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담회가 끝난 후, 여러 매체가 많은 사진을 찍었고, 그것을 급히 송출하려고 할 때, 원신민이 이를 막았다.그는 겉으론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속은 여우처럼 교활했다. “부 대표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부 대표님과 최하연 사장님에 관한 사진은 한 장도 외부로 유출돼서는 안 됩니다. 만약 기사가 나가면, DL그룹 법무팀이 나설 수밖에 없을 겁니다.”DL그룹의 법무팀은 그동안 수많은 소송에서 승리해 왔고, 심지어 불리한 사건조차 뒤집을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대단했다. 기자들은 어색하게 웃음을 잃고, 어쩔 수 없이 말했다. “부 대표님의 입장은 이해합니다만, 저희도 난처한 상황입니다. 여기는 공개된 장소이고...” “곧 각자의 계좌로 이만한 수고비가 입금될 겁니다.”원신민이 수고비 금맥을 제시하자, 기자들은 일제히 침묵했다. 간담회가 끝난 후, 현장은 여전히 붐볐고, 하민은 잠시 자리를 비웠다. 상혁은 자리에 그대로 앉아 뒤를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갑자기 귀국한 건 뭐 때문이지? DS그룹은 신경 안 써도 되는 건가?” 하연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제가 무슨 결정을 하든 부 대표님께 보고할 필요는 없을 텐데요? 날 위해 행복을 빌어준 거 아니었나요?” 그녀는 상혁의 말에 반박하며 날카로운 말투로 응수했다. “언론의 기사는 내가 최대한 조정할 거야. 너의 명예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은 법무팀이 처리할 거고.” 이것이 하연의 귀에는 마치 상혁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정말로 두 사람의 관계를 끝내고 싶다는 말로 들렸다.그녀는 속이 쓰려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DS그룹과 CS그룹도 변호사는 있으니까요.” 하연은 하민을 향해 걸어갔다. 사람들 사이로 발걸음을 옮기던 중, 앞쪽 계단에서 누군가 그녀를 밀쳐 발목을 접질려 넘어졌다. “아!” 순간, 상혁의 가슴이 철렁하며 몸이 굳었다. 그는 곧바로 허리를 굽혀 하연을 도우려 했다.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하연을
상혁은 한쪽을 보지도 않은 채, 극도로 평온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차분함 속에서 묘하게 불편한 분위기가 흘렀다. 하연은 믿을 수 없었는데, 상혁이 이렇게 차갑게 나올 줄은 정말로 상상하지 못했다. 상혁은 한참이나 조용히 담배 한 개비를 다 피운 후, 옆에 걸쳐 두었던 외투를 집어 들었다. “형님에게 연락했으니, 곧 너를 데리러 올 거야. DL그룹에 할 일이 있어서 나는 먼저 가볼게.” 그 순간, 하연은 숨이 막혀오며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부상혁 씨, 내가 지금 당신에게 설명하고 있잖아요. 정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을 거예요?” 그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문 앞에 다다르자, 하연이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도 알잖아요. 내가 돌아온 이유가 바로 당신 때문이라는 걸. 당신이 사채 문제에 휘말렸을 때 내가 금천파이낸스를 찾아갔어요. 그곳에서 당신이 바로 '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죠. 당신은 나를 위해 2000억이라는 큰돈을 내놓는 위험을 감수했잖아요. 그런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믿을 수 없어요.”상혁이 발걸음을 멈췄다.하연은 재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그날 밤, 내가 그만하자고 했던 건, 그저 화가 나서였어요. 하지만 당신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고는 제일 먼저 금천파이낸스 문제를 해결했죠. 그리고 거기 사람들을 상장시켰고요. 이후, 당신이 그 문제를 해결하려 얼마나 애쓰는지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큰오빠에게 부탁했어요, 당신을 데려가 달라고... 사실 나도...” 그때 하연은 아직 비행기 안에 있었고, 하민에게 그 부탁을 했을 때, 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남녀 간의 감정 문제는 외부 사람이 해결할 수 없어. 무엇보다 상혁은 남에게 구원받을 사람도 아니야.” “알고 있어요. 하지만 한 번은 시도해 보고 싶었어요. 제발요, 오빠.” 결국 하민은 동생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내가 너 대신 다녀올게.” 하민은 상혁을 주씨 가문 본가에서 데리고 나왔고, 그날
