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가면 정말 소은찬이 차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옆에서 싸움 구경 중이던 소은정이 한 발 앞으로 다가서 신나리의 손을 잡았다.“맞아. 팔은 안으로 굽는다지만 난 이번엔 나리 씨 편이야. 오빠가 너무 한 거 맞고 두 사람 잘 안 맞는 것 같아. 차라리 여기서 그냥 끝내는 게 좋겠어.”당황한 소은찬의 입꼬리가 살짝 떨리고 소은해도, 심지어 신나리까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쟤가 지금 불 난 집에 부채질 하는 것도 아니고.모두의 의아한 눈빛속에서 소은정은 말을 이어갔다.“오빠랑 헤어지면 바로 나리 씨한테 소개팅 해주려고. 첫 주자는 강희 어때? 집안도 좋고 자상하고 얼굴도 그만하면 나쁘지 않고. 이 세상에 널린 게 남자잖아? 하물며 이딴 드레스도 따져보고 더 마음에 드는 걸로 고르는데 남자도 이왕이면 나한테 더 잘해주는 남자가 좋지 않겠어?”소은정의 말에 신나리의 눈동자가 감격의 눈물로 반짝였다.이때 이를 악문 소은찬이 겨우 입을 열었다.“소은정, 하지 마...”“나리 씨가 오빠 싫다잖아. 두 사람 헤어지고 나면 누굴 만나든 오빠랑 상관없는 거 아니야? 워커홀릭 좋지. 실험이 그렇게 좋으면 평생 실험하면서 혼자 살아. 괜히 멀쩡한 여자 속 새까맣게 태우지 말고. 아, 나리 씨가 결혼하면 청첩장 정도는 보내줄게.”소은정의 깐족거림에 소은찬의 표정은 점점 더 차가워졌다. 그 주위의 공기가 왠지 더 무거워지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으니까.소은찬의 음울한 눈동자가 신나리를 향했다.나리가 정말 그런다면... 난... 난 진짜 무슨 짓을 할지 모를 것 같아.한편, 소은정의 잔인함에 신나리는 몰래 침을 삼켰고 소은해는 소은정의 의도를 눈치챘음에도 신랄한 독설에 왠지 형이 불쌍해지기 시작했다.나리 씨, 형 팩폭으로 죽기 전에 어서 용서해 줘요.이때, 말을 마친 소은정이 신나리의 손목을 잡았다.“나리 씨, 가요. 오빠는 신경 쓰지 말아요.”당황하던 소은찬이 손나리의 다른 한 손을 잡았다.“가지 마...”나지막한 목소리로 소은찬이 드디어
신나리는 한참 동안 말없이 그 자리를 지켰다.하지만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진 걸 발견한 소은정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오빠 지금이야! 더 몰아붙이라고!소은찬을 향해 소은정이 강렬한 텔레파시를 보냈다.한편 침을 꿀꺽 삼킨 소은찬이 신나리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뭔가를 꺼내려는 듯 손을 주머니에 넣자 소은정, 소은해 남매가 눈을 반짝였다.‘프러포즈? 화해시키려다 좋은 구경하네. 우리 오빠 이번엔 진짜 마음 제대로 먹었나 봐.’‘역시 우리 형, 똑똑하긴 해... 하나를 배워주니까 열을 아네.’역시나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신나리는 관심없는 척 고개를 돌렸지만 얼굴에 피어오르는 기대감과 설렘은 감출 수 없었다.그렇게 모두의 주목 하에 소은찬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이미 예상하고 있었음에도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천천히 신나리의 손을 잡은 소은찬이 깊은 숨을 내쉬더니 무언가를 신나리의 손 위에 올려놓았다.그리고 다음 순간, 그가 건넨 물건의 정체가 모습을 드러내고 소은정, 소은해 남매도, 신나리도 한방 맞은 듯한 벙찐 표정을 지어보였다.이건... 통장이잖아...? 난 당연히 반지인 줄 알았는데. 오빠, 나리 씨가 이걸로 화내도 난 더 이상 안 도와줄 거야. 오빤 진짜... 구제불능이다.“나리야, 널 만나고 나서 받은 모든 인센티브 다 이안에 들어있어. 우리가 하는 연구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순 없겠지만 이건 내가 이룬 성과와 명예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해. 워낙 급해서 반지는 못 샀지만 내 모든 명예를 줄게.”남들과 어딘가 다르긴 하지만 이런 장면은 바라지도 못했던 신나리의 가슴은 감동으로 달콤하게 물들었다.그녀에게 소은찬은 논문이나 기사로 겨우 접할 수 있는 연예인, 아니 위인전의 주인공 같은 존재였다.그런데 그 사람이 지금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거... 지금 현실 맞지? 나 꿈 꾸고 있는 거 아니지?한참을 망설이던 그녀가 물었다.“안에 얼마 있는데요? 반지 정도는 살 수 있는 거 맞죠?”엉뚱한 질문에 흠칫하던 소은찬이 싱
