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에 내포된 의미가 너무 많았다. 심지어 사람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상혁이 앞으로 두 걸음 나아가 하연이 집어 든 술잔을 가볍게 빼앗아 왔다. “술을 많이 마시면 몸이 안 좋아져. 주 회장님이 도리를 지키지 않는 사람도 아니고.”주현빈이 얼떨떨해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최 사장님. 그만 마셔요.”“이따가 끝나면 나랑 같이 가자. 할 말이 있어.”대중 앞에서 상혁의 태도는 이미 두 사람이 보통 친구 이상이라는 걸 암시햇다. 하지만 하연은 그런 상혁과 대화도 섞고 싶지 않아 붉게 물든 얼굴을 돌리며 말했다.“안돼요.하연의 대답에 만족한 상혁이 하연의 술잔을 단숨에 비우고 말했다. “여러분께 사죄드립니다. 중요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가겠습니다.”당연히 아무도 난감하게 하려 하지 않았다다만 사람이 떠난 후 룸 안이 갑자기 떠들썩해졌다.“최 사장님이 FL 그룹의 부 대표님과 최 사장과 이런 관계 일 줄은 몰랐네요.”“곧 좋은 소식이 들려오겠는데요?”“결혼식에 축하주 한 잔 얻어먹을 수 있을까요?”‘이게 다 무슨 소리지?’ 하연이 말했다. “저희 두 가문이 오랜 친구 사이라서 그래요. 부 대표님은 촌수로는 오빠예요.”하연의 설명에 설득력이 없어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또다시 웃기 시작했다.후속 협력을 확인한 후에야 이 식사는 마침내 끝났다.그리고 상혁의 등장으로 최하연의 집중력이 약간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가기 전에 주현빈은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아야 걸을 수 있었다. “최 사장님, 저는 평생 큰 약속을 한 적이 없어요. 한번 말하면 반드시 그것을 실현할 거예요! 제 말을 들어보세요, JJ 그룹과 협력하면 당신을 지지 않을 거예요.”하연은 마음이 따뜻해져 주현빈의 비서에게 당부했다. “잘 모셔다드려요.”하연은 식당 입구에 서서 태훈에게 명령을 내렸다. “방금 레스토랑에서 말한 몇 가지 사항을 이행해.”태훈이 응답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태훈이 떠난 지 얼마되지 않
상혁이 말을 마치고 하연을 한번 보았는데 무슨 뜻인지는 말을 아꼈다. 하연은 안전벨트를 꽉 쥐고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거예요?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에요?”“네 옆에 태훈 밖에 없는데 술을 마시게 될까 봐 걱정했어.”“주 회장님은 오빠가 소개한 사람이잔항요. 혹시 어떤 사람인지도 몰라요?”“주 회장님은 남자다운 분이라 여자를 난처하게 하지 않아.”“그런데 왜...”“네가 보고 싶어서”상혁이 다시 한번 하연을 힐끗 쳐다봤다.“이 대답을 받아들일 수 있겠어?”뜻밖의 말에 하연은 어안이벙벙해졌다. “어제 금방 만났잖아요.”“어떤 사람은 한번 만나는 거로 부족하지.”백미러를 한번 훑어본 상혁은 번화한 시내를 벗어나자 바로 속도를 늦춘 후 길가에 차를 세웠다. “왜 멈췄어요?”“올 때 보니까 앞에 교통사고가 났더라고. 아직 현장 정리가 안돼서 좀 더 기다리다 가는 게 낫겠어.”하연의 차 안에 있는 글러브 박스를 열어보니 안에는 여자 담배 한 갑과 모란 한 갑뿐이였다. 그때 하연이 상혁의 손을 막으며 말했다.“이 담배는 연해서 필 수 없을 거예요”“그래도 시도해 보고 싶은데?”상혁이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고 말했다. “담뱃불 좀 붙여줘, 하연아.”어두컴컴한 등불 아래 상혁의 두 눈은 맑고 깨끗하여 마음까지 들여다볼 수 있었다.하연은 가슴이 떨려 얼른 라이터를 꺼내 켰다. 순간 탈칵 소리와 함께 불꽃이 두 사람의 얼굴을 밝혔다.“G국에 있을 때만 해도 담배를 못 피우더니 언제 배운 거야?”“B시에서 아무도 저신경 쓰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배우게 됐어요.”하연이 상혁에게 불을 붙여준 후 라이터를 던지고 나니 하연은 자연스럽게 한씨 저택에 있을 때 일이 생각났다. 그때 하연은 한씨 집안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괴롭힘을 당했는데, 서준은 상관도 하지 않자 슬픔에 빠져 담배를 배우게 되었다.상혁은 희뿌연 연기 속에서 담배를 한 모금 깊게 들이마셨다. 하지만 확실히 하연의 말 대로 너무 싱겁고 맛이
