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과거를 내려놓았다면, 나를 ‘형님’이 아닌‘하민’이라고 불러야겠지.” ‘형님’이라는 호칭은 상혁이 하연을 따라서 부르기 시작한 것이었다.상혁은 술에 취하지 않았고, 적어도 80%는 맨정신이었다. 그는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하연이가 그러더군요, 이제 그만하자고요... 저는 강요할 수도 없어요.”그 말은 상혁의 마음을 깊숙이 파고들며 아프게 했다.“내가 아는 부상혁은 이렇게 쉽게 포기할 사람이 아니야.”“일에 관해서는 포기하지 않죠. 삶에 관해서도 그렇고요. 하지만 사랑에서는요? 오랜 시간 버텨봤지만, 특별한 감정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에요. 형님이라면 계속 버틸 수 있겠어요?”상혁의 눈빛은 진지했다. 연기가 그의 눈과 이마를 가리며 흐릿하게 번져갔다.그는 스스로 절대적인 사랑과 안정감을 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사찰에서 하연과 이현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어떤 일들은 강요로 해결되지 않으며, 혼자만의 감정으로는 절대 진전이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하민은 눈살을 찌푸리며 상혁을 바라보았다. 상혁은 눈을 감으며 계속 말했다. “저도 지칠 때가 있어요.” 하민은 문득 조용히 물었다.“진숙 이모는 요즘 어떻게 지내셔? 여전히 하연이의 안부를 자주 물으셔?”최하민은 상혁 옆에 앉아 있었다. 더 이상 최고 권위자의 고집스러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다정하고 친숙한 한 사람의 모습이었다.하민의 부모님은 일찍 세상을 떠났다. 남매는 부동건과 조진숙의 따스한 보살핌 아래에서 자랐다. 조진숙은 특히 하연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진숙 이모는 늘 말씀하셨지. ‘하연이는 여자아이니까 아무리 뛰어나도 쉽지 않다’고. 나는 진숙 이모의 말씀이 맞다고 생각해. 우리가 아무리 하연이를 아끼고 사랑해도, 부모가 주는 사랑과는 다를 테니까.” 하민은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상혁아, 너도 잘 알겠지만, 하연이는 자립심이 강하고 고집이 세. 하나면 하나, 둘이면 둘이야. 사랑에서도 그렇고. 누군가가
밤이 깊었다. 실의에 빠진 하연은 차 뒤에 몸을 숨긴 채, 하민에게 고개를 저으며 말없이 입을 다물라는 신호를 보냈다....다음 날 아침 8시, DL그룹의 회의 시간이 되었다. “고경수에 대한 조사는 이미 끝났고, 이제 사법 절차에 들어갈 것입니다. 관련된 인물들도 모두 법의 심판을 받았고요.” 부상혁은 회의의 주석 자리에 앉아, DL그룹의 상황을 간략히 요약한 뒤 참석자들을 향해 물었다. “의문이 있으십니까?” 부남준은 이번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건강상의 문제’였다. 이사회의 이사들은 의견이 있건 없건 침묵을 지켰다. 부동건은 회의실의 가장 끝자리에 앉아 이 광경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다. 비서실 수석 비서인 원신민은 즉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겠습니다.” PPT 화면이 켜지며 커다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DL그룹 향후 5년 전략 계획] 아주 중요한 주제인 만큼, 상혁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기본적인 내용을 두 시간에 걸쳐 설명했다. 발표가 끝난 후, 물을 한 잔 마신 그는 한 손으로 테이블에 기대며 말했다. “질문 사항 있으십니까?” 오른쪽에 앉아 있던 동남아시아 지사장인 정규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렇게 상세한 일정과 계획이라니, DL그룹을 세계 1위로 만들겠다는 건가요? 부 대표님, 몸은 괜찮으십니까?” 겉으로는 칭찬 같았으나, 그 속엔 조롱이 담겨 있었다. 상혁은 아직 공식적인 대표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었다. 임시로 관리하고 있을 뿐, 정식 직함도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도 정규인은 상혁을 ‘부 대표님’이라 불렀다. 상혁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받아쳤다. “아버지께서 제게 이런 중요한 자리를 맡겨주셨으니, 저 또한 그 기대에 부응하며 이 자리를 지켜내야 합니다.” “금천파이낸스의 논란은 해결됐습니까?” 정규인은 일부러 질문을 던졌다. “정 사장님, 아직 모르셨나 보네요. 금천파이낸스는 이미 국제 IPO에 상장됐습니다.
