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키우진 않았지만 적어도 그에게 칼을 들이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내가 잘못 생각했어... 소은정도... 전동하도... 내가 너무 과소평가했던 거야.전인국이 말 없이 돌아섰지만 소은정의 경호원들은 그의 앞을 막아서지 않았다.전인국이 탑승 게이트로 들어가는 걸 바라보던 소은정이 고개를 돌렸다.“여긴 어떻게...”하지만 소은정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전동하의 손이 그녀의 어깨에 닿았다.익숙한 차분한 향이 물씬 안겨오고 그의 차가운 입술이 소은정의 이마에 닿았다.순간 감전이라도 된 듯 흠칫하던 소은정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며칠 내내 차갑게 굳어있던 마음에 온기가 들어서고 방금 전까지 매서웠던 그녀의 표정이 저도 모르게 풀어졌다.하지만 다음 순간, 스튜어디스의 탑승 안내 알림이 울려 퍼지고 한발 뒤로 물러선 전동하가 깊은 눈으로 소은정을 바라보았다.“나도 이 비행기 타고 미국에 들어가봐야 해요. 돌아와서 다시 얘기해요.”“이렇게 급하게요?”소은정의 눈동자가 놀라움으로 흔들렸다.“은정 씨가 평생 외출도 편하게 못하는 거 난 못 봐요. 이 일 내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 은정 씨는 더 신경 쓰지 말아요. 안심해요. 다 잘 될 거니까.”전동하의 말에서 뭔가 이상함을 느낀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동하 씨가 들어가면 뭐가 달라지는데요? 전씨 일가 사람들은 우리가 사귀는 거 다 알잖아요. 동하 씨가 가면 오히려 더 위험해질지도 몰라요.”걱정스러운 소은정의 말투에 싱긋 웃던 전동하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이 세상에 둘만 남은 듯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빛은 너무나도 애틋했고 영화속 주인공처럼 아름다운 광경에 박수아는 몰래 입술을 깨물었다.끼어들 틈 하나 보이지 않는 견고한 사이, 의심할 여지 하나 없는 뜨거운 사랑이 그대로 느껴지며 왠지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졌다.“난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내 손에 전인그룹을 망가트릴 카드가 있거든요. 쉽게 건드리진 못할 거예요.”잠깐 생각하던 소은정이 물었다.“혹시 주가 하락..
선물?소은정이 의아한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지만 전동하는 마지막으로 웃어 보인 뒤 탑승 게이트로 걸음을 옮겼다.한 번 총에서 발사된 총알을 다시 집어넣을 수 없 듯 한 번 시작한 복수는 다시 되돌릴 수 없는 법.일단 시작한 이상, 멈출 수도 멈추어서도 안 된다. 그 끝이 어떻든 결과를 기다리는 수밖에.생각을 정리한 소은정은 다시 표정을 가다듬고 고개를 돌렸다.그런 그녀의 시야에 여전히 방금 전 그 자리에 덩그러니 서 있는 박수아의 모습이 보였다.두 여자의 시선이 마주쳤지만 소은정의 기에 눌린 박수아는 어색하게 눈길을 돌려버렸다.겁 먹은 꼴 하고는...피식 웃던 소은정이 물었다.“박수아 씨, 같이 미국으로 들어가고 싶으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어요.”소은정의 제안에 밀려드는 수치심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방금 전 두 사람의 닭살행각을 목격하고 바로 전동하의 뒤를 쫄래쫄래 쫓아갈 만큼 박수아는 뻔뻔하지 못했다.