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과 하연이 동시에 눈을 들자 상혁을 보았다. 검은 색 코드를 입고 엄숙하게 있었다. 조명이 화려한 와인바에 있자 더욱 훤칠해 보였다. 하연은 무의식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상혁 오빠, 왜 왔어요?”상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서준의 시선속에서 말했다.“한 대표님, 길을 막았네요.”서준의 긴 다리가 옆으로 뻗어 상혁의 길을 막았다. 바로 다리를 걷지 않았다. 서준의 카리스마도 상혁 못지 않았다.“여긴 부 대표님이 갈 길이 아니에요. 막아도 괜찮아요.”두 훌륭한 남자가 상대하니 전혀 승부가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여긴 제가 갈 길이 아니었지만, 제가 원하는 사람이 여기에 있어 가야 해요.”뜻이 확실했다. 서준은 눈썹을 찌푸렸다.“원하는 사람이 부 대표님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이 말을 듣자 상혁은 웃으며 하연을 바라보았다.“여기 있을 거야, 아니면 나와 같이 갈 거야?”하연의 머리가 찌릿했다. 기억속에서 상혁은 이런 장소에 자주 오지 않았다. 항상 품위있고 자기 관리가 철저하여 이런 곳에 오지 않는다. 하연은 가방을 찾고 나가려 하자 서준에게 잡히고 서준도 천천히 일어섰다.“원하지 않는데 강요하세요?”하연은 멈추었다. 상혁과 이런 일이 생겨 기분이 이상했다. 상혁의 시선은 계속 하연에게 있었다.“한 대표님도 하연이 원하지 않으면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네요. 그럼 주현빈 집에서 왜 하연과 우연한 만남을 만들어요? 곤란한 게 안 보여요?”하연은 눈을 들자 서준의 힘이 풀리는 걸 느꼈다.“네가 말했어?”‘이미 모든 말을 할 사이가 되었어?’하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상혁이 사람을 붙혀서 안 것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러자 상혁은 하연의 손을 잡고 곁으로 당기며 하연의 턱을 올렸다.“얼마 마셨어?”매우 친밀해 보였다. 하연은 상혁의 손을 치웠다.“반 병, 가흔도 있어요.”“3시간 후, 비행기가 떠나. 여기에 있고 싶으면 나도 강요하지 않아.”하연은 눈을 치켜올렸다. 눈가가 촉촉하며 원망하
서준의 눈빛이 점차 위험해졌다. 한참 제자리에 서며 전화를 걸었다.“부상혁이 언제 왔어, 왜 아무도 나한테 알려주지 않았어!”...바깥 날씨가 추웠다. 하연이 문 앞에 서서 입김이 났다. 얼굴 반쯤을 스카프에 묻혀 있고 불쌍하게 눈만 드러냈다. 상혁은 하연의 곁에 다가갔다.“왜 차에 타지 않아?”하연은 화를 냈다.“저도 차 있어요.”상혁은 하연을 바며 손을 잡고 따뜻하게 해주었다.“어젯밤부터 지금까지 자지도 못했어. 체면을 봐줄래? 화내지 마.”하연은 더욱 화가 났다.“덕분에 저도 자지 않았어요!”상혁은 웃었다.“고생시켰네, 미안해. 내 탓이야.”상혁의 피부가 원래도 하얀데 검은 코트에 의해 더욱 창백해 보이며 병약한 모습에 하연의 마음이 약해졌다.“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요?”상혁은 기다리고 있는 연지를 바라보았다.“공식전인 업무 외에 네 행방은 매우 고정되어 알아내기 쉬워.”하연은 상혁을 찼다.“모두 손바닥에 있어요? 부 대표님이 저한테까지 수작을 부리네요.”상혁은 아파서 소리를 냈다. 하연은 순간 당황했다.“아파요? 죄송해요, 저.”하연은 상혁의 눈빛에 빠졌다.“여전히 날 아끼네.”하연은 상혁의 손을 뿌리치고 앞으로 갔다. 정말 화가 났다.“상대하기 귀찮아요!”상혁은 가볍게 웃으며 따라갔다.“오늘 한 말들은 진심이야. 방식이 틀리긴 했지만 거짓말이 아니야.”“한서준이 한씨 그룹의 고객을 조건으로 제 용서를 빌었어요.”상혁은 눈썹을 찌푸렸다. 하연은 두로 가며 상혁을 바라보았다.“하지만 오빠는요?”“설렜어?”“아니요. 하지만 오늘 기운석을 만났어요. 요즘 좋아하는 사람에게 구애하고 있다네요. 승마장도 주고 여자가 좋아하는 산업에 투자도 하며 구애하고 있어요.”하연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부 대표님, 제가 좋다면서 이렇게 해요? 아무것도 없어요?”상혁은 손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아무도 없었다. 상혁은 씁쓸하게 말했다.“대학원을 졸업한 때 기억나?”하연은 놀랐다. 그래에 하연은 상혁과 졸업
하연은 얼굴을 들고 입김을 불자 시야의 일부가 가려졌다. 한참 후 하연이 물었다.“왜 알려주지 않았어요.”“그때 네가 한서준 아니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어.”하연은 눈을 감고 깨달았다.“그래서 그 후 오빠의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네요.”“네가 결혼한 날, DL에 들어가서 일에 집중하겠다고 아버지와 약속했어. 2년이 지난 후 이사회에 들어가서 9명의 이사 중의 한 명이 되었어.”연지는 차를 몰고 거리를 유지하며 그들을 따랐다. 차의 헤드라이트가 오랜 세월처럼 추위 속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는 두 사람을 비추었다.“일 때문에 많이 힘들었어. 그보다 아쉬움이 더욱 컸어. 