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정이 생글생글 웃으며 마이크의 작은 얼굴을 쓰다듬었다.“아빠가 네 걱정 얼마나 많이 하셨는데. 너 찾는다고 밤새 한숨도 못 주무셨어.”잔뜩 의심어린 표정으로 전동하를 바라보던 마이크가 그의 팔을 살짝 흔들었다.“역시, 아빠밖에 없어요.”마이크의 애교에 전동하의 마음도 사르르 녹아내렸다. 마이크의 머리를 쓰다듬던 전동하가 미소를 지었다.“그런데 어제 어쩌다 납치된 거야? 함부로 낯선 사람 따라가지 말라고 했잖아. 어떻게 된 거야?”마이크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더니 눈을 깜박였다.“전기섭 그 나쁜 아저씨가 날 향해 손을 젓더라고요. 아는 사람이니까 가까이 가보려고 했는데 바로 쓰러졌어요. 눈 떠보니까 아까 그 집이었고요...”전동하의 표정이 점점 진지해지자 말끝을 흐리던 마이크가 슬쩍 소은정 곁에 다가갔다.소은정의 부드러운 손가락을 살짝 건드린 마이크가 불쌍한 표정을 지어보였다.그 모습에 소은정이 바로 화제를 돌렸다.“처음부터 계획하고 접근한 거였나 봐요. 그런데 왜... 마이크를 납치한 걸까요?”처음에는 전기섭이 마이크를 인질로 잡아 전동하에게 뭔가를 얻어내려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동하는 생각보다 빨리 마이크를 찾아냈고 오히려 전기섭을 제압까지 해버렸다.이렇게 될 걸 몰랐나...잠깐 침묵하던 전동하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이제 곧 알게 될 거예요.”“전기섭은... 어떻게 처리할 거죠. 여긴 미국과 달라요. 정말 죽기라도 하면 귀찮아진다고요.”“글쎄요. 곧 아버지께서 오실 거예요. 동생을 구하기 위해 어떤 딜을 할지 두고 봐야겠죠.”동하 씨 아버지가?소은정이 흠칫했다.휴, 말투를 들어보니 아버지랑도 사이가 별로 안 좋나 보네...이런저런 생각에 왠지 마음이 안쓰러워졌다.차량은 한참을 달려 소은정의 본가에 도착했다.오피스텔이 아니라 본가에?소은정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하자 전동하가 마이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다들 마이크를 걱정하고 있을 것 같아서요. 무사하다고 인사는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그리
이때 소은정의 다른 한 손에 마이크의 말랑한 작은 손이 들어왔다.“예쁜 누나, 저 좋아하죠?”마이크가 소은정을 향해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아빠도 저 좋아하죠? 그러니까 우리 이렇게 손잡고 들어가요!”소은정과의 스킨십 기회를 또 한번 날려버린 아들이 원망스러웠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시간이 없으니 일단 나란히 집안으로 들어갔다.은정 씨 집만 아니었다면 바로 혼내는 건데...한편, 집사의 언질을 들은 소찬식이 주방에서 걸어나왔다.전동하의 얼굴을 확인한 그는 역시나 코웃음을 쳤다.이때 마이크가 뒤에서 작은 머리를 쏙 내밀었다.“삼촌...”마이크가 그의 품으로 달려들고 자연스레 그를 안으려던 소찬식이 멈칫했다.물고기 손질하느라 비린내가 나는 몸이 신경 쓰여서였다.“마이크, 잠깐만. 삼촌 옷만 갈아입고 올게... 비린내 심할 텐데...”하지만 어느새 폴짝 뛰어 그의 품에 안긴 마이크는 소찬식의 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아니에요. 비린내 하나도 안 나요! 우리 아빠 냄새보다 더 좋은데요 뭘!”마이크의 애교에 소찬식의 얼어붙은 마음도 살짝 말랑해졌다.“휴, 역시 마이크가 최고네. 어제 많이 힘들었지? 누가 널 데려간 거야?”“전기섭 그 나쁜 아저씨가요! 그런데 예쁜 누나가 절 구해 줬어요! 그러니까 우리 앞으로 한 가족인 거 맞죠?”마이크의 설명에 소찬식이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집사가 왠지 찬밥 신세가 된 소은정과 전동하의 곁으로 다가갔다.“아가씨, 어서 들어가시죠.”연신 고개를 젓던 소은정이 자연스레 전동하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아빠, 오빠랑 새언니는요? 마이크가 사과하겠다고 온 건데.”“너희 오빠 바쁜 거야 네가 더 잘 알면서 그래? 그리고 애가 무슨 잘못이니... 다 어른들 탓이지. 안 그래?”소찬식의 질문에 마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전기섭 아저씨는 나쁜 자식이에요.”“그래, 그래. 나빠.”마이크의 머리를 쓰다듬던 소찬식이 안절부절못하는 전동하를 힐끗 바라보더니 마이크를 내려놓았다.“마이크,