하연은 그날 저녁에 돌아가 채팅방에서 일의 내막을 대충 이야기했다.“이치대로라면, 우리 양어머니와 양아버지의 건강은 매우 좋으시니 상혁 오빠도 건강 문제가 있을 리가 없지 않나?”하연이 매우 서글픈 모습으로 큰 침대에 누워있었다.그때 여은이 첫 번째로 답장이 왔다. [서여은: 웃겨 죽겠네. 너는 어떻게 상혁 오빠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장담해?][정예나: 너 미쳤어? 전 세계 남자들이 다 문제가 있다고 해도 상혁 오빠는 문제없어.][최하연: 네가 어떻게 알아?][정예나: 딱 봐도 알아. 거짓말하면 내가 한서준의 아들이야.] 하연이 참지 못하고 피식 웃더니 연신 웃는 것처럼 ‘하하하’ 여러 개를 보냈다.[신가흔: 근데 너 한서준 진짜 포기한 거지?]타자를 하던 하연의 손이 잠시 멈추더니 뭔가를 생각해 본 후 진심을 말해 줬다.[최하운: 극혐해.] 보통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게 진짜로 관심이 없는 게 아닐 수도 있지만 혐오라는 단어를 쓰면 그것은 바로 진정 포기한다는 뜻이다. 세 사람은 화제를 돌려 이야기를 나누다가 하연은 불현듯 무엇이 떠 올랐는지 문자를 보냈다.[크리스마스에 DS 그룹은 반드시 한몫 챙겨야 해. 그러다가 때가 되면 좀 거물급 브랜드가 필요하니까 너희들에게 부탁 좀 할게.] 그건 당연히 문제될 거 없었다. 정예나가 아예 음성 메시지를 보내왔다.“이것은 선녀가 인간계에 내려가길 원하는 거잖아. 사치품은 라이브 방송에서 구매력이 떨어질텐데.”하연이 하는 수 없이 말했다.“당연히 저가 제품을 위주로 하고 사치품은 제일 마지막에 방송할 거야. 너희들의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을 거야.”[신가흔: 전폭적으로 지지할게.] [서여은: 그럼 난 너를 도와 여론을 조성할게. 필경 DS그룹이 좀 더 친민적인 서비스를 한다는 소식은 외부에서도 듣기 좋아하는 소식일거야.] 하연이 웃으며 말했다.“돈으로 안 되는 게 어디 있겠어?”하연은 빠르게 움직여 이튿날부터 품질 관리를 맡았다. 그러다가 다른 요 각 라이브방송을
하연의 미소가 굳어졌다.“정 비서, 가자.”서준은 제자리에 서서 하연의 날씬한 뒷모습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동후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한 사장님, 최하연 말이 맞는 것 같아요, JJ 그룹이 도박할 만한 가치가 있어요.”서준은 짜증을 내며 건물에 있는 그룹 로고를 보았다.“가치가 있다는 걸 왜 모르겠어, 하지만 다 도박이야. 만약 지면 하연은.”솔직히 걱정되었다. 동후는 입을 오물거리며 그 말을 참고 있었다.‘아무튼 도와주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져도 상관 없잖아.’“회의가 곧 시작 돼.”서준은 앞으로 다가갔다.“임소연은 요즘 뭐 하고 있어?”“건설 현장에 뛰어들고 있어요. FL그룹의 이 회장님과도 약속을 잡았어요. 임성재 쪽에서도 경계를 풀지 않았어요. 최하연과 싸울 작정을 한 것 같아요.”서준은 피식 웃으며 뭔가가 떠올랐다.“부상혁은?”“지난 며칠 동안 B시에 자주 들락거렸어요. 목적지가 모두 외국이라 FL그룹 내부에서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몰라요.”“잘 지켜봐.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보고해.”현빈의 사무실에서.“해외시장?”현빈은 하연의 말을 듣자 사레가 들었다.“네, 아직 크리스마스가 두 달이나 남았어요. 모든 플랫폼이 준비하고 있어요. 하지만 JJ 그룹만이 해외시장을 개척했어요. 그래서 이 기회에 라이브 커머스를 확장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하연은 침착하게 말했다. 아마도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국내 크리스마스 문화는 이미 수년을 지나갔다. 자원은 이미 거의 다 나뉘어서 소모되었다. JJ 그룹에만 의존해 업적을 완성하는 건 자신이 없었다. 현빈은 오랫동안 피가 끓는 것을 느끼지 못해 흥미진진하다고 느꼈다.“너무 서둘러. 두 달에 할 수 없어.”하연은 아쉬움이 보였다.“두달 동안 DS 그룹은 최선을 다해 JJ 그룹을 협조할 거예요. 필요한 게 있으시면 우리와 협력해도 되요.”현빈은 잠시 생각했다.“비록 해외에 성공적으로 진출했지만, 해외 정부는 외국 앱에 매우 저항적이야.
