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연은 하연의 말에 발끈하여 앞으로 3개월 간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생활해야 할 참이었다. 하연은 한심한 그 모습에 우스꽝스럽다 생각했는데 모연이 내민 그 카드를 보는 순간 웃음기가 바로 사라졌다.이를 발견한 정예나가 물었다. “왜 그래?’ “저 카드, 뭔가 낯익어.” 어디서 본 적 있는 것 같았지만 기억이 나질 않았다. 정예나도 한번 확인하려 했지만 이미 모연이 그 카드를 감춘 뒤였다. 이때 모연은 쇼핑백을 들고 하연의 앞으로 다가왔다. “봤죠? 샀어요. 부디 최하연 씨가 저보다 못한 걸 사진 않길 바라요. 그러면 너무 웃기잖아요!” 하지만 하연은 그녀의 말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고 곧바로 매장으로 들어가 직원에게 백 하나를 포장해달라고 부탁했다. 이 백은 아까부터 하연이 마음에 들었던 것인데 가격도 적당하고 디자인도 아주 독특했다. 이를 본 모연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겨우 4천만 원이야? 최하연 씨, 이걸 산다고요?” 하연은 의아한 듯 되물었다. “전 단지 제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사러 온 것뿐이지 임모연 씨와 비기러 온 건 아니니까요. 뭐 다른 문제라도 있나요?” 모연은 그제야 자신이 또 하연에게 당했다는 걸 눈치 챘다. 앞으로 3개월 간 B시 상류층들 사이의 의논 주제가 지금 또 하나 늘어난 것이다. 모연은 쇼핑백을 꽉 잡았고 전에 있었던 모든 일까지 통 털어 생각했는데 이제야 왜 민씨 가문이 하연에게 질 수밖에 없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하연이 너무 교활하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모연은 부랴부랴 현장을 떠났다. 이때 전희진이 하연의 곁으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 “저 여자 성이 임씨 입니까?” 하연이 대답했다. “네, 전희진 사모님도 아십니까?” “아뇨, 모릅니다. 하지만, 뭔가 낯이 익습니다.” 전희진은 상류 세계에 40여 년을 몸 담고 있는 사람이었기에 여태껏 만나온 사람은 수없이 많았는데 왜 앤지 모연이 유난히 익숙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도대체 누구인지는 정확히 생각나지 않았다.
이미 월말이 되었지만 성동 부동산의 시공이 점점 느려지고 있어 모연은 조바심이 났고 전에 현장 검사를 갔을 때도 발견된 수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쇼핑을 마친 뒤 모연은 집으로 돌아갔는데 집 안에 차량 한 대가 서 있었다.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가니 건장한 한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양재성? 당신이 왜 여기 있어?” 양재성이라 불리는 남자는 몸을 돌리자마자 모연 앞에 무릎을 꿇었다. “사장님, 살려주세요!” 이에 모연은 순간 당황했다. 5분 뒤, 그녀는 테이블 위의 모든 물건들을 쓸어버렸고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이건 정부의 사업이야. 어떻게 감히 그 자금에 손을 댈 생각을 했어? 죽고 싶은 거야?” 양재성은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그렇게 많이 움직일 생각은 없었는데 점점 빚이 쌓이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어요.” 모연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식은땀이 흘렀다. “아직 얼마나 남았어?” “절반...” 양재성이 우물쭈물하며 대답했다. “절반도 안 남았습니다.” “너 정말!” 모연은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며 말했다. “지금 당장 경찰에 신고할 거야. 당신 잡아가라고 말이지.” “아뇨, 임 사장님! 절 잡아간다고 해도 이미 돈을 회수할 수 없어요. 제발요!” 양재성은 그녀의 다리를 붙잡은 채 처참하기 그지없는 어조로 말했다. “이제 책임을 묻게 되면 저뿐만 아니라 임 사장님도 책임을 져야 할 겁니다!” 순간 모연은 그대로 동작을 멈추었고 소파에 털썩 주저 앉았다. “공사를 예정된 시일 내에 완성하지 못하면 우린 다 끝장이야!” 모연은 절반이 넘는 자금인 1400~1600억을 메꿀 방법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다. 양재성은 모연의 바지 가랑이를 꽉 잡고 있었고 눈에는 탐욕이 가득 찬 채 말했다. “전 임 사장님께 이 상황을 대처할 방법을 제시해 드리러 온 겁니다.” “그게 뭔데?” 그런데 이때 문 밖에서 차량이 멈추는 소리가 들려왔고 모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창가로 가보니 서준이 차였다
