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안에서소찬식은 옆에서 사진들을 꺼냈다.“경찰에서 받은 사진들이야. 경찰들도 조사하고 우리도 뒤에서 몰래 조사해야 해.”소은정은 사진을 받았다. 사진 속의 차를 본 순간 박수혁이 그녀를 밀친 장면이 흐릿하게 보였다. 차의 시속이 110까지 올랐다. 그는 어떤 용기를 가지고 여기까지 달려왔지?소은정의 손이 창백해지고 떨고 있었다.소은호는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박수혁에게 두 번이나 빚을 졌어. 넷째야, 너를 쉽게 놔주지 않을 거야.”쉬우면 이렇게 두 번, 세 번이나 목숨을 걸지 않을 거다. 한 번은 무시할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는?소찬식은 눈을 감았다. “그래도 강압적으로 넷째의 몸을 허락할 수는 없어. 나도 이 애가 대견하다고 생각하지만 모든 건 넷째의 뜻을 따라야 해.”소은정은 입술을 만지고 심장의 박동이 한 박자씩 밀리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다음 사진으로 넘겼다. 그들이 찍은 폐차시킨 사람이다. 소은정을 죽음의 끝까지 몰아간 사람이다. 낯선 얼굴이다. 인파 속에 있어도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그의 머리는 피범벅이 되었고 안전벨트를 하지 않은 채 운전전에 엎드려 있었다. 마치 죽은 것처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고 소은호가 입을 열었다. “살 희망이 없다고 했어. 술을 마셔 경찰의 말로는 음주 운전이라고 하는데 계좌에 이상하게 돈이 2억이 늘었다. 해외 계좌에서 송금이 되어 출처를 몰라 사건을 종료할 수 없어.”“2억…2억으로 저의 목숨을 사려고 한 거예요??”소은정은 중얼거렸다. 2억. 2억으로 박수혁을 죽음으로 몰았다고?생각해 보면 너무 황당해 웃음이 나온다. 소은호도 입술을 만지고 말했다. “직업이 없는 술꾼에게 이번이 살면서 유일하게 2억을 만질 수 있는 기회였겠지.”“걱정하지 마. 오빠가 다 알아볼 거야. 요 며칠은 너의 안전을 생각해서 외출은 자제해. 나가면 경호원을 꼭 데리고 나가. 운이 매번 좋을 수 없으니까.”소찬식은 피곤하고 걱정스러운 눈빛으
소은정은 메시지에 답장을 하지 않았다. 다시 세안을 하고 팩을 해 안색이 밝아졌다.소찬식은 아래에서 같이 밥 먹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가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고 국까지 다 마신 걸 보고 안심했다.“넷째야, 이 일에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 그는 말을 삼켰다.소은정은 웃었다. 표정도 자연스러웠다.“알아요, 저 아무 일 없을 거예요. 박수혁도 생명의 위험에서 빠져나왔다고 들었어요. 그에게 빚진 건 천천히 갚을 거예요. 다른 건 지금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하지만 어쨌든 이제 그를 전처럼 싫어하지는 않는다. 사귀는 건…이 생각이 그녀의 머리에서 잠깐 스쳐 지나갔다. 지금은 그저 박수혁이 무사했으면 좋겠다.말하자면 두 사람의 인연은 너무 얽혀있다. 누가 누구에서 얼마 빚졌는데 잘 모른다. 소찬식은 뿌듯함에 고개를 끄덕였다. 딸이 생각을 정리한 거 같다. 그는 손짓을 하자 키 크고 건장한 남성이 들어왔다. “경호원?” 소은정은 그의 옷차림을 보자 신분을 알았다.소찬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성문이라고 해. 고수야. 세계에서 일등이야. 전에 나를 따랐는데 내기 은퇴하고 낚시만 하니까 경호 받을 필요가 없어져 쉬고 있었어. 앞으로 너를 따라다닐 거야.”소은정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아빠의 좋은 마음을 저버릴 수 없다. “아가씨, 안녕하세요.”소은정은 웃으며 답했다. “잘 부탁드려요. 성문 씨”최상문의 험악한 얼굴은 변하지 않았다. 그저 덤덤하게 인사를 했다.소은정의 핸드폰이 울렸다. 이한석이다.그녀는 전화를 받았다.“소 아가씨, 큰일이에요. 박 대표님이…”이한석은 하려던 말을 다시 삼켰다. 소은정의 안색이 어두워져 전화를 끊고 바람처럼 사라졌다.그녀는 너무 두렵다. 최상문도 빠르게 차를 대기시켰다.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타세요.”소은정은 고민하지 않고 바로 차에 탔다. 최상문이 빠르게 운전하여 20분의 거리를 10분 만에 도착했다. 그녀는 박수혁의 병실 앞에 도착해 다급하게 문을 열었다. 이민혜도 없고