네가 이혼한 걸 듣고 모든 것을 버리고 B시와서 FL 그룹을 성립했어. 그 핑계로 널 자주 보고 싶었어.”“네가 한씨 가문에서 잘지내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너무 아팠어, 하연아.”상혁의 목소리는 슬픔에 잠겨 있었고, 하연의 가슴도 깨질 것 같았다. 몇년 동안 상혁은 희망 없는 기대를 품고 어떻게 지냈는지 상상이 안 된다. 하연은 급했다.“저, 죄송해요.”“나한테 미안한 일을 하지 않았어. 넌 그저 네 마음을 따랐을 뿐이야.”상혁은 다시 하연의 손을 잡았다.“네가 다시 한서준을 선택한다고 해도 난 널 존중해. 네가 상처를 받으면 내 곁으로 물러서도 널 지적하지 않고 지켜줄 거야.”하연은 머리를 힘껏 흔들며 눈시울을 붉혔다.“아니요, 상혁 오빠. 다시는, 다시는 한서준을 선택하지 ㅇ낳아요.”상혁은 놀랐다. 하연을 바로 품에 안고 힘껏 안았다.“다시는 널 놓치지 않을 거야. 하연아, 사랑해. 오랜동안 사랑했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사랑할 거야.”어렸을 때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평생... 하연은 기분이 이상했다. 너무 일찍 설렌 것 같았지만, 오래전 부터 상혁이가 자신을 사랑한 걸 상상도 못 했다.“부상혁, 난 예전에 유치하고 많은 일들을 잘 몰랐어요. 이제야 좋아하는 마음을 알게 되었어요. 늦지 않았어요?”상혁은 가볍게 말했다.“늦지 않았어. 딱 좋아
하연의 별장 안.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난 가흔은 흥분하여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세상에! 이게 무슨 드라마도 아니고, 현실에 이런 사랑이 있다니!” 하연은 싱긋 미소를 지었고 머릿속에는 온통 상혁 생각뿐이었다. 가흔은 재빨리 타자를 치기 시작했는데 하연이 그녀를 말렸다. “뭐하려고?” “이런 빅뉴스는 당연히 공유를 해야지!” 가흔은 단톡방에 이 사실을 말하려 했고 하연은 얼른 그녀를 제지했다. “일단 말하지 마.” “왜?” 가흔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했으면 서로의 관계는 이미 확정된 거 아니야? 너 설마?” “그런 거 아니야.” 하연은 가흔이 타자하고 있던 글을 후딱 지웠고 자신조차도 지금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몰랐다. “아직 관계가 안정된 단계는 아니니까 좀 더 안정되고 나면 그때 다시 말할 거야.” 이 말을 들은 가흔은 손으로 자신의 볼을 감싸고 하연의 표정을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하연, 너 설마 아직도 흔들리는 거 아니지?” “너 그거 알아? 실제로 몇 년 간의 시간은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눈 깜짝할 새에 지나고 그러지 않아. 그건 아주 길고 고통스러운 기다림을 거쳐야 하는 거야.”“부상혁 같은 남자가 주변에 여자가 없는 것도 아닐 텐데 너를 위해 지금까지 기다렸잖아. 이 세상에서 그런 남자는 더 이상 찾기 힘들 꺼야. 그러니 네가 부디 놓치지 않길 바랄 뿐이야.” 자신도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가흔은 더욱 마음이 쓰이고 공감이 되었다.이에 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알아. 하지만 난 왠지 모든 게 생각처럼 간단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두 사람은 뭔가 서로에 대해 다 알 것 같았지만 또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했다. 가흔도 망설이는 하연의 모습에 단톡방에 이 소식을 전하진 않았고 무심코 인스타에 올랐는데 순간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왜 그래?” 가흔은 바로 하연에게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 “태현이 방금 인스타에 게시물을 올렸어.” B시 상류 계
하연도 며칠간 밤 샜고 제대로 쉬지 못했다. 다음날 오후, 하연은 DS그룹에 도착했고 이미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태훈이 첫 마디를 꺼냈다. “사장님, JJ그룹 쪽 일은 잘 해결됐습니다.” 이에 하연은 의외라는 듯 물었다. “해결됐다고?” 그녀가 DS그룹의 해외 거래처와 연락을 한 건 맞지만 이렇게 빨리 일이 해결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자 태훈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쪽에서 말하길 갑자기 엄청난 제안이 두 군데에서 들어왔다고 하네요. 제가 따로 조사해보니 한쪽은 DL그룹이었고 다른 한쪽은 HT그룹의 해외 인맥이었어요.” 그제야 하연은 방금 태훈이 지은 웃음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상혁이 자신을 돕는 건 크게 의외가 아니었으나 서준이 왜 이런 상황에서 적극 나서서 도움을 주는 건지 조금 놀라웠다. “이제 다 됐어. 그 두 회사의 인력과 DS 그룹의 인맥까지 합쳐지면 JJ그룹이 해외에서 운영을 시작하기엔 충분할 거야.” “그럼 HT그룹 쪽엔 따로 인사를 갈까요?” 