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은 생사에 무던해진 사람이었다, 해외에서 테러리스트를 만나는 건 꽤 흔한 일이었기에 박수혁의 협박도 그녀에게 그다지 무서운 건 아니었다.안진이 박수혁의 역린을 건드렸기에 그가 화를 내는 것뿐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그랬기에 그녀는 이해할 수 있었다.정신을 차린 그녀는 다시 박수혁의 옷깃을 잡고 자신 쪽으로 당겼다.안진은 굴복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박수혁, 나 너랑 장난하는 거 아니야. 네 아버지 목소리 들어볼래?"안진이 차가운 박수혁의 얼굴을 보며 휴대폰을 집어 들더니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이어 휴대폰 너머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가씨, 무슨 일 있으세요?""사람은 아직 살아있어?""네.""그럼 전화받게 해."안진이 박수혁을 보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그리고 다음 순간, 두려움에 잔뜩 젖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살려줘, 수혁아, 아버지, 살려줘요. 저 봉원이에요, 이 사람들이 돈을 달라고 하면 그냥 줘요. 저 병도 재발했고 여기 주위에서 전부 싸움 중이에요…"박봉원은 침착함을 잃고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그 목소리를 들은 박수혁의 눈빛이 더욱 예리해졌다.이 전화로부터 박봉원이 국내에 있지 않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하지만 안진은 금방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눈으로 박수혁을 바라봤다."박 대표님, 이제부터 우리 사이는 내가 말한 대로 흘러가는 거야."안진이 웃으며 천천히 박수혁을 밀어내더니 옷을 입기 시작했다.그녀는 주동권을 거머쥐는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협박과 유혹을 통해서든 아니면 다른 사람을 계략에 빠지게 해서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다급한 노크 소리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박수혁은 문 앞으로 가더니 차가운 얼굴로 문을 열었다.문 앞의 이들은 그를 보곤 놀라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그들은 이 룸에서 태한그룹의 대표님 박수혁이 나올 줄 몰랐다는 듯한 얼굴이었다.박수혁은 놀라움으로 물든 기자들의 눈빛을 마주했지만 화를 낼 여력이 없었다, 이 모든 것도 안진이 꾸민 짓이라는
박수혁과 기자들이 대치하고 있는 사이, 박수혁이 나온 방에서 또 다른 여자 하나가 나왔다. 여자는 소은정과 무척 닮아있었다.숙취 후의 피곤함을 담은 얼굴로 박수혁의 룸에서 걸어 나온 여자를 본 순간, 기자들은 그 제보자가 말한 핫뉴스가 무엇인지를 순식간에 깨닫게 되었다.이것보다 더 재밌는 광경이 있을까?박수혁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니?사랑인가, 그저 대역일 뿐인가?이 소식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에 충분했다.여자는 문 옆에 기대어 만족스러운 얼굴로 기자들을 바라봤다, 그녀는 눈앞의 정경에 대해 놀라운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수혁아, 무섭게 왜 그래, 이 사람들도 그저 일을 하기 위한 거잖아…"안진이 박수혁을 바라보며 얄궂게 말했다.그녀는 바닥에 널부러진 기계를 보더니 기자들을 보며 웃었다."걱정하지 마세요, 물건은 제가 배상해 드릴게요."기자들은 놀라운 얼굴로 안진을 바라봤다, 그녀의 외모를 보고 놀란 듯했다. 자세히 보면 닮지 않았지만 첫눈에 비슷한 것 같다는 착각이 들게 했다.촬영장에서 대역이 자주 사용하는 화장 기술이 아마 이런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하지만 그 누구도 감히 이런 방법을 쓸 생각은 하지 못했다.잠시 침묵한 뒤, 안진이 머리를 쓸어올리며 박수혁의 팔에 팔짱을 꼈다."시간도 늦었는데 우리 갈까?"안진이 웃으며 박수혁을 바라보는 이 광경을 기자들이 놓칠 리 없었다.하지만 두 사람의 분위기는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두 사람이 같은 룸에서 나온 걸 보면 평범하지 않은 관계인 건 분명한 것 같은데 박수혁의 태도는 너무 차가웠다. 그래서 두 사람의 행동이 아무리 다정하다고 해도 연인 같지는 않았다.안진이 박수혁에게 팔짱을 낀 순간, 박수혁이 힘껏 그녀의 팔을 쳐냈다.마치 쓰레기에 팔이 닿은 것처럼 역겹다는 듯한 표정과 함께였다.그리고 안진을 홀로 남겨둔 채 자리를 떠났다.안진은 그 모습을 보다 웃으며 그 뒤를 따라갔다.......이 소식은 5분도 되지 않아 검색어 1위에 올랐다.박수혁의 새 연인, 사랑인
