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에 내포된 의미가 너무 많았다. 심지어 사람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상혁이 앞으로 두 걸음 나아가 하연이 집어 든 술잔을 가볍게 빼앗아 왔다. “술을 많이 마시면 몸이 안 좋아져. 주 회장님이 도리를 지키지 않는 사람도 아니고.”주현빈이 얼떨떨해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최 사장님. 그만 마셔요.”“이따가 끝나면 나랑 같이 가자. 할 말이 있어.”대중 앞에서 상혁의 태도는 이미 두 사람이 보통 친구 이상이라는 걸 암시햇다. 하지만 하연은 그런 상혁과 대화도 섞고 싶지 않아 붉게 물든 얼굴을 돌리며 말했다.“안돼요.하연의 대답에 만족한 상혁이 하연의 술잔을 단숨에 비우고 말했다. “여러분께 사죄드립니다. 중요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가겠습니다.”당연히 아무도 난감하게 하려 하지 않았다다만 사람이 떠난 후 룸 안이 갑자기 떠들썩해졌다.“최 사장님이 FL 그룹의 부 대표님과 최 사장과 이런 관계 일 줄은 몰랐네요.”“곧 좋은 소식이 들려오겠는데요?”“결혼식에 축하주 한 잔 얻어먹을 수 있을까요?”‘이게 다 무슨 소리지?’ 하연이 말했다. “저희 두 가문이 오랜 친구 사이라서 그래요. 부 대표님은 촌수로는 오빠예요.”하연의 설명에 설득력이 없어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또다시 웃기 시작했다.후속 협력을 확인한 후에야 이 식사는 마침내 끝났다.그리고 상혁의 등장으로 최하연의 집중력이 약간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가기 전에 주현빈은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아야 걸을 수 있었다. “최 사장님, 저는 평생 큰 약속을 한 적이 없어요. 한번 말하면 반드시 그것을 실현할 거예요! 제 말을 들어보세요, JJ 그룹과 협력하면 당신을 지지 않을 거예요.”하연은 마음이 따뜻해져 주현빈의 비서에게 당부했다. “잘 모셔다드려요.”하연은 식당 입구에 서서 태훈에게 명령을 내렸다. “방금 레스토랑에서 말한 몇 가지 사항을 이행해.”태훈이 응답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태훈이 떠난 지 얼마되지 않
상혁이 말을 마치고 하연을 한번 보았는데 무슨 뜻인지는 말을 아꼈다. 하연은 안전벨트를 꽉 쥐고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거예요?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에요?”“네 옆에 태훈 밖에 없는데 술을 마시게 될까 봐 걱정했어.”“주 회장님은 오빠가 소개한 사람이잔항요. 혹시 어떤 사람인지도 몰라요?”“주 회장님은 남자다운 분이라 여자를 난처하게 하지 않아.”“그런데 왜...”“네가 보고 싶어서”상혁이 다시 한번 하연을 힐끗 쳐다봤다.“이 대답을 받아들일 수 있겠어?”뜻밖의 말에 하연은 어안이벙벙해졌다. “어제 금방 만났잖아요.”“어떤 사람은 한번 만나는 거로 부족하지.”백미러를 한번 훑어본 상혁은 번화한 시내를 벗어나자 바로 속도를 늦춘 후 길가에 차를 세웠다. “왜 멈췄어요?”“올 때 보니까 앞에 교통사고가 났더라고. 아직 현장 정리가 안돼서 좀 더 기다리다 가는 게 낫겠어.”하연의 차 안에 있는 글러브 박스를 열어보니 안에는 여자 담배 한 갑과 모란 한 갑뿐이였다. 그때 하연이 상혁의 손을 막으며 말했다.“이 담배는 연해서 필 수 없을 거예요”“그래도 시도해 보고 싶은데?”상혁이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고 말했다. “담뱃불 좀 붙여줘, 하연아.”어두컴컴한 등불 아래 상혁의 두 눈은 맑고 깨끗하여 마음까지 들여다볼 수 있었다.하연은 가슴이 떨려 얼른 라이터를 꺼내 켰다. 순간 탈칵 소리와 함께 불꽃이 두 사람의 얼굴을 밝혔다.“G국에 있을 때만 해도 담배를 못 피우더니 언제 배운 거야?”“B시에서 아무도 저신경 쓰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배우게 됐어요.”하연이 상혁에게 불을 붙여준 후 라이터를 던지고 나니 하연은 자연스럽게 한씨 저택에 있을 때 일이 생각났다. 그때 하연은 한씨 집안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괴롭힘을 당했는데, 서준은 상관도 하지 않자 슬픔에 빠져 담배를 배우게 되었다.상혁은 희뿌연 연기 속에서 담배를 한 모금 깊게 들이마셨다. 하지만 확실히 하연의 말 대로 너무 싱겁고 맛이
