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넘어지겠구나 싶어 눈을 질끈 감던 그때, 휠체어가 멈추었다.누군가 뒤에서 그의 휠체어를 붙잡은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단단한 팔이 쑥 들어오더니 그녀를 휠체어째로 번쩍 들어안았다.시원한 박하향 향수 냄새와 은은한 담배향이 소은정의 코끝을 스쳤다. 박수혁이구나...저택 직원들이나 가족들 중 이렇게 말없이 그녀를 번쩍 들어안을 사람은 없었다.역시나 다시 안정적으로 착지한 소은정이 고개를 들어보니 박수혁의 차갑고 차분한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기다리려니 꽤 급했나봐? 그새를 못 참고 쪼르르 들어오는 걸 보니까?박수혁을 발견한 문 앞을 지키던 집사와 보디가드들이 우르르 달려왔다.“아가씨...”소은정이 손을 들고 집사가 경호원들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충혈된, 초췌한 안색, 은은한 담배 냄새, 누가 봐도 밤을 샌 사람의 얼굴이었다.한쪽 무릎을 꿇은 채 소은정과 눈을 맞추던 박수혁이 입을 열었다.“은정아, 너한테 할 말이 있어.”사실 소은정이 그를 만날 생각이 없다는 건 박수혁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이 사실을 제대로 해명하지 않으면 두 사람의 관계는 이대로 끝일 테니까.그래서 경호원과 집사가 보지 않는 틈을 타 낮은 담장을 타고 저택에 잠입했다. 그리고 마침 휠체어 위에서 비틀대는 소은정을 잡아준 것이었다.거동 조차 불편한 그녀의 모습이 박수혁의 가슴을 더 아프게 만들었다.박수혁이 문을 통해 들어온 게 아니라는 걸 눈치챈 소은정이 차갑게 웃었다.“천하의 박수혁이 담장을 다 넘고 웃기네.”복잡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바라보던 박수혁이 대답했다.“네 얼굴 보고 제대로 해명하고 싶었어.”“그래. 말해 봐...”그래, 박수혁. 어떤 변명을 지어내는지 두고 보겠어!하지만 자초지종을 말하려고 보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참을 망설이다 뱉어낸 말은 결국 사과뿐이었다.“어제 일은... 미안했어.”“뭐가 미안한데?”소은정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모르는 척을 하자 박수혁이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일
박수혁의 해명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소은정은 피식 웃음을 터트리다 고개를 돌렸다.“어차피 다 일어난 일, 이제 와서 그런 말 해 봤자 무슨 소용이야? 아무 근거도 없는 루머로 무고한 사람 매장시키는 거. 그건 정정당당한 방법이라 생각해?”“아무런 근거도 없는? 정말 전동하가 깨끗한 사람인 줄 알아? 친구 와이프와 애매한 사이였다는 거 미국에서는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야.”소은정의 말에 박수혁은 화가 치밀었다.이 상황에서 전동하를 믿는다고? 너까지 상간녀라고 욕을 먹고 있어. 그런데 전동하 편을 들어?하지만 소은정이 이토록 냉정하고 담담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사실에 대해서는 소은정이 박수혁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었으니까.친구의 와이프라... 아마 마이크의 생모를 가리키는 거겠지.사람들의 입에서 전해지다 보니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루머로 커진 것 같긴 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런 더러운 소문까지 감수하면서까지 마이크를 기르고 있는 전동하가 더 다르게 보였다.박수혁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소은정이 싱긋 미소 지었다.“한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결론내리지 마.”아니야. 이 정도 말로는 상처 같은 거 받지 않겠지.”“당신도 전에... 전우의 여자친구와 애매한 관계였잖아?”서민영은 박수혁의 전우 성준상의 여자친구, 그녀를 위해 어떤 일까지 했는지는 박수혁 네가 더 잘 알고 있겠지. 그런데 이제 와서 정의로운 척 다른 사람을 비난해? 난 그런 당신의 이중잣대가 싫어.소은정의 말에 박수혁 표정이 어색하게 굳었다. 깊은 눈동자로 소은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박수혁이 물었다.“나보다 전동하를 더 믿는다 이거야?”차가운 박수혁의 목소리에도 소은정은 또박또박 대답했다.“내가 믿는 건 오직 진실뿐이야.”소은정의 대답에 박수혁은 분노가 치밀었다.진실을 믿는다고? 그냥 날 믿지 않는 거겠지.호흡이 점점 거칠어지고 소은정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박수혁의 눈동자는 더 붉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소은정 앞이라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