태한그룹.안진은 박수혁의 사무실에 앉아 인터넷의 각종 댓글을 읽고 있었다.박수혁은 돌아온 후로 쭉 굳은 얼굴로 앉아있었다. 회의를 마치고 온 그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졌다.그리고 아직 자신의 사무실에 앉아있는 안진을 보더니 차가운 눈길을 이한석에게 돌렸다."대표님, 언론을 다스리고 있지만 아마 잠시 동안은…"이한석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박수혁은 그 말을 듣더니 더욱 화가 났다."내가 어떻게 해야 되는지 다 가르쳐 줘야 해?""아닙니다, 제가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박수혁이 다시 차가운 얼굴로 안진을 바라봤다.그의 시선을 느낀 안진이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늦었어, 소은정도 다 알았을걸, 이제 못 속여."안진의 그 말에 사무실의 분위기는 다시 얼어붙었다.안진은 일부러 도발하듯 다시 박수혁의 심기를 건드릴 말을 했다."소용없다고, 박수혁. 너희 회사가 나서서 내가 네 약혼녀라고 하는 게 좋을 거야. 우리는 지금 정당하게 사귀고 있는 사이어야 해, 그래야 하룻밤 같이 한 것도 설명이 가능할 테니까. 아니면 어젯밤 일이 네 오점이 될 거야."인터넷의 여론만 보면 두 사람의 사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건 이미 결론이 났다.그랬기에 안진의 신분이 타당하지 않거나 금전거래와 연결되었다간 이 일은 스캔들에서 추문이 될 게 분명했다.그렇게 되면 태한그룹도 이 오점을 영원히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었다.박수혁이 차가운 눈으로 안진을 바라보고 있을 때, 이한석이 옆에서 헛기침을 하더니 말했다."대표님, 저분 말이 맞습니다."이 또한 회사에서 제일 빠른 시간 내에 얻어낸 결론이기도 했다.그들도 이런 돌발 상황을 응대하는데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이었다. 실질적인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는 그들이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할 수 있었지만 이 사건은 달랐다.기자들이 박수혁과 안진이 있는 룸 앞까지 쳐들어가 모든 이들이 알게 되었기에 터무니없는 답을 내놓을 수도 없었다.이번 위기를 넘기기 위해서는 박수혁이 안진과 사귀고 있음을 인정하고 그녀의 신분
박수혁을 타협하게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소은정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그는 고개를 숙여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안진은 박수혁의 머리를 잡고 그에게 머리를 숙이라고 강요하고 있었다.용기가 가상하다고 해야 할지 죽음을 자처하지 못해 안달이 났다고 해야 할지.박수혁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냉랭함을 뿜어냈다."저 여자가 말한 대로 해.""네."이한석이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이한석이 사무실에서 나왔을 때, 안진이 마침 간식들을 안고 돌아왔다.안진을 본 이한석이 걸음을 멈췄다. 그는 안진을 피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안진은 이한석을 보며 웃었다."이 비서님, 박 대표님께서 허락하셨어요?""박 대표님께서 더 큰 국면을 중시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이한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박 대표님도 약점이 없는 건 아니야, 그쵸?"안진이 웃으며 말했다.이한석은 고개를 숙이곤 그 말에 감히 대답을 하지 못했다.박수혁을 협박해 타협하게 만든 건 안진이 처음이긴 했다.안진은 이한석의 반응을 관여하지 않고 웃으며 회사를 둘러봤다."나 여기 좀 둘러볼게요, 약혼녀라는 신분을 얻었으니 곧 결혼도 하게 될 텐데 회사 좀 둘러봐야죠."이한석은 그런 안진을 보며 감탄했다.감히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다니.하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숙이고 박수혁을 대신 손에 땀을 쥐었다.박수혁이 해결하기 어려운 일을 맡은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이 비서님, 저한테 묻고 싶은 거 없어요? 저한테 궁금한 게 많은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도 그렇고, 그런데 그 사람들은 물을 기회도 없잖아요."그 말을 들은 이한석이 고개를 들고 안진을 바라봤다."안진 씨, 정말 대역이라도 상관없어요?"그는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결국 이 질문을 했다.안진은 나타나기 시작한 순간부터 일부러 소은정을 따라 하고 있었다.어젯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이한석은 박수혁의 자제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평범한 여자는
