에게 짜증을 낼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이럴 줄 알았으면 약을 더 먹이는 거였는데.'‘그래, 어차피 약병은 내 가방에 있어. 그 나쁜 사람들이 그 약의 효과가 엄청나다고 했었어. 반병만 먹어도 어른 한 명은 거뜬히 죽일 수 있다고 했으니까 아기한테는 그 절반을 먹이면 되겠지.'‘기회를 봐서 조금만 더 먹이면 돼. 그러면 온하윤은 이 세상에서 완벽히 사라질 수 있어.'‘그렇게 되면 엄마도 볼 수 있고 별이 오빠도 온전히 내게만 잘해줄 거야.'“이상한 생각하지 마. 우린 가족이 맞아. 우리가 가족이니까 동생을 챙겨야 하는 거고 엄마도 배려해 줘야 하는 거야.”별이는 계속 설명했다.그러나 아무리 설명해도 소미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가족은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사이였다.그들은 한 가족이 되었다곤 하지만 온하윤은 유독 그녀만을 보면 울기 시작했다.게다가 다른 사람들이 온하윤에게 다가가는 것은 괜찮았지만 유독 그녀만 다가갈 수 없었다. 가족이라면 차별하지 않는가.“어쨌든 지금은 혼자 놀고 있어. 난 엄마를 도와서 하윤이를 돌봐야 하니까. 하윤이가 나아지면 그때 같이 놀아줄게. 그때 가서 우리 같이 아쿠아리움도 가자.”“그럼 그때 가서 하윤이도 데리고 갈 거야?”소미가 물었다.별이는 곰곰이 생각했다.“아마 당연히 데리고 갈 것 같아.”“그럼 그때 오빠 동생이 방금처럼 울면서 칭얼대면?”“그럼 다음에 가면 되지.”그녀가 한 질문에 별이는 빠르게 대답했다.어쨌든 그들에겐 시간이 많았으니 급할 건 없었다.오늘 갈 수 없다면 내일,
“이미 열이 내렸다고 하지 않았어?”소미는 사람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온하윤을 보며 순간 또 나쁜 마음을 먹게 되었다.‘온하윤은 이미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잖아. 그런데 왜 나한테서 별이 오빠를 빼앗아 가는 거야?'분명 별이와 함께 놀고 싶었으나 별이는 그녀의 작은 요구도 들어주지 않았다.“응, 열은 내렸는데 그래도 좀 걱정돼서.”별이의 인내심은 점점 바닥을 보이었다. 어느새 소미를 보는 시선엔 짜증이 조금 섞여 있었다.“일단 혼자 놀고 있으라니까. 나 좀 그만 찾아와. 하윤이는 내 동생이니까 내가 걱정하는 건 당연한 거잖아!”별이는 전처럼 소미가 귀엽게 느껴지지 않았다.그의 친동생은 온하윤이지 소미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소미를 가족처럼 생각하면서 앞으로도 함께 살아가려고 했다.그런데 지금 온하윤은 아팠다. 언니로서 소미도 자신처럼 걱정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소미는 계속 자신을 찾아오며 놀아달라고 칭얼대고 있었다.“오빠?”소미는 당황하고 말았다.방금 별이는 있는 힘껏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처음이었다. 별이가 이렇게까지 짜증을 낸 적은.순식간에 눈에 눈물이 맺혔다.“미안해. 내가 오빠를 방해하고 있었어. 오빠한테 자꾸 놀아달라고 칭얼거리면 안 되는 건데. 그럼 오빠랑 같이 하윤이를 돌봐도 돼?”“그래. 나도 미안해. 일부러 짜증을 내려던 건 아니었어. 그냥 난 지금 놀 기분이 아니었을 뿐이야.”별이는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온하윤은 아기였기에 아무것도 몰랐다. 그랬기에 소미의 행동이 자신을 죽이려고 한 행동임을 몰랐다.하지만 아기들의 감은 정확했다.소미가 다가온 순산 조용하던 온하윤이 갑자기 큰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소미가 다가갈수록 더 크게 울어댔다.“하윤아, 뚝. 괜찮아. 오빠가 옆에 있잖아.”별이가 얼른 온하윤을 토닥여주며 달랬다.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소미가 이 자리에 있는 한 온하윤은 울음을 그칠 생각이 없었다.빠르게 집 안의 사람들도 아기의 울음소리에 모여들었다. 소미는 덩그러니 서서 어찌