하연은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한서준은 나에게 미안한 마음에 도운 것일 테니 내가 당연히 얻어도 되는 거야. 그러니 굳이 가서 뭐라고 전할 필요 없어.” 태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무실로 돌아온 후 하연은 줄곧 마음이 심란했는데 머릿속에는 온통 모연이 긁었던 그 카드 생각으로 가득 찼고 이 모든 것은 생각처럼 단순한 일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임모연의 요즘 일정은 어때?” 태훈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LS그룹은 현재 모든 정력을 성동의 그 땅에 쏟아붓고 있고 임모연 씨도 사업과 관련된 인원들을 만나거나 상류층 사모님들과 모임을 가지는 것 외에 특별한 일정은 없었습니다.” “한서준과는 만난 적은?” “아니요. 최소한 그 두 분이 만나는 모습이 저희 쪽 눈에 띈 적은 없었습니다.” 하연은 생각에 잠긴 듯했고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상혁에게 물었다. [오빠, 어떤 관계면 한 남자가 자신의 가족카드를 여자에게 줄 것 같아요?] 상혁이 바로
하성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물었다. “정말 부씨 가문 그 녀석과 사귀는 거 아니야?” “아니에요!” 하연은 하성의 손을 떼어내며 대답했는데 아직 가흔이 아직 하성에게 말해주지 않은 것 같았다. 몇 초 간 하연을 빤히 쳐다보던 하성은 그제야 의심을 거두었고 손으로 그녀의 이마를 어루만지더니 말했다. “안색이 칙칙한 걸 보니 잠을 제대로 못 잔 거야?’ 그러나 하연은 자신과 상혁이 밤새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을 털어놓을 수 없었기에 말머리를 돌렸다. “오빠는 가흔이와의 관계에 대해 아직 제대로 말해주지도 않으면서 제 정보부터 캐내려 해요? 뭔가 순서가 잘못된 것 같지 않아요?” 이 말에 하성은 갑자기 헛기침을 했다. “이미 다 들켜버렸는데 뭘 더 말하라는 거야?” “구체적이지 않잖아요. 당연히 설명을 해야죠!” 이때 태훈이 노크를 하고 들어왔다. “사장님, 3시에 크리스마스 연회 장소의 세팅 상황을 체크하러 가야 합니다. 약속시간이 거의 다 되었습니다.” 하연은 태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하성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오빠, 같이 가요. 가면서 설명해줘요!” “난 간다고 한 적 없어!” 그러나 하연은 이미 하성을 끌고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마침 연예부에 자신감도 심어주고 좋잖아요. 오빠가 가장 큰 간판이니까요!” 하성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하연, 너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 어떻게 네 오빠를 상품 취급을 할 수 있어!” 말은 이렇게 했지만 하성은 결국 하연과 함께 약속 장소로 출발했다. 크리스마스 연회가 열릴 곳은 하나의 커다란 건물이었는데 매 층마다 수많은 작은 방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리고 매 방에는 한 사람씩 라이브 커머스를 진행하고 있었으며 장비까지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JJ그룹 운영팀의 윤정수가 하연과 함께 현장을 돌아보고 있었다. “주 회장님께서는 DS그룹의 호스트들에게 반드시 최고의 자원과 데이터를 제공하라고 특별히 지시하셨습니다.” 그러자 하연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
공사 현장은 현재 하연이 있는 곳과 멀지 않았고 모연도 마침 오늘 공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하연과 하성이 건물에서 나오는 모습이 그녀의 눈에 띄었다. 이때 양재성이 모연의 뒤에서 굽신거리며 따라다녔는데 조심스럽게 모연의 눈치를 살피더니 물었다. “임 사장님, 뭘 보시는 겁니까?” 그러자 모연은 표정이 일그러진 채 대답했다. “네 목이 언제 날아갈지 생각 중이었어. 왜?” 순간 양재성은 심장이 철렁하여 말했다. “일은 이미 잘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인부들도 전부 제 사람들이니 절대 정보가 새나가거나 그럴 리는 없을 겁니다. 임 사장님, 화내지 마십시오.” 모연은 냉소하며 양재성을 흘겨보았다. “나를 너와 같은 배로 끌어들였으면 마지막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지 생각은 해둔 거야?” 양재성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 “임 사장님께서 명시해 주십시오.” “네가 무슨 수를 쓰던지 상관없어. 빠른 시일 내로 돈 다시 메꿔! 이 사업은 애들 소꿉 장난이 아니란 말이야.” 모연은 비록 똑똑하진 않았지만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을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만약 누군가 갑자기 이 일에 대해 조사라도 실시한다면 분명 감방에 가게 될 게 뻔했다. 