사건의 시작부터 지금의 해명까지, 태한그룹은 짧은 몇 마디만으로 이번의 스캔들을 잠재웠다."박수혁 씨와 안진 씨는 정상적인 만남을 가지고 있으며 약혼을 앞둔 사이입니다. 사생활과 관련된 사안이니 루머를 퍼뜨리지 말아 주세요, 그렇지 않을 경우, 법률에 따라 소송을 진행할 예정입니다."그렇게 안진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소은정과의 비교 대상이 되었지만 태한그룹의 공식 입장에서 약혼녀라는 신분을 인정받게 되었으니 그녀의 신분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도 입증된 셈이었다.그랬기에 그녀는 박수혁에게 어울릴만한 존재였고 사람들은 그녀를 재벌 집 자재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재벌가의 사람들은 안진이라는 인물을 모른다는 식의 암시를 대놓고 하고 있었다.그럴수록 사람들은 안진의 신분에 대해 궁금해했다. 그녀의 진정한 신분에 대해 아는 이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증거 없이 떠돌아다니던 소문은 태한그룹의 공식 입장에 의해 점차 잠재워졌다.하지만 박수혁과 소은정을 응원하던 이는 아쉽게 퇴장할 수밖에 없었고 다른 이들은 안진의 대역 가능성을 의심했다.아무튼 이 관계를 좋게 보는 이는 거의 없었다.소은정은 그 기사들을 훑어보며 미간을 찌푸린 채 커피를 홀짝였다.우연준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우연준이 헛기침을 하고 나서야 소은정이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봤다."대표님, 속상하신 거 아니죠?"그 말을 들은 소은정이 우연준을 흘겨봤다."어딜 봐서 내가 속상하다고 하는 겁니까?""평소에는 이런 소문들에 관심 없으셨잖아요."우연준의 말을 들은 소은정은 멈칫하더니 관련 기사들을 전부 치워버렸다."태한그룹 주식은 어떻습니까?"그녀가 손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물었다.우연진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하고 말았다.기사를 보고 있었던 이유가 주식 때문이었다니.우연준은 역시나 자신의 생각이 짧다고 생각했다."3시간 전에는 동요가 심했지만 지금은 점차 상승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하기 전보다 0.5% 하락했습니다."우연준의
소은정은 망설여졌다. 박수혁이 지금 전화를 건 이유는 공적인 일 때문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하지만 두 사람은 사적으로도 이야기를 나눌 사이가 되지 못했다.그녀는 기분이 복잡해졌다.휴대폰을 들고 망설이고 있는 사이, 손이 미끄러져 그녀는 결국 전화를 받게 되었다.그 순간, 그녀의 심장이 박동을 가했다.하지만 얼른 침착함을 되찾은 그녀가 전화를 받아들었다."은정아…"박수혁이 낮은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박 대표님, 무슨 일이야"그 목소리를 들은 소은정이 침묵을 지키다 물었다."미안해."그 한마디는 마치 예전의 일에 대한 사과라기보다 오늘의 일에 대한 사과 같았다."이미 지나간 일을 다시 들먹여서 뭐 하려고, 방금 네 소식 들었어, 내가 축하한다고 해야 하나?"이 반응이 제일 정상적이었다.그 말을 들은 박수혁은 족히 1분간 침묵을 지켰다, 소은정도 그의 가라앉은 기분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그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그 순간, 그녀는 휴대폰을 꼭 움켜잡았다."할 말 없으면 끊을게.""은정아, 너 정말 잔인하다."박수혁이 헛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소은정의 축하한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이렇게 절망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 한마디에 그는 상처투성이가 되고 말았다.질식할 것 같은 고통이 그를 찾아왔다.소은정은 박수혁의 그 말을 들으니 할 말이 없어졌다."됐어, 네 목소리라도 들었으니 다행이야."박수혁이 다시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소은정은 결국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그녀는 이 통화를 계속 이어나갔다간 박수혁이 또 난감한 말을 내뱉을까 봐 겁이 났다.휴대폰을 내려놓은 소은정은 보고서를 훑어봤다. 곧이어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음이 울렸고 그녀가 메시지를 다 읽었을 때, 누군가가 노크 소리와 함께 들어왔다.우연준이리라고 생각한 소은정은 고개도 들지 않고 상대방에게 말했다."우 비서님, 내 외투 좀 다려줘요, 이따 잠깐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하지만 상대방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래요? 그럼 제가 데려다줄게요."