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하니 이장님도 꽤 신중하신 것 같네요.” 하연은 책 몇 권을 들고 말하며, 책 속 필체를 훑어보았다. “손 선생님의 글씨체가 예전과 조금 다른 것 같아요.” 하연은 책 속에서 보이는 글씨가 과거에 우연히 보았던 이현의 필체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예전 이현의 필체는 날카로움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부드럽고 힘이 없는 글씨였다. “그 녀석 말이야...” 왕대천은 순간 놀랐지만, 금세 냉정함을 찾으며 말했다. “아마 일을 시작한 이후로 글씨 쓰는 걸 게을리했을 거야. 요즘은 제대로 쓰지 않아서 그래.” 하연은 장난스럽게 물었다. “이장님,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손 선생님은 학교 다닐 때 여자애들이 많이 따라다녔나요?” 왕대천은 웃으며 말했다. “그야 많았지. 심지어 집까지 찾아온 아이들도 있었는데, 이현은 아무도 좋아하지 않았어. 연애는 한 번도 안 했지.” “이장님이 어떻게 아세요? 몰래 연애했을 수도 있잖아요.” “그럴 리가 없어.” 왕대천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 “그 녀석은 내가 키우다시피 했으니까 하나하나 다 알지. 착실하고 성실한 아이야. 학교 다닐 때 내가 연애는 못 하게 막았거든.” 왕대천은 말한 후에 뭔가 잘못된 걸 깨달은 듯 급히 덧붙였다. “하연아, 설마 너희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니? 이현이가 돌아오면 내가 잘 말해볼 테니, 너무 화내지 마라.” 왕대천은 하연을 정말로 자신의 미래 며느리로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하연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문을 나서던 찰나, 마침 왕대천 부인과 마주쳤다. 왕대천 부인의 얼굴은 어딘가 어두워 보였고, 하연은 잠시 멈춰 섬으로써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하연은 무슨 일이 있는지 바로 눈치챘다.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나요?” 왕대천 부인은 무의식적으로 품 안에 있는 보따리를 더욱 꽉 끌어안았다.“아니야, 하연이가 왔구나.” ...하연이 차를 몰고 마을을 떠날 때, 현장을 조사하러 오는 HD그룹의
차량이 멀어지자, 하연은 무릎 위에 놓인 책들을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다. “최 사장님, 집으로 돌아갈까요, 아니면 DS그룹으로 갈까요?” “공항으로 가주세요.” 운전기사가 의아한 듯 백미러를 보았지만, 하연은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F국으로 돌아갈 거예요.” ... 주씨 가문은 F국에서 악명 높은 까다로운 집안으로 유명했다. 주원빈은 상공업으로 가문을 일으켰고, 수많은 술자리에서 성공의 발판을 마련해 오늘날의 이 위치까지 올라왔다. 지금, 주원빈은 그 술자리 문화를 더욱 발전시켜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주씨 가문과 사업을 논하고 싶다? 좋다, 먼저 술부터 마셔라!... 한편, 부상혁은 이틀째 주씨 가문의 본가에서 머물고 있었다. 하연이 금천파이낸스의 명예를 회복시켜 상혁의 부담을 크게 덜어주었지만, 힘센 사업가들 사이의 협상과 입장 표명은 여전히 그의 몫이었다.지금 상혁은 미친 듯이 술을 들이켜고 있었다. 마치 술에 살고 술에 죽겠다는 결심이라도 한 듯, 누구의 술잔이든 마다하지 않고 과감하게 취해갔다.심지어 주슬기도 상혁의 이상함을 눈치챘다. 소란스러운 술자리였지만, 그녀는 상혁의 곁에 앉아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걱정 있어요?” 상혁은 셔츠의 단추를 몇 개 풀고, 목덜미가 붉게 달아오른 채로, 핏줄이 드러난 손으로 잔을 돌리고 있었다.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많이 마셨지만 정신은 여전히 맑았다. “우리 아버지는 당신을 곤란하게 하지 않았어요. 오늘 여기에 있는 명문가 가족분들도 당신을 곤란하게 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의 능력은 모두 인정하고 있으니까, 무너질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요.” 슬기는 상혁이 여전히 1000억에 관한 일을 마음에 두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상혁은 여전히 말이 없었고, 슬기는 약간 당황한 듯 상혁의 옆에 있던 외투를 집어 들었다. “비서는 어디에 있어요? 왜 안 보이죠? 제가 부축할게요...” 슬기의 손이 상혁의 몸에 닿는 순간, 갑
