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혁의 말에 박대한마저 움찔하고 말았다.그저 인터넷에서 떠도는 폭로글 따위 며칠 욕 몇 마디만 먹으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태한그룹에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칠 줄이야.정말... 내가 늙긴 한 건가...순간 박예리의 편을 들어줬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박대한은 자신이 태한그룹의 대표였던 때를 다시 떠올렸다. 당시에도 태한그룹은 이미 굴지의 대기업이었지만 동종 업계의 라이벌들이 우후죽순 밀려들 때라 경쟁이 아주 치열했었다.하지만 박수혁이 태한그룹을 이어받고 모든 상황이 달라졌다. 박수혁은 천재적인 수완으로 태한그룹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단 몇 년만에 태한그룹에게 대한민국 1위 기업이라는 타이틀을 안겨주었다.하지만 이번 사건은 몇 년간 탄탄대로를 걸어오던 박수혁에게도, 태한그룹에게도 크나큰 충격이었다. 단순히 오늘 주가가 떨어진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대중들에게 갑질 대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게 되었으니 앞으로가 더 걱정될 따름이었다.박수혁의 설명에 박예리의 안색이 더 창백해졌다. 이제 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쫓겨나게 생겼으니 불안할 따름이었다.하지만 박수혁의 응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경호원들 올려보내세요.”전화를 끊은 박수혁이 다시 차가운 시선으로 박예리를 노려보앗다.“박예리, 오늘부터 넌 우리 집안 사람 아니야. 다시는 집에 들어올 생각하지 마. 돈은 나름 챙겨줄 거니까 한국을 떠나. 그 돈으로 죽든 말든 알아서 살아. 알겠어?”물론 돈이라고 해봤자 박예리의 평소 용돈 정도만 챙겨줄 생각이었다.사실 박예리를 집에서 내쫓고 백화점 직원으로 일하게 한 건 단순히 벌을 주기 위함이 아니었다. 밑바닥에서부터 일하며 돈의 소중함과 시장의 흐름을 느끼길 바라서였다.비록 태한그룹 대표는 박수혁이었지만 언젠가 박예리도 한 사람 몫은 하긴 바랐으니까.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박예리가 밖에서 배워온 것이라곤 추잡한 수작뿐이었다.잠시 후 2층으로 올라온 경호원들이 울고 불고 난리를 치는 박예리를 아예 들어버렸다. “오
저택을 나선 박수혁은 바로 회사로 돌아갔다.여론의 공격을 받고 있는 태한그룹은 여러모로 위기였다.소은정과 박수혁의 불행했던 결혼생활을 다시 끄집어낸 것은 물론 박예리의 여러 갑질과 흑역사에 관한 폭로글들이 끝도 없이 쏟아졌다.그리고 박예리가 지금까지 저질렀던 악행들은 부메랑이 되어 태한그룹의 이미지를 갉아먹고 있었다.이번 해, 태한그룹도 여느 그룹들처럼 크고 작은 위기를 겪었지만 오늘처럼 주가가 바닥을 친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평소 이러한 위기에 누구보다 빠르게 반응하던 박수혁이 이번만큼은 왠지 덤덤한 모습이자 다른 직원들은 미쳐버릴 지경이었다.주가가 최저치로 장을 마감할 무렵에서야 태한그룹은 공식적으로 입장을 발표했다.태한그룹이 선택한 방법은 바로 정면 돌파, 새로운 스캔들로 대중들의 시선을 돌리는 게 아닌 태한그룹의 명의로 박예리 대신 소은정에게 사과글을 올렸다.비록 박예리가 개인적으로 저지른 일이며 태한그룹은 전후 과정에 대해 까맣게 모르고 있었지만 박예리는 누가 뭐라 해도 태한그룹 초대 CEO의 손녀이자 현 대표의 여동생이다. 박예리 개인의 잘못이라며 태한그룹은 발을 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홍보팀은 이번 사건의 자초지종을 단 한 치의 거짓없이 서술했으며 재벌 2, 3세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는커녕 자본에 의지해 갑질을 일삼았던 일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했으며 앞으로 소은정과 SC그룹이 원하는 보상 조건을 전부 수락할 것임을 약속했다.사과문이 업로드되고 대중들은 또다시 들썩이기 시작했다.태한그룹은 명실상부 대한민국 1위 그룹, 태한그룹이 흔들리면 대한민국 경제 자체가 흔들린다는 걸 대중들도, 태한그룹 임직원들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통의 그룹이라면 그룹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선을 긋거나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음으로서 이 사실이 대중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지길 기다리는 걸 선택하는 게 대부분이었다.하지만 오히려 태한그룹의 정면돌파에 대중들의 분노는 점차 수그러들기 시작했다.한편, 사과문을 업로드한 뒤 드디
