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이 병원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던 소은정은 마이크의 약봉지를 받아들곤 여전히 충격에 잠긴 선생님과 아이들의 시선을 받으며 돌아섰다.마이크가 여전히 바닥에 드러누워 비명을 지르는 여자를 발견하곤 흠칫했다.“저 아줌마 왜 넘어진 거예요?”순간 고개를 든 여자가 잡아먹을 듯한 표정의 소은정과 눈이 마주치고...분명 삼류 연예인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기가 왜 이렇게 센 거야.왠지 모를 불안감에 그녀는 결국 눈을 피해버렸다.한편 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마이크에게 설명을 해주었다.“이 정도 다친 건 별로 안 아픈 것 같다면서 직접 테스트를 해보더라고?”“와 진짜 멍청한 아줌마네요.”...잠시 후, 병원을 나온 두 사람이 차에 탄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동하 씨.”마이크를 힐끗 바라본 그녀가 미소와 함께 전화를 받았다.“전 대표님, 도착하셨어요?”어색한 호칭에 전동하가 웃음을 터트렸다.“네. 전화했었네요? 무슨 일 있었어요?”하지만 전동하는 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한 마디 덧붙였다.“아, 물론 별일 없어도 전화는 할 순 있죠. 다 알아요. 내가 보고 싶어서 죽을 거 같은 거.”소은정이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흘겼다.이 남자가 정말... 애도 옆에 있는데.“큼큼. 그게... 마이크가 팔을 조금 다쳤어요. 금 갔다는데... 동하 씨한테 얘기는 해야 할 것 같아서요.”“뭐라고요? 금이요? 지금 병원이에요...? 안 되겠어요... 지금 제가 바로 갈게요.”전동하의 목소리가 순간 초조하게 변하자 소은정도 다급하게 해명을 이어갔다.“아, 아니에요. 많이 다친 것도 아니고 깁스도 다 마쳤어요. 지금은 집에 가는 길이고요.”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전동하가 물었다.“지금 은정 씨 곁에 있어요?”소은정이 마이크에게 눈치를 주자 마이크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아빠, 아빠는 일이나 열심히 해요! 난 하나도 안 아프니까!”평소 마이크에게 엄하기만 하던 전동하의 목소리가 오늘만큼은 유난히 부드러웠다.“우리 마이크 씩씩하네.”“
마이크, 네가 다 컸을 땐... 아빠랑 결혼했을 수도 있고 아예 남이 되었을 수도 있어. 일단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오후, 소은정은 마이크와 함께 회사로 향했다. 아프다고 칭얼댈 법도 한데 마이크는 굉장히 고분고분하게 가만히 소파에 앉아있었고 태블릿으로 뉴스나 주식을 보기도 했다.그 모습에 소은정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저 나이 때 애들은 엉덩이도 제대로 못 붙이고 있을 텐데... 태블릿으로도 게임이나 하는 게 다일 테고... 아니지. 동하 씨가 워낙 마이크 교육에 신경 쓰기도 하고 애가 워낙 똑똑하니까 뭐 이상할 것도 없지.업무를 보는 동안 우연준은 소은정에게 결제 파일을 올릴 때마다 마이크에게 간식을 가져다 주었다.그 모습이 마음에 든 건지 마이크가 먼저 말을 걸었다.“아저씨 진짜 대단하네요. 아저씨는 맨날 예쁜 누나랑 같이 있을 수 있는 거죠? 저도 열심히 공부해서 평생 누나 옆에 붙어있을래요!”10살도 안 된 어린 아이의 당찬 포부에 우연준은 어이가 없으면서도 왠지 웃음이 새어나왔다.저녁쯤, 일찍 퇴근한 소은정은 마이크와 함께 오피스텔로 향했다.그때, 운전대를 잡은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저 차... 아까부터 우릴 따라오고 있었던 것 같은데...잠깐 고민하던 소은정은 갑자기 핸들을 돌려 겨우 미행을 떼어버렸다.잠시 후, 오피스텔.아직 초저녁이라 해도 지지 않았음에도 마이크는 많이 피곤했는지 소파에 누운 채 새근새근 잠이 들었고 베란다에서 몰래 통화를 마친 소은정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한편, 힐튼 호텔.커다란 창문을 통해 번화한 거리의 구석구석이 한눈에 들어온다.불도 켜지 않고 홀로 서 있는 안진은 이미 어둠과 홀연일체가 되버린 것 같기도 했다.잠시 후, 검은색 정장차림의 남자가 공손한 태도로 다가왔다.“실패했습니다.”순간 안진의 표정이 차가워졌다.“이런 쓰레기 같은. 그깟 여자 하나 못 잡아?”그녀의 차가운 목소리에 남자는 고개를 푹 숙였다.“소은정 대표를 몰래 지키는 세력이 한둘이 아닙니다. 게다가