“그럼 제가 마실게요.” 하민이 응답하지 않자, 상혁은 바로 술잔을 들어 올려 단숨에 들이켰다. 독한 술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자, 가슴이 뜨거워졌다. “좋은 술이군요.” 하민은 술자리 문화를 추구하지 않았고, 그가 굳이 술을 마셔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는 이런 자리에서 타협할 생각은 더더욱 없어서 직설적으로 말했다. “네가 스스로를 망치는 건 상관없어. 하지만 우리 하연이를 슬프게 한다면, 나는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이 자리에 남을지, 나랑 갈지 빨리 선택해.” 하연의 이름이 언급되자, 멈칫하던 상혁이 더욱 빠르게 술을 따랐다.“슬프게 한다고요? 하연이가 정말 아직도 저 때문에 슬퍼할까요...” 주변 사람들은 그제야 하민이 이곳에 온 이유가 최하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주원빈의 얼굴이 단단히 굳어졌다.“최 대표님, 최씨 가문은 우리 집안을 대체 뭐로 보는 겁니까? 우리를 최씨 가문의 놀이 도구로 생각하는 겁니까? 우리 슬기도 명문가에서 제대로 교육받으며 바르게 자란 딸입니다. 그런데 이런 식의 행동은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닙니까?” 주슬기가 부상혁을 오래도록 좋아해 왔다는 사실은 F국의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하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우리 동생의 전화가 아니었다면, 오늘 저도 여기 오지 않았을 겁니다.” 하민이 직접 나선 것은 오로지 하연의 요청 때문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낸 말이었다. 실은 이것 자체가 상혁에게는 일종의 타협이자 약간의 양보였다. 그러나 상혁의 귀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연이 다른 사람을 통해 행동하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상혁은 또 술 한 잔을 들이켜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형님, 먼저 돌아가세요. DL그룹과 ZT그룹 간의 일은 제가 여기 남아서 처리해야 하니까요.”그의 말은 단호했지만, 주씨 가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남겨둔 것이었다. 하민의 얼굴은 서서히 어두워져 갔다. 주원빈이 다시 한번 술잔을 들며 권하려는 낌새를 보이자, 하민이 갑작스럽게 테이블을 세
“만약 과거를 내려놓았다면, 나를 ‘형님’이 아닌‘하민’이라고 불러야겠지.” ‘형님’이라는 호칭은 상혁이 하연을 따라서 부르기 시작한 것이었다.상혁은 술에 취하지 않았고, 적어도 80%는 맨정신이었다. 그는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하연이가 그러더군요, 이제 그만하자고요... 저는 강요할 수도 없어요.”그 말은 상혁의 마음을 깊숙이 파고들며 아프게 했다.“내가 아는 부상혁은 이렇게 쉽게 포기할 사람이 아니야.”“일에 관해서는 포기하지 않죠. 삶에 관해서도 그렇고요. 하지만 사랑에서는요? 오랜 시간 버텨봤지만, 특별한 감정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에요. 형님이라면 계속 버틸 수 있겠어요?”상혁의 눈빛은 진지했다. 연기가 그의 눈과 이마를 가리며 흐릿하게 번져갔다.그는 스스로 절대적인 사랑과 안정감을 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사찰에서 하연과 이현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어떤 일들은 강요로 해결되지 않으며, 혼자만의 감정으로는 절대 진전이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하민은 눈살을 찌푸리며 상혁을 바라보았다. 상혁은 눈을 감으며 계속 말했다. “저도 지칠 때가 있어요.” 하민은 문득 조용히 물었다.“진숙 이모는 요즘 어떻게 지내셔? 여전히 하연이의 안부를 자주 물으셔?”최하민은 상혁 옆에 앉아 있었다. 더 이상 최고 권위자의 고집스러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다정하고 친숙한 한 사람의 모습이었다.하민의 부모님은 일찍 세상을 떠났다. 남매는 부동건과 조진숙의 따스한 보살핌 아래에서 자랐다. 조진숙은 특히 하연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진숙 이모는 늘 말씀하셨지. ‘하연이는 여자아이니까 아무리 뛰어나도 쉽지 않다’고. 나는 진숙 이모의 말씀이 맞다고 생각해. 우리가 아무리 하연이를 아끼고 사랑해도, 부모가 주는 사랑과는 다를 테니까.” 하민은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상혁아, 너도 잘 알겠지만, 하연이는 자립심이 강하고 고집이 세. 하나면 하나, 둘이면 둘이야. 사랑에서도 그렇고. 누군가가
