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을 나서자 기태는 흥분했다.“최 사장님, 주현빈이 동의할 거라고 어떻게 알았어요? 일부러 가격을 높게 책정했네요.”하연은 당당하게 걸었다.“해외시장은 JJ 그룹의 상처야. 누군가 도움을 줄 사람이 절실히 필요했기에 반드시 동의할 거야.”“하지만 JJ 그룹의 일부분을 얻는 것만으로도 이미 큰 이익이야.”“최 사장님, JJ 그룹에 그렇게 자신이 있어요.”하연은 턱을 들었다.“응, 맞아.”이론적 지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항상 열정적이지만, 막상 하면 조금 지치기도 한다. 하연은 바로 상혁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갑자기 상혁이 연락이 안 되면 피터에게 연락한다면 된다는 게 생각이 났다.하연은 급히 가방에서 명함을 찾아 전화를 걸었다. 번호가 속한 곳은 F 국이었다.[최하연 씨.]피터는 바로 받았다.“피터, 부 대표님은요? 연락이 안 돼요.”[도련님께서 아마 자고 있을 거예요. 깨어나시면 전화하라고 할게요.]“낮에 자고 있어요?”[어젯밤 회식이 늦었어요.]하연은 의심을 했고, 상혁은 잠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그럼 깨어나면 바로 전화하라고 해요.”피터가 동의하자 전화를 끊었다.JJ 그룹의 가장 큰 문제는 관련 해외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상혁을 연락하지 못하자 하연은 고민을 하며 하민에게 전화를 했다. F 국은 저녁이었다. 하민은 전화를 받고 놀랐다.[하연아, 무슨 일이 있어?]하연은 민망해하며 일을 간단히 말했다. 하민은 잠시 침묵했다.[네 아이디어는 좋아. 하지만 해외에서 JJ 그룹을 거부하는 건 하루이틀이 아니야. 이럴 때 정부의 승인을 받기가 어려워.]“어려운 걸 알아서 오빠한테 부탁하잖아요. DS 본부가 F 국에서의 영향력으로 사정을 빌면 안 돼요?”하연은 불쌍하게 말했다.[그래도 되지만, 성의를 보이려면 네가 직접 와야 할 수 있어.]“그건 괜찮아요.”[준비해줄게.]“고마워요, 오빠. 오빠가 짱이에요!”가족 앞에서야 하연은 기댈 수 있었다. 전화를 끊고 하연은 의자를 뒤로
다음 날 하연의 배행에는 기태 외에 JJ 그룹 직원이 동행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까지 하연은 상혁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 JJ 직원 중 한 명은 여성이여 통찰력이 강했다.“최 사장님,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세요?”하연은 갑자기 뒤돌아보았다.“티나요?”“여자들의 생각은 얼굴에 쓰여 있어요.”비즈니스에서는 절대 안 되는 일이었다. 하연은 왜 자신이 점점 상혁의 생각에 끌려가는지 알 수 없었다. 하연은 애써 침착했다.“그거 친구를 걱정하고 있어요. 중요한 건 아니에요.”상대방은 웃기만 했다. 더 이상 질문을 이어가지 않았다. F 국에 착륙했고, 하민의 비서 민영이 직접 맞이했다.“하연 씨, 최 회장님께서 빠쁘셔서 특별히 10분을 비웠어요. VIP 대접실에 계세요.”기태는 JJ 그룹 사원을 안배하고 하연은 민정따라 하민을 만나러 갔다. 대접실에서 한민은 똑바로 앉아 문서를 넘기며 다가갈 수 없는 자세로 앉아있었다.“오빠!”하연은 달려가며 하민의 품에 안겼다.“보고 싶었어요!”하민의 차가운 표정에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B시의 이사인데 아직도 이렇게 무모해?”하연은 신나게 웃었다.“밖에서 무슨 신분이든, 영원히 오빠 동생이잖아요.”하민은 웃으며 금색 명함을 건넸다.“F 국의 이사 에릭이야. 오늘 회의를 마치면 30분의 자유 시간이 있어. 이 30분 안에 설득해야 해.”하연은 꽉 주며 말했다.“주소는요?”“내 사람이 데려다 줄 거야.”“고마워요, 오빠.”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는데 하연은 점점 이성적이어서 하민은 흐뭇했다.“피곤하게 하지 말고, 시간 되면 할아버지를 뵈러 가. 많이 보고 싶어해.”“물론이죠!”에릭을 설득하기 위해 하연과 직원들은 많은 준비를 했다. JJ 도 아이디어가 있어 자료도 준비되었다. 저녁이 되자 직원 두 명과 함께 출발했다. 차에서 상혁의 전화를 받았다. 상혁의 목소리는 쉬어있었고 마치 금방 깬 것 같았다.[하연아, 날 찾았어?]하연은 상혁의 목소리를 듣고 시름 놓았다.“상혁 오빠. 꽤