어차피... 시간은 많아. 소은정, 네가 언제까지 웃을 수 있을 것 같아?“아니에요. 전 회장님 배웅하러 온 거라.”고개를 푹 숙인 박수아가 공항을 나서려던 그때 그녀의 경호원들이 그 앞을 막아섰다.어느새 박수아의 앞으로 다가온 소은정이 눈을 가늘게 떠보였다.“그 기자가 다 자백한 거 알아요?”“자백이요? 그, 그래서요? 어차피 나는 모르는 사람이에요.”당당한 척 부정해 봐도 눈동자에 가득 담긴 당황스러움을 덮기엔 역부족이었다.“그래요?”“물론이죠. 아무 증거도 없이 함부로 사람 의심하지 마세요. 명예 훼손으로 고소하기 전에.”박수아는 기자가 아무리 자백을 했다 해도 그녀가 범인이라는 실질적인 증거는 찾아내지 못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잔뜩 긴장한 박수아의 모습에 소은정은 웃음을 터트렸다.“기자가 박수아 씨 이름을 말했다고는 안 했는데요? 긴장 풀어요.”박수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던 그때 소은정이 말을 이어갔다.“기자 말로는 전부 박수아 씨가 인턴으로 있는 회사 대표이사 조석한이 시킨 짓이라던데요. 그리고
내가 너무 방심했나...“제 얼굴 보기 싫으실 것 같아서 특별히 이코노미로 예약했습니다. 이제 골치 아픈 일 투성일 텐데 비행만큼은 편하게 하셔야 할 것 같아서요.”전동하의 비아냥거림에 전인국이 코웃음을 쳤다.“여자 때문에 천륜을 져버려? 그 감정이 언제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아?”하지만 전동하는 그의 질문에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다른 쪽으로 말을 돌렸다.“전인국 회장님, 제 계산에 따르면 앞으로 1시간 안에 전인그룹이 제대로 된 해명을 내놓지 못한다면 그 뒤로 1분마다 1억씩 잃게 되실 겁니다.”가벼운 말투로 설명을 마친 전동하가 싱긋 웃었다.“아, 아시겠지만 제가 월가에서 좀 입김이 있는 편이서요. 도움 필요하시면 제 비서한테 연락해 보세요. 뭐, 아버지를 만날 일은 없겠지만.”아예 가지고 노는 듯한 말투에 전인국의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전동하, 너 솔직히 말해. 이번 판 네가 짠 거냐?”“글쎄요... 제 사람을 먼저 건드린 건 아버지십니다.”일말의 변명 한 마디 없이 너무나 당당한 전동하의 표정에 전인국은 화가 나고 기가 막혔다.“그깟 여자 때문에 네 핏줄한테 칼을 뽑아? 성인이 될 때까지 먹여주고 재워준 은혜는 잊은 거냐? 짐승보다 못한 놈...”“핏줄이요? 아버지 핏줄은 전기섭이겠죠. 그 집에서 처음 들어간 날부터 제 발로 나오는 순간까지 전 항상 외부인이었어요. 아버지가 하셨던 건 양육이 아니라 사육이었다고요. 제가 자라는 데 큰 기여라도 한 것처럼 말씀하지 마세요. 그렇게 말하면 마음이 좀 편하십니까? 아니면 난 사생아에게도 자비를 베푼 사람이다라고 스스로 세뇌라도 하시는 겁니까?”전동하의 입가에 자조적인 미소가 피어오르고 다시 고개를 든 그의 눈동자에는 음울함으로 가득했다.“아버지의 반격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하다하다 정 안 되면 전화나 한 통 주세요. 제가 원하는 것만 들어주시면 항복 언제든지 받아들이겠습니다.”말을 마친 전동하는 미리 도착한 기사의 차에 몸을 실었다.비록 사업체를 조금씩 한국으로 이어가고 있