전동하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다른 비서가 핀잔을 주었다.“소은정 대표님이 얼마나 바쁘신데. 여기로 오시겠어?”“바빠도 이 정도 시간은 낼 수 있지 않아? 게다가 우리 대표님이 전인그룹 지분을 전부 소 대표님한테 넘기셨잖아. 지금 우리 대표님은 그냥 허울 뿐인 이사장일 뿐이라고. 우리 대표님... 은근 순애보시라니까.”“소 대표님은 아직 잘 모르시니까 입 조심해. 우리 대표님 계획에 코 파트리지 말고. 제 말이 맞죠, 대표님?”두 비서의 대답을 듣고 있던 전동하가 피식 웃었다.“그렇긴 하죠. 그런데... 어차피 은정 씨도 곧 알게 될 거예요. 시간이 많이 늦었네요. 두 분 얼른 퇴근하세요. 전...”전동하가 말을 마치기 전, 비서가 깜짝 놀란 눈동자로 손을 뻗었다.“저... 저쪽에 소은정 대표님 아니에요?”그 말에 흠칫하던 전동하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르려던 순간, 표정이 다시 차갑게 가라앉는다.“뭐야. 아니네...”비서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고 기분이 언짢은 듯한 전동하의 모습에 비서들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전동하가 말없이 여자의 곁을 지나려던 그때, 안진이 불쑥 입을 열었다.“소은정 대표가 아니라 실망이 크신가 봐요?”전동하는 그런 그녀를 깔끔하게 무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투명인간 취급에 안진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지만 곧 다시 그 뒤를 따라붙었다.“정말 저랑 손 잡을 생각 없어요? 소 씨 일가 쪽 사람들은 동하 씨 절대 못 받아들여요. 그쪽이 아무리 희생하고 배려해도 결혼 허락 안 할 거라고요. 박수혁 그 인간도 두 사람이 결혼까지 가는 걸 가만히 두고 볼 리도 없고요. 아, 설마 결혼까진 생각 안 하고 있는 거예요?”안진의 마지막 도발에 전동하가 발걸음을 멈추었다.확연히 어두워진 그의 표정이 안진이 계획대로라는 듯 묘한 미소를 지었다.“그러니까 나랑 손 잡아요. 동하 씨는 소은정이랑 마음껏 사랑하시고 난 내 나름대로 목적을 이루는 거죠. 아무리 생각해도 윈윈인데 왜 거절하시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네요?”전
경고하 듯 다시 안진을 매섭게 쳐다보던 전동하가 발걸음을 옮겼다.그 모습에 흠칫하던 안진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전동하... 내 생각보다 훨씬 재밌는 사람이네. 안진... 이 이름을 아는 사람은 몇 없는데. 하루만에 바로 알아냈단 말이야?“전동하 대표님, 제 바람은 이거 하나예요. 두 사람 사이 얼른 발표하세요. 최대한 빨리요.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두 사람이 사귄다는 걸 알 수 있게요.”안진의 목소리에 전동하가 발걸음을 멈추었다.“박수혁한테 반응할 시간 같은 거 줘버리지 말고 그냥 돌직구 날리라고요.”왠지 초조해진 안진이 말했다.이 기회를 절대 포기할 순 없어. 전동하... 잘만 구슬리면 내 최대의 조력자가 될 사람이야.고개를 돌린 전동하가 깊은 눈동자로 안진을 주시했다.“박수혁 대표랑 사귀고 싶어요? 나한테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 알려줄까요?”한편, 오피스텔.거실에 선 소은정과 마이크는 거실에 덩그러니 남겨진 트렁크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전동하가 온 줄 알고 환한 얼굴로 문을 연 소은정을 맞이한 건 비서의 얼굴.짐만 오피스텔에 남긴 비서는 다른 정보는 남기지 않은 채 홀연이 자리를 떠버렸다.짐만 먼저 집에 도착했다고? 이게 무슨 상황이지? 게다가... 비서도 동하 씨랑 같이 비행기에서 내렸을 텐데 설마 또 다시 회사로 간 건가? 아닌데... 요즘 그쪽 회사에 그렇게 급한 프로젝트는 없을 텐데...소은정이 이런 생각을 하던 그때, 주방에서 고개를 쏙 내민 한유라가 다급하게 소리쳤다.“요리 시작해 말아! 불만 몇 번을 켜는지 모르겠다. 냄비 다 타겠어!”사실 직접 요리를 하려던 소은정이었지만 저번에 배달음식을 시켰던 게 마음에 걸렸는지 한유라가 굳이 요리를 하겠다고 고집을 부려대는 바람에 결국 주방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두 부자의 환영식은 자기가 직접 맡아야 한다나 뭐라나...고개를 돌린 마이크가 눈을 찡긋했다.“유라, 이모. 조금만 더요.”“내가 전화 해볼게.”시간을 확인한 소은정이 휴대폰을 꺼낸
