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음에도 아직 박수혁 그 남자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인 전동하였다.한편, 소은정은 뜬금없는 그의 질문에 흠칫하다 피식 웃었다.“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말 그대로 가설일 뿐이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다시 고개를 돌린 소은정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난 절대 손재은처럼 살지 않을 거야. 다른 사람에게 버림받느니 내가 먼저 버릴 거라고. 하긴, 동하 씨는 지금 워낙 날 사랑하니까... 적어도 20년 안엔 마음이 바뀔 것 같지 않긴 하지만. 그리고 그 뒤는... 그때 가서 생각하지 뭐.’알아서 긍정적인 결론에 이른 소은정과 달리 그녀의 애매한 대답에 전동하는 여전히 착잡할 따름이었다.다른 생각을 하다 보니 우회전을 해야 할 골목을 그대로 지나치고...흠칫하던 소은정이 전동하의 손을 살짝 흔들었다.“뭐예요. 길 잘못 들었잖아요.”“아, 내가 깜박했는데... 오늘 친구가 운영하는 온천 스파 예약해 뒀어요. 요즘 은정 씨 여러모로 힘들었잖아요. 따뜻한 온천물에 몸이라도 푹 담궈요.”“그럼 새봄이는...”집에서 엄마, 아빠만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을 딸 생각에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어차피 곧 잠들 시간인데요 뭘...”‘미안, 딸. 오늘은 아빠가 엄마 좀 빌려갈게...’그렇게 한참을 더 달린 전동하의 차는 온천 리조트 앞에 멈춰 선다.서늘한 바람에 몸을 부르르 떠는 소은정을 위해 전동하가 항상 차에 두는 숄을 덮어주었다.이때 전동하의 친구가 두 사람을 맞이했다.“형수님, 저희 가게 방문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별말씀을요. 저야말로 초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여기저기 많이 다녀봤다고 자부하는데 여기 이런 온천 스파가 있다는 건 오늘 처음 알았네요.”소은정이 싱긋 웃었다.“아직 대외적으로 개방되지 않은 가게예요. 뭐, 어떻게든 알고 찾아오는 손님들은 많지만.”전동하의 설명에 소은정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고 그는 다급하게 한 마디 덧붙였다.“아, 참고로 나도 처음 오는 거예요.”
소은정의 가시 돋친 말에 어색하게 웃던 김하늘이 그녀에게 눈치를 주었다.‘휴... 하늘이 앞이니까 내가 참는다.’“농담이에요. 저도 나름 직원들의 워라벨에 신경 많이 쓰고 있어요. 뭐, 직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그녀의 말에 자신의 무례함을 인지한 임유경 역시 바로 사과했다.“아, 죄송합니다. 혹시 아까 제가 너무 차가웠나요?”임유경이 핸드백에서 명함을 꺼내며 다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쭉 해외에서 공부하다 지금은 홍익로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법률적으로 도움 필요한 일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주세요.”방금 전까지 시큰둥하다 갑자기 또 변한 임유경의 태도에 소은정이 눈썹을 치켜세웠다.‘뭐지? 참 알다가도 모를 캐릭터네.’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생각일 뿐, 명함을 받아든 소은정은 환하게 웃어 보였다.“알겠습니다. 홍익 로펌은 A시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로펌이죠. 앞으로 저희 그룹과도 함께 일할 기회가 많을 것 같은데요?”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지자 김하늘 역시 말을 이어갔다.“그럼. 유경 씨는 국제 토론대회에서 대상까지 탄 엘리트 중의 엘리트라고. 우리도 이번에 유경 씨 모시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그녀를 띄워주는 김하늘의 화술에 임유경은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엘리트니 뭐니 해도 임유경은 어디까지나 신인 변호사일 뿐, 홍익로펌에서 성장하기 위해선 김하늘처럼 A시 인맥을 꽉 잡고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게다가 유명세와 달리 항상 겸손하고 친절한 김하늘의 태도도 마음에 들어 접대까지 따라오게 된 것이었다.역시나 방금 전, 귀인을 소개해 주겠다는 김하늘의 말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설마하니 그 귀인이 소은정일 줄이야.‘저 사람은... 좀 불편한데...’임유경의 시선이 소은정과 김하늘 사이를 배회했다.이 바닥이 너무 좁은 건지, 소은정의 영향력이 큰 건지.가는 곳마다 소은정의 얘기가 들리는 통에 괜히 소은정이 미워지기 시작한 임유경이었다.그녀와는 아무 상관없이 그저 소은정을 칭찬하는 말에도 네까짓게 소은
