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혁은 잠시 머뭇거렸다. 하연은 여전히 말하려는 마음이 없어 포기했다.[B 시 온도가 떨어졌어. 옷 많이 입고 다녀.]하연은 무의식적으로 오늘 입은 옷을 보았다. 확실히 얇았다. 방금 서준과 밖에 있을 때 은근히 추웠다. 하연은 신경 쓰지 않고 기분을 풀었다.“상혁 오빠, 해외에 있는데도 B시 일기 예보를 보네요.”[누군가가 말을 안 들어서, 신경 쓸 게 많아.]하연은 고개를 숙여 웃었다. 순간 나쁜 기분이 사라졌다.“오늘 바빠요?”상혁은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사들을 보았다. 모두 상혁의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안 바빠.]“다행이네요.”차는 이미 DS 아래 도착했다. 하연은 차에서 내렸다. 말하기도 전에 멀지 않은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진미화를 보았다.“하지만 저는 이제 바빠지기 시작할 거예요. 상혁 오빠, 저녁에 다시 전화할게요.”상혁에게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하연은 전화를 끊었다. 황연지가 곁에서 상혁의 안색이 좋지 않다는 걸 눈치 챘다.“회의가 3시간동안 진행되고 있어요, 아니면 이만 할까요?”상혁은 핸드폰을 치웠다.“계속해. 그리고 대신 처리해 줄 일이 있어.”한편 하연은 다가가서 진미화를 맞이했다.“무슨 일이에요?”진미화의 손에 서류를 들고 있었다.“사장님, 안색이 안 좋아요.”“괜찮아요, 말하세요.”진미화는 하연의 뒤를 따르며 설명했다.“JJ와 해외 이커머스 구축이 문제 생겼어요. 주로 고객들이 신뢰가 없어요. 누구도 도박을 원하지 않아서 한동안 정체가 있었어요.”처음에는 모든 것이 어려운 법이다. 이 모든 것이 예상되어 하연은 심호흡을 했다.“DS의 해외 고객을 연락해 볼게요. 함께할 의향이 있는지 확인해야겠어요.”이때 엘리베이터에서 호현욱이 나왔다. 호현욱은 웃었다.“최 사장님, 방금 다녀오셨어요? 쯧, 안색이 안 좋네요. 보양식을 많이 드셔야겠어요.”하연은 웃는 듯 마는 듯했다.“호 이사님과 비교할 수 없죠. 좋은 일이 있으세요?”“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일어날 일들은
하연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한 걸음 물러서서 입을 가렸다.“상혁 오빠? 언제 왔어요?”상혁은 차 문을 열고 하연을 타라고 했다.“3시에 도착했는데, 방해할 수 없었어.”하연은 시간을 보았다. 지금 여덟 시이다. 긴 비행 시간을 제외하면 다섯 시간 동안 이곳에서 기다린 셈이었다.하연은 차에 타고 마음이 아파 상혁의 얼굴을 만졌다.“무슨 일이 있어요? 왜 갑자기 왔어요?”상혁은 하연의 손을 잡고 바라보았다.“차를 돌려주러 왔어.”하연은 상혁을 때렸다.“거짓말하지 마세요.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상혁은 입꼬리를 올렸다.“FI 그룹에 일시적인 문제가 생겨서 처리하러 왔어.”하연은 의심을 했다. 하지만 상혁은 이미 시동을 걸었다.“집에 가?”하연은 가볍게 대답했다. 아침 출근 시간이라 도로는 차들로 가득했다. 상혁은 안전하게 운전했다. 얼굴 반쪽이 햇빛을 받아 상혁이 어떤 감정인지 알 수 없었다. 물론 하연의 집으로 돌아갔다. 상혁은 차를 주차장으로 몰랐아.“주인에게 물건을 돌려주는 거야.”하연은 답답했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 멈춰 서서 진지하게 물었다.“오빠가 떠난 후 fl를 지켜봐라고 시켰어요. 대표가 직접 와서 해결해야할 큰일이 있다고 들은 적이 없어요.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하연은 걱정했다. 상혁은 웃으며 하연의 머리카락을 정리했다.“능력이 좋네, 내 것을 지켜봐?”하연은 말을 하지 않았다.“정말 일이 생겼으면, 네 사람이 어떻게 알겠어?”상혁은 하연의 손을 잡고 방 문 지문 장금 해제를 만져 문을 열었다.“걱정 마, 해결할 수 있어.”하연은 상혁의 손을 잡았다.“이렇게 다니면 힘들잖아요. 몸이 걱정되요. 철로 만든 것도 아닌데.”상혁의 시선은 맞잡은 두 손에 떨어지자 입꼬리를 올렸다. 하연은 순간 얼굴을 붉혔다. 손을 바로 풀며 모호한 분위기가 물려왔다.“아침은 뭐 먹고 싶어?”“이모님은 할 거예요.”“너한테 물어보는 거야.”“죽 먹고 싶어요. 위를 챙겨야죠.”사실 하연은 아침으로 커피와 빵을 먹는다.