너무 갑작스러웠다. 하연의 머리속이 하얘지고 벽을 붙잡고 애써 침착했다.“원인은 먼저 따지지 말고, 바로 병원으로 가!”하연은 재빨리 밖으로 뛰어나와 귀급차를 따라 곧장 차를 몰았다. 하연은 보지 못했다. 부랴부랴하는 몸짓이 뒤에 있는 한 쌍의 창백한 눈에 들어갔다.“환자는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혈액 공급이 부족해요. 수혈이 필요해요. RH 음성 혈액형인 분이 있어요?”병원에 들어서자마자 하영은 한 간호사자 소리를 지르는 걸 보았다. 하연은 달려갔다.“어느 환자예요?”간호사는 가리켰다.“저분이요, 방금 들어온 환자!”에릭이었다. 하연은 손을 꽉 쥐었다. 우연인 건 하연이 RH 음성 혈액형이었다.“저, 저요. 저를 데려가서 피를 뽑아요!”기태는 가장 먼저 말렸다.“안 돼요, 사장님. 몸이 제일 중요해요!”하연은 기태의 손을 풀었다.“사람 목숨이 위태로워, 사람 구하는 게 중요해!”“하지만.”“피 좀 뽑는 건데, 죽지 않아!”하연은 간호사의 손을 잡았다.“저를 데려가요!”간호사는 급히 채혈 장소로 데려갔다.‘정말 착하네.’하연의 몸이 허약하여 피를 뽑자 얼굴이 창백해졌다. JJ 직원들 보기에도 마음이 아팠다.“사장님,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거예요.”하연은 거즈를 누르고 복도 의자에 앉았다. 얼마 지났는지 모르지만 드디어 수술이 끝났다. 의사는 마스크를 벋고 가족들에게 말했다.“무사해요.”가족들뿐만 아니라 하연도 숨을 돌렸다. 에릭은 수술실에서 밀려나와 병실로 갔다. 가족들은 몰려들었지만 아무도 하연을 보지 못했다. 묻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자 기태는 화가 나서 달려들었지만 하연이 막았다.“뭐하는 거야!”“그들이...”“네가 말하면 사람들이 우리가 호의로 협박할 거라고 생각할 뿐이야!”“그럼 아무말도 안 해요? 사장님, 사장님의 피는 소중해요.”하연은 침묵했다.“그래도 사람을 살렸으니, 그만한 가치가 있어.”“정말이야?”성숙하고 든든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하연은 의하해 하며 돌아서자, 재킷을 들고 사람들 사이
10분 후 병실에서 보호자가 나왔다.“최하연 씨, 들어오세요.”하연은 자료를 잊지 않고 챙겼다. 에릭은 이미 깨어났다. 병상에 누워 반쯤 눈을 뜨고 보았다. 부동건은 말했다.“하연아, 인사해.”하연은 허리를 굽혔다.“안녕하세요, 아저씨. 최하연이라고 합니다.”“당신을 알아요. 회의가 끝나면 만나보고 싶었어요.”“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아저씨만 무사하면 되요.”“중요하지 않아요?”“제 일에는 F 국 국민들의 주요 인물이 무사한 것이 가장 중요해요.”에릭의 엄숙한 얼굴에 웃음이 띄었고 부동건을 바라보았다.“동건아, 네 수양딸이 말을 참 잘하네!”부동건은 자랑스러워했다.“당연한 거예요.”“난 보답할 줄 아는 사람이에요. 저를 구했으니, 원하는 게 있엉?”단도직입적으로 하연은 자료를 잡았다.“원하는 걸 다 줄 수 있어요?”“전혀 숨기지 않네요.”“솔직히 말하면, 살려준 건 제 사심이 있었어요.”하연은 가볍게 말했다.“우리 속담에 호의를 베풀면 수없이 갚아야 한다는 말이 있어요. 제가 원하는 게 없으면 오히려 마음이 불편하실 거예요.”에릭은 말을 기다렸다.“그럼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고 서로를 안심시키는 게 좋아요.”인정이 거래에 있으면 모든 것이 잘 풀린다. 에릭은 고개를 끄덕였다.“원하는 게 뭐예요?”하연은 자료를 드렸다.“JJ 그룹의 해외 전자상거래의 계약이요.”에릭은 눈을 부릅뜨며 받지 않았다.“JJ 그룹이 포기를 하지 않네! 원하는 걸 줄 수가 없어요!”이건 국가 차원의 협상이었고, 여자가 이걸 바꾸고 싶어하는 건 꿈이었다. 하연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성공과 실패는 단 몇 분만에 이루어졌다.“알아요, JJ 그룹의 제일 큰 문제는 해외 대중의 정보 보안을 위협한다는 것이에요. 하지만 이 위험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떨까요?”“무슨 방법이 있어요?”“제가 해결하면 동의하실 건가요?”에릭은 하연을 노려보며 말을 하지 않았다.“은혜를 봐서 저에게 기회를 주세요. 곤란하게 하지 않을게요.”부동건은
[왜 좋은 일이 아니야, JJ는 DS의 프로젝트예요. DS는 우리 최씨 가문의 그룹이고. 날 도와주는 건 최씨 가문을 돕는 거예요. 설마 최씨 가문의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요?]음성 메시지를 보내자 하경은 한참동안 답장이 없었다. 부동건은 웃으며 말했다.“네 둘째 오빠의 표정이 상상이 돼.”하연은 핸드폰을 들고 웃음을 터뜨렸다. 차안에서 이 각도로 부동건을 보니 상력의 엄숙함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아저씨, DL 그룹을 상혁 오빠에게 맡기지 않았어요? 왜 직접 오셨어요?”“왜인지는 네가 제일 잘 알잖아.”하연은 놀림을 당하며 민망했다. 상혁은 모든 신경을 FL그룹에 있어 DL 그룹을 경영할 틈이 없었다. 하연은 상혁대신 변명했다.“아저씨 때문에 상혁 오빠는 18살부터 DL를 맡았어요. 이제 쉬어야죠.”부동건은 웃으며 한숨을 쉬었다.“그 자식을 너무 오래 고생시켰어. 너무 미안해.”하연은 가슴이 두근거렸다.“상혁 오빠는 능력이 있어요.”“물질적으로 상혁 엄마와 단 한번도 미안한 적이 없어. 하지만 감정적으로 많은 빚을 졌어. 그 자식이 내성적이어서 진정한 감정을 보여주지 않아. 때로는 나도 잘모르겠어.”부동건은 이 말을 하며 우울해했다.“18살 때부터 우리에게 속마음을 얘기하지 않아. 비즈니스에서 카리스마가 넘쳐 만나는 사람마다 부 도련님이라고 해. 그후부터 부 사장님, 그리고 부 대표님까지 왔어. 도련님이라는 호칭은 친한 사람들만 불러.”하연은 넔을 잃고 들었다. 그동안의 고생이 느껴졌다.“하연아, 상혁에게 너무 미안해.”부동건이 갑자기 이 말을 하자 10살 늙은 것 같다. 하연은 왜 미안한지 묻지 않고 어른의 속마음을 존중했다. 조진숙의 집에 도착했다. 하연을 보자마자 조진숙은 신이났다.“하연아! 날 잊어버리지 않았네!”하연은 조진숙의 품에 안겼다.“제가 어떻게 이모를 잊겠어요. 너무 보고 싶어요.”조진숙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러나 뒤에 있는 부동건을 보자 표정이 변했다.“꺼져.”“진숙아.”“꺼져! 안