태한그룹의 위기가 일단락된 뒤 눈치 빠른 네티즌들은 박수혁이 자신의 “몰카”에 좋아요를 누른 걸 발견했다.박수혁과 소은정의 팬이 업로드한 사진으로 회의실에서 인터뷰를 받을 때 찍은 것이었다.사진 속 박수혁은 그레이톤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차분한 회색이 박수혁의 차갑고 날카로운 분위기를 더 부각시켜주었다. 그리고 깍지를 끼고 있는 왼손 무명지에는 싱글 반지가 끼어져있었다.소은정이 좋아하는 반지-화려한 싱글을 의미하는 반지를 결혼반지 자리에 착용한 것이었다.그때 당시에는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았던 때라 일부러 조작한 사진이라 말할 수도 없었다.언제나 소은정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 일부러 좋아요를 누른 박수혁이었다.그리고 박수혁은 개인 SNS 계정으로 태한그룹 공식 계정이 업로드한 SC그룹 홍보 글귀를 공유했다. 박수혁이 직접 홍보에 나서자 SC그룹의 매출은 바로 신기록을 돌파했다.워낙 핫 시즌이라 태한그룹 또한 신제품 출시를 진행하고 있었지만 이번 사건을 의식해서인지 자회사 제품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인해 SC그룹과 태한그룹은 왠지 떼어낼 수 없는 커플과 같은 관계가 되어버렸고 오히려 태한그룹의 매출까지 올라가는 윈윈의 효과를 이루었다.거대한 위기 앞에서 박수혁의 뛰어난 위기대처능력으로 태한그룹은 이미지를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박예리와 태한그룹을 완전히 분리해내는 쾌거를 이루었다.태한그룹의 주식은 천천히 정상 수준으로 올라갔고 SC그룹의 주가마저 상승세를 기록했다.적어도 반 년은 휘청일 거라 생각했던 사건이 이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마되자 업계의 다른 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를 뿐이었다.태한그룹, 회의를 마치고 다른 직원들은 자리를 뜨고 오한진과 이한석만 남아 자리를 지켰다. 조명을 등지고 있어 박수혁의 표정을 확인할 수 없는 터라 두 사람 모두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대표님, 인터넷 여론은 이미 통제되었습니다. 이때 SC그룹에서 대응 한번만 해도 좋을 텐데요.”
이럴 때 더 공격을 날려 박한 이미지를 쌓을 바에야 이쯤에서 끝내는 게 맞았다.게다가 SC그룹의 신제품 홍보를 대신 해주는 성의가 담기다 못해 비굴하기까지 한 신박한 사과방식에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한편, 소은해는 소은정이 차분하게 신제품 재고나 충분하게 준비해 두라고 말하는 걸 보고 의아함을 느꼈다.“그냥 이렇게 넘어간다고? 박수혁이 이렇게까지 했는데 그냥 이대로 넘어가도 괜찮겠어?”소은해의 질문에 소은정이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당연하지...”“여자 마음은 갈대라더니 진짜 이해가 안 된다. 어제까지만 해도 박수혁을 밟아버릴 것처럼 굴더니 오늘은 왜 이렇게 웃는대?”사실 소은해는 박수혁을 있는대로 몰아붙여 박수혁이 소은정 앞에서 무릎까지 꿇기를 바랐었다.그리고 그 사진을 찍어 SNS에까지 올려 진짜 개망신을 주려던 계획이었는데 이대로 끝난다고 생각하니 솔직히 분이 풀리지 않았다.하지만 아직도 흥분한 소은해와 달리 소은정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 아니, 어찌 보면 왠지 즐거움까지 느껴졌다.“대충 계산해 봤는데 어제 태한그룹이 주식 폭락으로 잃은 돈은 700억, 우리 그룹이 주가 상승과 신제품 홍보 효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약 1200억 정도, 하룻밤 사이에 태한그룹은 우리 그룹에 2000억 정도 뒤쳐지게 됐어. 그리고 이번 사건에서 박수혁의 타깃은 전동하 대표였어. 이 정도면 어부지리 제대로 얻은 거 아니야??”그나마 전동하의 대부분 자산은 미국 쪽에 집중되어 있어 실질적인 자금 피해 없이 욕만 몇 마디 먹은 게 다행이었다.소은정의 해명에 소은해는 혀를 찼다.2000억에 타협한다니. 무릎을 꿇은 박수혁의 모습을 못 보게 생겼다는 생각에 왠지 배가 아팠다.한편, 소은정은 태한그룹이 이번 위기를 넘어간 방법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이런 위기대처 케이스는 듣도 보도하지 못했다. 이렇게 비굴하고 어찌 보면 귀엽기까지 한 아이디어라면 어쩌면 오한진의 생각이 아닐까 소은정은 생각했다.두 남매가 대화를 나누던 그때 집사가 들어