상혁은 손에 쥔 펜을 꽉 쥐었다. 잠시 후 그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연인 관계는 끝났지만, 바깥에서는 제가 여전히 하연이의 네 번째 오빠예요.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꼭 하연이를 지킬 거예요.” 조진숙은 아들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상혁이 하연을 아낀 것은 수년 동안 변함이 없었는데, 어째서 이렇게 갑자기 태도가 변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스스로 물을 한 잔 따라 마시면서 상혁을 향해 쏘아붙였다. “역시 남자들은 하나같이 다 똑같군. 네 아빠도 그랬고, 너도 그러니까. 마음이 변했다니, 밖에 다른 여자라도 생긴 거 아니야?” “어머니...” “역시 유전자는 속일 수 없군.” “어머니!!” 바로 그때, 사무실 문이 갑자기 열리며 부남준이 들어왔다. 그는 느긋한 자세로 한쪽에 기대며 말했다. “이모, 왜 그렇게 화가 나셨어요? 누구의 마음이 변했다는 겁니까?” 남준의 얼굴에는 피곤함이라고는 전혀 없었고, 오히려 자신만만해 보이며 서류를 말아서 들고 있는 모습에서 기세가 넘쳤다. 조진숙은 그런 남준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지만,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했다. “글쎄다. 용의 자식은 용이 되고, 범의 자식은 범이 되는 법이지. 쥐의 자식은 결국 구멍을 파고!” 남준은 무슨 뜻인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상혁의 책상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형님, 복직 관련 서류입니다.” 상혁은 담담하게 서류를 받아 한 번 훑었다. 그 안에는 남준이 원래 맡았던 직위로 복직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직위는 그대로였지만, 연봉이 대폭 줄어들었다. 사실 남준에게 돈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룹이 혼란스러워 인력이 부족한 상태라 아버지께서 저를 불러들이신 거죠. 형님,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세요.” 상혁은 여전히 침착했지만, 조진숙은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부동건의 사무실로 향했다. 상혁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
비록 언론이 약속을 지켜 사진과 기사를 유출하지는 않았지만, 간담회와 관련된 내용은 하연에 대한 언급 없이 흘러갔다.하지만 상류층 사이에서는 이미 이 소식이 꽤 널리 퍼져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부상혁과 하연이 완전히 끝난 사이라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었다.이 소식을 접했을 때, 서여은은 막 인터뷰를 마친 참이었다. 이번 인터뷰 상대는 이혼 후 자기 삶의 주도권을 찾게 된 상장사의 여자 대표였다. 인터뷰를 마친 두 사람은 카페에서 악수하였다.“오늘 정말 즐거운 대화였습니다. 이번 기사 기대하고 있을게요. 그때가 되면, 제 회사도 적극 구독하겠습니다.”여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정중하게 답했다.“대표님께서는 정말 좋은 생각들을 가지고 계시네요. 저도 앞으로의 협력을 기대하고 있습니다.”여은이 서류를 정리하려던 순간, 옆자리에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부상혁이 드디어 독신이 되었네. 이번에 부상혁이 결심을 내린 것 같아. 슬기야, 이제는 모두의 관심이 너에게 집중될 거야.” “왜 ‘드디어’라고 말하는 거야?” “누가 봐도 알잖아. 최하연은 심지어 간담회까지 따라갔지만, 상혁은 최하연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어. 그걸로 다 설명되지 않아?” 슬기 맞은편에 앉아 있던 아름다운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도대체 최하연이 무슨 짓을 한 건지 모르겠어...”슬기는 잠시 망설이는 태도를 보였다. 그날 상혁이 하연을 안고 나가는 모습을 봤을 때, 슬기의 기분은 당연히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굳이 그를 따라가지 않았다. 이럴 때 억지로 밀어붙이는 것은 통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잠시 후에 나온 상혁의 곁에는 하연이 없었다. 이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 “최하연이 무슨 일을 했든 상관없어. 이제부터는 내가 행동을 취할 차례야.” 슬기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는데, 눈빛에는 야망이 가득했다. “슬기야!” 여은과 함께 있던 여자 대표가 슬기의 목소리를 듣고 놀라며 다가갔다.