심지어 밤에도 편히 눈을 감지 못했다. 두 시간에 한 번씩 잠자리에서 일어나 온하윤의 상태를 살펴보았다.그녀는 아주 열심히 아기를 돌봤다. 온하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아기에게 분유를 제외한 다른 음식을 먹일 생각도 하지 않았다.“알겠어요. 일단 들어가 보세요.”여이현은 증거가 없는 상태였다. 그랬기에 김명자를 붙들고 모든 책임을 돌릴 수 없었다.만약 전부터 집 안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해 두었다면 아마 누가 온하윤을 해친 것인지 바로 찾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김명자는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비서가 그에게 연락했다.“대표님, 이미 찾아낸 자료를 전부 전송해 드리겠습니다.”비서가 찾은 자료엔 김명자의 가족 관계는 아주 단일했다.김명자에겐 딸이 한 명 있었다. 몇 년 전에 결혼해 남편과 함께 작은 마트를 운영하고 있었고 아이도 낳았다. 그녀에겐 빚도 없었을 뿐 아니라 통장에 거액의 돈이 오간 흔적도 없었다.업계에서 김명자에 대한 평가는 아주 좋았다. 그녀를 베이비 시터로 고용한 사람들은 대부분 아기에게 정성을 다한다고 말했고 친할머니 같다는 평가도 있었다.자료만 봐도 여이현은 김명자가 아주 좋은 베이비 시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온하윤은 대체 왜 갑자기 중독된 것일까?여이현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그러다 그는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온지유가 그에게 전화한 것이다. 그가 병원을 나서기 전보다 온지유의 목소리는 많이 평온해졌다.“이현 씨, 하윤이는 제때 치료받아서 지금 열도 내리고 있어. 많이 괜찮아졌어.”“응, 괜찮아졌다면 다행이야. 내가 지금 갈게.”여이현은 원래 병원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조금 전 별이의 모습이 떠올라 이내 생각을 바꾸었다.별이를 데리고 가기로.“소미야, 나랑 같이 하윤이 보러 가지 않을래?”집을 나서기 전 별이는 고개를 돌려 소미에게 물었다.소미는 급하게 고개를 저었다.그녀는 지금 여이현의 두 눈을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아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다만 같은 공간에 있던 모든
온하윤은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온지유는 피를 너무 많이 뽑은 탓에 안색이 창백했고 입술에는 혈색이 없었다.그녀는 힘겹게 의자의 손잡이에 의지하며 일어났다. 몸이 잠깐 휘청였지만 그래도 힘을 내서 병실 쪽으로 비틀대며 걸어가려 했다.“앉아서 쉬고 있어요. 저희가 다시 수혈해드릴게요. 지금 이 모습으로는 병실을 돌아가기는커녕 몇 발자국도 못가서 쓰러지게 되실 거예요.”간호사가 얼른 온지유의 팔을 잡으며 부축했다.온지유는 자신의 몸 상태가 어떤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무리하지 않았다. 다시 의자에 앉아 쉬면서 따듯한 차를 마셨다. 어리럼증이 사라지고 나서야 그녀는 딸의 병실로 갈 수 있었다.온하윤의 상태는 처음 병원으로 찾아왔을 때보다 마노이 나아져 있었다. 더는 고열에 시달리지 않았지만 열은 있었다.“아마 세 시간쯤 지나야 정상 체온으로 돌아올 거예요. 만약 그동안 체온이 다시 올라간다면 바로 절 불러주세요.”의사가 세심하게 말해주었다.온지유는 주현도의 말을 전부 머릿속에 새겨듣고 있었다.의사가 나간 후 그녀는 딸 옆에 앉아 손을 뻗어 이마를 쓸어주었다.“아가야, 얼른 나아야 해.”한편 여이현 쪽.시동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지금 당장 김명자 씨 가정 상황까지 전부 조사해서 나한테 보내요.”집안에 사람이라곤 몇 없었다. 별이는 친동생을 해칠 리가 없었기에 남은 가능성은 김명자였다.소미는 아직 어렸고 별이와 비슷한 또래였기에 절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여이현이든 온지유든 누구든 소미가 그랬을 거라곤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빠르게 차는 집 앞에 세워졌다. 여이현은 문을 열고 내렸다. 그가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별이가 초조한 얼굴로 맞이했다.“아빠, 하윤이는 어때요?”“괜찮아. 열이 내렸으니까 곧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야. 별이 먼저 들어가서 자. 아빠는 이모님이랑 할 얘기가 있으니까.”여이현은 별이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그리고 그는 김명자를 뒷마당으로
