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희 때문에 잔뜩 화났던 정미리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훨씬 기분이 좋아졌다. 온지유만 잘 지내면 그녀는 세상에서 부러운 것이 없었다.두 사람의 사이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이현이 말도 예쁘게 하는구나. 지유야, 봤지? 너도 이현이한테 잘 해줘야 해.”이 말을 듣고 온지유는 여이현을 힐끗 봤다. 그가 언제 정미리의 마음을 샀는지 궁금한 표정으로 말이다.여이현은 싹싹한 표정으로 정미리에게 말했다.“역시 어머님밖에 없어요.”“그럼. 눈이 달린 사람이라면 다 네가 지유한테 얼마나 잘하는지 보아냈을 거야.”정미리는 이렇게 말하며 온경준을 바라봤다. 온경준도 기쁨과 슬픔이 섞인 눈빛으로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기쁜 이유는 온지유가 좋은 집안에 시집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슬픈 이유는 이 행복이 얼마 가지 못할까 봐 조바심이 나서였다.잠시 후 간호사가 와서 입원 수속은 끝났고 일주일 후에 퇴원할 수 있다고 알렸다. 여이현과 온지유는 잠깐 더 얘기하다가 떠났다.온경준은 두 사람의 시간을 빼앗고 싶지 않았기에 몇 번이나 재촉했는지 모른다. 온지유는 밖으로 나가면서 섭섭한 듯 말했다.“아빠는 번마다 이래요. 힘든 일이 있는데도 말하지 않아요. 만약 제가 먼저 발견하지 않았다면 엄청 억울했을 거예요.”여이현은 온지유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했다.“이제 내가 있잖아. 아버님이 힘들어지는 일은 없을 거야.”온지유는 묵묵히 여이현을 바라봤다. 장수희가 하는 말을 그도 전부 들었다는 생각에 수치심이 들었다. 집안에서 가장 부끄러운 일을 들키게 되었으니 말이다.이러다가는 여이현도 귀찮게 만들 것 같아서 그는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이현 씨는 아무것도 할 필요 없어요. 원래도 아빠만 마음먹으면 거절할 수 있는 일이었어요. 전에는 마음 약해서 거절하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다를 거예요.”온경준도 당할 만큼 당했으니 더 이상 만만하게 굴지는 않을 것이다.여이현은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주춤거리
노승아가 맡을 수 있는 배역은 별로 많지 않았다. 여씨 가문의 파티에서 여이현이 대놓고 그녀를 내치는 바람에 체면도 깎이고 말았다.연예계의 특성상 그녀는 비웃음을 당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또다시 여이현을 찾아갔다. 여이현은 무조건 그녀를 도와줄 것이고, 장차 그녀의 스폰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덕분에 그녀는 다시 바빠지기 시작했다. 촬영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온지유와 기 싸움할 시간도 없었다.온지유는 조용한 생활이 좋기만 했다. 애초에 노승아와 귀찮게 얽히고 싶지도 않았다. 괜히 얽혀 봤자 감정만 상할 것이기 때문이다.이윤정은 온지유의 곁에서 주변을 빙 둘러보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온 비서님, 이번에는 제가 틀렸어요. 그동안 했던 말에 사과할게요. 이제 더 이상 비서님이랑 대표님을 엮는 일은 없을 거예요.”“왜 갑자기 생각을 바꿨어요?”이윤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근데 대표님 말이에요. 유부남이면서 다른 여자랑 살림을 차린 거예요? 이걸 보니 대표님이 정직하지 않은 사람이란 건 알겠어요. 죄송하지만 저 대표님이 온 비서님을 좋아한다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왠지 제가 온 비서님한테 못된 짓을 한 것 같네요. 아무리 잘난 대표님이라고 해도 문란한 남자는 절대 안 돼요.”이윤정은 고개를 내저으며 온지유가 좋은 사람을 만나기를 바란다고 했다. 온지유는 자료를 정리하며 대답했다.“윤정 씨 또 누구한테 헛소리 들은 거예요?”“헛소리 아니에요! 제가 직접 봤어요. 그날 그 여자, 비서님도 봤잖아요. 정말 매일같이 찾아오더라고요. 오늘 점심에도 올 거예요.”온지유는 생각에 잠겼다. 이윤정이 본 여자가 누구인지 바로 떠올리지 못했던 것이다.이때 그녀는 갑자기 별장에서 살고 있는 주소영이 떠올랐다.“대표님 아내분은 대표님이 밖에서 뭘 하는지 신경도 안 쓰나 봐요. 아니면 모르는 건가요? 아무튼 아내분도 참 불쌍해요.”이윤정은 약간 화가 난 듯 말을 이었다.“제가 만약 그런 상황에 부딪혔다면 도망가고 말았을 거예요. 저는 차라리 평범하더