“상혁아, 너...”조진숙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하연을 보았다. 하연은 계단 위에 서 있는 남자와 눈을 맞추며 놀란 표정으로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상혁 오빠, 언제 왔어요?”상혁은 피곤했지만 지저분하지는 않았다. 방금 F 국에 도착한 건 아니었다. 상혁은 어이가 없어 손잡이에 기대어 웃었다.“하연아, 정말 인연이 있네. 이렇게 만날 수 있어?”“그런 말 하지 마세요.”하연은 화를 내며 다가갔다.“피터에게 전화할 때 이미 F 국에 있었죠?”상혁은 부인하지 않았다.“일이 있었어.”“제 차는요?”“우리 집에 있어.”“출국해도 몰고 오지 않았네요.”상혁은 하연의 살을 바라보며 눈빛이 깊어졌다.“다음 만남의 기회를 만들려고 했어.”순간 하연의 목이 빨개지며 뜨거웠다. 똑똑한 조진숙은 이 상황을 보자 물러서며 말을 하지 않았다.“몸은 나았어요?”하연은 나지막하게 물었다.“거의 나았어.”“안색이 안 좋아요.”상혁은 갑자기 손을 뻗어 하연의 목욕 타월를 잡았다. 하연은 굳어졌다.“상혁 오빠.”상혁의 소리는 매우 가까웠다.“옷깃이 헐렁하니 내가 묶어줄게.”남자 모델의 유혹을 당하니 하연은 피가 끓는 것이 느껴졌고 감히 움직일 수 없었다.“됐, 됐어요?”상혁은 동작을 멈추었다. 하연의 머리카락에서 떨어진 물이 상혁의 손등에 떨어져 용암보다 더 뜨거웠다.“최하연.”상혁의 목소리는 쉬었다. 하연도 부들부들 떨었다. 상혁은 나지막하게 말했다.“옷을 갈아입어. 이러는 건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 거야.”하연도 참지 못하고 돌아서서 문을 닫고 벽에 기대어 숨을 쉬었다.‘누구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거야!’하마터면 통제하지 못했다. 하연이 침착해지자 평범한 잠옷을 갈아입었다. 나갈 때 상혁은 이미 계단에 없었다. 가정부가 말했다.“부 도련님과 사모님이 서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하연은 손에 든 죽을 받았다.“제가 가져다줄게요.”서재 문은 반쯤 닫혀 있었다. 하연은 손을 들고 문을 밀려고 하는 순간 안에서 소리가 들렸다. 조
부씨 가문의 일에 하연은 외부인의 자세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나쁜 놈’부터 들었어요.”상혁은 웃었다.“솔직하네.”하연은 죽을 내려놓았다.“상혁 오빠. 야식이에요.”“네가 한 거야?”“이모님은 했어요.”확실히 솔직했다. 상혁은 두 입을 먹고 입맛이 없어 곁에 두었다.“뭐가 궁금해?”하연은 상혁의 뒤에 가서 어깨를 주물렀다.“이모와 아저씨가 우리를 키웠어요. 최씨 가문의 사람외에 아이는 오빠밖에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장남은 무슨 얘기예요.”힘이 딱 좋아서 상혁은 눈을 감았다.“그 당시 우리 아버지와 엄마가 왜 이혼했는지 기억나?”“이모와 아저씨는 늘 미운 정 고운 정 다 있잖아요. 그땐 홧김에 이혼했다고 했어요.”“그들의 지위로 쉽게 이혼할 수 없었어. 원칙적인 문제가 없었으면 이미 재혼했을 거야.”하연은 바로 깨달았다.‘그래, 몇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재혼하지 않았어.’“아저씨가 밖에서...”“술먹고 당했다고 했어. 진심은 아니라고 했어.”하연은 심호흡을 했다.“이모는 믿어요?”“네 생각에는?”조진숙의 성격으로 당연히 믿지 않았을 것이다.“둘째 아들은 나보다 둘살 어려. 하지만 엄청 악독해. 요몇년 이미 DL의 실권을 잡았어.”그래서 찾아오자 조진숙이 화를 낸 것이었다. 그래서 부동건이 미안하다고 한 것이었다. 하연은 몸을 숙여 상혁을 바라보았다.“오빠의 상처도...”하연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안쓰럽고 순진함이 가득했다. 상혁은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하연의 얼굴을 만졌다.“네가 걱정할까 봐 알려주지 않았어. 지금 네게 들켰는데, 일부러 숨기기 싫어.”“일찍 알려줬어야죠. 혼자 버티지말고.”하연은 화를 냈다.“이모는 제 친엄마와 같아요. 오빠는 제 친오빠에요. 오빠를 다치게 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상혁은 웃음이 터졌다.“네가 나설 차례가 아니야. 내가 해결할게.”“상혁 오빠.”하연은 상혁의 손을 꼭 잡았다.“수년 동안 많이 힘들었죠?”“힘들었었