이 각도에서 보면 상혁은 전혀 웃음기가 없었다. 얼굴에 먹구름에 덮인 것처럼 사람을 놀라게 했다. 하연은 똑바로 섰다.“왜요?”상혁은 하연을 잠시 바라보며 무슨 말을 할 지 몰랐다. 잠시후에야 느슨하게 말했다.“부엌 연기가 커. 먼저 나가 있어.”하연은 상혁이 갑자기 이렇게 말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몇일 있어요?”“오늘 새벽에 가.”DL에 사람이 부족하면 안 되었다. 하루 반이 최대 한계이다.“그렇게 급해요?”하연은 다가갔다.“그럼 안 나갈래요. 오빠와 같이 할게요.”그런 집착에 상혁의 우울한 기분에 금이 가며 입꼬리를 올렸다.“어떻게 아가씨를 직접 요리하게 할 수 있겠어.”“내가 할래요.”하연은 바로 들어가며 토마토를 씼었다. 상혁은 어쩔 수 없어 앞으로 다가가 하연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옷 젖히지 마.”상혁은 칼질을 잘했다. 칼을 사용할 때 동작이 빨랐다. 하연은 토마토 바구니를 들고 상혁이 고기를 자르는 것을 보며 먹었다.“계속 먹으면 없어.”상혁은 말했다. 하연은 그제야 바구니에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어색해서 웃었다.“엄청 달아요. 먹을래요?”상혁은 고개를 흔들었다. 하연이 밤을 새서 안색이 조금 창백했다. 입가의 붉은 주스가 강한 대조를 이루어 부상혁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하연은 다가갔다.“먹어봐요, 정말 달아요.”토마토는 상혁의 입에 건네지자 상혁은 무의식적으로 피했다. 하연은 제대로 서지 못해 상혁의 품에 넘어졌다. 순간 상혁의 숨결이 느껴졌다. 토마토는 딸에 떨어졌다. 하연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자 상혁의 눈빛에 빠져 가슴이 두근거렸다.“저...”상혁은 힘을 주며 뜨거운 눈빛으로 하연을 바라보았다.“토마토를 안 좋아하지만 지금은 먹어보고싶네.”하연의 몸이 뻣뻣해지며 가슴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앞에 상혁이 다가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빨간 입술이 거의 닿을 것 같았다. 바로 이때 목소리가 들려왔다.“부 대표님.”소리가 갑자기 멈추었다. 연지였다. 연지는 제자리에 서서 놀란
상혁은 하연에게 의자를 끌어주었다.“어디가 달라?”식탁 위의 죽은 김이 모락모락했다. 하연은 숟가락을 들고 생각했다.“오빠는 황 비서를 많이 믿어요. 두 사람 사이에 합이 맞아요.”상혁은 바로 화제를 돌렸다.“너와 정태훈처럼.”“그것도 아니에요. 우린.”하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상혁은 반찬을 집어주었다.“빨리 먹고 자.”“깨어나면 오빠는 또 가야겠네요.”“아쉬워?”농담이지만 하연의 귀끝이 붉어졌다.“널 잠들지 못하게 하려고 돌아온 게 아니야. 말 들어.”하연은 아메리카노와 빵을 먹는 것이 익숙했다. 갑자기 따뜻한 죽을 먹자 만족스럽지 않았다. 실내가 덥고 죽도 뜨거워 상혁은 재킷을 벗어 단단한 근육을 들어냈다. 손가락으로 식탁을 두드렸다.“그 후 주현빈이 주진을 집으로 데려갔다고 들었어.”하연은 놀랐다.“어떻게 알았어요?”“평소 뉴스를 자주 봐.”“그런 셈이죠. 사모님께서 받아들였으니까요.”하연은 주진이 물에 빠진 것이 떠오르자 머뭇거렸다.“상혁 오빠, 이 아이가 무사하게 클 것 같아요?”상혁은 눈을 내리깔고 하연의 팔에 비치는 햇살을 바라보았다.“주씨 가문의 두 아들 중 큰아들은 여자가 많지만 아직도 자식이 없어. 주현빈도 아직까지 자식이 없어. 두 세대가 화목하게 지내고 있네.”“이제 주현빈이 갑자기 사생아를 데려왔어. 이익에 많이 영향되고 있어. 무사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고난을 겪을 것이야.”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주진이 물에 빠진 것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상혁은 갑자기 하연을 바라보았다.“왜 갑자기 그걸 물어?”하연은 놀랐다. 하지만 끝까지 물에 빠진 일은 말하지 않았다. 그러면 서준의 얘기가 나와야하고 해명하기 귀찮았다. 하연은 고개를 흔들었다.“오빠, 낮에 할 일 있어요?”“FL에 다네와야해, 점심에 돌아올 거야.”하연은 기분이 좋아졌다.“기다릴게.” 아침 식사를 마치고 상혁은 떠났다. 하연은 밖에서 엔진 소리가 울리는 것을 듣고 위층에 올라가려던 중 피뜩 보았다. 갑자기 소파에