“알았어요, 확인되면 고민해 볼게.”모연은 돌아섰다. 하지만 서준은 서두르지 않고 다시 한번 화장실을 바라보았다.“써도 돼?”“쥐가 있다고 했잖아, 서준 도련님은 쓰지 않는 게 좋을 거야.”“혜주야, 쥐가 있든 없든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쥐를 제때에 치우는 거야.”서준은 최대한 자비로운 태도로 말을 하고는 뒤돌아 차를 몰고 떠났다. 차가 점점 멀어지는 소리를 듣자 모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식은땀이 몸에 달라붙어 매우 불편한 것 같았다.“나와.”양재성도 땀에 흠뻑 젖은 채 화장실에서 나와 다시 한번 무릎을 꿇었다.“제발 살려주세요.”모연은 갑자기 다리를 내밀며 양재성을 차버렸다.“안 들려? 한서준까지 네 일을 알았어. 내가 숨겨주고 싶어도 때가 되면 계좌에 돈이 없어서 숨길 수 없어!”“숨길 수 있어요! 할 수 있어요!”양재성 은 빨리 말했다.“저한테 방법이 있어요.”모연은 의심했다.“무슨 방법?”양재성 은 침을 삼키며 모연의 몸을 기울이라는 신호를 주었다. 가까이 오자 몇 마디 속삭였다. 그 말을 듣자 모연의 표정이 변했다.“미쳤어?”“방법 없어요. 전에도 혼란의 틈을 탄 적이 있어요. 별일이 없었어요. 게다가 부동산도. 사실 다 그래요.”이달 초 주씨 가문 도련님의 생일날 주씨 가문의 사람이 가득했다. 리무진이 거리에서 줄을 지었고, 축하하러 온 손님들 모두 귀족 가문 사람들이다. 전희진이 아들을 인정하겠다는 걸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그럼 미래도 아들에게 맡길 거라는 것이다. 그래서 대충 할 수 없다. 하연은 특별히 두툼한 선물을 준비하며, 눈에 잘 띄지 않는 옷을 입었다. 하지만 전희진은 하연이 일부러 눈에 띄게 했다.“하연아, 이리 와.”하연은 기태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가서 사람을 대접해라는 신호를 보냈고, 하연은 전희진을 따라 떠났다.“아이가 여덟 번째 생일을 맞아 특별히 극단을 초대하여 집에서 하고 있어. 사람들은 모두 거기에 갔어. 난 지루한 것 같아. 차라리 차를 마시고 게임하는 게 좋을
“그냥 보기만 할게요. 놀지는 않아요.”여자들의 모임은 항상 그렇다. 하연은 오른쪽에 앉아 진지 해 보이지만 사실 머리를 쓰지 않았다. 라운드가 끝나기 전에 방의 문이 열렸다. 주현빈이 먼저 들어와서 전희진에게 물었다.“이겼어?”전희진은 피식 웃었다.“너무 일찍 와서 아직 결과를 보지 못했어.”하연은 멍해졌다. 주현빈 뒤에 있는 서준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고, 서준도 마찬가지로 하연을 쳐다보았다. 목표는 명확했다. 왼쪽에 앉은 전희진도 보았다.“한 대표님 아니에요? 젊었지만 대단하신 분께서 우리 여자들이 노는 걸 봐도 되요? 너무 부끄럽네요.”서준은 재킷의 단추를 풀고 옆에 걸치며 하연의 곁에 앉았다.“사모님의 카드로 부끄러워하시면 안 돼죠. 너무 좋은 거잖아요.”전희진은 기뻐했다. 잘생긴 훌륭한 남자에게 칭찬을 받는 걸 싫어할 사람은 없다. 하연은 입술을 오물거렸다.“한 대표님께서 놀고 싶으시면 제가 자리를 내줄게요. 제가 마침...”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준의 손이 하연의 어깨에 놓고 눌렀다. “전 구경만 하면 되요.”하연은 서준을 노려보았다.‘놀기 싫으면서 왜 와, 날 상대하는 거야!’전희진은 그 모습을 보며 카드를 던졌다.“평소 한 대표님을 만나기 어려운데, 오늘은 한가하시나 보네요. 어렵네요. 혹시 어느 가문 아가씨에게 마음이 있어서 소개해 달라고 하고 싶어요?”하연은 불똥이 튈까 봐 몸이 굳어졌다. 그러나 서준의 말이 예상치 못했다.“최하연 씨가 긴장을 많이 하시네요. 사모님께서 저에게 질문하는데 왜 두려워해요?”순간 여러 테이블의 시선이 하연에게 쏠렸다. 하연은 억지로 참았다.“바람이 통하는 곳에 앉아서 추워서 그래요.”하준은 하연 손에 있는 카드를 한 장 버렸다.“카드를 내는 걸 잊었군요.”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모호해졌다. 하연은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았다. 하연의 일대일로 싸우는 모습이 유명해져 사람들이 하연에 대한 인상은 DS의 최 사장님, 아가씨이지, 서준의 전처가 아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같이 있어서