조진숙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듯이 매우 당당했다.“M.E의 메인을 골라. 오후에 계약서를 작성해줄게.”하영은 깜짝 놀랐다.“DS의 위 미디어 진풀은 아직 확실하지 않아서 걱정이에요.”“안정되지 않아서 널 도와주려는 거야.”조진숙은 흐뭇해했다.“이모는 널 제일 믿어. 마음놓고 해. 크리스마스에 다른 플랫폼과 협력하지 않을 거야. 너한테만 해줄게. 자신감을 가져.”물론 너무 좋았다. DS에게 쓸 카드가 더 생겼다. 하연은 감동 받았다.“고마워요, 이모!”조진숙은 관리를 잘했다. 비록 50세이지만 30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눈가의 주름에서만 세월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하연은 조진숙을 보며 머뭇거렸다.“왜?”하연은 궁금한 것이 많았다. 밖의 여자도 궁금했다. 하지만 수년 동안 조진숙은 흔적을 낸 적이 없어 다른 사람에게 알리기 싫어하는 것 같아 묻지 않았다. 때로는 침묵이 위안이 되기도 했다.“이모, 이모가 우리 엄마예요. 어욱함을 당하게 하지 않을 거예요.”조진숙은 웃음을 터뜨리며 하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바보야.”하연은 늦으 오후가 되어서야 JJ에서 보낸 정보 보안 인증서의 팩스를 받았다.[하연아, 내가 이렇게 도와줬는데 어떻게 보답할 거야?]“돌아가서 밥 사드릴게요.”하연은 팩스를 보며 기뻐했다. 해빛이 쨍쨍한 마당에서 빙글빙글 돌았다.[밥만? 너무 부족하잖아. 다음엔 도와주지 않을 거야.]“도련님, 뭘 더 원해요? 절이라도 할까요?”[아니! 할아버지와 큰형이 알면 날 죽일 수도 있어.]하경은 살아남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하연은 다른 고민이 있었다.“오빠. 이 증명으로 에릭의 동의를 받을 수 있을까요?”하경은 그제야 정색했다.[밑에 법령을 봐. 국제보안정보부에만 해당되는 것이야. 이 도장이 있는데, 몰래 기뻐할 거야.]“그래요? 이렇게 간단하면 JJ도 이렇게 오래 머물지 않았겠죠.”하경은 전화 넘어 웃었다.[JJ는 할 수 없어. 증명을 받지 못해서야. 하지만 넌 해결할 수 있어. 왜인지
“그저 여자일 뿐인데, 너무 똑똑하면 손해만 볼 뿐이에요.” 남준이 허징인에게 다가가며, 몸을 숙여 그녀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여기까지 왔으니, 내가 원하는 걸 이제 줘야 하지 않겠어요?” 허징인은 차갑게 비웃으며 얼굴을 굳혔다. “뭐가 그렇게 겁나십니까, 상무님? 제가 약속을 어길까 봐요? 아니면... 그 물건들이 엉뚱한 사람 손에 들어갈까 봐요?” “그건 사모님이 그런 기회를 잡을 수 있을 때의 이야기죠.” 남준의 목소리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허징인은 이를 악물고 주먹을 꽉 쥐었고, 속으로는 분이 차올랐지만, 상황을 감안해 타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함부로 해서는 안 되겠어. 지금은 일단 물러서는 게 최선이야.’ “걱정하지 마세요, 상무님. 이미 약속한 이상, 전 제 말을 반드시 지킬 겁니다.” 허징인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며 남준과 눈을 맞췄다. “상무님도 본인의 약속을 지키길 바랍니다.” 남준은 가볍게 손을 펼치며 대답했다. “당연하죠.” 허징인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작전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제가 반은 먼저 드리고, 나머지는 우리가 안전한 곳에 도착하면 드릴게요.” “안 돼요!” 남준이 단호히 그 제안을 거절했다. “지금 사모님한테는 조건을 제시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 안 그래요?” 허징인은 눈을 감고 결연한 태도로 말했다. “그럼 차라리 지금 절 죽이세요. 하지만 제가 죽으면 그 물건들이 공개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알아두세요.” “엄마!” 곁에 있던 민찬이 울먹이며 그녀의 다리에 매달렸다. “엄마, 무서워요!” 허징인은 민찬을 꼭 안으며 남준을 노려보았다. ‘이 상황에서 물러서면 끝장이야. 적어도 내 아이는 지켜야 해.’ “상무님, 선택은 당신 몫입니다.” 남준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침묵했다. 남자의 눈빛은 한층 더 날카로워졌고, 어금니를 악물더니 잠시 후 말했다. “죽음도 불사하다니, 사모님의 배짱은 보통이 아니
