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쌀쌀한 날씨에 임춘식은 몸을 살짝 떨었다.뭐야? 왜 아직도 안 내리는 거지?궁금함에 임춘식이 차 안을 살짝 들여다 보았다.비굴한 미소를 짓고 있는 전동하와 진지한 표정의 소은정.마치 대표님에게 아부를 하는 신입 직원 같기도 했다.오, 재밌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네?방금 전까지 조금 으슬으슬했던 몸이 사르르 녹아내렸다.내가 아는 소은정 대표라면 지금쯤 주제를 알라며 따귀 정도는 날려줘야 할 텐데...제발 때려라... 그럼 이렇게 오래 기다린 보람이 있을 것 같으니까...하지만 다음 순간.잔뜩 화 난 표정으로 전동하의 얼굴을 꽉 쥔 소은정은 그의 볼에 거친 뽀뽀를 해주었다.그 순간, 뽀뽀를 받은 전동하도 이 모습을 몰래 훔쳐보고 있는 임춘식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허? 이게 뽀뽀야?이건 그냥 물어뜯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전동하와 달리 임춘식은 눈이 썩는 듯한 기분이었다.하, 소은정한테 저런 면도 있었나? 너무... 적극적이잖아.한편, 전동하가 잔뜩 억을한 표정으로 볼을 닦아내려던 그때, 소은정이 그의 팔을 잡았다.“닦지 말아요. 내가 집에 갈 때까지 이 모습 그대로여야 해요. 안 그럼... 알아서 해요.”하, 이별의 키스를 원한다고 했지? 그렇다면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만들어주지.풉, 지금 화내는 거야?전동하가 웃음을 터트렸다.그런데 은정 씨 어떡하죠? 이러는 은정 씨 모습도 너무 귀여워요. 그래서... 앞으로도 이별의 키스는 꼭 받아야 할 것 같은데요?“네. 절대 안 지울게요.”전동하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 볼에 남은 선명한 자국을 다시 확인한 뒤에야 소은정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다.한편, 밖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임춘식은 그저 의아할 따름이었다.뭐지... 열애 중인 건가? 아니면 곧 헤어질 위기인 건가? 헷갈리네.생각을 마친 임춘식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혹시... 봤으려나?차에서 내린 소은정이 성큼성큼 건물로 들어가고 임춘식이 부랴부랴 그 뒤를 따랐다.
하지만 그의 질문에 소은정은 씩 입꼬리를 올렸다.“생각보다 동하 씨한테 관심이 많으시네요? 이럴 거면 그냥 아까 직접 물으시지 그러셨어요?”소은정의 반박에 임춘식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그거야 그땐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훔쳐보는 데 정신이 팔렸으니까요...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두 사람은 어느새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하지만 소은정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문 앞에 서 있기만 했다.난 평생 문 같은 건 직접 열어본 적 없어 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임춘식이 결국 먼저 문을 열어주었다.참... 가끔씩 잔인할 정도로 무섭지만... 이럴 땐 진짜 공주님 같단 말이지. 하지만 사무실로 들어간 소은정은 이미 안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다른 누군가를 발견하고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오랜만이네...이제 4년도 채 지나지 않은 일인데 박수혁과 결혼했던 게 마치 전생에서 일어난처럼 느껴졌다.한편, 그녀를 발견한 박수혁 역시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그녀를 아예 모르는 사람처럼 대하는 그의 모습에 소은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그와 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를 선택했다.묘한 분위기를 느낀 임춘식은 그제야 방금 전 그의 제안에 왜 박수혁이 응하지 않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두 사람이 서로 뽀뽀하고 안기는 모습을 두 눈 뜨고 보고 싶진 않았겠지.신경 쓰여서 죽겠으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있는 저 표정 좀 봐...박수혁, 당신도 진짜 피곤하게 산다.잠시 후, 화상 통화가 연결되었다.유럽풍 건물이 스크린에 나타나고 잔뜩 흥분한 표정의 직원이 입을 열었다.“임 대표님. 지금 저희는 마지막 작업만 앞두고 있습니다. 이곳은 이 근처에서 차량 유동량이 가장 많은 구역입니다. 