“둘 다 아니에요. 최근에 구한 베이비 시터 이모님이 대신 돌봐주고 있었어요.”이렇게 말하니 온지유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의사가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그다음으로 의사는 들고 있던 검사 결과를 그녀에게 건넸다.“하윤이는 중독으로 고열에 시달리고 있는 거예요. 다행히 제때 병원으로 데려와 치료할 수 있게 된 거고요. 만약 한 시간이라도 더 늦게 찾아왔다면 아마 정말로 다시는 못 보게 될 수도 있었을 거예요.”그 순간 온지유는 자신이 잘못 듣기를 바랐다.옆에 있던 여이현이 대신 검사 결과를 받았다. 하얀 종이엔 까만 글씨로 분명하게 적혀 있었다. 온하윤의 혈액에서 대량의 독 성분이 검출되었다고 말이다.“전에 우리 병원에서 베이비 시터가 아기한테 약을 먹이고 찾아온 사례도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 이모님은 수면제를 먹인 거죠. 아기가 자꾸 우니까 수면제를 먹여서 온 하루 자게 만든 거예요. 그런데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요. 아기한테 독을 먹이다니. 이건 두 분 아기의 목숨을 앗아가려고 계획한 거나 마찬가지예요.”의사는 너무도 황당했다.이렇게나 어린 아기를 죽여서 무슨 이득을 손에 넣을 수 있단 말인가.물론 다른 가능성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복수.“선생님, 얼른 제 딸 좀 치료해 주세요. 전 어떻게 된 일인지 가서 알아봐야겠어요.”온지유는 여이현을 보았다.두 사람은 함께 보낸 시간이 아주 길었기에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뜻을 알아챌 수 있었다.“넌 하윤이 곁에 있어 줘. 내가 가서 알아보고 올게.”여이현은 그렇게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온지유는 다시 병실로 들어갔다.작고 작은 몸에 가득 연결된 주삿바늘을 보며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그녀에게 대신 아파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정말이지 지금 당장 목숨이라도 바꿔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녀는 누군가 이 독을 어린 딸에게 아닌 자신에게 먹인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자신이 고통을 받는 건 얼마든지 괜찮았지만 어린 딸이 고통을 받으며 병원에 눈을 감고 누워있는
“엄마, 저도 갈래요.”별이는 온지유를 쫓아가며 큰 소리로 말했다.소미는 무의식적으로 별이를 붙잡으려 했으나 너무도 빨리 달려가는 별이에 공기만 잡았다.현관까지 걸어온 온지유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말했다.“별아, 엄마랑 아빠는 지금 정말로 정신이 없어서 별이까지 챙겨줄 수가 없어. 그러니까 별이는 집에 있어 줘. 집에는 이모님이 있으니까. 그래야 엄마랑 아빠도 마음 놓고 하윤이랑 병원에 갈 수 있을 것 같아.”비록 별이가 얌전하고 병원에 데리고 간다고 해도 칭얼대지 않으며 온하윤까지 돌봐줄 것이지만 병원엔 사람도 많고 그녀와 여이현은 별이에게 신경 써줄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가 만약 유괴범이라도 섞여 들어온다면 어떻게 하겠는가.만약의 상황을 위해 아이를 집에 두고 나가는 것이 나았다.“네. 그럼 엄마, 하윤이가 나아지면 바로 별이한테도 말해줘야 해요.”별이는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곤 걸음을 멈추었다. 