부남준은 운성시 입찰에서 실패하고 성과 없이 돌아왔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큰 실책이었는데, 돌아오자마자 고경수 사건의 여파까지 맞닥뜨리게 되었다. 최소 1년 반 동안은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비록 남준이 그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지만, 부패와 뇌물 사건에 얽힌 이상, 부동건의 의심하는 성향을 고려하면 그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다.부상혁이 둔 이 한 수는 일거양득이었다. “네 엄마도 여전히 네가 DL그룹에 야망이 없다고 생각하시지. 하지만 네 엄마가 널 잘못 본 거야.” 부동건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어젯밤 하민이가 주씨 가문 본가에서 소란을 피운 모양이더군. 너와 관련된 일이라던데, 무슨 상황이야?” 이미 이렇게 물어본 것만 봐도 주원빈이 부동건에게 모든 것을 보고한 듯했다. 상혁은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다 아시지 않습니까?” 부동건은 목소리를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주씨 가문의 장녀가 너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 하연이와의 관계를 끊는 게 나을 거야. 너희는 멀리 떨어져 있어, DL그룹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부동건은 잠시 말을 멈추고 나서 이어서 말했다. “처음에 그 사건만 아니었다면, 네가 DL그룹의 대표 자리에서 물러날 일을 없었을 텐데 말이지.” 상혁은 부동건의 말을 들었지만,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고,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관계를 끊는 게 나을 거야’라는 말에 상혁의 심장은 한 번 찔린 듯한 고통을 느꼈다. “최씨 가문 쪽은 내가 직접 가서 사과하면 될 일이니까...” ...상혁이 사무실을 나서자, 문 앞에서 기다리던 원신민이 조용히 말했다.“황 비서님이 대표님을 뵙고 싶어 하십니다.”상혁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물었다.“원 비서는 뭐라고 했지?”“대표님께서는 지금 아주 바쁘시고, 앞으로도 계속 바쁘실 거라고 전했습니다.”원신민은 업계에서 유명한 비서로, 사람의 눈치를 잘 살피는 사람이었다
“하연이가 언제 돌아왔지?”연지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이번 수는 확실히 옳았어. 역시 최하연은 부상혁의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사람이었어. 언제든 최하연의 이름이 언급되면 그 효과는 배가 되는 것 같으니.’“오늘 아침에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최하민 대표님의 여자 친구분께서 매우 조용한 분이라, 최하연 사장님께도 알리지 않으신 모양입니다.”‘조용하다’는 말은, 최하민의 여자 친구가 하연만큼 좋은 출신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만약 어느 명문가의 딸이었다면 이미 세간에 소문이 돌고도 남았을 것이다.상혁은 그날 호텔에서 보았던, 그 연약한 하얀 꽃 같은 여자를 떠올렸다.... 최하민이 예아름을 집에 데려오겠다는 것은 갑작스러운 결정이었다. 원래 모든 것을 계획대로 진행하려 했으나, 어젯밤 상혁과 하연의 관계가 어둠 속에서 무언의 갈등으로 번져나가는 것을 본 이후, 그는 전례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아름은 입술을 깨물며 눈에 혼란스러운 감정을 담아 물었다.“하민 씨 집안이 날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하민 씨의 할아버지, 동생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있잖아요.” 하민은 아름 앞에 쭈그려 앉으며 말했다. “우리 집안은 사람을 외모나 배경으로 판단하지 않아요. 인품만 본다고요.”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부드럽게 덧붙였다. “게다가 지금은 내 동생들이 없고, 할아버지와 하연이만 있어요. 그냥 편하게 식사 한 끼 하는 거니까, 괜찮죠?” CS그룹의 대표, 늘 언론사 앞에서 냉혹하고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최하민이 한 여자의 허리를 감싸며 부탁하고 있는 모습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아름은 알고 있었다. 최하민이 외부에 드러난 모습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하민은 CS그룹의 대표가 아니었다. 그 당시, 아름은 CS그룹의 경쟁사 연구원으로, 오랫동안 두 그룹을 연구하고 있었다. 하민이 신임 대표로 발돋움하는 날, 아름은 길에서 갑작스럽게 심장마비가 온 하민을 구