하연과 서준은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무대 쪽에 일이 생긴 것 같았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하연은 깜짝 놀랐다. 서준과 눈이 마주치자 두 사람은 그쪽으로 달려갔다.“도련님이 물에 빠졌어요, 도련님이 물에 빠졌어요!”가정부들의 놀란 외침이 울려 퍼졌다. 방 안에서 진행되던 게임판도 흩어지며 주현빈과 전희진이 동시에 달려 나왔다.“무슨 일이에요?”서준은 가정부를 잡고 물었다.“방금 도련님께서 호숫가에서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어요. 제가 한눈 판 사이에 떨어졌어요!”주진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렸다.“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서준은 눈을 부릅뜨며 바로 뛰어 내려갔다. 하연이 말릴 틈도 없었다. 서준은 수영을 할 줄 안다. 하지만 호수의 깊이를 몰라 사고가 있을 수도 있다.“한서준!”서준이 최선을 다해 주진을 향해 헤염치더니 주진의 손을 잡고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괜찮아, 아저씨가 있어.”주진은 숨을 헐떡였다. 주현빈의 마음이 급했다.“빨리!”다행히 수면 위와 멀지 않아 서준이 바로 구할 수 있었다. 가정부는 바로 수건을 가져와 주진에게 둘러주었고, 주현빈이 주진을 품에 안았다.“괜찮아?”“의사, 빨리 의사를 불러와!”전희진의 안색이 창백했다.“고마워요, 한 대표님.”서준은 맨팔로 있어 근육이 선명했다. 추운 겨울에도 전혀 떨지 않고 매우 유혹적이었다.“괜찮아요. 아드님이 괜찮은지 먼저 확인하세요.”주현빈은 아이를 안고 실내로 달려갔고, 전희숙도 서둘러 따랐다. 가정부가 서준에게 수건을 주었다. 하연이 다가왔다.“그렇게 깊은 곳에 뛰어들어?”서준은 수건으로 머리를 닦았다.“내가 나 몰라라 하는 사람이 아니야.”하연은 입술을 오물거렸다. 다른 의미로 서준은 확실히 좋은 남자이다. 그렇지 않으면 몇년 동안 서준에게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들어가자, 밖에 추워.”서준은 피뜩 보았다.“또 계속 고맙다고만 하겠지. 그런 게 익숙하지 않아. 먼저 가고 싶어.”하연은 이해했다.“그럼 차에 들어가자.
하연은 짜증이 났다.“행동하기 전에 내 의견을 물어봤었어? 하서준, 넌 여느 때처럼 자만심에 차 있어. 너의 소위 선의는 필요없어.”“응, 인정해. 이 일은 내 탓이야.”서준은 이어서 말했다.“그래서 사과하러 왔어. 날 용서했으면 좋겠어.”주씨 가문 생일 연회에 참석한 것도 하연 때문에 온 것이다.“생각해 봤는데,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니야. 사업가 사이에 이익 문제가 있는 건 정상이야. 네가 한 일은 네 일이야. 내가 널 비난할 자격이 없어. 그래서 네가 사과할 필요도 없어.”하연은 차분하게 선을 넘지 않게 말했다. 서준은 눈썹을 찌푸리며 가슴이 내려앉았다.“하연아.”“하서준, 네가 JJ를 무시하고, 내 안목을 무시하는 걸 알아. 하지만 너도 주현빈에게 은혜를 베푸려고 뛰어내려서 주진을 구했잖아?”하연은 그저 아이러니했다. 서준은 말을 하지 않았다. 이건 사실이었다.“다음부터는 고상한 척하지 마. 역겨워.”말을 마치자 하연은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려 했다. 그러자 서준은 하연을 잡았다.“그럼 부상혁은? 나랑 비하면 부상혁이 더 고상한 척하고 있어.”상혁의 얘기가 나오자 하연은 손을 뿌리치려 했다.“네가 무슨 자격으로 부상혁 얘기를 해?”서준은 하연을 꼭 잡고 또박또박 말했다.“여러 번 국내외를 오가는 건 공무 때문에 아니야. 부상까지 입었어. 알고 있어? 너한테 솔직하게 말했어? 그게 고상한 척 아니야?”하연이 확실히 모르는 것 같았다. 하연은 더욱 황당한 것 같았다.“그건 우리 사이의 일이야. 네가 뭔데, 네가 무슨 자격으로 말해!”우리라는 말이 서준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건 그들의 사이에 이미 자기의 개인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둘이 사귀는구나.”서준은 말했다. 하연은 인정하고 싶었지만, 상혁과 아직 그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아니.”하연은 서준의 손을 뿌리쳤다.“그건 너와 상관 없어.”말을 마친 후 하연은 문을 닫고 차를 찾으러 갔다. 서준은 백미러에 비친 결연한 하연의 모습을 보자 안색이 어두워졌다. 얼
