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입을 삐죽거리던 소은정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동하 씨 말이 맞아요.”가스레인지 불을 켜던 전동하가 말을 이어갔다.“며칠 전에 왔을 때 냉장고가 너무 비어있길래 좀 사서 채워넣었어요. 그런데 은정 씨도 참 대단하네요. 그 동안 냉장고 한 번도 안 열어봤어요?”“워낙 바쁘니까... 딱히 냉장고에서 뭐 꺼내 먹을 일도 없고요.”소은정이 코를 만지며 어색하게 시선을 돌렸다.게다가 소은정은 요리 실력도 별로니 돈에 시간까지 쓰고 맛없는 걸 먹느니 차라리 밖에서 맛있는 걸 먹고 오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외식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30분도 채 되지 않아 식탁 위에 된장찌개, 계란말이 등 정갈한 집밥이 차려졌다.음식 냄새에 소은정의 배가 꼬르륵 소리를 냈다.손가락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생겨서는 이렇게 먹음직스러운 한식을 뚝딱 차려내다니.보면 볼 수록 의외인 면이 많은 남자다 싶었다.수저를 건넨 전동하가 말했다.“먹어요. 일단 먹고 푹 자요.”“동하 씨는요? 잠깐 눈 좀 붙여야 하지 않아요?”그러고 보니까 난 잠깐 차에서 졸기라도 했지. 동하 씨는 한숨도 못 잤잖아...“지금 같이 자자는 뜻이에요?”전동하가 눈빛을 반짝이자 소은정은 그를 흘겨보고는 바로 식사에 집중했다.따뜻한 된장찌개가 허한 속을 따뜻하게 적셔주었다.맛있다... 뭔가 따뜻한 맛이야...맛있게 먹어주는 소은정의 모습에 전동하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난 조금 있다가 자려고요. 이제 곧 마이크 소식도 들려올 거예요. 내가 직접 가야죠.”마이크가 어디 있는지 곧 알아낼 수 있다고 거의 확신하는 듯한 그의 모습에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마이크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는 거예요?”소은정의 질문에 전동하가 고개를 저었다.“하지만 곧 알게 될 거예요.”전기섭 그 자식이 머리를 써봤자지... 입 꾹 닫고 있는다고 내가 못 찾을 줄 안다면 오산이야...자신감 넘치는 그의 모습에 소은정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얼른 찾아야 할 텐데. 그 어린 게 얼
당황스럽긴 했지만 소은정은 일단 침묵을 지켰다.곧 이 정보를 알려준 것에 대한 대가를 말할 거라 생각해서였다.하지만 그녀의 예상과 달리 박수혁은 위치를 말한 뒤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내가 알던 박수혁 맞아? 무슨 꿍꿍이지?의아했지만 이게 설령 함정이라 해도 무조건 가봐야 마음이 풀릴 것만 같아 소은정 역시 오피스텔을 나섰다.태한그룹.전화를 끊은 박수혁이 담배 한 대를 꺼내 불을 붙였다.그의 앞에 있는 재떨이에는 이미 담배꽁초가 빈틈없이 꽂혀있었다.“형, 그렇게 쉽게 알려주면 어떡해? 거래를 하든 협상을 하든 해야 할 거 아니야.”강서진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박수혁을 닦달했다.이 형 요즘에 정말 왜 이래...?사무실에서 어항의 물고기에 먹이를 주던 오한진이 박수혁을 힐끗 바라보았다.강서진의 말에 픽 웃던 박수혁이 담배연기를 깊이 빨아들였다.하지만 아무리 연기를 삼켜도 꽉 막힌 가슴은 점점 답답해져갔다.“거래? 협상? 내가 무슨 말을 어떻게 했어야 하는데?”“당연히 당장 전동하랑 헤어지고 형 곁으로 다시 돌아오라고 해야 할 거 아니야!”나였으면 이런 기회 절대 안 놓쳐!“아니. 은정이는 그런 허접한 미끼를 물 사람이 아니야.”박수혁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내가 정말 그렇게 한다면... 은정이는 아마 더더욱 전동하 그 자식 편을 들게 되겠지. 나랑 은정이 사이는 당연히 더 멀어질 테고...“그래도... 이건 너무 쉽게 넘겨주는 거잖아. 형한테 고마워하지도 않을 거라고!”강서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짙은 연기 너머의 박수혁이 말했다.“감사 인사 같은 건 필요없어.”그에 대한 태도가 조금이라도 따뜻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하니까...“그런데 전기섭이 아이를 그곳에 숨긴 건 또 어떻게 알았어?”“전기섭 명의로 된 곳에 가서 찾았다면 진작 찾았겠지.”고개를 끄덕이던 강서진이 갑자기 무릎을 탁 쳤다.“뭐야? 거기 형 명의로 된 곳이라고 했지? 그러다가 전기섭 그 자식이 다 형한테 뒤집어 씌우면 어떻게 할 거야?”강서