하연은 또박또박 말했다. 상혁의 안색이 어두워지며 미소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뭐?”하연은 사진 한 무더기를 상혁의 몸에 던지며 화를 냈다.“제가 주진의 생일 연회에 갔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제 사진이 있네요. 뭘 먹었는지, 뭘 했는지, 누구랑 있었는지 다 알면서 아무말도 하지 않았네요.”“부상혁, 무슨 뜻이에요?”하연은 믿을 수없어 두려움과 공포고 가득찼다. 상혁은 눈을 내리깔고 흩어져있는 사진들을 보았다. 모두 하연이 생일 연회에 참가한 사진이었다. 그중 제일 많은 게 서준과 함께 있는 사진이다. 각도가 이상하여 너무 애매해 보였다. 옆으로 보자 연지의 가방이 보여 상혁은 모든 것을 깨달았다. 상혁은 몸을 숙여 사진을 주었다.“일부러 감시한 게 아니야. 한서준을 감시하는데, 너와 마주쳐서 사진이 찍힌 거야.”하연은 이해하지 못했다.“왜 한서준에게 사람을 붙혀요?”“JJ 그룹이 사고가 나도록 꾸몄고, 모든 게 널 가리키고 있어. 내가 당연히 지켜봐야하지 않아?”상혁은 잠잠하게 말하며 잘못을 지적하지 못했다. “네가 대처할 수 없다면 내가 바로 도와줄 수 있어.”하연은 상혁의 눈빛을 바라보았다. 믿고 싶었지만 왠지 모르게 계속 의심이 들었다.“나한테 솔직히 말할 수 있었어요.”“너와 한서준 사이에 금이 있어. 만나서 옷도 사주고, 수습도 해줄 수 있는데, 내가 알려주면 네가 받아드릴 수 있어?”상혁은 사진을 잡고 하연의 맞은편에 앉았다. 말투에는 참고 있었던 곤난함이 느껴졌다.“저.”하연은 무의식적으로 설명하고 싶었다.“저도 방법 없어요. 계속 집착하고 있잖아요.”상혁은 웃었다.“하연아, 결혼한 지 몇 년이 자나서 모두 내려놓았다고 했지만, 옛사랑을 생각하면 흔들린 적이 없었어?”“당연히 없었죠?”상혁은 갑자기 다가와 하연을 구석에 몰며 가까이 있었다.“한서준이 뭐가 좋아?”“아니요.”하연은 도망갈 길이 없어 고개를 기울려 상혁의 숨결을 느꼈다.“예전에 말이야.”‘예전에?’하연은 몇 년 전 콜롬비아에서 서준
하연은 어렵게 진정이 되었다. 가슴을 막으며 상혁을 밀어냈다.“먼저 방에 돌아갈게요. 가요.”품이 공허해졌고 상혁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무의식적으로 하연을 잡았다.“좋아해.”하연은 멈칫했다. 이런 날이 있을 거라고 상상했었다. 상상 속에서 하연의 대답은 나도 좋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말이 나오지 않았다.“왜 귀국한 거예요?”똑똑한 하연은 바로 중점을 잡았다.“무서웠어. 너와 한서준이 다시 만날까 봐.”“아니.”하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상혁은 말을 끊었다.“그럴 확률이 적다는 걸 알아. 하지만 예전으로 다시 돌아갈까 봐 무서웠어. 그 당시도 마찬가지야. 내가 잠시 떠났는데, 넌 한서준 곁에 갔어.”상혁의 말투는 우울했다. 하연도 가슴이 찔린 듯 아파났다. 하연은 손을 내밀었다.“진정해요.”하연은 손을 뿌리치며 재빨리 계단을 올라가 계단에서 사라졌다. 연지는 하연의 집 밖에서 기다렸다. 차창으로 상혁이 안에서 나오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최하연 씨와 식사를 하지 않아요?”상혁의 안색이 어두워지며 손에 있는 가방을 연지에게 던졌다. 연지는 가방을 받았다.“이, 이건 제가 두고 온 거예요. 죄송해요.”상혁은 가만히 서서 담배에 불을 붙이며 빨아들였다.“난 여자를 때리지 않아. 해명해.”연지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깜빡했어요. 일부러 그런게 아니에요.”상혁은 말을 하지 않고 담배만 피웠다. 연기 속으로 연지를 보았다.“날 얼마동안 따랐지?”“졸업한 후부터 대표님을 따라서, 5년 되었어요.”“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던 거로 기억하는데.”“네, 대표님의 지원 덕분이에요. 아니면 유학할 기외도 없었고, DL에 입사할 기회도 없었을 거예요.”상혁은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넌 나에게 충성해야 해.”“절대 다른 마음이 없어요!”“일부러 사진을 하연 집에 놓은 건, 뭘 알려주고 싶었어?”연지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며 고개를 숙였다.“정말 일부러 두고 간 것이 아니에요. B시에 자주 머물지 않아 일이 많아서 깜빡했
가흔이 B시에 돌아오자마자 술 한 잔 하자고 불려가 조금 피곤했다.“안색이 안 좋네, 무슨 일이야?”바에서 하연은 손에 술을 들고 반쯤 마셨다.“미안해, 여흔과 예나가 바빠서 널 부를 수 박에 없었어.”하연은 취했다.“왜 그런 말을 해, 내가 남이야?”가흔은 말을 하며 자신에게 술을 부었고 진지하게 한 모금 마셨다.“아직 말을 안했어. 무슨 일이야?”하연의 얼굴이 우울해 보였다.“상혁 오빠 돌아왔어.”“좋은 일이네, 기분이 안 좋아?”“나한테 고백했어.”가흔은 충격을 받아 사레가 들렸다. 한참동안 기침을 하고서야 진정되었다.“고백? 언제, 어디서, 어떡해?”가흔은 흥분했다. 하연은 머리를 만지며 짜증을 내며 간단히 설명했다. 가흔이 화를 낼 줄 알았지만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웃음이 조금 무섭네.”가흔은 하연의 술을 뺏었다.“달콤하네, 설렜어.”하연은 화가 나서 웃었다.“미쳤어?”“생각해 봐, 부상혁이 왜 돌아오겠어. 너와 한서준이 같이 있는 걸 보고 참지 못했겠지. 신경 쓰이고 질투한 것만으로도 너에 대한 마음을 설명할 수 없어?”가흔은 잠시 생각했다.“부상혁을 안 좋아해?”하연은 고개를 흔들었다.“안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서두르는 것 같아. 많은 일들을 파악하지 못했는데 너무 갑작스러워.”그것도 그런 상황에서 발생했다.“감정은 그런 거야. 모두 계획대로 가면 무슨 감정이야. 일과 뭐가 달라?”일리가 있었닥.“그럼 너와 우리 둘째 오빠는 누가 먼저 고백했어?”그 말을 듣자 가흔은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았다.“뭐라고? 시끄러워서 잘 안 들려.”하연은 화가 나서 가흔을 때렸다. 가흔도 웃으며 장난을 쳤다. 멀리서 갑자기 소리가 들려왔다.“여신님!”눈을 뜨고 보자 오랜만에 만나는 운석이었다. 손에 술을 들고 있는 걸 보니 옆에 바에서 온 것이다. 뒤에서 태현 등 사람들도 있었다. 하연의 웃음이 사라졌다.“나오기전 기도했었어야 했네요. 왜 여기에 있어요?”운석은 혀를 차며 앉았다.“여신님,