상혁은 잠시 머뭇거렸다. 하연은 여전히 말하려는 마음이 없어 포기했다.[B 시 온도가 떨어졌어. 옷 많이 입고 다녀.]하연은 무의식적으로 오늘 입은 옷을 보았다. 확실히 얇았다. 방금 서준과 밖에 있을 때 은근히 추웠다. 하연은 신경 쓰지 않고 기분을 풀었다.“상혁 오빠, 해외에 있는데도 B시 일기 예보를 보네요.”[누군가가 말을 안 들어서, 신경 쓸 게 많아.]하연은 고개를 숙여 웃었다. 순간 나쁜 기분이 사라졌다.“오늘 바빠요?”상혁은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사들을 보았다. 모두 상혁의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안 바빠.]“다행이네요.”차는 이미 DS 아래 도착했다. 하연은 차에서 내렸다. 말하기도 전에 멀지 않은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진미화를 보았다.“하지만 저는 이제 바빠지기 시작할 거예요. 상혁 오빠, 저녁에 다시 전화할게요.”상혁에게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하연은 전화를 끊었다. 황연지가 곁에서 상혁의 안색이 좋지 않다는 걸 눈치 챘다.“회의가 3시간동안 진행되고 있어요, 아니면 이만 할까요?”상혁은 핸드폰을 치웠다.“계속해. 그리고 대신 처리해 줄 일이 있어.”한편 하연은 다가가서 진미화를 맞이했다.“무슨 일이에요?”진미화의 손에 서류를 들고 있었다.“사장님, 안색이 안 좋아요.”“괜찮아요, 말하세요.”진미화는 하연의 뒤를 따르며 설명했다.“JJ와 해외 이커머스 구축이 문제 생겼어요. 주로 고객들이 신뢰가 없어요. 누구도 도박을 원하지 않아서 한동안 정체가 있었어요.”처음에는 모든 것이 어려운 법이다. 이 모든 것이 예상되어 하연은 심호흡을 했다.“DS의 해외 고객을 연락해 볼게요. 함께할 의향이 있는지 확인해야겠어요.”이때 엘리베이터에서 호현욱이 나왔다. 호현욱은 웃었다.“최 사장님, 방금 다녀오셨어요? 쯧, 안색이 안 좋네요. 보양식을 많이 드셔야겠어요.”하연은 웃는 듯 마는 듯했다.“호 이사님과 비교할 수 없죠. 좋은 일이 있으세요?”“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일어날 일들은
하연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한 걸음 물러서서 입을 가렸다.“상혁 오빠? 언제 왔어요?”상혁은 차 문을 열고 하연을 타라고 했다.“3시에 도착했는데, 방해할 수 없었어.”하연은 시간을 보았다. 지금 여덟 시이다. 긴 비행 시간을 제외하면 다섯 시간 동안 이곳에서 기다린 셈이었다.하연은 차에 타고 마음이 아파 상혁의 얼굴을 만졌다.“무슨 일이 있어요? 왜 갑자기 왔어요?”상혁은 하연의 손을 잡고 바라보았다.“차를 돌려주러 왔어.”하연은 상혁을 때렸다.“거짓말하지 마세요.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상혁은 입꼬리를 올렸다.“FI 그룹에 일시적인 문제가 생겨서 처리하러 왔어.”하연은 의심을 했다. 하지만 상혁은 이미 시동을 걸었다.“집에 가?”하연은 가볍게 대답했다. 아침 출근 시간이라 도로는 차들로 가득했다. 상혁은 안전하게 운전했다. 얼굴 반쪽이 햇빛을 받아 상혁이 어떤 감정인지 알 수 없었다. 물론 하연의 집으로 돌아갔다. 상혁은 차를 주차장으로 몰랐아.“주인에게 물건을 돌려주는 거야.”하연은 답답했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 멈춰 서서 진지하게 물었다.“오빠가 떠난 후 fl를 지켜봐라고 시켰어요. 대표가 직접 와서 해결해야할 큰일이 있다고 들은 적이 없어요.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하연은 걱정했다. 상혁은 웃으며 하연의 머리카락을 정리했다.“능력이 좋네, 내 것을 지켜봐?”하연은 말을 하지 않았다.“정말 일이 생겼으면, 네 사람이 어떻게 알겠어?”상혁은 하연의 손을 잡고 방 문 지문 장금 해제를 만져 문을 열었다.“걱정 마, 해결할 수 있어.”하연은 상혁의 손을 잡았다.“이렇게 다니면 힘들잖아요. 몸이 걱정되요. 철로 만든 것도 아닌데.”상혁의 시선은 맞잡은 두 손에 떨어지자 입꼬리를 올렸다. 하연은 순간 얼굴을 붉혔다. 손을 바로 풀며 모호한 분위기가 물려왔다.“아침은 뭐 먹고 싶어?”“이모님은 할 거예요.”“너한테 물어보는 거야.”“죽 먹고 싶어요. 위를 챙겨야죠.”사실 하연은 아침으로 커피와 빵을 먹는다.
