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유명인사의 인성을 폭로하는 글은 많고도 많았다.그중에서도 단연 인기를 끄는 건 막장 드라마 못지 않은 연인의 배신 스토리, 하지만 대부분 여성들은 함께 찍은 사진, 계좌 인출 정보, 카톡 채팅 내용 등 여러 가지 증거로 자신의 상황을 입증했다. 거기에 절절한 글귀까지 더해져 네티즌들의 분노를 이끌어냈던 것이다.하지만 왠지 모르게 이 익명의 여성의 고발은 어딘가 뭔가 어색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얼굴도 잘 보이지 않는 사진 달랑 한 장을 제외하고는 전부 일방적인 주장뿐이었다. 그리고 커뮤니티에 이와 같은 글은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가 올라오는데 굳이 이 글만 화제가 되어 인터넷 포털을 톱 기사로 오른 것도 이상했다.왠지 의심스러운 마음에 모자이크된 남자의 모습을 바라보던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어딘가 낯이 익단 말이야...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소은정의 모습에 소은해가 웃음을 터트렸다.“누군지 눈치챘어?”소은정은 들고 있던 태블릿을 침대 위에 내려놓고 수프를 한 스푼 떠먹었다.“모자이크까지 되어 있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그 모습에 소은해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전동하 대표야.”쨍그랑...순간 소은정은 들고 있던 스푼이 바닥에 떨어졌다.그 모습에 미간을 찌푸리던 소은해가 숫가락을 줍더니 구시렁댔다.“아, 숟가락은 하나밖에 안 챙겼단 말이야...”하지만 소은정은 소은해의 말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듯 잔뜩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누구라고?”어쩐지 눈에 익더라니... 그래도 전동하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쪽으로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그런데 왜...설마... 방금 전 폭로문의 내용을 떠올린 소은정의 기분은 강물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끝도 없이 아래로 가라앉았다.남의 일일 때는 이성적으로 돌아가던 머리도 점점 더 복잡해지기 시작했다.아니겠지. 아닐 거야. 아닌 걸 아는데...이때 숟가락을 다시 씻어온 소은해가 한숨을 내쉬었다.“나도 처음에는 못 믿었다니까. 나도
미간을 잔뜩 찌푸린 소은정이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오빠... 그게...”망설이는 소은정의 모습에 소은해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기사 전부 내리게 해달라고?”소은해의 말에 소은정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까 내려야 해. 아무리 인터넷이라도, 아무리 익명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 활동하는 곳이라 해도 이런 헛소문이 유포되게 둘 수는 없어.”“이 여자가 쓴 글이 가짜라고 생각하는 거야? 마이크 나이 정도 아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요즘 재벌 2세, 너한테 매달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여러모로 여자가 말하고 있는 내용과 일치했다. 전동하가 정말 두 가지 얼굴을 가진 사람일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드디어 이성을 되찾은 소은정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어. 하지만 전동하 대표는 내 생명의 은인이야. 거성그룹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전동하 대표가 도와주기도 했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로 가만히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어쩌면 한국에서 전동하가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라곤 소은정뿐일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전동하가 이 위기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소은정의 말에 소은해가 한숨을 쉬었다.“알았어. 내가 도 대표한테 연락해 볼게. 오후 쯤에 대충 다른 자극적인 기사 몇 개 뿌리면 사람들 관심도 사라질 거야.”“그래, 오빠 밖에 없네.”“하, 이럴 때만 오빠지.”피식 웃던 소은해가 언론사와 통화를 하기 위해 병실 밖으로 나가고 이미 입맛이 사라진 소은정은 말없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한참을 멍하니 있던 소은정은 휴대폰을 꺼냈다 다시 내려놓았다.뭘 기대하는 거야...1시간 뒤, 인터넷은 또 다른 기사로 들끓기 시작했다. 유명 여배우와 감독이 사실은 불륜 관계였으며 감독의 와이프가 촬영장에까지 쳐들어와 여배우의 머리채를 잡았다는 내용이었다.5분도 되지 않아 조회수가 1만을 초과하고 “유명 투자 전문가”에 대한 폭로 기사는 소리없이 사라졌다.이름도 제대로 밝히지 않은 “유명 투자 전문가”보