순간 거실에 적막이 드리웠다.“설마요. 그냥 꼬질꼬질하게 은정 씨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요. 매력치가 떨어지잖아요.”싱긋 웃던 소은정이 한유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우리 동하 씨 좀 그만 놀려. 애도 있는데.”소은정의 타박에 쳇 소리와 함께 한유라는 주방으로 향했다.한편, 다시 다가온 마이크가 소은정의 손을 잡고 있는 전동하의 손을 억지로 떼어내더니 깁스 중인 팔을 가리켰다.“아빠, 오늘 예쁜 누나가 병원에 왔을 때...”마이크가 조잘조잘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하자 소은정은 조용히 주방으로 향해 한유라를 거들었다.어쨌든 손님인데 유라 혼지 일하면 왠지... 부려먹는 기분이란 말이지.이때 거실 쪽을 힐끗 바라보던 한유라가 소은정의 귓가에 속삭였다.“아까 그말 농담 아니야. 조심해, 너.”“동하 씨 그런 사람 아니야.”전동하를 신뢰하기도 했고 설령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당황스러울 건 없었다.이미 떠난 사랑 앞에서 시간 낭비, 감정 낭비 하는 건 질색이었으니까.“야, 사람 겉모습만 봐선 모른다 너. 전동하 대표 겉모습은 완벽해 보이지만... 또 누가 알아? 생각지 못한 결함이 있을지?”한유라가 말을 이어가려던 그때 전동하가 소매를 걷으며 주방으로 들어갔다..“저도 도울게요.”탄탄한 그의 팔목을 바라보던 소은정이 싱긋 웃었다.“당일 출장이라 피곤할 텐데 얼른 쉬어요.”“아무리 피곤해도 밥 정도 할 힘은 있답니다. 은정 씨, 유라 씨. 나가서 기다리세요. 두 사람 기다리게 한 벌이라고 치죠.”소은정이 더 만류하려던 그때 프라이팬에 담긴 요리를 이미 까맣게 태워버린 한유라가 쿨하게 대답했다.“그래, 은정아. 동하 씨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데 알겠다고 하자. 동하 씨, 저희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지 부르세요!”말을 마친 한유라는 앞치마를 집어던지고 도망치 듯 거실로 나가고 단 10분 안에 만들어낸 그녀의 걸작을 바라보던 소은정이 고개를 저었다.한편, 그 사이에 전동하는 벌써 앞치마를 두른 채 그녀의 곁으로 다가온 상태. 고급스러운
이 무슨 세상 유치한 질문이란 말인가.피식 웃던 소은정은 그저 말없이 티비로 고개를 돌렸다.잠시 후, 전동하가 만들어낸 완벽한 요리는 모두의 칭찬을 받았다.말 많던 한유라도 이미지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밥만 들이켰으니까.허겁지겁 먹는 그녀의 모습에 소은정이 실소를 터트렸다.한편, 전동하는 전학을 가고 싶다며 떼를 쓰는 마이크를 매서운 눈빛으로 제압하고 있었다.하지만 소은정의 생각도 마이크와 다르지 않았다.그런 환경에서 마이크가 제대로 공부할 수 있을까...“전학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게 어때요? 그 선생님이 다른 방식으로 보복을 할 수도 있잖아요.”“아니요. 그럴 일은 없어요. 선생님은 학교를 그만 뒀고 아이도 다른 학교로 전학갔으니까요. 교장선생님한테 직접 전화해서 좋은 선생님으로 부탁드린다고 얘기도 했고요.”담담한 전동하와 달리 소은정과 마이크의 눈동자는 휘둥그레졌다.“학교를 그만뒀다고요? 언제요?”이에 전동하가 싱긋 웃었다.“낮에요. 은정 씨 전화 받고 바로 학교로 전화해 봤죠. 다행히 교장선생님이 만족스러운 답을 주셨고요.”만족스러운 답?그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교장선생님이 먼저 해당 선생과 학생을 처리해 줬으니 나름 만족스럽다고 말할 수밖에.반면, 병원에서 만났던 그 선생님을 떠올린 소은정은 어딘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선생님으로서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아이들을 불공정하게 대하는 것. 이보다 더 나쁜 선생님이 있을까?“그럼 계속 그 학교를 다녀야 해요?”마이크의 질문에 전동하가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지. 깁스 풀면 바로 학교로 돌아가는 거야.”“깁스... 영원히 안 풀었으면 좋겠다.”마이크가 실망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그래도 그전까진 푹 쉴 수 있잖아. 내일 누나네 집에 갈래? 누나 아빠도 마이크 많이 보고 싶어하셔. 아 호랑이도...”소은정의 제안에 마이크의 눈동자에 드디어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갈래요! 오늘 바로 갈래요!”“그래도 괜찮겠어요?”전동하가