상혁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살짝 웃음을 지었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검진을 마친 뒤, 하연은 선명한 초음파 사진을 손에 들고 있었다. 사진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손끝으로 사진 속 동그란 그림을 가리켰다. “여기 봐봐요. 이게 우리 아기래요.” 목소리엔 설렘과 떨림이 그대로 묻어났다. 상혁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하연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눈엔 이미 감동이 차올라 있었다. 상혁은 조심스레 하연의 아랫배에 손을 얹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이 순간... 난 정말 너무 행복해.” ‘네가 내 옆에 있고, 우리 아이가 이렇게 자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야.’ 하연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남자아기일까요, 여자아기일까요?” 그녀의 눈빛에는 이미 사랑스러운 미래가 그려지고 있었다. 상혁은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상관없어.” 하연은 고개를 살짝 돌려 상혁을 바라봤다. 그 눈동자엔 별빛이 머물러 있는 듯 반짝였다. “그래요... 건강하게만 태어나면... 그걸로 충분해요.”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손을 맞잡았고, 서로의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따뜻함을 느꼈다. 그 순간, 상혁의 주머니 속 핸드폰이 진동했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하곤 순간 눈빛이 깊어졌다. 화면엔 낯익은 이름이 선명히 떠 있었다. [부동건.]‘이 타이밍에...?’ ‘설마 무슨 일 생긴 건가?’ 지난 연회 이후, 부동건과는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의 파장이 얼마나 컸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송혜선과 조봉규. 그 두 사람 때문에 무너진 자존심. 그리고 결국, 부동건은 송혜선을 아이와 함께 본가에서 내쫓았다는 소문까지 들려왔다. 하연이 조용히 말했다. “받아봐요. 무슨 일일 수도 있으니까.” 상혁은 하연의 손등을 가볍게 토닥이고, 그녀를 옆에 있는 의자에 앉힌 후
부동건은 갑작스레 거칠게 기침을 터뜨렸다. “컥”‘피 맛...?’ 목 안에서 치밀어 오르는 피비린내를 억지로 삼켰다. 손등에 핏줄이 선명히 드러나고, 이성의 끈은 이미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부동건의 시선이 천천히 송혜선과 조봉규를 향했다. ‘죽여버리고 싶다.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너희들... 너희들...” 부동건의 입술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송혜선은 극도의 공포에 휩싸였다. ‘이건 아니야... 이렇게 끝나면 안 돼...’ 그녀는 급히 앞으로 다가가 부동건의 팔을 붙잡았다. “회장님... 우리, 조 선생님이랑 그냥 산후 회복 얘기하던 중이었어요. 진짜예요, 저희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 부동건의 손이 송혜선의 뺨을 후려쳤다. 짝! 순간 정적. 강하게 내리친 손바닥 소리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숨을 멈춘 듯 조용해졌다. 송혜선의 얼굴 한쪽이 순식간에 붉게 부어올랐다. 눈가가 덜덜 떨리며, 눈물도 같이 맺혔다. “이 천하의... 배은망덕 같은 것. 내가 너를 어떻게 믿었는데... 감히 날 기만해?” 뒤에 서 있던 하객들 사이에서도 탄식이 흘러나왔다. “저 정도였어?” “저게 진짜였네... 소문이 아니고...” “...”송혜선은 뺨의 통증을 애써 무시한 채, 다시 붙잡았다. “회장님, 제발... 오해예요. 저희 그런 사이 아니에요. 저는... 당신뿐이었어요.” 그러나 부동건은 그 손마저 거칠게 뿌리쳤다. 그리고는 힘껏 송혜선의 복부를 발로 찼다. 퍽!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송혜선은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조봉규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아니야... 지금 나섰다간 나도 끝장이야.’ 한 걸음 다가가려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회... 회장님... 저희...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정말이에요...” 하지만 그 한마디가 기름을 붓는 꼴이 됐다. 부동건은 그대로 조
