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의 고집에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젓던 전동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래. 그럼 아빠는 바람 좀 쐬고 올게.”전동하를 향해 손을 저은 소은정은 다시 마이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 마이크의 폭신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마이크, 아빠한테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아빠 마음 아프시겠다.”하지만 마이크는 어깨를 으쓱했다.하? 아빠가? 마음이 아파? 흥!“그래도 예쁜 누나랑 단둘이서 얘기하고 싶었던 말이에요.”마이크의 애교에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린 소은정은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그래. 그럼 우리 아빠에 대해 얘기해 볼까? 넌 아빠 장점이 뭐라고 생각해?”소은정의 질문에 마이크는 미간을 찌푸린 채 한참을 망설였다.8년 짧은 인생 중 이렇게 어려운 문제는 처음이었다.아빠에게 장점이 있었나? 맨날 공부만 시키는 아빠! 그런 아빠한테 장점이 있을 리가!하지만 예쁜 누나에게 효자 이미지도 어필하는 게 좋겠다 싶어 억지로 장점을 짜내기 시작했다.그 귀여운 모습에 소은정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참 재미있는 부자라니까.“아빠... 아빠는 장점이... 참 많죠. 일단 잘생겼잖아요! 아빠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뭐 그래도 인기는 제가 더 많지만요!”아빠 장점을 말하면서도 자신의 장점을 어필하는 것도 잊지 않는 마이크의 모습에 소은정이 풉 웃음을 터트렸다.하여간 귀엽다니까.“그리고 또 뭐가 있어?”“으음... 돈도 많죠. 하지만 앞으로 돈은 제가 더 많이 벌 거예요!”마이크의 말에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또?”한참 동안 턱을 만지작거리던 마이크가 대답했다.“누나를 좋아하잖아요.”마이크의 돌직구에 흠칫하던 그때, 마이크가 눈시울을 붉히기 시작했다.“하지만 누나는 내가 더 좋아한단 말이에요. 이 세상에서 내가 누나를 가장 좋아할 걸요?”마이크의 표정에 방금 전까지 복잡하던 기분이 연기처럼 사라졌다.“당연하지. 누나도 우리 마이크 좋아해. 뚝해. 남자는 그렇게 쉽게 우는
마이크와 소은정이 대화를 나누던 그때 전동하가 병실로 다시 돌아왔다.“급한 회의가 있어서 바로 들어가봐야 할 것 같아요.”전동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소은정은 마이크와 작별 인사를 나눈 뒤 휴대폰을 전동하에게 돌려주었다.어플을 끈 순간, 전동하의 휴대폰 기본 화면이 드러났다. 깨끗한 푸른 하늘, 전동하의 성격처럼 편안하고 깔끔한 화면이었다.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들의 섹시한 화보 사진을 기본 화면으로 해놓는 남자들도 워낙 많은 터라 왠지 전동하가 더 마음에 들었다.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은 전동하는 이대로 떠나기 아쉬운 듯 깊은 눈동자로 소은정을 바라보았다.“또 다시 올게요. 먹고 싶은 거나 필요한 거 있으면 바로 얘기해요.”소은정의 심부름이라면 한밤중이라도 달려올 각오가 되어 있었다.“네, 정말 뭐든 다 말할 거니까 기대해요.”소은정의 미소에 잠깐 넋을 잃은 듯한 전동하는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살짝 건드리고 다급하게 돌아섰다.혹시나 소은정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을까 무서워서여다....다음 날, 소은정은 역시나 아침 일찍 일어나 회사 메일을 확인한 뒤 급한 메일에 답장을 보냈다.이때 마침 소은해가 병실로 들어오고 테이블에 아침 식사를 세팅하는 동안 태블릿으로 인터넷을 하던 소은정이 고개를 갸웃했다.“유명 투자 전문가 사실은 바람둥이?”“유명 투자 전문가의 인성 폭로”자극적인 기사 제목에 소은정은 홀린 듯 기사를 클릭했지만 대충 훑어봐도 유명 투자 전문가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은 기사 내용에 미간을 찌푸렸다.뭐야? 기사를 이렇게 써도 되는 거야? 찌라시도 아니고...흥미진진한 얼굴로 기사를 보고 있는 소은정을 향해 소은해가 말했다.“아침 먹자!”자연스레 태블릿을 끈 소은정이 대뜸 물었다.“오빠, 기사 봤어? 유명 투자 전문가에 대한 기사가 톱이던데 이름은 안 나왔더라? 누군지 알아? 우리가 아는 사람이야?”소은정의 질문에 소은해가 눈썹을 치켜세웠다.“기사 제대로 읽어본 거 맞아? 다시 읽어보면 알게 될 거야.”