며칠 연속 주소영과 마주친 카운터 직원은 그녀가 정말 끈질기다고 생각하면서 말했다.“제가 확인해 볼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주소영은 기대를 갖고 얌전히 기다렸다.“네, 번거롭게 해서 죄송해요.”전화를 걸어 대답을 들은 직원은 주소영에게 공손하게 대답했다.“대표님은 회사에 계시지 않습니다. 다음에 다시 오세요.”‘매번 없다고? 그럴 리가 없잖아...’이번에 주소영은 순순히 물러나지 않고 고집스럽게 물었다.“대표님한테 전화 한 번만 걸어주면 안 될까요? 소영이 도시락을 준비해 와서 기다린다고 해주세요. 저는 도시락만 전하고 떠날게요.”직원은 여이현에게 들이대는 여자를 많이 봐왔다. 주소영도 그중 한 명일 뿐이기에 당연히 내쫓으려고 했다.“대표님은 바쁘셔서 예약하지 않은 분을 만나지 않습니다.”“저는 남이 아니에요. 저는...”주소영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았다. 자신이 누구인지 말하려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죄송합니다. 제 일을 방해하지 말아 주세요.”직원이 다시 한번 경고했다.그러나 주소영은 이미 며칠이나 기다렸다. 그 며칠 동안 그녀는 마음 편히 별장에서 지낼 수 없었다.“그럼 제가 직접 찾아갈게요.”“안 됩니다.”지난번 주소영은 온지유의 이름을 빌려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이번에는 제 입으로 여이현을 만나러 왔다고 했으니 당연히 들여보낼 수 없었다.직원은 경비를 시켜서 주소영을 막았다. 주소영은 끝까지 손에 든 도시락을 단단히 들고 있었다. 여이현이 맛 보기 전에 망가뜨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그만해요.”경비에 둘러싸인 주소영을 보고 온지유가 말했다.“온 비서님. 이 여자분 또 왔어요.”주소영은 고개를 들어 온지유를 보자마자 구세주라도 본 듯이 외쳤다.“지유 씨.”그녀는 빠르게 온지유 곁으로 달려갔다.“이 사람들이 저를 못 들어가게 해요. 저는 그냥 대표님한테 음식을 드리려고 했을 뿐인데... 그래도 지유 씨가 와서 다행이에요.”주소영이 온지유와 친한 것을 본 직원은 침묵에 잠겼다. 물
온지유는 들을수록 어이가 없었다.“괜히 착각하지 마요. 난 사실만 말했으니까요.”“그럼 지유 씨는 대표님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요?”주소영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온지유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말을 하지 않는다는 건 인정하는 거죠?”주소영은 자신의 직감을 맹신했다. 그래서 온지유가 여이현을 좋아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지난 세월 동안 여이현은 온지유를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는 가능성이 없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지유는 다른 여자가 여이현을 좋아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 듯했다. 이렇게 생각하면 여이현이 스캔들이 적은 것도 이해가 갔다. 그사이에는 무조건 온지유의 방해가 있었을 것이었다.“지유 씨, 우리 공평하게 경쟁해요. 그래야 제가 졌을 때 납득할 수 있죠.”주소영은 진심 어리게 말했다.“만약 대표님이 저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깔끔하게 물러날게요. 다시는 찾아오는 일이 없을 거라고 약속해요.”온지유는 웃음만 나왔다.“제가 정말 주소영 씨를 경쟁 상대로 본다고 생각해요?”“알아요. 지유 씨는 대표님 곁에 오래 있었으니 정이 들 수밖에 없었겠죠. 하지만 그건 남녀 사이의 정이 아니라 하급자가 상급자에 대한 정이에요. 저는 다 이해해요. 그러니 지유 씨도 저를 이해해 줬으면 해요.”주소영의 말 중에서 온지유가 상처받은 건 딱 하나다. 하급자가 상급자에 대한 정, 이 말에 그녀는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그녀는 이를 너무 잘 알기에 한 번도 선을 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말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그녀인데도 지금은 약간 흔들렸다.주소영의 얼굴은 노승아와 아주 많이 닮아 있었다. 이윤정의 말대로 여이현은 정말 이런 타입의 여자에게 관심 있는지도 모른다.온지유는 마음을 다잡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아무도 슬픔을 보지 못할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주소영 씨 당신은 쓸데없는 생각이 너무 많아요. 나를 가상의 적으로 삼지 마요. 만약 주소영 씨가 대표님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면