전동하의 대답에 소은정, 소은해 모두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친구와 싸운 것도 모자라 다른 사람을 아빠로 위장시키다니...마이크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그럼 얼른 가보셔야겠어요. 마이크가 기다리고 있을 텐데... 오늘 저녁 비행기로 가시는 거예요?”소은정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던 전동하가 시간을 확인했다.그 뒤로 두 사람과 짧은 대화를 나눈 뒤 전동하는 부랴부랴 자리를 떴다.박예리와 박수혁의 음모론은 전동하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입히지 않았기에 어제 오늘 전동하는 소은정의 복수극을 지켜보기만 했었다.뭘 어떻게 하든 이렇게라도 소은정의 화가 풀린다면 전동하도 기뻤으니까.한편 그 뒤로 박수혁은 소은정에게 수없이 많은 전화를 걸었고 문자도 보냈지만 돌아오는 답은 단 하나도 없었다.사과도 하고 보상도 해줬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차가운 그녀의 태도에 박수혁의 마음은 점점 더 조급해져만 갔다.결국 다시 소은정의 본가로 찾아간 박수혁에게 돌아온 대답은 꽤 충격적이었다.“아가씨께서는 일 때문에 S시로 가셨습니다.”하마터면 그녀의 목숨을 앗아갈 뻔한 곳이다. 그런데 그곳에 다시 돌아간다니. 이해가 안 될 따름이었다.잠시 후, 박수혁의 차.소은정이 S시로 갔다는 소식을 알게 된 뒤로 더 차가워진 박수혁의 분위기에 한참 동안 눈치를 보던 오한진이 겨우 입을 열었다.“대표님, 일단 진정 좀 하세요. 어쩌면 은정 대표님도 지금은 대표님을 뵙고 싶지 않을지도 몰라요...”오한진의 말에 박수혁의 기분은 더 다운되었다.“은정이가 날 원했던 적이 있었던가? 하, 그런 적도 없는 것 같네.”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새카만 박수혁의 눈동자에 침을 꿀꺽 삼키던 오한진이 다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가끔씩... 거리를 가지는 것도 호감도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하죠. S시에서 은정 대표님이 돌아오실 때쯤이면 화가 풀리시지 않았을까요?”오한진의 목소리에 박수혁은 그를 힐끗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버렸다.오한진이 낸 아이디어 덕분에 소은정
소은정의 농담 섞인 말에 이건은 고개를 푹 숙였다.“죄송합니다. 제가 평소 건강 관리를 더 잘했어야 하는데....”진심으로 속상한 듯한 이건의 모습에 고개를 돌린 소은정은 한숨을 내쉬었다.다음 프로젝트 담당자를 선정할 때는 건강 상태도 고려해야겠어.오늘의 기자회견 장소는 공사 현장, 우여곡절 끝에 여전히 미완성 상태인 건물 앞이었다.기자회견이 시작되고 소은정은 괜히 시선을 끄는 게 싫어 직원들 사이에 숨어들었다.프로젝트 담당자인 이건이 메인 자리에 앉아 이번 프로젝트의 전망과 공사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우여곡절 끝에 SC그룹의 투자를 받은 이번 프로젝트는 S시 전체의 도시 계획에 큰 역할을 하게 될 건물이라 기자들의 질문 열기도 뜨거웠다.“이 팀장님, 듣기론 지성의 옛 직원들이 회사 앞에서 농성을 피웠던 사건이 있었다고 하던데 이번 프로젝트와 연관이 있는 겁니까? 지금 SC그룹이 지성그룹을 인수했는데요 직원들의 받는 대우는 예전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기자의 질문에 이건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그럴 리가요. 지성그룹은 약 1년 동안 직원들의 월급을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SC그룹이 인수한 뒤에는 밀린 월급은 물론 퇴사를 원하는 직원들에게 퇴직금까지 지급했습니다. 그러니 예전과 똑같다고 하면 소은정 대표님께서 섭섭해 하실 겁니다.”이건의 말에 기자들이 웃음을 터트리고 곧 다음 기자가 질문을 시작했다.“지성그룹의 전 고위층 임원들은 현재 검찰에 구속된 상태입니다. 횡령 관련 범죄라고 들었는데 증거는 SC그룹에서 제공한 건가요?”“이번 범죄는 SC그룹이 지성그룹을 인수하던 과정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구체적인 수사 상황에 대해서는 검찰에 문의해 주세요.”...침착하게 기자들의 질문에 대응하는 이건의 모습에 소은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제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 운전기사의 와이프가 등장할 시간.낯선 여자의 등장에 기자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MC가 그녀의 신분을 소개하자마자 곧 굶주린 늑대들처럼 눈을 번뜩였다.전에
