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정의 눈치를 힐끗 보던 우연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지금 범인의 아내가 딸과 함께 지성그룹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고 합니다. 저희가 남편을 구치소를 처넣었다며 생활비와 치료비를 내놓으라며 억지를 부린다도 하더군요...”말을 마친 소은정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정말 뻔뻔한 사람이네요.”가해자 주제에 어디서 피해자 코스프레야? 그리고 뭐? 돈까지 달라고? 역겨워...“농성 때문에 회사 직원들 출입도 불편하고 지나가던 행인들의 시선도 꽤 받는 모양입니다. 경비원도 속수무책이고요. 이건 대표님이 도의상 500만원 정도 주신 것 같은데... 이 방법이 통한다 생각했는지 그 뒤로는 계속 찾아오고 있는 상황이고요. 지금 문제는 이 스캔들이 외부에 어떻게 전해질지 모른다는 겁니다. 행여나 프로젝트에도 영향을 미친다면... 저희 쪽에도 손실이 클 것으로 보여집니다.”순간, 두 사람은 침묵에 잠겼다.차오르는 분노에 소은정이 말없이 주먹을 쥐었다. 사고를 당한 것도 죽을 뻔한 것도 그녀인데 왜, 그녀가 피해를 입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그녀가 돈 많은 재벌 2세인 건 사실이지만 자신을 죽이려했던 가해자 가족에게까지 자비를 베풀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경찰에 신고하는 건 어때요?”“경찰에 신고하는 것도 생각해 봤는데... 뺑소니 사건도 아직 조사 중이고... 아내까지 경찰에 구속되면 아이를 케어해 줄 사람이 없어서요...”이렇게 애매한 상황은 처음인지라 우연준도 미간을 찌푸렸다. 불치병에 걸린 아이가 끼어있으니 차가운 비즈니스보다 처리하기가 훨씬 더 어려웠다.“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도 경고만 하고 다시 돌아갔습니다. 이번 프로젝트가 틀어지면 S시의 경제에도 무리가 갈 예정이라 이 국장도 슬쩍 발을 빼려는 눈치인 것 같고요... 저희더러 알아서 처리하라더군요.”하, 능글맞은 늙은이 같으니.우리더러 알아서 처리하라고? 어떻게?프로젝트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그 어떤 편법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녀가 뭘 더 할 수 있을까
소은정의 말에 우연준은 열정이 끓어오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주 자극적인 계획이었지만 분명 리스크도 존재했다.지금 여론전을 벌인다면 오히려 계획을 그르칠 수도 있었다.대중은 약자에게 유난히 약한 법이니까.“지금 여론전을 벌이는 게 정말 저희한테 좋은 일일까요?”우연준이 미간을 찌푸렸다.전동 휠체어의 버튼을 만지작거리던 소은정이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물론 쉽지는 않겠죠. 하지만 그 운전기사는 자기 딸을 위해 살인까지 저지를 수 있는 자예요. 그렇다면 딸을 위해 선행도 할 수 있겠죠.”하지만 우연준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대표님, 그 기사 무기징역은 확정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대표님을 암살하려다 실패하고 경찰에 체포되었죠. 저희한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는데 어떻게 매수하죠?”그 이유가 어찌 되었든 운전기사는 무고한 사람을 죽인 잔인한 살인자였다. 괜히 또 화를 입지 않을까 걱정되는 우연준이었다.“와이프와 아이가 지성그룹 건물 앞에서 농성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세요. 최대한 비참해 보이게요. 프로젝트 시작 당일 와이프가 자신의 범행을 모두 인정한다면 아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치료비를 제공해 줄 거라고 제안한다면... 분명 넘어올 거예요.”담담한 소은정의 말에 우연준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그래. 돈을 원한다 이거지? 그렇다면 그 돈의 효용가치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주겠어.“할 수 있겠어요?”소은정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우연준을 바라보았다.“못 하겠으면 다른 사람한테 부탁할게요.”그제야 정신을 차린 우연준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할 수 있습니다.”소은정을 바라보던 우연준은 놀라움을 넘어 왠지 모를 흥분과 설렘까지 느끼기 시작했다. 새로운 에너지가 끊임없이 그의 가슴에 주입되는 기분이었다.우연준도 수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넘으며 지금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특히 소은호를 보필하며 이 바닥의 음모와 기만에 대해서는 볼 만큼 봐왔다.하지만 소은정은 뭔가 달랐다. 소은정은 그 어떤 시