하연은 그날 저녁에 돌아가 채팅방에서 일의 내막을 대충 이야기했다.“이치대로라면, 우리 양어머니와 양아버지의 건강은 매우 좋으시니 상혁 오빠도 건강 문제가 있을 리가 없지 않나?”하연이 매우 서글픈 모습으로 큰 침대에 누워있었다.그때 여은이 첫 번째로 답장이 왔다. [서여은: 웃겨 죽겠네. 너는 어떻게 상혁 오빠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장담해?][정예나: 너 미쳤어? 전 세계 남자들이 다 문제가 있다고 해도 상혁 오빠는 문제없어.][최하연: 네가 어떻게 알아?][정예나: 딱 봐도 알아. 거짓말하면 내가 한서준의 아들이야.] 하연이 참지 못하고 피식 웃더니 연신 웃는 것처럼 ‘하하하’ 여러 개를 보냈다.[신가흔: 근데 너 한서준 진짜 포기한 거지?]타자를 하던 하연의 손이 잠시 멈추더니 뭔가를 생각해 본 후 진심을 말해 줬다.[최하운: 극혐해.] 보통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게 진짜로 관심이 없는 게 아닐 수도 있지만 혐오라는 단어를 쓰면 그것은 바로 진정 포기한다는 뜻이다. 세 사람은 화제를 돌려 이야기를 나누다가 하연은 불현듯 무엇이 떠 올랐는지 문자를 보냈다.[크리스마스에 DS 그룹은 반드시 한몫 챙겨야 해. 그러다가 때가 되면 좀 거물급 브랜드가 필요하니까 너희들에게 부탁 좀 할게.] 그건 당연히 문제될 거 없었다. 정예나가 아예 음성 메시지를 보내왔다.“이것은 선녀가 인간계에 내려가길 원하는 거잖아. 사치품은 라이브 방송에서 구매력이 떨어질텐데.”하연이 하는 수 없이 말했다.“당연히 저가 제품을 위주로 하고 사치품은 제일 마지막에 방송할 거야. 너희들의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을 거야.”[신가흔: 전폭적으로 지지할게.] [서여은: 그럼 난 너를 도와 여론을 조성할게. 필경 DS그룹이 좀 더 친민적인 서비스를 한다는 소식은 외부에서도 듣기 좋아하는 소식일거야.] 하연이 웃으며 말했다.“돈으로 안 되는 게 어디 있겠어?”하연은 빠르게 움직여 이튿날부터 품질 관리를 맡았다. 그러다가 다른 요 각 라이브방송을
하연의 미소가 굳어졌다.“정 비서, 가자.”서준은 제자리에 서서 하연의 날씬한 뒷모습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동후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한 사장님, 최하연 말이 맞는 것 같아요, JJ 그룹이 도박할 만한 가치가 있어요.”서준은 짜증을 내며 건물에 있는 그룹 로고를 보았다.“가치가 있다는 걸 왜 모르겠어, 하지만 다 도박이야. 만약 지면 하연은.”솔직히 걱정되었다. 동후는 입을 오물거리며 그 말을 참고 있었다.‘아무튼 도와주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져도 상관 없잖아.’“회의가 곧 시작 돼.”서준은 앞으로 다가갔다.“임소연은 요즘 뭐 하고 있어?”“건설 현장에 뛰어들고 있어요. FL그룹의 이 회장님과도 약속을 잡았어요. 임성재 쪽에서도 경계를 풀지 않았어요. 최하연과 싸울 작정을 한 것 같아요.”서준은 피식 웃으며 뭔가가 떠올랐다.“부상혁은?”“지난 며칠 동안 B시에 자주 들락거렸어요. 목적지가 모두 외국이라 FL그룹 내부에서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몰라요.”“잘 지켜봐.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보고해.”현빈의 사무실에서.“해외시장?”현빈은 하연의 말을 듣자 사레가 들었다.“네, 아직 크리스마스가 두 달이나 남았어요. 모든 플랫폼이 준비하고 있어요. 하지만 JJ 그룹만이 해외시장을 개척했어요. 그래서 이 기회에 라이브 커머스를 확장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하연은 침착하게 말했다. 아마도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국내 크리스마스 문화는 이미 수년을 지나갔다. 자원은 이미 거의 다 나뉘어서 소모되었다. JJ 그룹에만 의존해 업적을 완성하는 건 자신이 없었다. 현빈은 오랫동안 피가 끓는 것을 느끼지 못해 흥미진진하다고 느꼈다.“너무 서둘러. 두 달에 할 수 없어.”하연은 아쉬움이 보였다.“두달 동안 DS 그룹은 최선을 다해 JJ 그룹을 협조할 거예요. 필요한 게 있으시면 우리와 협력해도 되요.”현빈은 잠시 생각했다.“비록 해외에 성공적으로 진출했지만, 해외 정부는 외국 앱에 매우 저항적이야.