양재성은 몸을 바들바들 떨며 말했다. “전, 저에겐 정말 돈이 없습니다. 만약 그 방법이 아니었다면 지금 공사를 단 하루도 진행할 수 없었을 겁니다!” “돈이 없어?” 모연은 천천히 양재성의 앞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그럼 만들어와. 내가 방금 무슨 수를 쓰던지라고 했잖아?” “하지만 전...” 모연은 갑자기 눈알을 팽글팽글 돌리더니 턱을 치켜들고 멀지 않은 곳의 하연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여자 보이지? 현재 DS그룹의 실세이고 자산이 엄청나. 방법 좀 생각해서 저 여자 손에서 돈 뜯어내면 되겠네.” 순간 양재성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바로 모연의 뜻을 눈치 챘다. “저 분이 DS그룹의 사람이라면 어찌 제가 그런 높으신 분에게 감히 손을 댈 수 있겠습니까?” “못해도 해내야 돼. 이미
잠시 후 태훈은 칵테일바의 건물 앞에서 B시 가장 큰 건설자재 공급자인 문지상을 맞이했다. 문지상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태훈에게 굽신거리며 인사를 했다. “최 사장님께서 갑자기 만남을 요청하셔서 경황없이 달려오느라 아무 것도 준비하지 못했어요. 이거 참 죄송스럽네요!” 태훈은 의미심장하게 대답했다. “저희 사장님은 그런 걸 따지는 분이 아니니 괜찮습니다. 만남에 응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문지상은 태훈을 따라 칵테일바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는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이리저리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방금까지 거래처 사람과 술을 마시고 있던 문지상은 갑자기 비서를 통해 높으신 분이 그를 만나려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는데 정신없이 달려오느라 도대체 무슨 일로 부른 건지 물어보지도 못했다. “정 비서님, 혹시 최 사장님께서 무슨 일로 저를 부른 건지 알 수 있을까요?” 태훈은 길을 안내하며 대답했다. “사장님을 만나면 자연히 알 게 될 겁니다.” 이에 문지상은 마음이 더욱 심란했다. 태훈이 문을 열자 테이블 위에는 여러 가지 술들을 진열되어 있었고 자리에 앉은 하연은 뽀얀 피부가 유독 더 눈에 띄었으며 차분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풍겼다. “문 사장님, 어서 오세요.” 하연은 맑은 미소를 지으며 손짓했다. “여기 앉으시죠.” 문지상은 하연의 미모에 잠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새로 부임한 DS그룹의 사장이 패기 있고 능력도 있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미모까지 갖추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태훈은 바로 룸의 문을 닫아 바깥의 잡음을 전부 차단해 버렸다. “최근 DS그룹에 실업 쪽의 사업 계획은 없는 거로 알고 있는데 최 사장님께서 무슨 일로 저를 찾으신 걸까요?” 하연은 문지상에게 술을 한 잔 따르더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단지 최근에만 없는 것뿐입니다. 문 사장님이 B시 건설자재 공급 상인들 중에서 가장 유명하신 분이라 들었는데 앞으로 만약 그쪽으로 사업이 있게 되면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문
상혁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살짝 웃음을 지었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검진을 마친 뒤, 하연은 선명한 초음파 사진을 손에 들고 있었다. 사진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손끝으로 사진 속 동그란 그림을 가리켰다. “여기 봐봐요. 이게 우리 아기래요.” 목소리엔 설렘과 떨림이 그대로 묻어났다. 상혁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하연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눈엔 이미 감동이 차올라 있었다. 상혁은 조심스레 하연의 아랫배에 손을 얹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이 순간... 난 정말 너무 행복해.” ‘네가 내 옆에 있고, 우리 아이가 이렇게 자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야.’ 하연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남자아기일까요, 여자아기일까요?” 그녀의 눈빛에는 이미 사랑스러운 미래가 그려지고 있었다. 상혁은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상관없어.” 하연은 고개를 살짝 돌려 상혁을 바라봤다. 