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전동하가 소찬식을 향해 다시 허리를 숙였다.“아버님, 시간이 많이 늦었네요. 갑자기 찾아봬서 실례가 많았습니다. 다음 번에 다시 찾아와 정식으로 사과를 올리겠습니다.”한편, 방금 전까지 전동하를 향했던 소찬식의 분노는 이미 박수혁에게로 옮겨진 터라 전동하를 바라보는 눈빛도 많이 부드러워진 모습이었다.“그래. 도움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요. 힘이 닿는 한 다 도울 테니까.”말을 마친 소찬식이 소은해에게 눈치를 주고 소은해도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전 대표님, 제가 배웅해 드릴게요...”전동하는 깊은 눈동자로 소은정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담은 뒤에야 고개를 돌렸다.배웅을 마친 소은해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그제야 소찬식은 참았던 화를 분출해 냈다.“박수혁 그 자식, 도대체 뭐 하는 자식이야? 감히 우리 은정이한테 똥물을 뿌려?”소찬식의 분노에 집사가 바로 냉수 한 잔을 건넸다.한편, 소은정은 여전히 차분한 얼굴로 소호랑의 털을 쓰다듬었다.“엄마, 저 달 보고 싶어요.”소은정의 손길에 기지개를 켜던 소호랑이 애교를 부렸다.소은정의 방은 천장이 열리는 구조로 천문망원경을 통해 별과 달을 관찰할 수 있었다. 소은정도 마음이 복잡할 때면 넓은 하늘과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라앉히곤 했다.“그래. 시간이 많이 늦었네. 아빠, 저 이만 올라가 볼 테니까 아빠도 일찍 주무세요. 너무 화내지 마시고요!”소은정의 눈은 분명 웃고 있었지만 그 표정에서는 그 어떤 온도도 느껴지지 않았다.화가 나지 않는 게 아니었다. 그저 화낼 가치도 없다고 생각될 뿐.소은정의 말에 소찬식이 손을 저었다.“그래. 다리 조심하고.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은해 시키고.”“그래. 오빠만 믿어!”소은해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네, 그럼 이만 올라갈게요.”소은해가 소은정의 휠체어를 끌고 소은정의 방 앞에 도착하고 달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가장 흥분한 소호랑이 폴짝 뛰어 방문을 열었다.“박수혁한테 어떻게 복수할 생각이야? 충동적으로 움직
소은정은 결국 휴대폰을 침대 위에 내려놓은 뒤 베란다로 향했다. 폭신한 카펫이 깔린 이곳은 소은정이 가장 눕기 좋아하는 곳이었다.하지만 소은정은 다리를 다쳐 휠체어에 앉을 수밖에 없으니 소호랑이 바로 그녀의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기분이 좋은지 소호랑은 배를 훤히 드러낸 채 별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별 보기를 좋아하는 AI 로봇이라... 이렇게 감성적인 로봇이 있을까 싶었다.소은정은 아예 휴대폰을 꺼버린 뒤 소호랑 곁으로 다가갔다. 특수소재로 만들어진 유리 천장 덕분에 별하늘이 잔뜩 확대되어 마치 바로 눈 앞에 은하수가 펼쳐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바로 손에 잡힐 듯하면서 머나먼 별들... 마치 그녀와 박수혁의 사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밖에는 여전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떨어지는 확대된 빗방울이 유리 천장에 떨어지는 걸 바라보는 것도 나름 운치가 있었다.이렇게 소은정이 여유를 즐기고 있을 무렵, 박수혁의 본가.거실에 앉아있는 박예리는 2층 서재에서 할아버지와 박수혁이 싸우고 있는 소리를 숨죽여 엿듣고 있었다.다시 본가로 돌아온 박예리는 다른 사람이 된 듯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백화점에서 판매직으로 일하는 동안 박예리도 나름 철이 든 상태였다.심지어 과거의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았다 느껴질 정도였으니까.박씨 일가의 외동딸이라는 이유로 호의호식하며 자란 박예리는 다른 사람들이 그녀의 눈치를 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그래서인가 소은정을 끌어내리려 애를 썼음에도 번번히 그녀에게 다시 반격을 당하고 말았었다.그러다 결국 박수혁에 의해 집에서 쫓겨나기까지 했었지...처음에는 울고 불고 애원하고 할 수 있는 방법은 전부 동원했었다. 하지만 박수혁의 눈치를 보느라 그 누구도 그녀를 도와주지 않자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고 말았다.이대로 버림받는다면 고생이라곤 모르고 자란 박예리가 정말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생존을 위해 박예리는 성격을 죽이고 조용히 아르바이트에 열중했고 그 덕분에 드디어 다시 본가로 돌아오게 되었다.드디어 고객의