“쳇”삐진 듯 고개를 돌린 소은해가 차키를 흔들어 보였다.“이글 엔터로 가자. 도준호 대표... 너한테 잘릴 뻔하고 매일 불안에 떨면서 살고 있어. 네가 가서 뭐라고 좀 해봐.”“싫어.”“진짜? 회사에 신인 잔뜩 들어왔는데 다들 잘생겼더라. 확실히 유전자가 더 좋아지고 있긴 한 것 같아? 안 그래?”잠깐 망설이던 소은정이 소은해가 던진 미끼를 덥썩 물었다.“으음. 오빠도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왔고 그럼 같이 가줄게.”으이그, 내 핑계는.소은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안녕히 가십시오.”마지막까지 친절한 직원이 배웅을 받으며 남매는 가게를 나섰다.그리고 소은정은 드레스 브랜드 CEO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은 신나리 한 사람만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해 달라고 부탁했다.드레스 브랜드 CEO는 패션 업계에서는 알아주는 대가였지만 SC그룹과의 협력 시도는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다.초초초 엘리트 계급에게만 제공되는 프리미엄 서비스를 추구하는 그와 달리 SC그룹은 더 많은 소비자들이 타깃이었으니까.하지만 이번 일로 소은정이 그에게 신세를 진 것이나 마찬가지니 언젠가 파티에 그의 드레스를 입어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연예인 못지 않은 샐럽인 그녀가 입어준다면 사교계 재벌 2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터.CEO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한편, 차에 앉은 소은정이 물었다.“언제 돌아가야 해?”“내일 오전 비행기야.”“그렇게 급하게? 하늘이는 알아?”“그럼.”“하늘이가 배웅하는 거야?”아쉬움 가득한 미소와 함께 소은해가 고개를 저었다.“하늘이는 오늘 독일로 출장가야 해. 하필 시간이 어긋났던 거지 뭐.”그 목소리에 한참을 생각하던 소은정이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두 사람 진짜 괜찮은 거 맞아? 보통 연애할 땐 꼭 붙어있어야 정상 아니야? 오빠 이번에 돌아온 뒤로 하늘이랑 몇 번 만나지도 않았잖아. 뭐 벌써 권태기 그런 거야?”고개를 돌린 소은해가 이를 꽉 물었다.“아주 그냥 저주를 퍼부어라.”“아 맞
점잖은 분위기의 도준호가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다니.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이미 문을 연 소은해는 자신의 이름을 듣고 미간을 찌푸린 채 문을 두드렸다.“내가 들어오지 말라고 그랬지.”당연히 비서라고 생각한 도준호가 짜증스레 고개를 돌린 그때.방금 전 그가 언급한 소은해는 물론이고 요즘 가장 두려운 존재인 소은정의 얼굴까지 보이니 당황한 그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아... 은해 씨, 귀국했어요?”부랴부랴 다가온 도준호가 말을 이어갔다.“은정 대표님, 여전히 아름다우십니다. 처음 뵙는 것도 아닌데 볼 때마다 놀랍네요.”“꺼지세요.”소은호의 뒤에서 발걸음을 옮기던 소은정이 자연스레 반박했다.“넵.”까칠한 말이었지만 이렇게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건넨 것만 해도 도준호는 감지덕지였다. 쌍욕을 해도 굽신거릴 판에 꺼지라는 말 정도야 뭐...도준호는 여전히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귀국했으면 미리 말을 하지. 직접 데리러 갔을 텐데요. 아, 지금 준비중인 작품 있는데 은해 씨가 좀 도와주면 안 될까요? 우정 출연 같은 것도 좋은데...”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소은해가 눈썹을 씰룩였다.“이걸 미안해서 어쩌나... 나 내일 바로 다시 떠나는데?”“하... 일부러 지금 온 거죠? 미리 말하면 내가 귀찮게 굴까 봐?”도준호의 날카로운 지적에 소은해가 어깨를 으쓱했다.“도 대표가 고생이 많아?”“지금 연예인들도 제작자로, 감독으로 전업하는 거 알죠? 내가 요즘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그런데 도와주질 못할 망정 꿈 찾겠다고 밖으로 나돌고 있으니... 내가 답답하겠어요, 안 답답하겠어요?”“괜찮아. 지금까진 내가 이 바닥에서 거의 독보적인 존재였잖아? 나 없는 사이에 잘들 싸우라고 그래.”“이 정도면 진짜 왕자병인 거 알죠?”“우리 도 대표 능력을 믿는 거지.”한편, 휴대폰 게임을 하며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소은정이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미간을 찌푸렸다.뭐야? 저 말투는 꼭... 애교 부리는 여자 친구 같달까?두 사람