사무실을 나서자 기태는 흥분했다.“최 사장님, 주현빈이 동의할 거라고 어떻게 알았어요? 일부러 가격을 높게 책정했네요.”하연은 당당하게 걸었다.“해외시장은 JJ 그룹의 상처야. 누군가 도움을 줄 사람이 절실히 필요했기에 반드시 동의할 거야.”“하지만 JJ 그룹의 일부분을 얻는 것만으로도 이미 큰 이익이야.”“최 사장님, JJ 그룹에 그렇게 자신이 있어요.”하연은 턱을 들었다.“응, 맞아.”이론적 지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항상 열정적이지만, 막상 하면 조금 지치기도 한다. 하연은 바로 상혁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갑자기 상혁이 연락이 안 되면 피터에게 연락한다면 된다는 게 생각이 났다.하연은 급히 가방에서 명함을 찾아 전화를 걸었다. 번호가 속한 곳은 F 국이었다.[최하연 씨.]피터는 바로 받았다.“피터, 부 대표님은요? 연락이 안 돼요.”[도련님께서 아마 자고 있을 거예요. 깨어나시면 전화하라고 할게요.]“낮에 자고 있어요?”[어젯밤 회식이 늦었어요.]하연은 의심을 했고, 상혁은 잠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그럼 깨어나면 바로 전화하라고 해요.”피터가 동의하자 전화를 끊었다.JJ 그룹의 가장 큰 문제는 관련 해외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상혁을 연락하지 못하자 하연은 고민을 하며 하민에게 전화를 했다. F 국은 저녁이었다. 하민은 전화를 받고 놀랐다.[하연아, 무슨 일이 있어?]하연은 민망해하며 일을 간단히 말했다. 하민은 잠시 침묵했다.[네 아이디어는 좋아. 하지만 해외에서 JJ 그룹을 거부하는 건 하루이틀이 아니야. 이럴 때 정부의 승인을 받기가 어려워.]“어려운 걸 알아서 오빠한테 부탁하잖아요. DS 본부가 F 국에서의 영향력으로 사정을 빌면 안 돼요?”하연은 불쌍하게 말했다.[그래도 되지만, 성의를 보이려면 네가 직접 와야 할 수 있어.]“그건 괜찮아요.”[준비해줄게.]“고마워요, 오빠. 오빠가 짱이에요!”가족 앞에서야 하연은 기댈 수 있었다. 전화를 끊고 하연은 의자를 뒤로
다음 날 하연의 배행에는 기태 외에 JJ 그룹 직원이 동행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까지 하연은 상혁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 JJ 직원 중 한 명은 여성이여 통찰력이 강했다.“최 사장님,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세요?”하연은 갑자기 뒤돌아보았다.“티나요?”“여자들의 생각은 얼굴에 쓰여 있어요.”비즈니스에서는 절대 안 되는 일이었다. 하연은 왜 자신이 점점 상혁의 생각에 끌려가는지 알 수 없었다. 하연은 애써 침착했다.“그거 친구를 걱정하고 있어요. 중요한 건 아니에요.”상대방은 웃기만 했다. 더 이상 질문을 이어가지 않았다. F 국에 착륙했고, 하민의 비서 민영이 직접 맞이했다.“하연 씨, 최 회장님께서 빠쁘셔서 특별히 10분을 비웠어요. VIP 대접실에 계세요.”기태는 JJ 그룹 사원을 안배하고 하연은 민정따라 하민을 만나러 갔다. 대접실에서 한민은 똑바로 앉아 문서를 넘기며 다가갈 수 없는 자세로 앉아있었다.“오빠!”하연은 달려가며 하민의 품에 안겼다.“보고 싶었어요!”하민의 차가운 표정에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B시의 이사인데 아직도 이렇게 무모해?”하연은 신나게 웃었다.“밖에서 무슨 신분이든, 영원히 오빠 동생이잖아요.”하민은 웃으며 금색 명함을 건넸다.“F 국의 이사 에릭이야. 오늘 회의를 마치면 30분의 자유 시간이 있어. 이 30분 안에 설득해야 해.”하연은 꽉 주며 말했다.“주소는요?”“내 사람이 데려다 줄 거야.”“고마워요, 오빠.”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는데 하연은 점점 이성적이어서 하민은 흐뭇했다.“피곤하게 하지 말고, 시간 되면 할아버지를 뵈러 가. 많이 보고 싶어해.”“물론이죠!”에릭을 설득하기 위해 하연과 직원들은 많은 준비를 했다. JJ 도 아이디어가 있어 자료도 준비되었다. 저녁이 되자 직원 두 명과 함께 출발했다. 차에서 상혁의 전화를 받았다. 상혁의 목소리는 쉬어있었고 마치 금방 깬 것 같았다.[하연아, 날 찾았어?]하연은 상혁의 목소리를 듣고 시름 놓았다.“상혁 오빠. 꽤
너무 갑작스러웠다. 하연의 머리속이 하얘지고 벽을 붙잡고 애써 침착했다.“원인은 먼저 따지지 말고, 바로 병원으로 가!”하연은 재빨리 밖으로 뛰어나와 귀급차를 따라 곧장 차를 몰았다. 하연은 보지 못했다. 부랴부랴하는 몸짓이 뒤에 있는 한 쌍의 창백한 눈에 들어갔다.“환자는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혈액 공급이 부족해요. 수혈이 필요해요. RH 음성 혈액형인 분이 있어요?”병원에 들어서자마자 하영은 한 간호사자 소리를 지르는 걸 보았다. 하연은 달려갔다.“어느 환자예요?”간호사는 가리켰다.“저분이요, 방금 들어온 환자!”에릭이었다. 하연은 손을 꽉 쥐었다. 우연인 건 하연이 RH 음성 혈액형이었다.“저, 저요. 저를 데려가서 피를 뽑아요!”기태는 가장 먼저 말렸다.“안 돼요, 사장님. 몸이 제일 중요해요!”하연은 기태의 손을 풀었다.“사람 목숨이 위태로워, 사람 구하는 게 중요해!”