저희가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모든 시민들에게 저희의 자율 주행 기술이 얼마나 완벽한 지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AI의 반응속도는 인간의 150배 가량으로 그 어떤 긴급 상황에서도 완벽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이때 직원이 카메라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한편, 차량은 여전히 여유로운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차량 막힘, 앞차량의 속도가 너무 느린 등 여러 “사고”가 있었으나 AI는 이런 상황을 모두 분석하여 다른 차선으로 옮기는 등 사람 못지 않은 센스를 보여주었다.이때, no people은 천천히 사거리 신호등 앞에 멈춰섰다.지나치게 보수적인 운전 스타일 때문일까?그 뒤를 따르던 차량의 운전자의 마음이 급해졌는지 갑자기 액셀을 밟기 시작했다.뒤차량의 속도를 분석한 no people가 속도를 약 20% 올린 그 순간, 인도에 갑자기 5, 6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나타났다.자율 주행 시스템의 반응속도는 1초, 하지만 장애물과의 거리가 3m는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다.그런데 지금 여자아이와 차량이 떨어진 거리는 겨우 0.5m 가량, 인간이 운전대를 잡았다면 사고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방금 전까지 여유롭던 운전자 역시 창백해진 얼굴로 직접 브레이크를 밟으려 했지만 그의 반응속도가 AI를 따라갈 리가 없었다.방금 전까지 화기애애하던 차량 안 분위기가 차갑게 식어버리고...안 돼. 이건 무조건 부딪힐 거야.절망감에 모두가 눈을 질끈 감은 순간, 차량이 천천히 멈춰섰다.관성에 의해 차 안에 앉은 사람들의 몸이 살짝 앞으로 쏠렸지만 부상은커녕 큰 충격마저 느껴지지 않았다.심지어 조수석에 앉은 직원의 손에 들린 커피도 그대로일 정도로 부드러운 정차였다.네 사람이 여전히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던 그때, 여자아이의 엄마가 아이의 손목을 홱 잡아당긴 뒤 그들을 향해 미안하다는 듯한 미소를 전했다.큰 재앙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던 사고가 원만히 회복되고 차량은 다시 천천히 움직이며 신호등을 통과했다.그리고 결국 신호등에 걸리고 만 뒤차량 운전자가 거칠게 핸들을 내리쳤다.“뭐야! 왜 이렇게 꾸물거리는 건데!”도로가 다시 평화를 되찾고 소은정 임춘식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단 2, 3초 사이에 소은정의 손은 식은땀으로 흥건해진 상태였다.만약 사고가 일어났다면 프로젝트 진행
잠시 후, 차량이 목적지에 도착했다.레이싱 모드에 맞게 AI 시스템은 섀시 높이를 조절했다.레이싱장에 들어서니 차량의 고급스러움이 더 부각되었다. 모든 걸 뒤삼킬 것 같은 블랙홀 같은 컬러가 압도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운전석에 앉은 직원과 모든 데이터를 기록해야 하는 테스트 담당직원을 제외하고 다른 두 사람이 차량에서 내렸다.레이싱장, 레이싱카들은 자신이 이 구역의 최강자라는 걸 과시라도 하 듯 으르렁거리는 엔진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유독 no people만은 침착한 모습이었다. 화려하게 코팅된 레이싱차들 사이에서 no people은 거의 0에 가까운 존재감이었지만 그 모습이 결코 약해 보이진 않았다.오히려 자신의 실력으로 모든 걸 증명하겠다는 듯 이상하리만치 자신만만한 느낌이었다.역시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던 운전석 직원이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오늘 레이싱의 역사가 새로 쓰여지게 될 것입니다.”마치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듯 자신만만한 미소였다.한편, 사무실.박수혁을 향해 고개를 돌린 임춘식이 미소를 지었다.“레이싱에 있어선 박 대표님도 전문가가 아니십니까? 박 대표님이 소유하고 있는 그 차량과 비교하면 어떻죠?”박수혁이 소유하고 있는 레이싱카는 그와 함께 대회에서 3회 연속 우승이라는 성과를 따냈지만 지금은 이미 은퇴하고 차고에서 먼지만 들이마시고 있는 상황이었다.성능만 본다면 박 대표 차 정도는 돼야 no people과 비교가 될 것 같은데...임춘식의 말에 눈썹을 치켜세운 박수혁이 날카로운 눈동자로 no people을 훑어보기 시작했다.“비교 불가죠.”비교 불가?깔끔한 평가였지만 임춘식은 그의 차량이 더 좋다는 건지 아니면 no people이 더 낫다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하지만 박수혁의 차가운 표정에 더 캐묻지 못하고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오늘의 경기는 레이싱 트랙이 아닌 야외에서 진행되었고 주최측은 마니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일명 “악마의 길”이라고 불리는 산을 선택했다.좁은 도로폭, 조금의 실수로 천길