집에 돌아온 하연은 좀처럼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침실 안. 은은한 조명이 켜진 방에서, 하연은 소파에 몸을 웅크린 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대표님...” 가정부가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들고 조심스레 부르며 방으로 들어왔다. 상혁은 문틈 사이로 방 안의 하연을 흘깃 바라보며 손으로 가정부를 막았다. “내가 할게요.” 가정부가 물러난 뒤, 상혁은 바로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벽에 기대어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때, 상혁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렸는데, 원신민에게서 온 메시지였다.그 내용은 간단했다. 하지만 상혁은 짧은 문장을 확인한 뒤, 입가에 가볍게 조소를 띄우며 휴대폰 화면을 껐다. 마치 모든 걸 손아귀에 쥐고 있는 사람의 태도였다. 그는 이내 천천히 방의 문을 열었다. “하연아.” 남자의 차분한 목소리에 하연은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상혁을 바라보며 조금 의아한 듯 물었다. “언제 들어왔어요?” 상혁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에 들고 있던 우유를 하연의 손에 쥐어주었다. “따뜻할 때 마셔.” 남자의 부드러운 말에 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곧 우유를 들고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 잠시 후, 컵이 바닥을 드러냈다. “잠깐 회사에 좀 다녀올게. 집에서 푹 쉬고 있어.” 상혁은 하연이가 들고 있던 유리잔을 받아들며 말했다. “이 밤중에요? 무슨 일 있는 거예요?” 하연은 살짝 의아해했다. “회사에 급한 일이 있어서. 아마 늦을 거야.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 남자는 고개를 숙여 하연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지금 이 순간이 난 참 행복해.” 상혁의 눈에는 하연이가 자신의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이 행복이 오래가길, 조금이라도 더 오래가길...’ 하연은 상혁의 목에 팔을 두르고 그의 품에 안기며 살짝 장난스럽게 말했다. “나도요. 정말 행복해
지석의 말이 끝나자마자, 상혁의 얼굴에 잠시 스치는 한 줄기 차가운 빛... 하지만 그것은 곧 부드러운 미소로 가려졌다. “지석 도련님 말씀대로, 형제간에는 서로 도와야 하는 법이죠.” “다만, 부씨 가문의 일을 굳이 외부인이 나설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만.” 상혁의 말에는 분명한 경고의 의미가 담겨 있었고, 그의 기운에 압도된 지석은 잠시 얼굴이 굳었다.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은 지석이 변명을 하려는 찰나, 슬기가 먼저 나섰다. “하연 씨, 여기 메뉴 중에서 어떤 게 제일 맛이 괜찮아요? 추천 좀 해주세요.” 슬기의 말에 하연은 조용히 상혁의 손등 위에 손을 올렸다. 둘의 시선이 교차하자, 상혁의 눈가에 웃음이 스쳤다. ‘지금 나를 걱정하는 거야? 하지만 너무 날 과소평가하는 거 아닌가?’ 별일도 아닌 걸로 걱정하는 하연을 안심시키려는 듯, 상혁은 눈빛으로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하연이 그제야 안심이 되어 바로 슬기에게 메뉴를 추천했다.“오리지널 맛도 괜찮고, 여러가지가 섞인 맛도 좋을 것 같아요. 둘 다 드셔보세요.” “그럼 두 가지 맛으로 각각 한 그릇씩 주세요!” 슬기는 메뉴를 탁 닫으며 밝게 말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지석은 더 이상 자리를 지킬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담배 한 대 피우고 올게요.” 그가 나가는 것을 슬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석이 자리를 떠나 자, 슬기는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해요. 두 분의 오붓한 자리를 불편하게 해서요. 집안에서 주선한 선 자리를 억지로 나온 거라...” 여자의 말투에서 묘한 무력감이 느껴졌다. 슬기는 문득 눈을 들어 상혁을 바라보았지만, 상혁은 그녀를 신경 쓰는 기색도 없이, 온전히 하연에게만 시선을 두고 있었다. 슬기는 속으로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그 눈빛을 외면했다. “그나저나, 하연 씨.” 슬기가 화제를 돌렸다. “최근 하연 씨가 뒤로 물러나고 회사를 최하성 씨에게 맡겼다고 들었어요.”
“하연 씨, 우리 같이 합석해도 괜찮을까요?” 슬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연은 환하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물론 괜찮죠.” 슬기는 예상 밖의 대답에 약간 놀란 듯했다. 그녀는 눈웃음을 지으며 하연을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하연 씨, 이제 저 같은 ‘라이벌’에게 경계심이 풀린 건가요? 그래도 혹시 모르죠. 제가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재도전할지?” 슬기가 농담 섞인 말이었지만 그 속엔 은근한 탐색이 깃들어 있었다.그러나 하연은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며 되받아쳤다. “주 대표님, 그런 생각할 여유가 있으시면 옆에 있는 분 눈치부터 보셔야 하지 않을까요?”