사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유명인사의 인성을 폭로하는 글은 많고도 많았다.그중에서도 단연 인기를 끄는 건 막장 드라마 못지 않은 연인의 배신 스토리, 하지만 대부분 여성들은 함께 찍은 사진, 계좌 인출 정보, 카톡 채팅 내용 등 여러 가지 증거로 자신의 상황을 입증했다. 거기에 절절한 글귀까지 더해져 네티즌들의 분노를 이끌어냈던 것이다.하지만 왠지 모르게 이 익명의 여성의 고발은 어딘가 뭔가 어색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얼굴도 잘 보이지 않는 사진 달랑 한 장을 제외하고는 전부 일방적인 주장뿐이었다. 그리고 커뮤니티에 이와 같은 글은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가 올라오는데 굳이 이 글만 화제가 되어 인터넷 포털을 톱 기사로 오른 것도 이상했다.왠지 의심스러운 마음에 모자이크된 남자의 모습을 바라보던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어딘가 낯이 익단 말이야...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소은정의 모습에 소은해가 웃음을 터트렸다.“누군지 눈치챘어?”소은정은 들고 있던 태블릿을 침대 위에 내려놓고 수프를 한 스푼 떠먹었다.“모자이크까지 되어 있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그 모습에 소은해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전동하 대표야.”쨍그랑...순간 소은정은 들고 있던 스푼이 바닥에 떨어졌다.그 모습에 미간을 찌푸리던 소은해가 숫가락을 줍더니 구시렁댔다.“아, 숟가락은 하나밖에 안 챙겼단 말이야...”하지만 소은정은 소은해의 말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듯 잔뜩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누구라고?”어쩐지 눈에 익더라니... 그래도 전동하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쪽으로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그런데 왜...설마... 방금 전 폭로문의 내용을 떠올린 소은정의 기분은 강물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끝도 없이 아래로 가라앉았다.남의 일일 때는 이성적으로 돌아가던 머리도 점점 더 복잡해지기 시작했다.아니겠지. 아닐 거야. 아닌 걸 아는데...이때 숟가락을 다시 씻어온 소은해가 한숨을 내쉬었다.“나도 처음에는 못 믿었다니까. 나도
미간을 잔뜩 찌푸린 소은정이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오빠... 그게...”망설이는 소은정의 모습에 소은해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기사 전부 내리게 해달라고?”소은해의 말에 소은정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까 내려야 해. 아무리 인터넷이라도, 아무리 익명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 활동하는 곳이라 해도 이런 헛소문이 유포되게 둘 수는 없어.”“이 여자가 쓴 글이 가짜라고 생각하는 거야? 마이크 나이 정도 아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요즘 재벌 2세, 너한테 매달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여러모로 여자가 말하고 있는 내용과 일치했다. 전동하가 정말 두 가지 얼굴을 가진 사람일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드디어 이성을 되찾은 소은정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어. 하지만 전동하 대표는 내 생명의 은인이야. 거성그룹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전동하 대표가 도와주기도 했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로 가만히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어쩌면 한국에서 전동하가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라곤 소은정뿐일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전동하가 이 위기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소은정의 말에 소은해가 한숨을 쉬었다.“알았어. 내가 도 대표한테 연락해 볼게. 오후 쯤에 대충 다른 자극적인 기사 몇 개 뿌리면 사람들 관심도 사라질 거야.”“그래, 오빠 밖에 없네.”“하, 이럴 때만 오빠지.”피식 웃던 소은해가 언론사와 통화를 하기 위해 병실 밖으로 나가고 이미 입맛이 사라진 소은정은 말없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한참을 멍하니 있던 소은정은 휴대폰을 꺼냈다 다시 내려놓았다.뭘 기대하는 거야...1시간 뒤, 인터넷은 또 다른 기사로 들끓기 시작했다. 유명 여배우와 감독이 사실은 불륜 관계였으며 감독의 와이프가 촬영장에까지 쳐들어와 여배우의 머리채를 잡았다는 내용이었다.5분도 되지 않아 조회수가 1만을 초과하고 “유명 투자 전문가”에 대한 폭로 기사는 소리없이 사라졌다.이름도 제대로 밝히지 않은 “유명 투자 전문가”보
