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윽, 진짜 일 같은 거 안 하고 은정 씨랑만 함께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몇 백번을 봐도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을 한참 물끄러미 바라보던 전동하가 얇은 담요를 건네주며 말했다.“기다려요. 일 끝나면 같이 밥 먹게.”말을 마치고 다시 일을 시작하는 전동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소은정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걸렸다.‘역시 놀려먹는 재미가 있단 말이야...’곧 휴식실로 들어간 소은정의 뒤로 전동하의 불평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다음부터 노크하고 들어오라고 하면 들어오세요...”‘괜히 직원한테 화풀이는...’이런 생각과 함께 소은정은 스르륵 잠이 들고 만다.시커먼 휴식실에서 눈을 뜬 소은정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아, 나 동하 씨 사무실에서 잠들었었지...’밖에 있는 사무실에선 여전히 일하는 중인지 전동하의 목소리가 들려왓다.침대에서 내려온 소은정이 창밖을 내려다보았다.가로등, 네온사인 빛으로 점철된 거리는 마치 거대한 드래곤처럼 이 도시를 관통하고 있었다.한편, 통화를 마치고 휴식실로 들어온 전동하는 텅 빈 침대를 보고 흠칫하다 창문 쪽에 서 있는 소은정을 발견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가 불을 밝히고 따뜻한 빛이 휴식실을 가득 채웠다.“드디어 깼네요. 그렇게 자고 밤에 더 잘 수 있겠어요?”소은정이 기지개를 켜며 애교를 부렸다.“그럼요. 동하 씨가 재워주면 충분히 잘 수 있어요.”소은정을 번쩍 안아 침대로 옮긴 전동하가 맨발로 바닥을 걸어 살짝 차가워진 그녀의 발을 덥혀주었다.“싫은데요. 밤새 안 재울 건데요.”전동하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소은정은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참나, 하여간 눈만 마주치면 그 생각이지...’잠시 후, 옷가지를 챙겨입은 두 사람이 사무실을 나서고... 주위를 둘러보던 소은정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뭐지? 불은 다 켜뒀는데 야근하는 직원 한 명 없네.’“직원들은요?”그녀의 질문에 전동하가 시계를 가리켰다.“다들 퇴근했죠.”“세상에. 아무리 그래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음에도 아직 박수혁 그 남자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인 전동하였다.한편, 소은정은 뜬금없는 그의 질문에 흠칫하다 피식 웃었다.“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말 그대로 가설일 뿐이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다시 고개를 돌린 소은정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난 절대 손재은처럼 살지 않을 거야. 다른 사람에게 버림받느니 내가 먼저 버릴 거라고. 하긴, 동하 씨는 지금 워낙 날 사랑하니까... 적어도 20년 안엔 마음이 바뀔 것 같지 않긴 하지만. 그리고 그 뒤는... 그때 가서 생각하지 뭐.’알아서 긍정적인 결론에 이른 소은정과 달리 그녀의 애매한 대답에 전동하는 여전히 착잡할 따름이었다.다른 생각을 하다 보니 우회전을 해야 할 골목을 그대로 지나치고...흠칫하던 소은정이 전동하의 손을 살짝 흔들었다.“뭐예요. 길 잘못 들었잖아요.”“아, 내가 깜박했는데... 오늘 친구가 운영하는 온천 스파 예약해 뒀어요. 요즘 은정 씨 여러모로 힘들었잖아요. 따뜻한 온천물에 몸이라도 푹 담궈요.”“그럼 새봄이는...”집에서 엄마, 아빠만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을 딸 생각에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어차피 곧 잠들 시간인데요 뭘...”‘미안, 딸. 오늘은 아빠가 엄마 좀 빌려갈게...’그렇게 한참을 더 달린 전동하의 차는 온천 리조트 앞에 멈춰 선다.서늘한 바람에 몸을 부르르 떠는 소은정을 위해 전동하가 항상 차에 두는 숄을 덮어주었다.이때 전동하의 친구가 두 사람을 맞이했다.“형수님, 저희 가게 방문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별말씀을요. 저야말로 초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여기저기 많이 다녀봤다고 자부하는데 여기 이런 온천 스파가 있다는 건 오늘 처음 알았네요.”소은정이 싱긋 웃었다.“아직 대외적으로 개방되지 않은 가게예요. 뭐, 어떻게든 알고 찾아오는 손님들은 많지만.”전동하의 설명에 소은정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고 그는 다급하게 한 마디 덧붙였다.“아, 참고로 나도 처음 오는 거예요.”