슬기는 어깨를 으쓱하며 별거 아니라는 듯 답했다. “뭐, 집에서 주선한 맞선일 뿐이라 별로 신경 안 써요. 첫 만남이기도 하고요.”그 순간 뒤에 있던 지한이 앞으로 나서며 상혁을 향해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부 대표님, 평소에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부 대표님’이라는 말은, 그가 이미 상혁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지한은 외부에서 떠도는 소문을 떠올렸다. 최씨 가문과 부씨 가문이 곧 혼사를 통해 막대한 사업적 결합을 이룰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여자가 바로 최씨 가문의 딸이라는 사실에 지한은 적잖이 긴장했다.“최하연 씨, 안녕하세요.” 지한이 하연에게도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면서도 속으로는 긴장의 끊을 놓지 않았다. ‘주슬기가 최씨 가문과 부씨 가문 사람들과 이렇게 가까운 사이일 줄은 몰랐는데?’ 처음 지한은 그저 형식적인 맞선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이 상황을 보니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고 느꼈다.그때 상혁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SW그룹의 도련님을, 여기서 다 만나고 보기 드문 일이군요.” 단 한마디로 심지한의 배경을 정확히 짚어낸 것이다. 지한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으며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 “부 대표님께서 저를 알고 계셨
최근 몇 년 동안 H시는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루며 번화한 고층 빌딩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섰고, 도시 풍경은 완전히 새롭게 바뀌어 이제는 명실상부한 대도시로 자리 잡았다.상혁은 차를 몰고 하연과 함께 요즘 SNS에서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유명 먹거리 거리로 향했다. 차를 주차장에 세운 후, 두 사람은 나란히 걸어 먹거리 거리로 들어섰다. 거리 양옆으로는 다양한 가게들이 즐비했고, 상인들은 열심히 손님들을 끌어모으며 활기찬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곳곳에서 풍기는 음식 냄새가 두 사람의 발걸음을 이끌었다.한참을 걷던 중, ‘10년 전통 국밥집'이라는 간판이 걸린 깔끔하고 정갈한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내부 인테리어는 오래된 가게답지 않게 세련되었고, 메뉴는 벽에 붙어 있어 가격이 한눈에 들어왔다.상혁이 가게를 한참 바라보는 사이, 하연은 이미 들어가 자리에 앉으며 기다릴 새도 없이 외쳤다. “사장님, 여기 대표 국밥 하나요!” 사장님은 빠르게 주문을 적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못 드시는 재료 있으세요?”“짜지 않게 해주시고, 후추는 빼주세요. 나머지는 다 괜찮아요.” 하연이 주문을 마치자 사장님은 상혁을 향해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사장님은 뭘로 드릴까요?” 상혁은 자신도 모르게 사장님의 깍듯한 존대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저도 같은 걸로 주세요.” 가게의 음식 나오는 속도는 매우 빨랐다. 잠시 후, 두 사람 앞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 두 그릇이 놓였다. 하연은 반짝이는 눈으로 국밥을 바라보며 기쁜 표정으로 숟가락을 들고 신나게 먹기 시작했다.“천천히 먹어.” 상혁은 그녀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한마디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자신 앞에 놓인 국밥을 내려다보았다. 어릴 때부터 상혁은 까다로운 식습관을 가진 어머니인 조진숙의 영향으로 엄격하게 관리된 음식을 먹으며 자라, 이런 길거리 음식은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정말요?” 다영은 남준의 말을 듣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이 살짝 붉어졌다. 그녀는 자신이 남준을 믿고 기다린 게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그녀가 모든 걸 걸어도 될 만큼 가치 있는 사람이었다.“남준 씨, 난 그냥...” “그냥 뭐요?” 다영은 고개를 저으며,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전에 떠돌던 소문들 때문에 잠깐 마음이 흔들렸던 것뿐이에요.”