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정의 품에 안긴 마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아파요... 너무 아파요.”소은정이 마이크의 말랑말랑한 볼을 어루만졌다.“괜찮아. 누나랑 집에 가자. 몸에 좋은 거 많이 먹으면 곧 나을 거야. 응?”고개를 끄덕인 마이크는 코를 들이킨 뒤 다시 고분고분 진료 의자에 앉았다.그 뒤를 따라온 선생님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마이크... 저런 상태로는 학교 생활도 많이 불편할 텐데 집에서 어른들이 보살펴 주는 게 어떨까요?”마침 소은정도 그러려던 참이었던지라 고개를 끄덕였다.“네.”선생님이 뭔가 더 말하려던 그때, 마이크가 고개를 돌렸다.“아빠는요?”“아빠 해외 출장가셨어. 지금 비행기에 계실걸?”말을 마친 소은정은 마이크가 괜히 오해할까 싶어 다급하게 해명을 이어갔다.“아, 걱정하지 마. 내가 아빠한테 잘 얘기해서 우리 마이크 혼날 일 없게 할게. 그리고 아빠도 일 때문에 출장 가시느라 휴대폰 꺼두셔서 연락 못 받은 거야. 마이크한테 관심 없는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고.”하지만 소은정의 해명에도 마이크의 표정은 여전히 어둡다.“내 실수로 넘어진 거 아니에요. 누가 뒤에서 날 밀었다고요. 선생님도 보셨잖아요.”마이크의 한 마디에 진료실 전체가 적막에 잠겼다.예민한 얘기가 오가자 빠르게 깁스를 마친 의사가 부랴부랴 자리를 떴다.“마이크 말이 사실인가요?”소은정이 차가운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아, 아닙니다. 축구 같은 운동은 부딪히고 다치기 마련이잖아요.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마이크가 어떻게 넘어졌는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발견했을 때 마이크는 이미 넘어졌었고 바로 병원으로 데리고 온 거고요...”당황한 표정이긴 했지만 선생님의 변명에는 딱히 빈틈이 없었다.아무리 선생님이라도 수십 명의 아이들을 24시간 들여다 볼 수는 없는 법.소은정은 그제야 풀어진 표정으로 마이크에게 선생님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고 해명하려 했지만 마이크가 맑은 눈동자로 선생님을 올려다 보았다.“보셨잖아요. 주위에 있던 친구들도 봤거든요. 지훈이
그제야 돌아선 소은정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선생님, 전 교장선생님께 단순히 이 사실을 고자질하려는 게 아니에요. 전 교장선생님께 조사를 부탁하려는 겁니다. 지훈 학생이 마이크를 일부러 민 게 맞는지. 마이크를 협박한 적이 있는지. 이게 사실이라면 엄연히 학폭 아니겠어요? 만약 선생님께서 결백하시다면 조사에 두려워하실 필요가 없을 테고 만약 고의적으로 이런 짓을 저지르신 거라면 당신은 선생님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교육자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니까요.”소은정의 조리있는 설명에 선생님의 안색이 더 창백해졌다.“제가 왜 당신의 직장 하나 지켜내기 위해 우리 마이크를 억울하게 만들어야죠?”선생님의 눈동자에 당황스러움이 가득 들어찼다.“소 대표님...”이런... 그냥 대충 넘어갈 수도 있었던 일이었는데 마이크가 다 말해 버리는 바람에...이때 소은정의 손을 꼭 잡은 마이크가 말했다.“지훈이 형이 직접 와서 사과하고 앞으로 나한테 이런 짓 안 하겠다고 하면 용서할 수 있어요.”“왜 용서를 하는데? 이 정도는 누나가 알아서 처리할 수 있어.”소은정이 눈썹을 치켜세웠다.“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에요. 저 때문에 누군가 직장을 잃는 건 싫어요. 하지만 선생님이 나쁜 학생을 감싸는 건 더 싫어요.”말을 마친 마이크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들으셨죠? 제가 교장선생님을 찾아가든, 그 아이 그리고 그 부모가 함께 절 찾아오든 둘 중 하나입니다. 선택하세요.”난처한 표정을 짓던 선생님이 결국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른 쪽으로 다가가 통화를 시작했다.대충 옆에 앉은 소은정이 마이크의 팔을 살폈다.“아직도 아파?”마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아프긴 한데 아빠가 말했어요. 사나이가 아프다고 우는 건 되게 창피한 일이라고. 그래서 절대 안 울 거예요!”주먹까지 꽉 쥐며 화이팅 제스처를 해 보이는 모습에 소은정이 웃음을 터트렸지만 곧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누나가 자주 못 보러가서 미안해. 내가 좀 더 일찍 널 만나러 갔다면 네가 괴롭힘을 받고