일 순간 충격의 정점이었다.부동건은 들고 있던 와인잔을 그대로 바닥에 내던졌다. 쨍그랑! 깨지는 소리와 동시에 모든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저... 저런 미친...!” 그는 화면을 가리키며, 얼굴을 붉힌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숨이 거칠게 턱 끝까지 차올랐다. ‘송혜선... 네가 감히!’ 주변 하객들도 이미 술렁이기 시작했다. “저게 진짜야?” “부 회장님 딸이... 아니라고?” “와... 이건 완전히 생각지도 못한 미친 패륜이야, 상상도 못 했어.” 오늘의 연회는 더없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이제 와선 최악의 스캔들 파티가 되어버렸다. ‘이 연회가... 전부 거짓된 일 때문에 생긴 일이란 말이야?’ ‘우리, 사기당한 거네. 다 같이.’ 그때 스크린이 멈췄고, 연회장 전체의 조명이 다시 환히 켜졌다. 하객들은 본능적으로 두리번거리며 부동건을 찾았다.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하지만 부동건은 아무런 대답 없이 어금니를 꽉 물고, 몸을 떨며 계단 쪽으로 향했다. 하객들은 그 뒤를 따라붙었다. ‘뭔가 일어나겠군...’ ‘이번엔 진짜 끝장이다.’ ...같은 시각, 2층 방 안. 송혜선은 조봉규의 손등을 다독이며 조용히 말했다. “조금만 참아. 며칠만 지나면 내가 다시 올게.” 조봉규는 싱긋 웃으며, 그녀의 허벅지를 장난스럽게 움켜쥐었다. “응. 기다릴게, 자기.”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 문이 거칠게 흔들렸고,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쾅!! “송혜선! 당장 안 나와?!” 송혜선의 온몸이 순간 얼어붙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조봉규의 팔을 꽉 잡았다. ‘망했다.’ “어떡해, 부동건이 올라왔어.” 두 사람은 당황하며 방 안을 둘러봤지만, 창문 하나 없는 좁은 방엔 도망칠 곳조차 없었다. ‘안 돼... 이렇게 들키면, 끝장이야. 정말 끝이야.’ 송혜선은 급하게 숨을 고르며 애써 이성을 붙잡으려 했다. ‘진정해. 침착해야 돼.
연회장 안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부동건은 손에 잔을 들고, 연신 들어오는 축하 인사에 밝은 표정으로 답하고 있었다. “회장님, 따님이 너무 예뻐요. 축하드립니다!” “아이고, 이런 경사는 자주 있어야죠!” ‘그래, 이 정도면 완벽하지. 오늘은 그 누구도 나를 흔들 수 없어.’ 그렇게 술이 한 잔, 두 잔 더해지며 연회장의 분위기도 점점 무르익고 있었다. 그때, 갑작스레 모든 조명이 꺼졌다. 탁! “어, 뭐야?” “불 꺼졌어! 왜 이래?” “아야, 누가 내 발 밟았어!” “...”순식간에 어둠이 덮친 연회장. 사람들의 놀란 목소리와 웅성거림이 퍼졌다. 잔을 들고 있던 부동건은 순간 정지된 듯 멈췄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당장 가서 확인해봐!” “네, 회장님!” 직원들이 급히 움직였고, 부동건은 진정시키려는 듯 손을 들고 말했다. “여러분, 당황하지 마시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전기 쪽 문제인 것 같습니다. 금방 복구됩니다.” 사람들은 잠시 멈춰 서서 어둠 속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그 순간, 연회장 한쪽 벽면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이 조용히 켜졌다. “위이잉...” 어둠 속에서 갑작스레 터진 화면의 빛에 모두가 눈을 찌푸리며 반사적으로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 빛이 익숙해질 무렵, 누군가가 터트린 외마디 감탄에, 시선이 일제히 스크린으로 향했다. “어... 저거 뭐야? 헉, 저게... 말이 돼?” 그리고, 그 스크린 안에 있는 건... 분명 두 남녀의 은밀한 장면이었다. 화면 속, 분명히 누군가를 알아본 듯한 목소리가 터졌다. “저 여자... 그분 아니야?” “옆에 있는 남자는...?” “헐, 이건 진짜 레전드다.” “아, 눈 버렸어. 이게 뭐야, 이게...”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순식간에 연회장은 도저히 되돌릴 수 없는 혼돈의 도가니로 빠져들고 있었다.사람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송혜선이 복도 입구에 막 다다랐을 때였다. 갑작스레 어디선가 튀어나온 그림자가 그녀를 뒤에서 껴안았다. “꺄악!” 놀란 송혜선은 반사적으로 비명을 질렀고, 누군가 재빨리 그녀의 입을 막았다. “나야! 나야, 혜선아.” 익숙한 목소리에 송혜선은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남자의 손을 떼어내며 차갑게 말했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이 사람, 지금 제정신인 거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어서 급히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송혜선은 그제야 숨을 돌리며, 낮은 목소리로 흘기듯 말했다.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미쳤어, 사람들 눈에 띄면 어쩌려고!!” 그 말엔 명백한 불만과 경계심이 섞여 있었다. 조봉규는 잠시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안 되는데...’ 그 순간의 긴장, 그리고 복잡한 감정이 두 사람 사이에 감돌았다.조봉규의 시선이 송혜선의 얼굴에서 천천히 내려앉았다. 송혜선은 산후라 그런가, 몸매는 훨씬 더 부드럽고 풍성해져 있었다. ‘이러니까, 잊으려고 해도... 더 생각이 나잖아.’ 그는 순간 충동적으로 송혜선의 팔을 붙잡았다. “잠깐만.” 당황한 송혜선이 눈을 부릅떴다. “뭐 하는 거야!! 지금...” 그러나 조봉규는 말없이 송혜선을 옆방으로 이끌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작게 ‘탁’ 하고 울렸다. 좁은 공간, 차오르는 침묵. 