사무실을 나서자 기태는 흥분했다.“최 사장님, 주현빈이 동의할 거라고 어떻게 알았어요? 일부러 가격을 높게 책정했네요.”하연은 당당하게 걸었다.“해외시장은 JJ 그룹의 상처야. 누군가 도움을 줄 사람이 절실히 필요했기에 반드시 동의할 거야.”“하지만 JJ 그룹의 일부분을 얻는 것만으로도 이미 큰 이익이야.”“최 사장님, JJ 그룹에 그렇게 자신이 있어요.”하연은 턱을 들었다.“응, 맞아.”이론적 지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항상 열정적이지만, 막상 하면 조금 지치기도 한다. 하연은 바로 상혁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갑자기 상혁이 연락이 안 되면 피터에게 연락한다면 된다는 게 생각이 났다.하연은 급히 가방에서 명함을 찾아 전화를 걸었다. 번호가 속한 곳은 F 국이었다.[최하연 씨.]피터는 바로 받았다.“피터, 부 대표님은요? 연락이 안 돼요.”[도련님께서 아마 자고 있을 거예요. 깨어나시면 전화하라고 할게요.]“낮에 자고 있어요?”[어젯밤 회식이 늦었어요.]하연은 의심을 했고, 상혁은 잠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그럼 깨어나면 바로 전화하라고 해요.”피터가 동의하자 전화를 끊었다.JJ 그룹의 가장 큰 문제는 관련 해외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상혁을 연락하지 못하자 하연은 고민을 하며 하민에게 전화를 했다. F 국은 저녁이었다. 하민은 전화를 받고 놀랐다.[하연아, 무슨 일이 있어?]하연은 민망해하며 일을 간단히 말했다. 하민은 잠시 침묵했다.[네 아이디어는 좋아. 하지만 해외에서 JJ 그룹을 거부하는 건 하루이틀이 아니야. 이럴 때 정부의 승인을 받기가 어려워.]“어려운 걸 알아서 오빠한테 부탁하잖아요. DS 본부가 F 국에서의 영향력으로 사정을 빌면 안 돼요?”하연은 불쌍하게 말했다.[그래도 되지만, 성의를 보이려면 네가 직접 와야 할 수 있어.]“그건 괜찮아요.”[준비해줄게.]“고마워요, 오빠. 오빠가 짱이에요!”가족 앞에서야 하연은 기댈 수 있었다. 전화를 끊고 하연은 의자를 뒤로
다음 날 하연의 배행에는 기태 외에 JJ 그룹 직원이 동행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까지 하연은 상혁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 JJ 직원 중 한 명은 여성이여 통찰력이 강했다.“최 사장님,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세요?”하연은 갑자기 뒤돌아보았다.“티나요?”“여자들의 생각은 얼굴에 쓰여 있어요.”비즈니스에서는 절대 안 되는 일이었다. 하연은 왜 자신이 점점 상혁의 생각에 끌려가는지 알 수 없었다. 하연은 애써 침착했다.“그거 친구를 걱정하고 있어요. 중요한 건 아니에요.”상대방은 웃기만 했다. 더 이상 질문을 이어가지 않았다. F 국에 착륙했고, 하민의 비서 민영이 직접 맞이했다.“하연 씨, 최 회장님께서 빠쁘셔서 특별히 10분을 비웠어요. VIP 대접실에 계세요.”기태는 JJ 그룹 사원을 안배하고 하연은 민정따라 하민을 만나러 갔다. 대접실에서 한민은 똑바로 앉아 문서를 넘기며 다가갈 수 없는 자세로 앉아있었다.“오빠!”하연은 달려가며 하민의 품에 안겼다.“보고 싶었어요!”하민의 차가운 표정에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B시의 이사인데 아직도 이렇게 무모해?”하연은 신나게 웃었다.“밖에서 무슨 신분이든, 영원히 오빠 동생이잖아요.”하민은 웃으며 금색 명함을 건넸다.“F 국의 이사 에릭이야. 오늘 회의를 마치면 30분의 자유 시간이 있어. 이 30분 안에 설득해야 해.”하연은 꽉 주며 말했다.“주소는요?”“내 사람이 데려다 줄 거야.”“고마워요, 오빠.”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는데 하연은 점점 이성적이어서 하민은 흐뭇했다.“피곤하게 하지 말고, 시간 되면 할아버지를 뵈러 가. 많이 보고 싶어해.”“물론이죠!”에릭을 설득하기 위해 하연과 직원들은 많은 준비를 했다. JJ 도 아이디어가 있어 자료도 준비되었다. 저녁이 되자 직원 두 명과 함께 출발했다. 차에서 상혁의 전화를 받았다. 상혁의 목소리는 쉬어있었고 마치 금방 깬 것 같았다.[하연아, 날 찾았어?]하연은 상혁의 목소리를 듣고 시름 놓았다.“상혁 오빠. 꽤
너무 갑작스러웠다. 하연의 머리속이 하얘지고 벽을 붙잡고 애써 침착했다.“원인은 먼저 따지지 말고, 바로 병원으로 가!”하연은 재빨리 밖으로 뛰어나와 귀급차를 따라 곧장 차를 몰았다. 하연은 보지 못했다. 부랴부랴하는 몸짓이 뒤에 있는 한 쌍의 창백한 눈에 들어갔다.“환자는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혈액 공급이 부족해요. 수혈이 필요해요. RH 음성 혈액형인 분이 있어요?”병원에 들어서자마자 하영은 한 간호사자 소리를 지르는 걸 보았다. 하연은 달려갔다.“어느 환자예요?”간호사는 가리켰다.“저분이요, 방금 들어온 환자!”에릭이었다. 하연은 손을 꽉 쥐었다. 우연인 건 하연이 RH 음성 혈액형이었다.“저, 저요. 저를 데려가서 피를 뽑아요!”기태는 가장 먼저 말렸다.“안 돼요, 사장님. 몸이 제일 중요해요!”