웜톤 불빛이 서재를 비추었지만 방 안의 공기는 차갑기만 했다.불빛을 등진 채 서 있는 박수혁의 몸이 분노로 떨려왔다. 반쪽 얼굴은 어둠 속에 잠겨서인지 고개를 든 순간, 보여지는 차가운 눈빛은 인간보다 맹수에 더 가까웠다.할아버지에게 실권을 조금이나마 남겨드린 것이 이렇게 다시 돌아올 줄이야.“할아버지가 무슨 짓을 하신 건지는 아세요?”방금 전 고함으로 인해 쉬어버린 목소리로 박수혁이 물었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박대한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물러터진 놈. 아직 한참은 부족해...“전동하를 상대하고 싶은 거 아니었냐? 그 정도로 되겠어? 적을 상대할 때는 최대한 잔인하게 다시는 기어오를 수 없게 처절하게 밟아줘야 해. 이 할아비는 네가 뿌린 장작에 불을 지른 죄밖에 없다.”다시 의자에 앉은 박대한이 박수혁을 힐끗 바라보았다.“네가 전동하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건 알고 있다. 이번에 은정이를 구한 것도 전동하고 요즘 그 가족과도 가깝게 지낸다지? 네 방법이 아예 틀린 건 아니야. 요즘 세상은 여론전도 아주 중요하지. 칼날보다 더 날카로운 게 바로 대중들의 비난이야. 그렇게 된다면 소씨 일가는 물론 소은정도 전동하를 혐오하게 될 테지. 이게 네가 원하는 게 아니었냐?”박대한의 말에 박수혁의 숨이 더 가빠졌다.“전 이렇게까지 할 생각 없었습니다. 전동하 신상이 밝혀지면 은정이한테까지 피해가 갈 테니까요. 지금 사람들이 은정이한테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그래서 이제 속이 시원하시냐고요!”하지만 박수혁의 분노에도 박대한은 싱긋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큰일을 해내려면 작은 희생도 필요한 법이지. 이제 사람들도 소은정과 전동하의 사이를 좋지 않게 보고 있어. 그쪽 집안은 워낙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하니 아마 바로 전동하와 선을 긋겠지. 그리고 결국 다시 네 쪽으로 돌아설 거야.”박대한은 여자 하나 때문에 머뭇거리는 박수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사내자식이 여자 마음 하나 못 돌려서 쩔쩔 매는 꼴 하고는...“네가 소은정 그 아이를 원한다면 더 강하게
비록 지금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박대한은 태한그룹에서 절대자나 마찬가지였다. 수십년 전 구멍가게 수준이었던 태한그룹을 대한민국 1위 그룹으로 키워낸 데는 박대한의 잔인한 수단도 한몫 했었다.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박대한은 주주들은 권력을 노리는 하이에나들이며 이 바닥은 정글이나 다름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유약한 성격의 아들 박봉원이 아닌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손자 박수혁을 후계자로 점찍었다.박수혁의 경영수업도 박대한이 직접 진행했고 최고의 교육을 시킨 건 물론 이 세상의 잔인함을 가르쳐주기 위해 재벌이라면 다들 피하는 군대도 최전방으로 보낸 건 물론 용병 생활까지 하게 했다.박수혁은 박대한이 일생을 담아 만들어낸 최고의 작품이나 마찬가지였다.박수혁이 유학 생활을 마치고 오자마자 대표직을 넘기고 뒤로 물러섰지만 이사직은 영원히 유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태한그룹은 박대한의 인생이자 그에게 가장 빛나는 명예였으니까.그런데 그렇게 아꼈던 손자가 이제 머리 좀 컸다고 그를 회사에서 쫓아내려고 하고 있다. 그러니 화가 치밀 수밖에.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박대한은 부들거리는 손으로 박수혁을 가리켰다.“이제 다 컸다 이거야? 여자 때문에 집안 망신을 시켜!”하지만 박수혁의 표정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할아버지, 지금까지는 봐드렸지만 이번에는 선을 넘으셨어요. 이제는 더 용납할 수 없습니다.”말을 마치고 돌아선 박수혁이 한 마디 덧붙였다.“물론 제 결정이 마음에 안 드신다면 절 대표직에서 끌어내셔도 됩니다.”“그럴 힘이 있으실지는 모르겠지만”이라는 말은 남겨둔 채 박수혁은 서재를 나섰다.회사를 맡은 뒤로 박수혁은 박대한과의 친분만 믿은 채 일도 안 하고 회사의 돈만 긁어먹는 이사들부터 쳐냈다. 이제 태한그룹에 박대한의 편은 거의 없으니 아무리 화가 난다 해도 꾹 참을 수밖에 없을 테지.서재 문이 닫히고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가 우당탕탕 흘러나왔다.“이런 호로자식을 봤나! 누가 널 그 자리에 앉혀줬는데! 내가 아니었으면 네