“하지만.”“피 좀 뽑는 건데, 죽지 않아!”하연은 간호사의 손을 잡았다.“저를 데려가요!”간호사는 급히 채혈 장소로 데려갔다.‘정말 착하네.’하연의 몸이 허약하여 피를 뽑자 얼굴이 창백해졌다. JJ 직원들 보기에도 마음이 아팠다.“사장님,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거예요.”하연은 거즈를 누르고 복도 의자에 앉았다. 얼마 지났는지 모르지만 드디어 수술이 끝났다. 의사는 마스크를 벋고 가족들에게 말했다.“무사해요.”가족들뿐만 아니라 하연도 숨을 돌렸다. 에릭은 수술실에서 밀려나와 병실로 갔다. 가족들은 몰려들었지만 아무도 하연을 보지 못했다. 묻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자 기태는 화가 나서 달려들었지만 하연이 막았다.“뭐하는 거야!”“그들이...”“네가 말하면 사람들이 우리가 호의로 협박할 거라고 생각할 뿐이야!”“그럼 아무말도 안 해요? 사장님, 사장님의 피는 소중해요.”하연은 침묵했다.“그래도 사람을 살렸으니, 그만한 가치가 있어.”“정말이야?”성숙하고 든든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하연은 의하해 하며 돌아서자, 재킷을 들고 사람들 사이
10분 후 병실에서 보호자가 나왔다.“최하연 씨, 들어오세요.”하연은 자료를 잊지 않고 챙겼다. 에릭은 이미 깨어났다. 병상에 누워 반쯤 눈을 뜨고 보았다. 부동건은 말했다.“하연아, 인사해.”하연은 허리를 굽혔다.“안녕하세요, 아저씨. 최하연이라고 합니다.”“당신을 알아요. 회의가 끝나면 만나보고 싶었어요.”“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아저씨만 무사하면 되요.”“중요하지 않아요?”“제 일에는 F 국 국민들의 주요 인물이 무사한 것이 가장 중요해요.”에릭의 엄숙한 얼굴에 웃음이 띄었고 부동건을 바라보았다.“동건아, 네 수양딸이 말을 참 잘하네!”부동건은 자랑스러워했다.“당연한 거예요.”“난 보답할 줄 아는 사람이에요. 저를 구했으니, 원하는 게 있엉?”단도직입적으로 하연은 자료를 잡았다.“원하는 걸 다 줄 수 있어요?”“전혀 숨기지 않네요.”“솔직히 말하면, 살려준 건 제 사심이 있었어요.”하연은 가볍게 말했다.“우리 속담에 호의를 베풀면 수없이 갚아야 한다는 말이 있어요. 제가 원하는 게 없으면 오히려 마음이 불편하실 거예요.”에릭은 말을 기다렸다.“그럼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고 서로를 안심시키는 게 좋아요.”인정이 거래에 있으면 모든 것이 잘 풀린다. 에릭은 고개를 끄덕였다.“원하는 게 뭐예요?”하연은 자료를 드렸다.“JJ 그룹의 해외 전자상거래의 계약이요.”에릭은 눈을 부릅뜨며 받지 않았다.“JJ 그룹이 포기를 하지 않네! 원하는 걸 줄 수가 없어요!”이건 국가 차원의 협상이었고, 여자가 이걸 바꾸고 싶어하는 건 꿈이었다. 하연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성공과 실패는 단 몇 분만에 이루어졌다.“알아요, JJ 그룹의 제일 큰 문제는 해외 대중의 정보 보안을 위협한다는 것이에요. 하지만 이 위험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떨까요?”“무슨 방법이 있어요?”“제가 해결하면 동의하실 건가요?”에릭은 하연을 노려보며 말을 하지 않았다.“은혜를 봐서 저에게 기회를 주세요. 곤란하게 하지 않을게요.”부동건은
상혁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살짝 웃음을 지었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검진을 마친 뒤, 하연은 선명한 초음파 사진을 손에 들고 있었다. 사진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손끝으로 사진 속 동그란 그림을 가리켰다. “여기 봐봐요. 이게 우리 아기래요.” 목소리엔 설렘과 떨림이 그대로 묻어났다. 상혁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하연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눈엔 이미 감동이 차올라 있었다. 상혁은 조심스레 하연의 아랫배에 손을 얹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이 순간... 난 정말 너무 행복해.” ‘네가 내 옆에 있고, 우리 아이가 이렇게 자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야.’ 하연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남자아기일까요, 여자아기일까요?” 그녀의 눈빛에는 이미 사랑스러운 미래가 그려지고 있었다. 상혁은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상관없어.” 하연은 고개를 살짝 돌려 상혁을 바라봤다. 그 눈동자엔 별빛이 머물러 있는 듯 반짝였다. “그래요... 건강하게만 태어나면... 그걸로 충분해요.”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손을 맞잡았고, 서로의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따뜻함을 느꼈다. 