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말을 들어보면 이렇게 하는 게 안 좋아?”“당연히 안 좋죠. 오빠가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계속 절 위해 많은 걸 포기했어요. 그래서 전 오빠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전에 상혁이 하연을 놓아줘서 그녀가 서준과 결혼을 할 수 있게 된 것을 생각하니 하연의 마음은 미안함과 고마움으로 가득 찼다.하연의 말의 뜻을 이해한 상혁이 주먹을 꽉 쥐었다.“난 그저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난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하연이 눈을 감았다.하연은 상혁이 어떻게 해도 자신을 놓아주지 않을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권상용은 경계하면서 밖을 내다보았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권상용은 갑자기 무엇인가 생각났다.“최씨 집안 남자 세 명 중에 넌 몇 째야?”상혁이 대답했다.“둘째요.”하민이 밖에서 일을 하는 것은 비밀이 아니고 하성이 유명한 연예인이기에 사람들한테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은 하경인 척하는 것이 제일 적당했다.상황이 상황인지라 권상용은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상혁이 갑자기 말했다.“돌아가면 밖에 좀 적게 다녀. 특히 한서준이랑 만나지 마.”이 말을 들은 하연은 깜짝 놀랐다. 상혁이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연은 곧바로 반응하고 상혁이한테 맞춰줬다.“왜 안 되는데요? 서준 얼마나 좋아요.”“애인으로서 책임감이 없고 상사로서 능력이 없는데, 넌 걔 어디가 좋아?”“사랑하면 된 거 아니에요?”하연이 흥분을 해서 칼도 무서워하지 않고 상혁의 말에 반박했다.상혁은 화가 나 차갑게 웃었다.“너 몇 살인데, 사랑이 뭐 밥 먹여주냐?”“아, 몰라요. 전 딱 서준이한테 시집갈 거예요!”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지자, 권상용은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칼이 공중에 떠다녔다.“그만! 입 닫아!”기회를 잡은 상혁이 권상용의 손에 든 칼을 쳐내면서 그를 눌러버렸다.“하연아, 몸 숙여!”권상용은 아팠다.“뭐야! 기습이야?”권상용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기습 공격은 막을 수 없
하연은 눈물을 닦았다. 그녀는 화가 났지만, 또 웃고 싶었다.“부상혁! 다음엔 이러면 안 돼!”상혁이 미소를 지었다.“부상혁이라고 부르니까 좋네. 앞으로 상혁 오빠라고 부르지 마.”하연의 드레스는 이미 다 찢어져 있었고 몸에는 상처가 가득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달빛 아래서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상혁은 하연을 보고 설레어 그녀의 얼굴을 잡았다.“오늘 약속 못 지켜서 정말 미안해.”상혁이 제때 도착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아니에요. 제가 호 이사를 너무 믿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예요.”“호 이사가 나한테 얘기한 건, 기사가 한 짓이라던데?”하연이 깜짝 놀랐다.“그럴 리가요? 그 기사 저 본 적 있어요. 호 이사랑 몇 년 동안 함께한 분이에요.”상혁은 아까 너무 급해 호현욱이 한 말이 사실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권상용이 싸움을 너무 잘해서 혼자서 열 명과 싸워서 이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호중 등 사람들이 와서 인원이 충족했다.“저항을 포기하면 죄명을 하나 더 없앨 수 있어!”권상용은 무릎을 꿇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덫에 걸린 건데!”권상용은 상혁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서준이 다급히 차에서 내리자마자 이 광경을 보게 되었다.권상용이 사람들을 피해 칼을 들고 상혁한테로 달려갔다. 이때 상혁이 땅에 누워 있어서 방어할 수 없었다. 하연은 달려오는 권상용을 보고 본능적으로 상혁의 몸을 가렸다.권상용이 찌르려고 하는데 누군가 갑자기 나타나 그를 차버렸다. 그러자 칼이 땅에 떨어지고 권상용이 비명을 질렀다.상혁이 반응을 하고 하연을 부축해 일으켜 세운 뒤 다친 데 없는지 검사했다.“괜찮아?”하연이 고개를 끄덕이고 권상용을 바라보았다.권상용은 사람들에 의해 땅에 고정되어 있어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힘겹게 고개를 돌리고 눈만 보더니 알아챘다.“너지?”그 사람은 하연 등 사람을 등지고 있어 사람들은 그 사람이 경찰이 아닌 것만 알아낼 수 있었다.하연은 눈썹을 찌푸리며 생각했