마이크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고 은근히 아들 바보인 전동하가 추상파 대가를 스승으로 붙여주어 어린 나이임에도 상당한 그림 실력을 자랑하는 몸이었다.그림 전용 앞치마까지 차려입은 마이크가 고개를 들었다.“이건 마이크고 여긴 예쁜 누나요.”“그럼 이 사람은?”전동하가 그림 속의 다른 한 사람을 가리키자 마이크가 갑자기 우물쭈물하기 시작했다.그 모습에 전동하의 눈이 다시 가늘어졌다.“뭔데? 누굴 그렸는데?”이때 마침 통화를 마치고 돌아온 소은정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기 시작했다.성인 남자 같은데... 설마 동하 씨인가?아니지? 동하 씨면 마이크가 저렇게 우물쭈물할 필요가 없잖아?이때 마이크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연준이 형이요!”순간 거실에 정적이 감돌았다.왠지 으스스해진 분위기에 TV에 집중하던 한유라도 고개를 돌렸다.“연준이 형? 우연준 비서?”마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연준이 형 진짜 대단한 사람 같아요. 매일 예쁜 누나랑 같이 일할 수 있고 할 줄 아는 일도 많고. 난 이제 커서 연준이 형 같은 사람이 될래요! 이제부터 연준이 형이 내 롤모델이에요!”한편, 전동하는 말없이 눈썹만 치켜세웠다.하, 내가 지금 우연준 비서한테 밀린 거야?마이크, 이 아버지는 그림에 넣어줄 생각없는 거니?보다못한 소은정이 다가와 중재를 시작했다.“오늘 우 비서님이랑 하루종일 같이 있더니 마음에 들었나 봐요.”“당연하죠. 연준이 형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데요. 회사 사람들 얼굴도 다 알고 사람들도 다 연준이 형을 좋아하는 것 같았어요!”하지만 칭찬이 이어질 수록 전동하의 기분은 점점 더 언짢아져만 갔다.“안 되겠어요. 앞으로는 마이크 데리고 회사로 가지 말아요. 은정 씨 출근하는 동안에는 회장님 댁에 두는 게 좋겠어요.”아들에게서 다른 남자의 칭찬을 듣느니 아직도 어딘가 어려운 소찬식을 마주하는 게 백 배 더 나았다.몇 번 더 만나면 아주 성도 우 씨로 바꾸겠다고 하겠어?11시쯤.마이크가
소은정은 무슨 옷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어차피 사이즈도 비슷하고 서로 옷을 공유한 적도 많았으니까.부랴부랴 옷을 갈아입은 한유라는 당연하다는 듯 소은정의 신상백까지 든 채 싱긋 미소를 지었다.“무슨 일 생기면 전화해.”소은정은 오피스텔 아래까지 나와 한유라를 배웅했다.“그래.”이때 마침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전동하가 한유라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유라 씨 돌아가는 거예요?”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이자 기분이 좋아진 전동하가 성큼성큼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다행이네요. 드디어 방해꾼이 사라져서...”그리고 소은정이 미처 반응을 하기도 전에 전동하의 큰 손이 그녀의 허리를 감았다.곧이어 뜨거운 키스가 이어졌다.한유라의 눈치를 보느라 며칠 동안 소은정과 제대로 된 스킨십은커녕 단둘이서 있을 새도 별로 없었던 전동하는 말라비틀어지기 일보 직전인 화분과 같은 상태였다.하, 자유다.가뭄끝에 비가 내려 땅이 촉촉해지 듯 몸과 마음이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한편, 전동하의 숨결이 점점 더 뜨거워지자 소은정이 다급하게 그의 가슴을 밀어냈다.“나 출근해야 한단 말이에요.”이상하게 애교스럽게 나온 목소리에 소은정 스스로도 눈이 동그래졌다.욕망으로 뜨겁게 달아오른 눈동자로 소은정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전동하가 싱긋 웃었다.“그래요. 집까지 데려다줄래요.”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인 소은정이 후다닥 엘리베이터에 타고 전동하가 그 뒤를 따랐다.좁은 상자 안에 두 사람만 있으니 일부러 거리를 두고 있음에도 묘한 분위기는 더 강렬해졌다.진정하자, 진정해...콩닥대는 심장을 억누르며 소은정은 엘리베이터가 어서 도착하길 바라고 또 바랐다.1초, 2초, 3초...바로 그때, 등 뒤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소은정의 몸이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는지 전동하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조금만 이대로 있어줘요. 그냥 좀 안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이에 반항 아닌 반항을 멈춘 소은정은 다시 초를 세기 시작했다.세상에 엘리베이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