소은정의 가시 돋친 말에 어색하게 웃던 김하늘이 그녀에게 눈치를 주었다.‘휴... 하늘이 앞이니까 내가 참는다.’“농담이에요. 저도 나름 직원들의 워라벨에 신경 많이 쓰고 있어요. 뭐, 직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그녀의 말에 자신의 무례함을 인지한 임유경 역시 바로 사과했다.“아, 죄송합니다. 혹시 아까 제가 너무 차가웠나요?”임유경이 핸드백에서 명함을 꺼내며 다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쭉 해외에서 공부하다 지금은 홍익로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법률적으로 도움 필요한 일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주세요.”방금 전까지 시큰둥하다 갑자기 또 변한 임유경의 태도에 소은정이 눈썹을 치켜세웠다.‘뭐지? 참 알다가도 모를 캐릭터네.’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생각일 뿐, 명함을 받아든 소은정은 환하게 웃어 보였다.“알겠습니다. 홍익 로펌은 A시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로펌이죠. 앞으로 저희 그룹과도 함께 일할 기회가 많을 것 같은데요?”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지자 김하늘 역시 말을 이어갔다.“그럼. 유경 씨는 국제 토론대회에서 대상까지 탄 엘리트 중의 엘리트라고. 우리도 이번에 유경 씨 모시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그녀를 띄워주는 김하늘의 화술에 임유경은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엘리트니 뭐니 해도 임유경은 어디까지나 신인 변호사일 뿐, 홍익로펌에서 성장하기 위해선 김하늘처럼 A시 인맥을 꽉 잡고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게다가 유명세와 달리 항상 겸손하고 친절한 김하늘의 태도도 마음에 들어 접대까지 따라오게 된 것이었다.역시나 방금 전, 귀인을 소개해 주겠다는 김하늘의 말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설마하니 그 귀인이 소은정일 줄이야.‘저 사람은... 좀 불편한데...’임유경의 시선이 소은정과 김하늘 사이를 배회했다.이 바닥이 너무 좁은 건지, 소은정의 영향력이 큰 건지.가는 곳마다 소은정의 얘기가 들리는 통에 괜히 소은정이 미워지기 시작한 임유경이었다.그녀와는 아무 상관없이 그저 소은정을 칭찬하는 말에도 네까짓게 소은
하지만 그녀의 부름에도 전동하는 여전히 묵묵부답.정말 잘못 들어온 게 아닐까 싶어 룸 번호를 확인하려던 그때, 안쪽에서 푸흡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난 가버렸는 줄 알았는데 다시 왔네요?”전동하의 목소리였다.적어도 방을 착각한 건 아니란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소은정이 말했다.“나도 바로 들어갈게요.”부랴부랴 옷을 갈아입은 소은정이 온천실로 들어가자 뜨거운 열기가 물씬 풍겨오며 그녀의 모공을 확 열어주었다.원목 재질의 바닥, 주위의 인테리어는 흰 베일로 가려져있어 눈밭에서 온천욕을 즐기는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보석처럼 잘 다듬어진 조약돌길을 밟으며 소은정은 천천히 안쪽으로 다가갔다.그런데...‘뭐야? 안개가 너무 심해서 앞이 잘 안 보이네. 동하 씨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뜨거운 물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걷어내며 앞으로 이동하던 그때, 물 속에서 팔이 쑥 나오더니 그녀를 물속으로 끌어당겼다.“으앗!”자연스레 그녀를 꼭 껴안은 전동하가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인사만 하고 온다면서요. 난 두 사람이 뭐 야식이라도 먹으러 나간 줄 알았네.”“알잖아요. 여자들끼리 모이면 수다가 끊이지 않는 거.”소은정의 손가락이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전동하의 매끈한 쇄골을 스윽 훑고 지난다.“참나.”여전히 입을 삐죽거리던 전동하가 옆에 있는 상자를 가리켰다.“마음에 드는 거 있나 봐봐요.”전동하의 말에 상자를 열어보니 여러 가지 향의 오일이며 온천탕에 뿌릴 수 있는 마른 꽃잎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상자의 가장 밑바닥에는 오일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콘돔까지.모든 룸에 기본으로 제공되는 것인지, 아니면 두 사람을 위한 친구의 특별 서비스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내용물을 확인한 소은정의 볼이 후끈 달아올랐다.역시나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이미 알고 있는 전동하가 슬그머니 다가왔지만 소은정은 자연스레 그를 밀어내며 장미 꽃잎이 담긴 주머니를 가리켰다..“됐어요. 이거면 돼요.”...그렇게 두 사람은 따뜻한