“사귄 지 오래됐어요?”간호사가 또 물었다.하연이 오래 안 됐다고 말하려고 하는데 상혁이 하연의 손을 잡으며 담담히 대답했다.“아주 오래됐어요.”하연은 자기 심장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상처를 처치하고 상혁이 세부적인 진술을 해야 하므로 하연은 상혁의 외투를 걸치고 로비에서 기다렸다“사건이 발생한 뒤에 호 이사가 사라진 걸로 봐서는 이 일 호 이사와 연관이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태훈이 말했다.하연은 태양혈을 누르며 말했다.“왜 그랬는지 알 거 같아.”“부 대표님께서 매체를 막아놔서 말이 나갈 일은 없습니다.”“우리 집안 쪽은?”“걱정하실까 봐 얘기 못 하게 했어요. 근데 최하성 씨께서 가까운데 계셔서 알게 되셨습니다.”말을 마치자, 밖에서 두 명이 들어왔다. 앞에 선 사람은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하연아!”목소리를 듣자, 그 사람이 하성임을 알게 되었다. 하성은 직원을 잡고 물었다.“최하연, 최하연 어디 있어요?”하연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오빠, 저 여기 있어요.”하연의 목소리를 들은 하성이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 하연의 몸에 상처가 가득 난 것을 본 하성은 마음이 아팠다.“너.”하성은 하연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었다.“안 아파?”하성이 울자, 하연도 울고 싶었다.“안 아파요, 오빠.”하성은 하연을 꼭 끌어안았다.“어느 놈이 감히 내 동생을 건드려? 죽여 버릴 거야!”로비에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해서 하연은 조금 부끄러웠다.“오빠, 여기 경찰서예요. 목소리 좀 낮춰요.”하성은 그런 것을 상관하지 않았다.“큰 형님한테 말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권상용이라는 사람의 모든 인맥을 다 끊어 버려야지!”이 말을 들은 하연이 웃었다.“깡패예요?”“걔들이 널 건드리면 안 되지!”“됐어요. 큰오빠한테 말하지 마요. 걱정하는 거 싫어요.”“너 바보야? 그냥 이렇게 끝내려고?”하연이 대답했다.“당연히 이렇게 끝낼 수는 없죠.”하연도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경찰서 정원에 매화나무가 있는데, 은은한 향이 났다.서준은 나무 아래에 서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하연을 바라보았다.“나 권상용이라는 사람을 정말 몰라. 이 일 내가 벌인 거 아니야.”“양재승은?”하연이 서준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사건이 발생한 지점이 성동 공지고 그 공지의 도급상이 양재승이야, 네가 아는 사람이고. 누구나 다 알다시피 투자자는 임모연이야. 너랑 임모연 도대체 무슨 사이야?”권상용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서준은 확실히 재승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날 모연의 집에서 나갈 때, 멀지 않은 곳에 차를 세우고 이상하게 나오는 재승을 불러 세운 적이 있었다.재승은 그때 완전히 놀랐었다.“당신...?”서준이 담배를 꺼내더니 재승에게 건네주었다.“내가 널 보고 있으니까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마.”이런 모습을 권상용이 봤을 것이다.서준도 그때 권상용이 그 모습을 봤을 줄 몰랐다.그래서 오늘 같이 벗어버릴 수 없는 오해가 생긴 것이다.서준이 말했다.“한씨 집안과 민씨 집안이 B시에서 다 잘 나가는 집안이기 때문에 나랑 모연이 사적인 우정이 있는 것도 정상이지. 그러나 이것이 내가 이번 일을 주도했다는 걸 증명할 순 없어. 하연아, 내가 널 다치게 할 이유가 없잖아.”“그럼, 이 일 임모연이 주도한 게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어?”하연이 물었다.서준은 대답할 수 없었다.“없어?”하연이 가볍게 웃었다.“한서준, 처음부터 지금까지 넌 솔직하지 못했어. 내가 알기로 한씨 집안과 민씨 집안의 관계가, 네가 임모연에게 몇십억이 든 카드를 쓰게 할 정도는 아니지 않아? 너희 도대체 무슨 우정이야?”서준은 하연이 질투하는 것 같아 웃으며 설명하려는데, 하연이 대답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됐어. 알고 싶지 않아. 상혁 오빠가 사람들 데리고 안 왔으면 난 그 여자 손에 죽었겠지.”말을 마친 하연은 자리를 떠나려고 했는데 서준에게 손목이 잡혔다.“이제 다 설명할게.”“필요 없어. 널 몰랐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서준은 마음이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이 진동해 상혁은 옆으로 자리를 이동한 뒤 말했다.“얘기해.”연지의 목소리가 다급했다.[대표님, 드디어 전화를 받으셨네요. B시에서 무슨 일 일어났어요? 피터랑도 연락이 안 돼서요.]“괜찮아, DS그룹은 무슨 상황이야?”상혁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 주지 않으면 연지도 더는 물어보기 힘들었다. 그녀는 진정하고 말했다.