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 사이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은 모자를 푹 눌러쓴 마른 체형의 남자였다.비록 눈에 띄는 옷차림은 아니었지만 주위의 기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남자를 빤히 바라보던 소은정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소란 피우는 남자 조용히 끌어내요. 반항하면 바로 경찰에 넘기고요.”딱 봐도 장일성이 일부러 기자회견을 망치기 위해 보낸 사람이 분명했다. 하지만 소은정의 말에 우연준은 망설이기 시작했다.“하지만 제가 가면 대표님은...”저번 사고로 소은정 곁을 떠나는 게 불안한 우연준이었다.그런 우연준을 안심시키려는 듯 소은정이 싱긋 웃어 보였다.“난 괜찮으니까 얼른 가요. 지금 이쪽은 관심 밖이니까요.”고개를 끄덕이던 우연준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섰따.“말하세요! 도대체 돈을 얼마나 받으셨기에 이렇게 남편을 모함하는 겁니까!”남자는 여전히 목소리를 높이며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 무대 위의 여자 또한 이런 상황은 예상치 못한 듯 당황하기 시작했다.그녀의 딸을 위해 이렇게 한 건데 자신의 선택이 틀린 건가 혼란스러웠다.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린 채 기자들 사이에 숨은 여자들을 관찰하던 그때, 모자를 쓴 남자가 여자를 향해 생수병을 던졌다.“모함 맞죠? 해명해 주세요!”...순간 기자회견장이 혼란에 잠기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소은정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그런데 이때! 누군가 또다시 목소리를 높였다.“소은정 대표다! 직접 물어보시죠!”소은정이 대응을 하기도 전에 그녀를 향해 생수병을 날아왔다. 평소라면 쉽게 피했겠지만 휠체어에 앉아있는 터라 거동이 불편한 그녀가 생수병을 피할 가능성은 0에 가까웠다.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우 비서를 보내지 않는 건데...점점 가까워지는 생수병에 눈을 질끈 감던 그때, 누군가 다가오더니 몸으로 그녀의 얼굴을 막아주었다.갑자기 나타난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사람들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고 소은정 역시 눈이 커다래졌다.박수혁이 왜 이곳에?블랙톤 셔츠와 바지, 소매자락에 달린 다이아몬드 커프스
모자를 쓴 남자가 당황하기 시작했다.“헛소리하지 마...”이제 겨우 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한발 앞으로 다가섰다. 다른 두 중년 여성에 비하면 충분히 감정을 제어하고 있었지만 떨리는 목소리만큼은 감출 수 없었다.기자들 앞에 선 여학생이 떨리는 손으로 남자를 가리켰다.“저, 저 사람이에요! 저 사람이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걸 막으려고... 해마다 인명사고를 내고 공사현장의 사고로 위장했어요!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여기까지 올라온 우리 아빠를 그렇게 죽여버렸다고요!”심상치 않은 상황에 기자들 사이에 숨어있던 남자와 그와 한패인 사람들은 바로 탈출을 시도했으나 곧 우연준과 경호원들이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기자회견은 무사히 막바지를 향해 달려갔다. 기자들이 세 피해자들을 인터뷰하는 사이 박수혁이 소은정을 번쩍 안아들었다.박수혁의 차분한 향기에 품에 안겨있던 소은정은 왠지 마음이 불편해졌다.기자회견장에서 멀어지자 소은정은 바로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이거 놔! 박수혁!”하지만 소은정의 발버둥에도 단단한 박수혁의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박수혁이 잔뜩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가만히 있어.”며칠 동안 박수혁은 그야말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어야 했다. 문자도 전화도 전부 무시를 하니 직접 여기까지 왔는데 오자마자 또 누군가 그녀에게 상처를 주려하는 모습을 목격하니 기분은 바닥까지 가라앉았다. 소은정의 곁을 항상 지킬 수 없는 자신이 한심했고 아직도 그에게 차가운 소은정이 야속했다.문 앞의 검은색 랜드로버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박수혁은 문을 열고 소은정을 차에 앉혔다. 소중한 보물을 다루 듯 가벼운 손길이었지만 소은정은 박수혁과 한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치밀었다.“비켜. 내릴꺼니까.”소은정의 말에 흠칫하던 박수혁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걸렸다.“어떻게 내리려고?”그녀의 오른쪽 다리는 아직 부러진 상태, 휠체어도, 목발도 없이 제대로 걸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박수혁이 일부러 그를 놀리고 있음
