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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화

Author: 류한나
“동서, 말조심해. 내 남편 몰골을 보고서도 그런 말이 나와? 도대체 우리를 어디까지 끌어내릴 셈이야.”

정미리는 도무지 참을 수 없었다.

“좋아요. 그럼 저도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지난번의 20억은 어떻게 해결했어요? 지난번에도 그렇게 돈 없다고 잡아뗐잖아요. 우리 그이는 돈 마련한다고 장기 매매까지 할 뻔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돈은 갚았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죠.”

장수희는 줄곧 그들이 어떻게 돈을 갚을 수 있었는지 의심하고 있었다. 어찌 됐든 집에 돈이 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아주버님, 그 돈은 어디에서 왔어요? 아버님이랑 어머님의 돈을 우리한테 말하지도 않고 빼돌린 거죠!”

장수희는 이성을 잃은 모습이었다. 이건 시부모가 돌아가고부터 줄곧 의심하던 것이었다. 지금도 물론 그들을 도와주고도 남을 돈이 있다고 믿었다.

이 말을 듣고 온경준은 격렬하게 기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수희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야, 양심 없는 것! 지금 나를 의심하는 거예요?”

온경준은 제대로 정신 차렸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에게 도움을 줄 마음이 생기면 이상한 것이었다.

이러다가 온경준이 숨이라도 넘어갈 것 같았기에 장수희는 재빨리 타일렀다.

“진정해요. 손에 깁스도 했잖아요.”

온경준의 반응을 보고 장수희는 뒤늦게 자신이 말실수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약간 작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그냥 묻는 것뿐이에요. 의심한 거 절대 아니니까 화내지 마세요.”

온경준은 가슴이 아팠다. 그는 이런 사람을 위해 딸을 팔았다. 이건 아마 죽을 때까지 후회할 일일 것이다.

‘내가 지유한테 빚진 게 많아...’

밖에서 듣고 있던 온지유는 대충 상황 파악이 되었다. 장수희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장수희를 좋아한 적 없었다. 무엇이든 꼬치꼬치 캐묻고, 아량이 작은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렇게 의심이 많고 질투가 심한 사람이 부탁하려고 자존심을 내려놓을 줄은 또 아네.’

정미리는 온경준과 온재준이 우애 깊은 형제라는 것을 말한 적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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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서우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돈이 필요했고 확실히 일을 해야 했지만 그 정도로 타락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몸을 팔아 돈을 버는 건 감당할 수 없었다. 그녀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나며 공손한 태도로 말을 이어갔다. “손님, 저는 이곳의 서비스 직원입니다. 제 업무는 술을 파는 것에 한정되며 그 이상은 포함되지 않습니다.”“순진한 척하지 마. 여기 온 이상 돈만 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거잖아?” 남자는 은서우를 비웃듯 한 번 쳐다보며 눈빛에 경멸을 숨기지 않았다. “돈은 충분히 줄 테니까 오늘만 잘 해주면 이 술은 내가 다 살게. 못 믿겠으면 너희 매니저한테 나 유인승이 누구인지 한번 물어봐.” 은서우는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를 피하려 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팔 생각이 없었고 고객과 충돌을 일으킬 수도 없었다. 취한 손님은 은서우가 자리를 피하려 하자 바로 화를 내며 일어섰다. 그는 그녀의 팔을 강하게 붙잡고 불쾌한 목소리로 욕설을 쏟아냈다. “내가 너 대접할 기회를 주는 게 영광인 줄 알아야지. 여기 술집에서만 1년에 천만 원은 쓰는데 서비스 직원 하나 못 부르냐?” “손님, 이건 제 업무가 아닙니다. 제발...” “이미 이런 곳에서 일하고 있으면서 무슨 체면을 차리냐?”손님은 은서우의 말을 거칠게 끊으며 말했다.은서우의 눈물이 한순간에 터져 나왔다. 그녀는 그동안 정말 열심히 살아왔지만 하늘은 늘 그녀에게 가혹하기만 했다. “왜 울고 있어? 기분 좋게 나와서 놀고 있는데 네가 다 망쳤잖아.” 손님의 태도는 점점 더 거칠어졌다. 곧 이쪽에서 나는 소란이 남자 매니저의 시선을 끌었다. 그는 다가와 상황을 파악한 뒤 예상한 대로 손님 편에 서서 은서우를 꾸짖기 시작했다. “손님이 한 잔 하자고 하면 그냥 앉아서 같이 있는 게 당연한 거죠. 서비스 직원으로서 어떻게 손님과 시비를 걸 수 있어요?” 은서우는 이제 매니저에게 아무리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매니저는 오직 경제적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768화