그 눈동자엔 별빛이 머물러 있는 듯 반짝였다. “그래요... 건강하게만 태어나면... 그걸로 충분해요.”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손을 맞잡았고, 서로의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따뜻함을 느꼈다. 그 순간, 상혁의 주머니 속 핸드폰이 진동했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하곤 순간 눈빛이 깊어졌다. 화면엔 낯익은 이름이 선명히 떠 있었다. [부동건.]‘이 타이밍에...?’ ‘설마 무슨 일 생긴 건가?’ 지난 연회 이후, 부동건과는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의 파장이 얼마나 컸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송혜선과 조봉규. 그 두 사람 때문에 무너진 자존심. 그리고 결국, 부동건은 송혜선을 아이와 함께 본가에서 내쫓았다는 소문까지 들려왔다. 하연이 조용히 말했다. “받아봐요. 무슨 일일 수도 있으니까.” 상혁은 하연의 손등을 가볍게 토닥이고, 그녀를 옆에 있는 의자에 앉힌 후
부동건은 갑작스레 거칠게 기침을 터뜨렸다. “컥”‘피 맛...?’ 목 안에서 치밀어 오르는 피비린내를 억지로 삼켰다. 손등에 핏줄이 선명히 드러나고, 이성의 끈은 이미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부동건의 시선이 천천히 송혜선과 조봉규를 향했다. ‘죽여버리고 싶다.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너희들... 너희들...” 부동건의 입술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송혜선은 극도의 공포에 휩싸였다. ‘이건 아니야... 이렇게 끝나면 안 돼...’ 그녀는 급히 앞으로 다가가 부동건의 팔을 붙잡았다. “회장님... 우리, 조 선생님이랑 그냥 산후 회복 얘기하던 중이었어요. 진짜예요, 저희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 부동건의 손이 송혜선의 뺨을 후려쳤다. 짝! 순간 정적. 강하게 내리친 손바닥 소리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숨을 멈춘 듯 조용해졌다. 송혜선의 얼굴 한쪽이 순식간에 붉게 부어올랐다. 눈가가 덜덜 떨리며, 눈물도 같이 맺혔다. “이 천하의... 배은망덕 같은 것. 내가 너를 어떻게 믿었는데... 감히 날 기만해?” 뒤에 서 있던 하객들 사이에서도 탄식이 흘러나왔다. “저 정도였어?” “저게 진짜였네... 소문이 아니고...” “...”송혜선은 뺨의 통증을 애써 무시한 채, 다시 붙잡았다. “회장님, 제발... 오해예요. 저희 그런 사이 아니에요. 저는... 당신뿐이었어요.” 그러나 부동건은 그 손마저 거칠게 뿌리쳤다. 그리고는 힘껏 송혜선의 복부를 발로 찼다. 퍽!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송혜선은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조봉규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아니야... 지금 나섰다간 나도 끝장이야.’ 한 걸음 다가가려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회... 회장님... 저희...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정말이에요...” 하지만 그 한마디가 기름을 붓는 꼴이 됐다. 부동건은 그대로 조
일 순간 충격의 정점이었다.부동건은 들고 있던 와인잔을 그대로 바닥에 내던졌다. 쨍그랑! 깨지는 소리와 동시에 모든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저... 저런 미친...!” 그는 화면을 가리키며, 얼굴을 붉힌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숨이 거칠게 턱 끝까지 차올랐다. ‘송혜선... 네가 감히!’ 주변 하객들도 이미 술렁이기 시작했다. “저게 진짜야?” “부 회장님 딸이... 아니라고?” “와... 이건 완전히 생각지도 못한 미친 패륜이야, 상상도 못 했어.” 오늘의 연회는 더없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이제 와선 최악의 스캔들 파티가 되어버렸다. ‘이 연회가... 전부 거짓된 일 때문에 생긴 일이란 말이야?’ ‘우리, 사기당한 거네. 다 같이.’ 그때 스크린이 멈췄고, 연회장 전체의 조명이 다시 환히 켜졌다. 하객들은 본능적으로 두리번거리며 부동건을 찾았다.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하지만 부동건은 아무런 대답 없이 어금니를 꽉 물고, 몸을 떨며 계단 쪽으로 향했다. 하객들은 그 뒤를 따라붙었다. ‘뭔가 일어나겠군...’ ‘이번엔 진짜 끝장이다.’ ...같은 시각, 2층 방 안. 송혜선은 조봉규의 손등을 다독이며 조용히 말했다. “조금만 참아. 며칠만 지나면 내가 다시 올게.” 조봉규는 싱긋 웃으며, 그녀의 허벅지를 장난스럽게 움켜쥐었다. “응. 기다릴게, 자기.”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 문이 거칠게 흔들렸고,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쾅!! “송혜선! 당장 안 나와?!” 송혜선의 온몸이 순간 얼어붙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조봉규의 팔을 꽉 잡았다. ‘망했다.’ “어떡해, 부동건이 올라왔어.” 두 사람은 당황하며 방 안을 둘러봤지만, 창문 하나 없는 좁은 방엔 도망칠 곳조차 없었다. ‘안 돼... 이렇게 들키면, 끝장이야. 정말 끝이야.’ 송혜선은 급하게 숨을 고르며 애써 이성을 붙잡으려 했다. ‘진정해. 침착해야 돼.