하려던 말을 채 내뱉기도 전에 소은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박수혁 씨, 누구 마음대로 여길 들어와요?”소은해의 얼굴에 혐오와 경멸의 감정이 피어올랐다.너 같이 비겁한 자식을 동정했던 내가 바보지.게다가 무릎까지 꿇은 채 소은정과 가까이 있는 모습에 화가 더 치밀었다. 내 동생한테 또 무슨 짓을 하려고!“그리고 우리 동생한테서 떨어져요!”미간을 찌푸린 박수혁이 일어서고 소은정은 버튼을 눌러 뒤로 물러섰다.쪼르르 달려간 소은해가 바로 경계 어린 시선으로 박수혁을 노려 보았다.“지금 우리 집안 사람들이 그쪽 얼굴을 보고 싶을 거라 생각해요? 도대체 무슨 염치로 여기까지 온 거예요? 당장 나가요!”재벌 2세로 자라 태한그룹 대표가 된 그에게 지금까지 이런 말투로 말하는 사람은 소은해가 처음이었다.하지만 소은정의 셋째 오빠라는 사실 때문에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입술을 꾹 다물고 있던 박수혁이 소은정을 바라보고 소은정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싱긋 미소를 지었다.“그럼 멀리 안 나갈게.”뭔가 더 말하려던 박수혁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다음에 다시 올게.”그리고 불쾌하다는 눈빛으로 소은해를 힐끗 쳐다본 뒤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가자, 오빠.”소은해가 휠체어를 밀고 덜컹거리는 길에 미간을 찌푸리던 소은정이 입을 열었다.“이 조약돌 치우자. 휠체어로 움직이려니 힘드네.”소은정의 말에 소은해가 눈썹을 치켜세웠다.“이거 아빠가 직접 구해 오신 건데... 뭐 네가 원한다면 당연히 치워주시겠지.”소은해의 말에 멈칫하던 소은정이 대답했다.“아? 그래? 그럼 됐어. 난 오빠가 픽한 건 줄 알았지.”뭐야? 내가 고른 거면 치워버려도 된다는 거야?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던 소은해가 미간을 찌푸렸다.“박수혁 저 자식 진짜 무슨 염치로 여기까지 온 거래? 멍청한 건지 고지식한 건지...”휠체어의 버튼을 누른 소은정이 담담한 말투로 대답했다.“박 회장이 손을 쓴 모양이더라고. 박수혁이 그렇게 멍청한 선택을 할 리가
채팅기록과 계좌이체 기록을 첨부한 구박사는 모든 기록은 100% 진실이며 조작의 흔적이 있는지 여부는 전문가에게 의뢰해 봐도 된다며 장담했다.구박사는 돈이 아무리 좋다지만 이토록 더러운 일까지 해야 하나에 회의감과 죄책감을 느껴 폭로를 결심하게 되었으며 자비를 베풀어 법적 책임을 물지 않은 소은정 대표에게 감사함과 동시에 앞으로 이 SNS 계정은 영원히 폐쇄하겠다고 선포했다.그리고 마지막으로 구박사가 덧붙인 말은 이러했다.“천벌받고 싶지 않으면 착하게 사세요!”비록 주어를 밝히진 않았지만 그 말의 화살촉이 가리키는 바는 분명했다.한때 목걸이를 훔치고 마카오에서 원정 도박까지 박예리는 재벌 2세들 중에서도 문제아로 손꼽히는 인물 중 하나였다.이 폭로글로 인해 그녀의 많은 흑역사들이 다시 재조명되었고 소은정과 박수혁의 결혼생활 파경 또한 시누이인 박예리의 박해가 한몫 하지 않았냐는 추측까지 생겨났다.하지만 대중들이 가장 분노하는 점은 바로 돈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 사람을 이렇게 매장할 수 있는 이 사회의 시스템과 이를 주도한 자의 추악한 인성이었다.역시나 폭로글이 업로드되고 댓글수는 1시간 만에 10만 개를 초과했다.“하, 돈 지X도 정도껏 부려야지.”“누가 데려갈지 불쌍하다.”“피해자가 소은정 대표라 다행이지 다른 사람이었어봐. 아예 사회에서 매장됐을 거 아니야. 끔찍하다.”“쟤는 전 올케한테 무슨 억하감정이 있어서 저런대? 자기 오빠가 좋아하는 거 뻔히 알면서. 콩가루 집안이네...”...재벌 2세,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의 질투와 시샘이 따르는 신분이다. 그런데 이런 사고까지 쳤으니 대중들이 분노할 수밖에. 물론 다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지만.흥미진진한 얼굴로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소은해가 화방으로 향했다.“이게 네가 생각한 반격이야?”대중들의 반응이 어떨지는 안 봐도 비디오, 소은정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어때? 반응들?”“내 동생이지만 진짜 무섭다...”고개를 돌려 소은해를 흘겨보던 소은정이 다시 물었다.“반응