[부 회장님께서 WA 프로젝트에 대해 알게 되셔서 엄청나게 화를 내셨어요. 회장님께서 직접 회사에 와서 대표님을 만나겠다고 하시는데, 제가 최대한 미뤄보려고 했는데, 더 이상은 무리일 거 같습니다.]“나 B시에 있고 하연이랑 같이 있다고 얘기해.”연지는 하연의 얘기가 이렇게 쓸모가 있을 줄 몰랐다.“두 분 서로 아세요?”“알기만 한 사이가 아니야.”“그럼, 프로젝트는...?”“서태진의 이름을 꺼내. 그분이 아버지에게 설명해 주실 거야.”통화를 마치자, 하연이 상혁에게 다가왔다.“회사 일이에요?”상혁이 담담히 대답하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하연의 손에 상처가 있어 붕대로 감고 있었다.“병원 가자.”“다 처치해서 병원 갈 필요 없어요.”상혁은 대답하지 않고 하연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드레스 차림에 상혁을 따라갔다.“선남선녀네.”2층의 어느 방에서 사람들이 감탄했다.창밖을 계속 바라보던 남자가 그제야 시선을 거두었다.“양한빈.”그 사람은 예의를 갖춰 서류를 건네주었다.“원하시던 서류 찾았습니다.”그 남자는 서류를 받고 나서 경고했다.“한명준을 부르던 손이현을 부르던, 어디에서 일을 하던 다 우리 팀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이현이 서류를 보는데, 한빈이 말했다.“5년 전에 G국에서 스파이를 할 때, 직접 권상용의 부하를 없앴었지. 권상용만 운이 좋게 살아남았었는데, 다시 돌아올 줄 몰랐어. 드디어 붙잡혔네.”“이상하지 않아? 이렇게 오랫동안 종적을 감추고 있다가 위험을 무릅쓰고 여자를 납치하는 게?”“맞아. 그 여자 도대체 뭐가 특별한데? 서장님께서 말씀하신 걸
하연이 걱정스럽게 말했다.“오빠.”“내가 뭐 어쨌는데?”상혁은 사과를 담은 그릇을 하연의 품에 놓고 말했다.“이거 다 먹으면 링거 다 맞았을 거야. 나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몸집이 꽤 큰 남자 둘이 앞뒤로 병실에서 나가자, 하연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태훈에게 말했다.“따라가 봐. 설마 싸우는 건 아니겠지?”“셋째 도련님, 그러실 분 아니에요.”병원의 옥상은 바람이 너무 불어 두 사람의 외투가 바람에 날렸다. 하성은 연예인이기에 자태가 우아했는데, 그런 하성의 곁에 있어도 상혁은 전혀 꿀리지 않았다.“할 말 있으면 해.”하성이 상혁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우리 같이 자라서 네 부모님도 나한테 되게 고마워하시니까, 우린 거의 친형제나 다름이 없지.”“맞아.”“예전에 우리 정말 사이가 좋았어. 후에 각자의 사업이 생겨서 전처럼 자주 연락하지 못했지만, 요 몇 년간 네가 뭘 하고 지냈는지 잘 몰라. 그렇지만 네가 좋은 사람이라는 건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어. 우리 큰형이랑 둘째 형도 널 믿고.”하성이 얘기하자 상혁도 고개를 끄덕였다.“응.”“네가 하연이를 좋아하는 거 우린 다 찬성해. 너희가 만나는 거 우린 완전 찬성이지.”상혁은 묵묵히 듣고 있었다.“근데 오늘 내가 경찰서에 들어갔을 때, 하연이 다 해진 옷을 입고 로비에 앉아 있는 걸 보고 내가 널 죽일 뻔했잖아! 너 왜 하연이를 그렇게 보살피는데? 그 모습을 보고 네가 하연이를 잘 보살필 수 있는지 의심했어!”직설적인 욕에 상혁은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이건 내 실책이야. 이런 일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거야.”하성은 화가 났지만, 상혁이 솔직하게 인정해서 할 말이 없었다.“너!”“하성아, 몇 년 전에 내가 하연에게 고백했을 때, 너도 불렀었잖아. 그때 네가 나한테 앞으로 마음이 변할 수 있냐고 물었었지. 지금 너한테 대답할 수 있어. 앞으로 절대 그럴 일 없어.”상혁은 담담하게 말했다.하성은 상혁의 팔에 난 상처를 보고 그를 툭 쳤다.“나쁜 놈, 나 여동생 한
“뭐 찔리는 게 없으면 왜 실종했겠어. 이 일 십중팔구는 걔가 계획한 거 아니야?”HT그룹, 동후가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서준이 만년필을 쥐고 흔들고 있었고 표정이 좋지 않았다.“양재승은 권상용을 불러내 올 만한 능력이 없어, 민혜주가 국경 쪽 사람들이랑 연락한 걸 거야.”“그 여자가 그쪽에 인맥이 있어요?”“있지, 그렇지만 중요할 때 아니면 안 써.”동후가 생각에 잠겼다.“민혜주가 급해진 걸까요?”“비가 오면 공사가 언제든지 중단될 위험이 있어. 그래서 민혜주는 비가 올 때를 대비하여, 하연에게서 돈을 요구하려고 했던 것 같아. 근데 뜻밖에도 상혁이 갑자기 돌아와서, 계획이 다 망가진 거지. 지금은 공사장이 폐쇄되어 조사를 받고 있는데, 도망가지 않는 게 더 이상하지.”“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요? DS그룹에서 이유를 알려고 할 텐데.”서준이 등을 어루만졌다.“그것뿐이 아니지. 권상용의 신분이 경찰을 움직이게 해서 우리 형님이 있는 한 절대 조사를 멈추지 않을 거야.”처음에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다시 생각해 보더니 깜짝 놀랐다.“네? 한명준?”“현장에서 형을 봤어. 얼굴은 못 봤지만, 몸매를 봐서는 형이 확실해.”