전인그룹의 해명은 마치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되지 않냐”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망언(물론 루머로 밝혀졌지만)과 견줄 정도로 충격적이었고 전인그룹의 이미지는 말 그대로 일낙천장, 급기야 불매운동까지 일어나기 시작했다.비서의 브리핑을 듣던 전동하가 보고서를 책상에 휙 던져버렸다.“난 분명 그 사람들에게 기회를 줬습니다. 지금까지 먹은 돈을 다시 뱉어만 냈어도 상황이 이 정도로 심각해지진 않았을 거예요. 그저 돈이라면 독이 들었는지 의심도 안 하고 먹어치우기 바쁜 멍청한 운영진들 탓이죠.”이에 비서 역시 미소를 지었다.“전인그룹은 지금 벌레가 득실득실한 고목과도 마찬가지입니다.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진작 썩어빠진 상태죠. 임원들도 뒷돈이나 받고 일하는 부패한자들뿐이니 이번 사건이 아니었더라도 언젠가 무너졌을 겁니다. 이 정도 위기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걸 보면 지금 회사 내부도 아마 엉망진창일 겁니다. 오히려 어떻게 지금까지 멀쩡하게 회사가 돌아갔는지 의아할 정도예요.”비록 함정을 판 건 전동하였지만 구덩이 안에 있는 미끼를 보고 달려들지 않았다면 덫에 걸릴 일도 없었을 터. 전 회장은 모든 게 전동하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결국 근본적인 원인은 이미 자본의 독에 빠진 운영진들의 탐욕으로 벌어진 사태였다.시간을 확인하던 전동하가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지금쯤이면 전 회장도 회사에 도착했을 겁니다. 아버지는 전기섭 그 멍청이와는 달라요. 뭔가 대책을 취해도 취할 테니 미리 대비를 해두는 게 좋겠어요.”하지만 그의 말에 잠깐 망설이던 비서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그게... 전 회장이 돌아왔다고 해도 이 상황을 수습하긴... 힘들 것 같습니다.”그의 말에 전동하가 눈썹을 치켜세우고 비서가 말을 이어갔다.“전에 전인그룹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라고 하셨죠. 며칠 동안은 별일 없었습니다만 오늘 아침 전인그룹 부대표가 한국 쪽과 컨택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왠지 이상해 전인그룹 지분 상황을 다시 조사해 봤는데..
주주들은 절대 쉽게 지분을 내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소은정은 단 며칠 사이에 전인그룹 지분의 54%를 양도받으며 그룹의 최대주주가 되어버렸다.비록 아직 대외적으로 알려진 정보는 아니었지만 주주총회가 열리면 밝혀지는 건 시간 문제일 터.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전동하의 표정이 유난히 어두웠다.“전인그룹이 그 동안 해온 짓이 있으니 주주들도 생각보다 쉽게 지분을 내놓은 것 같습니다.”뒤이은 비서의 설명에 침묵하던 전동하가 문득 물었다.“박수혁 대표는 아직 미국에 있습니까?”“아, 태한그룹이 이번에 미국 최대 자동차 회사인 F 브랜드를 인수했습니다. 대한민국 기업이 미국 자동차 브랜드를 인수하는 건 전례없는 일이라 처리해야 할 업무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전인그룹 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던 눈치고요. 뭐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여러 고비가 있긴 했지만 인수 작업은 결국 성공적으로 끝났고 박수혁 대표도 바로 귀국했습니다.”“한국으로 갔다고요?”“네.”비서의 대답에 전동하가 미간을 찌푸렸다.하필 그가 자리를 비웠을 때 박수혁이 한국으로 돌아갔다.은정 씨한테 또 찝적거리는 건 아니겠지?한편, 오랫동안 전동하를 보좌해 왔던 비서는 유난히 초조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 의아할 따름이었다.