”그게 무슨 비밀이라도 돼? 쪽 팔릴대로 다 팔려가지곤...”박수혁이 대충 둘러댔다.하, 소문이 도대체 어디까지 퍼진 거야...“참, 형. 얼마 전에... 윤시라 그 여자에 관한 녹취파일이 퍼졌었잖아. 다들 형 사람이었다고 수군대던데? 왜 그걸 가만히 보고 있었어?”긴 손가락으로 담배불을 끈 박수혁이 침착하게 대답했다.“윤시라 그 여자는 내가 아니라 허지호 사람이었지. 허지호도 몸을 사리는 판에 내가 그 불구덩이에 뛰어들 리가 없잖아?”여유로운 박수혁의 목소리에는 그녀를 향한 무시가 그대로 묻어있었다.솔직히 강서진이 굳이 그녀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면 윤시라라는 이름은 까맣게 잊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한편 소은정은 한참을 이동한 뒤에야 전동하에게도 연락을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하지만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전동하의 전화는 통화 중.어쩔 수 없지 뭐. 우리 쪽 경호원들한테 연락할 수박에...박수혁이 알려준 곳은 아주 평범한, 아니, 어쩌면 낡았다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허름했다.전기섭도, 박수혁도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으니 거주 목적으로 이런 집을 맡았을 리가 없을 터...수상한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경호원들과 아파트 앞에 도착한 소은정은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또 한 무리 모여있는 걸 발견했다.그리고 그들의 앞에 선 사람은 바로 전동하였다.그녀를 보는 순간, 전동하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지만 소은정이 다급하게 다가갔다.“13층이에요. 얼른 가요.”고개를 끄덕인 전동하가 바로 그 뒤를 따랐다.딱 봐도 평범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잔뜩 모이니 자연스레 주민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영화 촬영 중입니다!”“사진 찍지 마세요!”소은정이 데리고 온 경호원들이 주민들 앞을 막아섰다.한편,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소은정의 귓속으로 마이크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살려주세요! 여기 아이를 때리려고 해요!!”초조한 얼굴의 소은정이 바로 쳐들어가려고 했지만 전동하가 그녀의 손목을 덥썩 잡았다.“안에 분명
이 자식이...전동하가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마이크를 바라보았다.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소은정의 품에서 마이크를 끌어내고 싶었다.분명 먼저 들어온 건 나였잖아. 아까도 ‘아빠’라고 잘만 부르더니. 이제 안전해졌다고 생각하니까 바로 은정 씨한테 달려가는 것 좀 봐...한편, 유일한 인질을 빼앗긴 장정들이 바로 무릎을 꿇었다.“저희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입니다. 전... 전기섭 대표가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한 겁니다!”역시... 급하게 알아본 사람이라 그런지 바로 배신하잖아...이런 상황을 예상했다는 듯 전동하가 차갑게 웃었다.“그렇게 유치한 건 궁금하지 않아.”전동하의 태도에 장정들이 멀뚱멀뚱 서로를 바라보았다.집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전동하가 물었다.“이 집... 박수혁 대표 명의라면서?”“네.”장정 중 한 명이 조심스레 대답했다.“네.”“내 아들한테 직접적인 상해는 가하지 않았으니 다른 벌은 주지 않을 거야. 그런데... 마이크가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데 왜 가만히 내버려둔 거지?”장정 셋이서 아이 하나 제압하지 못했다는 게 이해가 안 갔다.장정 중 한 명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사실 물과 밥에 약을 타려고 했는데 죽어도 안 먹겠다고 난리를 피우더군요. 게다가 전기섭 대표님도 무조건 살려두라고 해서...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었습니다.”흥, 전기섭... 이렇게 쉽게 찾을 줄은 몰랐겠지... 지금쯤 목숨은 살려두라고 한 말 후회할지도 모르겠어...피식 웃던 전동하가 경호원에게 눈치를 준 뒤 소은정의 품에 꼭 안겨있는 마이크를 번쩍 안아들고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아빠, 이거 놔요! 난 예쁜 누나한테 안기고 싶다고요!”마이크가 작은 주먹으로 전동하의 어깨를 콩콩 두드렸다.누나한테서 나는 향이 더 좋단 말이야.“네가 얼마나 무거운데. 누나 힘들잖아.”전동하가 아이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타이르자 그제야 마이크도 얌전해졌다.난 그냥 또래보다 좀 더 튼튼한 것뿐이라고! 아들 자존심을 이렇게 짓밟아도 되는 거야?