소은정의 말에 이한석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바라만 볼 뿐이었다.이때 죽은 듯이 침대에 누워있던 박수혁이 입을 열었다.“뭐야? 지금 당장 화장이라도 해주려는 건가?”화가 난 건지 숨이 막히는 건지 박수혁의 가슴이 급박하게 움직였다. 교통사고로 죽었다 살아날 뻔했지만 눈을 뜬 순간 소은정이 그를 얼마나 걱정했는지 생동하게 말해주는 이한석의 모습에 욱신거리는 몸뚱어리가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질 정도로 기뻤다.실망감으로 잿더미가 되어버린 가슴에 희망의 불꽃이 피어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소은정이 병실로 들어왔을 때 일부러 죽은 척 가만히 누워있었던 그였다.소은정이 그를 걱정해 주는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어서... 어쩌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었다.그런데? 납골당이나 알아보라고?기가 막혀 눈을 번쩍 뜬 박수혁의 시야에 담담한 얼굴로 팔짱을 끼고 있는 소은정의 모습이 들어왔다.“어? 아직 안 죽었네?”상실감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바라지도 않았지만... 저 아쉽다는 표정은 뭐지?도대체 뭘 바라고 몸을 던졌나 싶어 억울하고 속상했다. 입술을 꾹 깨문 채 말없이 소은정을 바라보는 박수혁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그 모습에 역시 마음이 약해진 소은정이 고개를 돌린 채 중얼거렸다.“당신이 살아서... 기뻐. 진심이야.”소은정의 말에 방금 전까지 박수혁의 얼굴에 깊게 드리웠던 우울감이 눈 녹 듯 사라졌다. 그래, 바로 이런 기분이야.박수혁은 손을 뻗어 소은정의 손목을 잡았다. 다친 사람이 힘은 어찌나 센지... 소은정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박수혁의 품에 안기고 말았다.박수혁의 몸에서 풍기는 박하향이 소은정의 코끝을 자극했다. 힘 있게 뛰는 박수혁의 심장소리는 지금 그녀가 안긴 남자가... 허상이 아닌 진짜 살아있는 사람임을 실감 나게 해주었다.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원망하고 저주했던 남자인데...정작 멀쩡하게 살아있는 모습을 보니 안도감에 코끝이 시큰해졌다.정신을 차리고 보니 박수혁
하지만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누군가 그녀의 옷자락을 잡았다.“윽.”병실 침대에 기댄 채 앉아있던 박수혁은 팔을 뻗느라 상처를 건드렸는지 바로 신음 소리와 함께 팔을 거두었다. 창백한 얼굴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깜짝 놀란 소은정이 다급하게 다가갔다.“왜 그래?”입술을 꽉 깨문 박수혁의 관자놀이는 핏줄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팽팽하게 솟아있었다.“어서 선생님 불러와요!”소은정이 이한석을 향해 소리쳤다.소은정의 목소리에 멀뚱멀뚱 서 있던 이한석이 바로 병실을 뛰쳐나갔다.“괜찮아?”미간을 찌푸리고 몸 여기저기를 훑어보는 소은정의 모습에 박수혁은 기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박수혁은 다시 팔을 들으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괜찮아. 하나도 안 아파. 그냥 연기한 거야. 너랑 더 같이 있고 싶어서.”거짓말...입술이 피가 날 정도로 꽉 깨물고 있으면서...그녀가 걱정할까 봐 애써 웃어 보이는 박수혁의 모습에 소은정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기분이었다.자꾸... 이렇게 마음 약해지면 안 되는데...다시 분위기가 어색해지려던 그때, 의료진들이 바로 병실로 들어왔다. 의사들이 박수혁의 상처를 살피기 시작하자 소은정은 눈치껏 나가려 했지만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그녀만을 바라보는 박수혁의 모습에 병실 문 앞에 서서 누군가에게 문자를 문자를 보냈다.10분 뒤, 진찰을 마친 의사가 진지한 표정으로 분부했다.“대표님, 한의학에는 뼈를 다치면 100일은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번 사고로 오른쪽 다리뼈가 심하게 부러지셨어요. 격렬한 운동은 당연히 금물이고 걸으시는 것도 절대 안 됩니다. 절대 안정, 아시겠죠? 앞으로 반 년 동안은 꾸준히 물리치료도 받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후유증 없이 제대로 걸으실 수 있어요.”“알겠습니다.”의사의 분부에도 박수혁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으로 단답으로 응했다.참 말 안 듣게 생긴 환자분이시네...의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어갔다.“퇴원하신다 해도 곁에서 케어해 주는 사람을 두시는 게
