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 제가 대표님에게 성의는 충분히 보여 드린 거 같은데, WA그룹이 B시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업을 누구한테 줄지 다시 생각해 보세요.”바둑돌이 놓아지고 승패가 결정된다.서태진은 흰색 돌을 던지고 패배를 인정했다.“대표님, 실력이 선수보다 더 뛰어나십니다. 전 대표님의 상대가 아니네요.”“제 비행기도 세 시간 뒤에 출발합니다. 그러니 대표님께서 생각이 정리가 되면 같이 B시로 돌아갑시다.”서태진은 의아한 듯 물었다.“대표님도 가시게요?”상혁은 대답하지 않고 바둑알을 거두어들였다.서태진은 자신이 선을 넘었다는 것을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나 통화를 하러 갔다.이때 하연에게서 문자가 왔다.[상혁 오빠, 저 지금 현장에 가려고 하는데, 뭐 하고 계세요?][일해.][왜 아직도 안 끝났어요?]하연은 슬픈 이모티콘을 하나 더 보냈다.상혁은 웃으며 ‘곧 끝나’라고 타자하고 보내려고 했는데, 연지한테서 전화가 왔다.“WA그룹 사업, 저희 DL그룹에 주기로 했어요.”상혁은 핸드폰을 쥐고 다시 자리에 돌아온 서태진을 바라보고 있었다.상혁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대표님께서 해주신 거 기억하도록 해.”“알겠습니다.”전화를 끊자, 서태진이 전전긍긍하며 자리에 앉았다.“대표님, 소식 들으셨어요?”상혁은 서태진에게 차를 부어주었다.“감사합니다, 대표님.”“대표님 아버지께서 물어보시면 어떻게 대답하면 될까요?”“입찰에 참여하는 회사가 많으니까 그 속에 얼마나 많은 음모가 있겠어요? 그러니 DL그룹이 함정에 빠진다고 이상한 일이 아니죠.”서태진은 문득 깨달았다.“그럼 이 함정은 누구한테 책임을 돌릴까요?”상혁은 찻잔을 들고 향기를 맡았다.“지난 분기 지하철 사업은 새로 부상한 베이그룹에 맡겼는데, 대표님께서는 배후에 누가 있는지 아십니까?”“저 잘 모릅니다.”“부남준입니다.”서태진은 깜짝 놀랐다.모두가 알다시피 남준은 DL그룹의 둘째 아들이다. 명분은 없지만 상혁이 없을 사이 남준이 실권을 앗아갔기에 실력이 탄탄했다.“걔는 어려
서태진이 탐을 닦았다.“대표님, 아름다운 여성분에게 주시려나 보네요?”상혁의 나이에 여자가 있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고 돈으로 여자를 기쁘게 하는 것도 정상적인 일이다. 그러나 75억을 투자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상혁의 집안과 여자의 신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설명해 준다.남자들도 여자의 등급을 나누기 때문이다.상혁은 서태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치워.”비서는 뚜껑을 닫았다. 상혁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비서는 외투를 건네주었다.“비행기표는 이미 다 사놓았습니다. 한 시간 뒤에 출발 예정이니 저녁 10시에 B시에 도착할 겁니다.” ‘10시라, 파티가 11시에 끝나니까 갈 수 있겠어.’“출발하자.”서태진은 상혁의 뒤를 따라가면서 눈알을 돌리며 생각했다....B시.하연은 상혁이 비행기에 탑승한다는 메시지를 받았을 때, 무대 뒤에 있었고 손님들이 입장을 하고 있었다.“대표님, 무슨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주현빈이 물었다. 주현빈의 뒤에는 서준도 있었다.하연의 얼굴은 금세 웃음기가 사라졌다.“아닙니다, 회장님.”서준은 하연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최 사장님은 좋은 일이 있으면 바로 알리네요.”“당연하죠. 한 대표님께서 이런 기회 안 만들어 주셨으면 제가 이렇게 기쁠 수 없죠.”하연은 침착하게 서준을 비꼬았다.두 사람이 기싸움을 하자, 주현빈은 이상한 기류를 느끼고 다급히 막아 나섰다.“예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오늘은 저희 모두 친구니까요. 최 사장님, 크리스마스 행사를 시작하고부터 지금까지 해외와 국내의 이익이 역대급이라면서요? 정말 대단하십니다.”“회장님께서 지지해 주셔서 이런 결과를 맞이할 수 있는 겁니다. 중간에 끼어든 사람들이랑 달리 저희는 처음부터 함께 고생한 사람들이니깐요.”하연은 서준에게 눈치를 주었다.서준은 기분이 나쁜 티를 냈다.하연은 입이 매웠다.주현빈은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했지만 두 사람이 예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알기 때문에 방법이 없었다.“저 앞에 가서 보고 올게요.”