밤이 깊었다. 실의에 빠진 하연은 차 뒤에 몸을 숨긴 채, 하민에게 고개를 저으며 말없이 입을 다물라는 신호를 보냈다....다음 날 아침 8시, DL그룹의 회의 시간이 되었다. “고경수에 대한 조사는 이미 끝났고, 이제 사법 절차에 들어갈 것입니다. 관련된 인물들도 모두 법의 심판을 받았고요.” 부상혁은 회의의 주석 자리에 앉아, DL그룹의 상황을 간략히 요약한 뒤 참석자들을 향해 물었다. “의문이 있으십니까?” 부남준은 이번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건강상의 문제’였다. 이사회의 이사들은 의견이 있건 없건 침묵을 지켰다. 부동건은 회의실의 가장 끝자리에 앉아 이 광경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다. 비서실 수석 비서인 원신민은 즉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겠습니다.” PPT 화면이 켜지며 커다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DL그룹 향후 5년 전략 계획] 아주 중요한 주제인 만큼, 상혁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기본적인 내용을 두 시간에 걸쳐 설명했다. 발표가 끝난 후, 물을 한 잔 마신 그는 한 손으로 테이블에 기대며 말했다. “질문 사항 있으십니까?” 오른쪽에 앉아 있던 동남아시아 지사장인 정규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렇게 상세한 일정과 계획이라니, DL그룹을 세계 1위로 만들겠다는 건가요? 부 대표님, 몸은 괜찮으십니까?” 겉으로는 칭찬 같았으나, 그 속엔 조롱이 담겨 있었다. 상혁은 아직 공식적인 대표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었다. 임시로 관리하고 있을 뿐, 정식 직함도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도 정규인은 상혁을 ‘부 대표님’이라 불렀다. 상혁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받아쳤다. “아버지께서 제게 이런 중요한 자리를 맡겨주셨으니, 저 또한 그 기대에 부응하며 이 자리를 지켜내야 합니다.” “금천파이낸스의 논란은 해결됐습니까?” 정규인은 일부러 질문을 던졌다. “정 사장님, 아직 모르셨나 보네요. 금천파이낸스는 이미 국제 IPO에 상장됐습니다.
부남준은 운성시 입찰에서 실패하고 성과 없이 돌아왔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큰 실책이었는데, 돌아오자마자 고경수 사건의 여파까지 맞닥뜨리게 되었다. 최소 1년 반 동안은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비록 남준이 그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지만, 부패와 뇌물 사건에 얽힌 이상, 부동건의 의심하는 성향을 고려하면 그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다.부상혁이 둔 이 한 수는 일거양득이었다. “네 엄마도 여전히 네가 DL그룹에 야망이 없다고 생각하시지. 하지만 네 엄마가 널 잘못 본 거야.” 부동건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어젯밤 하민이가 주씨 가문 본가에서 소란을 피운 모양이더군. 너와 관련된 일이라던데, 무슨 상황이야?” 이미 이렇게 물어본 것만 봐도 주원빈이 부동건에게 모든 것을 보고한 듯했다. 상혁은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다 아시지 않습니까?” 부동건은 목소리를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주씨 가문의 장녀가 너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 하연이와의 관계를 끊는 게 나을 거야. 너희는 멀리 떨어져 있어, DL그룹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부동건은 잠시 말을 멈추고 나서 이어서 말했다. “처음에 그 사건만 아니었다면, 네가 DL그룹의 대표 자리에서 물러날 일을 없었을 텐데 말이지.” 상혁은 부동건의 말을 들었지만,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고,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관계를 끊는 게 나을 거야’라는 말에 상혁의 심장은 한 번 찔린 듯한 고통을 느꼈다. “최씨 가문 쪽은 내가 직접 가서 사과하면 될 일이니까...” ...상혁이 사무실을 나서자, 문 앞에서 기다리던 원신민이 조용히 말했다.“황 비서님이 대표님을 뵙고 싶어 하십니다.”상혁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물었다.“원 비서는 뭐라고 했지?”“대표님께서는 지금 아주 바쁘시고, 앞으로도 계속 바쁘실 거라고 전했습니다.”원신민은 업계에서 유명한 비서로, 사람의 눈치를 잘 살피는 사람이었다