약 20여 분을 기다렸을까? 온몸에 휘황찬란한 보석을 두른 통통한 몸매의 중년 여성이 튼실하게 생긴 남자아이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야, 넌 지훈이 이모에 한 학교 선생님이라는 애가 이 정도 일도 해결 못 해? 내가 애들 싸움 때문에 직접 여기까지 와야겠어? 다쳤으면 치료비 배상하면 될 거 아니야. 뭐 돈 한 푼이라도 더 떼어먹으려는 심보 내가 모를 줄 알아?”강지훈 학생의 어머니로 되어 보이는 중년 여자는 다짜고짜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선생님을 혼내기 시작했다.그녀의 목젖이 움직일 때마다 목에 걸린 금목걸이가 언뜻언뜻 빛을 반사했고 통통한 손목에는 팔찌만 4-5개가 걸려있었다.부자인 것 같긴 한데... 졸부인 것 같네. 파티 같은 데서 본 적도 없고.한편, 선생님은 끊임없이 언니에게 눈치를 주었다.언니, 제발 좀 닥쳐. 상황 파악 좀 하라고.하지만 선생을 흘겨보던 여자는 아이의 손목을 끌어당겨 소은정의 앞으로 다가왔다.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여자가 흠칫하더니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아니. 얼굴도 예쁜 아가씨가 꼭 이렇게 쪼잔하게 굴어야겠어요? 아님 돈이 부족한가?”여자의 말에 선생님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죄송합니다. 저희 언니가 평소 티비를 잘 안 봐서요...”하지만 선생님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중년 여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티비? 오, 그러고 보니 좀 낯이 익은 것 같기도? 뭐 배우인가? 하, 당신들 같은 삼류 연예인 내가 많이 봤어. 돈 때문에 그런 거 맞지? 이 아이는... 딱 봐도 어렸을 때 사고쳐서 몰래 낳은 아이네. 이봐요. 그쪽도 나름 공인이니 이 사실이 밝혀지는 건 싫겠죠? 그러니까 대충 먹고 떨어져요. 삼류 연예인 생활도 못하게 되기 전에.”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모습에 소은정은 그저 담담한 미소를 지을 뿐이고 선생님의 얼굴은 점점 핏기를 잃어갔다.“언니,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저분이 누군지 정말 몰라?”“누구면 뭐! 넌 왜 이렇게 잔뜩 쫄아있어? 너 선생이야! 저 여자가 이번 일로 꼬투리 잡으면 저
여자가 코웃음을 쳤다.“그래요.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얘기해 봅시다.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라고 하죠? 치료비가 얼마가 나오든 제가 부담하겠습니다.”“지훈이한테 사과하라고 해.”하지만 선생님이 한 마디 덧붙이자 중년 여자는 바로 발끈했다.“뭐? 사과? 애가 뭘 안다고 사과를 시켜? 지훈이가 뭘 잘못했는데!”“지훈이 잘못 맞아. 시험칠 때 답 보여달라고 했다잖아. 그런데 마이크가 거절했고 그걸로 앙심을 품고 넘어트렸어. 이게 아무것도 모르는 애가 할 짓이야?”선생님은 아예 사건의 모든 진상을 밝혔지만 여자는 별 개의치 않는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우리 아들이 저 꼬맹이한테 답을 보여달라고 했다고? 딱 봐도 또래보다 어려 보이는데 우리 지훈이랑 어떻게 한 학년이지? 뭐 백이라도 쓴 거야?”자리에서 일어선 중년 여자가 팔짱을 낀 채 또각또각 걸어갔다.“사과는 꿈 깨요. 애초에 우리 아들이 쟤 답을 왜 베껴요? 그래도... 어린 애가 나이 많은 애들 사이에서 치이는 게 안쓰러우니까 치료비 두 배로 배상할게요.”여자의 말에 분위기는 다시 차갑게 가라앉았다.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하고 돈 자랑이나 해대는 언니의 모습을 바라보는 선생님은 속이 타들어갈 따름이었다.치료비의 2배? 지금 흥정이라도 하려는 거야. 게다가 국제학교 다니는 애들은 다들 나름 괜찮은 집안 자제들일 텐데 왜 이렇게 돈 자랑을 하는 거지?위험한 기운을 내뿜으며 눈을 가늘게 뜨던 소은정이 뭔가 말하려던 그때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마이크 환자 약 받아가세요.”이에 흠칫하던 소은정이 마이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마이크, 스스로 약 받아올 수 있지?”“네...”왜 어린이인데다 환자인 그더러 직접 약을 받아오라는 건지 이해할 순 없었지만 예쁜 누나의 말이라면 뭐든 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쪼그만 뒷모습이 사라질 때에야 고개를 돌린 소은정이 차가운 눈동자로 여자를 바라보았다.“저도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진 않았습니다. 선생님께서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하시기