박수혁의 차가운 목소리에 흠칫하던 운전기사가 다급하게 차 시동을 걸었다.“지금 어디 가는 거야? 내 사람들 아직도 저 안에 있어. 나 내릴 거야!”미간을 잔뜩 찌푸린 소은정의 얼굴을 힐끗 바라보던 박수혁의 입가에 비웃음이 실렸다.“네 사람? 네가 위험할 때 네 사람들은 어디 있었지?”말문이 막힌 소은정이 박수혁을 노려 보았다.“세 피해자 유족들, 당신이 데리고 온 거야?”박수혁이 대답하기도 전에 오한진이 잔뜩 신난 얼굴로 입을 열었다.“맞습니다. 저희 대표님이 은정 대표님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아시겠죠? 또 S시로 오셨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회사 일까지 제쳐두시고 한달음에 이곳으로 달려오셨다니까요. 게다가 오는 내내 대표님의 이름까지 중얼거리시면서... 그 모습을 보니 제가 다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이런 남자를 또 어디서 찾습니까?”점점 더 오버스러워지는 오한진의 설명에 박수혁의 눈은 레이저를 뿜어내기 시작했고 소은정의 입가에는 장난스러운 미소가 걸렸다.더는 들어주기 힘들었는지 박수혁이 헛기침을 했다.“오 집사만 입 있는 거 아닙니다. 조용히 좀 가죠?”박수혁의 굳은 표정에 오한진은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젠장, 내가 괜한 소리를 했네...“네, 조용히 하겠습니다. 대표님...”잔뜩 울상인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오한진이 돌아섰다.잠깐의 적막이 감돌고 망설이던 소은정이 드디어 어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어쨌든 고마워.”소은정의 말에 박수혁의 고개를 돌렸다. 완벽한 이목구비, 누가 봐도 설렘을 느낄 만한 얼굴인데 소은정에게는 모든 게 가식적으로 느껴질 뿐이었다.“고맙다는 말이면 다야?”하, 그럴 줄 알았지.“나한테 진 빚이 워낙 많잖아? 고맙다는 인사도 그냥 예의상 한 거였어.”차분한 소은정의 목소리에 박수혁의 표정이 어색하게 굳었다.이게 다 박예리 그 계집애 때문에...다시 고개를 돌린 박수혁이 잠시 고민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그럼... 이걸로 쌤쌤인 거다? 응?”왠지 비굴하기까지 한 박수혁의 말투에 오한진의 가슴
박수혁의 깊은 눈동자를 넋을 잃고 바라보던 소은정은 바로 고개를 돌려버렸다.거세게 박수혁의 손을 뿌리친 소은정은 티슈를 꺼내 손가락을 닦아냈다. 그 모습에 박수혁의 표정이 어색하게 굳었다. 풍성한 속눈썹이 눈동자에 실린 실망감을 가렸다.“사과로 모든 게 다 해결되는 줄 알아? 잘 생각해 봐. 우리가 만난 뒤로 몇 번이나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그런 싸구려 사과가 먹힐 거라고 생각해?”소은정의 말은 마치 날카로운 비수처럼 박수혁의 심장을 찔러버렸다.뭐라고 말하면 변명이 될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제대로 된 대사가 떠오르지 않았다. 소은정에게 그는 사형수나 마찬가지, 무슨 말을 해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차 안의 분위기가 다시 차갑게 굳고... 한참을 망설이던 오한진이 결국 눈을 질끈 감았다.그래, 대표님의 사랑을 위해 내가 희생하는 수밖에...“은정 대표님 그게...”입술을 깨물던 오한진이 말을 이어갔다.“사실... 인터넷에 전 대표님 루머글을 올린 거... 제 아이디어였습니다.”소은정이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제가... 전동하 대표님을 오해했나 봅니다. 언젠가 우연히... 사람들이 전동하 대표의 흉을 보는 걸 엿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게 진짜인 줄 알고... 수혁 대표님도 은정 대표님이 상처를 받으실까 봐 팩트 체크없이 일을 진행하신 거고요. 그리고 그 뒤에 있었던 일은 정말 수혁 대표님과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입니다. 아가씨와 회장님께서 작정하고 대표님을 속이신 거라...”차마 박수혁이 사설 탐정까지 고용해 전동하의 약점을 조사했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 모든 걸 자신이 뒤집어 쓰리고 한 오한진이었다..오한진의 해명을 가만히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전동하 대표가 오 집사님한테 뭐 잘못한 거 있나요?”“아니요...”말끝을 흐리던 전동하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노려보던 소은정이 좌석에 몸을 기댔다.“모르시나 본데 박수혁 대표의 루머는 전동하 대표보다 훨씬 더 많아요. 정말 파기 시작하면 손