하지만 박수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끝없는 적막이 박예리는 더 불안했고 무서웠다.한참 뒤에야 박수혁은 차가운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용서? 누구를? 널?”박수혁의 말에 박예리가 고개를 번쩍 들더니 다급하게 변명했다.“오빠, 내가 뭘 했다고 그래? 이건 할아버지가...”박예리의 변명에 박수혁의 표정이 더 차갑게 굳었다.“할아버지 주위에 정말 내 사람이 한 명도 없을 거라 생각해? 어제 낮, 회사에는 왜 온 거야?”박수혁의 말에 박예리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래, 이한석은 박수혁의 사람이다. 박예리가 왔다는 걸 말하지 않았을 리가 없겠지.겁을 먹은 듯 제자리에 얼어붙었던 박예리가 눈시울을 붉혔다.“박예리, 배우라는 건 안 배우고 거짓말 하는 법을 배워왔네? 내일부터 당장 다시 백화점으로 출근해!”박수혁의 호통에 흠칫하던 박예리가 바로 다가가 박수혁의 옷깃을 붙잡고 애원을 시작했다.“오빠, 난 전동하 그 사람이 은정 언니한테 찝적대는 게 싫어서... 그래서 할아버지한테 말씀드린 거야. 난 진심으로 두 사람이 잘됐으면 좋겠어. 그리고... 은정 언니가 욕 먹는 걸 보고... 댓글 알바들까지 풀어서 은정 언니 편을 들었다고.”말을 마친 박예리가 떨리는 손으로 거래 기록과 채팅 기록을 보여주었다.소은정에게 유리한 댓글을 달라는 내용이었다.글귀를 확인한 박수혁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박예리는 더 불쌍하게 울기 시작했다.“흑... 엄마도 아빠도 전부 해외에 계시잖아. 이제 나한테는 오빠랑 할아버지밖에 없어. 그러니까 내치지만 말아줘. 부탁이야. 원한다면 내가 직접 은정 언니한테 사과할게. 사당에서 무릎 꿇고 반성하라면 밤새 꿇을게. 응?”한참을 훌쩍이던 박예리는 박수혁이 또 그녀를 쫓아낼까 싶어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섰다.“지금 바로 갈게.”그 모습을 바라보던 집사가 머뭇거리며 다가왔다.“도련님...”차가운 눈동자로 집사를 바라보던 박수혁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앞으로 할아버지도 박예리도 외출금지입니다. 내일부터 회사에서
이한석의 말에 바로 전화를 끊은 박수혁은 소은정의 본가를 향해 달려갔다.대학교 때 잠깐 취미로 레이싱을 한 뒤로 이렇게 빨린 건 처음이었다.하지만 정작 소은정의 집에 도착하니 박수혁은 오히려 망설여지기 시작했다.살짝 떨리는 손으로 다시 소은정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휴대폰은 이미 꺼진 상태였다.순간 치밀어 오르는 화에 박수혁은 주먹으로 핸들을 내리쳤다. 귀를 찌르는 듯한 경적 소리가 적막한 밤 하늘을 가득 채웠다.그 소리에 잠자리에 들려던 집사 또한 깜짝 놀라 문 밖의 CCTV 영상을 확인했다. 익숙한 랜드로버, 박수혁이 온 것이었다.하지만 차마 바로 문을 열지 못하고 부랴부랴 소은정의 방으로 올라갔다.다행히 소은정은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았는지 소호랑이 꼬리를 흔들며 집사를 맞이했다.“아가씨, 박수혁 대표님이 오신 것 같습니다.”집사의 말에 소은정이 코웃음을 쳤다.“신경 쓰지 마세요. 앞으로도 박수혁은 집에 들이지 마시고요.”그녀에게 상처를 준 남자긴 했지만 그래도 정정당당한 사람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모습도 전부 연기였던 건가?전동하를 건드린 것도 싫었고 괜히 그녀까지 피해를 입은 것도 싫었고 이렇게 추잡한 방법까지 사용하는 박수혁이 싫었다.소은정의 말에 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일찍 주무세요, 아가씨.”집사가 방을 나서고 저택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적막에 잠겼다.갑작스러운 경적 소리에 역시 깜짝 놀란 박수혁이 조심스럽게 저택 분위기를 살폈다. 하지만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던 박수혁은 씁쓸한 마음에 입술을 깨물었다.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는 걸까? 분명 소은정이 저 집 안에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이번에야말로 정말 소은정과 끝났다는 생각에 차가운 기운이 발끝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져나갔다.밤새, 박수혁은 눈 한번 붙이지 못한 채 소은정의 집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이른 아침, 박수혁이 수염이 자라 까칠한 턱을 만지작거리던 그때 굳게 닫혔던 저택의