하연은 기태의 손을 풀었다.“사람 목숨이 위태로워, 사람 구하는 게 중요해!”“하지만.”“피 좀 뽑는 건데, 죽지 않아!”하연은 간호사의 손을 잡았다.“저를 데려가요!”간호사는 급히 채혈 장소로 데려갔다.‘정말 착하네.’하연의 몸이 허약하여 피를 뽑자 얼굴이 창백해졌다. JJ 직원들 보기에도 마음이 아팠다.“사장님,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거예요.”하연은 거즈를 누르고 복도 의자에 앉았다. 얼마 지났는지 모르지만 드디어 수술이 끝났다. 의사는 마스크를 벋고 가족들에게 말했다.“무사해요.”가족들뿐만 아니라 하연도 숨을 돌렸다. 에릭은 수술실에서 밀려나와 병실로 갔다. 가족들은 몰려들었지만 아무도 하연을 보지 못했다. 묻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자 기태는 화가 나서 달려들었지만 하연이 막았다.“뭐하는 거야!”“그들이...”“네가 말하면 사람들이 우리가 호의로 협박할 거라고 생각할 뿐이야!”“그럼 아무말도 안 해요? 사장님, 사장님의 피는 소중해요.”하연은 침묵했다.“그래도 사람을 살렸으니, 그만한 가치가 있어.”“정말이야?”성숙하고 든든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하연은 의하해 하며 돌아서자, 재킷을 들고 사람들 사이
10분 후 병실에서 보호자가 나왔다.“최하연 씨, 들어오세요.”하연은 자료를 잊지 않고 챙겼다. 에릭은 이미 깨어났다. 병상에 누워 반쯤 눈을 뜨고 보았다. 부동건은 말했다.“하연아, 인사해.”하연은 허리를 굽혔다.“안녕하세요, 아저씨. 최하연이라고 합니다.”“당신을 알아요. 회의가 끝나면 만나보고 싶었어요.”“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아저씨만 무사하면 되요.”“중요하지 않아요?”“제 일에는 F 국 국민들의 주요 인물이 무사한 것이 가장 중요해요.”에릭의 엄숙한 얼굴에 웃음이 띄었고 부동건을 바라보았다.“동건아, 네 수양딸이 말을 참 잘하네!”부동건은 자랑스러워했다.“당연한 거예요.”“난 보답할 줄 아는 사람이에요. 저를 구했으니, 원하는 게 있엉?”단도직입적으로 하연은 자료를 잡았다.“원하는 걸 다 줄 수 있어요?”“전혀 숨기지 않네요.”“솔직히 말하면, 살려준 건 제 사심이 있었어요.”하연은 가볍게 말했다.“우리 속담에 호의를 베풀면 수없이 갚아야 한다는 말이 있어요. 제가 원하는 게 없으면 오히려 마음이 불편하실 거예요.”에릭은 말을 기다렸다.“그럼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고 서로를 안심시키는 게 좋아요.”인정이 거래에 있으면 모든 것이 잘 풀린다. 에릭은 고개를 끄덕였다.“원하는 게 뭐예요?”하연은 자료를 드렸다.“JJ 그룹의 해외 전자상거래의 계약이요.”에릭은 눈을 부릅뜨며 받지 않았다.“JJ 그룹이 포기를 하지 않네! 원하는 걸 줄 수가 없어요!”이건 국가 차원의 협상이었고, 여자가 이걸 바꾸고 싶어하는 건 꿈이었다. 하연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성공과 실패는 단 몇 분만에 이루어졌다.“알아요, JJ 그룹의 제일 큰 문제는 해외 대중의 정보 보안을 위협한다는 것이에요. 하지만 이 위험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떨까요?”“무슨 방법이 있어요?”“제가 해결하면 동의하실 건가요?”에릭은 하연을 노려보며 말을 하지 않았다.“은혜를 봐서 저에게 기회를 주세요. 곤란하게 하지 않을게요.”부동건은
“설령 제가 왕씨 가문을 하연 씨에게 준다고 해도, 하연 씨는 받지 않을 거잖아요.”이현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남산 땅은요? 당신이 왜 제가 그걸 받을 거라고 생각하죠?”짧은 침묵이 흘렀다.하연의 눈에는 원망이 가득했다. 자신이 겨우 얻어낸 또 다른 부지를 이현이 몇 마디로 취소시켜 버렸다.“앞으로 제 일에 끼어들지 마세요.”하연은 차갑게 말하며 다시 돌아가 가방을 집어 들었다.“우리 회사와 계약 해지를 한 계약서라도 썼나?”승원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계약서도 없으니, 우리 계약은 그대로 진행할 거야. 내가 보증금도 곧바로 입금할게. 승원아, 협력은 우리 둘이 한 것이지, 다른 사람이 끼어들 자격은 없어. 잘 기억해.”하연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담겨 있었고, 그 분노는 차갑고 단호했다.그녀는 가방을 들고 단호히 자리를 떠났다.승원은 멍한 표정으로 한쪽에 앉아 있는 이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봐, 진심이야? 정말로 하연을 여자 친구로 만들려고?” 오랜 침묵 끝에 이현은 조용히 대답했다. “응.” 승원은 놀란 눈으로 이현을 바라보았다. “네가 농담하는 줄 알았어. 너 정말 하연이가 누구인지 알기나 해? 최씨 가문이 그렇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집안이라고 생각해? 게다가 하연의 전 남친은 세계 50대 기업의...” “부상혁 말이지, 알아.” 이현은 아주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승원은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이현은 다시 자리로 돌아가, 아까 먹다 남긴 음식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마치 굳은 결심이 담긴 듯한 모습이었다. “난 그저 과거의 후회를 만회하고 싶을 뿐이야. 지금 어떤 장애물도 문제가 되지 않아.” ...‘미녀4총사’의 톡방이 톡을 끊임없이 계속 문자를 올리고 있었다. [그 사람이 남산 땅을 가져왔다는 건 정말 큰 공을 들였다는 의미야. 하연아, 지금 그저 앉아서 득을 보면 되는 건데, 왜 안 받아?]여은이는 전형적인 사업가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