저녁쯤, 연예계의 핵폭탄 불륜 스토리에 대중들이 흥분하고 있을 무렵 또 다른 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바로 “유명 투자 전문가”에 대한 기사였다. 게다가 이번에는 전동하의 신분까지 공개한 상태, “전동하”의 정체가 밝혀진 이상 폭로글 속 요즘 만난다는 재벌 2세가 사실은 소은정이었음이 밝혀졌다.연예인 못지 않은 소은정의 인기에 전동하에 대한 루머는 걷잡을 수 없이 퍼져만 갔다.역시 소식을 입수한 소찬식과 소은호는 기자들이 병원으로 몰려들기 전 소은정을 본가로 옮겼다.그리고 소은해 또한 친한 기자들에게 기사에 소은정에 대한 이름은 언급하지 말라고 부탁했다.하지만 명탐정 네티즌들이 이를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고 소은정의 이름 또한 어느새 인기 검색어에 오르게 되었다.소은정의 본가.소찬식이 잔뜩 화가 난 얼굴로 거실 소파에 털썩 앉았다.사실 인터넷에서 전동하에 대해 어떻게 떠들든 딱히 관심 없었다. 하지만 소은정에게까지 불똥이 튄다면 말이 달라진다.폭로를 시작한 여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목적은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 안절부절 못하던 소찬식이 짜증스레 입을 열었다.“도대체 누구 짓이야? 그리고 전동하 대표는 왜 해명도 안 하는 거야? 어디 숨은 거냐고!”소은정의 눈치를 살피던 소은해가 입을 열었다.“이런 일로 먼저 연락하긴 그렇고... 일단 기다리죠. 저도 할 만큼 했어요. 그런데 하루에 기사를 2번이나 내리면 오히려 저희가 의심받을 거예요.”“내가 이래서 연예계가 싫다고! 네 동생이 그동안 당한 꼴을 생각해 봐!”소찬식이 코웃음을 쳤다.“그만하세요. 어차피 근거 없는 루머예요. 제가 그 사건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것도 아니고요. 뭐가 불안하세요?”소은정의 설득에도 소찬식은 여전히 댓글을 확인하고 있었다.“이런! 아예 너를 상간녀라고 욕하는 댓글도 있잖아! 이걸 어째!”대중들은 무의식적으로 어떠한 사실을 더 악의적인 쪽으로 해석하는 편이었다. 그래야 더 자극적으로 느껴지니까.“은정 언니, 애 딸린 남자 때문에 수혁님 고백을 거절한
전동하가 왔다는 말에 소찬식은 코웃음을 치며 몸을 돌렸다.루머로 귀한 딸 소은정에게 피해를 입힌 걸 생각하면 화가 치밀었지만 얼마 전 소은정을 구했던 걸 생각하면 쫓아낼 수도 없으니 답답할 따름이었다.게다가 아직 사건이 전말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 전동하도 루머의 피해자일 수도 잇으니까...소은해가 가장 먼저 손을 저었다.“분명 해명하려 온 걸 거예요. 어서 들어오라고 하세요.”그리고 고개를 돌려 소찬식을 달랬다.“아빠, 어찌 되었든 은정이의 은인이에요. 화가 나셔도 좀 참으세요.”아들의 말에 소찬식이 눈을 흘겼다.“내가 그 정도도 모를까 봐!”반면 당사자인 소은정은 회사 주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말을 들은 뒤로는 마음이 편안해진 상태였다. 어차피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고 대중들의 관심이란 이런 법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사람들이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집으로 들어온 전동하는 쎄한 집안 분위기를 눈치채고 소은정을 향해 싱긋 미소 지었다.“밖에 비가 내리나 봐요. 전 대표님 옷 다 젖었네. 아저씨, 타월 좀 가져다주세요...”집사가 부랴부랴 타월을 건넸지만 전동하는 멍하니 서서 복잡 미묘한 시선으로 소은정을 바라볼 뿐이었다.소은정이 인터넷에서 떠도는 말을 믿을까 봐 걱정되었고 진짜인가 물어볼까 걱정되었지만 가장 걱정되는 건 아무 것도 묻지 않을까 봐서였다. 아무 것도 묻지 않는다는 건 전동하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의미, 그것이야말로 전동하가 가장 두려운 것이었으니까.게다가 이 일로 네티즌들이 소은정까지 상간녀라고 욕하고 있으니 죄책감이 더 밀려왔다.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하나 한참을 망설이던 그때 소은해의 웃음 소리가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냈다.“대표님, 오늘 꽤 바쁘셨죠?”고개를 돌린 전동하는 별말없이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그리고 소찬식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여러분들께 폐를 끼쳤습니다. 아마 내일쯤이면 기사도 다시 내려갈 겁니다. 다시 누군가 언급될
