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혁의 말에 박대한마저 움찔하고 말았다.그저 인터넷에서 떠도는 폭로글 따위 며칠 욕 몇 마디만 먹으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태한그룹에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칠 줄이야.정말... 내가 늙긴 한 건가...순간 박예리의 편을 들어줬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박대한은 자신이 태한그룹의 대표였던 때를 다시 떠올렸다. 당시에도 태한그룹은 이미 굴지의 대기업이었지만 동종 업계의 라이벌들이 우후죽순 밀려들 때라 경쟁이 아주 치열했었다.하지만 박수혁이 태한그룹을 이어받고 모든 상황이 달라졌다. 박수혁은 천재적인 수완으로 태한그룹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단 몇 년만에 태한그룹에게 대한민국 1위 기업이라는 타이틀을 안겨주었다.하지만 이번 사건은 몇 년간 탄탄대로를 걸어오던 박수혁에게도, 태한그룹에게도 크나큰 충격이었다. 단순히 오늘 주가가 떨어진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대중들에게 갑질 대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게 되었으니 앞으로가 더 걱정될 따름이었다.박수혁의 설명에 박예리의 안색이 더 창백해졌다. 이제 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쫓겨나게 생겼으니 불안할 따름이었다.하지만 박수혁의 응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경호원들 올려보내세요.”전화를 끊은 박수혁이 다시 차가운 시선으로 박예리를 노려보앗다.“박예리, 오늘부터 넌 우리 집안 사람 아니야. 다시는 집에 들어올 생각하지 마. 돈은 나름 챙겨줄 거니까 한국을 떠나. 그 돈으로 죽든 말든 알아서 살아. 알겠어?”물론 돈이라고 해봤자 박예리의 평소 용돈 정도만 챙겨줄 생각이었다.사실 박예리를 집에서 내쫓고 백화점 직원으로 일하게 한 건 단순히 벌을 주기 위함이 아니었다. 밑바닥에서부터 일하며 돈의 소중함과 시장의 흐름을 느끼길 바라서였다.비록 태한그룹 대표는 박수혁이었지만 언젠가 박예리도 한 사람 몫은 하긴 바랐으니까.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박예리가 밖에서 배워온 것이라곤 추잡한 수작뿐이었다.잠시 후 2층으로 올라온 경호원들이 울고 불고 난리를 치는 박예리를 아예 들어버렸다. “오
저택을 나선 박수혁은 바로 회사로 돌아갔다.여론의 공격을 받고 있는 태한그룹은 여러모로 위기였다.소은정과 박수혁의 불행했던 결혼생활을 다시 끄집어낸 것은 물론 박예리의 여러 갑질과 흑역사에 관한 폭로글들이 끝도 없이 쏟아졌다.그리고 박예리가 지금까지 저질렀던 악행들은 부메랑이 되어 태한그룹의 이미지를 갉아먹고 있었다.이번 해, 태한그룹도 여느 그룹들처럼 크고 작은 위기를 겪었지만 오늘처럼 주가가 바닥을 친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평소 이러한 위기에 누구보다 빠르게 반응하던 박수혁이 이번만큼은 왠지 덤덤한 모습이자 다른 직원들은 미쳐버릴 지경이었다.주가가 최저치로 장을 마감할 무렵에서야 태한그룹은 공식적으로 입장을 발표했다.태한그룹이 선택한 방법은 바로 정면 돌파, 새로운 스캔들로 대중들의 시선을 돌리는 게 아닌 태한그룹의 명의로 박예리 대신 소은정에게 사과글을 올렸다.비록 박예리가 개인적으로 저지른 일이며 태한그룹은 전후 과정에 대해 까맣게 모르고 있었지만 박예리는 누가 뭐라 해도 태한그룹 초대 CEO의 손녀이자 현 대표의 여동생이다. 박예리 개인의 잘못이라며 태한그룹은 발을 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홍보팀은 이번 사건의 자초지종을 단 한 치의 거짓없이 서술했으며 재벌 2, 3세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는커녕 자본에 의지해 갑질을 일삼았던 일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했으며 앞으로 소은정과 SC그룹이 원하는 보상 조건을 전부 수락할 것임을 약속했다.사과문이 업로드되고 대중들은 또다시 들썩이기 시작했다.태한그룹은 명실상부 대한민국 1위 그룹, 태한그룹이 흔들리면 대한민국 경제 자체가 흔들린다는 걸 대중들도, 태한그룹 임직원들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통의 그룹이라면 그룹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선을 긋거나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음으로서 이 사실이 대중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지길 기다리는 걸 선택하는 게 대부분이었다.하지만 오히려 태한그룹의 정면돌파에 대중들의 분노는 점차 수그러들기 시작했다.한편, 사과문을 업로드한 뒤 드디