범인은 자신의 딸을 위해 소은정을 죽이려 했다. 소은정이 운이 조금만 나빴어도 아마 정말로 죽었을 것이다.만약 전동하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만약 전동하의 혈액형이 소은정과 달랐다면...최악의 경우를 하던 소은호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그런 범인의 가족에게는 돈 한 푼도 쓰고 싶지 않았다.소은호의 마음을 알고 있는 소은정 역시 잠깐 침묵했다.그녀에 관한 일이 아니었다면 소은호가 먼저 돈으로 해결했을 테지.상대가 원하는 건 돈이고 SC그룹에게 가장 부족하지 않은 건 바로 돈이다. 일단 돈을 쥐어주고 프로젝트를 시작한 뒤 향후 죄목을 엮어 구치소로 보내버리면 가장 깔끔한 방법이었다.하지만 소은호가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한 가지, 이대로 그 사람들에게 돈을 쥐어주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입술을 깨물던 소은정이 입을 열었다.“오빠, 이 돈은 지성그룹의 이미지 회복은 물론 S시 프로젝트의 기반이 될 수 있는 돈이야. 의미없는 자선사업이 아니라고.”소은정은 어디까지나 상인,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건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최소한의 손실, 최대한의 이익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 이 정도 돈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소은정이 마음을 굳힌 이상 더 설득해도 소용이 없음을 알고 있기에 소은호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네가 이미 결정했다면 더 이상 말리지 않을게. 그래도 병원에서 절대 나가지 마. 원하는 거 있으면 전부 우 비서한테 시키고 알겠지?”그제야 소은정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당연하지. 아직 이렇게 젊은데 남은 인생 절름발이로 살고 싶지 않다고.”그 뒤로 일상에 대해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누다 전화를 끊은 순간, 누군가 병실문을 두드렸다.당연히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러 온 의사라고 생각한 소은정이 고개도 들지 않고 입을 열었다.“네, 들어오세요.”그리고 다음 순간, 뚱뚱한 몸매의 남자가 소은정을 향해 싱긋 미소를 지었다.“은정 대표님, 오랜만이에요! 그 동안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아세요?”“오 집사님
소은정의 말에 충격을 받았는지 한참 동안 입을 벙긋거리던 오한진은 어색하게 헛기침을 한 뒤 다시 말을 이어갔다.“저희 수혁 대표님은 은정 대표님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일하시는 거라고요!”오한진이 왜 여기까지 왔는지 간파한 소은정은 싱긋 미소 지은 뒤 말없이 음식에 집중하기 시작했다.그 모습에 왠지 머쓱해졌지만 오한진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은정 대표님이 사고 당하신 뒤로 우리 대표님께서 이틀 밤을 꼴딱 새우신 건 아세요? 은정 대표님이 계신 병원을 알아내시곤 아주 미친 사람처럼 나가시더라니까요. 분명 S시로 가신 것 같았는데... 돌아오신 뒤부터 왠지 이상하게 변하셨죠. 말도 잘 안 하시고... 뭐 워낙 과묵한 성격이시긴 하지만...”오한진의 말에 젓가락을 잡은 소은정의 손이 멈칫했다. 왠지 가슴이 저릿해지는 느낌이었다. 분명 S시에 있을 때는 박수혁을 만난 적이 없는데... 언제 왔던 거야?“그리고 다시 서산 대학병원으로 옮기셨다는 소식을 듣고 나가시더니 돌아오셔서 바로 쓰러지셨어요... 휴, 그리고 정신을 차리시고는 바로 회사에서 살다시피 하신다니까요. 대표님도 은정 대표님 만나러 오고 싶은 눈치라 제가 넌지시 함께 오시는 게 어떠냐고 물으니까 은정 대표님이 만나고 싶지 않을 거라고...”말끝을 흐린 오한진이 힐끗 소은정의 눈치를 보았다.하지만 소은정은 여전히 덤덤한 얼굴로 식사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우아한 젓가락질과 씹는 모습. 예쁜 사람은 먹는 모습도 예쁘구나 하는 생각이 들던 그때, 오한진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지. 왜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지? 충분히 불쌍해 보이게 설명했는데 말이지...살짝 망설이던 오한진이 말을 이어갔다.“요즘처럼 혼이 나간 것 같은 모습은 처음 봐요... 수혁 대표님이 얼마나 은정 대표님을 사랑하시는지 이번에 새삼스레 다시 깨달았지 뭡니까! 제가 여자라면 너무 행복할 것 같은데요!”눈물까지 글썽이는 오한진의 모습에 소은정이 웃음을 터트렸다.“오 집사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박수혁 대표는 아무 사
