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녀의 부름에도 전동하는 여전히 묵묵부답.정말 잘못 들어온 게 아닐까 싶어 룸 번호를 확인하려던 그때, 안쪽에서 푸흡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난 가버렸는 줄 알았는데 다시 왔네요?”전동하의 목소리였다.적어도 방을 착각한 건 아니란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소은정이 말했다.“나도 바로 들어갈게요.”부랴부랴 옷을 갈아입은 소은정이 온천실로 들어가자 뜨거운 열기가 물씬 풍겨오며 그녀의 모공을 확 열어주었다.원목 재질의 바닥, 주위의 인테리어는 흰 베일로 가려져있어 눈밭에서 온천욕을 즐기는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보석처럼 잘 다듬어진 조약돌길을 밟으며 소은정은 천천히 안쪽으로 다가갔다.그런데...‘뭐야? 안개가 너무 심해서 앞이 잘 안 보이네. 동하 씨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뜨거운 물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걷어내며 앞으로 이동하던 그때, 물 속에서 팔이 쑥 나오더니 그녀를 물속으로 끌어당겼다.“으앗!”자연스레 그녀를 꼭 껴안은 전동하가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인사만 하고 온다면서요. 난 두 사람이 뭐 야식이라도 먹으러 나간 줄 알았네.”“알잖아요. 여자들끼리 모이면 수다가 끊이지 않는 거.”소은정의 손가락이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전동하의 매끈한 쇄골을 스윽 훑고 지난다.“참나.”여전히 입을 삐죽거리던 전동하가 옆에 있는 상자를 가리켰다.“마음에 드는 거 있나 봐봐요.”전동하의 말에 상자를 열어보니 여러 가지 향의 오일이며 온천탕에 뿌릴 수 있는 마른 꽃잎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상자의 가장 밑바닥에는 오일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콘돔까지.모든 룸에 기본으로 제공되는 것인지, 아니면 두 사람을 위한 친구의 특별 서비스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내용물을 확인한 소은정의 볼이 후끈 달아올랐다.역시나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이미 알고 있는 전동하가 슬그머니 다가왔지만 소은정은 자연스레 그를 밀어내며 장미 꽃잎이 담긴 주머니를 가리켰다..“됐어요. 이거면 돼요.”...그렇게 두 사람은 따뜻한
한편, 전동하는 소은정에게 새 잠옷을 입혀준 뒤 조심스레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잠시 후 들어온 의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너무 오래 뜨거운 탕에 계셔서 잠깐 어지러우셨던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밀폐된 공간에서 너무 격렬하게 움직이신 게 아닐지...”의사의 완곡한 설명에 전동하는 어색하게 고개를 돌리고... 침대에 누워있는 소은정은 차라리 기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잠시 후, 직원이 내온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고 정신을 차린 소은정이 천천이 일어나 침대맡에 기댄다.“휴, 아까 그런 거 아니라고 해명이라도 좀 하지. 나 창피해서 죽는 줄 알았잖아요.”소은정이 전동하를 흘겨보았다.“뭘 해명해요. 나도 답답해요. 차라리 뭐라도 하고 그런 소릴 들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내가 아까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흠, 지금 환자한테 소리지르는 거예요?”어이없다는 한숨을 짓던 전동하가 물과 함께 도착한 물약을 건넸다.“이거 먹으면 많이 좋아질 거래요. 내가 먹여줄게요. 아...”약이 목구멍을 넘어가고 생각보다 훨씬 더 쓴 약맛에 소은정은 전동하를 홱 밀쳐버린다.이미 입으로 들어온 약을 뱉지도 못하고 억지로 삼켜버리는 소은정의 모습에 전동하는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 만다.‘풉, 이럴 때보면 꼭 애 같다니까.’“오, 명약인데요? 바로 정신차리는 것 좀 봐.”전동하가 괜히 약병을 자세히 살피며 깐족댔다.어떻게든 꾸역꾸역 약을 다 마신 소은정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나... 오렌지 먹고 싶어요.”‘이 시간에?’뜬금없는 말에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전동하는 자연스레 휴대폰을 꺼냈다.“어디 마트 걸로 사올까요?”“그냥 오렌지면 돼요. 입이 너무 쓴 것 같아서.”“잠깐만요.”전동하가 방을 나서자 매니저가 바로 그를 맞이했다.“대표님, 사모님은 괜찮으시죠? 저희 서비스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아니에요. 저희가 탕에 너무 오래 있어서 그런 건데요 뭐. 온천욕은 즐거웠습니다. 아, 그런데 혹시 오렌지 있나요? 와이프가 갑자