어디로 가는 건지 왜 이러는 건지 묻고 싶었지만 더 이상 박수혁과는 말을 섞고 싶지도 않았다.고개를 든 소은정이 백미러를 통해 그녀를 훔쳐보는 오한진과 시선을 마주치고 오한진이 어색하게 고개를 돌리뎌던 그때 소은정이 먼저 입을 열었다.“오 집사님, 휴대폰 빌려주시면 이번 한번은 용서해 드릴게요.”따지고 보면 오한진이 노린 건 그녀가 아니라 전동하였다. 그녀의 복수는 이미 저번에 확실히 한 상태, 비록 전동하는 그녀의 생명의 은인이었지만 전동하 때문에 태한그룹과 척을 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소은정은 혼자가 아니라 뒤에 SC그룹 전체를 업고 있었으니까.휴대폰을 넘겨줘야 하나 오한진이 망설이던 그때 눈을 감고 있던 박수혁이 불쑥 입을 열었다.“주기만 해봐요?”그 모습에 소은정은 화가 나다 못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당신이 날 데리고 간 걸 정말 모를 것 같아? 어차피 곧 알게 될 거야.”그제야 박수혁이 천천히 눈을 떴다.박수혁의 새카만 눈동자에 어둠이 드리웠다.“나랑 같이 있는 게 그렇게 싫어?”그걸 지금 몰라서 묻는 건가 싶어 소은정은 헛웃음을 지었다.“입장 바꿔 생각해 봐. 당신이라면 좋을 것 같아?”잠깐 고민하던 박수혁이 대답했다.“응. 난 좋을 것 같은데?”하, 말이 통해야 대화를 하든가 하지.결국 소은정은 포기한 듯 좌석에 몸을 기대고 박수혁도 다시 눈을 감았다.차 안은 다시 적막에 잠기고 스무스한 드라이빙에 소은정은 점차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이대로 잠들면 안 된다고 입술을 깨물었지만 곧 소은정은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소은정의 안정적인 숨소리에 천천히 눈을 뜬 박수혁이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꼭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살짝 풀었음에도 아무런 반응도 없는 걸 보면 정말 깊게 잠든 게 분명해 보였다.박수혁의 뜨거운 시선이 조용히 잠든 소은정의 얼굴을 훑고 또 훑었다. 싸우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전동하 그 자식한테 해주는 거 절반이라도 나한테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옆에 있던 담요를 조심스럽게 덮어주던 박
전동하라는 이름에 오한진은 어색하게 기침을 내뱉고는 버튼을 눌러 커튼을 젖혔다. 창밖의 눈부신 햇살이 흘러들어왔다.무의식적으로 눈을 감은 소은정은 그제야 잠들기 전 기억들이 머릿속에 몰려들기 시작했다.아, 나 지금 박수혁 차에 있었지.다시 고개를 든 소은정의 시야에 들어온 건 왠지 분노를 참는 것 같은 표정의 박수혁이었다. 소은정은 깊은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는 박수혁의 시선을 깔끔하게 무시하고는 차에서 내렸다.박수혁의 차를 막았던 차량들에서도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물론 소씨 일가의 사람들이었다.차에 혼자 남은 박수혁은 옷매무새를 정리한 뒤 한숨을 내쉬었다.“오빠...”어색하게 웃는 소은정의 얼굴에 소은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미리 얘기도 없이 S시로 간 것도 화가 나는데 박수혁에 차에 탄 뒤로 행방불명에 연락두절, SC그룹이 모든 인맥을 동원한 덕분에 고속도로 CCTV에서 박수혁의 차량 번호를 확인할 수 있었다.경로에 따르면 진작 서산시에 도착하고도 남은 시간인데 여기서 한가로이 드라이브나 하고 있다니. 화가 치밀 수밖에.“박 대표님, 아주 한가하신가 봐요? 인터넷에 업로드된 루머 때문에 꽤 시끄러울 텐데.”소은호가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박수혁은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는 소은호를 향해 피식 웃어 보였다.소씨 일가 4남매 중 소은호는 박수혁과 가장 비슷한 성격의 소유자라 왠지 말이 잘 통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를 존중해 주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가 소은정의 큰 오빠기 때문이었다.“어차피 일어난 일이잖아요?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고. 형님께 폐를 많이 끼쳤습니다...”박수혁의 입에서 나온 형님이란 소리에 소은호는 더 짜증이 치솟았다.“박 대표님, 정말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면 내 동생한테서 떨어져요. 박 대표가, 그리고 그쪽 집안이 그 동안 우리 은정이한테 준 상처로 부족합니까?”소은정은 이번 복수로 울분이 어느 정도 풀린 듯했지만 소은호는 아니었다. 만약 온전히 소은호에게 복수를 맡겼다면 아마... 박예