이복형제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걱정을 해왔기에 서준은 잘못 봤을 리가 없었다.동후는 깜짝 놀랐다.“한명준 아직 안 죽었어요? 이렇게 오랜 시간 자취를 감춘 건 집안에서 감춰준 거겠네요. 그러니까 저희가 못 찾았죠.”임모연이 알려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내막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형이랑 하연이 이미 만났어.”서준은 침착하게 말했다.“그렇지 않으면 그날에 형이 나타나지 않았을 거야.”‘한명준이 아마 다소 달갑지 않았던 것 같아.’서준의 머릿속은 온통 하연이 자신에게 짜증을 내던 모습으로 가득 차 있었다.“모든 인원을 동원해서 임모연을 찾아. 걔가 사업을 담당하고 있어서 B시를 벗어나지 못했을 거야.”“네.”“그리고 운석이 보고 오라고 해.”아크로리버파크, 하연이 오후의 따듯한 햇살 아
핸드폰에 귀를 가까이 대자, 하연은 하민이 꾸지람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연은 꾸지람 듣기 싫어 혀를 내밀었다.상혁은 하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하민의 꾸지람을 들었다.하민은 길게 얘기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나 오늘 회의에 참석했는데, 부남준을 만났어.]이 말을 들은 상혁은 하연에게서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이동했다.하연은 원래 자리에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상혁에게 동생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데, 하민은 알고 있었다. F국의 최상급 계층에는 비밀을 지킬 수 없나보다.[무역 유통 회의였는데, 걔 몸에 상처가 있었고 제일 뒤에 앉아 날 알아보지 못하더구나. 네가 걔를 그냥 놔둔다고 하던데?]“잠시 그러는 거예요. 이제 쓸 때에는 다시 써야죠.”[회의가 끝나고 나가려고 하는데, 주차장에서 동건 삼촌이 걔를 교육하고 있더라.]이유를 알고 있었기에 상혁은 말하지 않았다.“친부자니까 너 조심해.”하민이 걱정했다.[잘 알고 있어요, 형님.]똑똑한 사람은 요점만 말한다....통화를 마친 하민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때 비서가 물었다.“회장님, 무슨 생각 하고 계세요?”“미래 매제가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상혁이 남준을 놓아버렸지만, 남준이 손해를 보더라도 본부로 돌아가려고 했고 동건이 남준에게 보상을 해주었다. 회의를 마친 상혁이 수시로 폭발할 수 있는 두 번째 폭탄을 묻었다.상혁은 속셈이 아주 깊었고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비서는 중점을 캐치하지 못했다.“아가씨 남자 친구 생겼어요?”하민은 표정 관리를 했다.“매제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네.”...상혁은 하연에게 핸드폰을 돌려주자, 하연이 상혁의 팔을 쥐고 애교를 부렸다.“제가 저를 잘 돌보지 못한 걸로 우리 가족에게 꾸지람 듣게 해서 미안해요.”상혁은 웃었다.“꾸지람 듣는 게 맞아.”“그 동생분이랑 요즘 사이가 안 좋아요?”상혁은 하연이 통화 내용을 들었을 줄 알고 자리에 돌아가서 앉았다.하연은 다급히 말했다.“저한테 설사약 많아요!”상혁이 소리를 내서
“시간 없어.” 하연은 단호하게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녀가 다시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휴대폰에서 메시지 알림 소리가 들렸다. 하연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메시지를 확인했고, 내용을 본 후 손에 힘이 들어갔다. 10분 후.하연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밖으로 나왔다. 멀리서 남준의 눈에 띄는 빨간색 스포츠카가 비상등을 켠 채 호텔 입구에 세워져 있으며, 번화한 호텔 입구에서 유독 도드라져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잠시 후, 차 문이 열리고 남준이 내렸다. 그는 오늘 블랙 패딩을 걸친 채 특유의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풍기며 여유롭게 하연을 바라보았다. “역시 올 줄 알았어.” 남자의 목소리는 자신감이 넘쳤고, 말투에는 확신이 묻어 있었다.찬바람이 부는 겨울밤, 차가운 바람이 하연의 얼굴을 스치며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하연은 몇 걸음 옮긴 뒤 걸음을 멈췄고, 남준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손을 들어 흩날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말해. 문자에 적힌 상혁 씨하고 관련해서 중요한 일이 뭔데?”남준은 팔짱을 끼고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형이 걱정돼?”