박수혁의 본가.휴대폰을 바라보던 박예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 배은망덕한 “퍼펙트 구박사”가 그녀를 배신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평소 박수혁 앞에서 보여줬던 얌전한 이미지가 박살났을 걸 생각하니 온몸이 저려왔다.어떡하지?박예리는 바로 구박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상대방은 전화를 끊어버린 것도 모자라 아예 전화를 꺼버렸다. 마음이 급해진 박예리가 구박사에게 DM을 보냈다.“얼마면 되겠어? 당장 올린 글부터 지워!”잠시 후 구성호의 답장이 도착했다.“앞으로 착하게 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당신이 주는 더러운 돈은 안 받을 테니까 다시 연락하지 마세요.”적반하장의 말투에 박예리는 휴대폰을 내팽개쳤다. 착하게 살기는 개뿔! 분명 소은정 그 계집애가 더 높은 가격을 부른 거겠지.이때 집사가 박예리의 문을 두드리고 순간 박예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지만 곧 마음을 다잡고 문을 열었다.박예리의 모습에 집사가 한숨을 내쉬었다.“대표님께서 전화주셨습니다. 외출하지 마시고 얌전히 기다리시라네요.”집사의 통보에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박예리는 다리에 힘이 풀리고 휘청거렸다.오빠가 날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야.복잡한 머릿속에서 유일하게 생각하는 건 할아버지뿐이었다.내 편을 들어줄 사람은 할아버지뿐이야.여기까지 생각이 닿은 박예리는 비틀거리며 서재로 달려갔다.“할아버지...”비록 먼저 제안한 건 박예리 그녀였지만 결국 박대한의 동의가 있었기에 실행이 가능했었다. 댓글 알바를 매수해 루머를 퍼트린 건 그녀였지만 각 언론사들의 이사들에게 바람을 넣은 건 박대한이었으니까.마치 언제든지 떨어질 수 있는 큰 칼 하나가 박예리를 노리고 있는 느낌이었다.“할아버지...”서재로 달려간 박예리는 그동안 백화점 직원으로 일하며 얼마나 많은 갑질을 받았고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설명했다.그 모습에 박대한도 흔들렸지만 박수혁만 생각하면 괘씸함이 밀려왔다.매일마다 직원 편에 이사 사임서를 보내는 박수혁에게 박예리를 한번만 용서해 줘라 머리를 숙일
제대로 비아냥거려주긴 했지만 소찬식은 여전히 속이 풀리지 않았다. 나름 소찬식보다 어른인 박대한을 배려해 이 정도로 말한 것이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예 쌍욕을 내뱉었을지도 모른다.소찬식의 말에 박대한 또한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예리가 아직 철이 덜 들었어. 이번 기회에 내가 책임지고 제대로 혼내겠네. 그래서 말인데 부탁 하나 해도 되겠나?”“회장님께서 저한테 부탁할 일이 있을까요?”소찬식의 말에 담긴 거절을 눈채지지 못했는지 박대한은 말을 이어갔다.“은정이더러 인터넷에 해명글을 올리라고 하면 안 되겠나? 모든 건 다 오해였다고 예리도 이미 용서했다고 말이야. 이게 다 전동하 대표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닌가? 전동하 대표만 아니었다면 우리 두 집안의 이름이 언급되는 일은 없었을 거 아닌가...”하지만 소찬식은 짜증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박대한의 말을 끊어버렸다.“박 회장님, 손녀분이 저지른 더러운 일들 다시 제 입에 올리고 싶지도 않습니다. 은정이더러 억지로 사과를 받아들이라 강요하고 싶지도 않고요. 정말 억울하다면 폭로글이 조작이라는 증거를 다시 인터넷에 올리라고 하세요. 요즘 젊은이들은 다들 그렇게 싸우는 것 같던데요? 그리고... 박 회장님, 지금 이 일 저희가 명예훼손으로 소송 걸어도 할 말 없으신 건 알고 계시죠? 그럼 알아들으신 걸로 알고 이만 끊겠습니다.”말을 마친 소찬식은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차가운 연결음을 한참 동안 듣고 있던 박대한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그쪽 집안에 뭘 바라는 건 힘들 것 같아. 잘하면 소송까지 걸겠던데?”이런 푸대접은 오랜만인지라 박대한은 화가 치밀었다.앞으로 이사직에서까지 물러난다면 박대한이 뒷방 늙은이가 되었다고 이제 이빨 빠진 호랑이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 그 누구도 그를 제대로 봐주지 않을 거란 생각에 가슴이 더 답답해졌다.2, 30년 전에는 내 눈도 제대로 못 쳐다보던 것들이 감히...한편 박대한의 말에 박예리는 바로 울먹거리기 시작했다.“그럼 어떡해요. 진짜 경찰에