그 어떤 폭풍 앞에서도 항상 의연하던 사람이다. 아무리 큰일이 일어나도 감정을 밖으로 내비치는 일이 없던 사람이 눈에 띄게 흔들리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법도 했다.설마... 소은정 대표 때문인가?비서가 고민의 답을 얻어내기 전에 전동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전화 좀 한 통 할게요.”그제야 정신을 차린 비서는 고개를 끄덕인 뒤 눈치껏 사무실을 나섰다.문까지 꼭 닫은 비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역시... 사랑은 독약이야.한편, 소찬식의 저택.소은정이 전화를 받던 그때 마침 집사가 그녀의 방문을 두드렸다.“아가씨, 박수혁 대표님께서 오셨습니다...”역시 집사의 목소리를 들은 전동하의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은정
심드렁하지만 가벼운 소은정의 목소리에 박수혁은 소은정과의 사이가 다시 좋아진 것만 같은 착각에 잠겼다.“수표 아니라는 거 알아.”파일을 받아든 박수혁의 입가에 아주 오랜만에 진심어린 미소가 피어올랐다.소은정은 은혜도, 원한도 받은 건 그대로 갚아주는 스타일, 큰 도움을 준 그에게 단순히 수표 몇 장 안기고 입 닦을 사람이 아니라는 걸 박수혁도 잘 알고 있었다.사실 박수혁이 원하는 건 단 하나, 기회.소은정에게 다시 다가갈 수 있는 기회였다.한편, 계단 위에 선 채 박수혁과 시선을 맞추고 있는 소은정은 편한 홈웨어 차림이라 그런지 왠지 분위기가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소은정이 팔짱을 낀 채 말했다.“답례야. 난 확실한 게 좋거든. 당신이 도와준 덕에 전인그룹 주주들한테서 지분을 더 쉽게 양도받을 수 있었어. 난 남한테 빚지는 건 질색이니까 받아.”박수혁을 향해 싱긋 미소를 짓던 소은정이 한 마디 덧붙였다.“아, 난 5분 뒤에 화상 회의가 잡혀있어서. 먼저 올라가서 준비 좀 해야 할 것 같아.”그녀를 찾아온 손님을 이런 식으로 내쫓는 게 예의에 어긋난다는 건 소은정도 잘 알고 있었지만 박수혁의 뜨거운 시선을 감당해 낼 자신이 없어 일단 자리를 뜨는 걸 선택했다.어차피 다시 시작할 마음이 없다면 기회를 주지 않는 게 더 나아.말을 마치고 미련 없이 돌아서는 소은정을 불러 세우려던 박수혁의 손이 어색하게 떨어졌다.그래. 조급해 하지 말자. 한 번 도와줬다고 무작정 들이대면 오히려 더 싫어할 거야...혼자 남겨진 박수혁은 파일을 열어보았다.토지 양도 계약서가 눈에 들어오고 내용을 훑어보던 박수혁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SC그룹 소유의 토지를 거의 헐값에 태한그룹에 판다는 내용이었다.그리고 이 토지는 박수혁이 요즘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는 신규 프로젝트에 아주 중요한 지역이기도 했다.이 구역을 인수하지 못하면 프로젝트 진행에 영향이 가는 건 물론 원가도 더 높아질 위기였지만 토지 소유자가 SC그룹이라는 걸 알게 된 뒤로는 온갖 핑계를 대며 인
잠시 후, 화상 회의 중이던 소은정은 문틀에 기댄 채 서 있는 소은해를 발견하고 살짝 눈썹을 치켜세웠다.그 사이에 방으로 들어온 소은해가 파일 하나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방을 나섰다.뭐지?고개를 돌린 소은정의 표정이 살짝 어색하게 굳었지만 곧 다시 이성을 되찾고 직원들의 브리핑에 집중하기 시작했다.내가 준비한 선물 안 챙겼네. 지금 태한그룹에 가장 필요한 걸 텐데.20분 뒤, 회의가 끝나고 소은정은 다시 책상 위에 얌전히 누워있는 파일을 힐끗 바라보았다.