연회장 안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부동건은 손에 잔을 들고, 연신 들어오는 축하 인사에 밝은 표정으로 답하고 있었다. “회장님, 따님이 너무 예뻐요. 축하드립니다!” “아이고, 이런 경사는 자주 있어야죠!” ‘그래, 이 정도면 완벽하지. 오늘은 그 누구도 나를 흔들 수 없어.’ 그렇게 술이 한 잔, 두 잔 더해지며 연회장의 분위기도 점점 무르익고 있었다. 그때, 갑작스레 모든 조명이 꺼졌다. 탁! “어, 뭐야?” “불 꺼졌어! 왜 이래?” “아야, 누가 내 발 밟았어!” “...”순식간에 어둠이 덮친 연회장. 사람들의 놀란 목소리와 웅성거림이 퍼졌다. 잔을 들고 있던 부동건은 순간 정지된 듯 멈췄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당장 가서 확인해봐!” “네, 회장님!” 직원들이 급히 움직였고, 부동건은 진정시키려는 듯 손을 들고 말했다. “여러분, 당황하지 마시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전기 쪽 문제인 것 같습니다. 금방 복구됩니다.” 사람들은 잠시 멈춰 서서 어둠 속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그 순간, 연회장 한쪽 벽면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이 조용히 켜졌다. “위이잉...” 어둠 속에서 갑작스레 터진 화면의 빛에 모두가 눈을 찌푸리며 반사적으로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 빛이 익숙해질 무렵, 누군가가 터트린 외마디 감탄에, 시선이 일제히 스크린으로 향했다. “어... 저거 뭐야? 헉, 저게... 말이 돼?” 그리고, 그 스크린 안에 있는 건... 분명 두 남녀의 은밀한 장면이었다. 화면 속, 분명히 누군가를 알아본 듯한 목소리가 터졌다. “저 여자... 그분 아니야?” “옆에 있는 남자는...?” “헐, 이건 진짜 레전드다.” “아, 눈 버렸어. 이게 뭐야, 이게...”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순식간에 연회장은 도저히 되돌릴 수 없는 혼돈의 도가니로 빠져들고 있었다.사람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송혜선이 복도 입구에 막 다다랐을 때였다. 갑작스레 어디선가 튀어나온 그림자가 그녀를 뒤에서 껴안았다. “꺄악!” 놀란 송혜선은 반사적으로 비명을 질렀고, 누군가 재빨리 그녀의 입을 막았다. “나야! 나야, 혜선아.” 익숙한 목소리에 송혜선은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남자의 손을 떼어내며 차갑게 말했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이 사람, 지금 제정신인 거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어서 급히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송혜선은 그제야 숨을 돌리며, 낮은 목소리로 흘기듯 말했다.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미쳤어, 사람들 눈에 띄면 어쩌려고!!” 그 말엔 명백한 불만과 경계심이 섞여 있었다. 조봉규는 잠시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안 되는데...’ 그 순간의 긴장, 그리고 복잡한 감정이 두 사람 사이에 감돌았다.조봉규의 시선이 송혜선의 얼굴에서 천천히 내려앉았다. 송혜선은 산후라 그런가, 몸매는 훨씬 더 부드럽고 풍성해져 있었다. ‘이러니까, 잊으려고 해도... 더 생각이 나잖아.’ 그는 순간 충동적으로 송혜선의 팔을 붙잡았다. “잠깐만.” 당황한 송혜선이 눈을 부릅떴다. “뭐 하는 거야!! 지금...” 그러나 조봉규는 말없이 송혜선을 옆방으로 이끌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작게 ‘탁’ 하고 울렸다. 좁은 공간, 차오르는 침묵. 송혜선은 남자를 노려보며 벽에 등을 댔다. “정신 차려!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조봉규는 그녀를 바라보며 낮게 숨을 내쉬었다. “다들 홀에 있잖아. 아무도 몰라.” 남자의 말투엔 간절함과 조급함이 섞여 있었다. 이건 단순한 욕망이 아니었다. 그리움, 억눌림, 그리고 못다 한 말들. 그는 조심스럽게 송혜선의 턱선을 손끝으로 만지며 말했다. “혜선아... 나, 정말 많이 참았어.” ‘이 사람 또 이러네...’ 