하연은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이현의 손을 냉정하게 뿌리쳤다.“명준 도련님, 무슨 일이죠?”낯설고 차가운 목소리였다. 하연이는 이전에 단순한 가게 사장인 ‘손이현’을 대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태도였다.이현의 얼굴에는 불안감이 떠올랐다. “제가 F국에 온 건 하연 씨 때문이에요.” 하연은 즉시 손을 들어 그 말을 막았다. “저 때문에요? 그런 말 더는 듣고 싶지 않아요. 우리는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에요. 명준 도련님이 저를 위해 왔다는 말, 감당할 수 없어요.” 이현은 깊게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연 씨도 시간이 좀 필요한 걸 알아요. 그래서 제가 하연 씨에게 적응할 시간을 주려고 했어요.” 좁은 복도에는 사람들이 오가며 두 사람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명준 도련님, 저와 거리를 유지해요. 여긴 B시가 아니에요. 소문이라도 나면 곤란해요.” 하연은 한 걸음 물러서며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그래요? 지금 분명히 하연 씨가 저를 직면할 용기가 없어서 그렇게 말을 한 것 같아요.” 이현은 앞으로 다가가 하연을 잡아당겨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발코니로 데리고 갔다. 여기는 아무도 없었다. 이현은 본래의 신분을 되찾고 난 뒤, 그의 기세가 전보다 훨씬 거칠어졌다. 예전처럼 자신을 숨기지 않고, 다소 건방진 태도를 드러냈다. “지금 하연 씨가 두려워하고 있잖아요. 도망치고 숨고 싶잖아요.” 하연은 아래 도로를 달리는 차들을 무심히 바라보며 말했다.“설마 이게 전직의 버릇인가요?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고 정의 내리기 좋아하는 거요? 날 얼마나 안다고 그런 말을 하는 거죠? 저랑 얼마나 이야기를 나눠봤고, 무슨 일을 겪었는데요?”“전 한명준이라는 사람을 몰라요. 제가 아는 사람은... 손이현, 그 다정한 가게 사장이에요. 한씨 가문의 한명준 도련님이 아니에요.”이현은 그녀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만약 제가 아직도 손이현이라면, 하연 씨는 저에게 제대로 대답해 줄 건가요?” “저는 손이현 씨를 친구
남자의 시선이 하연을 향해 불꽃처럼 타올랐다. 그 시선에는 전혀 놀람이 없었고, 그는 곧바로 일어나 승원과 악수를 했다. “존! 내가 누구를 데려왔는지 봐. 너 이 친구를 기억하니?” 승원은 자랑스럽게 하연을 소개했다. “당시 우리 대학교에서 유명했던 여신이야. 재능과 아름다움이 뛰어나지.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변함없네.” 이현은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아 모든 걸 공개했다. 하연의 몸은 순간적으로 굳었다. “맞아, 내가 당시 너한테 러브레터를 부탁했잖아. 오늘 직접 확인했어. 하연이는 그 편지를 못 받았다고 하더군.” 그의 시선은 하연에게 고정되었다. “난 그 편지를 전달하지 않았어.” “뭐?” 승원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그때 우리 대학의 모든 남학생이 최하연 씨에게 마음을 품었어. 나도 예외는 아니었지.” 이현은 바로 당시의 진실을 밝혔다.하연은 이현의 눈을 피하며 입술을 다물었다. “선생님은 누구신가요? 저랑 아는 사이였나요?” 이현은 큰 손을 내밀며 말했다. “저는 한명준이라고 합니다. 대학 시절 최하연 씨가 다녔던 대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있었고, 최하연 씨의 아름다움을 본 적이 있죠.” 이현은 이제 자신의 본래 신분, 한명준이라는 이름을 이미 인정했다. 이 사실은 B시뿐만 아니라 전국에서도 알려진 일이었다. 하연은 그의 손을 잡지 않고, 비웃으며 말했다. “바람둥이인가 보군요. 기억에 남지 않네요.” 그 말을 듣고 있던 승원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존이 바람둥이라니, 그럴 리가 없지. 존은 재능이 넘치는 사람이고, 유학생들 사이에서도 유명해. 악을 벌하고 정의를 세우는 정직한 경찰이었지.” 승원은 장난스럽게 이현의 팔꿈치를 치며 말했다. “다 너 때문이야. 그때 내가 러브레터를 제대로 전달했다면, 지금쯤 난 이미 최씨 가문에 들어가서 사위가 되었을 텐데, 너도 알지? 최씨 가문의 사위라는 자리가 얼마나 귀한 자리인지.” 이현은 낮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데릴