소은정이 생글생글 웃으며 마이크의 작은 얼굴을 쓰다듬었다.“아빠가 네 걱정 얼마나 많이 하셨는데. 너 찾는다고 밤새 한숨도 못 주무셨어.”잔뜩 의심어린 표정으로 전동하를 바라보던 마이크가 그의 팔을 살짝 흔들었다.“역시, 아빠밖에 없어요.”마이크의 애교에 전동하의 마음도 사르르 녹아내렸다. 마이크의 머리를 쓰다듬던 전동하가 미소를 지었다.“그런데 어제 어쩌다 납치된 거야? 함부로 낯선 사람 따라가지 말라고 했잖아. 어떻게 된 거야?”마이크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더니 눈을 깜박였다.“전기섭 그 나쁜 아저씨가 날 향해 손을 젓더라고요. 아는 사람이니까 가까이 가보려고 했는데 바로 쓰러졌어요. 눈 떠보니까 아까 그 집이었고요...”전동하의 표정이 점점 진지해지자 말끝을 흐리던 마이크가 슬쩍 소은정 곁에 다가갔다.소은정의 부드러운 손가락을 살짝 건드린 마이크가 불쌍한 표정을 지어보였다.그 모습에 소은정이 바로 화제를 돌렸다.“처음부터 계획하고 접근한 거였나 봐요. 그런데 왜... 마이크를 납치한 걸까요?”처음에는 전기섭이 마이크를 인질로 잡아 전동하에게 뭔가를 얻어내려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동하는 생각보다 빨리 마이크를 찾아냈고 오히려 전기섭을 제압까지 해버렸다.이렇게 될 걸 몰랐나...잠깐 침묵하던 전동하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이제 곧 알게 될 거예요.”“전기섭은... 어떻게 처리할 거죠. 여긴 미국과 달라요. 정말 죽기라도 하면 귀찮아진다고요.”“글쎄요. 곧 아버지께서 오실 거예요. 동생을 구하기 위해 어떤 딜을 할지 두고 봐야겠죠.”동하 씨 아버지가?소은정이 흠칫했다.휴, 말투를 들어보니 아버지랑도 사이가 별로 안 좋나 보네...이런저런 생각에 왠지 마음이 안쓰러워졌다.차량은 한참을 달려 소은정의 본가에 도착했다.오피스텔이 아니라 본가에?소은정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하자 전동하가 마이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다들 마이크를 걱정하고 있을 것 같아서요. 무사하다고 인사는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그리
이때 소은정의 다른 한 손에 마이크의 말랑한 작은 손이 들어왔다.“예쁜 누나, 저 좋아하죠?”마이크가 소은정을 향해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아빠도 저 좋아하죠? 그러니까 우리 이렇게 손잡고 들어가요!”소은정과의 스킨십 기회를 또 한번 날려버린 아들이 원망스러웠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시간이 없으니 일단 나란히 집안으로 들어갔다.은정 씨 집만 아니었다면 바로 혼내는 건데...한편, 집사의 언질을 들은 소찬식이 주방에서 걸어나왔다.전동하의 얼굴을 확인한 그는 역시나 코웃음을 쳤다.이때 마이크가 뒤에서 작은 머리를 쏙 내밀었다.“삼촌...”마이크가 그의 품으로 달려들고 자연스레 그를 안으려던 소찬식이 멈칫했다.물고기 손질하느라 비린내가 나는 몸이 신경 쓰여서였다.“마이크, 잠깐만. 삼촌 옷만 갈아입고 올게... 비린내 심할 텐데...”하지만 어느새 폴짝 뛰어 그의 품에 안긴 마이크는 소찬식의 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아니에요. 비린내 하나도 안 나요! 우리 아빠 냄새보다 더 좋은데요 뭘!”마이크의 애교에 소찬식의 얼어붙은 마음도 살짝 말랑해졌다.“휴, 역시 마이크가 최고네. 어제 많이 힘들었지? 누가 널 데려간 거야?”“전기섭 그 나쁜 아저씨가요! 그런데 예쁜 누나가 절 구해 줬어요! 그러니까 우리 앞으로 한 가족인 거 맞죠?”마이크의 설명에 소찬식이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집사가 왠지 찬밥 신세가 된 소은정과 전동하의 곁으로 다가갔다.“아가씨, 어서 들어가시죠.”연신 고개를 젓던 소은정이 자연스레 전동하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아빠, 오빠랑 새언니는요? 마이크가 사과하겠다고 온 건데.”“너희 오빠 바쁜 거야 네가 더 잘 알면서 그래? 그리고 애가 무슨 잘못이니... 다 어른들 탓이지. 안 그래?”소찬식의 질문에 마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전기섭 아저씨는 나쁜 자식이에요.”“그래, 그래. 나빠.”마이크의 머리를 쓰다듬던 소찬식이 안절부절못하는 전동하를 힐끗 바라보더니 마이크를 내려놓았다.“마이크,