그 순간, 상혁의 주머니 속 핸드폰이 진동했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하곤 순간 눈빛이 깊어졌다. 화면엔 낯익은 이름이 선명히 떠 있었다. [부동건.]‘이 타이밍에...?’ ‘설마 무슨 일 생긴 건가?’ 지난 연회 이후, 부동건과는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의 파장이 얼마나 컸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송혜선과 조봉규. 그 두 사람 때문에 무너진 자존심. 그리고 결국, 부동건은 송혜선을 아이와 함께 본가에서 내쫓았다는 소문까지 들려왔다. 하연이 조용히 말했다. “받아봐요. 무슨 일일 수도 있으니까.” 상혁은 하연의 손등을 가볍게 토닥이고, 그녀를 옆에 있는 의자에 앉힌 후
부동건은 갑작스레 거칠게 기침을 터뜨렸다. “컥”‘피 맛...?’ 목 안에서 치밀어 오르는 피비린내를 억지로 삼켰다. 손등에 핏줄이 선명히 드러나고, 이성의 끈은 이미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부동건의 시선이 천천히 송혜선과 조봉규를 향했다. ‘죽여버리고 싶다.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너희들... 너희들...” 부동건의 입술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송혜선은 극도의 공포에 휩싸였다. ‘이건 아니야... 이렇게 끝나면 안 돼...’ 그녀는 급히 앞으로 다가가 부동건의 팔을 붙잡았다. “회장님... 우리, 조 선생님이랑 그냥 산후 회복 얘기하던 중이었어요. 진짜예요, 저희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 부동건의 손이 송혜선의 뺨을 후려쳤다. 짝! 순간 정적. 강하게 내리친 손바닥 소리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숨을 멈춘 듯 조용해졌다. 송혜선의 얼굴 한쪽이 순식간에 붉게 부어올랐다. 눈가가 덜덜 떨리며, 눈물도 같이 맺혔다. “이 천하의... 배은망덕 같은 것. 내가 너를 어떻게 믿었는데... 감히 날 기만해?” 뒤에 서 있던 하객들 사이에서도 탄식이 흘러나왔다. “저 정도였어?” “저게 진짜였네... 소문이 아니고...” “...”송혜선은 뺨의 통증을 애써 무시한 채, 다시 붙잡았다. “회장님, 제발... 오해예요. 저희 그런 사이 아니에요. 저는... 당신뿐이었어요.” 그러나 부동건은 그 손마저 거칠게 뿌리쳤다. 그리고는 힘껏 송혜선의 복부를 발로 찼다. 퍽!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송혜선은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조봉규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아니야... 지금 나섰다간 나도 끝장이야.’ 한 걸음 다가가려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회... 회장님... 저희...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정말이에요...” 하지만 그 한마디가 기름을 붓는 꼴이 됐다. 부동건은 그대로 조
일 순간 충격의 정점이었다.부동건은 들고 있던 와인잔을 그대로 바닥에 내던졌다. 쨍그랑! 깨지는 소리와 동시에 모든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저... 저런 미친...!” 그는 화면을 가리키며, 얼굴을 붉힌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숨이 거칠게 턱 끝까지 차올랐다. ‘송혜선... 네가 감히!’ 주변 하객들도 이미 술렁이기 시작했다. “저게 진짜야?” “부 회장님 딸이... 아니라고?” “와... 이건 완전히 생각지도 못한 미친 패륜이야, 상상도 못 했어.” 오늘의 연회는 더없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이제 와선 최악의 스캔들 파티가 되어버렸다. ‘이 연회가... 전부 거짓된 일 때문에 생긴 일이란 말이야?’ ‘우리, 사기당한 거네. 다 같이.’ 그때 스크린이 멈췄고, 연회장 전체의 조명이 다시 환히 켜졌다. 하객들은 본능적으로 두리번거리며 부동건을 찾았다.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하지만 부동건은 아무런 대답 없이 어금니를 꽉 물고, 몸을 떨며 계단 쪽으로 향했다. 하객들은 그 뒤를 따라붙었다. ‘뭔가 일어나겠군...’ ‘이번엔 진짜 끝장이다.’ ...같은 시각, 2층 방 안. 송혜선은 조봉규의 손등을 다독이며 조용히 말했다. “조금만 참아. 며칠만 지나면 내가 다시 올게.” 조봉규는 싱긋 웃으며, 그녀의 허벅지를 장난스럽게 움켜쥐었다. “응. 기다릴게, 자기.”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 문이 거칠게 흔들렸고,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쾅!! “송혜선! 당장 안 나와?!” 송혜선의 온몸이 순간 얼어붙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조봉규의 팔을 꽉 잡았다. ‘망했다.’ “어떡해, 부동건이 올라왔어.” 두 사람은 당황하며 방 안을 둘러봤지만, 창문 하나 없는 좁은 방엔 도망칠 곳조차 없었다. ‘안 돼... 이렇게 들키면, 끝장이야. 정말 끝이야.’ 송혜선은 급하게 숨을 고르며 애써 이성을 붙잡으려 했다. ‘진정해. 침착해야 돼.