“그런 쓸데없는 소문에 신경 쓸 필요 없어요.” 남준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그의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이 잠시 스쳤다. 하지만 기쁨에 젖어 있는 다영은 남준의 말 속에 담긴 미묘한 뉘앙스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녀는 남자의 팔을 꼭 잡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난 언제나 남준 씨의 편이에요. 당신이 필요하면 언제든 나를 부르면 돼요. 항상 곁에 있을 거니까요.”‘당신이 원하는 모든 걸 내가 도와서 얻게 해줄 거야. 그게 DL그룹이라 해도...’ 그녀는 이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굳은 결심을 다졌다....새해를 맞이하는 밤.전국 곳곳에서 크고 작은 축제가 열렸고, 도시는 환희와 축제 분위기로 가득했다. 모두가 기쁨 속에서 새해를 맞이하던 그 밤이 지나고, 다음 날 아침.하연은 따스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방 안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 창밖으로부터 들어온 아침 햇살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일어났어?” 상혁이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연은 기지개를 켜며 나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몇 시예요?” 상혁이 곧바로 답했다. “아직 일러. 11시밖에 안 됐어.” “11시?” 하연은 예상외로 늦은 시간에 살짝 놀랐다. 그 순간 상혁이 침대 옆으로 다가와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눈을 맞췄다. 그의 눈에는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 “괜찮아. 조금 더 자도 돼.”그러나 상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연의 배에서 신호가 왔다
“남준 씨, 지금 당신 날 피한 거예요?” 다영은 손에 쥔 라이터를 꽉 쥐었다가 조용히 주머니에 넣으며 한 발짝 물러섰다. 최근 들어 너무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벌어졌고, 남준의 마음을 도무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지금 이 상황 역시 그녀에게 상처를 남기고 있었다. 한때 누구보다 가까웠던 두 사람이, 이제는 마치 남이 된 것 같은 이 분위기가 그녀를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남준은 정면만을 응시한 채 아무런 설명도 없이 미묘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타요.” 다영의 눈에 순간적으로 희미한 빛이 스쳤다. 망설임 없이 그녀는 차 뒤쪽을 돌아 조수석 문 앞에 섰고, 문을 열어 차에 탔다.차에 올라탄 그녀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조수석에 놓인 정교한 포장 상자로 향했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영은 상자를 들고서 물었다. “남준 씨, 이거... 내 선물이에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의 손은 이미 멈추지 않고 상자를 열고 있었다.남준은 살짝 찌푸린 듯한 표정을 지었으나, 굳이 제지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상자를 열어보는 것을 무심하게 지켜볼 뿐이었다.다영이 상자를 열자, 안에는 섬세하게 디자인된 고급스러운 목걸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중앙에 놓인 독특한 디자인의 목걸이는 푸른빛의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조명에 반사되어 빛나는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정말 예쁘네요...” 다영은 감탄하며 목걸이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환한 미소로 남준을 바라보았다. “이거 나한테 걸어줄 수 있어요?”남준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목걸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한없이 깊어졌고, 잠시 동안 아무런 말도 없이 목걸이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듯했다.‘남아공에서 천연으로 채굴된 최고급 보석입니다. 순도와 투명도가 모두 최상급이고, 무엇보다도 희소성이 높아 전 세계에 단 하나뿐입니다. 특별한 사람에게 선물하기에 가장 적합한 아이템이죠.’ 그때 들렸던 매장의 직원 설명이 귀에 맴돌았다.