하연은 와인잔을 들고 조용히 일어났다. 슬기의 잔과 건배할 때, 살짝 아래로 내려 의도적으로 두 센티미터 낮게 맞추었다. 그런 작은 움직임에도 하연의 속내가 담겨 있는 듯했다.“앞으로 자주 보게 될 것 같네요.” 하연은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슬기는 긴장한 듯 표정을 굳혔다. 조금 전 하연의 태도는 부드러웠지만, 압도적인 위압감을 느꼈다.식당을 나선 하연은 빠르게 걸었고, 정태훈은 바로 뒤를 따랐다. “정말 그 땅을 포기하는 건가요? 우리에게 더 나은 선택지가 있나요? B시에서는 빠르게 결정을 내리라고 계속 재촉하고 있어요.” 하연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곁눈질로 문 앞에 멈춰 있는 아스톤 마틴을 보았다. 부상혁의 차였다. 그 남자의 뒷모습은 이미 골목 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그 순간마저도 찰나처럼 지나갔다.“F국은 내가 잘 아는 곳이야. 대학 때 친했던 동창이 있는데, 지금도 토지 개발 관련 일을 하고 있어.” 그녀는 시선을 거두고 차에 타서 마음을 가라앉혔다. 상혁이 들어간 것이 슬기를 만나기 위한 건지 아닌지 하연은 알 수 없으며, 또한 자신에게 승산이 없을까 봐 두려웠다.3층, 상혁은 회의실로 들어가기 전에 부하의 보고를 들었다. “최 사장님이 주 대표님의 거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상혁의 표정이 살짝 누그러졌다. “사람들은 다 왔나?” “예, 이사회 이사 세 분이 안에 계십니다.” 상혁이 문을 열려고 할 때, 부하가 상혁을 막고 한마디 덧붙였다. “정규인 사장님도 안에 계십니다.” 정규인은 사업이 철회된 후 F국에 머물면서 상혁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부남준이 부씨 가문으로 돌아온 건 상혁에게 큰 충격이었다. 아직까지 상혁도 여전히 남준이 얼마나 많은 지지 세력을 가지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고, 심지어 부건국은 이미 부남준의 편에 섰을 가능성이 컸다....다음 날, 하연은 서여은 도움으로 대학 동창인 조승원과 만날 수 있었다. 하연과 승원의 대화는 아
역시 사업가는 말솜씨가 뛰어났다. 주슬기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고, 돌아서는 순간 하연과 눈이 마주쳤는데,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침착하게 하연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연도 가볍게 답례했다. 그제야 설도진은 상황을 파악한 듯 급히 하연의 방으로 들어왔다. “정말 죄송합니다. 원래는 시간 맞춰 최 사장님을 뵈어야 했는데, 중간에 주 대표님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렇게 늦었습니다...” 정태훈이 한쪽에서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 “설 사장님, 이건 너무 하시는 것 아닙니까? 분명 DS그룹에서 먼저 초대장을 보냈습니다.” 하연이 손을 들어 정태훈의 말을 가로막았다. “설 사장님, 저도 직설적으로 말씀드리죠. 남산 그 땅에 대해서...” “이미 ZT그룹이 매입했습니다.” 하연이 눈을 들어 설도진을 쳐다보자, 그의 눈에 담긴 강렬한 시선에 설도진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설 사장님, 저희와 이미 의향서를 작성했지 않습니까?” “알고 있습니다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 땅의 원래 소유권은 ZT그룹에 있었습니다. 제가 잠시 그 땅을 소유하고 있었을 뿐인데, 이제 ZT그룹에서 다시 가져가겠다고 하니 거절할 수 없었죠.” 설 사장은 술 냄새를 풍기며 안타까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ZT그룹은 저에게 큰 은혜를 준 곳이기도 해서요.” 의향서 위반에 따른 위약금은 ZT그룹이 지불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연은 상황을 이해하고 금세 냉정을 되찾았다. “다시 협상할 여지는 없는 건가요?” “계약은 이미 체결된 상태입니다. 최 사장님께서 정말 그 땅이 필요하시다면, 주 대표님과 직접 협의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주슬기.’하연은 눈을 감았다. “제가 일부러 땅을 빼앗으려던 건 아닙니다. 그 땅이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제 친척 회사에서 그 땅을 원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방 안에서 두 여자가 마주 앉아 있었다. 슬기는 핸드폰을 내밀었다. 화면에는 저번에 서여은이 취소했던 보도에서 나온