“이렇게 많다고요?” 하연은 살짝 눈길을 돌려 리스트를 훑어보았다. “그게 다가 아닙니다. 몇몇 사모님들께서도 하연 아가씨가 앞으로 며칠이나 시간이 있냐고 물어보셨어요. 오후에 차나 한잔하자고 하셨습니다.” 그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최동신은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다 미뤄. 우리 하연이에게 남자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닌데, 뭘. 내가 보기엔 상혁이가 아주 괜찮더구나.” 그 말을 듣고, 하민은 즉시 하연을 바라보았다. 하연은 갑자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후에 차 정도는 마실 수 있어요. 그분들을 우리 집으로 모시도록 하세요.”당황한 최동신은 잠시 굳은 얼굴로 하연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연아, 설마 상혁이랑 헤어진 거야?” 하연은 자리에서 웃음기를 거둔 채 말했다. “할아버지, 부상혁 씨가 저와 헤어지자고 했어요.” ...예아름의 방문은 무척 유쾌한 시간이 되었다.점심 식사 후, 하연의 시간이 찾아왔다. 여러 명문가 자제들이 방문했고, 하연은 그들이 익숙한 얼굴이든 낯선 얼굴이든 상관없이 환영하며 친절하게 대했다.긴 생머리에 절제된 미소를 띤 하연은 한 남성에게 말했다.“나이로 보면 제가 오빠라고 불러야 하겠네요.”그들 중 일부는 한때 하연의 이혼 경력을 걸림돌로 여겼다. 그러나 지금 직접 그녀를 만나보니, 그 매력은 한없이 컸다. 게다가 최씨 가문과 혼인하게 된다면, 몇 세대가 지나도 걱정할 것이 없을 테니까.하연은 그들이 무엇을 바라고 이곳에 왔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상혁이 이 상황을 알게 되었을 때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한 시간 반이 지나자, 정원에서는 속닥속닥 말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정말 아름다워. 매력이 단번에 드러나잖아. 부상혁이 최하연에게 푹 빠질 만도 하지.” “헤어졌다더라.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거 아냐?” “질린 거 아닐까? 그래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잖아. 일반적인 ‘중고’라면 탐내지 않을 테지
여은은 약간의 이성을 유지하며 침묵하는 하연을 살펴보았다. “무슨 일이 생긴 거야?” “무슨 일이 생겼어도,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헤어질 필요는 없잖아! 진짜 화가 나 죽겠어! DL그룹이 뭐라고, 부상혁이 뭐라고! 난 반드시 부상혁이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 예나는 분노에 차서 핸드폰을 거칠게 집어 들었다. 마치 하연이 한서준과 이혼할 때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하연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예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몸을 숙여 물었다. “설마 부상혁이 바람피웠어?” “사실 내가 먼저 말했어.” 하연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때 자신이 한 말이 진짜가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말했어. 우리... 그만 헤어지자고.” “왜?” “한명준이 살아 있어. 지금은 B시에 있대.” 예나는 깜짝 놀라며 바로 외쳤다. “네가 바람 피운 거야?” 그녀는 이마를 짚고 일어섰다.‘정말 하연이가 먼저 그랬다면, 부상혁의 행동이 극단적이라고 할 수는 없어.’“음... 설령 그렇다고 해도, 네가 한명준과 다시 연락한 것도 아니잖아. 그럼 대체 뭐가 문제야?” ‘그러니까... 뭐가 문제일까?’ 하연은 문득 뭔가를 떠올렸지만, 생각이 복잡해져 더 깊이 파고들 용기가 나지 않았다. “헤어진 직접적인 이유는 한명준 때문이 아니야.” ...하연과 상혁의 결별 소식에 진심으로 놀라지 않은 사람은 오직 신가흔뿐이었다. 오히려 가흔은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어쩌면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랑이라서 이렇게 끝나는 거겠지.] 여은은 그룹 채팅방에 물음표를 보냈다. [?][그래서 나도 하성 오빠랑 헤어졌어.] 예나는 즉시 느낌표를 보냈다. [!][하성 오빠가 여배우랑 스캔들 난 사진이 돌았는데, 내가 돈을 주고 사들여서 퍼지지 않았거든.] 하연은 잠시 말없이 있다가 곧바로 핸드폰을 집어 들어 하성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 그때 여은이 덧붙였다. [물론, 우리가 헤어진 이유가