서재,전동하는 소찬식이 새 옷으로 갈아입을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공손한 태도로 서 있는 전동하를 힐끗 바라보던 소찬식이 소파에 앉았다.“앉게.”잠깐 고민하던 전동하가 결국 자리에 앉았다.그리고 소은정에게 말했던 일들을 다시 소찬식에게 전해 주었다.뭐든 처음이 어렵고 두 번째는 쉽다고 했던가. 저번에는 가슴이 꽉 막힌 듯 먹먹했다면 지금은 다른 사람 이야기를 얘기하는 듯 홀가분했다.고통이라는 게... 정말 나누면 줄어드는 거구나.말을 마친 전동하가 조용히 소찬식과 눈을 마주쳤다.분위기가 천천히 식어갔다.사실, 소찬식의 인내와 인자함은 어디까지나 가족 한정일 뿐, 다른 사람에게 소찬식은 아주 진지하고 무서운 사람이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침묵의 시간이 길어지고 전동하의 마음은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콩닥콩닥...마치 염라대왕의 마지막 심판을 기다리는 죄인마냥 심장이 옥죄어 왔다.한참 뒤에야 소찬식이 입을 열었다.“전 대표, 자네는 우리 은정이를 여러 번이나 구해 줬지. 자네는 영원한 우리 집안의 은인이야. 하지만... 그 답례를 내 딸로 하고 싶진 않네. 내 말 이해하겠나?”입을 꾹 다문 전동하가 고개를 끄덕였다.전동하도 한 아이의 아버지다.자식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사실 두 사람이 사귀는 거 난 딱히 좋게 보지 않아. 은정이한테는 좀 더 단순한 사람이 어울리거든. 예전에는 강희가 마음에 들었어. 능력도 떨어지고 허당이지만... 한눈에 우리 은정이를 많이 좋아하는 게 보이거든.”한숨을 내쉰 소찬식이 말을 이어갔다.“뭐, 은정이가 싫다고 하니 어쩔 수 없지만 말이야.”전동하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성강희...? 은정 씨가 별똥별을 보러 갔다가 조난되었을 때 성강희 씨도 있었지...은정 씨를 좋아했던 건가?“나도 알아. 자네는 아주 훌륭한 사람이야. 뭐 아들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아주 완벽해 보이지. 하지만 내 이 바닥에서 수십 년 동안 구르며 알게 된 게 있네. 이 세상에 완
어차피 전동하에게 전씨 일가는 가족도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남보다 더 못한 존재였다.눈엣가시 같은 전인그룹을 지금까지 내버려 둔 건 그저 귀찮았기 때문, 그뿐이었다.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소찬식이 살짝 풀어진 목소리로 말했다.“나가 봐. 은정이 그 자식 지금쯤 조마조마하게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말없이 일어선 전동하는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서재를 나섰다.내 과거를 인정해 주시는 건가?나랑 은정 씨... 이제 정정당당하게 만날 수 있는 건가?잔뜩 경직되어 있던 얼굴 근육에 힘이 풀리고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전동하였다.가장 큰 고비는 넘겼네.한편, 소은정은 마이크와 함께 2층 방으로 올라왔다.자가 업데이트 실패가 꽤 충격적이었는지 한동안 시무룩하던 소호랑도 마이크의 등장에 다시 기운을 차리고 폴짝폴짝 뛰어올랐다.소호랑의 부드러운 털을 만지던 마이크의 입가에도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그렇게 한참 동안 웃고 떠들던 그때...집사가 문을 두드렸다.“식사 준비 다 끝났습니다. 회장님께서 내려오시라네요.”“동하 씨는... 갔어요?”“아니요. 1층에서 회장님과 함께 바둑을 두시는 중입니다.”오호, 얘기가 생각보다 잘 풀렸나 보네... 역시 아빠라면 이해해 주실 줄 알았어.흐뭇한 미소를 지은 소은정이 마이크의 손을 꼭 잡고 1층으로 내려갔다.마이크의 애교와 재롱 덕분에 식사도 나름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이어졌다.식사 후.“아, 저는 일 때문에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전동하가 소파에서 일어섰다.하지만 마이크는 아빠 말고 소은정과 함께 있겠다며 그녀의 곁에 꼭 붙어 떨어지질 않았다.“아, 오늘은 누나랑 자고 갈래요. 네네?”마이크의 성화에 전동하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삼촌, 물고기들 통통하게 자랐어요? 우리 연못으로 가보면 안 돼요?”그렇게 두 사람은 낚시대를 들고 연못으로 향하고 긴장이 풀리며 피곤함이 밀려온 소은정은 2층 방으로 올라가 낮잠을 청했다.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저녁 6시.휴대폰을 확인해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