본가로 돌아가 집을 정리하던 소은정은 소찬식과 오빠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다.한편 박수혁은 바로 이한석더러 퇴원 절차를 밟으라며 재촉했다.사랑에 빠지면 IQ가 낮아진다더니... 우리 대표님까지 이러실 줄이야...다리까지 다쳐놓고 아이처럼 기뻐하는 대표의 모습에 이한석은 어이가 없었지만 박수혁의 분부대로 퇴원 수속을 밟은 뒤 신혼집을 깨끗하게 청소해 두라고 아주머니한테 부탁까지 해두었다.잠시 후, 집으로 돌아온 박수혁은 휠채어에 앉은 채 먼지 한 톨이라도 용납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집안 곳곳을 둘러보았다.이곳의 청소를 담당하는 유씨 아주머니는 소은정과 이혼하기 전부터 일하던 사람, 안면이 있는 사람이면 소은정도 더 편해하지 않을까 싶어 다시 유씨 아주머니를 불러들였다.아주머니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사감처럼 집안 이곳저곳을 훑어보는 박수혁의 눈치를 살폈다.“은정이가 쓰던 물건은 그대로 있죠?”“아, 네... 대표님 말씀대로 사모님께서 쓰시던 물건은 하나도 버리지 않고 전부 보관해 두었습니다.”그제야 박수혁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이한석에게 분부했다.“명품 최신 브랜드 옷가지들 픽해 와. 옷방에 있는 다른 옷이나 백 같은 건 전부 버리고. 옛날 물건들 보면 괜히 은정이 기분만 불편하니까.대표님께서 죄책감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신 건 아니고요?라는 질문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이한석은 고개를 끄덕였다.“네.”......한편, 소은정의 본가.소은정의 말에 소은해가 가장 먼저 펄쩍 뛰었다.“뭐? 안 돼! 절대 안 돼!”그 능구렁이 같은 박수혁이 절대 좋은 마음으로 소은정을 다시 불러들였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이미 결정한 거야?”소은호의 질문에 소은정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딸의 흔들림 없는 눈빛에 소찬식도 침묵할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소은정이 결정을 내린 이상, 그가 막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3년 전, 박수혁과 결혼을 하겠다고 말했을 때도... 그리고 지금도
갑자기 나타난 거구의 사내의 모습에 아주머니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누... 누구세요?”하지만 최성문은 그 질문은 깔끔하게 무시한 채 옆으로 물러섰다.“아가씨, 들어가시죠...”본가의 스파이 역할을 해왔던 아주머니와 회포를 풀 생각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었던 소은정은 무표정한 얼굴로 집 안으로 들어섰다.왠지 분위기가 바뀐 사모의 모습에 아주머니도 잔뜩 긴장한 얼굴로 침을 삼켰다.거실로 들어선 소은정의 시야에 그레이톤의 홈웨어를 입은 박수혁의 얼굴이 들어왔다. 살짝 야위어서인지 더욱 선명해진 턱선과 콧날... 휠체어에 앉아서인지 평소의 포스는 줄어들고 묘한 병약미까지 더해져 왠지 모르게 모성애를 자극하는 모습이었다.“드디어 돌아왔네?”그의 말에 피식 웃음을 터트리던 소은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가구, 인테리어 소품들까지 3년 전과 그대로인 모습에 소은정의 얼굴이 어색하게 굳었다.“짐은 손님방에 풀게.”“아, 아주머니한테 부탁해.”박수혁이 미간을 찌푸렸다. 간병인이란 명목으로 소은정을 다시 집으로 불러들이긴 했지만 다시 그녀와 함께 살게 된 이상, 이번에는 손에 물 하나 묻히지 않게 할 생각이었다.달라진 소은정의 모습을 유심히 살피던 아주머니가 부랴부랴 다가가 최성문의 손에 들린 트렁크 손잡이를 잡았다.“네, 제가 할게요. 사모님 방은 제가 깔끔하게 청소해 뒀습니다.”하지만 최성문은 아가씨 짐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듯 아주머니를 노려보았다.소은정은 어색한 미소로 그녀의 눈치를 살피는 아주머니를 무시하고 박수혁에게 물었다.“뭐야? 내가 지내던 방에서 지내라고?”“아, 워낙 급하게 들어오느라 손님 방은 아직 정리가 덜 끝나서. 당분간이라도 그 방에서 지내.”“휴, 그래.”소은정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느 방을 쓰느냐로 의미 없는 기싸움에 힘을 빼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길어봐야 몇 달일 테니까.생각보다 쉽게 한발 물러서는 소은정의 모습에 아이처럼 환하게 웃는 박수혁을 뒤로하고 소은정이 계단을 올랐고 최성문이