전동하의 말을 들은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재촉했다."옷이나 잘 다려줘요."......한유라가 혼인신고를 마친 사실에 대해서 아직 적응을 하지 못한 사이, 하시율은 이미 신혼집까지 전부 준비했다.한유라가 박수혁의 뉴스를 읽고 있던 중,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전화를 건 이는 심강열이었다.이는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한 뒤, 심강열이 처음으로 한유라에게 전화를 건 것이었다.신분이 달라졌으니 한유라는 더 이상 예전처럼 마음대로 그를 대할 수 없었다."여보세요?""집이에요?""네, 무슨 일 있어요?"한유라의 말을 들은 심강열이 잠시 침묵했다."신혼집 다 준비되었는데 보러 갈래요?"그 말을 들은 한유라는 몇 초간 반응이 없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박수혁의 뉴스는 이미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아직 안 일어난 거예요? 제가 밑에서 기다릴 테니까 천천히 내려와요, 오늘 하루 종일 시간 괜찮으니까."심강열이 탄식하며 말을 마치곤 전화를 끊었다.그는 한유라가 자신보다 더 어색해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전화를 끊은 한유라는 얼른 베란다로 가 밖을 내다봤다.역시나 심강열의 차가 아래에 세워져있었다.그 모습을 본 한유라는 당황했다, 자신은 해가 중천에 뜨도록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남편이라는 작자가 문 앞까지 찾아왔기 때문이었다.그녀는 서둘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하지만 쿵쾅대는 심장은 멈출 줄 몰랐다, 그녀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두 사람은 감정 기초도 없는 상황하에서 혼인신고까지 덜컥 해버렸다, 다른 사람에게 말해도 믿지 않을 정도였다.한유라는 어떻게 해야 심강열과 잘 지낼 수 있을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하루 종일 시간이 있다는 건 신혼집을 보고도 두 사람은 함께 밥을 먹고 또 다른 연인들이 하는 것처럼 데이트 같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일까?한유라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결국 그녀는 소은정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전화를 했다가는 자신의 마음을 들키기라도 할 것처럼.머지않아, 한유
심강열은 한유라의 손을 잡고 그녀의 지문을 입력했다.한유라는 손이 뜨거워졌지만 심강열의 손을 뿌리치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해 가만히 있었다.심강열의 옆모습은 무척 보기 좋았다. 뚜렷한 이목구비는 다정한 것 같기도 했지만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한유라의 지문을 입력한 심강열이 그제야 그녀의 손을 놓아줬다."됐어요, 다음에 오면 직접 들어오면 돼요."한유라가 얼른 손을 거두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심강열은 그 모습을 보다 그녀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새로 산 집은 아니에요, 그때 예매한 건데 누구도 안 살고 있어서 잊고 있었어요. 어머니께서 이 지역을 마음에 들어 하셨는데 마침 별장 하나가 남았고 인테리어도 괜찮아서 신혼집으로 마련한 건데 괜찮죠?""네."한유라가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비싼 별장을 앞에 둔 한유라는 뭐라고 말할 것도 없었다.심강열이 말한 건 전혀 흠이 되지 않았다."심 씨 본가는 안연시에 있어요, 여기에서도 일을 하지만 주된 곳은 여기가 아니에요. 그래서 여기에서 길게 있지는 않을 거예요, 다음에 날 잡아서 유라 씨 데리고 본가로 갈 테니까 여기에 있을 때에는 이 별장에서 지내는 거 어때요?"심강열이 침착하게 한유라의 생각을 물었다.그녀를 본가에 데리고 가겠다는 말까지 한 걸 보면 그는 이미 그녀를 자신의 와이프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의미했다.그 생각을 하니 한유라는 얼굴이 붉어졌다."강열 씨, 나 지금 꿈꾸고 있는 것 같아요."한유라가 입술을 물고 고개를 돌려 심강열을 바라보며 말했다.그 모습을 본 심강열이 미소를 지었다."오늘이 오기 전까지 나도 계속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사실이 이러니 더 이상 바꿀 수 있는 건 없어요.""그래도 조금 어색하네요."한유라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말했다."천천히 해요, 천천히. 우리 같이 적응해요, 네?"심강열이 고개를 숙이고 한유라를 보며 말했다.나긋하고 듣기 좋은 목소리는 마치 사람의 마음을 홀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