“아직 결정되지 않았어. 말하면 안 돼.”비밀로 하자 하연의 머리속에 한 인물이 스쳐지나가며 웃었다.‘설마 그 아가씨가 혹시 선유야?’계속 장난을 치자 반쯤 친구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연은 답답하여 조금 앉아 있다가 나가려고 하자 운석이 말렸다.“투자은행이 정신이 없어요. 저도 술 마실 시간이 있는데 DS가 그렇게 바빠요? 잠시도 앉을 수 없네요.”“밤을 새서 잠을 자야겠어요.”태현도 말렸다.“하연 씨가 사장님인데, 언제 자면 안 돼요. 자, 술 마시고 가요.”하연은 눈썹을 찌푸렸다.“저한테 술을 권하는 거예요?”“그런 뜻이 아니에요.”운석은 하연을 의자로 밀며 애매하게 눈을 깜빡 거렸다.“오랜만에 만났는데 같이 이야기를 나누어요.”동시에 클럽 앞에 검은색 폴르쉐가 매끄럽게 정차했다. 2분 후, 스포츠카 H9도 멈추었다. 연지가 먼저 내리고 차문을 열었다.“최하연 씨가 안에 있어요.”상혁은 대답을 하며 골드 카드를 보여주며 들어갔다.“무슨 얘기를 하고 있어?”맑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사람들은 쳐다보았다. 그러자 서준이 의자를 뒤로 당겨 앉은채 표정이 편해보였다. 하연도 깜짝 놀라 가흔과 눈을 마주쳤다. 운석은 피하지 않았다.“널 기다리기 너무 어렵네.”하연에게 마음이 없어 서준과 하연이 잘 되길 바랐다. 운석은 하연을 보자마자 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 오겠다고 하더니 결국 반시간이 걸렸다. 서준은 숨기지 않고 말했다.“차가 막혔어.”하연은 심호흡을 하며 가흔을 잡고 일어섰다.“정말 가봐야해요. 너무 졸려요.”운석과 태현은 말렸다.“가지 마요. 가지 마요. 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 좀 해요.”말을 하며 가흔을 밖으로 끌고 나갔다.“우린 먼저 돌아다녀요.”가흔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아, 저기!”바에는 서준과 하연만 남았다. 서준은 문앞에 앉아 길을 반쯤 막았다. 하연의 피곤한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해외 고객은 내가 해결해 줄 수 있어.”하연은 눈썹을 찌푸리며 서준을 내리보았다. 레이저 빛이
상혁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살짝 웃음을 지었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검진을 마친 뒤, 하연은 선명한 초음파 사진을 손에 들고 있었다. 사진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손끝으로 사진 속 동그란 그림을 가리켰다. “여기 봐봐요. 이게 우리 아기래요.” 목소리엔 설렘과 떨림이 그대로 묻어났다. 상혁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하연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눈엔 이미 감동이 차올라 있었다. 상혁은 조심스레 하연의 아랫배에 손을 얹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이 순간... 난 정말 너무 행복해.” ‘네가 내 옆에 있고, 우리 아이가 이렇게 자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야.’ 하연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남자아기일까요, 여자아기일까요?” 그녀의 눈빛에는 이미 사랑스러운 미래가 그려지고 있었다. 상혁은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상관없어.” 하연은 고개를 살짝 돌려 상혁을 바라봤다. 그 눈동자엔 별빛이 머물러 있는 듯 반짝였다. “그래요... 건강하게만 태어나면... 그걸로 충분해요.”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손을 맞잡았고, 서로의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따뜻함을 느꼈다. 그 순간, 상혁의 주머니 속 핸드폰이 진동했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하곤 순간 눈빛이 깊어졌다. 화면엔 낯익은 이름이 선명히 떠 있었다. [부동건.]‘이 타이밍에...?’ ‘설마 무슨 일 생긴 건가?’ 지난 연회 이후, 부동건과는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의 파장이 얼마나 컸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송혜선과 조봉규. 그 두 사람 때문에 무너진 자존심. 그리고 결국, 부동건은 송혜선을 아이와 함께 본가에서 내쫓았다는 소문까지 들려왔다. 하연이 조용히 말했다. “받아봐요. 무슨 일일 수도 있으니까.” 상혁은 하연의 손등을 가볍게 토닥이고, 그녀를 옆에 있는 의자에 앉힌 후