정교한 AI 시스템이 도로의 전체적인 상황을 분석해 가장 완벽한 솔루션을 계산해 냈다. 바위를 비롯한 장애물, 가파른 길, 뒤 차량의 추월 등 모든 상황을 분석한 no people은 여유로운 자신만의 질주를 이어가고 있었다.하지만 소은정은 걱정이 되지도 기대가 되지도 않았다.이 경기에서 no people가 우승할 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레이싱은 인간이 스릴을 즐기기 위해 개발된 스포츠다. 비록 기술적인 부분도 큰 영향을 차지한다고 해도 자율주행은 레이싱 업계를 뒤흔들 수 없을 것이다.만약 AI에게 운전대를 맡긴다면 우승을 거두었을 때 그건 선수 개인의 영예일까 아니면 AI의 영예일까?이런 우승을 거둔 선수가 과연 진정으로 기쁨을 느낄 수 있을까?물론 답은 아니다일 것이다.반면, 박수혁은 또 다른 이유로 경기 영상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소은정이 커피를 마시려던 그때, 왠지 집요한 시선이 느껴지는 듯한 기분에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역시나, 박수혁이 차가운 눈동자가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다. 복잡한 감정이 가득 담겨있는 듯 하면서도 아무 감정도 들어있지 않은 것 같은 묘한 눈동자에 소은정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한편, 이때가 기회라는 듯 계산 결과가 나온 걸까? no people은 어느새 추월모드를 개방해 앞을 달리고 있는 차량들을 뒤로 재치고 있었다.야생의 거친 매력이 포인트인 레이싱에서 no people은 너무나 조용했고 눈에 띄지 않는 존재였으므로 다른 선수들도 처음엔 no people을 안중에 두지 않고 있었다.운전자도 이름 한 번 들어보지 못한 노네임드고 차량 자체도 좋은 성적을 거둔 적이 없었으니까.하지만 경기 중반을 달리고 있는 지금, no people이 드디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이제 no people 앞에 있는 차량은 단 두 대.1위인 차량은 선수의 스킬과 노련함이 영상을 통해서도 느껴질 정도로 화려하면서도 완벽한 주행을 보여주고 있었고 그 뒤를
이대로라면 no people가 1위 차량을 추월하는 건 시간 문제처럼 보였다.1위 차량 레이서도 드디어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기 시작했다.저 지구력과 스피드, 보통 내기가 아니네...다음 순간, 도로의 폭이 확 넓어지고 no people가 조용히 속도를 높였다.추월을 코앞에 둔 그때, 1위 차량이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no people기 왼쪽으로 움직이면 1위 차량도 왼쪽으로, no people가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1위 차량도 오른쪽으로 향했다.AI 자율 주행의 가장 큰 장점은 그 누구보다 빠르게 수치를 분석하고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 따른 최적의 결과값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하지만 얼핏 완벽해 보이는 AI에게도 아주 큰 단점이 있었다.바로 승부욕이 없다는 것이었다.계산 능력은 압도적이지만 적어도 현단계의 AI는 자주적인 사고를 하지 못한다.즉, 운전을 하고 있지만 자신이 왜 운전을 하는지 왜 이겨야 하는지를 능동적으로 생각할 수 없으며 그저 닥친 상황에 따라 대응을 할 뿐이다.마지막 100m를 남겨두고 1위 차량은 드디어 미꾸라지식 주행을 멈추었다. 기회를 잡은 no people가 속도를 올리려던 그때, 1위 차량은 미친 듯이 질주를 하기 시작했다.목적지의 바로 앞쪽은 수백미터 낭떠러지인 벼랑, 결승선을 통과하기 위해 속도를 높여야 하면서도 떨어지지 않기 위해 감속할 준비도 충분히 해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하지만 1위 차량은 마치 이번 대회가 마지막이라는 듯, 오늘 대회의 우승만 거둘 수 있다면 저 벼랑 밑으로 추락해도 좋다는 듯 미친 듯이 질주를 이어갔다.드론을 통해 전달되는 영상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주먹을 꽉 쥐기 시작했다.1위 차량의 질주와 스킬은 레이싱 매니아들의 피를 뜨겁게 끓게 하기에 충분했고 그의 엔진 소리 하나하나가 사람들의 신경을 흔들었다.1위로 결승점을 통과한 차량이 벼랑과 약 2m 정도 거리를 남겨두고 드디어 멈춰섰다.차량이 멈춰설 때까지 숨을 죽이고 있던 관객들이 다음 순간 미친 듯이 포효하기 시작했다.n