하연은 이현을 관찰했다. 그는 흰색 목플러를 입고 있었고 긴 외투를 걸치고 있었으며 모자에 마스크까지 끼고 있어 부드러운 사람 같았다.“손 선생님 추위 타시나 봐요?”이현은 앞을 바라보며 대답했다.“추위 세게 타요.”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연회장까지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 하연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 하연의 모습을 이현이 발견했다.“좀 불편한가요?”“아니에요. 이런 시끌벅적한 장소에는 안 오실 줄 알았는데, 오셔서 좀 놀랐어요.”“저 예전에 사실 북적북적한 거 되게 좋아했어요.”“그냥 봐서는 모르겠네요. 소울 칵테일바를 운영하시는 거 보면 조용한 거 좋아하실 거 같은데.”“하연 씨도 그래 보이는데, 맞나요?”하연은 얼굴을 스카프에 파묻고 웃었다.“아니요. 저도 시끌벅적한 거 좋아해요.”이현도 웃었다.“저 좀 늙었나요?”“아니요!”비록 얼굴을 본 적이 없지만 눈에서 항상 빛이 나고 힘 있어 보여서 나이가 많아 보이지 않았다.“그럼, 왜 절 계속 손 선생님이라고 부르시죠?”“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선생님의 아우라가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 같아서요. 예를 들면 제 오빠처럼요.”하연은 이현의 아우라 때문에 존경해야 할 것 같았다.이때 연회장에 들어섰기에 하연은 이현을 자리로 데리고 갔다.“여기 따듯한 바람이 나와서 춥진 않을 겁니다.”이현이 대답했다.“신경 써줘서 고마워요.”“아닙니다.”하연은 주위에 사람이 너무 많아 이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파티가 끝나면 제 셋째 오빠 소개해 드릴게요.”가까이 다가오자, 이현은 하연의 숨을 느낄 수 있었고 향기로운 냄새를 맡았다.이현은 거절하려고 했는데, 눈앞의 하연을 보고 대답했다.“기다릴게요.”하연에게서 빛이 나고 또 이렇게 다른 사람을 배려해 주는 모습을 본 서준은 눈썹을 찌푸렸다.“저 사람 누구지?”동후가 보더니 대답했다.“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껴서 누군지 잘 모르겠어요. 혹시 연예인 아닐까요?”오늘 하성의 일이 너무 핫해 연예계 사람이 와도
이번에 하연과 손을 잡은 방송사는 황금시간대에 프로그램을 편성했으며, 티켓은 판매 시작과 동시에 순식간에 매진되었다.일 년에 한 번 있는 큰 행사라 보안이 철저해 하연은 상혁이 들어오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 미리 메시지를 보냈다.[비행기에서 내린 다음에 스태프 통로에 오면 태훈이 보고 데리러 나가라고 할게요.]답장이 없자 하연이 시간을 체크해 봤는데, 상혁이 아직 비행기에 있을 시간이었다.하연이 무대 뒤로 가서 이름이 쓰여 있지 않은 방으로 들어갔다. 준비를 끝낸 하성이 거울 앞에 앉아 있었다.하성의 목소리가 떨렸다.“하연아, 데뷔하고부터 이렇게 떨린 적이 없어.”하연이 웃으며 하성의 어깨를 도닥였다.“정말 마음먹은 거죠?”“난, 이익만 따지고 감정이 없는 사람입니다.”하성은 자신감이 넘쳤다.최씨네 집안 아이들은 다 이런 것 같다. 부모님의 사랑을 진정으로 받아본 적이 없으므로 누구보다도 감정을 소중히 여기는 것 같다.시간이 일분일초 지나가고 프로그램도 하나씩 끝이 났다. 스크린의 숫자는 놀랄 정도가 되었고 곧 10시 반이 된다. 계획대로라면 다음은 하성의 무대다.현장과 방송으로 보고 있는 수많은 관객이 기대에 부풀어 있다.무대 아래서, 운석이 서준의 어깨에 팔을 올려놓고 말했다.“지금까지 안 나온 거 보면, 혹시 그냥 홍보 전략인 거 아니야?”서준도 무대 뒤편을 응시하고 있었다.“홍보 전략이라고 해도 원하는 효과는 나왔잖아.”선유는 형광봉을 들고 즐기고 있었다.운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선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멀지 않은 곳에서 호현욱은 주먹을 쥐고 마구 솟는 숫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부동산에서 얻은 이익에 10배를 곱해도 비교할 수 없는 숫자였다.“어떻게 이럴 수 있지? 숫자가 저렇게 클 수 있어? 조작 아니야?”옆에 있던 비서가 숨을 헐떡였다.“이렇게 큰 행산데, 그럴 리가 없겠죠? 이사님, 최 사장님이 한 결정이 맞았네요!”호현욱은 눈앞이 캄캄했다. 연말이 되면 재무가 공시돼서 하연이 DS그룹에서 쫓겨날 줄 알
“최하성의 친동생이니까 이렇게 말해주는 거겠죠. 그 일에 대해 해명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런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다니, 제가 만약 당신이라면 너무 부끄러울 것 같네요.”하연은 호현욱이 질까 봐 두려워서 그렇게 말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이사님께서는 우리 하성 오빠의 열애설에 관심이 많으신가 봅니다. 연세가 이렇게 많으신데도 그런데 관심이 많으시고, 남자는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소년이라고 하던데, 맞는 말인가 보네요.”하연은 호현욱의 화를 돋웠다.“아니!”하연은 여전히 웃으며 스태프에게 말했다.“이사님 무대 잘 보실 수 있게 앞자리 안배해 주세요.”하연은 호현욱이 나이가 그렇게 많은데, 하성의 열애설에 관심이 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스태프가 말했다.