부동건은 갑작스레 거칠게 기침을 터뜨렸다. “컥”‘피 맛...?’ 목 안에서 치밀어 오르는 피비린내를 억지로 삼켰다. 손등에 핏줄이 선명히 드러나고, 이성의 끈은 이미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부동건의 시선이 천천히 송혜선과 조봉규를 향했다. ‘죽여버리고 싶다.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너희들... 너희들...” 부동건의 입술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송혜선은 극도의 공포에 휩싸였다. ‘이건 아니야... 이렇게 끝나면 안 돼...’ 그녀는 급히 앞으로 다가가 부동건의 팔을 붙잡았다. “회장님... 우리, 조 선생님이랑 그냥 산후 회복 얘기하던 중이었어요. 진짜예요, 저희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 부동건의 손이 송혜선의 뺨을 후려쳤다. 짝! 순간 정적. 강하게 내리친 손바닥 소리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숨을 멈춘 듯 조용해졌다. 송혜선의 얼굴 한쪽이 순식간에 붉게 부어올랐다. 눈가가 덜덜 떨리며, 눈물도 같이 맺혔다. “이 천하의... 배은망덕 같은 것. 내가 너를 어떻게 믿었는데... 감히 날 기만해?” 뒤에 서 있던 하객들 사이에서도 탄식이 흘러나왔다. “저 정도였어?” “저게 진짜였네... 소문이 아니고...” “...”송혜선은 뺨의 통증을 애써 무시한 채, 다시 붙잡았다. “회장님, 제발... 오해예요. 저희 그런 사이 아니에요. 저는... 당신뿐이었어요.” 그러나 부동건은 그 손마저 거칠게 뿌리쳤다. 그리고는 힘껏 송혜선의 복부를 발로 찼다. 퍽!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송혜선은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조봉규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아니야... 지금 나섰다간 나도 끝장이야.’ 한 걸음 다가가려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회... 회장님... 저희...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정말이에요...” 하지만 그 한마디가 기름을 붓는 꼴이 됐다. 부동건은 그대로 조
일 순간 충격의 정점이었다.부동건은 들고 있던 와인잔을 그대로 바닥에 내던졌다. 쨍그랑! 깨지는 소리와 동시에 모든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저... 저런 미친...!” 그는 화면을 가리키며, 얼굴을 붉힌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숨이 거칠게 턱 끝까지 차올랐다. ‘송혜선... 네가 감히!’ 주변 하객들도 이미 술렁이기 시작했다. “저게 진짜야?” “부 회장님 딸이... 아니라고?” “와... 이건 완전히 생각지도 못한 미친 패륜이야, 상상도 못 했어.” 오늘의 연회는 더없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이제 와선 최악의 스캔들 파티가 되어버렸다. ‘이 연회가... 전부 거짓된 일 때문에 생긴 일이란 말이야?’ ‘우리, 사기당한 거네. 다 같이.’ 그때 스크린이 멈췄고, 연회장 전체의 조명이 다시 환히 켜졌다. 하객들은 본능적으로 두리번거리며 부동건을 찾았다.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하지만 부동건은 아무런 대답 없이 어금니를 꽉 물고, 몸을 떨며 계단 쪽으로 향했다. 하객들은 그 뒤를 따라붙었다. ‘뭔가 일어나겠군...’ ‘이번엔 진짜 끝장이다.’ ...같은 시각, 2층 방 안. 송혜선은 조봉규의 손등을 다독이며 조용히 말했다. “조금만 참아. 며칠만 지나면 내가 다시 올게.” 조봉규는 싱긋 웃으며, 그녀의 허벅지를 장난스럽게 움켜쥐었다. “응. 기다릴게, 자기.”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 문이 거칠게 흔들렸고,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쾅!! “송혜선! 당장 안 나와?!” 송혜선의 온몸이 순간 얼어붙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조봉규의 팔을 꽉 잡았다. ‘망했다.’ “어떡해, 부동건이 올라왔어.” 두 사람은 당황하며 방 안을 둘러봤지만, 창문 하나 없는 좁은 방엔 도망칠 곳조차 없었다. ‘안 돼... 이렇게 들키면, 끝장이야. 정말 끝이야.’ 송혜선은 급하게 숨을 고르며 애써 이성을 붙잡으려 했다. ‘진정해. 침착해야 돼.