태한그룹의 위기가 일단락된 뒤 눈치 빠른 네티즌들은 박수혁이 자신의 “몰카”에 좋아요를 누른 걸 발견했다.박수혁과 소은정의 팬이 업로드한 사진으로 회의실에서 인터뷰를 받을 때 찍은 것이었다.사진 속 박수혁은 그레이톤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차분한 회색이 박수혁의 차갑고 날카로운 분위기를 더 부각시켜주었다. 그리고 깍지를 끼고 있는 왼손 무명지에는 싱글 반지가 끼어져있었다.소은정이 좋아하는 반지-화려한 싱글을 의미하는 반지를 결혼반지 자리에 착용한 것이었다.그때 당시에는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았던 때라 일부러 조작한 사진이라 말할 수도 없었다.언제나 소은정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 일부러 좋아요를 누른 박수혁이었다.그리고 박수혁은 개인 SNS 계정으로 태한그룹 공식 계정이 업로드한 SC그룹 홍보 글귀를 공유했다. 박수혁이 직접 홍보에 나서자 SC그룹의 매출은 바로 신기록을 돌파했다.워낙 핫 시즌이라 태한그룹 또한 신제품 출시를 진행하고 있었지만 이번 사건을 의식해서인지 자회사 제품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인해 SC그룹과 태한그룹은 왠지 떼어낼 수 없는 커플과 같은 관계가 되어버렸고 오히려 태한그룹의 매출까지 올라가는 윈윈의 효과를 이루었다.거대한 위기 앞에서 박수혁의 뛰어난 위기대처능력으로 태한그룹은 이미지를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박예리와 태한그룹을 완전히 분리해내는 쾌거를 이루었다.태한그룹의 주식은 천천히 정상 수준으로 올라갔고 SC그룹의 주가마저 상승세를 기록했다.적어도 반 년은 휘청일 거라 생각했던 사건이 이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마되자 업계의 다른 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를 뿐이었다.태한그룹, 회의를 마치고 다른 직원들은 자리를 뜨고 오한진과 이한석만 남아 자리를 지켰다. 조명을 등지고 있어 박수혁의 표정을 확인할 수 없는 터라 두 사람 모두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대표님, 인터넷 여론은 이미 통제되었습니다. 이때 SC그룹에서 대응 한번만 해도 좋을 텐데요.”
이럴 때 더 공격을 날려 박한 이미지를 쌓을 바에야 이쯤에서 끝내는 게 맞았다.게다가 SC그룹의 신제품 홍보를 대신 해주는 성의가 담기다 못해 비굴하기까지 한 신박한 사과방식에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한편, 소은해는 소은정이 차분하게 신제품 재고나 충분하게 준비해 두라고 말하는 걸 보고 의아함을 느꼈다.“그냥 이렇게 넘어간다고? 박수혁이 이렇게까지 했는데 그냥 이대로 넘어가도 괜찮겠어?”소은해의 질문에 소은정이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당연하지...”“여자 마음은 갈대라더니 진짜 이해가 안 된다. 어제까지만 해도 박수혁을 밟아버릴 것처럼 굴더니 오늘은 왜 이렇게 웃는대?”사실 소은해는 박수혁을 있는대로 몰아붙여 박수혁이 소은정 앞에서 무릎까지 꿇기를 바랐었다.그리고 그 사진을 찍어 SNS에까지 올려 진짜 개망신을 주려던 계획이었는데 이대로 끝난다고 생각하니 솔직히 분이 풀리지 않았다.하지만 아직도 흥분한 소은해와 달리 소은정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 아니, 어찌 보면 왠지 즐거움까지 느껴졌다.“대충 계산해 봤는데 어제 태한그룹이 주식 폭락으로 잃은 돈은 700억, 우리 그룹이 주가 상승과 신제품 홍보 효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약 1200억 정도, 하룻밤 사이에 태한그룹은 우리 그룹에 2000억 정도 뒤쳐지게 됐어. 그리고 이번 사건에서 박수혁의 타깃은 전동하 대표였어. 이 정도면 어부지리 제대로 얻은 거 아니야??”그나마 전동하의 대부분 자산은 미국 쪽에 집중되어 있어 실질적인 자금 피해 없이 욕만 몇 마디 먹은 게 다행이었다.소은정의 해명에 소은해는 혀를 찼다.2000억에 타협한다니. 무릎을 꿇은 박수혁의 모습을 못 보게 생겼다는 생각에 왠지 배가 아팠다.한편, 소은정은 태한그룹이 이번 위기를 넘어간 방법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이런 위기대처 케이스는 듣도 보도하지 못했다. 이렇게 비굴하고 어찌 보면 귀엽기까지 한 아이디어라면 어쩌면 오한진의 생각이 아닐까 소은정은 생각했다.두 남매가 대화를 나누던 그때 집사가 들어