연회장 안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부동건은 손에 잔을 들고, 연신 들어오는 축하 인사에 밝은 표정으로 답하고 있었다. “회장님, 따님이 너무 예뻐요. 축하드립니다!” “아이고, 이런 경사는 자주 있어야죠!” ‘그래, 이 정도면 완벽하지. 오늘은 그 누구도 나를 흔들 수 없어.’ 그렇게 술이 한 잔, 두 잔 더해지며 연회장의 분위기도 점점 무르익고 있었다. 그때, 갑작스레 모든 조명이 꺼졌다. 탁! “어, 뭐야?” “불 꺼졌어! 왜 이래?” “아야, 누가 내 발 밟았어!” “...”순식간에 어둠이 덮친 연회장. 사람들의 놀란 목소리와 웅성거림이 퍼졌다. 잔을 들고 있던 부동건은 순간 정지된 듯 멈췄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당장 가서 확인해봐!” “네, 회장님!” 직원들이 급히 움직였고, 부동건은 진정시키려는 듯 손을 들고 말했다. “여러분, 당황하지 마시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전기 쪽 문제인 것 같습니다. 금방 복구됩니다.” 사람들은 잠시 멈춰 서서 어둠 속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그 순간, 연회장 한쪽 벽면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이 조용히 켜졌다. “위이잉...” 어둠 속에서 갑작스레 터진 화면의 빛에 모두가 눈을 찌푸리며 반사적으로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 빛이 익숙해질 무렵, 누군가가 터트린 외마디 감탄에, 시선이 일제히 스크린으로 향했다. “어... 저거 뭐야? 헉, 저게... 말이 돼?” 그리고, 그 스크린 안에 있는 건... 분명 두 남녀의 은밀한 장면이었다. 화면 속, 분명히 누군가를 알아본 듯한 목소리가 터졌다. “저 여자... 그분 아니야?” “옆에 있는 남자는...?” “헐, 이건 진짜 레전드다.” “아, 눈 버렸어. 이게 뭐야, 이게...”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순식간에 연회장은 도저히 되돌릴 수 없는 혼돈의 도가니로 빠져들고 있었다.사람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송혜선이 복도 입구에 막 다다랐을 때였다. 갑작스레 어디선가 튀어나온 그림자가 그녀를 뒤에서 껴안았다. “꺄악!” 놀란 송혜선은 반사적으로 비명을 질렀고, 누군가 재빨리 그녀의 입을 막았다. “나야! 나야, 혜선아.” 익숙한 목소리에 송혜선은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남자의 손을 떼어내며 차갑게 말했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이 사람, 지금 제정신인 거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어서 급히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송혜선은 그제야 숨을 돌리며, 낮은 목소리로 흘기듯 말했다.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미쳤어, 사람들 눈에 띄면 어쩌려고!!” 그 말엔 명백한 불만과 경계심이 섞여 있었다. 조봉규는 잠시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안 되는데...’ 그 순간의 긴장, 그리고 복잡한 감정이 두 사람 사이에 감돌았다.조봉규의 시선이 송혜선의 얼굴에서 천천히 내려앉았다. 송혜선은 산후라 그런가, 몸매는 훨씬 더 부드럽고 풍성해져 있었다. ‘이러니까, 잊으려고 해도... 더 생각이 나잖아.’ 그는 순간 충동적으로 송혜선의 팔을 붙잡았다. “잠깐만.” 당황한 송혜선이 눈을 부릅떴다. “뭐 하는 거야!! 지금...” 그러나 조봉규는 말없이 송혜선을 옆방으로 이끌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작게 ‘탁’ 하고 울렸다. 좁은 공간, 차오르는 침묵. 송혜선은 남자를 노려보며 벽에 등을 댔다. “정신 차려!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조봉규는 그녀를 바라보며 낮게 숨을 내쉬었다. “다들 홀에 있잖아. 아무도 몰라.” 남자의 말투엔 간절함과 조급함이 섞여 있었다. 이건 단순한 욕망이 아니었다. 그리움, 억눌림, 그리고 못다 한 말들. 그는 조심스럽게 송혜선의 턱선을 손끝으로 만지며 말했다. “혜선아... 나, 정말 많이 참았어.” ‘이 사람 또 이러네...’ 송혜선의 심장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분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정문 쪽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부동건이 고개를 돌리자, 최하연이 부상혁의 팔을 자연스럽게 끼고 등장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순간, 많은 이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쏠렸다. 