“그건 네가 신경 쓸 일 아니야.” 하연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남준은 그녀 쪽으로 몇 걸음 다가가더니, 불과 반걸음 거리에 멈춰서 몸을 약간 숙였다. “너의 그 관심 나 한테도 좀 나눠 주면 안 돼?”그가 가까이 다가오며 내뱉은 말에 은은한 술 냄새가 풍겨왔다. 하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술 마셨어?”남준은 입가를 비틀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거 혹시 나 걱정하는 거야?”“착각하지 마.” 하연은 무의식적으로 한 발짝 물러섰다. “부남준, 할 말 있으면 빨리 해. 여기서 시간 끌 여유 없어.”남준은 고개를 약간 끄덕이며 어딘가 불만 섞인 어조로 말했다. “너 갈수록 성격이 우리 형이랑 닮아가네. 역시 잘 어울리는 커플이야.” 하연
하연은 밝게 웃으며 상혁이 건넨 잔을 받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갓 짠 오렌지 주스는 상큼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부 대표님이 직접 짠 오렌지 주스라 그런가, 확실히 맛이 다르네요. 정말 맛있어요.” 상혁은 미소를 지으며 장난스레 손을 뻗어 그녀의 코끝을 살짝 건드렸다. “맛있으면 자주 짜줄게.” 하연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답했다. “그럼 감사히 잘 마실게요, 부 대표님!” “아니, 한참을 찾았는데 여기서 둘이서만 꽁냥거리고 있었네?” 문 앞에 기대어 서 있던 하성이 두 팔을 교차하고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상혁, 너 요즘 이 녀석을 너무 애지중지하더라. 그러다 버릇 나빠지겠어.” “오빠!!” 하연은 볼이 부풀어올라 약간 투덜거렸지만, 옆에 있던 상혁은 태연하게 그녀를 감싸며 말했다. “애지중지하든 말든 내 마음이지. 네가 무슨 상관이야?” 하성은 두 손을 들며 장난스레 투항했다. “알았어, 알았어. 난 그냥 너희 둘이 잘 지내는 거 보니 마음이 놓여서 하는 소리야.”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그래, 계속 이렇게 잘 지내줘, 아주 보기 좋아!”그때 하연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부남준’이라는 이름이 뜨자 그녀는 잠시 긴장한 듯 눈빛이 흔들렸다. “오빠들, 먼저 얘기하고 있어요. 난 전화 좀 받고 올게요.” 하연이 자리를 비우고 복도로 나가자, 하성은 방금 전과는 달리 진지한 표정으로 상혁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요즘 너희 집안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소문이 있더라. 동건 삼촌 쪽에서 뭔가 일이 있는 것 같던데?” 상혁은 하연이 마시다 남긴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시선을 복도 쪽에 고정한 채 무심하게 말했다. “첩이 ‘본처’의 자리를 노리는 거야. 흔한 일이잖아.” 하성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 “동건 삼촌이 그 여자를 꽤 오랫동안 봐줬던 모양이던데. 이제는 꽤 많은 걸 쌓아둔 듯하고, 한번 크게 판을 벌일
“뭐 하는 거야? 빨리 이 주스를 연회장으로 가져가!” 홀 매니저가 다가와 살짝 꾸짖었다. 여자는 급히 고개를 숙이며 질투로 번들거리던 눈빛을 감추고는 얌전히 대답했다. “네, 바로 가겠습니다.” 다영은 태어나서 가사일 한 번 손댄 적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트레이를 들고 발걸음을 옮겼다. “잠깐!” 매니저가 갑자기 그녀를 불렀다. “너 신입이야? 본 적이 없는 얼굴인데?” 다영의 심장이 두근거리며 가슴 속에서 송혜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 고향 친척 중 하나가 DS그룹에서 일하고 있어. 오늘 밤엔 그 사람 신분을 쓰는 게 편할 거야.” 침착함을 되찾은 다영은 고개를 들어 냉정하게 대답했다. “저는 고객지원부의 진미입니다. 연회 인력이 부족해서 임시로 지원 나온 거예요.” 매니저는 그녀의 명찰을 한 번 흘깃 본 뒤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트레이를 건네받았다. “신입이라면 전면에 나가면 실수하기 쉬워. 내실에서 돕는 게 좋겠어.” “알겠습니다.” 매니저가 떠난 뒤, 다영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 다시 연회장을 바라봤을 때, 앞줄에 앉아 있던 하연과 상혁은 이미 모습을 감췄다. 2층 휴게실 안. 원신명은 한 손에 신선한 오렌지 한 봉지를, 다른 손에 포장을 뜯지 않은 녹즙기를 들고 들어왔다. “대표님, 주문하신 오렌지와 녹즙기입니다.” 원신명은 궁금한 듯 물었다. “대표님, 직접 오렌지 주스를 만드시는 건가요?” 상혁은 짧게 대답했다. “원 비서, 거기 두고 가면 돼.” 원신명은 얼른 다가가 도움을 자청했다. “대표님, 이런 건 제가 할게요.” “와이프가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싶다는데, 남에게 맡길 수는 없지.” ‘와이프’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마치 그 단어를 그의 마음속에서 수없이 되뇌었던 것처럼 익숙했다. 원신명은 곧 깨달았다. ‘아, 대표님이 직접 최하연 씨를 위해 주스를 준비하시고 싶은 거구나!’ “원 비서, 연말인데도