연회장 안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부동건은 손에 잔을 들고, 연신 들어오는 축하 인사에 밝은 표정으로 답하고 있었다. “회장님, 따님이 너무 예뻐요. 축하드립니다!” “아이고, 이런 경사는 자주 있어야죠!” ‘그래, 이 정도면 완벽하지. 오늘은 그 누구도 나를 흔들 수 없어.’ 그렇게 술이 한 잔, 두 잔 더해지며 연회장의 분위기도 점점 무르익고 있었다. 그때, 갑작스레 모든 조명이 꺼졌다. 탁! “어, 뭐야?” “불 꺼졌어! 왜 이래?” “아야, 누가 내 발 밟았어!” “...”순식간에 어둠이 덮친 연회장. 사람들의 놀란 목소리와 웅성거림이 퍼졌다. 잔을 들고 있던 부동건은 순간 정지된 듯 멈췄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당장 가서 확인해봐!” “네, 회장님!” 직원들이 급히 움직였고, 부동건은 진정시키려는 듯 손을 들고 말했다. “여러분, 당황하지 마시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전기 쪽 문제인 것 같습니다. 금방 복구됩니다.” 사람들은 잠시 멈춰 서서 어둠 속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그 순간, 연회장 한쪽 벽면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이 조용히 켜졌다. “위이잉...” 어둠 속에서 갑작스레 터진 화면의 빛에 모두가 눈을 찌푸리며 반사적으로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 빛이 익숙해질 무렵, 누군가가 터트린 외마디 감탄에, 시선이 일제히 스크린으로 향했다. “어... 저거 뭐야? 헉, 저게... 말이 돼?” 그리고, 그 스크린 안에 있는 건... 분명 두 남녀의 은밀한 장면이었다. 화면 속, 분명히 누군가를 알아본 듯한 목소리가 터졌다. “저 여자... 그분 아니야?” “옆에 있는 남자는...?” “헐, 이건 진짜 레전드다.” “아, 눈 버렸어. 이게 뭐야, 이게...”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순식간에 연회장은 도저히 되돌릴 수 없는 혼돈의 도가니로 빠져들고 있었다.사람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송혜선이 복도 입구에 막 다다랐을 때였다. 갑작스레 어디선가 튀어나온 그림자가 그녀를 뒤에서 껴안았다. “꺄악!” 놀란 송혜선은 반사적으로 비명을 질렀고, 누군가 재빨리 그녀의 입을 막았다. “나야! 나야, 혜선아.” 익숙한 목소리에 송혜선은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남자의 손을 떼어내며 차갑게 말했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이 사람, 지금 제정신인 거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어서 급히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송혜선은 그제야 숨을 돌리며, 낮은 목소리로 흘기듯 말했다.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미쳤어, 사람들 눈에 띄면 어쩌려고!!” 그 말엔 명백한 불만과 경계심이 섞여 있었다. 조봉규는 잠시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안 되는데...’ 그 순간의 긴장, 그리고 복잡한 감정이 두 사람 사이에 감돌았다.조봉규의 시선이 송혜선의 얼굴에서 천천히 내려앉았다. 송혜선은 산후라 그런가, 몸매는 훨씬 더 부드럽고 풍성해져 있었다. ‘이러니까, 잊으려고 해도... 더 생각이 나잖아.’ 그는 순간 충동적으로 송혜선의 팔을 붙잡았다. “잠깐만.” 당황한 송혜선이 눈을 부릅떴다. “뭐 하는 거야!! 지금...” 그러나 조봉규는 말없이 송혜선을 옆방으로 이끌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작게 ‘탁’ 하고 울렸다. 좁은 공간, 차오르는 침묵. 송혜선은 남자를 노려보며 벽에 등을 댔다. “정신 차려!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조봉규는 그녀를 바라보며 낮게 숨을 내쉬었다. “다들 홀에 있잖아. 아무도 몰라.” 남자의 말투엔 간절함과 조급함이 섞여 있었다. 이건 단순한 욕망이 아니었다. 그리움, 억눌림, 그리고 못다 한 말들. 그는 조심스럽게 송혜선의 턱선을 손끝으로 만지며 말했다. “혜선아... 나, 정말 많이 참았어.” ‘이 사람 또 이러네...’ 송혜선의 심장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분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정문 쪽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부동건이 고개를 돌리자, 최하연이 부상혁의 팔을 자연스럽게 끼고 등장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순간, 많은 이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쏠렸다. 