“이사님, 이쪽으로 오세요.”호현욱은 움직이지 않았다.“여기에 있을 겁니다!”스태프는 당황했다.“그럼, 저 앞에 스크린 이사님 쪽으로 마주하게 놓아주세요.”하연은 말을 마치고 자리를 떠났다,호현욱은 하연의 뒷모습을 보며 이를 갈았다.“가자!”가려고 하는데, 무대가 조용해지고 불이 꺼졌다. 관객석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려왔다.호현욱도 의아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노래가 나오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3초도 안 됐는데, 관객들은 이미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아챈 듯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무대 위의 조명이 밝아지더니 남자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점차 모습을 드러냈다. 그 남자는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윗옷 단추를 잠그지 않고 복근을 드러냈다.남자는 단정한 이목구비에 카메라를 보는 시선에서 빛이 났다.마이크를 지고 노래를 부르는데, 클라이맥스가 다가오자, 무대에서 뛰어내리며 가뿐히 착지했다.그러자 폭죽이 터지면서 관객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최하성! 최하성! 최하성!”호현욱은 폭죽 소리에 놀라 비서의 품에 넘어졌고 놀란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보았다.“최하성? 그럴 리가?”“하성?”스태프들 가운데 있던 가흔도 놀란 듯 무대를 바라보았다.‘여기에 왔다고?
“아!”하연은 다급히 귀를 막았다. 하마터면 관객들의 환호성에 귀가 멀뻔했다.“저는...”하성은 마이크를 꼭 쥐고 긴장한 듯 말을 이었다.“제가 아이돌을 10년 동안 해오면서 많은 영예를 얻었는데, 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게 한 건 그 여자가 예전에 했던 말 때문입니다.”가흔은 멍하니 무대 위에서 빛나고 있는 하성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하성이 무대 아래를 둘러보더니 가흔에게서 시선이 멈추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녀는 이렇게 저한테 말했습니다. 앞으로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이 말을 들은 가흔은 눈물을 글썽거렸다.가흔은 하성이 이 말을 기억하고 있을 줄 몰랐다.“10년이 지났어요. 이제는 제 감정을 표현해도 되는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 연애합니다. 그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이고, 전 그 사람을 정말 사랑합니다.”하성이 몸을 앞으로 숙이자, 목에 끼고 있던 목걸이가 흘러나왔다. 그 목걸이는 핸드메이드 목걸이로 끝부분의 달이 닳아 없어져 더욱 소중해 보였다.무대 아래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저번 콘서트에서 하연이가 자신의 친동생이라고 얘기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번에 공개한 것은 연애이기 때문에 하성의 연예계 활동에 큰 타격을 줄 것이다.그래서 호현욱도 깜짝 놀라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뭐라는 거야...? 지금 연애한다고 공개한 거야...?”이렇게 큰 자리에서 공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제 팬분들에게 사과의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영향력 있는 연예인보다 책임감 있는 남자가 되고 싶습니다.”하서의 말이 끝나자, 몇 초간 정적이 흐르더니 곧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하연도 눈물을 글썽이며 보고 있었다.서준은 그런 하연을 바라보며, 하성의 완벽한 발언으로 인한 최대 수익자가 하연이라고 생각했다.스크린의 숫자는 750조를 돌파했다.현빈은 현장에서 너무 좋아 입을 다물
하연은 가흔에게 휴지를 건네주면서 웃었다.“가흔아, 너의 디자이너 재능은 벌써 10년 전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구나.”가흔은 하연이 하성의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를 보고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너무 떠벌리는 거 아니야? 좀 막지 그래?”“기분 좋아, 안 좋아?”“좋지...!”하연이 질투했다.“넌 나한테 핸드메이드 목걸이 해준 적도 없으면서.”가흔은 눈물이 쏙 들어갔다.“왜 질투하는데? 내가 너한테 준 거 핸드메이드보다 더 값진데?”하성이 무대에서 내려오고 사회자가 진행을 이어 나갔다.“그건 다르지. 핸드메이드는 만드는 사람 성의가 있으니, 사랑이 듬뿍 담겼잖아?”하성이 왜 그 목걸이를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가흔은 고개를 갸웃거렸다.“부상혁도 너한테 선물해 줄 거야.”‘오빠가 이제 선물 준다고 했었지.’하연은 웃으며 기대감을 감출 수 없었다.“오빠가 무대 뒤에서 너 기다린대.”