최하성은 오늘 검정색 정장을 입고 등장했다. 그의 차가운 분위기와 단정한 모습은 단번에 모든 직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최 대표님!”하성을 마주친 직원들은 공손하게 인사했다. 하성은 살짝 고개를 끄덕일 뿐, 시선을 주지 않고 빠르게 행사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오늘 저녁 만찬은 매우 풍성했다. 동서양의 요리가 조화를 이루며 대부분 직원들의 입맛과 식습관을 세심하게 고려한 모습이었다. 준비에 꽤 공을 들인 것이 분명했고, 결과적으로 반응도 좋았다. 연말 만찬이 시작되기 전, 하성은 DS그룹의 대표이사로서 무대에 올라 인사말을 했다. 하성은 차분한 걸음으로 무대에 오르며, 그의 존재감은 단번에 분위기를 압도했다. 그가 화려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단 몇 마디 간결한 말로도, 관중석에서는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번 연말 행사는 생중계되고 있었으며, 하성이 등장하자마자 팬들과 네티즌들이 빠르게 몰려들었다.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시청자 수가 십만 명을 돌파했다. [최하성 씨, 오랜만이에요! 보고 싶었어요!][연예계에 최하성이 없으니 허전한 기분이에요. 최하성 씨, 돌아와 주세요!][다들 동감! 언제쯤 복귀할 수 있는 거죠?][복귀 요청 99%!!][...] 팬들의 댓글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하성의 인기는 생중계 플랫폼 순위에서도 단연코 1위를 차지했다. 무대 아래에서 생중계를 담당하던 진행자는 이 뜨거운 열기를 놓치지 않고 하성에게 다가갔다. “최 대표님, 생중계 채팅창에 팬들이 사장님의 새해 계획에 대해 굉장히 궁금해하고 있어요. 오늘 이 특별한 밤에 팬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하성은 미소를 머금으며 카메라를 응시했다. 그 순간, 생중계 채팅창은 순식간에 폭발했다. 선물 아이콘이 화면을 뒤덮었고, 댓글은 끊임없이 새로 고침 되었다. “안녕하세요, 하성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저와 DS그룹을 응원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도 DL 그룹
“어머님, 정말로 부 회장님과 결혼하세요?” 이 얘기는 다영에게 있어 꽤 충격적이었다. 세간에서는 송혜선과 부동건의 관계를 두고 여러 말이 떠돌았고, 그중 가장 많이 들려온 것은 송혜선이 ‘첩’이라는 점이었다. 한때 정지철 부인도 이 사실을 꽤 꺼려했던 터라, 다영은 송혜선이 이렇게 대놓고 정식으로 자리 잡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언제 결혼 승낙을 받으신 거예요?” 송혜선은 이미 불룩해진 배를 가볍게 쓸며, 깊은 눈빛 속에 숨겨진 야망을 드러냈다. “부회장님께서 말씀하시길, 새해도 지나고 이제 곧 아이가 태어날 테니 우리 모자에게 반드시 정당한 신분을 보장해 주시겠다고 하셨어.” “그러니... 다영아, 우리 남준이를 믿어야 해. 지금은 잠시 밀려난 상황이지만,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잖니?” 다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더욱 굳게 다졌다. “어머님, 걱정 마세요. 저는 언제나 남준 씨를 도울 거예요.” 송혜선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더욱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그래야지. 남준이도 절대 너를 저버리지 않을 거야.” 그러다 두 사람이 화제를 돌리며 덧붙였다. “지금 부 회장님이 부상혁을 중시하며 DL그룹의 운영을 맡긴 데는 이유가 있어. 결국은 부씨 가문의 장손이라는 명분 때문이지.” “하지만, 임신 초기에는 변수가 많아. 무슨 사고라도 생기면, 어떻게 되겠니?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잖니?” “만약 그 아이가 사라지면, 부상혁 쪽의 지렛대도 없어진 셈이니 남준이한테 분명 유리한 상황이 될 거야. 그렇지 않겠니?” “...” 다영은 멍하니 한참 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어머님, 그게 무슨 뜻이에요?” 송혜선은 더 이상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조그마한 흰색 약병을 다영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 약은 무색무취야. 일반인이 먹으면 아무 이상이 없지만, 임신한 사람이 먹으면 삼 일 안에 유산이 돼.” 다영의 손이 떨리며 본능적으로 병을 놓치듯 뺐다. “어머님,