자신이 저지른 짓에 대해 진심어린 반성이 아닌 변명부터 앞서는 동생의 모습에 박수혁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이런 것도 내 동생이라고...하지만 박예리의 눈물바람에 마음이 약해진 박대한이 차가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뭐 하자는 거야? 예리는 네 하나뿐인 동생이야. 게다가 좋은 마음에서 그런 거라고 하잖아. 고작 이런 일 때문에, 소은정 그 아이 때문에 가족한테 이렇게까지 해야겠어?”순간, 서재의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이렇게 다 마음에 안 들면 호적에서 이름 파고 네가 우리 집에서 나가! 누가 알아? 그렇게까지 하면 소은정 그 애가 널 한번이라도 봐줄지?”박수혁이 박대한의 권력의 줄을 끊어버리려 하는 판에 박대한도 더 이상 박수혁을 오냐오냐 해줄 수 없었다. 정 안 된다면 다른 대표를 선임하면 그만이다. 그 동안 들인 시간과 공이 아깝긴 하지만 아무리 아까워도 이대로 평생 뒷방 늙은이로 늙어가는 것보다 나으니까.박대한의 엄포에도 박수혁은 흔들리지 않았다.“할아버지만 괜찮으시다면 저희 집안 성을 소씨로 갈아치워도 딱히 상관없습니다.”박수혁의 말에 박대한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이런 호로자식을 봤나! 우리 집안을 말아먹기로 작정한 거냐! 널 차기 대표로 정한 내가 바보였어!”온몸을 부들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선 박대한은 옆에 있던 지팡이를 들어 박수혁을 향해 던져버렸다.화가 정말 머리 끝까지 난 박대한이 진심어린 분노를 담아 던진 지팡이는 그대로 박수혁을 향해 날아갔지만 박수혁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퍽!”몇미터를 날아간 박대한의 지팡이는 그대로 박수혁의 이마를 명중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이마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고 분명 피할 수 있었지만 피하지 않았는 박수혁의 모습에 박예리의 눈이 커다래졌다.하지만 박수혁의 차가운 분위기에 차마 다가가지도 못했다. 순간,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아득한 적막이 이어지고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에도 꿈쩍도 하지 않는 박수혁의 기세에 박대한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어쩌면 박수혁은 더 이상 그의 손바닥 안에
박수혁의 말에 박대한마저 움찔하고 말았다.그저 인터넷에서 떠도는 폭로글 따위 며칠 욕 몇 마디만 먹으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태한그룹에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칠 줄이야.정말... 내가 늙긴 한 건가...순간 박예리의 편을 들어줬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박대한은 자신이 태한그룹의 대표였던 때를 다시 떠올렸다. 당시에도 태한그룹은 이미 굴지의 대기업이었지만 동종 업계의 라이벌들이 우후죽순 밀려들 때라 경쟁이 아주 치열했었다.하지만 박수혁이 태한그룹을 이어받고 모든 상황이 달라졌다. 박수혁은 천재적인 수완으로 태한그룹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단 몇 년만에 태한그룹에게 대한민국 1위 기업이라는 타이틀을 안겨주었다.하지만 이번 사건은 몇 년간 탄탄대로를 걸어오던 박수혁에게도, 태한그룹에게도 크나큰 충격이었다. 단순히 오늘 주가가 떨어진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대중들에게 갑질 대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게 되었으니 앞으로가 더 걱정될 따름이었다.박수혁의 설명에 박예리의 안색이 더 창백해졌다. 이제 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쫓겨나게 생겼으니 불안할 따름이었다.하지만 박수혁의 응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경호원들 올려보내세요.”전화를 끊은 박수혁이 다시 차가운 시선으로 박예리를 노려보앗다.“박예리, 오늘부터 넌 우리 집안 사람 아니야. 다시는 집에 들어올 생각하지 마. 돈은 나름 챙겨줄 거니까 한국을 떠나. 그 돈으로 죽든 말든 알아서 살아. 알겠어?”물론 돈이라고 해봤자 박예리의 평소 용돈 정도만 챙겨줄 생각이었다.사실 박예리를 집에서 내쫓고 백화점 직원으로 일하게 한 건 단순히 벌을 주기 위함이 아니었다. 밑바닥에서부터 일하며 돈의 소중함과 시장의 흐름을 느끼길 바라서였다.비록 태한그룹 대표는 박수혁이었지만 언젠가 박예리도 한 사람 몫은 하긴 바랐으니까.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박예리가 밖에서 배워온 것이라곤 추잡한 수작뿐이었다.잠시 후 2층으로 올라온 경호원들이 울고 불고 난리를 치는 박예리를 아예 들어버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