한유라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려 풋풋한 남정네들을 가리키며 말했다.“내가 결혼 안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쟤들 아무나 하나 낚아채도 말 잘 듣고 좋을 텐데. 좋을 때다. 아주 풋풋한 게 좋아……”김하늘이 입을 열었다.“아니, 심 대표 뭐 문제 있어? 아직 창창할 땐데 쓸모없게 된 거야?”그 순간, 공기가 차가워지고 주위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한유라는 얼굴을 붉히며 김하늘을 노려봤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김하늘! 헛소리 집어치워! 쓸 만하거든?”김하늘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아니, 뭔가 아쉬워 보이길래. 난 네가 그런 줄 알았지……”한유라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질끈 감고는 감정을 누르며 말했다.“내 남편은 남편대로 장점이 있고, 저 새파랗게 어린애들은 또 그 맛이 있는 거지. 그냥 쟤네가 좋아 보여서 한 말이야. 함부로 지껄이지 마!”소은정은 눈을 껌뻑이더니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됐어. 그만 해. 왜 이렇게 말이 이상한 데로 튀냐?”한유라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그 순간, 농구장에 비명이 울려 퍼졌다. 농구공이 마침내 세 명의 발밑에 떨어졌다.한유라가 제일 마음에 들어 했던 풋풋한 청년이 달려오더니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아줌마, 공 좀 주세요!”세 사람은 뒤통수를 맞은 사람들처럼 얼어 있었다. 특히 한유라가 더 그러했다.그녀는 그가 자신에게 작업을 걸어온다고 착각하고 있었는데 ‘아줌마’라는 호칭을 들은 순간 그 착각은 와장창 무너져 내렸다. 그녀는 회의감이 들기까지 했고 어수선해진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한유라는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려오는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방금까지 그들이 경기장에서 흘리는 땀은 참 아름답고 풋풋하다고 느꼈는데 지금에 와서는 그저 땀 냄새 풍기는 진상에 불과했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농구공을 힘껏 밟아 터트리고 싶었지만, 힘이 모자랐다.그 젊은 청년은 더 달려오더니 영문을 모르는 듯 웃으며 다시 한번 말했다.“아줌마, 공 저 주시면 돼요.”손을 내미는 그를 보
소은정은 의식을 잃었고 머리가 점점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얼음같이 차가운 손길이 느껴졌지만, 뿌리칠 힘조차 없었다. 그저 이곳에는 전동하 말고는 아무도 없다고 느껴질 뿐이었다. 전동하의 손길이 언제부터 이리도 자상하지 않았던가?고요하다.그녀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그녀는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갑자기 몸이 부르르 떨었고, 불현듯 정신이 들었다. 온몸이 시큰거리고 누군가에게 얻어맞은 듯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아무 상처도 찾아볼 수 없었다.그녀는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고는 고개를 숙였고, 누가 갈아입혔는지 잠옷 차림인 자기 모습을 보고 의아해 났다. 악몽을 꾸는 바람에 약간 식은땀이 났을 뿐 잠옷은 쾌적하고 깨끗한 편이었다.그녀는 천천히 심호흡하고는 옷을 갈아입었다. 여전히 온몸이 시큰 해났지만, 통증이 조금 가라앉았다. ‘술 마신 후유증은 아닐 텐데……’그녀는 이렇게까지 힘겨운 적이 없었다. 문을 열고 나가니 온통 환한 빛으로 가득했다. 따뜻한 조명이 공기를 가득 메우고 있고 아이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정겨웠다. 거실에는 새봄이의 장난감이 잔뜩 널브러져 있었고 긴 장난감 기차가 온 거실을 휘젓고 있었다……전동하는 캐주얼한 옷차림으로 새봄이의 소꿉놀이에 동참하고 있었고 부엌에서는 하인이 준비한음식의 기분 좋은 향기가 코를 자극했다.바깥은 아직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덮어 있었지만, 한없이 아름다웠다. 그녀가 불편한 몸을 감추며 새봄이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걸어가는데 마구 운행하던 장난감 기차가 결국 소은정의 정강이를 들이닫았다. 그 광경을 본 새봄이는 장난감 구급상자를 들고 뛰어오며 말했다.“엄마, 나 의사야! 내가 호 해줄게.”소은정은 그런 새봄이가 너무 사랑스러워 껴안으며 말했다.“우리 새봄이 꿈이 진짜 많네? 어쩜 어느 직업이나 다 관심이 있지? 하하하.”그런 모녀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전동하가 옷소매를 걷어붙이더니 말했다.“아직 밥 안 먹었죠? 너무 깊게 자길래 아줌마가 해장국 끓였는