“정다영 씨의 상상력은 참 풍부하시네요.” 상혁은 입꼬리를 비틀며 약간의 비웃음을 섞어 말했다. “세상을 잘 모르는 아가씨다운 모습이라 참 순진하긴 한데, 이런 험한 세상에선 지나치게 순진한 건 별로 좋지 않아요.” 더는 말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듯, 상혁은 뒤돌아 떠났다. 다영은 마치 머릿속이 폭발이라도 한 듯, 귓가에서 찡하는 이명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럴 리 없어요, 남준 씨는 그럴 리 없어요!” 그녀는 낮게 중얼거리며 자신을 설득하려 애쓰며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이미 수없이 눌렀던 번호를 다급히 눌렀다. 하지만,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건 여전히 차갑고 무미건조한 여성의 자동응답 소리뿐이었다. “안 돼!” 다영은 절망하며 비명을 지르고는 갑작스레 밖으로 뛰쳐나갔다. 깊은 겨울밤, 바람은 더욱 매섭게 몰아치고 있었다. ...창밖의 거센 바람에 창문이 덜컹이며 울렸다. 병원의 VVIP 병실 안. 다영은 온몸을 떨며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초점 잃은 눈동자는 텅 빈 듯했고, 난방이 틀어져 있어도 그녀를 감싼 차가운 공기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다영아, 이렇게 늦은 밤에 무슨 일이야?” 송혜선은 평소와 같은 말투로 물었고, 전혀 이상한 기색은 비추지 않았다. 실은 송혜선도 이미 알고 있었다. 정지철이 이제는 구속되고 정씨 가문이 더 이상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나 다영의 마음에는 여전히 남준의 존재가 얽매여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다영에게서 더 많은 가치를 끌어낼 여지가 없다는 사실을 송혜선 또한 명확이 알고 있었다. 그런 생각이 스치자, 송혜선은 표정을 가다듬고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넸다. “자, 물 한 잔 마시고 몸 좀 녹여.” 다영은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린 듯, 송혜선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다. 간절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머님, 남준 씨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세요, 제발요!” 송혜선은 한숨을 쉬며 어쩔 수 없다
며칠 사이, 정다영은 차갑게 닫힌 문을 수없이 마주했다. 한때 주변 사람들이 다영을 떠받들며 찬란한 별처럼 여겼지만, 이제 집안의 사건이 터지자 사람들은 그녀를 피하려고만 했다. 마치 다영에게 다가가기만 해도 불행이 전염될 것처럼... 그렇게 다영은 세상의 차가운 이면과 인간관계의 허망함을 뼈저리게 느끼며, 자연스레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바꾸었다. “송 여사와 남준이는 요즘 집에 없는 걸로 아는데, 정 다영 씨는 왜 여기에 있는 거죠?” 상혁은 평범한 어조로 물었지만, 그 말은 다영을 잠시 멈칫하게 했다. 그녀는 곧바로 대답했다. “남준 씨가 곧 돌아온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상혁은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그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날이 추우니 안에서 기다려요.” 말을 마친 그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남겨진 건 남자의 차가운 뒷모습뿐이었다. 다영은 상혁을 따라가며 급히 소리쳤다. “부 대표님, 잠깐만요...” 상혁이 발걸음을 멈췄다. “무슨 할 말이라도?” 다영은 망설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며칠 동안 그녀가 이리저리 뛰어다닌 이유는 단 하나였다. 아버지를 이 난관에서 구해내기 위해서... 그리고 지금, 아버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의 눈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제 아버지와 관련된 일입니다.” 상혁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 건 검찰 소관이에요. 전문 변호팀을 고용하면 사건의 진행 상황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을 거예요.” 다영은 초조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부 대표님, 이건 분명 오해입니다. 제 아버지는 회사에 평생을 바친 분입니다. 아버지는 공문서를 위조하거나 계약서를 조작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녀는 자기 아버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즉, 정지철은 딸을 희생하더라도 자신의 미래를 망칠 행동은 절대 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분명히 이번 일에는 뭔가 숨겨진 진실