더 이상 이 병원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던 소은정은 마이크의 약봉지를 받아들곤 여전히 충격에 잠긴 선생님과 아이들의 시선을 받으며 돌아섰다.마이크가 여전히 바닥에 드러누워 비명을 지르는 여자를 발견하곤 흠칫했다.“저 아줌마 왜 넘어진 거예요?”순간 고개를 든 여자가 잡아먹을 듯한 표정의 소은정과 눈이 마주치고...분명 삼류 연예인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기가 왜 이렇게 센 거야.왠지 모를 불안감에 그녀는 결국 눈을 피해버렸다.한편 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마이크에게 설명을 해주었다.“이 정도 다친 건 별로 안 아픈 것 같다면서 직접 테스트를 해보더라고?”“와 진짜 멍청한 아줌마네요.”...잠시 후, 병원을 나온 두 사람이 차에 탄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동하 씨.”마이크를 힐끗 바라본 그녀가 미소와 함께 전화를 받았다.“전 대표님, 도착하셨어요?”어색한 호칭에 전동하가 웃음을 터트렸다.“네. 전화했었네요? 무슨 일 있었어요?”하지만 전동하는 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한 마디 덧붙였다.“아, 물론 별일 없어도 전화는 할 순 있죠. 다 알아요. 내가 보고 싶어서 죽을 거 같은 거.”소은정이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흘겼다.이 남자가 정말... 애도 옆에 있는데.“큼큼. 그게... 마이크가 팔을 조금 다쳤어요. 금 갔다는데... 동하 씨한테 얘기는 해야 할 것 같아서요.”“뭐라고요? 금이요? 지금 병원이에요...? 안 되겠어요... 지금 제가 바로 갈게요.”전동하의 목소리가 순간 초조하게 변하자 소은정도 다급하게 해명을 이어갔다.“아, 아니에요. 많이 다친 것도 아니고 깁스도 다 마쳤어요. 지금은 집에 가는 길이고요.”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전동하가 물었다.“지금 은정 씨 곁에 있어요?”소은정이 마이크에게 눈치를 주자 마이크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아빠, 아빠는 일이나 열심히 해요! 난 하나도 안 아프니까!”평소 마이크에게 엄하기만 하던 전동하의 목소리가 오늘만큼은 유난히 부드러웠다.“우리 마이크 씩씩하네.”“
마이크, 네가 다 컸을 땐... 아빠랑 결혼했을 수도 있고 아예 남이 되었을 수도 있어. 일단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오후, 소은정은 마이크와 함께 회사로 향했다. 아프다고 칭얼댈 법도 한데 마이크는 굉장히 고분고분하게 가만히 소파에 앉아있었고 태블릿으로 뉴스나 주식을 보기도 했다.그 모습에 소은정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저 나이 때 애들은 엉덩이도 제대로 못 붙이고 있을 텐데... 태블릿으로도 게임이나 하는 게 다일 테고... 아니지. 동하 씨가 워낙 마이크 교육에 신경 쓰기도 하고 애가 워낙 똑똑하니까 뭐 이상할 것도 없지.업무를 보는 동안 우연준은 소은정에게 결제 파일을 올릴 때마다 마이크에게 간식을 가져다 주었다.그 모습이 마음에 든 건지 마이크가 먼저 말을 걸었다.“아저씨 진짜 대단하네요. 아저씨는 맨날 예쁜 누나랑 같이 있을 수 있는 거죠? 저도 열심히 공부해서 평생 누나 옆에 붙어있을래요!”10살도 안 된 어린 아이의 당찬 포부에 우연준은 어이가 없으면서도 왠지 웃음이 새어나왔다.저녁쯤, 일찍 퇴근한 소은정은 마이크와 함께 오피스텔로 향했다.그때, 운전대를 잡은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저 차... 아까부터 우릴 따라오고 있었던 것 같은데...잠깐 고민하던 소은정은 갑자기 핸들을 돌려 겨우 미행을 떼어버렸다.잠시 후, 오피스텔.아직 초저녁이라 해도 지지 않았음에도 마이크는 많이 피곤했는지 소파에 누운 채 새근새근 잠이 들었고 베란다에서 몰래 통화를 마친 소은정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한편, 힐튼 호텔.커다란 창문을 통해 번화한 거리의 구석구석이 한눈에 들어온다.불도 켜지 않고 홀로 서 있는 안진은 이미 어둠과 홀연일체가 되버린 것 같기도 했다.잠시 후, 검은색 정장차림의 남자가 공손한 태도로 다가왔다.“실패했습니다.”순간 안진의 표정이 차가워졌다.“이런 쓰레기 같은. 그깟 여자 하나 못 잡아?”그녀의 차가운 목소리에 남자는 고개를 푹 숙였다.“소은정 대표를 몰래 지키는 세력이 한둘이 아닙니다. 게다가
