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정의 말에 민하준의 굳은 표정이 더 무시무시하게 변했다.분노를 억누르는 건지 민하준의 주먹에 힘이 더 들어갔다.“유라가 말해 준 겁니까?”“아니요. 우리끼린 그런 얘기 안 해요. 그렇다고 내가 모르라는 법 있나요? 내가 그냥 허수아비 대표처럼 보여요?”한유라에게서 들은 게 아니라는 소은정의 말에 민하준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난... 난 그냥 유라한테 제대로 해명하고 싶은 것뿐입니다.”“이제 와서요? 그날 유라 뒤를 따라서 나간 건 나랑 하늘이었어요. 그쪽은 그 흔한 전화 한 통 없었죠. 그땐 유라한테 관심도 없어 보이더니. 이제 와서 마음이 급해졌나 보죠?”소은정의 여유로운 미소에 민하준의 얼굴에 난처한 표정이 스쳤다....그 뒤로는 숨 막힐 듯한 적막이 이어졌다.나랑 이런 얘기하는 게 불편하겠지. 나도 싫어, 이 자식아.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던 소은정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돌아가요. 유라가 당신을 만나고 싶다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그전엔 나한테 무슨 짓을 해도 아무 소용없을 테니까 그건 알아두고요.”고개를 든 민하준의 새카만 눈동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겁기만 했다.유라가 마음을 정하고 답을 줄 때까지 기다려... 두 사람 사이에 끼고 싶은 생각 없으니까.민하준, 그렇게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봐도 난 하나도 안 무서워. 위태위태한 민연그룹 상황에 네가 나한테 무슨 짓을 할 수 있겠어. 감히...네가 정말 유라를 위해 모든 걸 버릴 수 있을 만큼 미친 듯이 유라를 사랑하면 몰라. 그런데 넌 아니잖아.소은정이 이런 생각을 하던 그때, 민하준이 말없이 일어서 사무실을 나섰다.그것 봐. 넌 유라 그렇게 안 사랑한다니까.민하준이 사라진 사무실 문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소은정은 다시 일에 집중했다.점심쯤, 우연준이 다가왔다.“오후에는 중요한 스케줄도 없으니 퇴근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식사는 레스토랑에서 하시겠습니까? 지금 예약할까요?”“아, 아니요. 구내식당에서 먹으면 될 것 같네요.”말을 마
소은정의 품에 안긴 마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아파요... 너무 아파요.”소은정이 마이크의 말랑말랑한 볼을 어루만졌다.“괜찮아. 누나랑 집에 가자. 몸에 좋은 거 많이 먹으면 곧 나을 거야. 응?”고개를 끄덕인 마이크는 코를 들이킨 뒤 다시 고분고분 진료 의자에 앉았다.그 뒤를 따라온 선생님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마이크... 저런 상태로는 학교 생활도 많이 불편할 텐데 집에서 어른들이 보살펴 주는 게 어떨까요?”마침 소은정도 그러려던 참이었던지라 고개를 끄덕였다.“네.”선생님이 뭔가 더 말하려던 그때, 마이크가 고개를 돌렸다.“아빠는요?”“아빠 해외 출장가셨어. 지금 비행기에 계실걸?”말을 마친 소은정은 마이크가 괜히 오해할까 싶어 다급하게 해명을 이어갔다.“아, 걱정하지 마. 내가 아빠한테 잘 얘기해서 우리 마이크 혼날 일 없게 할게. 그리고 아빠도 일 때문에 출장 가시느라 휴대폰 꺼두셔서 연락 못 받은 거야. 마이크한테 관심 없는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고.”하지만 소은정의 해명에도 마이크의 표정은 여전히 어둡다.“내 실수로 넘어진 거 아니에요. 누가 뒤에서 날 밀었다고요. 선생님도 보셨잖아요.”마이크의 한 마디에 진료실 전체가 적막에 잠겼다.예민한 얘기가 오가자 빠르게 깁스를 마친 의사가 부랴부랴 자리를 떴다.“마이크 말이 사실인가요?”소은정이 차가운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아, 아닙니다. 축구 같은 운동은 부딪히고 다치기 마련이잖아요.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마이크가 어떻게 넘어졌는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발견했을 때 마이크는 이미 넘어졌었고 바로 병원으로 데리고 온 거고요...”당황한 표정이긴 했지만 선생님의 변명에는 딱히 빈틈이 없었다.아무리 선생님이라도 수십 명의 아이들을 24시간 들여다 볼 수는 없는 법.소은정은 그제야 풀어진 표정으로 마이크에게 선생님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고 해명하려 했지만 마이크가 맑은 눈동자로 선생님을 올려다 보았다.“보셨잖아요. 주위에 있던 친구들도 봤거든요. 지훈이