남준은 다른 차에서 내리며 당당한 모습으로 하연의 시선을 발견하고는 웃으며 다가왔다. “최하연 씨, 남을 몰래 엿듣는 게 그렇게 재미있어? 좋은 습관은 아닌데.” 하연의 속은 이미 분노로 가득 찼고, 남준을 노려보며 말했다. “너 일부러 그랬지? 오늘 같은 날을 골라서, 그 사람을 일부러 자극하려고.” 남준은 딱히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바퀴벌레다!” 하연은 깜짝 놀라 벌떡 뛰어올랐다. “어디?” 발을 제대로 디디지 못한 하연은 그대로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고, 고통에 얼굴을 찡그렸다. “너...!” 남준은 그 광경을 보고 크게 웃으며, 마치 세상에서 가장 웃긴 장면을 본 듯했다. 그는 손을 흔들며 자리를 떠났다. ...오후가 되어, 하연은 부씨 가문 본가에서 일찍 떠났다. 집에 도착하니 최하민이 이미 돌아와 있었다. 하연이 급하게 들어오는 것을 본 하민은 상황을 대충 짐작한 듯 말했다. “할아버지께서 네가 부씨 가문 본가에 갔다고 하시던데, 어떻게 됐어? 성과가 있었어?” 하연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말했다. “부남준이 부씨 가문으로 정식으로 돌아왔어요. 이제부터 사람들은 부씨 가문에 장남뿐만 아니라 차남도 있다고 이야기하게 될 거예요.” 하연이 직접 목격한 일이었고, 외부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정보였다. 하민은 이 말을 듣고 놀란 듯 물었다. “부남준?” “정말 이해할 수 없어요. 사생아는 외부에서 흠으로 여겨질 텐데, 왜 동건 삼촌은 부남준을 굳이 부씨 가문으로 돌아오게 했을까요? 일부러 큰아들에게 압박을 주려는 걸까요?” 하연은 화가 나서 물을 세 잔이나 마셨다. 지금까지 남준의 존재는 외부에서 언급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떳떳하게 정식 신분을 가지게 된 것이다. “동건 삼촌도 역시 균형의 중요성을 잘 아시는군.” 하민은 다리를 꼬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오빠, 그게 무슨 뜻이에요?” “두 아들이 모두 이렇게
누군가가 가장 먼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묘지 주변에 이내 듬성듬성 박수 소하연 울려 퍼졌다. 묘지 앞에서 이런 선언을 한다는 것은 남준의 차남의 지위를 진정으로 인정한 것과 같았다. 부동건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은 채,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남준아, 앞으로 나와라.” 남준은 그렇게 모든 이들의 시선을 받으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상혁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형님, 우리 다시 만나네요.” 남준은 모자를 벗고 상혁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적절한 미소를 지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 속에는 경악, 놀라움, 그리고 다양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20년이 넘도록 남준은 부씨 가문에 정식으로 입적되지 않았는데, 오늘 같은 중요한 행사에서 갑자기 정식으로 받아들여지다니, 믿기 힘든 일이었다. 상혁이 오늘 공식적으로 부씨 가문의 주인이 되었지만, 남준의 복귀는 부씨 가문의 구조에 큰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하연은 남준과 나란히 서 있다가 그가 떠나자마자 몸의 균형을 잃고 거의 넘어질 뻔했다. 그녀는 등에서 한기가 느껴지며,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상혁만을 주시했다. 상혁은 바람 속에서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 표정은 변함없이 평온해 보였고, 심지어 손을 내밀며 말했다. “남준아, 축하한다.” “형님께서도 축하드립니다.” 남준은 상혁에게 향을 건네며 말했다. “우리 두 형제가 드디어 함께 조상님께 한 번 향을 올릴 기회를 가지게 되었으니, 하늘에 계신 조상님들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부씨 가문의 남자들은 모두 당당한 자세로 의기양양하게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네가 너희 어머니와 고생하며 계획한 끝에 이루어진 일이구나.” 두 번째로 고개를 숙였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 무슨 계략이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저는 분명 형님을 충심으로 보좌하며 부씨 가문이 순탄히 나아가도록 힘쓸 것입니다.” 세 번째로 고개를 숙였다. “잘 부탁하