하지만 그녀의 부름에도 전동하는 여전히 묵묵부답.정말 잘못 들어온 게 아닐까 싶어 룸 번호를 확인하려던 그때, 안쪽에서 푸흡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난 가버렸는 줄 알았는데 다시 왔네요?”전동하의 목소리였다.적어도 방을 착각한 건 아니란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소은정이 말했다.“나도 바로 들어갈게요.”부랴부랴 옷을 갈아입은 소은정이 온천실로 들어가자 뜨거운 열기가 물씬 풍겨오며 그녀의 모공을 확 열어주었다.원목 재질의 바닥, 주위의 인테리어는 흰 베일로 가려져있어 눈밭에서 온천욕을 즐기는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보석처럼 잘 다듬어진 조약돌길을 밟으며 소은정은 천천히 안쪽으로 다가갔다.그런데...‘뭐야? 안개가 너무 심해서 앞이 잘 안 보이네. 동하 씨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뜨거운 물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걷어내며 앞으로 이동하던 그때, 물 속에서 팔이 쑥 나오더니 그녀를 물속으로 끌어당겼다.“으앗!”자연스레 그녀를 꼭 껴안은 전동하가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인사만 하고 온다면서요. 난 두 사람이 뭐 야식이라도 먹으러 나간 줄 알았네.”“알잖아요. 여자들끼리 모이면 수다가 끊이지 않는 거.”소은정의 손가락이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전동하의 매끈한 쇄골을 스윽 훑고 지난다.“참나.”여전히 입을 삐죽거리던 전동하가 옆에 있는 상자를 가리켰다.“마음에 드는 거 있나 봐봐요.”전동하의 말에 상자를 열어보니 여러 가지 향의 오일이며 온천탕에 뿌릴 수 있는 마른 꽃잎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상자의 가장 밑바닥에는 오일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콘돔까지.모든 룸에 기본으로 제공되는 것인지, 아니면 두 사람을 위한 친구의 특별 서비스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내용물을 확인한 소은정의 볼이 후끈 달아올랐다.역시나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이미 알고 있는 전동하가 슬그머니 다가왔지만 소은정은 자연스레 그를 밀어내며 장미 꽃잎이 담긴 주머니를 가리켰다..“됐어요. 이거면 돼요.”...그렇게 두 사람은 따뜻한
한편, 전동하는 소은정에게 새 잠옷을 입혀준 뒤 조심스레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잠시 후 들어온 의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너무 오래 뜨거운 탕에 계셔서 잠깐 어지러우셨던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밀폐된 공간에서 너무 격렬하게 움직이신 게 아닐지...”의사의 완곡한 설명에 전동하는 어색하게 고개를 돌리고... 침대에 누워있는 소은정은 차라리 기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잠시 후, 직원이 내온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고 정신을 차린 소은정이 천천이 일어나 침대맡에 기댄다.“휴, 아까 그런 거 아니라고 해명이라도 좀 하지. 나 창피해서 죽는 줄 알았잖아요.”소은정이 전동하를 흘겨보았다.“뭘 해명해요. 나도 답답해요. 차라리 뭐라도 하고 그런 소릴 들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내가 아까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흠, 지금 환자한테 소리지르는 거예요?”어이없다는 한숨을 짓던 전동하가 물과 함께 도착한 물약을 건넸다.“이거 먹으면 많이 좋아질 거래요. 내가 먹여줄게요. 아...”약이 목구멍을 넘어가고 생각보다 훨씬 더 쓴 약맛에 소은정은 전동하를 홱 밀쳐버린다.이미 입으로 들어온 약을 뱉지도 못하고 억지로 삼켜버리는 소은정의 모습에 전동하는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 만다.‘풉, 이럴 때보면 꼭 애 같다니까.’“오, 명약인데요? 바로 정신차리는 것 좀 봐.”전동하가 괜히 약병을 자세히 살피며 깐족댔다.어떻게든 꾸역꾸역 약을 다 마신 소은정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나... 오렌지 먹고 싶어요.”‘이 시간에?’뜬금없는 말에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전동하는 자연스레 휴대폰을 꺼냈다.“어디 마트 걸로 사올까요?”“그냥 오렌지면 돼요. 입이 너무 쓴 것 같아서.”“잠깐만요.”전동하가 방을 나서자 매니저가 바로 그를 맞이했다.“대표님, 사모님은 괜찮으시죠? 저희 서비스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아니에요. 저희가 탕에 너무 오래 있어서 그런 건데요 뭐. 온천욕은 즐거웠습니다. 아, 그런데 혹시 오렌지 있나요? 와이프가 갑자