서재,전동하는 소찬식이 새 옷으로 갈아입을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공손한 태도로 서 있는 전동하를 힐끗 바라보던 소찬식이 소파에 앉았다.“앉게.”잠깐 고민하던 전동하가 결국 자리에 앉았다.그리고 소은정에게 말했던 일들을 다시 소찬식에게 전해 주었다.뭐든 처음이 어렵고 두 번째는 쉽다고 했던가. 저번에는 가슴이 꽉 막힌 듯 먹먹했다면 지금은 다른 사람 이야기를 얘기하는 듯 홀가분했다.고통이라는 게... 정말 나누면 줄어드는 거구나.말을 마친 전동하가 조용히 소찬식과 눈을 마주쳤다.분위기가 천천히 식어갔다.사실, 소찬식의 인내와 인자함은 어디까지나 가족 한정일 뿐, 다른 사람에게 소찬식은 아주 진지하고 무서운 사람이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침묵의 시간이 길어지고 전동하의 마음은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콩닥콩닥...마치 염라대왕의 마지막 심판을 기다리는 죄인마냥 심장이 옥죄어 왔다.한참 뒤에야 소찬식이 입을 열었다.“전 대표, 자네는 우리 은정이를 여러 번이나 구해 줬지. 자네는 영원한 우리 집안의 은인이야. 하지만... 그 답례를 내 딸로 하고 싶진 않네. 내 말 이해하겠나?”입을 꾹 다문 전동하가 고개를 끄덕였다.전동하도 한 아이의 아버지다.자식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사실 두 사람이 사귀는 거 난 딱히 좋게 보지 않아. 은정이한테는 좀 더 단순한 사람이 어울리거든. 예전에는 강희가 마음에 들었어. 능력도 떨어지고 허당이지만... 한눈에 우리 은정이를 많이 좋아하는 게 보이거든.”한숨을 내쉰 소찬식이 말을 이어갔다.“뭐, 은정이가 싫다고 하니 어쩔 수 없지만 말이야.”전동하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성강희...? 은정 씨가 별똥별을 보러 갔다가 조난되었을 때 성강희 씨도 있었지...은정 씨를 좋아했던 건가?“나도 알아. 자네는 아주 훌륭한 사람이야. 뭐 아들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아주 완벽해 보이지. 하지만 내 이 바닥에서 수십 년 동안 구르며 알게 된 게 있네. 이 세상에 완
어차피 전동하에게 전씨 일가는 가족도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남보다 더 못한 존재였다.눈엣가시 같은 전인그룹을 지금까지 내버려 둔 건 그저 귀찮았기 때문, 그뿐이었다.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소찬식이 살짝 풀어진 목소리로 말했다.“나가 봐. 은정이 그 자식 지금쯤 조마조마하게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말없이 일어선 전동하는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서재를 나섰다.내 과거를 인정해 주시는 건가?나랑 은정 씨... 이제 정정당당하게 만날 수 있는 건가?잔뜩 경직되어 있던 얼굴 근육에 힘이 풀리고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전동하였다.가장 큰 고비는 넘겼네.한편, 소은정은 마이크와 함께 2층 방으로 올라왔다.자가 업데이트 실패가 꽤 충격적이었는지 한동안 시무룩하던 소호랑도 마이크의 등장에 다시 기운을 차리고 폴짝폴짝 뛰어올랐다.소호랑의 부드러운 털을 만지던 마이크의 입가에도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그렇게 한참 동안 웃고 떠들던 그때...집사가 문을 두드렸다.“식사 준비 다 끝났습니다. 회장님께서 내려오시라네요.”“동하 씨는... 갔어요?”“아니요. 1층에서 회장님과 함께 바둑을 두시는 중입니다.”오호, 얘기가 생각보다 잘 풀렸나 보네... 역시 아빠라면 이해해 주실 줄 알았어.흐뭇한 미소를 지은 소은정이 마이크의 손을 꼭 잡고 1층으로 내려갔다.마이크의 애교와 재롱 덕분에 식사도 나름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이어졌다.식사 후.“아, 저는 일 때문에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전동하가 소파에서 일어섰다.하지만 마이크는 아빠 말고 소은정과 함께 있겠다며 그녀의 곁에 꼭 붙어 떨어지질 않았다.“아, 오늘은 누나랑 자고 갈래요. 네네?”마이크의 성화에 전동하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삼촌, 물고기들 통통하게 자랐어요? 우리 연못으로 가보면 안 돼요?”그렇게 두 사람은 낚시대를 들고 연못으로 향하고 긴장이 풀리며 피곤함이 밀려온 소은정은 2층 방으로 올라가 낮잠을 청했다.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저녁 6시.휴대폰을 확인해 보