기자들 사이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은 모자를 푹 눌러쓴 마른 체형의 남자였다.비록 눈에 띄는 옷차림은 아니었지만 주위의 기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남자를 빤히 바라보던 소은정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소란 피우는 남자 조용히 끌어내요. 반항하면 바로 경찰에 넘기고요.”딱 봐도 장일성이 일부러 기자회견을 망치기 위해 보낸 사람이 분명했다. 하지만 소은정의 말에 우연준은 망설이기 시작했다.“하지만 제가 가면 대표님은...”저번 사고로 소은정 곁을 떠나는 게 불안한 우연준이었다.그런 우연준을 안심시키려는 듯 소은정이 싱긋 웃어 보였다.“난 괜찮으니까 얼른 가요. 지금 이쪽은 관심 밖이니까요.”고개를 끄덕이던 우연준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섰따.“말하세요! 도대체 돈을 얼마나 받으셨기에 이렇게 남편을 모함하는 겁니까!”남자는 여전히 목소리를 높이며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 무대 위의 여자 또한 이런 상황은 예상치 못한 듯 당황하기 시작했다.그녀의 딸을 위해 이렇게 한 건데 자신의 선택이 틀린 건가 혼란스러웠다.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린 채 기자들 사이에 숨은 여자들을 관찰하던 그때, 모자를 쓴 남자가 여자를 향해 생수병을 던졌다.“모함 맞죠? 해명해 주세요!”...순간 기자회견장이 혼란에 잠기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소은정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그런데 이때! 누군가 또다시 목소리를 높였다.“소은정 대표다! 직접 물어보시죠!”소은정이 대응을 하기도 전에 그녀를 향해 생수병을 날아왔다. 평소라면 쉽게 피했겠지만 휠체어에 앉아있는 터라 거동이 불편한 그녀가 생수병을 피할 가능성은 0에 가까웠다.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우 비서를 보내지 않는 건데...점점 가까워지는 생수병에 눈을 질끈 감던 그때, 누군가 다가오더니 몸으로 그녀의 얼굴을 막아주었다.갑자기 나타난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사람들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고 소은정 역시 눈이 커다래졌다.박수혁이 왜 이곳에?블랙톤 셔츠와 바지, 소매자락에 달린 다이아몬드 커프스
모자를 쓴 남자가 당황하기 시작했다.“헛소리하지 마...”이제 겨우 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한발 앞으로 다가섰다. 다른 두 중년 여성에 비하면 충분히 감정을 제어하고 있었지만 떨리는 목소리만큼은 감출 수 없었다.기자들 앞에 선 여학생이 떨리는 손으로 남자를 가리켰다.“저, 저 사람이에요! 저 사람이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걸 막으려고... 해마다 인명사고를 내고 공사현장의 사고로 위장했어요!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여기까지 올라온 우리 아빠를 그렇게 죽여버렸다고요!”심상치 않은 상황에 기자들 사이에 숨어있던 남자와 그와 한패인 사람들은 바로 탈출을 시도했으나 곧 우연준과 경호원들이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기자회견은 무사히 막바지를 향해 달려갔다. 기자들이 세 피해자들을 인터뷰하는 사이 박수혁이 소은정을 번쩍 안아들었다.박수혁의 차분한 향기에 품에 안겨있던 소은정은 왠지 마음이 불편해졌다.기자회견장에서 멀어지자 소은정은 바로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이거 놔! 박수혁!”하지만 소은정의 발버둥에도 단단한 박수혁의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박수혁이 잔뜩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가만히 있어.”며칠 동안 박수혁은 그야말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어야 했다. 문자도 전화도 전부 무시를 하니 직접 여기까지 왔는데 오자마자 또 누군가 그녀에게 상처를 주려하는 모습을 목격하니 기분은 바닥까지 가라앉았다. 소은정의 곁을 항상 지킬 수 없는 자신이 한심했고 아직도 그에게 차가운 소은정이 야속했다.문 앞의 검은색 랜드로버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박수혁은 문을 열고 소은정을 차에 앉혔다. 소중한 보물을 다루 듯 가벼운 손길이었지만 소은정은 박수혁과 한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치밀었다.“비켜. 내릴꺼니까.”소은정의 말에 흠칫하던 박수혁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걸렸다.“어떻게 내리려고?”그녀의 오른쪽 다리는 아직 부러진 상태, 휠체어도, 목발도 없이 제대로 걸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박수혁이 일부러 그를 놀리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