잘생긴 남자와 우아한 여자의 조합. 누가 봐도 완벽한 한 쌍이었다. ‘딱 봐도 좋은 그림이야. 저 둘은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눈길을 끌어...’ “회장님, 부상혁 대표님은 정말 복도 많으십니다. 최씨 가문의 따님과 이렇게 잘 어울리는 커플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누군가의 말에 부동건의 표정이 확 풀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미묘하던 분위기가 사라지고, 부동건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피어났다. 부동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젊은 사람들이 서로 마음이 맞아 좋아하는 걸, 우리 어른들은 그저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줘야 하는 일일 뿐이지요.” “게다가 상대가 최씨 가문의 따님이라니, 정말 금상첨화가 아닙니까.” 부동건은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역시 상혁이다. 내 아들이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 상혁은 오늘 이 자리에서 당당히 아버지의 체면을 세워주고 있었다. 한편, 송혜선도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방금 전까지 얼굴에 띄웠던 미소는 점점 사라져 갔고, 그녀의 시선은 어느새 하연에게 향했다. 오늘의 하연은, 나무나 예쁘고... 아니, 그냥 눈이 부실 만큼 찬란했다. 그리고 또렷한 이목구비에 윤기 흐르는 머릿결, 화사하게 피어난 얼굴빛까지. 하연의 행복함이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듯했다. 송혜선의 눈빛이 서서히 차가워졌다. ‘정다영... 그년, 나를 속였어.’ 그동안 하연 쪽에서 뭔가 반응이 있을 줄 알고 기다려 왔다. 하지만 소식은커녕, 정다영조차 자취를 감췄다. ‘다영이 걔가 하연이에게 약 먹이는 계획이 분명 실패한 거야. 그렇지 않고 선 지금 저렇게 멀쩡한 얼굴로 서 있을 수는 없어.’ 이대로 배가 불러오면, 섣불리 손도 쓸 수 없게 된다. ‘
이 질문에 송혜선은 눈을 반짝이며 부동건을 바라봤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젠 나를 당당히 소개해 줄 때가 됐겠지.’ 오늘 이 자리에서, 그녀는 부동건의 정식 아내로서 인정받기를 바라고 있었다. “회장님, 말씀 좀 해보세요?” 조금은 성급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자, 주변의 시선도 하나둘 송혜선과 부동건을 향했다. 모두 속으로는 뻔히 알고 있었다. 부동건이 과연 예전 애인을 진짜로 정실로 앉혔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했다. 부동건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숨기거나 피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담백하게 말했다. “오 회장님, 이 사람은 제 딸의 어머니입니다.” 순간, 송혜선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딸의... 어머니?’ 손에 들고 있던 와인 잔이 살짝 흔들렸다. 금세 넘칠 듯한 와인, 애써 잡고 있는 감정. ‘지금... 이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억울함이 툭 하고 솟구쳤다. 심지어 손에 힘이 들어가며 하얗게 질린 손등이 떨렸다. 오병지는 단번에 눈치챘고, 싱긋 웃으며 더는 묻지 않았고, 대신 가볍게 말을 건넸다. “축하드립니다. 부 회장님, 여전히 복이 많으시네요.” 부동건은 공손하게 웃으며 송혜선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 손길엔 무언의 위로가 담겨 있었다. “아닙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나중에 저와 이 사람의 결혼식엔 꼭 오셔서 축배 들어주세요.” 그 말에 송혜선의 눈이 번쩍 뜨였다. ‘결혼식...?’ 순간, 가슴이 쿵 하고 울렸다. 이어서 고개를 들며 수줍게 웃었다. “회장님...” 부동건은 말없이 그녀를 더 가까이 끌어안았다. 더 이상의 말은 없었지만, 그 행동으로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주변의 사람들 시선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송혜선을 무시하거나 조롱하던 눈빛이, 지금은 선망과 부러움으로 가득했다. 결국, ‘부동건의 아내’라는 타이틀은 그 자체로 막대한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이름이었다.송혜선은 온