그제야 돌아선 소은정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선생님, 전 교장선생님께 단순히 이 사실을 고자질하려는 게 아니에요. 전 교장선생님께 조사를 부탁하려는 겁니다. 지훈 학생이 마이크를 일부러 민 게 맞는지. 마이크를 협박한 적이 있는지. 이게 사실이라면 엄연히 학폭 아니겠어요? 만약 선생님께서 결백하시다면 조사에 두려워하실 필요가 없을 테고 만약 고의적으로 이런 짓을 저지르신 거라면 당신은 선생님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교육자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니까요.”소은정의 조리있는 설명에 선생님의 안색이 더 창백해졌다.“제가 왜 당신의 직장 하나 지켜내기 위해 우리 마이크를 억울하게 만들어야죠?”선생님의 눈동자에 당황스러움이 가득 들어찼다.“소 대표님...”이런... 그냥 대충 넘어갈 수도 있었던 일이었는데 마이크가 다 말해 버리는 바람에...이때 소은정의 손을 꼭 잡은 마이크가 말했다.“지훈이 형이 직접 와서 사과하고 앞으로 나한테 이런 짓 안 하겠다고 하면 용서할 수 있어요.”“왜 용서를 하는데? 이 정도는 누나가 알아서 처리할 수 있어.”소은정이 눈썹을 치켜세웠다.“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에요. 저 때문에 누군가 직장을 잃는 건 싫어요. 하지만 선생님이 나쁜 학생을 감싸는 건 더 싫어요.”말을 마친 마이크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들으셨죠? 제가 교장선생님을 찾아가든, 그 아이 그리고 그 부모가 함께 절 찾아오든 둘 중 하나입니다. 선택하세요.”난처한 표정을 짓던 선생님이 결국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른 쪽으로 다가가 통화를 시작했다.대충 옆에 앉은 소은정이 마이크의 팔을 살폈다.“아직도 아파?”마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아프긴 한데 아빠가 말했어요. 사나이가 아프다고 우는 건 되게 창피한 일이라고. 그래서 절대 안 울 거예요!”주먹까지 꽉 쥐며 화이팅 제스처를 해 보이는 모습에 소은정이 웃음을 터트렸지만 곧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누나가 자주 못 보러가서 미안해. 내가 좀 더 일찍 널 만나러 갔다면 네가 괴롭힘을 받고
약 20여 분을 기다렸을까? 온몸에 휘황찬란한 보석을 두른 통통한 몸매의 중년 여성이 튼실하게 생긴 남자아이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야, 넌 지훈이 이모에 한 학교 선생님이라는 애가 이 정도 일도 해결 못 해? 내가 애들 싸움 때문에 직접 여기까지 와야겠어? 다쳤으면 치료비 배상하면 될 거 아니야. 뭐 돈 한 푼이라도 더 떼어먹으려는 심보 내가 모를 줄 알아?”강지훈 학생의 어머니로 되어 보이는 중년 여자는 다짜고짜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선생님을 혼내기 시작했다.그녀의 목젖이 움직일 때마다 목에 걸린 금목걸이가 언뜻언뜻 빛을 반사했고 통통한 손목에는 팔찌만 4-5개가 걸려있었다.부자인 것 같긴 한데... 졸부인 것 같네. 파티 같은 데서 본 적도 없고.한편, 선생님은 끊임없이 언니에게 눈치를 주었다.언니, 제발 좀 닥쳐. 상황 파악 좀 하라고.하지만 선생을 흘겨보던 여자는 아이의 손목을 끌어당겨 소은정의 앞으로 다가왔다.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여자가 흠칫하더니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아니. 얼굴도 예쁜 아가씨가 꼭 이렇게 쪼잔하게 굴어야겠어요? 아님 돈이 부족한가?”여자의 말에 선생님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죄송합니다. 저희 언니가 평소 티비를 잘 안 봐서요...”하지만 선생님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중년 여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티비? 오, 그러고 보니 좀 낯이 익은 것 같기도? 뭐 배우인가? 하, 당신들 같은 삼류 연예인 내가 많이 봤어. 돈 때문에 그런 거 맞지? 이 아이는... 딱 봐도 어렸을 때 사고쳐서 몰래 낳은 아이네. 이봐요. 그쪽도 나름 공인이니 이 사실이 밝혀지는 건 싫겠죠? 그러니까 대충 먹고 떨어져요. 삼류 연예인 생활도 못하게 되기 전에.”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모습에 소은정은 그저 담담한 미소를 지을 뿐이고 선생님의 얼굴은 점점 핏기를 잃어갔다.“언니,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저분이 누군지 정말 몰라?”“누구면 뭐! 넌 왜 이렇게 잔뜩 쫄아있어? 너 선생이야! 저 여자가 이번 일로 꼬투리 잡으면 저