전동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꿰뚫어 본 소은정이 전동하 곁으로 다가갔다.“박수혁은 아마 전기섭을 우리 아빠한테 안내하는 정도만 했지 마이크 납치와는 연관이 없을 가능성이 커요.”“왜 그렇게 생각해요?”전동하가 눈썹을 치켜세웠다.“박수혁은 아주 똑똑한 사람이에요. 자기한테 불리한 일은 거의 하지 않죠. 마이크를 납치해 봤자 박수혁한테 좋을 게 하나 없어요. 오히려 이 사실이 밝혀지면 명성에는 물론이고 태한그룹 주가까지 떨어지겠죠. 그리고 정말 가담했다면 다음 날 나한테 그 위치를 말해 줬을 리도 없을 테고요.”잠깐 생각에 잠겨있던 전동하가 피식 웃었다.“그럼 내가 박 대표한테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요?”“글쎄요. 어차피 본인이 직접 말하지 않았다 해도 동하 씨가 알아보면 충분이 알아볼 수 있었겠죠. 오히려 그렇게 밝혀지면 전기섭과 한패라고 의심받을 걸 아니까 저쪽에서도 미리 선수를 쳐서 손을 긋는 거고요.”소은정의 분석에 전동하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아마 은정 씨한테서 고맙다는 말 한 마디라도 들으려고 알려준 걸 텐데...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쪽에서 알면 꽤 약 오르겠네요.”내 말이 틀렸나?소은정이 어깨를 으쓱했다.“그래요. 은정씨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다행이고요.”박수혁... 이번에도 허탕쳤네.괜히 전동하를 흘겨보던 소은정이 국을 한숟가락 떴다.깔끔하고 담백한 맛에 소은정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지만 몇 술 뜨다 곧 숟가락을 내려놓았다.어휴, 더 먹으면 안 돼. 관리해야지...“다 먹었어요. 마이크한테는 대신 인사 전해 줘요. 난 일단 내려가서 회사 일 좀 처리해야겠네요.”고개를 끄덕인 전동하가 그녀를 문 앞까지 배웅해 주었다.소은정이 문을 나서려던 순간, 전동하가 그녀의 손목을 덥썩 잡았다.“뭐 까먹은 거 없어요?”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린 소은정이 이리저리 훑어보기 시작했다.휴대폰도 챙겼고 핸드백도 챙겼고... 까먹은 거 없는데?소은정이 고개를 젓자 전동하가 손목에 힘을 주어 그녀를 품에 꼭 껴안았다.
소은정은 그의 품에서 도망치기 위해 애써 발버둥을 쳐봤지만 온몸에 힘이 빠지며 다리에 힘이 풀리고 결국 전동하의 팔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쪽팔려...하지만 그런 감정도 잠시, 따뜻한 전동하의 입술이 닿는 순간, 공기의 흐름이 멈춰버린 듯 더 이상 쿵쾅거리는 심장 박동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전동하와 첫키스를 나눴을 때 광경이 소은정의 뇌리를 스쳤다.소중한 보석을 다루 듯 부드럽던 터치와 달리 전동하의 키스는 그녀의 영혼까지 빨아들일 듯 거칠게 몰아쳤다.이미 정신이 아득해진 소은정은 전동하의 리드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은 하얘지고 온몸이 감전이라도 된 듯 찌릿찌릿해졌다. 전동하의 치명적인 키스는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그렇게... 이 세상에 두 사람만 남은 듯 달콤하지만 거친 키스를 나누고 있던 그때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이 달콤함을 깨트렸다.“으아악!”샤워를 마친 마이크가 낸 소리였다.이게 무슨 상황이지?동그란 눈동자에는 분노, 실망 그리고 아빠에 대한 증오가 그대로 담겨있었다.갑작스러운 소리에 전동하를 확 밀친 소은정도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는 마이크를 발견했다.이 난처한 상황에 소은정의 작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살짝 부어오른 입술을 깨물던 소은정은 이 모든 사달의 범인인 전동하를 매섭게 노려봐준 뒤 도망치 듯 오피스텔을 나섰다.붙잡을 새도 없이 나가버린 소은정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전동하가 피식 웃더니 입술을 만지작거렸다.은근 쑥스러움 잘 타는 성격이란 말이야...한편, 감정을 추스른 전동하가 마이크를 향해 말했다.“그만해!”짜증과 분노가 살짝 담긴 호통에 마이크는 바로 비명을 멈추었지만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는지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그리고 다음 순간, 전동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식탁 앞으로 걸어가 식사를 시작했다.그 모습에 마이크는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뭐야? 내 기분 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는 거야?