한편, 전동하는 소은정에게 새 잠옷을 입혀준 뒤 조심스레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잠시 후 들어온 의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너무 오래 뜨거운 탕에 계셔서 잠깐 어지러우셨던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밀폐된 공간에서 너무 격렬하게 움직이신 게 아닐지...”의사의 완곡한 설명에 전동하는 어색하게 고개를 돌리고... 침대에 누워있는 소은정은 차라리 기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잠시 후, 직원이 내온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고 정신을 차린 소은정이 천천이 일어나 침대맡에 기댄다.“휴, 아까 그런 거 아니라고 해명이라도 좀 하지. 나 창피해서 죽는 줄 알았잖아요.”소은정이 전동하를 흘겨보았다.“뭘 해명해요. 나도 답답해요. 차라리 뭐라도 하고 그런 소릴 들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내가 아까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흠, 지금 환자한테 소리지르는 거예요?”어이없다는 한숨을 짓던 전동하가 물과 함께 도착한 물약을 건넸다.“이거 먹으면 많이 좋아질 거래요. 내가 먹여줄게요. 아...”약이 목구멍을 넘어가고 생각보다 훨씬 더 쓴 약맛에 소은정은 전동하를 홱 밀쳐버린다.이미 입으로 들어온 약을 뱉지도 못하고 억지로 삼켜버리는 소은정의 모습에 전동하는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 만다.‘풉, 이럴 때보면 꼭 애 같다니까.’“오, 명약인데요? 바로 정신차리는 것 좀 봐.”전동하가 괜히 약병을 자세히 살피며 깐족댔다.어떻게든 꾸역꾸역 약을 다 마신 소은정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나... 오렌지 먹고 싶어요.”‘이 시간에?’뜬금없는 말에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전동하는 자연스레 휴대폰을 꺼냈다.“어디 마트 걸로 사올까요?”“그냥 오렌지면 돼요. 입이 너무 쓴 것 같아서.”“잠깐만요.”전동하가 방을 나서자 매니저가 바로 그를 맞이했다.“대표님, 사모님은 괜찮으시죠? 저희 서비스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아니에요. 저희가 탕에 너무 오래 있어서 그런 건데요 뭐. 온천욕은 즐거웠습니다. 아, 그런데 혹시 오렌지 있나요? 와이프가 갑자
한유라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려 풋풋한 남정네들을 가리키며 말했다.“내가 결혼 안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쟤들 아무나 하나 낚아채도 말 잘 듣고 좋을 텐데. 좋을 때다. 아주 풋풋한 게 좋아……”김하늘이 입을 열었다.“아니, 심 대표 뭐 문제 있어? 아직 창창할 땐데 쓸모없게 된 거야?”그 순간, 공기가 차가워지고 주위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한유라는 얼굴을 붉히며 김하늘을 노려봤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김하늘! 헛소리 집어치워! 쓸 만하거든?”김하늘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아니, 뭔가 아쉬워 보이길래. 난 네가 그런 줄 알았지……”한유라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질끈 감고는 감정을 누르며 말했다.“내 남편은 남편대로 장점이 있고, 저 새파랗게 어린애들은 또 그 맛이 있는 거지. 그냥 쟤네가 좋아 보여서 한 말이야. 함부로 지껄이지 마!”소은정은 눈을 껌뻑이더니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됐어. 그만 해. 왜 이렇게 말이 이상한 데로 튀냐?”한유라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그 순간, 농구장에 비명이 울려 퍼졌다. 농구공이 마침내 세 명의 발밑에 떨어졌다.한유라가 제일 마음에 들어 했던 풋풋한 청년이 달려오더니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아줌마, 공 좀 주세요!”세 사람은 뒤통수를 맞은 사람들처럼 얼어 있었다. 특히 한유라가 더 그러했다.그녀는 그가 자신에게 작업을 걸어온다고 착각하고 있었는데 ‘아줌마’라는 호칭을 들은 순간 그 착각은 와장창 무너져 내렸다. 그녀는 회의감이 들기까지 했고 어수선해진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한유라는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려오는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방금까지 그들이 경기장에서 흘리는 땀은 참 아름답고 풋풋하다고 느꼈는데 지금에 와서는 그저 땀 냄새 풍기는 진상에 불과했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농구공을 힘껏 밟아 터트리고 싶었지만, 힘이 모자랐다.그 젊은 청년은 더 달려오더니 영문을 모르는 듯 웃으며 다시 한번 말했다.“아줌마, 공 저 주시면 돼요.”손을 내미는 그를 보