“오늘 저녁에 사람 너무 많아서, 만나기 좀 그런데...?”가흔이 망설였다.“내가 다 안배해 놔서 사람 없어. 우리 오빠한테 뭐 할 말 없어?”하연은 미화에게 눈치를 주었다.“이쪽으로 오세요.”가흔은 입술을 깨물며 동료들 몰래 미화를 따라 무대 뒤로 갔다.“저 사람 그 사람 아닌가요...?”호현욱의 비서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호현욱이 그쪽을 보았다.호현욱이 화를 내며 말했다.“빨리 따라가서 봐봐. 사진 찍을 수 있으면 찍고! 하성에게 무조건 안 좋은 영향이 있을 거야!”비서가 가흔의 뒤를 따라 무대 뒤로 갔다.파티가 곧 끝나기 때문에 사회자가 관련 지도자를 무대로 초청하여 인사말을 하고 있었다.“최 사장님, 오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먼저 말씀 주시죠.”주현빈이 말했다.하연은 손사래를 쳤다.“오늘 밤은 바이트의 홈그라운드라 제가 먼저 말하면 안 되죠. 외부에서 제가 규칙을 모른다고 할 것입니다. 주 회장님께서 절 욕 먹이려고 이러시는 겁니까?”하연이 유머러스하게 넘기자 다른 회장님들이 웃었다.결국 주
하연은 진정하고 대답했다.“여기서 이 사람 잘 보고 있어요. 제 허락 없이 다른데 가게 하면 안 돼요.”말을 마친 하연은 외투를 벗고 무대 쪽으로 갔다. 그녀는 드레스를 흩날리며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무대로 올라갔다.연예인과 다름이 없는 외모와 아우라를 갖고 있어 무대 아래가 술렁였다.“여신이라 그런지 확실히 카메라에 예쁘게 나오네.”운석이 웃으며 말했다.서준이 운석을 노려보며 말했다.“하선유 씨, 자신을 쫓아다니는 남자가 다른 여자를 이렇게 말하면 화 안 나요?”운석이 반격했다.“왜 우리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해?”하연을 보는 선유의 눈에서 빛이 났다.“괜찮아요. 언니도 저의 여신인걸요.”운석이 웃었다.서준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하연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주 회장님께서 절 믿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바이트가 이런 성적을 거두게 된 것은, 모든 직원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자 상거래가 지금까지 발전해 온 것은 좋은 정책과 좋은 시대를 만났기 때문입니다.”동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 말씀 정말 잘하시네.”서준은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하연이 무대 아래를 훑어보더니 빈자리에 시선이 멈췄다.상혁이 아직 오지 않았다.하연은 실망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10분 뒤면 12시가 된다. 상혁은 분명 12시 전에 올 수 있다고 했다.하연은 종일 높은 하이힐을 신어 발목이 아팠다. 시간은 일분일초 지나고 있었고 상혁의 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연회장으로 오는 길, 수십 대의 차가 줄지어 서 있었다. 피터가 창문을 열고 말했다.“대표님, 앞에 가서 알아봤는데, 도로가 함몰돼서 복구하려면 몇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상혁은 애써 기분을 조절하며 핸드폰을 꼭 쥐었다.“시 교통국의 책임자에게 전화를 걸어 늦어도 한 시간 안에는 해결하라고 전해.”피터는 침을 삼켰다.“한 시간 안에 해결한다고 해도 늦었는데요?”파티는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라이브 방송에서 현빈이 인사말을 하고 하연
상혁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살짝 웃음을 지었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검진을 마친 뒤, 하연은 선명한 초음파 사진을 손에 들고 있었다. 사진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손끝으로 사진 속 동그란 그림을 가리켰다. “여기 봐봐요. 이게 우리 아기래요.” 목소리엔 설렘과 떨림이 그대로 묻어났다. 상혁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하연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눈엔 이미 감동이 차올라 있었다. 상혁은 조심스레 하연의 아랫배에 손을 얹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이 순간... 난 정말 너무 행복해.” ‘네가 내 옆에 있고, 우리 아이가 이렇게 자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야.’ 하연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남자아기일까요, 여자아기일까요?” 그녀의 눈빛에는 이미 사랑스러운 미래가 그려지고 있었다. 상혁은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상관없어.” 하연은 고개를 살짝 돌려 상혁을 바라봤다. 그 눈동자엔 별빛이 머물러 있는 듯 반짝였다. “그래요... 건강하게만 태어나면... 그걸로 충분해요.”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손을 맞잡았고, 서로의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따뜻함을 느꼈다. 