    결국 은서우는 경찰을 불렀다. 출동한 경찰은 두 사람을 경찰서로 데려가 상황을 파악한 후 먼저 소태훈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저도 여동생이 있어서 기분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동생분도 이미 성인입니다. 본인의 선택을 존중해야죠. 그리고 이렇게 소란을 피우는 건 명백한 주거 침해입니다.” “죄송합니다. 형사님.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너무 조급했어요. 동생을 좀 재촉하려다 보니 이렇게 되였습니다...” 소태훈은 고개를 숙이며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가 보이는 태도는 너무 자연스럽고 그럴듯했다. 직접 겪지 않았다면 은서우조차 그가 이렇게 능숙하게 거짓된 얼굴을 숨기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은서우 씨, 어르신이 편찮으시다면 확실히 돌아가서 보셔야 합니다. 가족과 갈등이 있다 해도 결국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잖아요. 계속 피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경찰은 계속해서 은서우를 설득했다. 은서우는 그저 대충 핑계를 대며 말했다. “저도 돌아가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에요. 요즘 너무 피곤해서요. 그리고 돌아갈 표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에요.”어차피 오늘은 소태훈을 일단 넘겨야 했다. 이렇게까지 찾아왔으니 첫 번째가 있으면 두 번째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당분간은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결국 경찰의 중재로 소태훈은 물러섰다. 떠나기 전 그는 은서우를 깊고 차가운 눈빛으로 한 번 바라보며 말했다. “먼저 푹 쉬어. 나중에 다시 데리러 올게.” 그 눈빛에서 은서우는 소름이 돋았다. 그의 눈빛은 결코 걱정의 시선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무언의 경고였다. 오늘은 시작에 불과하며 앞으로 반드시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예고였다. 경찰서를 나서며 은서우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예전에 아르바이트했던 술집으로 곧장 향했다. 은서우는 매니저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물었다. “여기 직원 숙소 있나요? 만약 숙소를 사용하게 되면 한 달에 얼마가 차감되나요?” 매니저는 웃으며 답했다. “직원 숙소는 당연히 제공되고 있습니다. 직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767화