전동하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다른 비서가 핀잔을 주었다.“소은정 대표님이 얼마나 바쁘신데. 여기로 오시겠어?”“바빠도 이 정도 시간은 낼 수 있지 않아? 게다가 우리 대표님이 전인그룹 지분을 전부 소 대표님한테 넘기셨잖아. 지금 우리 대표님은 그냥 허울 뿐인 이사장일 뿐이라고. 우리 대표님... 은근 순애보시라니까.”“소 대표님은 아직 잘 모르시니까 입 조심해. 우리 대표님 계획에 코 파트리지 말고. 제 말이 맞죠, 대표님?”두 비서의 대답을 듣고 있던 전동하가 피식 웃었다.“그렇긴 하죠. 그런데... 어차피 은정 씨도 곧 알게 될 거예요. 시간이 많이 늦었네요. 두 분 얼른 퇴근하세요. 전...”전동하가 말을 마치기 전, 비서가 깜짝 놀란 눈동자로 손을 뻗었다.“저... 저쪽에 소은정 대표님 아니에요?”그 말에 흠칫하던 전동하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르려던 순간, 표정이 다시 차갑게 가라앉는다.“뭐야. 아니네...”비서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고 기분이 언짢은 듯한 전동하의 모습에 비서들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전동하가 말없이 여자의 곁을 지나려던 그때, 안진이 불쑥 입을 열었다.“소은정 대표가 아니라 실망이 크신가 봐요?”전동하는 그런 그녀를 깔끔하게 무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투명인간 취급에 안진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지만 곧 다시 그 뒤를 따라붙었다.“정말 저랑 손 잡을 생각 없어요? 소 씨 일가 쪽 사람들은 동하 씨 절대 못 받아들여요. 그쪽이 아무리 희생하고 배려해도 결혼 허락 안 할 거라고요. 박수혁 그 인간도 두 사람이 결혼까지 가는 걸 가만히 두고 볼 리도 없고요. 아, 설마 결혼까진 생각 안 하고 있는 거예요?”안진의 마지막 도발에 전동하가 발걸음을 멈추었다.확연히 어두워진 그의 표정이 안진이 계획대로라는 듯 묘한 미소를 지었다.“그러니까 나랑 손 잡아요. 동하 씨는 소은정이랑 마음껏 사랑하시고 난 내 나름대로 목적을 이루는 거죠. 아무리 생각해도 윈윈인데 왜 거절하시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네요?”전
경고하 듯 다시 안진을 매섭게 쳐다보던 전동하가 발걸음을 옮겼다.그 모습에 흠칫하던 안진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전동하... 내 생각보다 훨씬 재밌는 사람이네. 안진... 이 이름을 아는 사람은 몇 없는데. 하루만에 바로 알아냈단 말이야?“전동하 대표님, 제 바람은 이거 하나예요. 두 사람 사이 얼른 발표하세요. 최대한 빨리요.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두 사람이 사귄다는 걸 알 수 있게요.”안진의 목소리에 전동하가 발걸음을 멈추었다.“박수혁한테 반응할 시간 같은 거 줘버리지 말고 그냥 돌직구 날리라고요.”왠지 초조해진 안진이 말했다.이 기회를 절대 포기할 순 없어. 전동하... 잘만 구슬리면 내 최대의 조력자가 될 사람이야.고개를 돌린 전동하가 깊은 눈동자로 안진을 주시했다.“박수혁 대표랑 사귀고 싶어요? 나한테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 알려줄까요?”한편, 오피스텔.거실에 선 소은정과 마이크는 거실에 덩그러니 남겨진 트렁크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전동하가 온 줄 알고 환한 얼굴로 문을 연 소은정을 맞이한 건 비서의 얼굴.짐만 오피스텔에 남긴 비서는 다른 정보는 남기지 않은 채 홀연이 자리를 떠버렸다.짐만 먼저 집에 도착했다고? 이게 무슨 상황이지? 게다가... 비서도 동하 씨랑 같이 비행기에서 내렸을 텐데 설마 또 다시 회사로 간 건가? 아닌데... 요즘 그쪽 회사에 그렇게 급한 프로젝트는 없을 텐데...소은정이 이런 생각을 하던 그때, 주방에서 고개를 쏙 내민 한유라가 다급하게 소리쳤다.“요리 시작해 말아! 불만 몇 번을 켜는지 모르겠다. 냄비 다 타겠어!”사실 직접 요리를 하려던 소은정이었지만 저번에 배달음식을 시켰던 게 마음에 걸렸는지 한유라가 굳이 요리를 하겠다고 고집을 부려대는 바람에 결국 주방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두 부자의 환영식은 자기가 직접 맡아야 한다나 뭐라나...고개를 돌린 마이크가 눈을 찡긋했다.“유라, 이모. 조금만 더요.”“내가 전화 해볼게.”시간을 확인한 소은정이 휴대폰을 꺼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