차는 금방 회사 앞을 떠났다. 점점 멀어지는 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온지유는 주먹을 꽉 쥐었다.“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대표님과 아는 사이였던 거예요?”“저렇게 안고 갔는데 모르는 사이일 리가 없죠. 대표님이 저희 책임을 물으면 어떡하죠?”직원들의 말소리를 듣고 온지유는 저도 모르게 우울해졌다. 그녀는 여이현이 여자에게 매정한 모습도, 다정한 모습도 전부 본 적 있다. 기준은 여이현이 그 여자에 대한 마음에 있었다.여이현은 노승아를 좋아한다. 그래서 자그마한 상처도 용납하지 못하고 당장 병원에 데려갔다. 주소영도 마찬가지다. 사고가 나기 바쁘게 그녀는 병원에 가고 있다.직원은 잔뜩 당황한 표정이었다. 자신 때문에 주소영이 사고를 당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직원은 온지유가 아직 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황급히 다가갔다.“온 비서님, 만약 대표님이 책임을 물으시려고 한다면 대신 설명 좀 해주세요.”온지유는 정신 차리고 감정을 다잡았다.“사고는 우연히 일어난 거예요. 여러분이 자책할 필요는 없어요. 대표님이 나중에 책임을 물으시면 제가 설명할게요.”“고마워요, 온 비서님.”직원들은 안심하며 말했다.온지유는 고개를 끄덕이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여이현이 주소영을 데리고 나간 지 10분도 안 돼서 사무실에는 온통 그 소식뿐이었다.사람들은 여이현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겼다고 떠들어댔다. 그는 여전히 그런 타입의 여자를 좋아한다면서 말이다.온지유는 여이현이 어떤 타입의 여자를 좋아하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노승아와 주소영은 어떤 유형인지, 그리고 자신은 그들과 얼마나 다른지 생각했다.‘언제쯤이면 나도 대표님의 취향이 되어서 사랑을 받을까?’그녀는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너무 순진하게 느꼈다.타고난 성격은 이미 정해져 있다. 성격을 바꾼다고 해도 잠깐의 관심만 가질 수 있을 뿐이다. 그럴 바에는 자신답게 사는 게 나았다.퇴근 후, 온지유는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강태규를 찾아갔다. 온경준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뿐더러 정미리가 돌봐주고 있어서 가지
강태규는 윗세대와 공감할 수 있었다. 전쟁 끝의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막강한 실력이 있어야만 다른 나라에서 무시하지 않아. 정말 어렵게 얻은 평화인데 잘 지켜내야지.”온지유는 윗세대의 잔혹함을 직접 겪지 않았다. 그래도 강태규의 벨 에포크가 젊은 시절에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그는 나이가 들어도 나라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열정적인 사람이다. 지금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강태규는 눈가가 붉어졌다.온지유는 그의 말을 주의 깊게 들으며, 그의 다리에 남아 있는 총상 자국을 보았다. 그것만 봐도 그들의 고생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었다.“어르신, 우리나라는 충분히 강해요. 더군다나 인재도 많으니 전쟁이 일어날 일은 없을 거예요.”온지유는 그를 안심시키려고 했다. 그러자 강태규는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너무 자만해서는 안 된다.”이때 그는 무언가 떠오른 듯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그래도 인재가 많은 건 사실이야. 이현이 같은 녀석도 있고. 젊은 나이에 벌써 큰 공을 세웠잖니. 그 녀석은 원래 내 후계자였어. 고집스러운 늙은이가 가업을 잇게 한다고 데려가지만 않았어도... 이현이가 나를 따랐었다면 아마 나보다 더 대단한 공을 세웠을 거야.”온지유는 깜짝 놀랐다. 여이현이 회사를 물려받기 전이라면 아마도 그녀가 처음 여이현과 만났던 시기일 것이다.‘혹시 그때 임무 집행 중이었을까?’“지유야, 난 널 믿으니까 하는 말이야.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안 돼.”“네, 알겠어요.”언젠가 여이현이 두 가문이 가까이 지내지 않는 것은 의심을 피하기 위함이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강태규가 여이현과의 사이를 비밀로 하려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온지유는 그의 말을 마음에 새겼다.그녀는 강태규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담요를 덮어 주었다. 다행히 바람은 따뜻했다. 강태규의 안색도 좋아 보였다.온지유는 강태규가 단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요즘은 치아가 받아 주지를 않아서 못 먹는 것으로 알