여자가 코웃음을 쳤다.“그래요.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얘기해 봅시다.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라고 하죠? 치료비가 얼마가 나오든 제가 부담하겠습니다.”“지훈이한테 사과하라고 해.”하지만 선생님이 한 마디 덧붙이자 중년 여자는 바로 발끈했다.“뭐? 사과? 애가 뭘 안다고 사과를 시켜? 지훈이가 뭘 잘못했는데!”“지훈이 잘못 맞아. 시험칠 때 답 보여달라고 했다잖아. 그런데 마이크가 거절했고 그걸로 앙심을 품고 넘어트렸어. 이게 아무것도 모르는 애가 할 짓이야?”선생님은 아예 사건의 모든 진상을 밝혔지만 여자는 별 개의치 않는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우리 아들이 저 꼬맹이한테 답을 보여달라고 했다고? 딱 봐도 또래보다 어려 보이는데 우리 지훈이랑 어떻게 한 학년이지? 뭐 백이라도 쓴 거야?”자리에서 일어선 중년 여자가 팔짱을 낀 채 또각또각 걸어갔다.“사과는 꿈 깨요. 애초에 우리 아들이 쟤 답을 왜 베껴요? 그래도... 어린 애가 나이 많은 애들 사이에서 치이는 게 안쓰러우니까 치료비 두 배로 배상할게요.”여자의 말에 분위기는 다시 차갑게 가라앉았다.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하고 돈 자랑이나 해대는 언니의 모습을 바라보는 선생님은 속이 타들어갈 따름이었다.치료비의 2배? 지금 흥정이라도 하려는 거야. 게다가 국제학교 다니는 애들은 다들 나름 괜찮은 집안 자제들일 텐데 왜 이렇게 돈 자랑을 하는 거지?위험한 기운을 내뿜으며 눈을 가늘게 뜨던 소은정이 뭔가 말하려던 그때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마이크 환자 약 받아가세요.”이에 흠칫하던 소은정이 마이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마이크, 스스로 약 받아올 수 있지?”“네...”왜 어린이인데다 환자인 그더러 직접 약을 받아오라는 건지 이해할 순 없었지만 예쁜 누나의 말이라면 뭐든 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쪼그만 뒷모습이 사라질 때에야 고개를 돌린 소은정이 차가운 눈동자로 여자를 바라보았다.“저도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진 않았습니다. 선생님께서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하시기
더 이상 이 병원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던 소은정은 마이크의 약봉지를 받아들곤 여전히 충격에 잠긴 선생님과 아이들의 시선을 받으며 돌아섰다.마이크가 여전히 바닥에 드러누워 비명을 지르는 여자를 발견하곤 흠칫했다.“저 아줌마 왜 넘어진 거예요?”순간 고개를 든 여자가 잡아먹을 듯한 표정의 소은정과 눈이 마주치고...분명 삼류 연예인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기가 왜 이렇게 센 거야.왠지 모를 불안감에 그녀는 결국 눈을 피해버렸다.한편 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마이크에게 설명을 해주었다.“이 정도 다친 건 별로 안 아픈 것 같다면서 직접 테스트를 해보더라고?”“와 진짜 멍청한 아줌마네요.”...잠시 후, 병원을 나온 두 사람이 차에 탄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동하 씨.”마이크를 힐끗 바라본 그녀가 미소와 함께 전화를 받았다.“전 대표님, 도착하셨어요?”어색한 호칭에 전동하가 웃음을 터트렸다.“네. 전화했었네요? 무슨 일 있었어요?”하지만 전동하는 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한 마디 덧붙였다.“아, 물론 별일 없어도 전화는 할 순 있죠. 다 알아요. 내가 보고 싶어서 죽을 거 같은 거.”소은정이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흘겼다.이 남자가 정말... 애도 옆에 있는데.“큼큼. 그게... 마이크가 팔을 조금 다쳤어요. 금 갔다는데... 동하 씨한테 얘기는 해야 할 것 같아서요.”“뭐라고요? 금이요? 지금 병원이에요...? 안 되겠어요... 지금 제가 바로 갈게요.”전동하의 목소리가 순간 초조하게 변하자 소은정도 다급하게 해명을 이어갔다.“아, 아니에요. 많이 다친 것도 아니고 깁스도 다 마쳤어요. 지금은 집에 가는 길이고요.”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전동하가 물었다.“지금 은정 씨 곁에 있어요?”소은정이 마이크에게 눈치를 주자 마이크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아빠, 아빠는 일이나 열심히 해요! 난 하나도 안 아프니까!”평소 마이크에게 엄하기만 하던 전동하의 목소리가 오늘만큼은 유난히 부드러웠다.“우리 마이크 씩씩하네.”“