부지윤의 ‘한 달 잔치’는 그야말로 성대한 수준의 파티였다. 초대받은 인사들만 봐도, 그 위세가 느껴졌다. F국 재계의 실력자들, 정재계의 핵심 인물, 이름만 대면 아는 명문가 자제들이 대거 초청됐고, 심지어 부씨 가문 어른들에게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직접 청첩장을 보냈다. 이 정도면, 사실상 이 아이를 공식적으로 가문에 편입시키겠다는 의지나 다름없었다. 부동건이 이 아이에게 얼마나 애정을 집착하듯 쏟고 있는지, 이날 행사 하나로 증명되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동건은 스스로의 체면과 명예를 걸고, 딸을 세상에 내보이고 있었다. ...잔치 당일, 연회장은 유난히 붐볐다. 샹들리에의 조명이 화사하게 반짝였고, 고급스러움이 풍겨 나는 악단의 선율이 분위기를 감싸고 있었다. 송혜선은 산후조리를 마친 직후였지만, 여전히 그만의 풍채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예전보다 조금 살이 오른 듯했지만, 그 덕에 오히려 분위기가 더 너그러워 보였다. 그녀가 행사장에 들어서자, 평소 자주 어울리던 재벌가 부인들이 앞다투어 다가왔다. “혜선씨는 진짜 복이 많은 사람이에요. 그 고생 끝에 드디어 볕뜰날이 왔네요.” “부 회장님이 이렇게까지 챙기시는 거 보니까, 이제 정말 한 자리 하시겠어요.” “정말 이러다 조만간 ‘겹경사’ 나는 거 아니예요? 우리라도 미리 축하해줘야 하는 거야?” 송혜선은 그 소리에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얄미울 정도로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역시 사람은 자리가 높아야 대접 받는 거야.’ “지윤이는 회장님의 첫 딸이잖아요. 그러니까 귀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회장님이 우리 모녀를 절대 가볍게 보지 않으신다는 건, 여기 있는 분들도 느끼셨을 테고요.” 그 말에 다들 박수까지 치며 웃었다. “이제 우리도 호칭 바꿔야지, 사모님!” 누군가 먼저 그렇게 불렀고, 뒤이어 몇몇이 장난처럼 따라 불렀다. 송혜선은 그 말에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턱을 살짝 들며, 그 호칭이 제법 익숙
진윤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마침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부남준은 법을 무시하고, 사람을 죽였어요. 부씨 가문이 이 일에 개입한다면... 여론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감싸려 들면 들수록, 결국은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겠죠.” ‘이건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가문의 존망이 걸린 문제야.’ 맞은편 소파에 앉은 상혁은 다리를 꼬고, 한쪽 손으로 턱을 괸 채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의 눈빛엔 어떤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세속의 먼지 따윈 전혀 묻지 않은 사람처럼. 진윤의 말이 끝났지만, 상혁의 표정엔 미동 하나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부씨 가문은 항상 법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여왔습니다. 그건 변하지 않습니다, 여사님.” 그는 손짓으로 테이블 위를 가리켰다. 거기엔 작은 검은색 USB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 안에... 고나희 씨가 남긴 게 있습니다. 여사님께 드리라고 하더군요.” 순간, 진윤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숨이 턱 막히는 듯한 표정으로, USB를 바라봤다. “지금... 뭐라고 하셨죠?” 그녀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나희가... 뭔가를 남겼다고...?’ 사고는 너무도 갑작스러웠다. 딸의 마지막을 함께할 시간조차 없이, 그녀는 세상을 떠났고, 어떤 유언도, 한마디 말도 남기지 못한 줄 알았다. “나희... 그 애가... 무슨 말을 남겼다는 거예요...” 진윤은 입을 틀어막았다. 눈물은 이미 참을 수 없다는 듯 쏟아지려 하고 있었다. 상혁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다. “사람이 떠난 건 바꿀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남겨진 마음은, 누군가가 반드시 전해야죠.” 그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거운 공기를 뒤로한 채, 조용히 방을 나섰다. 잠시 후.룸 안에서 낮고, 억눌렀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희야...” 진윤은 USB를 손에 쥐고,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으로 울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