“나... 나 술 안 취했어.” 남준은 말끝이 흐려졌고, 아까의 당당한 기세가 눈에 띄게 약해졌다. 하연은 남준의 이상한 태도를 감지하고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거기에는 상혁이 어느새 가까운 거리에 서 있었다. 혼자 있는 남자의 긴 그림자가 조명 아래 길게 드리워졌고, 묵직한 발걸음으로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오빠...” 하연은 입을 열어 무언가 설명하려 했으나, 상혁은 모든 상황을 이미 이해한 듯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그녀에게 편안한 눈빛을 주었다. 단 한 번의 눈맞춤으로 하연은 마음속에 있던 불안함이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두 사람 사이엔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신뢰가 있었다.상혁은 그녀에게 다가와 자신의 외투를 벗어 어깨에 걸쳐주며 다정하게 말했다. “바람이 차니까 빨리 들어가자.”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대답했다. “응, 알았어요.” 주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그녀는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두 사람의 손가락이 서로 맞물리고,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가 고스란히 서로에게 느껴졌다.그러나 이 장면은 남준의 가슴 깊은 곳을 아프게 파고들었다. 남준은 표정만큼은 최대한 담담하게 유지하며 시선을 애써 다른 곳으로 돌리더니,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 DS그룹 연말 행사가 있다고 해서 근처에 볼일이 있어 왔다가 들렸어, 마침 형도 여기 있었네.”상혁은 하연의 손을 살며시 감싼 채 고개를 들고 남준을 바라보았다. 상혁의 눈빛은 깊고 알 수 없는 감정을 담고 있었다. “왜 이젠 DS그룹 일에도 신경이 쓰여? 모르는 사람은 보면 네가 DL그룹 버리고 DS그룹으로 옮기려는 줄 알겠어.” 남준은 그 말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상혁의 말에는 은근한 경계와 조롱이 담겨 있었다. 남준은 불리한 상황임을 깨닫고 억지로 웃으며 변명했다. “형, 그런 거 아니야. 그냥 분위기나 좀 보려고 들른 거야.”상혁은 남준의 속내를 이미 간파하고
“시간 없어.” 하연은 단호하게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녀가 다시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휴대폰에서 메시지 알림 소리가 들렸다. 하연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메시지를 확인했고, 내용을 본 후 손에 힘이 들어갔다. 10분 후.하연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밖으로 나왔다. 멀리서 남준의 눈에 띄는 빨간색 스포츠카가 비상등을 켠 채 호텔 입구에 세워져 있으며, 번화한 호텔 입구에서 유독 도드라져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잠시 후, 차 문이 열리고 남준이 내렸다. 그는 오늘 블랙 패딩을 걸친 채 특유의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풍기며 여유롭게 하연을 바라보았다. “역시 올 줄 알았어.” 남자의 목소리는 자신감이 넘쳤고, 말투에는 확신이 묻어 있었다.찬바람이 부는 겨울밤, 차가운 바람이 하연의 얼굴을 스치며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하연은 몇 걸음 옮긴 뒤 걸음을 멈췄고, 남준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손을 들어 흩날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말해. 문자에 적힌 상혁 씨하고 관련해서 중요한 일이 뭔데?”남준은 팔짱을 끼고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형이 걱정돼?”“그건 네가 신경 쓸 일 아니야.” 하연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남준은 그녀 쪽으로 몇 걸음 다가가더니, 불과 반걸음 거리에 멈춰서 몸을 약간 숙였다. “너의 그 관심 나 한테도 좀 나눠 주면 안 돼?”그가 가까이 다가오며 내뱉은 말에 은은한 술 냄새가 풍겨왔다. 하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술 마셨어?”남준은 입가를 비틀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거 혹시 나 걱정하는 거야?”“착각하지 마.” 하연은 무의식적으로 한 발짝 물러섰다. “부남준, 할 말 있으면 빨리 해. 여기서 시간 끌 여유 없어.”남준은 고개를 약간 끄덕이며 어딘가 불만 섞인 어조로 말했다. “너 갈수록 성격이 우리 형이랑 닮아가네. 역시 잘 어울리는 커플이야.” 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