전동하의 대답에 소은정, 소은해 모두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친구와 싸운 것도 모자라 다른 사람을 아빠로 위장시키다니...마이크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그럼 얼른 가보셔야겠어요. 마이크가 기다리고 있을 텐데... 오늘 저녁 비행기로 가시는 거예요?”소은정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던 전동하가 시간을 확인했다.그 뒤로 두 사람과 짧은 대화를 나눈 뒤 전동하는 부랴부랴 자리를 떴다.박예리와 박수혁의 음모론은 전동하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입히지 않았기에 어제 오늘 전동하는 소은정의 복수극을 지켜보기만 했었다.뭘 어떻게 하든 이렇게라도 소은정의 화가 풀린다면 전동하도 기뻤으니까.한편 그 뒤로 박수혁은 소은정에게 수없이 많은 전화를 걸었고 문자도 보냈지만 돌아오는 답은 단 하나도 없었다.사과도 하고 보상도 해줬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차가운 그녀의 태도에 박수혁의 마음은 점점 더 조급해져만 갔다.결국 다시 소은정의 본가로 찾아간 박수혁에게 돌아온 대답은 꽤 충격적이었다.“아가씨께서는 일 때문에 S시로 가셨습니다.”하마터면 그녀의 목숨을 앗아갈 뻔한 곳이다. 그런데 그곳에 다시 돌아간다니. 이해가 안 될 따름이었다.잠시 후, 박수혁의 차.소은정이 S시로 갔다는 소식을 알게 된 뒤로 더 차가워진 박수혁의 분위기에 한참 동안 눈치를 보던 오한진이 겨우 입을 열었다.“대표님, 일단 진정 좀 하세요. 어쩌면 은정 대표님도 지금은 대표님을 뵙고 싶지 않을지도 몰라요...”오한진의 말에 박수혁의 기분은 더 다운되었다.“은정이가 날 원했던 적이 있었던가? 하, 그런 적도 없는 것 같네.”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새카만 박수혁의 눈동자에 침을 꿀꺽 삼키던 오한진이 다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가끔씩... 거리를 가지는 것도 호감도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하죠. S시에서 은정 대표님이 돌아오실 때쯤이면 화가 풀리시지 않았을까요?”오한진의 목소리에 박수혁은 그를 힐끗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버렸다.오한진이 낸 아이디어 덕분에 소은정
소은정의 농담 섞인 말에 이건은 고개를 푹 숙였다.“죄송합니다. 제가 평소 건강 관리를 더 잘했어야 하는데....”진심으로 속상한 듯한 이건의 모습에 고개를 돌린 소은정은 한숨을 내쉬었다.다음 프로젝트 담당자를 선정할 때는 건강 상태도 고려해야겠어.오늘의 기자회견 장소는 공사 현장, 우여곡절 끝에 여전히 미완성 상태인 건물 앞이었다.기자회견이 시작되고 소은정은 괜히 시선을 끄는 게 싫어 직원들 사이에 숨어들었다.프로젝트 담당자인 이건이 메인 자리에 앉아 이번 프로젝트의 전망과 공사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우여곡절 끝에 SC그룹의 투자를 받은 이번 프로젝트는 S시 전체의 도시 계획에 큰 역할을 하게 될 건물이라 기자들의 질문 열기도 뜨거웠다.“이 팀장님, 듣기론 지성의 옛 직원들이 회사 앞에서 농성을 피웠던 사건이 있었다고 하던데 이번 프로젝트와 연관이 있는 겁니까? 지금 SC그룹이 지성그룹을 인수했는데요 직원들의 받는 대우는 예전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기자의 질문에 이건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그럴 리가요. 지성그룹은 약 1년 동안 직원들의 월급을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SC그룹이 인수한 뒤에는 밀린 월급은 물론 퇴사를 원하는 직원들에게 퇴직금까지 지급했습니다. 그러니 예전과 똑같다고 하면 소은정 대표님께서 섭섭해 하실 겁니다.”이건의 말에 기자들이 웃음을 터트리고 곧 다음 기자가 질문을 시작했다.“지성그룹의 전 고위층 임원들은 현재 검찰에 구속된 상태입니다. 횡령 관련 범죄라고 들었는데 증거는 SC그룹에서 제공한 건가요?”“이번 범죄는 SC그룹이 지성그룹을 인수하던 과정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구체적인 수사 상황에 대해서는 검찰에 문의해 주세요.”...침착하게 기자들의 질문에 대응하는 이건의 모습에 소은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제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 운전기사의 와이프가 등장할 시간.낯선 여자의 등장에 기자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MC가 그녀의 신분을 소개하자마자 곧 굶주린 늑대들처럼 눈을 번뜩였다.전에