송혜선의 심장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분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정문 쪽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부동건이 고개를 돌리자, 최하연이 부상혁의 팔을 자연스럽게 끼고 등장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순간, 많은 이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쏠렸다. 잘생긴 남자와 우아한 여자의 조합. 누가 봐도 완벽한 한 쌍이었다. ‘딱 봐도 좋은 그림이야. 저 둘은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눈길을 끌어...’ “회장님, 부상혁 대표님은 정말 복도 많으십니다. 최씨 가문의 따님과 이렇게 잘 어울리는 커플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누군가의 말에 부동건의 표정이 확 풀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미묘하던 분위기가 사라지고, 부동건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피어났다. 부동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젊은 사람들이 서로 마음이 맞아 좋아하는 걸, 우리 어른들은 그저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줘야 하는 일일 뿐이지요.” “게다가 상대가 최씨 가문의 따님이라니, 정말 금상첨화가 아닙니까.” 부동건은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역시 상혁이다. 내 아들이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 상혁은 오늘 이 자리에서 당당히 아버지의 체면을 세워주고 있었다. 한편, 송혜선도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방금 전까지 얼굴에 띄웠던 미소는 점점 사라져 갔고, 그녀의 시선은 어느새 하연에게 향했다. 오늘의 하연은, 나무나 예쁘고... 아니, 그냥 눈이 부실 만큼 찬란했다. 그리고 또렷한 이목구비에 윤기 흐르는 머릿결, 화사하게 피어난 얼굴빛까지. 하연의 행복함이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듯했다. 송혜선의 눈빛이 서서히 차가워졌다. ‘정다영... 그년, 나를 속였어.’ 그동안 하연 쪽에서 뭔가 반응이 있을 줄 알고 기다려 왔다. 하지만 소식은커녕, 정다영조차 자취를 감췄다. ‘다영이 걔가 하연이에게 약 먹이는 계획이 분명 실패한 거야. 그렇지 않고 선 지금 저렇게 멀쩡한 얼굴로 서 있을 수는 없어.’ 이대로 배가 불러오면, 섣불리 손도 쓸 수 없게 된다. ‘
이 질문에 송혜선은 눈을 반짝이며 부동건을 바라봤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젠 나를 당당히 소개해 줄 때가 됐겠지.’ 오늘 이 자리에서, 그녀는 부동건의 정식 아내로서 인정받기를 바라고 있었다. “회장님, 말씀 좀 해보세요?” 조금은 성급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자, 주변의 시선도 하나둘 송혜선과 부동건을 향했다. 모두 속으로는 뻔히 알고 있었다. 부동건이 과연 예전 애인을 진짜로 정실로 앉혔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했다. 부동건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숨기거나 피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담백하게 말했다. “오 회장님, 이 사람은 제 딸의 어머니입니다.” 순간, 송혜선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딸의... 어머니?’ 손에 들고 있던 와인 잔이 살짝 흔들렸다. 금세 넘칠 듯한 와인, 애써 잡고 있는 감정. ‘지금... 이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억울함이 툭 하고 솟구쳤다. 심지어 손에 힘이 들어가며 하얗게 질린 손등이 떨렸다. 오병지는 단번에 눈치챘고, 싱긋 웃으며 더는 묻지 않았고, 대신 가볍게 말을 건넸다. “축하드립니다. 부 회장님, 여전히 복이 많으시네요.” 부동건은 공손하게 웃으며 송혜선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 손길엔 무언의 위로가 담겨 있었다. “아닙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나중에 저와 이 사람의 결혼식엔 꼭 오셔서 축배 들어주세요.” 그 말에 송혜선의 눈이 번쩍 뜨였다. ‘결혼식...?’ 순간, 가슴이 쿵 하고 울렸다. 이어서 고개를 들며 수줍게 웃었다. “회장님...” 부동건은 말없이 그녀를 더 가까이 끌어안았다. 더 이상의 말은 없었지만, 그 행동으로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주변의 사람들 시선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송혜선을 무시하거나 조롱하던 눈빛이, 지금은 선망과 부러움으로 가득했다. 결국, ‘부동건의 아내’라는 타이틀은 그 자체로 막대한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이름이었다.송혜선은 온