연남동 아파트는 두 층을 하나로 이은 복식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어 휠체어로 다니는데 불편함이 거의 없었다.2층으로 올라온 소은정은 앞으로 지낼 방을 훑어보았다. 방의 모습은 그녀가 이곳을 떠날 때와 그대로였다. 이곳에서 외로움으로 눈물로 지새우던 나날들이 어제 일처럼 눈앞에 아른거렸다.고통스러운 기억들이 벌레처럼 소은정의 심장을 갉아먹는 듯하고 무거운 마음에 숨조차 제대로 올라오지 않았다.그녀가 가장 좋아했던 발코니의 의자도 그대로였다. 저 의자에 앉아 밖을 내다보는 게 일상이었지... 박수혁의 차가 나타나길 기다리면서...결혼하고 나서 박수혁은 이 방에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았지만 이곳의 모든 기억은 박수혁과 관련된 것이었다.피식 웃음을 터트리던 소은정은 쇼핑백 하나를 꺼내 화장대 위에 진열된 물건을 전부 집어넣은 뒤 쓰레기통에 버린 뒤 그녀의 방과 연결된 옷방으로 들어갔다.집안에서 유일하게 바뀐 곳이 바로 이 옷 방이었다. 그녀가 입던 옷들은 전부 사라지고 이번 시즌 최신상 명품들이 액세서리 진열장과 옷장에 가득 걸려있었다.하지만 죽어버린 소은정의 눈빛은 다시 반짝이지 않았다......“똑똑똑...”누군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소은정은 시간을 확인했다. 6시 반... 시간도 참 빠르게 흐르네.최성문이 성큼성쿰 다가가 문을 열자 잔뜩 겁먹은 얼굴의 아주머니가 더듬거리며 말을 이어갔다.“사... 은정 씨, 대표님께서 식사하러 내려오시라는데요.”“알겠어요.”소은정의 대답에 아주머니는 단 1초도 이곳에 더 있고 싶지 않은 듯 후다닥 1층으로 내려갔다.계단으로 1층으로 내려온 소은정은 거실의 풍경에 눈빛을 빼앗겼다. 아름다운 노을이 비치는 따뜻한 거실,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흰색 커튼... 이렇게 예쁜 곳이었는데 그때는 왜 몰랐을까?멍한 표정의 소은정의 곁으로 다가온 박수혁이 물었다.“배고프지?”예전과 달라진 소은정과 어떻게든 다시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에 아주머니가 다시 넉살 좋은 미소를 지었다
...박수혁의 말에 주방은 어색한 침묵에 잠겼다.앗차, 실수했다.괜한 욕심을 낸 건가 싶다가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소은정의 마음을 열기 전에 다리가 먼저 나아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다급해졌다.박수혁의 제안에 흠칫 놀란 듯한 소은정의 입가에 매력적인 미소가 걸렸다.“부러진 건 다리지 팔은 아니잖아?”묘한 미소를 짓는 소은정의 모습에 박수혁의 마음도 점점 기대감에 부풀기 시작했다.좋아, 적어도 화는 안 냈으니까... 조금만 더...박수혁은 짐짓 실망한 듯 입을 삐죽거렸다.“내가 그렇게 싫어? 이렇게 멀쩡해 보여도 환자인데 밥 정도 먹여줄 수는 있잖아...”그 모습에 소은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하, 어디서 이런 발연기를. 또 무슨 꿍꿍이인 건지.하지만 곧 한숨을 푹 내쉬고 마음을 다스렸다.이 남자는 나 때문에 다친 거다... 참자... 참아...하지만 다음 순간, 소은정의 뒤에 서 있던 최성문이 성큼 다가가 박수혁의 앞에 놓인 죽 그릇을 들었다.“대표님, 아 하십시오...”커다란 최성문의 손에 들린 죽 그릇은 왠지 간장 종지처럼 작아 보였다. 게다가 무뚝뚝한 얼굴에 저런 어울리지 않는 대사라니.벌레라도 씹은 듯한 박수혁의 표정에 소은정도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저 남자가 먹여주는 죽을 받아먹었다간 정말 체할 것만 같아 박수혁이 죽 그릇을 낚아챘다.“그래, 팔이 부러진 건 아니니까. 내가 알아서 먹을게.”박수혁의 말에 최성문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장승처럼 꼿꼿이 서서는 소은정의 뒤를 지켰다.박수혁이 고분고분 식사를 시작하자 소은정은 우연준이 보낸 파일을 처리하고 휴대폰에 쌓인 메시지에 답장을 하기 시작했다.한참 동안 일을 하던 소은정은 박수혁의 시선을 느끼고 휴대폰을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다 먹었어?”박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싱긋 웃었다.그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선 소은정이 그릇들을 치우려 하자 박수혁이 바로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뭐야. 이렇게 너 부려먹으려고 부른 거 아니야.”아주머니도 부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