    쉴 수 있다면 은서우는 당연히 푹 쉬었다. 최근 들어 너무 피곤해서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을 정도였다. 서랍에서 라면 한 통을 꺼내 먹고 샤워를 하며 피로를 씻어낸 뒤 침대에 누워 편안히 잠을 청하려 했다. 그러나 막 잠이 들려는 찰나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점점 더 세차게. 처음에는 택배 기사일 거라 생각했지만 문을 열고 나서 휠체어에 앉아 있는 소태훈을 보고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의 첫 반응은 문을 닫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은서우, 이제 나랑 말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은 거야?”소태훈이 손을 뻗어 문틈을 막았다. 그의 힘은 엄청나서 은서우가 온 힘을 다해도 그를 밀어낼 수 없었다. 그녀의 저항이 오히려 소태훈을 더 화나게 만들었다. 소태훈은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잡고 말했다. “이번에 온 건 너랑 제대로 얘기하려고 온 거야. 먼저 들어가게 해줘. 천천히 얘기하자.” 은서우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런 말에 속을 리가 없었다. 그를 들여보내는 건 쉬웠지만 그를 내보내는 건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운 일이었다.그녀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우린 할 말이 없어.”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셨다가 어제 밤에 퇴원하셨어. 그걸 너한테 알려주고 너랑 함께 아버지를 보러 가려고 온 거야.”소태훈은 서둘러 말을 꺼냈다. 그는 이 말을 하면 은서우가 마음이 약해져서 함께 가자고 할 거라 생각했다. 은서우는 잠시 흔들렸지만 그들이 예전에 자신에게 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다시 마음을 굳혔다. “난 할 만큼 다 했어. 아버지가 아프시다면 네가 잘 돌봐야지. 왜 날 괴롭히는 거야?”그녀는 발끝으로만 생각해도 알 수 있었다. 만약 소태훈과 함께 돌아가면 그들은 분명 이 이유를 들어 그녀를 강제로 붙잡아둘 것이다. 간신히 빠져나왔는데 다시 바보처럼 돌아갈 순 없었다. “은서우!” 소태훈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변했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은서우는 왜 아직도 가지 않으려는 거지?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766화

    남자가 가볍게 웃더니 예상치 못한 말을 꺼냈다. “제 나이가 멫 살인 줄 아세요?” 은서우는 순간 멈칫했다.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일단 대충 짐작해 보기로 했다. “스무 살?” 겉보기엔 열여덟 정도로밖에 안 보여서 일부러 살짝 올려 잡은 거였다. ‘세포 분열이 빠르면 노화가 늦춰질 테니 기껏해야 두 살 정도 차이 나지 않을까?’ 남자는 미소를 깊이 머금더니 낮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서른다섯이에요. 나이로만 보면 어쩌면 당신과 띠동갑일 수도 있겠네요.”남자는 자신이 상장 기업의 CEO라고 말했다. 벌써 서른이 넘었는데도 전혀 늙지 않으니 집에서는 압박이 심했고 본인도 불안해서 치료를 결심했다고 했다. “평생 이대로 살 수는 없잖아요. 이러다 나중에 진짜 괴물처럼 될지도 모르겠네요.” 은서우는 그 말을 듣고도 현실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 ‘서른이 넘었다고?’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겉보기엔 완전히 고등학생 같았으니까. 졸업한 지도 몇 년이나 지난 은서우는 그제서 몸소 깨달았다. 사람은 겉모습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법이다. 연구소를 나오자 은서우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상황은 예상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수술 날짜가 보름 후로 변경됐어요.” 인명진이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차가운 빛이 서린 눈으로 여전히 앞을 응시한 채 기분이 좋지 않은 듯했다. 은서우는 그가 아까부터 계속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듣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하나였다. “원장님이 시간을 버신 거예요?” 인명진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었던 건 고작 이 보름이라는 시간뿐이었다.원래 수술은 며칠 뒤로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수술이 아니었다. 겉으로는 수술이라 부르지만 실상은 인명진과 그들 사이의 한판 승부였다. 성공하면 돌려보낸다. 어차피 그들도 진짜로 무리수를 둘 생각은 없을 테니까. 실패하면? 그럼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765화