병원 로비의 대형 스크린에는 이번 항공기 사고가 실시간으로 보도되고 있었다. 최하연은 세 명뿐인 생존자 중의 하나로 두 다리에 붕대를 감은 채 중환자실 병상 위에 누워 있었다.그때, 손에 들린 핸드폰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다음에 다시 걸어주세요.”사고가 나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남편 한서준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설마 그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여객기 사고를 모를 일은 없었다. 사고 당시, 현장에는 승객들의 시신이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그녀는 사고의 충격과 죽음의 공포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결혼한 지 3년이나 되었지만 남편은 그녀가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 연락이 되지 않았다.하연은 마음 한 켠이 시려 오는 것을 느꼈다.그때, 휴대폰 벨 소리가 들려왔다. 한참이나 멍하게 있던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발신자를 확인했다. 할머니였다. 하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여보세요.”그녀가 잔뜩 쉰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전화 건너편에서 친절하면서도 연로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우리 하연이, 이 할미가 너 때문에 너무 놀라서 제 명에 못 죽겠구나.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서준이가 옆에 같이 있지?]강영숙은 서준의 친할머니로 한씨 집안 사람들 중 유일하게 하연에게 관심을 갖는 분이었다. “서준 씨는...”머뭇거리는 그녀의 말에 강영숙이 무언가를 눈치 챈 듯했다. [이런 정신 나간 놈을 봤나! 비서로 또 아내로, 해외 출장간 남편 일을 다 봐주고 있는데 이렇게 큰 사고가 터졌는데도 코빼기도 안보여? 기다려봐라! 이 할미가 정신나간 그 녀석을 가만 두나!]그녀가 다시 물었다.[지금 어느 병원에 있어? 집사를 보낼 테니 기다리렴!]하연이 병원 주소를 알려주자 강영숙은 전화를 끊었다.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하연은 두 달 전, 1주일 정도 출장 일정이 잡혀 있던 한서준의 일정보고서가 생각났다.핸드폰을 쥐고 있는 그녀의 손이 떨려왔다.‘그 때 생긴 아이인 거야?’그녀는 한서준의 숨겨진 아내로 오래 전부터 비밀계약을 맺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껏 남편의 스캔들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한서준 사장이 여자친구에게 참 각별한 것 같아... 저 여자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봐. 보아하니 곧 공식발표가 날 것 같은데?”“그러게. 나도 아까 검색해 봤어. 네 생각엔 저 사람이 여자친구가 맞는 것 같아?”카트를 밀고 가던 젊은 간호사가 옆에 있는 간호사에게 핸드폰 속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녀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맞아, 맞아! 이 여자야! ST그룹 둘째 딸! 한서준이랑 너무 잘 어울리지 않아? 하늘이 맺어준 커플 같아!”두 사람은 호들갑을 떨며 반대편으로 걸어갔다.‘ST 그룹이라...’퇴원 수속을 마친 하연은 집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면서도 마음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반쯤 열린 창문 아래 핸드폰 화면의 불빛이 창백한 하연의 얼굴을 비췄다. 수 없이 검색해 봤지만 한서준과 ST 그룹과의 연관성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B시의 잘 나가는 두 명문가 집안이 이런 식으로 엮이다니 이상해.’서준의 본가에 도착하니 거실에 불이 켜져 있었다. 눈엣가시 같은 시누이 대신 서준의 할머니인 강영숙 여사가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우리 하연이 왔구나! 네가 복이 많아서 그 큰 사고 중에도 무사했구나.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숨이 넘어갈 뻔했지 뭐냐.”“할머니, 전 괜찮아요.”하연은 올라가 쉬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웃으며 말했다.“할머니, 사실 저 좀 피곤해요.”“그래, 그래. 얼른 올라가서 쉬어라. 서준이한테 연락해 놨으니까 곧 올 거다.” 하연은 몸을 숙이는 순간 심한 통증이 몰려와 얼굴이 일그러졌다.강영숙은 하연이 괴로워하는 모습의 이유가 서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연의 머릿속에 서준의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당신이랑 그 여자, 대체 언제부터 만난 거야?”