잘생긴 남자와 우아한 여자의 조합. 누가 봐도 완벽한 한 쌍이었다. ‘딱 봐도 좋은 그림이야. 저 둘은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눈길을 끌어...’ “회장님, 부상혁 대표님은 정말 복도 많으십니다. 최씨 가문의 따님과 이렇게 잘 어울리는 커플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누군가의 말에 부동건의 표정이 확 풀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미묘하던 분위기가 사라지고, 부동건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피어났다. 부동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젊은 사람들이 서로 마음이 맞아 좋아하는 걸, 우리 어른들은 그저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줘야 하는 일일 뿐이지요.” “게다가 상대가 최씨 가문의 따님이라니, 정말 금상첨화가 아닙니까.” 부동건은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역시 상혁이다. 내 아들이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 상혁은 오늘 이 자리에서 당당히 아버지의 체면을 세워주고 있었다. 한편, 송혜선도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방금 전까지 얼굴에 띄웠던 미소는 점점 사라져 갔고, 그녀의 시선은 어느새 하연에게 향했다. 오늘의 하연은, 나무나 예쁘고... 아니, 그냥 눈이 부실 만큼 찬란했다. 그리고 또렷한 이목구비에 윤기 흐르는 머릿결, 화사하게 피어난 얼굴빛까지. 하연의 행복함이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듯했다. 송혜선의 눈빛이 서서히 차가워졌다. ‘정다영... 그년, 나를 속였어.’ 그동안 하연 쪽에서 뭔가 반응이 있을 줄 알고 기다려 왔다. 하지만 소식은커녕, 정다영조차 자취를 감췄다. ‘다영이 걔가 하연이에게 약 먹이는 계획이 분명 실패한 거야. 그렇지 않고 선 지금 저렇게 멀쩡한 얼굴로 서 있을 수는 없어.’ 이대로 배가 불러오면, 섣불리 손도 쓸 수 없게 된다. ‘
이 질문에 송혜선은 눈을 반짝이며 부동건을 바라봤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젠 나를 당당히 소개해 줄 때가 됐겠지.’ 오늘 이 자리에서, 그녀는 부동건의 정식 아내로서 인정받기를 바라고 있었다. “회장님, 말씀 좀 해보세요?” 조금은 성급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자, 주변의 시선도 하나둘 송혜선과 부동건을 향했다. 모두 속으로는 뻔히 알고 있었다. 부동건이 과연 예전 애인을 진짜로 정실로 앉혔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했다. 부동건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숨기거나 피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담백하게 말했다. “오 회장님, 이 사람은 제 딸의 어머니입니다.” 순간, 송혜선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딸의... 어머니?’ 손에 들고 있던 와인 잔이 살짝 흔들렸다. 금세 넘칠 듯한 와인, 애써 잡고 있는 감정. ‘지금... 이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억울함이 툭 하고 솟구쳤다. 심지어 손에 힘이 들어가며 하얗게 질린 손등이 떨렸다. 오병지는 단번에 눈치챘고, 싱긋 웃으며 더는 묻지 않았고, 대신 가볍게 말을 건넸다. “축하드립니다. 부 회장님, 여전히 복이 많으시네요.” 부동건은 공손하게 웃으며 송혜선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 손길엔 무언의 위로가 담겨 있었다. “아닙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나중에 저와 이 사람의 결혼식엔 꼭 오셔서 축배 들어주세요.” 그 말에 송혜선의 눈이 번쩍 뜨였다. ‘결혼식...?’ 순간, 가슴이 쿵 하고 울렸다. 이어서 고개를 들며 수줍게 웃었다. “회장님...” 부동건은 말없이 그녀를 더 가까이 끌어안았다. 더 이상의 말은 없었지만, 그 행동으로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주변의 사람들 시선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송혜선을 무시하거나 조롱하던 눈빛이, 지금은 선망과 부러움으로 가득했다. 결국, ‘부동건의 아내’라는 타이틀은 그 자체로 막대한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이름이었다.송혜선은 온