저녁쯤, 연예계의 핵폭탄 불륜 스토리에 대중들이 흥분하고 있을 무렵 또 다른 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바로 “유명 투자 전문가”에 대한 기사였다. 게다가 이번에는 전동하의 신분까지 공개한 상태, “전동하”의 정체가 밝혀진 이상 폭로글 속 요즘 만난다는 재벌 2세가 사실은 소은정이었음이 밝혀졌다.연예인 못지 않은 소은정의 인기에 전동하에 대한 루머는 걷잡을 수 없이 퍼져만 갔다.역시 소식을 입수한 소찬식과 소은호는 기자들이 병원으로 몰려들기 전 소은정을 본가로 옮겼다.그리고 소은해 또한 친한 기자들에게 기사에 소은정에 대한 이름은 언급하지 말라고 부탁했다.하지만 명탐정 네티즌들이 이를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고 소은정의 이름 또한 어느새 인기 검색어에 오르게 되었다.소은정의 본가.소찬식이 잔뜩 화가 난 얼굴로 거실 소파에 털썩 앉았다.사실 인터넷에서 전동하에 대해 어떻게 떠들든 딱히 관심 없었다. 하지만 소은정에게까지 불똥이 튄다면 말이 달라진다.폭로를 시작한 여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목적은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 안절부절 못하던 소찬식이 짜증스레 입을 열었다.“도대체 누구 짓이야? 그리고 전동하 대표는 왜 해명도 안 하는 거야? 어디 숨은 거냐고!”소은정의 눈치를 살피던 소은해가 입을 열었다.“이런 일로 먼저 연락하긴 그렇고... 일단 기다리죠. 저도 할 만큼 했어요. 그런데 하루에 기사를 2번이나 내리면 오히려 저희가 의심받을 거예요.”“내가 이래서 연예계가 싫다고! 네 동생이 그동안 당한 꼴을 생각해 봐!”소찬식이 코웃음을 쳤다.“그만하세요. 어차피 근거 없는 루머예요. 제가 그 사건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것도 아니고요. 뭐가 불안하세요?”소은정의 설득에도 소찬식은 여전히 댓글을 확인하고 있었다.“이런! 아예 너를 상간녀라고 욕하는 댓글도 있잖아! 이걸 어째!”대중들은 무의식적으로 어떠한 사실을 더 악의적인 쪽으로 해석하는 편이었다. 그래야 더 자극적으로 느껴지니까.“은정 언니, 애 딸린 남자 때문에 수혁님 고백을 거절한
전동하가 왔다는 말에 소찬식은 코웃음을 치며 몸을 돌렸다.루머로 귀한 딸 소은정에게 피해를 입힌 걸 생각하면 화가 치밀었지만 얼마 전 소은정을 구했던 걸 생각하면 쫓아낼 수도 없으니 답답할 따름이었다.게다가 아직 사건이 전말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 전동하도 루머의 피해자일 수도 잇으니까...소은해가 가장 먼저 손을 저었다.“분명 해명하려 온 걸 거예요. 어서 들어오라고 하세요.”그리고 고개를 돌려 소찬식을 달랬다.“아빠, 어찌 되었든 은정이의 은인이에요. 화가 나셔도 좀 참으세요.”아들의 말에 소찬식이 눈을 흘겼다.“내가 그 정도도 모를까 봐!”반면 당사자인 소은정은 회사 주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말을 들은 뒤로는 마음이 편안해진 상태였다. 어차피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고 대중들의 관심이란 이런 법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사람들이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집으로 들어온 전동하는 쎄한 집안 분위기를 눈치채고 소은정을 향해 싱긋 미소 지었다.“밖에 비가 내리나 봐요. 전 대표님 옷 다 젖었네. 아저씨, 타월 좀 가져다주세요...”집사가 부랴부랴 타월을 건넸지만 전동하는 멍하니 서서 복잡 미묘한 시선으로 소은정을 바라볼 뿐이었다.소은정이 인터넷에서 떠도는 말을 믿을까 봐 걱정되었고 진짜인가 물어볼까 걱정되었지만 가장 걱정되는 건 아무 것도 묻지 않을까 봐서였다. 아무 것도 묻지 않는다는 건 전동하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의미, 그것이야말로 전동하가 가장 두려운 것이었으니까.게다가 이 일로 네티즌들이 소은정까지 상간녀라고 욕하고 있으니 죄책감이 더 밀려왔다.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하나 한참을 망설이던 그때 소은해의 웃음 소리가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냈다.“대표님, 오늘 꽤 바쁘셨죠?”고개를 돌린 전동하는 별말없이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그리고 소찬식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여러분들께 폐를 끼쳤습니다. 아마 내일쯤이면 기사도 다시 내려갈 겁니다. 다시 누군가 언급될