강태규는 온지유를 경고하고 싶었다. 여이현을 잘 단속해야 한다고 말이다.강태규가 아픈 몸으로 자신까지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온지유는 미소 지은 얼굴로 대답했다.“알았어요. 이번에는 저도 이미 아는 일이라 괜찮아요. 시간이 늦었는데 이만 들어갈까요? 이러다가 감기 걸리시겠어요.”“그래.”강태규도 눈치껏 입을 닫았다.강태규를 병실에 바래다준 다음 온지유는 산부인과에 가봐야 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했다. 이때 마침 주소영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지유 씨, 병원에서 잠깐 만날 수 있을까요? 저 할 얘기가 있어요.”온지유는 바로 주소영의 병실로 향했다.병실 밖에 서 있던 배진호는 온지유가 온 것을 보고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오면 안 되는 곳에 오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사모님이 어떻게 오셨어요?”억지 미소를 지은 배진호와 달리 온지유는 아주 무덤덤했다.“무슨 일 있어요?”“아... 저 일단 대표님한테 와보시라고 할게요.”배진호의 반응에 온지유는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저한테 숨길 일이라도 있어요?”배진호는 말할지 말지 한참이나 망설였다. 그러다가 병실에 있는 주소영을 힐끗 보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냥 직접 들어가서 확인하세요.”온지유는 병실 안의 주소영을 힐끗 봤다. 그녀는 어두운 안색과 반대된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지유 씨, 왔어요.”그녀는 침대에서 내리려다가 다시 발을 올리며 말을 이었다.“죄송하지만 제가 침대에서 내릴 수 없어서요. 대표님이 조심해야 한다고 그렇게 잔소리를 하고 갔어요. 괜찮죠?”배진호는 주소영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 거슬렸다. 없는 말을 지어내는 능력이 이토록 뛰어난 줄은 오늘 처음 알았다.온지유도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겉으로 티 내지 않았다. 그녀는 아주 사무적인 말투로 물었다.“어디 다쳤어요?”“피부가 살짝 까진 게 전부여서 큰 문제는 없어요.”‘그런데도 입원했다고...?’“하지만 알고 보니 제가 임신했더라고요.”이 말을 들은 온지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배진호는 허락을 구하는 듯 온지유를 힐끗 봤다.“나가요.”배진호는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주소영은 이제야 이불을 거두고 몸을 일으키더니 기대하는 표정으로 배를 쓰다듬었다.“대표님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저도 알아요.”온지유는 주먹을 꽉 쥐었다. 주소영은 여전히 머리를 숙인 채 말을 이었다.“제가 그분을 닮아서 대표님이 좋아해 주시는 거라면서요? 저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해요. 제가 바라는 것도 아이가 무사히 태어나는 것뿐이에요.”말을 마친 주소영은 온지유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계속 말했다.“지유 씨도 알죠? 그분 이름 승아라고 하던데?”온지유의 안색은 창백해졌다. 주소영이 이것까지 알 줄은 몰랐던 것이다.“대표님이 알려줬어요? 자기는 승아라는 사람을 좋아하고, 주소영 씨는 대용품이라고요?”“대용품이고 뭐고, 저는 신경 쓰지 않아요. 제 출신에 이 정도 사랑받을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해야죠.”여이현이 직접 말하지 않은 한 주소영은 절대 알지 못할 일이다.마음이 차갑게 식은 온지유는 손톱이 살에 박힐 정도로 힘껏 주먹을 쥐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녀는 여전히 노승아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했다.“지유 씨는 대표님한테 이런 사랑 받아본 적 없죠?”주소영은 대놓고 온지유를 자극했다. 온지유는 절대 자신의 위치에 오르지 못할 것이라는 맹목적인 자신감이 담긴 눈빛으로 말이다.“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저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온지유는 피식 웃었다.“아니에요. 지구는 누구 한 명 사라져도 계속 돌아요. 대표님한테서 벗어나면...”그녀는 지난날을 떠올리며 가볍게 말했다.“나는 오히려 더 잘 살 수 있을 것 같네요.”주소영은 살짝 놀랐다. 그녀가 이토록 덤덤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누군가를 좋아한다고 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는 법이다. 이게 바로 주소영이 생각하는 사랑이다.‘무슨 포기가 이렇게 빨라? 그래, 내 앞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게 틀림없어.’어찌 됐든 주소영은 현실에 만족스러웠다. 아이라는 보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