집을 나서는 온지유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속으로는 온하윤이 얼른 나아 건강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오빠.”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소미는 인형을 들고 다가왔다.“우리 같이 소꿉놀이하자. 나는 얘 언니 할게, 오빠는 오빠 해.”“미안해, 소미야. 난 지금 소꿉놀이할 기분이 아니야.”별이는 고개를 저었다.지금 아픈 사람은 인형이 아니라 별이의 친동생이었다.그러니 소미와 함께 소꿉놀이할 마음이 있을 리가 있겠는가?소미는 입술을 틀어 물며 손을 뻗어 별이의 팔을 잡고는 작게 물었다.“오빠, 오빠는 하윤이가 아주 아주 좋아?”“당연하지. 난 하윤이가 너무너무 좋아. 나한테 하윤이는 우리 엄마랑 아빠 다음으로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사람이라고.”별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별이가 동생을 잘 돌보게 된 것은 여이현과 온지유가 바쁜 이유도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 정말로 동생을 좋아했기 때문이다.소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고개를 떨구었다....한편 병원.온하윤이 너무도 어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응급실로 들
소미는 얼른 약병을 숨기며 가방에 넣고는 태연하게 다시 바닥에 앉았다.“소미야, 나 왔어. 방금 뭐 하고 있었어?”별이는 소미의 곁으로 다가갔다. 소미와 함께 놀고 싶었기 때문이다.여하간에 소미는 6살 즈음 되는 어린아이였기에 표정 숨기는 것에 능하지 않았고 별이의 맑은 두 눈을 똑바로 볼 엄두가 나지 않아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아무것도 안 했어. 그냥 조금 졸려. 자고 싶어.”“그럼 좀 자. 이모님은?”“내가 배고파서 타르트 만들어 달라고 했어. 근데 지금은 너무 졸리니까 일단 좀 잘게. 이따가 말해.”소미는 소파에서 담요를 끌어당기며 얼굴까지 푹 뒤집어썼다.별이가 온하윤을 엄청나게 좋아했으니 만약 자신이 약을 먹였다는 사실을 별이가 알게 된다면 별이는 더는 자신과 말도 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영원히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게 된다.여하간에 별이의 부모님을 해치지 않았고 별이한테도 나쁜 짓을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별이 동생은...아직 어리고 말도 못 하니 여이현과 온지유가 또 한 명 낳으면 된다고 생각했다.빠르게 김명자가 갓 구운 타르트를 들고 돌아왔다.“소미가 방금 막 잠들었어요. 타르트는 여기에 놔주세요. 이따가 소미가 깨면 먹을 거예요.”별이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행여나 소미가 깰까 봐 말이다.김명자는 고개를 끄덕였다.별이는 혼자 책을 읽었다. 소미는 처음에 자는 척했지만, 나중엔 정말 자게 되었다.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져버렸다. 김명자는 아직도 깨어나지 않은 온하윤을 보며 이상하게 생각했다.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를 본 순간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세상에! 하윤이가 열이 나고 있잖아?”“네? 제 동생이 아파요?!”별이는 고개를 확 들었다.다급했던 별이는 옆에 누가 잠들어있다는 사실조차 신경 쓸 겨를이 없이 일어나 온하윤의 상황을 살펴보려 했다.“도련님, 일단 여기서 지켜보고 있어요. 내가 얼른 사장님이랑 사모님한테 가서 말하고 올게요.”김명자는 별이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온지유는 소미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몰랐다. 그랬기에 종류별로 접시에 담아주었다.“먹어 봐, 입에 맞는 거 있으면 더 가지러 오면 되니까. 하지만 낭비하면 안 돼. 먹을 만큼 가져가야 해. 알았지?”“아주머니가 골라준 거라면 소미는 전부 좋아요.”소미는 정말로 음식을 낭비하지 않았다.