한편 회의실.임춘식이 초상 맞은 듯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있다.“이럴 수가...”분명 그가 이길 수 있었다. 그 흰색 차량이 미친 듯이 달리지만 않았다면 분명 그의 승리였을 텐데...반면 소은정은 이 결과를 진작 예상하고 있었던지라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AI에게 자주적인 정신력을 부여하지 않는 이상 그들은 인간의 승부욕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극한의 환경에서 인간의 대뇌는 AI 시스템처럼 민첩한 반응은 해내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단 한 번의 경기 결과를 위해 모든 걸 내던질 수 있는 승부욕과 뜨거운 심장이 있다.커피를 한 모금 마신 소은정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2억. 입금하는 거 잊지 마요.”말을 마친 소은정이 핸드백을 챙기고 일어섰다.테스트는 나름 성공적인 데뷔 무대를 치렀다. 비록 레이싱에선 1위를 거두지 못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재미 요소를 위해 임시로 끼워넣은 것뿐.적어도 현단계 AI 자율 주행이 갖추어야 할 요소는 모두 갖추었으니 레이싱 경기에서 졌다고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임춘식이 자리에서 일어섰다.“대표님, 식사 같이 하시죠. 어차피 저도 곧 퇴근시간이고요.”그리고 고개를 돌린 임춘식이 박수혁을 향해 끊임없이 눈을 깜박였다.뭐 박수혁은 그런 임춘식의 호의 따윈 중요하지 않다는 듯 여전히 무표정한 모습이었지만 말이다.소은정도 한 발 더 앞으로 나가며 손을 저었다.“아니에요. 전 집에 가서 먹으려고요.”한편, 임춘식은 꼼짝도 하지 않는 박수혁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아니,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친다고?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소은정의 손이 문고리에 닿으려던 순간, 지금까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박수혁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렸다.“내일 성 회장 생일 파티라던데. 너도 갈 거야?”오호... 한 수 남겨두고 있었던 거야?흥미진진한 상황에 임춘식이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박수혁의 질문에 소은정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대답했다.“가야지. 친할아버지 이상으로 가까운
두 사람의 묘한 스킨십을 바라보고 있자니 박수혁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질투라는 감정이 미친 듯이 치고 올라왔다.걷잡을 수 없이 몰려드는 어두운 면을 그저 개방하여 쥐도 새도 모르게 전동하를 죽여버릴까 생각도 했었다.그런데 그 다음엔?두 사람이 가장 사랑하고 가장 뜨거울 때 전동하를 제거한다면 전동하는 죽은 연인으로서 영원히 소은정의 가슴에 남게 될 것이다.그렇게 전동하가 영원히 소은정에게 특별한 존재로 남게 될 걸 생각하면 속에서 천불이 일었다.아니지... 널 그렇게 만들어줄 순 없어. 그거야말로 내 진정한 패배니까.......한편, 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 동안 애정행각을 벌였고 만난 지 5분이 넘어서야 차량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린 소은정의 시야에 미칠 듯이 차가운 미소를 짓고 있는 박수혁의 모습이 들어왔다.하지만 그녀가 의아함을 느끼기도 전, 입금 문자가 도착하고 방금 전 짧은 눈맞춤은 잊은 듯 소은정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오호, 생각보다 빠릿하게 움직여줬네?“뭐가 그렇게 좋아요?”그런 그녀를 힐끗 바라보던 전동하가 물었다.“돈 땄으니까 당연히 기쁘죠.”“누구 돈이요?”“임춘식 대표요.”“은정 씨가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거 보면 나름 꽤 많이 땄나 봐요?”“2억이요. 자, 우리 외식해요, 오늘!”“집에 밥 다 해놨단 말이에요. 다음에요.”전동하의 대답에 소은정이 눈이 커다래졌다.“그렇게나 빨리요? 회사로 간 거 아니었어요?”“별 큰일이 아니었거든요. 전화로 해결했고 난 바로 장 보러 갔었어요.”“와... 진짜 현모양처 그 자체네요.”소은정이 진심으로 감탄했다.그리고 조금 망설이던 소은정이 한 마디 덧붙였다.“마이크 키우면서 이렇게 된 거예요?”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장난기를 느낀 걸까?혀를 차던 전동하가 운전 중에 소은정을 힐끗 바라보았다.“놀리지 말아요. 오늘 저녁에 혼나고 싶지 않으면.”전동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지만 소은정도 쉽게 물러서는 사람이 아니었다.“본가로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