다음 날. 부씨 가문 전 가족은 산으로 올라가 조상을 기리기 위해 긴 행렬을 이루었다. 차량이 10미터 간격으로 줄지어 서서 장관을 이뤘다. 부상혁과 부동건의 차는 맨 앞에 있었고, 하연은 조진숙과 같은 차에 탔다. 산 정상에 있는 저택에 도착했을 때, 조진숙은 바쁜 일로 먼저 자리를 떴고, 가정부에게 하연을 부축하라고 지시했다. 하연의 걸음은 느려서 자연스럽게 대열의 맨 뒤로 처졌다. “물 한 잔 마시고 싶어요.” 하연이 가정부에게 말했다. 가정부가 물을 가지러 가려는 순간, 누군가의 팔이 가로막으며 물병이 하연 앞에 나타났다. “내가 대신 도와줄게.” 부남준이었다. 그는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느릿느릿 걸으며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었다. 하연은 물을 받지 않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냥 목마르게 있을래.” “지금 산에 올라가고 있는데, 묘지까지 5킬로미터 남았어. 아주머니가 물을 가지러 돌아갔다가 오려면 30분이 걸릴 텐데, 정말로 목마르게 있을 거야?” 남준은 차분하면서도 날카롭게 하연의 성격을 꿰뚫었다. 하연은 눈을 감으며 상황을 잠시 고민한 후, 결국 물을 받아들였다. 상업적인 이익을 중요시하는 자신의 성격이 싫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남준이 조용히 가정부에게 물러가라고 눈짓한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그는 직접 하연의 팔을 잡고 부축하며 앞을 향해 걸었다. “그 사람이 너에게 무심한데, 너는 왜 스스로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거야? 최씨 가문의 딸이 이 정도밖에 안 되냐?” 하연은 물을 다 마시고 나서 기세가 오른 듯 말했다. “네가 상관할 바 아니야. 꺼져.” 남준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래, 나보고 꺼지라 할 수 있겠지. 하지만 부상혁한테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남준은 언제나 이간질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하연은 더 이상 말하지 않으려 했다. “너는 왜 맨 뒤에 걷고 있어?” “피곤해서.” “대접받지 못하니까 그런 거겠지.” 남준
부건국도 상혁이 자신에게 경고한 것이라는 걸 알아챘다. ‘뭐라고? 최씨 가문의 지원이 필요 없다는 게 정말 진심일까? 상혁 이 녀석, 정말 DL그룹 전체를 자기 손에 넣을 생각인 걸까? 나를 포함한 나머지 사람들은 상혁의 계획 속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존재란 말인가? 상혁은 우리를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것처럼 보이네!!’“상혁아, 젊은 사람이 야망을 가지는 건 좋다. 하지만 너무 자만하지는 말아라. DL그룹의 이사회에 남아 있는 7명의 이사는 절대로 쉽게 그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 아니다.” 부건국은 이 말을 남기고 화가 난 듯 등을 돌려 나가버렸다. 원신민은 부건국이 떠나는 것을 지켜보다가, 방 안으로 돌아서서 한 번 더 눈을 돌렸다. 밝은 조명 아래, 분위기는 여전히 팽팽했다. 하연은 상혁을 등진 채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았다. 상혁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무언가 말하려던 찰나, 하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부상혁 씨.” 그는 입술을 꾹 다물고 짧게 대답했다. “응.” 하연은 여전히 그를 등진 채 말했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긴장감이 느껴졌다. “DL그룹과 부씨 가문이 지금 위기에 처한 건 사실이에요. 당신은 또 나를 보호하려고, 나를 이 일에서 빼려는 거죠? 예전처럼... 그렇죠?” 그녀의 말은 상혁에게 뜻밖이었다. 예전의 하연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이미 화를 내며 문을 박차고 나갔을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차분하게 반응하는 하연을 보며 좀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올 뻔했다. “최하연...” “나도 이제는 다 이해해요. 외부적으로는 우리가 헤어진 것처럼 보이는 게 나와 당신을 모두 지키는 방법이죠. 상업적인 전략인 거, 나도 잘 알고 있어요.” 하연이 웃으며 몸을 돌렸다. 그 얼굴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듯한 표정이 서려 있었다. “솔직히 인정할게요, 내 요리 실력이 예전 같지 않네요. 다음엔 더 잘 만들어서 다시 해줄게요.” 상혁은 하연의 얼굴에서 미세한 슬픔을 발견했지만, 하연은 그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