한유라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려 풋풋한 남정네들을 가리키며 말했다.“내가 결혼 안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쟤들 아무나 하나 낚아채도 말 잘 듣고 좋을 텐데. 좋을 때다. 아주 풋풋한 게 좋아……”김하늘이 입을 열었다.“아니, 심 대표 뭐 문제 있어? 아직 창창할 땐데 쓸모없게 된 거야?”그 순간, 공기가 차가워지고 주위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한유라는 얼굴을 붉히며 김하늘을 노려봤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김하늘! 헛소리 집어치워! 쓸 만하거든?”김하늘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아니, 뭔가 아쉬워 보이길래. 난 네가 그런 줄 알았지……”한유라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질끈 감고는 감정을 누르며 말했다.“내 남편은 남편대로 장점이 있고, 저 새파랗게 어린애들은 또 그 맛이 있는 거지. 그냥 쟤네가 좋아 보여서 한 말이야. 함부로 지껄이지 마!”소은정은 눈을 껌뻑이더니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됐어. 그만 해. 왜 이렇게 말이 이상한 데로 튀냐?”한유라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그 순간, 농구장에 비명이 울려 퍼졌다. 농구공이 마침내 세 명의 발밑에 떨어졌다.한유라가 제일 마음에 들어 했던 풋풋한 청년이 달려오더니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아줌마, 공 좀 주세요!”세 사람은 뒤통수를 맞은 사람들처럼 얼어 있었다. 특히 한유라가 더 그러했다.그녀는 그가 자신에게 작업을 걸어온다고 착각하고 있었는데 ‘아줌마’라는 호칭을 들은 순간 그 착각은 와장창 무너져 내렸다. 그녀는 회의감이 들기까지 했고 어수선해진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한유라는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려오는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방금까지 그들이 경기장에서 흘리는 땀은 참 아름답고 풋풋하다고 느꼈는데 지금에 와서는 그저 땀 냄새 풍기는 진상에 불과했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농구공을 힘껏 밟아 터트리고 싶었지만, 힘이 모자랐다.그 젊은 청년은 더 달려오더니 영문을 모르는 듯 웃으며 다시 한번 말했다.“아줌마, 공 저 주시면 돼요.”손을 내미는 그를 보
소은정은 의식을 잃었고 머리가 점점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얼음같이 차가운 손길이 느껴졌지만, 뿌리칠 힘조차 없었다. 그저 이곳에는 전동하 말고는 아무도 없다고 느껴질 뿐이었다. 전동하의 손길이 언제부터 이리도 자상하지 않았던가?고요하다.그녀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그녀는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갑자기 몸이 부르르 떨었고, 불현듯 정신이 들었다. 온몸이 시큰거리고 누군가에게 얻어맞은 듯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아무 상처도 찾아볼 수 없었다.그녀는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고는 고개를 숙였고, 누가 갈아입혔는지 잠옷 차림인 자기 모습을 보고 의아해 났다. 악몽을 꾸는 바람에 약간 식은땀이 났을 뿐 잠옷은 쾌적하고 깨끗한 편이었다.그녀는 천천히 심호흡하고는 옷을 갈아입었다. 여전히 온몸이 시큰 해났지만, 통증이 조금 가라앉았다. ‘술 마신 후유증은 아닐 텐데……’그녀는 이렇게까지 힘겨운 적이 없었다. 문을 열고 나가니 온통 환한 빛으로 가득했다. 따뜻한 조명이 공기를 가득 메우고 있고 아이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정겨웠다. 거실에는 새봄이의 장난감이 잔뜩 널브러져 있었고 긴 장난감 기차가 온 거실을 휘젓고 있었다……전동하는 캐주얼한 옷차림으로 새봄이의 소꿉놀이에 동참하고 있었고 부엌에서는 하인이 준비한음식의 기분 좋은 향기가 코를 자극했다.바깥은 아직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덮어 있었지만, 한없이 아름다웠다. 그녀가 불편한 몸을 감추며 새봄이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걸어가는데 마구 운행하던 장난감 기차가 결국 소은정의 정강이를 들이닫았다. 그 광경을 본 새봄이는 장난감 구급상자를 들고 뛰어오며 말했다.“엄마, 나 의사야! 내가 호 해줄게.”소은정은 그런 새봄이가 너무 사랑스러워 껴안으며 말했다.“우리 새봄이 꿈이 진짜 많네? 어쩜 어느 직업이나 다 관심이 있지? 하하하.”그런 모녀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전동하가 옷소매를 걷어붙이더니 말했다.“아직 밥 안 먹었죠? 너무 깊게 자길래 아줌마가 해장국 끓였는