그 순간, 상혁의 주머니 속 핸드폰이 진동했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하곤 순간 눈빛이 깊어졌다. 화면엔 낯익은 이름이 선명히 떠 있었다. [부동건.]‘이 타이밍에...?’ ‘설마 무슨 일 생긴 건가?’ 지난 연회 이후, 부동건과는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의 파장이 얼마나 컸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송혜선과 조봉규. 그 두 사람 때문에 무너진 자존심. 그리고 결국, 부동건은 송혜선을 아이와 함께 본가에서 내쫓았다는 소문까지 들려왔다. 하연이 조용히 말했다. “받아봐요. 무슨 일일 수도 있으니까.” 상혁은 하연의 손등을 가볍게 토닥이고, 그녀를 옆에 있는 의자에 앉힌 후
부동건은 갑작스레 거칠게 기침을 터뜨렸다. “컥”‘피 맛...?’ 목 안에서 치밀어 오르는 피비린내를 억지로 삼켰다. 손등에 핏줄이 선명히 드러나고, 이성의 끈은 이미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부동건의 시선이 천천히 송혜선과 조봉규를 향했다. ‘죽여버리고 싶다.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너희들... 너희들...” 부동건의 입술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송혜선은 극도의 공포에 휩싸였다. ‘이건 아니야... 이렇게 끝나면 안 돼...’ 그녀는 급히 앞으로 다가가 부동건의 팔을 붙잡았다. “회장님... 우리, 조 선생님이랑 그냥 산후 회복 얘기하던 중이었어요. 진짜예요, 저희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 부동건의 손이 송혜선의 뺨을 후려쳤다. 짝! 순간 정적. 강하게 내리친 손바닥 소리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숨을 멈춘 듯 조용해졌다. 송혜선의 얼굴 한쪽이 순식간에 붉게 부어올랐다. 눈가가 덜덜 떨리며, 눈물도 같이 맺혔다. “이 천하의... 배은망덕 같은 것. 내가 너를 어떻게 믿었는데... 감히 날 기만해?” 뒤에 서 있던 하객들 사이에서도 탄식이 흘러나왔다. “저 정도였어?” “저게 진짜였네... 소문이 아니고...” “...”송혜선은 뺨의 통증을 애써 무시한 채, 다시 붙잡았다. “회장님, 제발... 오해예요. 저희 그런 사이 아니에요. 저는... 당신뿐이었어요.” 그러나 부동건은 그 손마저 거칠게 뿌리쳤다. 그리고는 힘껏 송혜선의 복부를 발로 찼다. 퍽!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송혜선은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조봉규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아니야... 지금 나섰다간 나도 끝장이야.’ 한 걸음 다가가려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회... 회장님... 저희...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정말이에요...” 하지만 그 한마디가 기름을 붓는 꼴이 됐다. 부동건은 그대로 조
일 순간 충격의 정점이었다.부동건은 들고 있던 와인잔을 그대로 바닥에 내던졌다. 쨍그랑! 깨지는 소리와 동시에 모든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저... 저런 미친...!” 그는 화면을 가리키며, 얼굴을 붉힌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숨이 거칠게 턱 끝까지 차올랐다. ‘송혜선... 네가 감히!’ 주변 하객들도 이미 술렁이기 시작했다. “저게 진짜야?” “부 회장님 딸이... 아니라고?” “와... 이건 완전히 생각지도 못한 미친 패륜이야, 상상도 못 했어.” 오늘의 연회는 더없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이제 와선 최악의 스캔들 파티가 되어버렸다. ‘이 연회가... 전부 거짓된 일 때문에 생긴 일이란 말이야?’ ‘우리, 사기당한 거네. 다 같이.’ 그때 스크린이 멈췄고, 연회장 전체의 조명이 다시 환히 켜졌다. 하객들은 본능적으로 두리번거리며 부동건을 찾았다.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하지만 부동건은 아무런 대답 없이 어금니를 꽉 물고, 몸을 떨며 계단 쪽으로 향했다. 하객들은 그 뒤를 따라붙었다. ‘뭔가 일어나겠군...’ ‘이번엔 진짜 끝장이다.’ ...같은 시각, 2층 방 안. 송혜선은 조봉규의 손등을 다독이며 조용히 말했다. “조금만 참아. 며칠만 지나면 내가 다시 올게.” 조봉규는 싱긋 웃으며, 그녀의 허벅지를 장난스럽게 움켜쥐었다. “응. 기다릴게, 자기.”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 문이 거칠게 흔들렸고,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쾅!! “송혜선! 당장 안 나와?!” 송혜선의 온몸이 순간 얼어붙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조봉규의 팔을 꽉 잡았다. ‘망했다.’ “어떡해, 부동건이 올라왔어.” 두 사람은 당황하며 방 안을 둘러봤지만, 창문 하나 없는 좁은 방엔 도망칠 곳조차 없었다. ‘안 돼... 이렇게 들키면, 끝장이야. 정말 끝이야.’ 송혜선은 급하게 숨을 고르며 애써 이성을 붙잡으려 했다. ‘진정해. 침착해야 돼.