짧은 다리로 식탁 옆의 의자에 오른 마이크가 분노로 가득한 눈동자로 아빠를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마이크가 눈물을 닦으며 절규했다.이렇게 불쌍한 척이라도 해 보이면 전동하의 마음이 약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였다.“아빠는 너무 늙었잖아요. 다른 여자랑 사귀면 안 돼요? 이번에는 절대 안 괴롭힐게요. 그러니까 예쁜 누나는 나한테 돌려줘요...”순간, 전동하의 곁을 맴돌던 수많은 여자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그 여자들이 뭘 노리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온갖 술수로 여자들을 쫓아냈었던 마이크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내가 내 무덤을 팠던 거였어...하지만 전동하는 아들의 마음을 바로 꿰뚫어 본 듯 피식 웃었다.“기다린다는 말은 그냥 네 장단에 맞춰준 거잖아. 그걸 진짜 믿으면 어떡해? 그리고 아빠는 진심으로 은정 씨가 좋아. 아, 앞으로 어떻게 아빠 재산을 빼앗을까 고민 안 해도 돼. 이제 아빠 돈은 전부 은정 씨를 위해 쓸 거니까...!”전동하의 말과 함께 마이크의 울음소리가 더 세차게 울려 퍼졌다.10년도 안 되는 짧은 인생에서 처음 느껴보는 절망이었다.한편, 전동하는 아주 침착한 얼굴로 식사를 마친 뒤 설거지까지 끝내고 욕실로 향했다.하, 모른 척 하겠다 이거지?마이크는 쫄래쫄래 전동하의 방으로 자리를 옮겨 그의 침대에 누워 계속 오열하기 시작했다.그 모습에 샤워를 마치고 나온 전동하의 머리도 지끈거리기 시작했다.휴, 방음이 좋아서 다행이야...하지만 전동하는 애써 마이크를 무시한 채 침대에 누워 자는 척 눈을 감았고 그 모습에 한동안 훌쩍이던 마이크도 지쳤는지 깊은 잠에 빠졌다.다음 날 아침.전동하는 마이크를 번쩍 안아 세수를 시킨 뒤 직접 오늘 입을 옷을 코디해 주기 시작했다.비몽사몽한 상태로 전동하의 손에 이끌리던 마이크가 정신이 든 듯 바로 눈시울을 붉혔다.“아빠 용서 못해요... 당장 헤어져요!”마이크의 말에 전동하의 손이 멈칫했다.“아들, 이성적으로 생각해. 지금 은정 씨가 아빠랑 사귀니까 자주 얼굴도 볼 수 있고 하는 거야. 만약 다른 남자와 사귄다면
사실 어젯밤, 마이크에게 키스 장면을 들켰다는 사실에 소은정은 한참을 뒤척인 뒤에야 잠이 들었다.마음 같아선 며칠 동안 잠수라도 타고 싶었지만 그룹 대표인 그녀가 자리를 비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게다가 오늘은 마이크의 새 학교로 가보기로 한 날.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 했던가? 소은정은 우연준에게 오늘 아침 회의를 취소한다는 문자를 보낸 뒤 약속시간보다 먼저 내려와 두 사람을 기다리기 시작했다.두 부자가 다가오고 전동하를 향해 싱긋 웃던 전동하가 허리를 숙여 마이크를 향해 손을 저었다.“좋은 아침이야.”순간, 어젯밤 광경이 다시 떠오르며 마음이 착잡해졌지만 아빠의 경고를 떠올리며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좋은 아침이에요, 예쁜 누나...”뭐야. 나랑 결혼하기로 해놓고 어떻게 아빠랑... 어른들은 다들 약속을 안 지키는 건가?소은정에 대한 원망이 남아서인지 마이크의 미소는 어색을 넘어 왠지 기괴하기까지 했다.“오늘은 일단 구경만 하는 거야. 마음에 안 들면 바로 말해.”소은정이 마이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음? 마음에 안 들면 안 가도 되는 건가?순간 마이크가 눈을 반짝였다.차를 타고 학교로 가는 내내 마이크는 잔뜩 풀이 죽은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소은정은 전동하가 준비한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이때 전동하가 우유를 건넸다.“천천히 먹어요. 체하겠어요.”싱긋 웃으며 우유를 받아든 순간, 두 사람의 손가락끝이 살짝 스쳤다.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든 소은정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전동하를 보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하, 틈만 나면 유혹한다니까, 여우 같은 남자...잠시 후. 사립국제학교에 도착한 소은정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깔끔한 인테리어, 최첨단 설비, 그리고 최고급 교사 인력까지.무시무시할 정도로 비싼 학비로 인해 이곳에 입학할 수 있는 건 전부 서산에서 나름 한가닥 한다는 집안 자제들이었지만 그마저도 학교에서 준비하는 레벨 테스트에 통과해야만 입학이 허가되는 곳이기도 했다.먼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