이런 방식이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회사의 수익 구조에 대해선 도준호보다 모르는 게 사실이고 뼛속까지 완벽한 사업가인 도준호가 손해 볼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소은해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그래. 잘생긴 애들 있어? 은정이가 보고 싶다는데...”그의 말에 사무실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도준호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소은정을 바라보고 소은정은 커다래진 눈으로 오빠를 노려 보았다.이런... 그렇게 다 까밝히면 어떡해! 좀 더 돌려서 말할 수도 있는 거잖아.잠시 후, 어색한 침묵을 깨트린건 도준호였다.“아, 이해합니다.”“뭘 이해한다는 거죠?”소은정의 까칠한 질문에 도준호가 눈을 찡긋했다.“에이, 걱정하지 마세요. 저 절대 소문 안 낼 겁니다. 이 바닥에서 이런 일이야 뭐 흔하죠.”“아니, 그게 아니라...”하지만 도준호는 아예 그녀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잘생긴 애가 들어오긴 했죠. 그룹 리더도 걔한테 맡기려고요. 키 192cm에 얼굴은...”말끝을 흐리던 도준호가 눈을 반짝였다.“저번에 접대 나갈 일이 있었는데 남자고 여자고 다 걔만 쳐다보더라니까요.”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소은정을 향해 도준호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대표님을 위해 남겨둔 아이입니다.”하, 저 남자를 죽여살려...잔뜩 짜증이 난 소은정과 달리 소은해는 흥미롭다는 표정이었다.“그러니까 얼른 보여줘. 우리가 직접 연습실로 내려가야 하나?”“아니요. 올라오라고 하죠.”도준호가 휴대폰을 들려고 하자 소은정이 부랴부랴 손을 저었다.이 상황에서 정말 그 신인이 올라온다면 도준호의 추측이 아예 100% 사실이 되어버리는 거니까.“아, 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예요. 안 만나도 됩니다.”“에이, 뭘 그렇게 부끄러워 하세요. 여기 뭐 다른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비밀 지켜드리겠습니다.”소은해도 옆에서 기름을 부었다.“그러니까.”아, 진짜... 저 두사람 진짜 미친 거 아니야?“정말 그런 거 아니라고요. 그리고 한 사람 말고 데
이에 어색한 헛기침과 함께 도준호가 해명을 시작했다.“유준열 저희 회사와 계약 해지했습니다. 저희가 손호영한테만 신경을 쓴다고 불만이 굉장히 많은 것 같더라고요. 아예 팬들까지 선동해선 회사 건물 앞에서 시위를 벌이려고 해서... 일이 더 커지기 전에 해지하는 게 낫겠더라고요.”의심스러운 표정의 소은정이 뭔가 말하려던 그때, 그녀의 마음을 꿰뚫어보기라도 한 듯 도준호는 바로 선을 그었다.“아, 제가 손 쓴 거 아닙니다. 유준열한테 쓴 돈이 얼만데요. 하지만 유준열은 나름 팬덤이 두터운 연예인에요. 여론전을 벌이면 저희가 불리해질 것 같기도 하고 손호영도 요즘 팬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회사에서 어느 연예인을 더 띄워주냐로 팬들끼리 싸우기까지 하더라고요... 게다가 저번 화보 촬영에 SC그룹 모델로 발탁된 뒤로 손호영 몸값도 많이 올랐습니다. 굳이 한 명을 선택하라면 손호영이 더 나은 것 같아 유준열과의 계약 해지를 결정한 겁니다.”흐음, 이글 엔터 연예인이라고 지금까지 밀어준 게 얼만데. 이제 떴다고 홀랑 나가버리는 거야?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은정과 달리 소은해는 이런 상황에 익숙하다는 듯 가볍게 웃었다.“가고 싶으면 가라고 해. 이제 날개도 돋았겠다. 스스로 더 높이 날고 싶겠지. 회사가 워낙 많이 떼먹긴 하니까?”소은해의 말이 맞다는 걸 알면서도 왠지 배신당한 것 같은 기분에 마음이 무거워지는 소은정이었다.손호영이 SC그룹 신제품 CF 모델로 발탁된 뒤로 회사의 관심이 그쪽으로 살짝 더 쏠린 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유준열을 깎아내린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그럼 어느 회사 옮긴 거예요?”“아, 본인이 직접 소속사를 설립했습니다. 회사가 본인한테 잘못한 게 없다는 걸 알고 있는지 위약금까지 깔끔하게 지불하더군요.”그래. 이미 떠날 마음이 선 사람을 잡고 있어봐야 괜한 구설수만 생길 뿐이야.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앞으로 유준열과는 경쟁 사이지만... 지금까지 SC그룹, 이글 엔터 버프로 얻은 CF 모델이나 화보 모델은 계