박수혁의 말에 소은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우웩! 이건 무슨 멘트래!반면 소은호는 딱히 충격을 먹지 않은 듯 코웃음을 치더니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그리고 일부러 박수혁의 말을 살짝 곡해했다.“너더러 뚱뚱하대...”오빠의 말에 흠칫하던 소은정은 한참 뒤에야 고래고래 소리쳤다.“박수혁, 너!!! 내가 가만히 안 둘 거야!”그 동안 다리가 다쳤다는 핑계로 운동도 게을리 하고 몸에 좋다는 것만 먹어 살이 조금 오르긴 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분면 다들 나더러 살이 빠졌다고 말했단 말이야!박수혁 이 개자식! 눈이 어떻게 된 거 아니야?한편, 소은호의 속삭임을 듣지 못한 박수혁은 왜 갑자기 소은정이 저렇게까지 화를 내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이런 노골적인 고백의 말을 건네는 게 그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소은정은 알까?소은호가 끌고온 차량들이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박수혁은 여전히 잔뜩 상처받은 얼굴로 덩그러니 도로 위에 서 있었다.훤칠한 박수혁의 모습에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둘씩 모이고 오한진이 어색하게 기침을 내뱉었다.“대표님, 이제 그만 가시죠?”박수혁이 잔뜩 굳은 얼굴로 차에 탄 뒤에야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왜 화가 난 거지?”박수혁의 중얼거림에 오한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어쩌면... 쭉 계속 참고 계셨을지도 모릅니다.”차에 탄 그 순간부터 욕설을 내뱉고 싶으셨을 거라고요!오한진의 대답에 말문이 막힌 박수혁이 오한진을 노려보았다.그 포스에 눌린 오한진이 다시 꾸물거리며 핑계를 찾았다.“어쩌면... 대표님의 진심어린 고백에 감동을 받으셔서 그랬을지도 모르죠?”오한진의 말도 안 되는 분석에 박수혁이 오한진을 흘겨 보았다.“오 집사는 내가 바보 같아요?”차가운 박수혁의 목소리에 오한진은 바로 고개를 숙였다.“평소 그런 말씀은 잘 안 하시잖아요. 갑작스러워서 당황하셨을지도 모르죠. 그러니까 평소에 표현 좀 많이 하세요. 전동하 대표한테 그런 면에서 선수를 빼앗기면 안 되죠!”전동하는 딱 봐도 친절하고
오한진의 말에 이한석은 어이가 없다는 듯 그를 흘겨보았다.그래, 내가 형을 너무 과대평가했네. 애초에 다른 그룹으로 옮길 생각도 없는 사람인데 말이야.최근 박대한은 박수혁과의 전면전을 생각 중인지 자신의 모든 인맥을 동원해 옛 직원과 현재 회사에서 박수혁의 중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임원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지금 태한그룹의 상황은 그야말로 폭풍우 직전의 고요함 그 자체였다.말단 직원들은 이런 권력 다툼이 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고 조금 직급이 있는 직원들은 지금 줄을 잘 타야 할 텐데 고민이 끊이지 않았다.하지만 박대한의 움직임에도 박수혁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의 편인 이사들이 박수혁에게 조심하라 귀띔을 해줄 때도 보여준 모습은 여유로움 그 자체였다.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박수혁의 모습에 그를 따르는 임직원들을 속이 타들어갈 뿐이었다.박수혁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건 이미 공인받은 사실, 그는 태한그룹을 대한민국을 넘어 국제 시장으로 이끌었다.박대한을 비롯한 그 어떤 전 세대 임직원들도 해내지 못한 일이었다.그리고 그를 따르는 직원들 모두 젊고 도전적인 정신을 가진 이들이었다. 하지만 박대한 쪽은 달랐다. 그때는 워낙 다들 어렵게 살던 때라 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박대한과의 인맥 하나로 이사 자리를 따낸 사람들이 수두룩했다.이 상황에서 박대한이 다시 권력을 잡는다면 젊은 직원들에게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줄 수 있을까? 당연히 아니었다. 그렇게 여유만만인 박수혁과 달리 그의 편에 선 임직원들의 속은 점점 타들어만 갔다.한편, 소은정은 SNS에 깁스를 한 다리 사진을 업로드했다.“걱정해 주셔서 고마워요. 많이 좋아졌어요.”워낙 괜찮냐고 연락이 오는 사람이 많아 SNS에 업로드한 듯 싶었다.역시 사무실에서 휴대폰을 뒤적거리던 박수혁 역시 이 게시물을 발견하고 고민에 잠겼다.오 집사가 그랬지. 닭살스러운 말도 자주해야 적응할 거라고.고민을 마친 박수혁은 좋아요를 클릭함과 동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