하고 싶은 말은 하나도 못했네! 오한진이 풀이 잔뜩 죽은 얼굴로 병원을 나서려던 그때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병원으로 들어왔다.늘씬한 몸매, 부드러운 분위기, 바로 전동하였다.조선시대 뭇 아가씨들의 마음을 울리는 미남 선비가 환생한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은, 전동하는 수묵화 같은 매력을 가진 남자였다.전동하가 병원으로 온 목적은 아마 소은정을 만나기 위함일 터, 발만 동동 구르려던 오한진은 다시 뻔뻔하게 병실로 돌아갈까 잠깐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그는 박수혁의 사람,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박수혁을 대표하기도 한다. 가뜩이나 박수혁을 싫어하는데 더 혐오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한참을 고민하던 박수혁은 태한그룹으로 발걸음을 돌렸다.태한그룹, 요즘 따라 저기압인 대표 덕분에 직원들도 초긴장 상태였다. 최측근인 이한석마저도 만남을 꺼릴 정도이니 말이다.이때 오한진이 헐레벌떡 달려오고 깜짝 놀란 이한석이 자리에서 일어섰다.“형이 왜...”오한진은 숨을 헐떡이며 박수혁의 사무실을 가리켰다.“대표님 안에... 계시지?”이한석이 고개를 끄덕이자 오한진은 바로 문을 두드렸다.“들어와.”박수혁의 차가운 목소리에 침을 꿀꺽 삼킨 오한진이 사무실 문을 열었다.“대표님, 저 왔습니다!”오한진의 목소리에 고개를 살짝 든 박수혁은 다시 파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은정이 상태는 어때 보였어?”사실 박수혁도 매일마다 소은정을 만나러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소은정이 화를 낼까 걱정되기도 했고 가뜩이나 아슬아슬한 두 사람의 사이가 완전히 틀어질까 두려워 병원 주위도 가지 않고 있었다.그저 소은정에 대한 생각을 잊기 위해, 치밀어 오르는 짜증과 분노를 누르기 위해 일에 집중할 뿐이었다.“은정 대표님은 아주 좋아 보이셨어요. 아, 은정 대표님의 더 빠른 회복을 위해 병원 측에서도 면회를 제한하는 것 같더라고요. 은정 대표님을 만나고 싶어도 못 만나고 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오한진은 이런 거짓말으로라도 박수혁의 마음을 달래고 싶었다.
하지만 오한진은 어디까지나 아이디어만 제공할 뿐, 전동하 정도 되는 거물의 흑역사를 직접 캐낼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은 없는 사람이었다.물론, 박수혁에게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닐 테지만.그제야 박수혁이 조금 풀어진 표정으로 오한진을 바라보았다.“은정이는 뭐 좋아하지? 레시피대로 재료 준비해 줘요. 오늘 저녁에 연습 좀 해야겠으니까.”지금 박수혁에게 가장 절실한 건 이미지를 바꾸는 것. 그래서 좀 더 가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박수혁의 말에 오한진이 흠칫했다.아니, 또 요리를 하시겠다고? 제발 주방에는 그만 들어오시라고요!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오한진의 속마음일 뿐,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지금 박수혁은 “가정적인 남자”라는 프레임에 푹 빠진 상태인데다 스스로가 요리에 재능이 없다는 걸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었으니까.박수혁의 말에 입술을 꽉 깨물던 오한진이 한숨을 쉬었다.“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준비하죠.”휴, 오늘 주방 가전제품들 또 새로 갈아야겟네.오한진이 사무실을 떠나고 박수혁은 바로 자신이 알고 있는 사설 탐정에게 전화를 걸었다.분부를 마친 박수혁은 기분이 좋아진 듯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이때 노크소리와 함께 기획부 부장이 머뭇거리며 사무실로 들어왔다. 요즘 박수혁 대표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건 모두가 공공연히 알고 있는 사실, 게다가 기획안에 문제가 생기기까지 했으니 박수혁가 화를 내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대표님, 기획부 기획안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공사 기간이 한 달 정도 연장될 것 같네요.”공사 기간이 한 달이나 늘어난다는 건 한달치 경비가 늘어난다는 걸 의미했다. 이건 이익을 중요시하는 기업에게는 큰 실수, 부장은 제발 자르지만 말아달라고 기도하며 박수혁의 불 같은 호령을 기다리기 시작했다...과연 부장의 보고에 박수혁은 잔뜩 굳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서슬 퍼런 눈빛에 온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부장은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잠깐의 침묵 후 박수혁은 담담하게 한