“가족 엔터 회사를 차렸다는 말씀인가요?”“뭐 그런 셈이죠. 그래서 딱히 걱정은 안 됩니다. 유준열도 평생 지금 이미지로 밀고 나가진 못할 거예요.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오게 될 거예요. 아니, 설령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저희가 손해 볼 건 없죠.”도준호의 설명을 듣고 있던 소은정이 혀를 찼다.어쩐지 누가 봐도 손해인 거래를 덥석 받아들이더라니. 똑똑한 장사꾼인 도준호가 쉽게 유준열을 놔줄 리가 없는데 말이야...한편, 소은해와 매니저는 그들의 말에 별로 관심도 없다는 듯 다른 주제로 수다를 떨고 있었다.이 바닥에서 닳을대로 닳은 소은해는 이 상황을 누구보다 더 이성적인 태도로 들여다 보고 있었다.누가 뭐래도 유준열은 최고의 남자 연예인 중 한 명이었지만 그와 비슷한 이미지의 연예인은 앞으로도 끝도 없이 치고 나올 것이다.지금까진 이글 엔터의 자본과 덕분에 인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지만 엔터 쪽에 대해 아무런 전문적인 지식 하나 없는 가족 기업이 뭘 할 수 있을까?지금의 전성기를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힘이 부칠 것이다.도준호의 설명에 소은정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잠시 후, 도준호 일행은 연습실 옆에 있는 빈 방으로 향했다. 한쪽 벽 전체가 거울로 된 이 방에서는 옆방의 연습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연습실이 커서 다행이네... 17명, 진짜 많긴 하다.아, 저 센터에서 랩을 하고 있는 애가 리더라고 했던가? 좋네. 키도 크고 마스크도 좋고 분위기도 신비롭고. 확실히 눈에 띄네.17명을 쭉 훑어보다 보니 저도 모르게 센터에게로 시선이 쏠렸다.쟤는 솔로로 데뷔해도 크게 성공하겠는데?기품이 흐르는 이목구비, 차가운 표정, 그리고 미간 사이에서 느껴지는 묘한 우울함. 유준열보다 훨씬 더 미래가 기대되는 신인이었다.“오호, 저런 애는 어디서 찾은 거야?”다른 사람 칭찬에는 유난히 야박한 소은해도 고개를 끄덕였다.“해외 대학에서 얼굴로 유명한 친구였는데 제가 우연히 발견했죠. 그래서 제가 바로 섭외했습니다. 괜찮죠?”소은해
색소폰을 들고 있던 연습생이 얼굴을 붉히더니 뒤로 한 발 물러섰다.멘토 선생까지 고개를 숙인 상황에서도 센터에 서 있는 나일로만큼은 차분하지만 날카로운 시선으로 앞쪽을 바라보고 있었다.도준호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아, 그래서 여러분들을 위해 특별히 선생님을 모셔왔습니다. 직접 시범까지 보여드릴 거니까 잘 보세요. 소은정 대표님을 모십니다.”말을 마친 도준호가 한 발 뒤로 물러서고...몰래 문을 나서려던 소은정은 자신의 이름을 듣고 우뚝 멈춰 섰다.도준호... 이거 지금 나 먹이는 거 맞지? 죽었어...고개를 돌려보니 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온 소은해가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겁 먹지 마. 오빠가 있잖아. 너 악기 잘하잖아. 프로가 되려면 얼마나 잘해야 하는지 보여줘야지.”“안 한 지가 몇 년인데. 손 다 굳었다고!”이를 악문 채 소리없는 아우성을 치는 소은정의 등을 떠밀던 소은해가 몰래 속삭였다.“아, 괜찮아. 쟤들은 개인기 하나 키우려고 며칠 전에 겨우 시작한 초보 중의 초보라고.”이딴 걸 오빠라고... 여동생을 불구덩이에 떠밀어?결국 연습실로 떠밀린 소은정은 도도한 척 표정을 가다듬었다.그녀의 등장에 연습생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정말 소은정 대표 맞아?”“와, 이글 엔터 뒤에 사실 SC그룹이 있다던데 그게 사실이었나 봐.”“이거 지금 꿈 아니지?”“진짜 예쁘다...”...아직 어린 소년인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모습에 방금 전까지 불편하던 그녀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어졌다.그래도 좀 귀엽긴 하네...잔뜩 흥분한 연습생들 중 그녀에게 다가오려는 이들도 있었지만 소은정이 먼저 자기소개를 시작했다.“소은정이라고 합니다. 전문적인 선생님은 아니지만... 여러분들이 앞으로 스타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번 보여드리겠습니다.”눈을 반짝이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나일로만큼은 이 상황이 지루한 듯 영혼없는 박수를 치고 있었다.하, 재밌는 애네.주위의 악기를 둘러보던 소은정의 시선이 피아노에 멈추었다.“음, 여러분들이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