한때 아름다웠던 연인이 헤어졌다는 소문이 F국 전역에 퍼졌고, 그 가운데에 있던 부씨 가문과 최씨 가문을 향한 소문과 루머가 쏟아졌다. 특히 하연을 향한 비난은 심했는데, 그 이유는 단순했다. 하연은 여성인 데다, 이혼한 경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주슬기의 비서는 이러한 소문을 주시하며 슬기의 마음을 헤아리기 시작했다. “DS그룹과 HD그룹이 신재생 에너지 자원을 놓고 경쟁 중입니다. 이번 기회에 불을 붙이면, 왕씨 가문이 우리를 한 번쯤은 도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고, 슬기는 비웃으며 말했다. “왕씨 가문이 뭐라고? 내가 그 사람들한테 비위를 맞춰야 하나?” 비서는 서둘러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물론 왕씨 가문은 대표님 가문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최씨 가문은...” 지금 최씨 가문은 최하민과 최하연이 주도하고 있었으며, 현재 주씨 가문보다 훨씬 더 강력한 위치에 있었다. F국의 재벌 2세 중, 재능 있는 자제에는 최하민과 최하연, 그리고 부상혁까지 포함될 수 있었다. 하지만 주슬기는 아직 그 세 사람만큼 많은 성과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씨 가문은 약간의 세대교체 위기를 겪고 있었다. 그래서 비서도 슬기가 더 많은 가문과 유대 관계를 맺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제안한 것이었다. “그런 일은 신경 쓸 필요 없어. 나는 뒷걸음질하는 방식으로는 움직이지 않아. 최하연이 이겨낸다면 본인의 능력인 거고, 이겨내지 못한다고 해도,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뒤에서 돌을 던지는 짓은 나와 맞지 않아.” 슬기는 단호하게 말했다. “오늘 간담회에 부상혁도 참석하나?” 비서는 서류를 넘기며 답했다. “예, 정상적으로 참석합니다.” 상혁은 모든 일정을 평소처럼 소화하고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어떤 일에도 미뤄짐이 없었다. “나도 가야겠네.” 간담회가 끝나기 전에 남은 몇 차례의 세션이 있었지만, 슬기와 상혁이 마주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금융위원회의 빌딩 앞, 슬기는 상혁과의 시간
간담회가 끝난 후, 여러 매체가 많은 사진을 찍었고, 그것을 급히 송출하려고 할 때, 원신민이 이를 막았다.그는 겉으론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속은 여우처럼 교활했다. “부 대표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부 대표님과 최하연 사장님에 관한 사진은 한 장도 외부로 유출돼서는 안 됩니다. 만약 기사가 나가면, DL그룹 법무팀이 나설 수밖에 없을 겁니다.”DL그룹의 법무팀은 그동안 수많은 소송에서 승리해 왔고, 심지어 불리한 사건조차 뒤집을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대단했다. 기자들은 어색하게 웃음을 잃고, 어쩔 수 없이 말했다. “부 대표님의 입장은 이해합니다만, 저희도 난처한 상황입니다. 여기는 공개된 장소이고...” “곧 각자의 계좌로 이만한 수고비가 입금될 겁니다.”원신민이 수고비 금맥을 제시하자, 기자들은 일제히 침묵했다. 간담회가 끝난 후, 현장은 여전히 붐볐고, 하민은 잠시 자리를 비웠다. 상혁은 자리에 그대로 앉아 뒤를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갑자기 귀국한 건 뭐 때문이지? DS그룹은 신경 안 써도 되는 건가?” 하연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제가 무슨 결정을 하든 부 대표님께 보고할 필요는 없을 텐데요? 날 위해 행복을 빌어준 거 아니었나요?” 그녀는 상혁의 말에 반박하며 날카로운 말투로 응수했다. “언론의 기사는 내가 최대한 조정할 거야. 너의 명예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은 법무팀이 처리할 거고.” 이것이 하연의 귀에는 마치 상혁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정말로 두 사람의 관계를 끝내고 싶다는 말로 들렸다.그녀는 속이 쓰려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DS그룹과 CS그룹도 변호사는 있으니까요.” 하연은 하민을 향해 걸어갔다. 사람들 사이로 발걸음을 옮기던 중, 앞쪽 계단에서 누군가 그녀를 밀쳐 발목을 접질려 넘어졌다. “아!” 순간, 상혁의 가슴이 철렁하며 몸이 굳었다. 그는 곧바로 허리를 굽혀 하연을 도우려 했다.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하연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