부지윤의 ‘한 달 잔치’는 그야말로 성대한 수준의 파티였다. 초대받은 인사들만 봐도, 그 위세가 느껴졌다. F국 재계의 실력자들, 정재계의 핵심 인물, 이름만 대면 아는 명문가 자제들이 대거 초청됐고, 심지어 부씨 가문 어른들에게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직접 청첩장을 보냈다. 이 정도면, 사실상 이 아이를 공식적으로 가문에 편입시키겠다는 의지나 다름없었다. 부동건이 이 아이에게 얼마나 애정을 집착하듯 쏟고 있는지, 이날 행사 하나로 증명되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동건은 스스로의 체면과 명예를 걸고, 딸을 세상에 내보이고 있었다. ...잔치 당일, 연회장은 유난히 붐볐다. 샹들리에의 조명이 화사하게 반짝였고, 고급스러움이 풍겨 나는 악단의 선율이 분위기를 감싸고 있었다. 송혜선은 산후조리를 마친 직후였지만, 여전히 그만의 풍채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예전보다 조금 살이 오른 듯했지만, 그 덕에 오히려 분위기가 더 너그러워 보였다. 그녀가 행사장에 들어서자, 평소 자주 어울리던 재벌가 부인들이 앞다투어 다가왔다. “혜선씨는 진짜 복이 많은 사람이에요. 그 고생 끝에 드디어 볕뜰날이 왔네요.” “부 회장님이 이렇게까지 챙기시는 거 보니까, 이제 정말 한 자리 하시겠어요.” “정말 이러다 조만간 ‘겹경사’ 나는 거 아니예요? 우리라도 미리 축하해줘야 하는 거야?” 송혜선은 그 소리에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얄미울 정도로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역시 사람은 자리가 높아야 대접 받는 거야.’ “지윤이는 회장님의 첫 딸이잖아요. 그러니까 귀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회장님이 우리 모녀를 절대 가볍게 보지 않으신다는 건, 여기 있는 분들도 느끼셨을 테고요.” 그 말에 다들 박수까지 치며 웃었다. “이제 우리도 호칭 바꿔야지, 사모님!” 누군가 먼저 그렇게 불렀고, 뒤이어 몇몇이 장난처럼 따라 불렀다. 송혜선은 그 말에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턱을 살짝 들며, 그 호칭이 제법 익숙
진윤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마침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부남준은 법을 무시하고, 사람을 죽였어요. 부씨 가문이 이 일에 개입한다면... 여론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감싸려 들면 들수록, 결국은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겠죠.” ‘이건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가문의 존망이 걸린 문제야.’ 맞은편 소파에 앉은 상혁은 다리를 꼬고, 한쪽 손으로 턱을 괸 채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의 눈빛엔 어떤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세속의 먼지 따윈 전혀 묻지 않은 사람처럼. 진윤의 말이 끝났지만, 상혁의 표정엔 미동 하나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부씨 가문은 항상 법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여왔습니다. 그건 변하지 않습니다, 여사님.” 그는 손짓으로 테이블 위를 가리켰다. 거기엔 작은 검은색 USB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 안에... 고나희 씨가 남긴 게 있습니다. 여사님께 드리라고 하더군요.” 순간, 진윤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숨이 턱 막히는 듯한 표정으로, USB를 바라봤다. “지금... 뭐라고 하셨죠?” 그녀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나희가... 뭔가를 남겼다고...?’ 사고는 너무도 갑작스러웠다. 딸의 마지막을 함께할 시간조차 없이, 그녀는 세상을 떠났고, 어떤 유언도, 한마디 말도 남기지 못한 줄 알았다. “나희... 그 애가... 무슨 말을 남겼다는 거예요...” 진윤은 입을 틀어막았다. 눈물은 이미 참을 수 없다는 듯 쏟아지려 하고 있었다. 상혁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다. “사람이 떠난 건 바꿀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남겨진 마음은, 누군가가 반드시 전해야죠.” 그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거운 공기를 뒤로한 채, 조용히 방을 나섰다. 잠시 후.룸 안에서 낮고, 억눌렀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희야...” 진윤은 USB를 손에 쥐고,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으로 울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