소은해가 욕설을 내뱉으려던 그때 미간을 잔뜩 찌푸린 소찬식이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은정이가 엮인 이상 SC그룹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걸세. 그리고 자네는 국내에 인맥도 별로 별로 없지 않나. 차라리 우리가 나서는 게 더 나을 거야.”소찬식은 이 바닥에서 자수성가하며 인생의 쓰고 시고 짠맛을 모두 맛 본 사람, 이럴 때야말로 모든 걸 의심하며 대비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그리고 지금 소찬식이 가장 의심가는 건 전동하였다.소은정에 대한 박수혁의 마음은 소찬식도 잘 알고 있는 바, 게다가 박수혁은 이렇게 비겁하게 뒤에서 움직이는 성격이 아니었다.그래서 전동하가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하지만 소찬식의 말에도 전동하의 눈동자는 자신감으로 빛났다.“아니요. 저도 그 동안 국내에서 지내며 나름 인맥도 쌓았습니다. 그리고 포털사이트 대주주 중 한 명이 교포예요. 저와도 절친한 사이고요. 이 사건에 태한그룹이 연루되어 있다는 것도 그분이 알려주신 겁니다.”전동하의 해명에 소찬식이 이를 악물었다.“박수혁 이 개자식이!”“이미 포털사이트 대표와도 대화를 끝냈습니다. 이건 저 개인뿐만이 아니라 SC그룹과 소씨 일가의 명예와도 관련된 일이니까요. 오늘 밤 10시 뒤로 기사는 전부 사라질 겁니다.”전동하의 설명에도 소찬식과 소은해의 표정은 여전히 잔뜩 굳은 상태였다. 박수혁에게 딱히 호감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정정당당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비겁한 술수를 쓸 줄이야.하지만 아버지와 오빠와 달리 소은정의 표정은 여전히 평온했다. 그 모습에 전동하는 왠지 불안감이 엄습했다.“은정 씨, 오늘 일은... 정말 미안해요.”“아니에요. 전 대표님도 피해자라는 걸 아는데요 뭘. 사과하실 필요 없어요.”“인터넷에서 떠도는 말들 전부 사실이 아니에요. 그 여자가 누군지 대충 짐작도 가고요. 날 믿어줘요.”잠깐 멈칫하던 전동하가 한 마디 덧붙였다.“정 못 믿겠으면 직접 조사해 봐도 괜찮아요. 진실은 단 하나니
잠시 후, 전동하가 소찬식을 향해 다시 허리를 숙였다.“아버님, 시간이 많이 늦었네요. 갑자기 찾아봬서 실례가 많았습니다. 다음 번에 다시 찾아와 정식으로 사과를 올리겠습니다.”한편, 방금 전까지 전동하를 향했던 소찬식의 분노는 이미 박수혁에게로 옮겨진 터라 전동하를 바라보는 눈빛도 많이 부드러워진 모습이었다.“그래. 도움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요. 힘이 닿는 한 다 도울 테니까.”말을 마친 소찬식이 소은해에게 눈치를 주고 소은해도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전 대표님, 제가 배웅해 드릴게요...”전동하는 깊은 눈동자로 소은정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담은 뒤에야 고개를 돌렸다.배웅을 마친 소은해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그제야 소찬식은 참았던 화를 분출해 냈다.“박수혁 그 자식, 도대체 뭐 하는 자식이야? 감히 우리 은정이한테 똥물을 뿌려?”소찬식의 분노에 집사가 바로 냉수 한 잔을 건넸다.한편, 소은정은 여전히 차분한 얼굴로 소호랑의 털을 쓰다듬었다.“엄마, 저 달 보고 싶어요.”소은정의 손길에 기지개를 켜던 소호랑이 애교를 부렸다.소은정의 방은 천장이 열리는 구조로 천문망원경을 통해 별과 달을 관찰할 수 있었다. 소은정도 마음이 복잡할 때면 넓은 하늘과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라앉히곤 했다.“그래. 시간이 많이 늦었네. 아빠, 저 이만 올라가 볼 테니까 아빠도 일찍 주무세요. 너무 화내지 마시고요!”소은정의 눈은 분명 웃고 있었지만 그 표정에서는 그 어떤 온도도 느껴지지 않았다.화가 나지 않는 게 아니었다. 그저 화낼 가치도 없다고 생각될 뿐.소은정의 말에 소찬식이 손을 저었다.“그래. 다리 조심하고.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은해 시키고.”“그래. 오빠만 믿어!”소은해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네, 그럼 이만 올라갈게요.”소은해가 소은정의 휠체어를 끌고 소은정의 방 앞에 도착하고 달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가장 흥분한 소호랑이 폴짝 뛰어 방문을 열었다.“박수혁한테 어떻게 복수할 생각이야? 충동적으로 움직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