    연구원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연구원은 인명진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결국 타협을 선택했기에 그들은 작은 방에 갖혀진 환자를 만날 수 있었다.은서우는 연구원이 귀신에게 쫓기기라도 한 듯 쏜살같이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물었다.“아까 말씀하신 이준서 박사님과 신 선생님은 누구인가요?”인명진이 별다른 감정 없이 설명했다.“이준서는 아까 저희가 만난 그 남자예요. 내과와 외과를 모두 전공한 박사로 해외에서 오랫동안 공부했죠. 그리고 신 선생님은 의학계의 우두머리 같은 존재예요. 케임브리지와 여러 유명 대학에서 강연한 적이 있어요. 아, 그리고 이준서 박사가 신 선생님의 제자거든요.”은서우의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설마 신석림 선생님인가요?”인명진이 그녀를 힐끗 보며 말했다.“맞아요. 은서우 씨가 신 선생님을 많이 존경하나 봐요?”은서우는 자신이 지나치게 흥분한 것을 깨닫고 급히 고개를 숙였다. 아까 긴장된 분위기를 보면 인명진은 그 두 사람과 무슨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다.그녀가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인명진이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신 선생님을 존경하는 건 당연하죠. 명성이 자자하시잖아요.”그는 두 걸음 앞으로 내디디며 은서우와 거리를 벌렸다. 마치 화가 난 듯한 모습이었다.하지만 은서우는 그것이 단순히 자신의 착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원장님이 이런 일로 화를 내는 성격이었나? 게다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왜 화를 내지?’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불필요한 생각을 떨쳐내고 그를 따라갔다.모니터로 관찰했지만 실제로 환자를 만나니 안타까움이 밀려왔다.“인명진 박사님, 오랜만에 뵙네요. 지난번 이후로 꽤 시간이 지난 것 같아요.”열여덟, 열아홉 살 정도로 추정되는 소년이 침대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그의 피부는 눈처럼 하얗고 속눈썹과 머리카락도 모두 하얗기에 놀라울 정도였다.마치 눈의 요정을 보는 듯했다.“알비노 환자예요?”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764화

    남자의 얼굴에 어린 미소가 살짝 옅어지더니 입을 살짝 삐죽이며 말했다.“그 정도로 아까우세요?”인명진은 남자와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기에 아무런 대답 없이 그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은서우도 그 뒤를 바짝 따라갔다.어깨를 스치며 지나갈 때 남자는 그녀의 귓가에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그쪽에게 인명진의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궁금하군요.”은서우는 동작을 멈추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남자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고 그녀가 고개를 돌리는 것을 보며 놀란 듯 눈썹을 추켜세웠다. 마치 그녀가 돌아볼 줄 몰랐던 것처럼 말이다.은서우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럼 어디 두고 보시죠.”그리고는 갑자기 빛나는 남자의 눈빛을 무시한 채 엘리베이터에 발을 들여놓으며 깊게 숨을 내쉬었다.인명진도 그녀가 한발 늦게 들어오는 것을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깨끗이 정리된 병실 안.환자는 환자복을 입고 침대 위에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방에서 움직일 수 있는 범위는 고작 다섯 걸음 정도였다. 침대에서 화장실까지의 거리도 겨우 열 몇 걸음에 불과했다. 그가 사는 병실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좁았다.병실 내부의 시설도 매우 단순했다. TV도 없고 책상 하나와 의자 몇 개, 그리고 침대 옆 탁자 위의 스탠드와 몇 권의 책이 전부였다.방 네 귀퉁이에는 모두 빨간 점이 반짝이고 있었는데 환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한 감시카메라였다.은서우는 실시간 모니터를 통해 이 장면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사람을 데려다 놓고 이런 방에 가둬두면 정말 미쳐버리지 않을까요?”인명진은 모니터를 바라보며 말했다.“이건 규정이라 저도 방법이 없어요.”그가 개입하고 싶어도 개입할 수 없었다.모든 결정은 팀 내부의 투표를 거쳐야 했다. 당시 인명진은 기권했고 팀원 대부분이 투표한 결과가 바로 지금과 같은 상황이었다.스마트 기계의 자외선이 환자의 세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던 그들의 말을 전해주며 인명진은 쌀쌀한 미소를 지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763화