최씨 가문 본가 후원에 있는 온실에서는 조용히 바둑알이 내려놓아는 소리가 들렸다. 상혁과 최동신은 마주 앉아 바둑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상혁아, 지금 이 바둑판은 승부가 거의 결정 난 것 같은데!” 바둑판 위에서 흑과 백이 치열하게 맞서며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최동신은 한 마디로 상황을 정리했다. “자네의 백돌이 반 집 차이로 우위를 점하고 있어. 대단해! 예전보다 실력이 많이 늘었어.” 상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할아버지 기백이 여전히 넘치시니 제가 아직 배울 점이 많습니다.” 최동신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탄식했다. “늙었지. 이제는 예전 같지 않다.” 그러나 그는 곧 말을 돌려 흑돌을 손에 들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부터 자네도 조심해야겠어.” 최동신은 그 말을 하며 흑돌을 바둑판 위에 툭 하고 내려놓았다. 그 돌이 놓인 자리로 인해 한순간 바둑판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두 사람의 시선이 바둑판 위에 집중되었다. 상혁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손을 멈췄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우위를 점하고 있던 상황이 단 한 수로 인해 역전이 된 것이다. “할아버지의 바둑 실력은 늘 감탄할 따름입니다. 제가 이 점을 간과하고 놓치고 있었네요.” 상혁은 차분하게 패배를 인정하며 판세를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다. 최동신은 손에 들고 있던 바둑알을 다시 주우며 훈계하듯 말했다. “그렇지. 이길 수 있는 상황도 한 수의 실수로 모두 망쳐버릴 수 있는 법이다.” 상혁은 최동신의 말을 곱씹으며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눈이 잠시 마주쳤다. 최동신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들리는 말에 DL그룹의 실질적인 권한은 이제 자네가 잡았고, 자네 동생은 동남아 지사로 발령이 났다고 들었네.” “겉으로 보기엔 좋은 상황 같아 보이지만, 상혁이, 네가 한 수라도 실수하는 날엔 모든 걸 망칠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이 말은 단순한 충고 이상의 뜻을 담고 있었다
“이렇게 빨리?” 남준은 무심코 말을 뱉었다. 그의 음성엔 조급함이 묻어 있었다. 남준은 방 안을 계속해서 왔다 갔다 하며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분명 연말 이후로 예정되어 있지 않았나? 어떻게 앞당겨진 거지?” 연지는 침착하게 보고했다. “들리는 말로는 이번 사건이 중대한 만큼 생각보다 빠르게 처리되면서 연말 전에 재판이 열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남준은 발걸음을 멈추고 차가운 웃음을 흘리며 경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부상혁이 나를 궁지로 몰아넣고, 정규인의 입을 열어 내 약점을 찾아내려는 것이겠지.” 그는 잠시 멈칫하다가, 비웃는 듯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하지만 부상혁도 모르는 게 있지. 정규인의 입은 결코 열리지 않을 거란 사실을 말이야.” 연지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상무님, 그 말은 혹시...” 그러나 그녀의 말은 남준의 강렬한 눈빛으로 끊겼다. 서로의 눈이 마주친 순간, 연지는 남준의 의도를 즉각 이해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 정규인의 사건은 법원에서 열렸고, 법정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경찰들이 구치소에서 정규인을 호송해 나오자, 멀리서 그의 초췌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정규인의 기운 없는 모습에서 예전의 당당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법정 방청석을 둘러보다가, 맨 끝자락에서 누군가를 발견했다. 순간, 정규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는 갑작스럽게 방청석을 향해 달려들며 미친 듯이 외쳤다. “여기 왜 왔어! 당장 나가! 나가란 말이야!” 경찰들이 급히 정규인을 제지하려 했으나, 그의 필사적인 몸부림에 저지당했다. “진정해!” 경찰은 엄중히 경고했지만, 그의 저항은 계속되었다. 그러다 결국, 경찰봉이 그의 등을 강하게 내려쳤다. 퍽! 정규인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흘러나왔고, 그의 몸은 앞으로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방청석의 허징인은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