부지윤의 ‘한 달 잔치’는 그야말로 성대한 수준의 파티였다. 초대받은 인사들만 봐도, 그 위세가 느껴졌다. F국 재계의 실력자들, 정재계의 핵심 인물, 이름만 대면 아는 명문가 자제들이 대거 초청됐고, 심지어 부씨 가문 어른들에게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직접 청첩장을 보냈다. 이 정도면, 사실상 이 아이를 공식적으로 가문에 편입시키겠다는 의지나 다름없었다. 부동건이 이 아이에게 얼마나 애정을 집착하듯 쏟고 있는지, 이날 행사 하나로 증명되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동건은 스스로의 체면과 명예를 걸고, 딸을 세상에 내보이고 있었다. ...잔치 당일, 연회장은 유난히 붐볐다. 샹들리에의 조명이 화사하게 반짝였고, 고급스러움이 풍겨 나는 악단의 선율이 분위기를 감싸고 있었다. 송혜선은 산후조리를 마친 직후였지만, 여전히 그만의 풍채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예전보다 조금 살이 오른 듯했지만, 그 덕에 오히려 분위기가 더 너그러워 보였다. 그녀가 행사장에 들어서자, 평소 자주 어울리던 재벌가 부인들이 앞다투어 다가왔다. “혜선씨는 진짜 복이 많은 사람이에요. 그 고생 끝에 드디어 볕뜰날이 왔네요.” “부 회장님이 이렇게까지 챙기시는 거 보니까, 이제 정말 한 자리 하시겠어요.” “정말 이러다 조만간 ‘겹경사’ 나는 거 아니예요? 우리라도 미리 축하해줘야 하는 거야?” 송혜선은 그 소리에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얄미울 정도로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역시 사람은 자리가 높아야 대접 받는 거야.’ “지윤이는 회장님의 첫 딸이잖아요. 그러니까 귀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회장님이 우리 모녀를 절대 가볍게 보지 않으신다는 건, 여기 있는 분들도 느끼셨을 테고요.” 그 말에 다들 박수까지 치며 웃었다. “이제 우리도 호칭 바꿔야지, 사모님!” 누군가 먼저 그렇게 불렀고, 뒤이어 몇몇이 장난처럼 따라 불렀다. 송혜선은 그 말에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턱을 살짝 들며, 그 호칭이 제법 익숙
진윤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마침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부남준은 법을 무시하고, 사람을 죽였어요. 부씨 가문이 이 일에 개입한다면... 여론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감싸려 들면 들수록, 결국은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겠죠.” ‘이건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가문의 존망이 걸린 문제야.’ 맞은편 소파에 앉은 상혁은 다리를 꼬고, 한쪽 손으로 턱을 괸 채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의 눈빛엔 어떤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세속의 먼지 따윈 전혀 묻지 않은 사람처럼. 진윤의 말이 끝났지만, 상혁의 표정엔 미동 하나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부씨 가문은 항상 법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여왔습니다. 그건 변하지 않습니다, 여사님.” 그는 손짓으로 테이블 위를 가리켰다. 거기엔 작은 검은색 USB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 안에... 고나희 씨가 남긴 게 있습니다. 여사님께 드리라고 하더군요.” 순간, 진윤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숨이 턱 막히는 듯한 표정으로, USB를 바라봤다. “지금... 뭐라고 하셨죠?” 그녀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나희가... 뭔가를 남겼다고...?’ 사고는 너무도 갑작스러웠다. 딸의 마지막을 함께할 시간조차 없이, 그녀는 세상을 떠났고, 어떤 유언도, 한마디 말도 남기지 못한 줄 알았다. “나희... 그 애가... 무슨 말을 남겼다는 거예요...” 진윤은 입을 틀어막았다. 눈물은 이미 참을 수 없다는 듯 쏟아지려 하고 있었다. 상혁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다. “사람이 떠난 건 바꿀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남겨진 마음은, 누군가가 반드시 전해야죠.” 그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거운 공기를 뒤로한 채, 조용히 방을 나섰다. 잠시 후.룸 안에서 낮고, 억눌렀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희야...” 진윤은 USB를 손에 쥐고,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으로 울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