하여간 고집은... 나더러 계속 빚진 기분으로 살라는 거야? 그건 안 되지.잠깐 고민하던 소은정이 휴대폰을 들었다.“우 비서님, 잠깐 저택으로 와주시겠어요?”약 20분 뒤, 우 비서가 도착했다는 말에 소은정은 기지개를 켜며 계단을 내려갔다.우유잔을 들고 있는 그녀의 입가에 우유 자국이 귀엽게 묻어있었다.그 모습에 싱긋 웃던 우연준이 물었다.“대표님 오늘 기분이 좋으신가 봅니다?”그의 질문에 소은정의 눈이 살짝 커졌다.“어떻게 알았어요?”“직감입니다.”능글맞은 미소를 짓는 우연준을 노려보던 소은정이 파일을 건넸다.“태한그룹에 배달 좀 가줘요. 무조건 박수혁 대표가 받아야 한다고 말해요. 만약 끝까지 안 받겠다고 하면 수표로 주겠다고 해요. 둘 중에 하나는 무조건 선택해야 한다고 못 박고 오세요.”순간, 우연준의 얼굴에서 미소가 감쪽같이 사라졌다.이런... 대표님 저한테 이렇게 어려운 미션을... 저도 박수혁 대표는 무섭단 말입니다!“수표를 드리라고요...? 박수혁 대표가 그걸 받을까요? 돈이라면 그쪽도 모자라지 않을 텐데요...”박수혁에게 수표를 건넸다가 정말 맞기라도 할까 봐 진심으로 걱정되는 우연준이었다.“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얼른 가기나 해요.”하지만 소은정의 차가운 시선에 거절할 여지가 없다는 걸 인지한 우연준은 눈을 질끈 감았다.“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우연준이 돌아서려던 순간, 소은정이 한 마디 덧붙였다.“아, 경찰쪽에서 이미 사건 발표 기자회견을
인터넷 기사를 대충 훑어보다 온통 그녀와 S시 프로젝트에 대한 얘기뿐이었다.“여신님, 무사하셔야 해요! 세계 1위 재벌까지 되셔야죠!”“그 기자 진짜 미친 거 아니야? 저런 사람들 때문에 멀쩡한 기자들까지 기레기라고 싸잡혀서 욕 먹는 거 아니야. 어떻게 돈 몇 푼에 그런 루머를...”“당당하게 재점검 받을 때부터 난 SC그룹이 결백하다고 생각했어. 손실을 보면서도 명예를 잃지 않겠다는 그 모습 존경스럽습니다!”“창고에 불은 왜 지른 걸까? 재점검 결과가 정상으로 나올까 봐 걱정돼서였나?”“웬만하면 주작 아니냐고 의심하고 싶긴 한데 사건 피해자가 소은정 대표라 무슨 말을 못하겠네. 그날 현장 근처에 있었는데 소은정 대표 진짜 죽을 뻔한 거 맞음. 구급차도 두 세 대 왔을걸? 게다가 되게 잘생긴 남자 품에 안겨서 나오던데... 누구지?”“하필 이 시국에 화재? 딱 봐도 범인이 증거 인멸차 꾸민 짓이구만. 진짜 대중들을 개돼지로 아나...”“은정 언니 저흰 은정 언니 믿어요! 얼른 건강 회복하세요!”“저런 범죄자들은 진짜 평생 감옥에 처넣어야 해. 그런데 어떻게 소은정 대표를 납치할 생각을 하냐? 진짜 간도 크지...”“은정 누나, 저 바로 부동산 계약하러 갑니다...”재밌는 댓글들에 소은정이 웃음을 터트렸다.이번 위기도 무사히 넘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드디어 마음이 놓이는 소은정이었다.이때 휴대폰이 울리고 한유라의 이름을 확인한 소은정이 수락을 눌렀다.“은정이... 맞아?”한유라의 조심스러운 목소리에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왜 그래? 너답지 않게.”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한유라가 평소 톤으로 소리쳤다.“야! 너 살아있었어? 아 진짜 깜짝 놀랐잖아!”“내가 살아있는 게 그렇게 놀랄 일이니?”“아니, 그게 아니라. 지금 네가 화재 사고로 죽었다는 찌라시까지 돌고 있단 말이야. 너 며칠째 외출도 안 했지?”한유라의 말에 소은정은 며칠 동안의 스케줄을 돌이켜 보았다.그날 공항에 간 거 말고는 계속 집에 있긴 했지.“바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