하연이 겨우 몸을 추스르며 침대에 기대앉았다.서준은 그녀가 3년전 혼인신고를 할 때보다 훨씬 말랐다는 것을 알아챘다. 어찌나 야위었던지 바람이 불면 날아가버릴 것 같았다.“당신 내 뒷조사를 한 거야?”그의 안색이 변했다. “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으로 보여요? 내가 입원했던 병원에서 내 두 눈으로 당신들 두 사람을 봤어요.”그녀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지만 그 어느때보다 딱 부러지는 말투였다.순간, 하연은 심장이 찢기는 듯한 괴로움을 느꼈다.하지만 서준의 얼굴에는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는 하연이 사고가 난 것을 알면서도 걱정해하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가 하는 말들을 들으며 혐오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부부로 살았던 3년이라는 시간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며느리로서 일을 열심히 했지만 하는 일 마다 트집잡는 시어머니와 자신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시누이에게 하연은 정성을 다했다. 집에서는 주부로 또 회사에서는 헌신적인 비서 역할을 도맡았다. 그녀는 서준의 할머니 강영숙 여사의 뜻에 따라 아들, 딸 잘 낳는 좋은 손자며느리가 되려고 노력했다.3년 동안 그만큼 했으면 강영숙 여사에게 가족으로서의 의리는 충분히 지킨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떠한가?3년간 하연은 서준의 몸에 손가락 하나도 댈 수가 없었다. 한 방을 쓰고 있었지만 침대는 따로 썼기 때문이었다. 하연은 밀려오는 통증을 참으며 차가운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그러다 무슨 용기가 났는지 소리를 내어 가볍게 웃었다.“당신 어머니는 내가 애도 못 낳으면서 결혼한 양심도 없는 여자라고 했죠. 그런데 지금 당신이 밖에서 다른 여자와 아이를 가진 걸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죠?”간신히 침대에 기대고 있는 그녀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하지만 고개를 꼿꼿하게 쳐들고는 그의 옷깃을 잡았다.하지만 곧바로 굵은 그의 손에 잡히고 말았다.한서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혜경이는 내 세컨드
하연은 서준의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그리고 그의 복근을 따라 내려가며 입을 맞추었다. 오랫동안 감춰온 서준의 대한 갈망 탓인지 귀밑까지 붉어졌다.그녀는 손놀림을 멈추지 않은 채 쉰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어떻게 이 집의 작은 안주인이 되었는지 잊었냐고요?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 제 임무는 당신의 아이를 낳는 거예요. 지금 나는 내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거고요.“어떻게 그런 말을?!”화를 내는 서준의 탄탄한 복근이 울룩불룩 움직였다.“방 안에 최음제를 좀 뿌렸어요. 조금만 참으면 곧 괜찮아질 거예요. 저는 제 임무를 위해 아이를 가지려는 것뿐이에요.”그녀는 더 대담하고 과감하게 행동했다. 전에는 한번도 보여준 적 없는 요염한 모습이었다.하연의 적극적인 도발에 그의 몸이 본능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했고 호흡도 거칠어졌다.그는 이것이 최음제 때문인 것을 알고는 이성을 되찾았다. 그리고는 하연의 거침없는 손을 꽉 움켜 잡았다.“최하연, 너 정말 역겨워.”서준의 말에 그녀의 끓어오르던 욕망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하연은 눈에 눈물이 고인채로 마지막으로 물었다. “나를 안는 게 그렇게 구역질나요?”“그래!”서준은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녀를 밀쳐냈다.더는 그녀와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았다. 서준은 하연이 벗긴 옷을 집어 들고 다시 입기 시작했다.그는 단추도 잠그지 않은 채 성큼성큼 걸어 나가버렸다. 방문이 ‘쾅’하고 닫히면서 주위가 다시 조용해졌다.하연은 그가 나가자 긴장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눈에는 서준을 원망하는 눈빛이 가득했다. 서준은 방을 나서며 생각했다.‘이 정도로 했으면 있던 마음도 없어지겠지...’...다음날 아침, 하연은 아직 성치 않은 다친 다리를 절뚝거리며 짐을 싼 여행가방을 끌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집안 살림을 돕는 가정부가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강영숙 여사는 새벽기도를 드리러 가느라 집을 비운 상태였다.“어머, 새언니! 죽다 살아난 지 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