    그러나 곧 인명진의 시선이 은서우에게로 향했다.“뭐 생각나는 거 있나요?”은서우는 고개를 저었다가 망설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생각은 있지만 실제로 그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모든 생각이 단지 생각일 뿐이죠. 원장님, 그건 원장님이 가르쳐준 거예요.”고개를 든 그녀의 두 눈은 초롱초롱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인명진은 그런 은서우를 바라보며 눈부신 그녀의 모습에서 눈길을 뗄 수 없었다.인명진은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그럼 지금 바로 짐을 챙겨서 저를 따라오세요.”그 말을 들은 은서우가 멍하니 서 있는 모습을 보며 그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은서우 씨가 말했잖아요. 실제로 만나기 전에는 함부로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 말이에요. 그럼 지금 바로 가서 봐야죠.”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아니, 놀라움보다는 충격에 가까웠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은서우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몰랐다.‘멸균 장갑과 도구, 그리고 노트도 가져가야 하나?’“거기 다 있으니 이것들은 필요 없어요.”인명진은 이 말과 함께 은서우의 노트만 챙기고 떠났다.“아.”은서우는 자신의 머리를 탁 치며 왜 그렇게 간단한 걸 생각하지 못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말 기쁨에 겨워서 정신이 없었던 모양이다.환자는 병원이 아닌 병원에서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한 요양원에 있었다.겉보기에는 요양원이었지만 실은 연구소였다. 단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요양원으로 위장한 것뿐이었다. 실제로 요양을 받는 노인은 이곳에 단 한 명도 없었다. 그곳에는 오직 멸균 복이나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만이 있었다.요양원으로 들어가려면 신원 확인이 필요했다.인명진이 목에 걸고 있는 카드를 책임자에게 보여줄 때 은서우가 사진을 힐끔 훔쳐보았다.카드에는 인명진의 증명사진이 붙어 있었다. 사진 속의 그는 단정하고 정직해 보였으며 또한 날카롭고 과묵해 보였다.인명진이 먼저 들어가며 말했다.“뭐해요?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어서 따라오세요.”그 말에 정신을 차린 은서우는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762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지? 원장님은 그녀에게 그렇게 잘해주시는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평소 인간관계에 둔감했던 은서우는 드디어 자신의 이상함을 깨달았고 인명진에 대한 감사로 생긴 친근감이 순식간에 크게 줄어들었다.심지어 물러나고 싶은 충동까지 생겼다.인명진은 그녀에게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왜 말을 안 하죠?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지금 말해도 돼요. 마침 같이 해결할 수 있으니깐요.”인명진은 그녀를 위하는 마음으로 이런 말을 한 것이다.하지만 은서우가 어떻게 감히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알리겠는가!인명진이 그녀의 마음을 알게 된 후 그 차가운 얼굴에 떠오르는 혐오스러운 표정을 상상하자 날카로운 무언가에 찔린 것처럼 가슴 한구석에 아릿한 고통이 퍼졌다.인명진의 의혹이 담긴 눈빛을 마주한 그녀는 마음을 애써 안정시키고 아무 일도 없는 듯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온지유 씨는 그날 저와 아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어요.”말을 마치자 남자의 미간이 펴지는 것을 본 은서우는 순간 죄책감이 들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원장님에게 거짓말을 했고 진실 반 거짓 반으로 그를 속여넘겼다.인명진은 아무런 이상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여성의 마음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를 좋아하는 여성들이 다가와서야 비로소 이상함을 느낄수 있을 정도로 둔감한 스타일이었다.게다가 그는 은서우를 믿고 있었다.인명진은 그녀가 온지유의 행동을 개의치 않는다는 것을 알고 평소보다 훨씬 부드러운 태도로 입을 열었다.“서 있지 말고 이리 와서 앉으세요. 이것도 한번 보세요. 최근 검사 결과에요.”인명진이 건넨 것은 혈액 검사 보고서였다.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갔다.은서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검사 결과지를 보고 또 보았다. 여러번 훑어본 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계속 고개를 저었다.“이상해요, 이건 너무 이상해요. 이 세포 수가 왜 또 몇 배나 늘어난 거죠?”인명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그게 바로 제가 은서우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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