연회장 안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부동건은 손에 잔을 들고, 연신 들어오는 축하 인사에 밝은 표정으로 답하고 있었다. “회장님, 따님이 너무 예뻐요. 축하드립니다!” “아이고, 이런 경사는 자주 있어야죠!” ‘그래, 이 정도면 완벽하지. 오늘은 그 누구도 나를 흔들 수 없어.’ 그렇게 술이 한 잔, 두 잔 더해지며 연회장의 분위기도 점점 무르익고 있었다. 그때, 갑작스레 모든 조명이 꺼졌다. 탁! “어, 뭐야?” “불 꺼졌어! 왜 이래?” “아야, 누가 내 발 밟았어!” “...”순식간에 어둠이 덮친 연회장. 사람들의 놀란 목소리와 웅성거림이 퍼졌다. 잔을 들고 있던 부동건은 순간 정지된 듯 멈췄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당장 가서 확인해봐!” “네, 회장님!” 직원들이 급히 움직였고, 부동건은 진정시키려는 듯 손을 들고 말했다. “여러분, 당황하지 마시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전기 쪽 문제인 것 같습니다. 금방 복구됩니다.” 사람들은 잠시 멈춰 서서 어둠 속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그 순간, 연회장 한쪽 벽면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이 조용히 켜졌다. “위이잉...” 어둠 속에서 갑작스레 터진 화면의 빛에 모두가 눈을 찌푸리며 반사적으로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 빛이 익숙해질 무렵, 누군가가 터트린 외마디 감탄에, 시선이 일제히 스크린으로 향했다. “어... 저거 뭐야? 헉, 저게... 말이 돼?” 그리고, 그 스크린 안에 있는 건... 분명 두 남녀의 은밀한 장면이었다. 화면 속, 분명히 누군가를 알아본 듯한 목소리가 터졌다. “저 여자... 그분 아니야?” “옆에 있는 남자는...?” “헐, 이건 진짜 레전드다.” “아, 눈 버렸어. 이게 뭐야, 이게...”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순식간에 연회장은 도저히 되돌릴 수 없는 혼돈의 도가니로 빠져들고 있었다.사람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송혜선이 복도 입구에 막 다다랐을 때였다. 갑작스레 어디선가 튀어나온 그림자가 그녀를 뒤에서 껴안았다. “꺄악!” 놀란 송혜선은 반사적으로 비명을 질렀고, 누군가 재빨리 그녀의 입을 막았다. “나야! 나야, 혜선아.” 익숙한 목소리에 송혜선은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남자의 손을 떼어내며 차갑게 말했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이 사람, 지금 제정신인 거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어서 급히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송혜선은 그제야 숨을 돌리며, 낮은 목소리로 흘기듯 말했다.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미쳤어, 사람들 눈에 띄면 어쩌려고!!” 그 말엔 명백한 불만과 경계심이 섞여 있었다. 조봉규는 잠시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안 되는데...’ 그 순간의 긴장, 그리고 복잡한 감정이 두 사람 사이에 감돌았다.조봉규의 시선이 송혜선의 얼굴에서 천천히 내려앉았다. 송혜선은 산후라 그런가, 몸매는 훨씬 더 부드럽고 풍성해져 있었다. ‘이러니까, 잊으려고 해도... 더 생각이 나잖아.’ 그는 순간 충동적으로 송혜선의 팔을 붙잡았다. “잠깐만.” 당황한 송혜선이 눈을 부릅떴다. “뭐 하는 거야!! 지금...” 그러나 조봉규는 말없이 송혜선을 옆방으로 이끌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작게 ‘탁’ 하고 울렸다. 좁은 공간, 차오르는 침묵. 송혜선은 남자를 노려보며 벽에 등을 댔다. “정신 차려!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조봉규는 그녀를 바라보며 낮게 숨을 내쉬었다. “다들 홀에 있잖아. 아무도 몰라.” 남자의 말투엔 간절함과 조급함이 섞여 있었다. 이건 단순한 욕망이 아니었다. 그리움, 억눌림, 그리고 못다 한 말들. 그는 조심스럽게 송혜선의 턱선을 손끝으로 만지며 말했다. “혜선아... 나, 정말 많이 참았어.” ‘이 사람 또 이러네...’ 송혜선의 심장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분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정문 쪽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부동건이 고개를 돌리자, 최하연이 부상혁의 팔을 자연스럽게 끼고 등장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순간, 많은 이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쏠렸다. 