“하연이가 언제 돌아왔지?”연지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이번 수는 확실히 옳았어. 역시 최하연은 부상혁의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사람이었어. 언제든 최하연의 이름이 언급되면 그 효과는 배가 되는 것 같으니.’“오늘 아침에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최하민 대표님의 여자 친구분께서 매우 조용한 분이라, 최하연 사장님께도 알리지 않으신 모양입니다.”‘조용하다’는 말은, 최하민의 여자 친구가 하연만큼 좋은 출신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만약 어느 명문가의 딸이었다면 이미 세간에 소문이 돌고도 남았을 것이다.상혁은 그날 호텔에서 보았던, 그 연약한 하얀 꽃 같은 여자를 떠올렸다.... 최하민이 예아름을 집에 데려오겠다는 것은 갑작스러운 결정이었다. 원래 모든 것을 계획대로 진행하려 했으나, 어젯밤 상혁과 하연의 관계가 어둠 속에서 무언의 갈등으로 번져나가는 것을 본 이후, 그는 전례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아름은 입술을 깨물며 눈에 혼란스러운 감정을 담아 물었다.“하민 씨 집안이 날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하민 씨의 할아버지, 동생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있잖아요.” 하민은 아름 앞에 쭈그려 앉으며 말했다. “우리 집안은 사람을 외모나 배경으로 판단하지 않아요. 인품만 본다고요.”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부드럽게 덧붙였다. “게다가 지금은 내 동생들이 없고, 할아버지와 하연이만 있어요. 그냥 편하게 식사 한 끼 하는 거니까, 괜찮죠?” CS그룹의 대표, 늘 언론사 앞에서 냉혹하고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최하민이 한 여자의 허리를 감싸며 부탁하고 있는 모습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아름은 알고 있었다. 최하민이 외부에 드러난 모습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하민은 CS그룹의 대표가 아니었다. 그 당시, 아름은 CS그룹의 경쟁사 연구원으로, 오랫동안 두 그룹을 연구하고 있었다. 하민이 신임 대표로 발돋움하는 날, 아름은 길에서 갑작스럽게 심장마비가 온 하민을 구
“이렇게 많다고요?” 하연은 살짝 눈길을 돌려 리스트를 훑어보았다. “그게 다가 아닙니다. 몇몇 사모님들께서도 하연 아가씨가 앞으로 며칠이나 시간이 있냐고 물어보셨어요. 오후에 차나 한잔하자고 하셨습니다.” 그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최동신은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다 미뤄. 우리 하연이에게 남자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닌데, 뭘. 내가 보기엔 상혁이가 아주 괜찮더구나.” 그 말을 듣고, 하민은 즉시 하연을 바라보았다. 하연은 갑자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후에 차 정도는 마실 수 있어요. 그분들을 우리 집으로 모시도록 하세요.”당황한 최동신은 잠시 굳은 얼굴로 하연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연아, 설마 상혁이랑 헤어진 거야?” 하연은 자리에서 웃음기를 거둔 채 말했다. “할아버지, 부상혁 씨가 저와 헤어지자고 했어요.” ...예아름의 방문은 무척 유쾌한 시간이 되었다.점심 식사 후, 하연의 시간이 찾아왔다. 여러 명문가 자제들이 방문했고, 하연은 그들이 익숙한 얼굴이든 낯선 얼굴이든 상관없이 환영하며 친절하게 대했다.긴 생머리에 절제된 미소를 띤 하연은 한 남성에게 말했다.“나이로 보면 제가 오빠라고 불러야 하겠네요.”그들 중 일부는 한때 하연의 이혼 경력을 걸림돌로 여겼다. 그러나 지금 직접 그녀를 만나보니, 그 매력은 한없이 컸다. 게다가 최씨 가문과 혼인하게 된다면, 몇 세대가 지나도 걱정할 것이 없을 테니까.하연은 그들이 무엇을 바라고 이곳에 왔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상혁이 이 상황을 알게 되었을 때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한 시간 반이 지나자, 정원에서는 속닥속닥 말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정말 아름다워. 매력이 단번에 드러나잖아. 부상혁이 최하연에게 푹 빠질 만도 하지.” “헤어졌다더라.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거 아냐?” “질린 거 아닐까? 그래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잖아. 일반적인 ‘중고’라면 탐내지 않을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