기자들 사이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은 모자를 푹 눌러쓴 마른 체형의 남자였다.비록 눈에 띄는 옷차림은 아니었지만 주위의 기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남자를 빤히 바라보던 소은정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소란 피우는 남자 조용히 끌어내요. 반항하면 바로 경찰에 넘기고요.”딱 봐도 장일성이 일부러 기자회견을 망치기 위해 보낸 사람이 분명했다. 하지만 소은정의 말에 우연준은 망설이기 시작했다.“하지만 제가 가면 대표님은...”저번 사고로 소은정 곁을 떠나는 게 불안한 우연준이었다.그런 우연준을 안심시키려는 듯 소은정이 싱긋 웃어 보였다.“난 괜찮으니까 얼른 가요. 지금 이쪽은 관심 밖이니까요.”고개를 끄덕이던 우연준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섰따.“말하세요! 도대체 돈을 얼마나 받으셨기에 이렇게 남편을 모함하는 겁니까!”남자는 여전히 목소리를 높이며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 무대 위의 여자 또한 이런 상황은 예상치 못한 듯 당황하기 시작했다.그녀의 딸을 위해 이렇게 한 건데 자신의 선택이 틀린 건가 혼란스러웠다.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린 채 기자들 사이에 숨은 여자들을 관찰하던 그때, 모자를 쓴 남자가 여자를 향해 생수병을 던졌다.“모함 맞죠? 해명해 주세요!”...순간 기자회견장이 혼란에 잠기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소은정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그런데 이때! 누군가 또다시 목소리를 높였다.“소은정 대표다! 직접 물어보시죠!”소은정이 대응을 하기도 전에 그녀를 향해 생수병을 날아왔다. 평소라면 쉽게 피했겠지만 휠체어에 앉아있는 터라 거동이 불편한 그녀가 생수병을 피할 가능성은 0에 가까웠다.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우 비서를 보내지 않는 건데...점점 가까워지는 생수병에 눈을 질끈 감던 그때, 누군가 다가오더니 몸으로 그녀의 얼굴을 막아주었다.갑자기 나타난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사람들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고 소은정 역시 눈이 커다래졌다.박수혁이 왜 이곳에?블랙톤 셔츠와 바지, 소매자락에 달린 다이아몬드 커프스
모자를 쓴 남자가 당황하기 시작했다.“헛소리하지 마...”이제 겨우 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한발 앞으로 다가섰다. 다른 두 중년 여성에 비하면 충분히 감정을 제어하고 있었지만 떨리는 목소리만큼은 감출 수 없었다.기자들 앞에 선 여학생이 떨리는 손으로 남자를 가리켰다.“저, 저 사람이에요! 저 사람이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걸 막으려고... 해마다 인명사고를 내고 공사현장의 사고로 위장했어요!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여기까지 올라온 우리 아빠를 그렇게 죽여버렸다고요!”심상치 않은 상황에 기자들 사이에 숨어있던 남자와 그와 한패인 사람들은 바로 탈출을 시도했으나 곧 우연준과 경호원들이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기자회견은 무사히 막바지를 향해 달려갔다. 기자들이 세 피해자들을 인터뷰하는 사이 박수혁이 소은정을 번쩍 안아들었다.박수혁의 차분한 향기에 품에 안겨있던 소은정은 왠지 마음이 불편해졌다.기자회견장에서 멀어지자 소은정은 바로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이거 놔! 박수혁!”하지만 소은정의 발버둥에도 단단한 박수혁의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박수혁이 잔뜩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가만히 있어.”며칠 동안 박수혁은 그야말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어야 했다. 문자도 전화도 전부 무시를 하니 직접 여기까지 왔는데 오자마자 또 누군가 그녀에게 상처를 주려하는 모습을 목격하니 기분은 바닥까지 가라앉았다. 소은정의 곁을 항상 지킬 수 없는 자신이 한심했고 아직도 그에게 차가운 소은정이 야속했다.문 앞의 검은색 랜드로버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박수혁은 문을 열고 소은정을 차에 앉혔다. 소중한 보물을 다루 듯 가벼운 손길이었지만 소은정은 박수혁과 한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치밀었다.“비켜. 내릴꺼니까.”소은정의 말에 흠칫하던 박수혁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걸렸다.“어떻게 내리려고?”그녀의 오른쪽 다리는 아직 부러진 상태, 휠체어도, 목발도 없이 제대로 걸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박수혁이 일부러 그를 놀리고 있음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