잘생긴 남자와 우아한 여자의 조합. 누가 봐도 완벽한 한 쌍이었다. ‘딱 봐도 좋은 그림이야. 저 둘은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눈길을 끌어...’ “회장님, 부상혁 대표님은 정말 복도 많으십니다. 최씨 가문의 따님과 이렇게 잘 어울리는 커플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누군가의 말에 부동건의 표정이 확 풀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미묘하던 분위기가 사라지고, 부동건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피어났다. 부동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젊은 사람들이 서로 마음이 맞아 좋아하는 걸, 우리 어른들은 그저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줘야 하는 일일 뿐이지요.” “게다가 상대가 최씨 가문의 따님이라니, 정말 금상첨화가 아닙니까.” 부동건은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역시 상혁이다. 내 아들이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 상혁은 오늘 이 자리에서 당당히 아버지의 체면을 세워주고 있었다. 한편, 송혜선도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방금 전까지 얼굴에 띄웠던 미소는 점점 사라져 갔고, 그녀의 시선은 어느새 하연에게 향했다. 오늘의 하연은, 나무나 예쁘고... 아니, 그냥 눈이 부실 만큼 찬란했다. 그리고 또렷한 이목구비에 윤기 흐르는 머릿결, 화사하게 피어난 얼굴빛까지. 하연의 행복함이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듯했다. 송혜선의 눈빛이 서서히 차가워졌다. ‘정다영... 그년, 나를 속였어.’ 그동안 하연 쪽에서 뭔가 반응이 있을 줄 알고 기다려 왔다. 하지만 소식은커녕, 정다영조차 자취를 감췄다. ‘다영이 걔가 하연이에게 약 먹이는 계획이 분명 실패한 거야. 그렇지 않고 선 지금 저렇게 멀쩡한 얼굴로 서 있을 수는 없어.’ 이대로 배가 불러오면, 섣불리 손도 쓸 수 없게 된다. ‘
이 질문에 송혜선은 눈을 반짝이며 부동건을 바라봤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젠 나를 당당히 소개해 줄 때가 됐겠지.’ 오늘 이 자리에서, 그녀는 부동건의 정식 아내로서 인정받기를 바라고 있었다. “회장님, 말씀 좀 해보세요?” 조금은 성급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자, 주변의 시선도 하나둘 송혜선과 부동건을 향했다. 모두 속으로는 뻔히 알고 있었다. 부동건이 과연 예전 애인을 진짜로 정실로 앉혔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했다. 부동건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숨기거나 피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담백하게 말했다. “오 회장님, 이 사람은 제 딸의 어머니입니다.” 순간, 송혜선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딸의... 어머니?’ 손에 들고 있던 와인 잔이 살짝 흔들렸다. 금세 넘칠 듯한 와인, 애써 잡고 있는 감정. ‘지금... 이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억울함이 툭 하고 솟구쳤다. 심지어 손에 힘이 들어가며 하얗게 질린 손등이 떨렸다. 오병지는 단번에 눈치챘고, 싱긋 웃으며 더는 묻지 않았고, 대신 가볍게 말을 건넸다. “축하드립니다. 부 회장님, 여전히 복이 많으시네요.” 부동건은 공손하게 웃으며 송혜선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 손길엔 무언의 위로가 담겨 있었다. “아닙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나중에 저와 이 사람의 결혼식엔 꼭 오셔서 축배 들어주세요.” 그 말에 송혜선의 눈이 번쩍 뜨였다. ‘결혼식...?’ 순간, 가슴이 쿵 하고 울렸다. 이어서 고개를 들며 수줍게 웃었다. “회장님...” 부동건은 말없이 그녀를 더 가까이 끌어안았다. 더 이상의 말은 없었지만, 그 행동으로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주변의 사람들 시선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송혜선을 무시하거나 조롱하던 눈빛이, 지금은 선망과 부러움으로 가득했다. 결국, ‘부동건의 아내’라는 타이틀은 그 자체로 막대한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이름이었다.송혜선은 온