소은해의 말에 소은정이 눈을 흘겼다. 하여간 눈치는 어디 팔아먹었나?“인터넷 상황은 어때? 기사는 다 내려갔어?”소은정이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리고 소은해 역시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로 흥미진진한 얼굴로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전부 내려갔더라. 그리고 전동하가 말했던 시간보다 2시간 더 일찍. 아, 전동하를 폭로했던 여자도 해명글을 올렸어. 매수당해서 일부러 루머를 퍼트린 거라고. 사실 전동하와는 아는 사이도 아니래. 전동하가 일했던 투자은행에서 인턴으로 일했다나? 그 사진도 그때 찍힌 거고... 물론 지금은 계정도 전부 탈퇴한 상태야.”소은해의 설명에 소은정이 눈을 흘겼다.“뭐야? 돈 노리고 그렇게 한 거래?”“응. 인터넷 반응도 바로 역전됐어. 꽃뱀 아니냐면서... 그런데 전동하 대표도 보통 사람은 아니더라.”“왜?”소은정이 고개를 갸웃했다.“보통은 이 정도면 대충 사과만 받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전동하가 바로 명예훼손으로 바로 경찰에 신고했대... 그 사과문이 바로 증거라면서.”“어떻게 얻은 증거인데 낭비하면 안 되지.”소은정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그렇긴 해? 근데 여기서 끝이 아니야. 그 여자 야반도주 하려다 공항에서 체포됐대. 그 장면을 내가 직접 봤어야 했는데...”돈 주고도 못 볼 진귀한 광경을 놓쳤다는 게 꽤 아쉬운지 소은해가 테이블을 살짝 내리쳤다.반면 소은정은 사건이 해결되었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회사 주가는 어때?”“루머 유포자가 체포되고 너에 대한 헛소문도 자연스럽게 해명된 거나 마찬가지라... 주가도 다시 돌아왔어.”“그래. 회사에 피해 안 간 거면 됐어.”그리고 젓가락을 내려놓은 소은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나 다 먹었어. 올라가서 오빠한테 전화라도 할까 봐.”반이나 남긴 소은정의 밥그릇을 바라보며 소은해가 미간을 찌푸렸다.“오빠가 회사 일은 신경 쓰지 말고 푹 쉬라고 했잖아.”소은해의 말에 소은정이 고개를 돌렸다.“이제 반격해야지.”소은정의 차가운 미
소은정의 제안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웨이브 스튜디오는 국내 최고의 크레이티브 에이전시, 구박사처럼 악의적인 루머나 퍼트리며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에게 웨이브 스튜디오는 꿈의 직장이나 마찬가지였다.갑자기 떨어진 떡을 받아먹어야 하나 망설이던 구박사가 더듬거리며 물었다.“거... 거짓말이면 어떡해요? 작정하고 절 속이시려고 하는 거면...”구박사의 말에 소은정이 웃음을 터트렸다.“집에 계시죠? 약 5분 뒤에 웨이브 스튜디오 채용 계약서가 집에 도착할 겁니다. 그래도 믿음이 안 가시면 변호가까지 대동해 계약서를 작성하시죠. 이번 일만 제대로 해내시면... 돈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제게 했던 짓들 없었던 일로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이 정도 돈으로 제가 사기를 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SC그룹의 소은정이요.”구박사에게 지금까지 받던 돈의 10배라는 금액은 분명 거액이었지만 소은정에게는 밥 한 끼, 쇼핑 한 번 할 돈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그리고 정말 사기를 치고 싶었다면 직접 전화까지 거는 성의를 보일 필요는 없었겠지.잠시 망설이던 구박사가 대답했다.“네, 알겠습니다.”“그래요. 이건 제 번호니까 제 카톡 추가하세요. 자세한 얘기는 문자로 하죠. 그럼.”전화를 끊은 구박사는 여전히 어안이 벙벙했다. 그가 온갖 악의적인 말들로 공격했던 여자가 사실은 이렇게 친절한 사람이었다니.게다가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일을 물어다주고 직장까지 알아봐 주겠다니... 소은정의 너그러움에 감탄이 나오면서도 지금까지 저런 사람을 공격했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밀려들었다.곧바로 소은정의 카톡을 추가한 구박사는 그녀가 원하는 자료들을 전부 넘긴 뒤 자발적으로 장문의 사과문을 전송했다.존경하는 소은정 대표님께:저에게 다시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정말 착하게 살겠습니다...... 또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구성호가”“네, 고마워요.”장문의 사과문에 소은정이 짧게 답장했다.이때 비서가 다시 그녀의 방문을 두드렸다.“아가씨, 박수혁 대표님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