송혜선은 남자를 노려보며 벽에 등을 댔다. “정신 차려!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조봉규는 그녀를 바라보며 낮게 숨을 내쉬었다. “다들 홀에 있잖아. 아무도 몰라.” 남자의 말투엔 간절함과 조급함이 섞여 있었다. 이건 단순한 욕망이 아니었다. 그리움, 억눌림, 그리고 못다 한 말들. 그는 조심스럽게 송혜선의 턱선을 손끝으로 만지며 말했다. “혜선아... 나, 정말 많이 참았어.” ‘이 사람 또 이러네...’ 송혜선의 심장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분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정문 쪽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부동건이 고개를 돌리자, 최하연이 부상혁의 팔을 자연스럽게 끼고 등장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순간, 많은 이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쏠렸다. 잘생긴 남자와 우아한 여자의 조합. 누가 봐도 완벽한 한 쌍이었다. ‘딱 봐도 좋은 그림이야. 저 둘은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눈길을 끌어...’ “회장님, 부상혁 대표님은 정말 복도 많으십니다. 최씨 가문의 따님과 이렇게 잘 어울리는 커플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누군가의 말에 부동건의 표정이 확 풀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미묘하던 분위기가 사라지고, 부동건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피어났다. 부동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젊은 사람들이 서로 마음이 맞아 좋아하는 걸, 우리 어른들은 그저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줘야 하는 일일 뿐이지요.” “게다가 상대가 최씨 가문의 따님이라니, 정말 금상첨화가 아닙니까.” 부동건은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역시 상혁이다. 내 아들이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 상혁은 오늘 이 자리에서 당당히 아버지의 체면을 세워주고 있었다. 한편, 송혜선도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방금 전까지 얼굴에 띄웠던 미소는 점점 사라져 갔고, 그녀의 시선은 어느새 하연에게 향했다. 오늘의 하연은, 나무나 예쁘고... 아니, 그냥 눈이 부실 만큼 찬란했다. 그리고 또렷한 이목구비에 윤기 흐르는 머릿결, 화사하게 피어난 얼굴빛까지. 하연의 행복함이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듯했다. 송혜선의 눈빛이 서서히 차가워졌다. ‘정다영... 그년, 나를 속였어.’ 그동안 하연 쪽에서 뭔가 반응이 있을 줄 알고 기다려 왔다. 하지만 소식은커녕, 정다영조차 자취를 감췄다. ‘다영이 걔가 하연이에게 약 먹이는 계획이 분명 실패한 거야. 그렇지 않고 선 지금 저렇게 멀쩡한 얼굴로 서 있을 수는 없어.’ 이대로 배가 불러오면, 섣불리 손도 쓸 수 없게 된다. ‘
이 질문에 송혜선은 눈을 반짝이며 부동건을 바라봤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젠 나를 당당히 소개해 줄 때가 됐겠지.’ 오늘 이 자리에서, 그녀는 부동건의 정식 아내로서 인정받기를 바라고 있었다. “회장님, 말씀 좀 해보세요?” 조금은 성급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자, 주변의 시선도 하나둘 송혜선과 부동건을 향했다. 모두 속으로는 뻔히 알고 있었다. 부동건이 과연 예전 애인을 진짜로 정실로 앉혔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했다. 부동건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숨기거나 피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담백하게 말했다. “오 회장님, 이 사람은 제 딸의 어머니입니다.” 순간, 송혜선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딸의... 어머니?’ 손에 들고 있던 와인 잔이 살짝 흔들렸다. 금세 넘칠 듯한 와인, 애써 잡고 있는 감정. ‘지금... 이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억울함이 툭 하고 솟구쳤다. 심지어 손에 힘이 들어가며 하얗게 질린 손등이 떨렸다. 오병지는 단번에 눈치챘고, 싱긋 웃으며 더는 묻지 않았고, 대신 가볍게 말을 건넸다. “축하드립니다. 부 회장님, 여전히 복이 많으시네요.” 부동건은 공손하게 웃으며 송혜선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 손길엔 무언의 위로가 담겨 있었다. “아닙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나중에 저와 이 사람의 결혼식엔 꼭 오셔서 축배 들어주세요.” 그 말에 송혜선의 눈이 번쩍 뜨였다. ‘결혼식...?’ 순간, 가슴이 쿵 하고 울렸다. 이어서 고개를 들며 수줍게 웃었다. “회장님...” 부동건은 말없이 그녀를 더 가까이 끌어안았다. 더 이상의 말은 없었지만, 그 행동으로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주변의 사람들 시선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송혜선을 무시하거나 조롱하던 눈빛이, 지금은 선망과 부러움으로 가득했다. 결국, ‘부동건의 아내’라는 타이틀은 그 자체로 막대한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이름이었다.송혜선은 온