소은정은 의식을 잃었고 머리가 점점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얼음같이 차가운 손길이 느껴졌지만, 뿌리칠 힘조차 없었다. 그저 이곳에는 전동하 말고는 아무도 없다고 느껴질 뿐이었다. 전동하의 손길이 언제부터 이리도 자상하지 않았던가?고요하다.그녀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그녀는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갑자기 몸이 부르르 떨었고, 불현듯 정신이 들었다. 온몸이 시큰거리고 누군가에게 얻어맞은 듯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아무 상처도 찾아볼 수 없었다.그녀는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고는 고개를 숙였고, 누가 갈아입혔는지 잠옷 차림인 자기 모습을 보고 의아해 났다. 악몽을 꾸는 바람에 약간 식은땀이 났을 뿐 잠옷은 쾌적하고 깨끗한 편이었다.그녀는 천천히 심호흡하고는 옷을 갈아입었다. 여전히 온몸이 시큰 해났지만, 통증이 조금 가라앉았다. ‘술 마신 후유증은 아닐 텐데……’그녀는 이렇게까지 힘겨운 적이 없었다. 문을 열고 나가니 온통 환한 빛으로 가득했다. 따뜻한 조명이 공기를 가득 메우고 있고 아이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정겨웠다. 거실에는 새봄이의 장난감이 잔뜩 널브러져 있었고 긴 장난감 기차가 온 거실을 휘젓고 있었다……전동하는 캐주얼한 옷차림으로 새봄이의 소꿉놀이에 동참하고 있었고 부엌에서는 하인이 준비한음식의 기분 좋은 향기가 코를 자극했다.바깥은 아직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덮어 있었지만, 한없이 아름다웠다. 그녀가 불편한 몸을 감추며 새봄이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걸어가는데 마구 운행하던 장난감 기차가 결국 소은정의 정강이를 들이닫았다. 그 광경을 본 새봄이는 장난감 구급상자를 들고 뛰어오며 말했다.“엄마, 나 의사야! 내가 호 해줄게.”소은정은 그런 새봄이가 너무 사랑스러워 껴안으며 말했다.“우리 새봄이 꿈이 진짜 많네? 어쩜 어느 직업이나 다 관심이 있지? 하하하.”그런 모녀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전동하가 옷소매를 걷어붙이더니 말했다.“아직 밥 안 먹었죠? 너무 깊게 자길래 아줌마가 해장국 끓였는
소은정은 꽤 오랜 시간 업무를 처리하느라 마음속에 의심이 사라져가는 듯했고, 여느 날과 다름이 없이 평범하다고 느껴졌다. 그녀는 목이 뻐근한지 스트레칭했고, 그런 그녀를 보면서 전동하는 어깨를 눌러주더니 이마에 입을 맞췄다. “방금 무슨 할 말이 있어 보이던데. 할 말 있어요?”그의 말에 소은정은 흠칫했다. 하루의 피로감이 싹 사라지는 듯했다. 그녀는 전동하를 의심 해서는 안 되며 그가 자기를 해칠 리 없다는 생각이 점점 짙어졌다. 그뿐인가? 그토록 금실 좋은 그들 감정이 갑자기 변할 계기도 없었다. 그녀는 말을 하려다 가슴이 두근거려 입을 하려던 말을 삼켰다. 전동하의 검은 그림자가 그녀의 얼굴에 드리웠고, 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할 말이 있으면 해요. 우리 사이에 숨길 게 뭐가 있어요?”소은정은 크게 심호흡하고는 마음속에 말을 솔직하게 털어놨다.“술 마시고 돌아올 때는 멀쩡했는데 눈 떠보니까 몸이 이상했어요. 누가 약을 탄 것처럼 온몸이 시큰거리고 아픈데 상처는 하나도 없고 그래서……”그녀는 전동하가 자신을 해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를 의심했다. “미안해요……”그녀가 그를 의심해서는 안 됐었다고 말하려 했는데 전동하가 근엄한 표정으로 그녀의 두 손을 꼭 잡고 맞은편에 앉았다. 잠시 고요한 침묵이 흐르더니 마침내 전동하가 입을 열었다.“전에는 이런 느낌 느껴본 적 없어요?”소은정이 고개를 젓더니 대답했다.“전에도 하늘이랑 유라랑 술 많이 마셨는데 오늘은 많이 마시지도 않았어요. 이럴 리가 없는데……”전동하가 진지한 말투로 물었다.“어디서 마셨어요?”소은정은 걱정스러운 듯한 그의 눈빛을 보며 마음이 놓였다. 아니라고 변명하지 않고 그녀를 위로하는 그를 보며 모든 의심이 다 풀리는 듯했다. “자주 가던 식당에서 전에 킵해둔 술을 마셨어요.”전동하는 입술을 오므리더니 말했다.“주소 찍어줘요. 어떤 사람 만났는지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도 말해줘요. 사람 시켜서 알아볼게요.”“내가 너무 예민한 걸 수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