그리고 전동하는 어디선가 오렌지 하나를 꺼냈다. 그림속에서 꺼낸 듯 흠집 하나 없이 윤기가 흐르는 오렌지였다.“이거, 선물이에요.”전동하의 말에 소은정이 눈을 껌벅였다.지금까지 소은정은 수많은 선물을 받아왔다.다이아몬드 반지, 목걸이, 명품백... 하지만 오렌지 선물은 처음인지라 살짝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저 보통의 오렌지보다 조금 더 예쁘게 생긴 오렌지가 소은정은 마음에 쏙 들었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상큼해질 정도로...역시, 전동하는 소은정의 방어막을 무너트리는 묘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소은정은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며 오렌지를 받아들었다.“어디서 난 거예요?”“아까 과일 트럭이랑 살짝 접촉사고가 있었거든요. 아저씨가 너무 미안해 하시길래 보상으로 오렌지 하나 받았어요.”전동하가 달콤한 목소리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전동하가 타는 차라면 살짝 긁히기만 해도 몇 백만원은 나올 텐데 오렌지 하나로 퉁 친다고?전동하 대표다운 처사네.그의 말에 소은정이 눈썹을 치켜세웠다.“그럼 이건 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오렌지나 마찬가지네요.”소은정의 말에 전동하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서 은정 씨한테 선물로 주려고 가져왔어요. 비싼 오렌지는 뭐가 다를까 싶어서요.”전동하의 시선에 왠지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느낌에 소은정은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30분 뒤에 먹을게요. 지금은 배가 너무 불러서요. 여기서 더 먹으면 배가 터질지도 몰라요.”그녀의 말에 흠칫하던 전동하는 뭔가 떠올린 듯 휴대폰을 꺼냈다.“아, 마이크가 저번 날부터 은정 씨랑 영상 통화를 하고 싶다고 졸라대던데. 지금 할래요?”“그럼요.”마침 소은정도 귀여운 마이크가 보고 싶던 차였다. 연결음이 울리고 마이크의 귀여운 얼굴이 액정을 가득 채웠다.“아빠, 너무 보고 싶어요. 저 잠깐만 귀국하면 안 될까요?”마이크가 잔뜩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애교를 부렸다.하지만 전동하는 전혀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단호하게 거절했다.“안 돼
마이크의 고집에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젓던 전동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래. 그럼 아빠는 바람 좀 쐬고 올게.”전동하를 향해 손을 저은 소은정은 다시 마이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 마이크의 폭신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마이크, 아빠한테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아빠 마음 아프시겠다.”하지만 마이크는 어깨를 으쓱했다.하? 아빠가? 마음이 아파? 흥!“그래도 예쁜 누나랑 단둘이서 얘기하고 싶었던 말이에요.”마이크의 애교에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린 소은정은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그래. 그럼 우리 아빠에 대해 얘기해 볼까? 넌 아빠 장점이 뭐라고 생각해?”소은정의 질문에 마이크는 미간을 찌푸린 채 한참을 망설였다.8년 짧은 인생 중 이렇게 어려운 문제는 처음이었다.아빠에게 장점이 있었나? 맨날 공부만 시키는 아빠! 그런 아빠한테 장점이 있을 리가!하지만 예쁜 누나에게 효자 이미지도 어필하는 게 좋겠다 싶어 억지로 장점을 짜내기 시작했다.그 귀여운 모습에 소은정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참 재미있는 부자라니까.“아빠... 아빠는 장점이... 참 많죠. 일단 잘생겼잖아요! 아빠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뭐 그래도 인기는 제가 더 많지만요!”아빠 장점을 말하면서도 자신의 장점을 어필하는 것도 잊지 않는 마이크의 모습에 소은정이 풉 웃음을 터트렸다.하여간 귀엽다니까.“그리고 또 뭐가 있어?”“으음... 돈도 많죠. 하지만 앞으로 돈은 제가 더 많이 벌 거예요!”마이크의 말에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또?”한참 동안 턱을 만지작거리던 마이크가 대답했다.“누나를 좋아하잖아요.”마이크의 돌직구에 흠칫하던 그때, 마이크가 눈시울을 붉히기 시작했다.“하지만 누나는 내가 더 좋아한단 말이에요. 이 세상에서 내가 누나를 가장 좋아할 걸요?”마이크의 표정에 방금 전까지 복잡하던 기분이 연기처럼 사라졌다.“당연하지. 누나도 우리 마이크 좋아해. 뚝해. 남자는 그렇게 쉽게 우는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