소은해가 욕설을 내뱉으려던 그때 미간을 잔뜩 찌푸린 소찬식이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은정이가 엮인 이상 SC그룹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걸세. 그리고 자네는 국내에 인맥도 별로 별로 없지 않나. 차라리 우리가 나서는 게 더 나을 거야.”소찬식은 이 바닥에서 자수성가하며 인생의 쓰고 시고 짠맛을 모두 맛 본 사람, 이럴 때야말로 모든 걸 의심하며 대비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그리고 지금 소찬식이 가장 의심가는 건 전동하였다.소은정에 대한 박수혁의 마음은 소찬식도 잘 알고 있는 바, 게다가 박수혁은 이렇게 비겁하게 뒤에서 움직이는 성격이 아니었다.그래서 전동하가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하지만 소찬식의 말에도 전동하의 눈동자는 자신감으로 빛났다.“아니요. 저도 그 동안 국내에서 지내며 나름 인맥도 쌓았습니다. 그리고 포털사이트 대주주 중 한 명이 교포예요. 저와도 절친한 사이고요. 이 사건에 태한그룹이 연루되어 있다는 것도 그분이 알려주신 겁니다.”전동하의 해명에 소찬식이 이를 악물었다.“박수혁 이 개자식이!”“이미 포털사이트 대표와도 대화를 끝냈습니다. 이건 저 개인뿐만이 아니라 SC그룹과 소씨 일가의 명예와도 관련된 일이니까요. 오늘 밤 10시 뒤로 기사는 전부 사라질 겁니다.”전동하의 설명에도 소찬식과 소은해의 표정은 여전히 잔뜩 굳은 상태였다. 박수혁에게 딱히 호감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정정당당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비겁한 술수를 쓸 줄이야.하지만 아버지와 오빠와 달리 소은정의 표정은 여전히 평온했다. 그 모습에 전동하는 왠지 불안감이 엄습했다.“은정 씨, 오늘 일은... 정말 미안해요.”“아니에요. 전 대표님도 피해자라는 걸 아는데요 뭘. 사과하실 필요 없어요.”“인터넷에서 떠도는 말들 전부 사실이 아니에요. 그 여자가 누군지 대충 짐작도 가고요. 날 믿어줘요.”잠깐 멈칫하던 전동하가 한 마디 덧붙였다.“정 못 믿겠으면 직접 조사해 봐도 괜찮아요. 진실은 단 하나니
잠시 후, 전동하가 소찬식을 향해 다시 허리를 숙였다.“아버님, 시간이 많이 늦었네요. 갑자기 찾아봬서 실례가 많았습니다. 다음 번에 다시 찾아와 정식으로 사과를 올리겠습니다.”한편, 방금 전까지 전동하를 향했던 소찬식의 분노는 이미 박수혁에게로 옮겨진 터라 전동하를 바라보는 눈빛도 많이 부드러워진 모습이었다.“그래. 도움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요. 힘이 닿는 한 다 도울 테니까.”말을 마친 소찬식이 소은해에게 눈치를 주고 소은해도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전 대표님, 제가 배웅해 드릴게요...”전동하는 깊은 눈동자로 소은정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담은 뒤에야 고개를 돌렸다.배웅을 마친 소은해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그제야 소찬식은 참았던 화를 분출해 냈다.“박수혁 그 자식, 도대체 뭐 하는 자식이야? 감히 우리 은정이한테 똥물을 뿌려?”소찬식의 분노에 집사가 바로 냉수 한 잔을 건넸다.한편, 소은정은 여전히 차분한 얼굴로 소호랑의 털을 쓰다듬었다.“엄마, 저 달 보고 싶어요.”소은정의 손길에 기지개를 켜던 소호랑이 애교를 부렸다.소은정의 방은 천장이 열리는 구조로 천문망원경을 통해 별과 달을 관찰할 수 있었다. 소은정도 마음이 복잡할 때면 넓은 하늘과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라앉히곤 했다.“그래. 시간이 많이 늦었네. 아빠, 저 이만 올라가 볼 테니까 아빠도 일찍 주무세요. 너무 화내지 마시고요!”소은정의 눈은 분명 웃고 있었지만 그 표정에서는 그 어떤 온도도 느껴지지 않았다.화가 나지 않는 게 아니었다. 그저 화낼 가치도 없다고 생각될 뿐.소은정의 말에 소찬식이 손을 저었다.“그래. 다리 조심하고.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은해 시키고.”“그래. 오빠만 믿어!”소은해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네, 그럼 이만 올라갈게요.”소은해가 소은정의 휠체어를 끌고 소은정의 방 앞에 도착하고 달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가장 흥분한 소호랑이 폴짝 뛰어 방문을 열었다.“박수혁한테 어떻게 복수할 생각이야? 충동적으로 움직