소은정은 꽤 오랜 시간 업무를 처리하느라 마음속에 의심이 사라져가는 듯했고, 여느 날과 다름이 없이 평범하다고 느껴졌다. 그녀는 목이 뻐근한지 스트레칭했고, 그런 그녀를 보면서 전동하는 어깨를 눌러주더니 이마에 입을 맞췄다. “방금 무슨 할 말이 있어 보이던데. 할 말 있어요?”그의 말에 소은정은 흠칫했다. 하루의 피로감이 싹 사라지는 듯했다. 그녀는 전동하를 의심 해서는 안 되며 그가 자기를 해칠 리 없다는 생각이 점점 짙어졌다. 그뿐인가? 그토록 금실 좋은 그들 감정이 갑자기 변할 계기도 없었다. 그녀는 말을 하려다 가슴이 두근거려 입을 하려던 말을 삼켰다. 전동하의 검은 그림자가 그녀의 얼굴에 드리웠고, 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할 말이 있으면 해요. 우리 사이에 숨길 게 뭐가 있어요?”소은정은 크게 심호흡하고는 마음속에 말을 솔직하게 털어놨다.“술 마시고 돌아올 때는 멀쩡했는데 눈 떠보니까 몸이 이상했어요. 누가 약을 탄 것처럼 온몸이 시큰거리고 아픈데 상처는 하나도 없고 그래서……”그녀는 전동하가 자신을 해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를 의심했다. “미안해요……”그녀가 그를 의심해서는 안 됐었다고 말하려 했는데 전동하가 근엄한 표정으로 그녀의 두 손을 꼭 잡고 맞은편에 앉았다. 잠시 고요한 침묵이 흐르더니 마침내 전동하가 입을 열었다.“전에는 이런 느낌 느껴본 적 없어요?”소은정이 고개를 젓더니 대답했다.“전에도 하늘이랑 유라랑 술 많이 마셨는데 오늘은 많이 마시지도 않았어요. 이럴 리가 없는데……”전동하가 진지한 말투로 물었다.“어디서 마셨어요?”소은정은 걱정스러운 듯한 그의 눈빛을 보며 마음이 놓였다. 아니라고 변명하지 않고 그녀를 위로하는 그를 보며 모든 의심이 다 풀리는 듯했다. “자주 가던 식당에서 전에 킵해둔 술을 마셨어요.”전동하는 입술을 오므리더니 말했다.“주소 찍어줘요. 어떤 사람 만났는지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도 말해줘요. 사람 시켜서 알아볼게요.”“내가 너무 예민한 걸 수도 있어
전동하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평소 친절하던 분위기는 지운 채 입술을 꾹 다문 그의 모습은 보는 이를 하여금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그의 영역을 침범한 적의 도발에 대한 그의 대응은 오직 더 잔인한 복수, 그뿐이었다.결과를 확인한 전동하와 소은정은 바로 병원을 나섰다.하지만 전동하가 향한 곳은 오피스텔이 아닌 호텔이었다.의아한 그녀의 표정에 전동하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오피스텔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은 것 같아서요. 당분간 이 호텔에서 지내는 게 좋겠어요. 보안성 하나만큼은 대한민국에서 최고인 호텔이니까.”“그럼 동하 씨는요?”“나도 당연히 은정 씨랑 같이 있어야죠.”소은정을 에스코트한 전동하가 그녀의 손바닥을 만지작거리며 위로를 건넸다.“걱정하지 말아요. 이 호텔 경호원을 다 부르는 한이 있더라도 은정 씨 지켜낼 테니까.”윤재수가 잡혔다는 소식에 경계를 늦추기도 전에 그보다 더 독한 자가 나타나다니.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전동하의 마음은 긴장감으로 이미 차갑게 얼어붙은 상태였다.그날 밤, 긴장이 풀린 건지 소은정은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잠이 들고 샤워를 마친 전동하는 깊게 잠든 소은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바로 그때, 뭔가를 발견한 전동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바로 소은정의 목에 생긴 멍 때문이었다.형태를 보아하니 누군가가 목을 졸라 남은 손가락 자국.‘감히 누가...’소은정이 깰 까봐 조심스럽게 움직이던 전동하는 응급상자를 챙겨와 상처에 조심스럽게 연고를 발라주었다.그의 손길에도 그저 살짝 미간만 찌푸릴 뿐, 세상없이 자고 있는 소은정...너무나 평화롭게 자고 있는 모습에도 전동하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다음 날 아침.아직 깨지 않은 소은정과 달리 기나긴 밤 뜬눈으로 지새운 전동하는 거실 베란다에서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안진 그 여자의 행방을 잘 살펴봐주세요. 정말 여기 있는 거 맞습니까? 절대 실수하면 안 돼요...”...잠시 후, 창문을 통해 비치는 햇살에 소은정은 드디어 부스스 눈을 떴다.잠이