마이크, 네가 다 컸을 땐... 아빠랑 결혼했을 수도 있고 아예 남이 되었을 수도 있어. 일단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오후, 소은정은 마이크와 함께 회사로 향했다. 아프다고 칭얼댈 법도 한데 마이크는 굉장히 고분고분하게 가만히 소파에 앉아있었고 태블릿으로 뉴스나 주식을 보기도 했다.그 모습에 소은정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저 나이 때 애들은 엉덩이도 제대로 못 붙이고 있을 텐데... 태블릿으로도 게임이나 하는 게 다일 테고... 아니지. 동하 씨가 워낙 마이크 교육에 신경 쓰기도 하고 애가 워낙 똑똑하니까 뭐 이상할 것도 없지.업무를 보는 동안 우연준은 소은정에게 결제 파일을 올릴 때마다 마이크에게 간식을 가져다 주었다.그 모습이 마음에 든 건지 마이크가 먼저 말을 걸었다.“아저씨 진짜 대단하네요. 아저씨는 맨날 예쁜 누나랑 같이 있을 수 있는 거죠? 저도 열심히 공부해서 평생 누나 옆에 붙어있을래요!”10살도 안 된 어린 아이의 당찬 포부에 우연준은 어이가 없으면서도 왠지 웃음이 새어나왔다.저녁쯤, 일찍 퇴근한 소은정은 마이크와 함께 오피스텔로 향했다.그때, 운전대를 잡은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저 차... 아까부터 우릴 따라오고 있었던 것 같은데...잠깐 고민하던 소은정은 갑자기 핸들을 돌려 겨우 미행을 떼어버렸다.잠시 후, 오피스텔.아직 초저녁이라 해도 지지 않았음에도 마이크는 많이 피곤했는지 소파에 누운 채 새근새근 잠이 들었고 베란다에서 몰래 통화를 마친 소은정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한편, 힐튼 호텔.커다란 창문을 통해 번화한 거리의 구석구석이 한눈에 들어온다.불도 켜지 않고 홀로 서 있는 안진은 이미 어둠과 홀연일체가 되버린 것 같기도 했다.잠시 후, 검은색 정장차림의 남자가 공손한 태도로 다가왔다.“실패했습니다.”순간 안진의 표정이 차가워졌다.“이런 쓰레기 같은. 그깟 여자 하나 못 잡아?”그녀의 차가운 목소리에 남자는 고개를 푹 숙였다.“소은정 대표를 몰래 지키는 세력이 한둘이 아닙니다. 게다가
전동하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다른 비서가 핀잔을 주었다.“소은정 대표님이 얼마나 바쁘신데. 여기로 오시겠어?”“바빠도 이 정도 시간은 낼 수 있지 않아? 게다가 우리 대표님이 전인그룹 지분을 전부 소 대표님한테 넘기셨잖아. 지금 우리 대표님은 그냥 허울 뿐인 이사장일 뿐이라고. 우리 대표님... 은근 순애보시라니까.”“소 대표님은 아직 잘 모르시니까 입 조심해. 우리 대표님 계획에 코 파트리지 말고. 제 말이 맞죠, 대표님?”두 비서의 대답을 듣고 있던 전동하가 피식 웃었다.“그렇긴 하죠. 그런데... 어차피 은정 씨도 곧 알게 될 거예요. 시간이 많이 늦었네요. 두 분 얼른 퇴근하세요. 전...”전동하가 말을 마치기 전, 비서가 깜짝 놀란 눈동자로 손을 뻗었다.“저... 저쪽에 소은정 대표님 아니에요?”그 말에 흠칫하던 전동하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르려던 순간, 표정이 다시 차갑게 가라앉는다.“뭐야. 아니네...”비서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고 기분이 언짢은 듯한 전동하의 모습에 비서들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전동하가 말없이 여자의 곁을 지나려던 그때, 안진이 불쑥 입을 열었다.“소은정 대표가 아니라 실망이 크신가 봐요?”전동하는 그런 그녀를 깔끔하게 무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투명인간 취급에 안진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지만 곧 다시 그 뒤를 따라붙었다.“정말 저랑 손 잡을 생각 없어요? 소 씨 일가 쪽 사람들은 동하 씨 절대 못 받아들여요. 그쪽이 아무리 희생하고 배려해도 결혼 허락 안 할 거라고요. 박수혁 그 인간도 두 사람이 결혼까지 가는 걸 가만히 두고 볼 리도 없고요. 아, 설마 결혼까진 생각 안 하고 있는 거예요?”안진의 마지막 도발에 전동하가 발걸음을 멈추었다.확연히 어두워진 그의 표정이 안진이 계획대로라는 듯 묘한 미소를 지었다.“그러니까 나랑 손 잡아요. 동하 씨는 소은정이랑 마음껏 사랑하시고 난 내 나름대로 목적을 이루는 거죠. 아무리 생각해도 윈윈인데 왜 거절하시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네요?”전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