온지유가 담아준 음식은 전부 먹어치웠고 수프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전부 마셨다.배를 채운 후 여이현은 그들을 데리고 놀이공원으로 향했다. 소미는 처음에 어색해하면서 편히 놀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몇 개의 놀이기구를 타고 난 뒤 신나게 놀았다.“오빠, 난 회전목마가 좋아. 우리 한 번 더 타면 안 돼?”“아까 내가 큰 말에 탔으니까 이번엔 네가 큰 말에 타. 내가 작은 말에 탈게.”별이는 소미의 손을 잡았다.두 아이는 아직 어렸기에 위험한 놀이기구는 탈 수 없었다. 어린아이들이 타도 위험하지 않은 놀이기구를 전부 타본 뒤 마지막엔 온지유와 여이현과 함께 관람차를 탔다.관람차가 제일 높은 곳까지 올라갔을 때 소미는 두 손을 꼭 모아 말았다.“관람차가 제일 높은 곳에 올라갔을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들었어요. 전 오빠랑 오빠 가족이랑 평생 같이 살고 싶어요.”“그럴 거야.”온지유는 아이를 보며 온화한 표정을 지었다.가족 구성원이 넷이면 아주 좋았다. 다섯이면 더 말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놀이공원에서 나온 뒤 여이현은 호텔로 운전했다. 돌아가는 길에 고속도로를 지나서 온하윤을 태우려고 했다.온하윤은 이틀 동안 아빠와 엄마, 오빠를 보지 못해 반가웠는지 작은 손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아주 좋아했다.“소미야, 봐봐. 하윤이는 내 여동생이야. 귀엽지?”별이는 소미를 데리고 온지유 옆에 서 있었다. 두 아이는 온지유가 안고 있는 온하윤을 보았다.소미는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온하윤의 입가로 가져다 댔다. 온하윤은 먹을 것인 줄 알고 혀를 내밀며 소미의 손을 깨물려고 했다.여이현은 얼른 소미를 안아 올렸다.“안 돼. 하윤이한테 손가락 물리면 안
“그래, 별이한테도 친구가 생겼으니 우리도 둘만 있을 시간이 더 많아지겠지.”여이현은 손가락으로 온지유의 손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따듯하면서도 간지러웠다.온지유는 붉어진 얼굴로 그를 밀어냈다.“그러지 마. 아이들이 밖에 있다고. 만약 소리를 듣기라도 한다면 안 좋아.”별이는 아주 똑똑한 아이였다. 만약 별이가 그것이 무슨 소리냐고 묻는다면 온지유는 정말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정말이지 너무도 민망했다.“이 호텔은 방음이 아주 잘 되어 있어. 더구나 꼬맹이들은 지금 티브이에 정신이 팔렸잖아. 그래도 걱정된다면 티브이 음량을 더 높이면 되지.”온지유가 반박의 말을 하기도 전에 여이현은 이미 손을 뻗어 리모컨을 들고 오더니 음량을 두 개 정도 높였다.그리고 몸을 돌려 그녀에게 키스했다.그의 리드에 온지유는 몸이 녹아내릴 것 같았다.하늘에 어둠이 깔리고 나서야 두 사람의 몸은 떨어지게 되었다. 온지유는 티브이를 끈 뒤 녹초처럼 침대에 흐느적 누웠다.땀에 몸은 끈적거렸기에 너무도 샤워하러 욕실로 들어가고 싶었으나 움직이는 것이 귀찮았다.여이현은 욕실로 들어가 욕조에 따듯한 물 받아놓았다. 그리고 다시 나와 온지유를 안은 후 천천히 그 욕조 안으로 내려놓았다.온지유는 몸을 감싸는 따듯한 온기에 온몸이 나른해졌다.“지유야.”여이현이 나직하게 그녀를 불렀다. 그의 목소리는 너무도 매혹적이었다.“나 오늘 너랑 같이 자면 안 될까?'온지유는 하마터면 그의 목소리에 홀려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다행히도 정신이 번쩍 들어 그의 요구를 거부했다.“안 돼. 꿈도 꾸지 마. 내일 아이들이랑 놀이공원도 가기로 했단 말이야.”이미 조금 전의 일로 힘이 전부 빠진 그녀였다. 만약 또 반복하게 된다면 내일은 아마 눈을 뜰 수 없을지도 모른다.여이현은 점점 더 짙은 미소를 지었다.“얼른 씻어. 밖에서 기다릴게.”그도 온지유를 피곤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목욕을 마친 온지유는 샤워 가운을 입고 나와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여이현은 자연스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