소은정은 결국 휴대폰을 침대 위에 내려놓은 뒤 베란다로 향했다. 폭신한 카펫이 깔린 이곳은 소은정이 가장 눕기 좋아하는 곳이었다.하지만 소은정은 다리를 다쳐 휠체어에 앉을 수밖에 없으니 소호랑이 바로 그녀의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기분이 좋은지 소호랑은 배를 훤히 드러낸 채 별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별 보기를 좋아하는 AI 로봇이라... 이렇게 감성적인 로봇이 있을까 싶었다.소은정은 아예 휴대폰을 꺼버린 뒤 소호랑 곁으로 다가갔다. 특수소재로 만들어진 유리 천장 덕분에 별하늘이 잔뜩 확대되어 마치 바로 눈 앞에 은하수가 펼쳐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바로 손에 잡힐 듯하면서 머나먼 별들... 마치 그녀와 박수혁의 사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밖에는 여전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떨어지는 확대된 빗방울이 유리 천장에 떨어지는 걸 바라보는 것도 나름 운치가 있었다.이렇게 소은정이 여유를 즐기고 있을 무렵, 박수혁의 본가.거실에 앉아있는 박예리는 2층 서재에서 할아버지와 박수혁이 싸우고 있는 소리를 숨죽여 엿듣고 있었다.다시 본가로 돌아온 박예리는 다른 사람이 된 듯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백화점에서 판매직으로 일하는 동안 박예리도 나름 철이 든 상태였다.심지어 과거의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았다 느껴질 정도였으니까.박씨 일가의 외동딸이라는 이유로 호의호식하며 자란 박예리는 다른 사람들이 그녀의 눈치를 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그래서인가 소은정을 끌어내리려 애를 썼음에도 번번히 그녀에게 다시 반격을 당하고 말았었다.그러다 결국 박수혁에 의해 집에서 쫓겨나기까지 했었지...처음에는 울고 불고 애원하고 할 수 있는 방법은 전부 동원했었다. 하지만 박수혁의 눈치를 보느라 그 누구도 그녀를 도와주지 않자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고 말았다.이대로 버림받는다면 고생이라곤 모르고 자란 박예리가 정말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생존을 위해 박예리는 성격을 죽이고 조용히 아르바이트에 열중했고 그 덕분에 드디어 다시 본가로 돌아오게 되었다.드디어 고객의
웜톤 불빛이 서재를 비추었지만 방 안의 공기는 차갑기만 했다.불빛을 등진 채 서 있는 박수혁의 몸이 분노로 떨려왔다. 반쪽 얼굴은 어둠 속에 잠겨서인지 고개를 든 순간, 보여지는 차가운 눈빛은 인간보다 맹수에 더 가까웠다.할아버지에게 실권을 조금이나마 남겨드린 것이 이렇게 다시 돌아올 줄이야.“할아버지가 무슨 짓을 하신 건지는 아세요?”방금 전 고함으로 인해 쉬어버린 목소리로 박수혁이 물었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박대한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물러터진 놈. 아직 한참은 부족해...“전동하를 상대하고 싶은 거 아니었냐? 그 정도로 되겠어? 적을 상대할 때는 최대한 잔인하게 다시는 기어오를 수 없게 처절하게 밟아줘야 해. 이 할아비는 네가 뿌린 장작에 불을 지른 죄밖에 없다.”다시 의자에 앉은 박대한이 박수혁을 힐끗 바라보았다.“네가 전동하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건 알고 있다. 이번에 은정이를 구한 것도 전동하고 요즘 그 가족과도 가깝게 지낸다지? 네 방법이 아예 틀린 건 아니야. 요즘 세상은 여론전도 아주 중요하지. 칼날보다 더 날카로운 게 바로 대중들의 비난이야. 그렇게 된다면 소씨 일가는 물론 소은정도 전동하를 혐오하게 될 테지. 이게 네가 원하는 게 아니었냐?”박대한의 말에 박수혁의 숨이 더 가빠졌다.“전 이렇게까지 할 생각 없었습니다. 전동하 신상이 밝혀지면 은정이한테까지 피해가 갈 테니까요. 지금 사람들이 은정이한테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그래서 이제 속이 시원하시냐고요!”하지만 박수혁의 분노에도 박대한은 싱긋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큰일을 해내려면 작은 희생도 필요한 법이지. 이제 사람들도 소은정과 전동하의 사이를 좋지 않게 보고 있어. 그쪽 집안은 워낙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하니 아마 바로 전동하와 선을 긋겠지. 그리고 결국 다시 네 쪽으로 돌아설 거야.”박대한은 여자 하나 때문에 머뭇거리는 박수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사내자식이 여자 마음 하나 못 돌려서 쩔쩔 매는 꼴 하고는...“네가 소은정 그 아이를 원한다면 더 강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