주춤거리며 다가간 소은정이 물었다.“두 사람이 어떻게...”엄지환이 대답하려던 그때, 손재은이 먼저 선수를 쳤다.“은정 씨도 알다시피 내가 요즘 남는 게 시간이잖아요? 우연히 전시회 입장권을 구하게 돼서 한 번 와봤는데 이 앞에서 마침 엄 대표님을 만났지 뭐예요. 오늘 제 파트너 해주기로 했어요.”한편, 엄지환은 지금 당장이라도 팔을 내팽개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고 있는 중이었다.오늘 전시회에 참석하는 클라이언트 중 손재은과 친분이 있는 이가 있을 수도 있는 법, 괜히 손재은과 얼굴을 붉혔다가 투자를 그르치게 될까 걱정이 되어서였다.한편, 소은정은 그녀의 뒤를 지키는 임재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재준 씨, 소개할게요. 이쪽은 정일테크 엄지환 대표님이고, 이쪽은... 구태정 대표 와이프 손재은 씨예요.”소은정의 소개에 엄지환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물론 손재은의 환한 미소는 어색하게 굳어버렸지만 말이다.원망 섞인 눈으로 소은정을 흘겨보던 손재은이 슬그머니 엄지환의 팔짱을 풀고...곧 다시 흥미롭다는 눈으로 임재준을 훑어보기 시작했다.“임재준 씨, 신인 배우 아니었나요? 은정 씨는 진짜 대단한 것 같아요. 동하 씨는 참 불안하겠어요. 아, 그러고 보니까 동하 씨는 왜 안 왔어요?”“남편은 열심히 일하는 중이죠. 그 사람이 열심히 일해야 제가 더 마음 놓고 쓸 수 있지 않겠어요?”임재준과 엄지환을 힐끗 바라보던 소은정이 말을 이어갔다.“두 사람은 먼저 들어가죠?”그녀의 경호원인 임재준이야 소은정의 명령에 따르는 게 당연했고 엄지환 역시 누구보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길 바랐으므로 군말없이 자리를 떴다.잠시 후, 두 여자만 남게 되자 손재은이 불쾌하다는 얼굴로 따져물었다.“은정 씨,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 왜 다 된 밥에 코를 빠트려요? 내가 언제 은정 씨 누구 만나는 데 방해한 적 있어요?”“엄지환 대표는 SC그룹 계열사 대표입니다. 괜히 불륜이네 뭐네 이상한 일로 엮이면 SC그룹 이미지에 큰 타격이 가겠죠. 충분
구태정은 손재은의 반응을 살폈다. 하지만 예상 밖에도 손재은은 이혼 얘기를 꺼내며 히스테리를 부리지 않았다. 아마 손재은은 이미 사실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구태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여보, 걱정 마. 나는 당신밖에 없어, 앞으로 그 여자가 당신 눈앞에 나타날 일은 절대 없어.”손재은의 표정은 한결 평온해졌다. 우주 전시관은 빌딩 13층이다. 이들은 우주 전시관에 초청받아 온 것이 아니라 다른 볼 일 때문에 온 것이다. 구태정은 손재은과 소은정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웃으며 핸드폰을 꺼냈다. “자기야, 어디야?”손재은의 표정을 한순간 일그러졌다.또한 눈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소은정과 엄지환은 한 바퀴를 돌아본 후 휴게실에 멍하니 앉아 있는 손재은에게 갔다. 엄지환은 여전히 두려움이 남아 있는 듯한 손재은을 보고 말했다. “손 대표님, 제가 도저히 지켜만 보고 있을 수가 없네요. 제가 진 박사님한테 여쭤볼까요?”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엄 대표님, 정말 그러실 수 있어요? 재은 씨는 이혼을 해도 집안이 무너지지 않아요. 게다가 재은 씨는 연예급으로 예쁜데 정말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까?”엄지환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소은정에게 말했다. “소 대표님, 저도 돈 많은 여자를 찾을 때 이것저것 따집니다. 더욱이 저는 능력 있는 여자를 더 좋아합니다.”소은정은 눈살을 찌푸리고 말했다.“안녕히 가세요.”엄지환은 그대로 가버렸다. 잠시 후, 임재준은 소은정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소은정은 손재은 앞에 앉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신경 끈 거 아니었어요? 왜 이렇게 넋이 나갔어요?”손재은은 창백한 안색으로 이를 꽉 깨물며 말했다. “그게 아니라 저 두 사람이 너무 쓰레기 같다고 생각해서요.”소은정은 눈살을 찌푸리고 말했다. “재은 씨 변호사가 일 처리 끝내면 문제없을 거예요.”손재은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지그시 소은정을 쳐다보고 말했다. “은정 씨, 제 부탁 하나만 들어줘요.”소은정은 눈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