소은정은 꽤 오랜 시간 업무를 처리하느라 마음속에 의심이 사라져가는 듯했고, 여느 날과 다름이 없이 평범하다고 느껴졌다. 그녀는 목이 뻐근한지 스트레칭했고, 그런 그녀를 보면서 전동하는 어깨를 눌러주더니 이마에 입을 맞췄다. “방금 무슨 할 말이 있어 보이던데. 할 말 있어요?”그의 말에 소은정은 흠칫했다. 하루의 피로감이 싹 사라지는 듯했다. 그녀는 전동하를 의심 해서는 안 되며 그가 자기를 해칠 리 없다는 생각이 점점 짙어졌다. 그뿐인가? 그토록 금실 좋은 그들 감정이 갑자기 변할 계기도 없었다. 그녀는 말을 하려다 가슴이 두근거려 입을 하려던 말을 삼켰다. 전동하의 검은 그림자가 그녀의 얼굴에 드리웠고, 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할 말이 있으면 해요. 우리 사이에 숨길 게 뭐가 있어요?”소은정은 크게 심호흡하고는 마음속에 말을 솔직하게 털어놨다.“술 마시고 돌아올 때는 멀쩡했는데 눈 떠보니까 몸이 이상했어요. 누가 약을 탄 것처럼 온몸이 시큰거리고 아픈데 상처는 하나도 없고 그래서……”그녀는 전동하가 자신을 해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를 의심했다. “미안해요……”그녀가 그를 의심해서는 안 됐었다고 말하려 했는데 전동하가 근엄한 표정으로 그녀의 두 손을 꼭 잡고 맞은편에 앉았다. 잠시 고요한 침묵이 흐르더니 마침내 전동하가 입을 열었다.“전에는 이런 느낌 느껴본 적 없어요?”소은정이 고개를 젓더니 대답했다.“전에도 하늘이랑 유라랑 술 많이 마셨는데 오늘은 많이 마시지도 않았어요. 이럴 리가 없는데……”전동하가 진지한 말투로 물었다.“어디서 마셨어요?”소은정은 걱정스러운 듯한 그의 눈빛을 보며 마음이 놓였다. 아니라고 변명하지 않고 그녀를 위로하는 그를 보며 모든 의심이 다 풀리는 듯했다. “자주 가던 식당에서 전에 킵해둔 술을 마셨어요.”전동하는 입술을 오므리더니 말했다.“주소 찍어줘요. 어떤 사람 만났는지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도 말해줘요. 사람 시켜서 알아볼게요.”“내가 너무 예민한 걸 수도 있어
전동하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평소 친절하던 분위기는 지운 채 입술을 꾹 다문 그의 모습은 보는 이를 하여금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그의 영역을 침범한 적의 도발에 대한 그의 대응은 오직 더 잔인한 복수, 그뿐이었다.결과를 확인한 전동하와 소은정은 바로 병원을 나섰다.하지만 전동하가 향한 곳은 오피스텔이 아닌 호텔이었다.의아한 그녀의 표정에 전동하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오피스텔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은 것 같아서요. 당분간 이 호텔에서 지내는 게 좋겠어요. 보안성 하나만큼은 대한민국에서 최고인 호텔이니까.”“그럼 동하 씨는요?”“나도 당연히 은정 씨랑 같이 있어야죠.”소은정을 에스코트한 전동하가 그녀의 손바닥을 만지작거리며 위로를 건넸다.“걱정하지 말아요. 이 호텔 경호원을 다 부르는 한이 있더라도 은정 씨 지켜낼 테니까.”윤재수가 잡혔다는 소식에 경계를 늦추기도 전에 그보다 더 독한 자가 나타나다니.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전동하의 마음은 긴장감으로 이미 차갑게 얼어붙은 상태였다.그날 밤, 긴장이 풀린 건지 소은정은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잠이 들고 샤워를 마친 전동하는 깊게 잠든 소은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바로 그때, 뭔가를 발견한 전동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바로 소은정의 목에 생긴 멍 때문이었다.형태를 보아하니 누군가가 목을 졸라 남은 손가락 자국.‘감히 누가...’소은정이 깰 까봐 조심스럽게 움직이던 전동하는 응급상자를 챙겨와 상처에 조심스럽게 연고를 발라주었다.그의 손길에도 그저 살짝 미간만 찌푸릴 뿐, 세상없이 자고 있는 소은정...너무나 평화롭게 자고 있는 모습에도 전동하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다음 날 아침.아직 깨지 않은 소은정과 달리 기나긴 밤 뜬눈으로 지새운 전동하는 거실 베란다에서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안진 그 여자의 행방을 잘 살펴봐주세요. 정말 여기 있는 거 맞습니까? 절대 실수하면 안 돼요...”...잠시 후, 창문을 통해 비치는 햇살에 소은정은 드디어 부스스 눈을 떴다.잠이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