부지윤의 ‘한 달 잔치’는 그야말로 성대한 수준의 파티였다. 초대받은 인사들만 봐도, 그 위세가 느껴졌다. F국 재계의 실력자들, 정재계의 핵심 인물, 이름만 대면 아는 명문가 자제들이 대거 초청됐고, 심지어 부씨 가문 어른들에게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직접 청첩장을 보냈다. 이 정도면, 사실상 이 아이를 공식적으로 가문에 편입시키겠다는 의지나 다름없었다. 부동건이 이 아이에게 얼마나 애정을 집착하듯 쏟고 있는지, 이날 행사 하나로 증명되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동건은 스스로의 체면과 명예를 걸고, 딸을 세상에 내보이고 있었다. ...잔치 당일, 연회장은 유난히 붐볐다. 샹들리에의 조명이 화사하게 반짝였고, 고급스러움이 풍겨 나는 악단의 선율이 분위기를 감싸고 있었다. 송혜선은 산후조리를 마친 직후였지만, 여전히 그만의 풍채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예전보다 조금 살이 오른 듯했지만, 그 덕에 오히려 분위기가 더 너그러워 보였다. 그녀가 행사장에 들어서자, 평소 자주 어울리던 재벌가 부인들이 앞다투어 다가왔다. “혜선씨는 진짜 복이 많은 사람이에요. 그 고생 끝에 드디어 볕뜰날이 왔네요.” “부 회장님이 이렇게까지 챙기시는 거 보니까, 이제 정말 한 자리 하시겠어요.” “정말 이러다 조만간 ‘겹경사’ 나는 거 아니예요? 우리라도 미리 축하해줘야 하는 거야?” 송혜선은 그 소리에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얄미울 정도로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역시 사람은 자리가 높아야 대접 받는 거야.’ “지윤이는 회장님의 첫 딸이잖아요. 그러니까 귀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회장님이 우리 모녀를 절대 가볍게 보지 않으신다는 건, 여기 있는 분들도 느끼셨을 테고요.” 그 말에 다들 박수까지 치며 웃었다. “이제 우리도 호칭 바꿔야지, 사모님!” 누군가 먼저 그렇게 불렀고, 뒤이어 몇몇이 장난처럼 따라 불렀다. 송혜선은 그 말에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턱을 살짝 들며, 그 호칭이 제법 익숙
진윤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마침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부남준은 법을 무시하고, 사람을 죽였어요. 부씨 가문이 이 일에 개입한다면... 여론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감싸려 들면 들수록, 결국은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겠죠.” ‘이건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가문의 존망이 걸린 문제야.’ 맞은편 소파에 앉은 상혁은 다리를 꼬고, 한쪽 손으로 턱을 괸 채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의 눈빛엔 어떤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세속의 먼지 따윈 전혀 묻지 않은 사람처럼. 진윤의 말이 끝났지만, 상혁의 표정엔 미동 하나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부씨 가문은 항상 법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여왔습니다. 그건 변하지 않습니다, 여사님.” 그는 손짓으로 테이블 위를 가리켰다. 거기엔 작은 검은색 USB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 안에... 고나희 씨가 남긴 게 있습니다. 여사님께 드리라고 하더군요.” 순간, 진윤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숨이 턱 막히는 듯한 표정으로, USB를 바라봤다. “지금... 뭐라고 하셨죠?” 그녀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나희가... 뭔가를 남겼다고...?’ 사고는 너무도 갑작스러웠다. 딸의 마지막을 함께할 시간조차 없이, 그녀는 세상을 떠났고, 어떤 유언도, 한마디 말도 남기지 못한 줄 알았다. “나희... 그 애가... 무슨 말을 남겼다는 거예요...” 진윤은 입을 틀어막았다. 눈물은 이미 참을 수 없다는 듯 쏟아지려 하고 있었다. 상혁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다. “사람이 떠난 건 바꿀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남겨진 마음은, 누군가가 반드시 전해야죠.” 그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거운 공기를 뒤로한 채, 조용히 방을 나섰다. 잠시 후.룸 안에서 낮고, 억눌렀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희야...” 진윤은 USB를 손에 쥐고,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으로 울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