부지윤의 ‘한 달 잔치’는 그야말로 성대한 수준의 파티였다. 초대받은 인사들만 봐도, 그 위세가 느껴졌다. F국 재계의 실력자들, 정재계의 핵심 인물, 이름만 대면 아는 명문가 자제들이 대거 초청됐고, 심지어 부씨 가문 어른들에게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직접 청첩장을 보냈다. 이 정도면, 사실상 이 아이를 공식적으로 가문에 편입시키겠다는 의지나 다름없었다. 부동건이 이 아이에게 얼마나 애정을 집착하듯 쏟고 있는지, 이날 행사 하나로 증명되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동건은 스스로의 체면과 명예를 걸고, 딸을 세상에 내보이고 있었다. ...잔치 당일, 연회장은 유난히 붐볐다. 샹들리에의 조명이 화사하게 반짝였고, 고급스러움이 풍겨 나는 악단의 선율이 분위기를 감싸고 있었다. 송혜선은 산후조리를 마친 직후였지만, 여전히 그만의 풍채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예전보다 조금 살이 오른 듯했지만, 그 덕에 오히려 분위기가 더 너그러워 보였다. 그녀가 행사장에 들어서자, 평소 자주 어울리던 재벌가 부인들이 앞다투어 다가왔다. “혜선씨는 진짜 복이 많은 사람이에요. 그 고생 끝에 드디어 볕뜰날이 왔네요.” “부 회장님이 이렇게까지 챙기시는 거 보니까, 이제 정말 한 자리 하시겠어요.” “정말 이러다 조만간 ‘겹경사’ 나는 거 아니예요? 우리라도 미리 축하해줘야 하는 거야?” 송혜선은 그 소리에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얄미울 정도로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역시 사람은 자리가 높아야 대접 받는 거야.’ “지윤이는 회장님의 첫 딸이잖아요. 그러니까 귀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회장님이 우리 모녀를 절대 가볍게 보지 않으신다는 건, 여기 있는 분들도 느끼셨을 테고요.” 그 말에 다들 박수까지 치며 웃었다. “이제 우리도 호칭 바꿔야지, 사모님!” 누군가 먼저 그렇게 불렀고, 뒤이어 몇몇이 장난처럼 따라 불렀다. 송혜선은 그 말에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턱을 살짝 들며, 그 호칭이 제법 익숙
진윤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마침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부남준은 법을 무시하고, 사람을 죽였어요. 부씨 가문이 이 일에 개입한다면... 여론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감싸려 들면 들수록, 결국은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겠죠.” ‘이건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가문의 존망이 걸린 문제야.’ 맞은편 소파에 앉은 상혁은 다리를 꼬고, 한쪽 손으로 턱을 괸 채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의 눈빛엔 어떤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세속의 먼지 따윈 전혀 묻지 않은 사람처럼. 진윤의 말이 끝났지만, 상혁의 표정엔 미동 하나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부씨 가문은 항상 법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여왔습니다. 그건 변하지 않습니다, 여사님.” 그는 손짓으로 테이블 위를 가리켰다. 거기엔 작은 검은색 USB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 안에... 고나희 씨가 남긴 게 있습니다. 여사님께 드리라고 하더군요.” 순간, 진윤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숨이 턱 막히는 듯한 표정으로, USB를 바라봤다. “지금... 뭐라고 하셨죠?” 그녀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나희가... 뭔가를 남겼다고...?’ 사고는 너무도 갑작스러웠다. 딸의 마지막을 함께할 시간조차 없이, 그녀는 세상을 떠났고, 어떤 유언도, 한마디 말도 남기지 못한 줄 알았다. “나희... 그 애가... 무슨 말을 남겼다는 거예요...” 진윤은 입을 틀어막았다. 눈물은 이미 참을 수 없다는 듯 쏟아지려 하고 있었다. 상혁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다. “사람이 떠난 건 바꿀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남겨진 마음은, 누군가가 반드시 전해야죠.” 그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거운 공기를 뒤로한 채, 조용히 방을 나섰다. 잠시 후.룸 안에서 낮고, 억눌렀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희야...” 진윤은 USB를 손에 쥐고,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으로 울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