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을 나서자 기태는 흥분했다.“최 사장님, 주현빈이 동의할 거라고 어떻게 알았어요? 일부러 가격을 높게 책정했네요.”하연은 당당하게 걸었다.“해외시장은 JJ 그룹의 상처야. 누군가 도움을 줄 사람이 절실히 필요했기에 반드시 동의할 거야.”“하지만 JJ 그룹의 일부분을 얻는 것만으로도 이미 큰 이익이야.”“최 사장님, JJ 그룹에 그렇게 자신이 있어요.”하연은 턱을 들었다.“응, 맞아.”이론적 지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항상 열정적이지만, 막상 하면 조금 지치기도 한다. 하연은 바로 상혁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갑자기 상혁이 연락이 안 되면 피터에게 연락한다면 된다는 게 생각이 났다.하연은 급히 가방에서 명함을 찾아 전화를 걸었다. 번호가 속한 곳은 F 국이었다.[최하연 씨.]피터는 바로 받았다.“피터, 부 대표님은요? 연락이 안 돼요.”[도련님께서 아마 자고 있을 거예요. 깨어나시면 전화하라고 할게요.]“낮에 자고 있어요?”[어젯밤 회식이 늦었어요.]하연은 의심을 했고, 상혁은 잠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그럼 깨어나면 바로 전화하라고 해요.”피터가 동의하자 전화를 끊었다.JJ 그룹의 가장 큰 문제는 관련 해외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상혁을 연락하지 못하자 하연은 고민을 하며 하민에게 전화를 했다. F 국은 저녁이었다. 하민은 전화를 받고 놀랐다.[하연아, 무슨 일이 있어?]하연은 민망해하며 일을 간단히 말했다. 하민은 잠시 침묵했다.[네 아이디어는 좋아. 하지만 해외에서 JJ 그룹을 거부하는 건 하루이틀이 아니야. 이럴 때 정부의 승인을 받기가 어려워.]“어려운 걸 알아서 오빠한테 부탁하잖아요. DS 본부가 F 국에서의 영향력으로 사정을 빌면 안 돼요?”하연은 불쌍하게 말했다.[그래도 되지만, 성의를 보이려면 네가 직접 와야 할 수 있어.]“그건 괜찮아요.”[준비해줄게.]“고마워요, 오빠. 오빠가 짱이에요!”가족 앞에서야 하연은 기댈 수 있었다. 전화를 끊고 하연은 의자를 뒤로
다음 날 하연의 배행에는 기태 외에 JJ 그룹 직원이 동행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까지 하연은 상혁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 JJ 직원 중 한 명은 여성이여 통찰력이 강했다.“최 사장님,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세요?”하연은 갑자기 뒤돌아보았다.“티나요?”“여자들의 생각은 얼굴에 쓰여 있어요.”비즈니스에서는 절대 안 되는 일이었다. 하연은 왜 자신이 점점 상혁의 생각에 끌려가는지 알 수 없었다. 하연은 애써 침착했다.“그거 친구를 걱정하고 있어요. 중요한 건 아니에요.”상대방은 웃기만 했다. 더 이상 질문을 이어가지 않았다. F 국에 착륙했고, 하민의 비서 민영이 직접 맞이했다.“하연 씨, 최 회장님께서 빠쁘셔서 특별히 10분을 비웠어요. VIP 대접실에 계세요.”기태는 JJ 그룹 사원을 안배하고 하연은 민정따라 하민을 만나러 갔다. 대접실에서 한민은 똑바로 앉아 문서를 넘기며 다가갈 수 없는 자세로 앉아있었다.“오빠!”하연은 달려가며 하민의 품에 안겼다.“보고 싶었어요!”하민의 차가운 표정에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B시의 이사인데 아직도 이렇게 무모해?”하연은 신나게 웃었다.“밖에서 무슨 신분이든, 영원히 오빠 동생이잖아요.”하민은 웃으며 금색 명함을 건넸다.“F 국의 이사 에릭이야. 오늘 회의를 마치면 30분의 자유 시간이 있어. 이 30분 안에 설득해야 해.”하연은 꽉 주며 말했다.“주소는요?”“내 사람이 데려다 줄 거야.”“고마워요, 오빠.”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는데 하연은 점점 이성적이어서 하민은 흐뭇했다.“피곤하게 하지 말고, 시간 되면 할아버지를 뵈러 가. 많이 보고 싶어해.”“물론이죠!”에릭을 설득하기 위해 하연과 직원들은 많은 준비를 했다. JJ 도 아이디어가 있어 자료도 준비되었다. 저녁이 되자 직원 두 명과 함께 출발했다. 차에서 상혁의 전화를 받았다. 상혁의 목소리는 쉬어있었고 마치 금방 깬 것 같았다.[하연아, 날 찾았어?]하연은 상혁의 목소리를 듣고 시름 놓았다.“상혁 오빠. 꽤
너무 갑작스러웠다. 하연의 머리속이 하얘지고 벽을 붙잡고 애써 침착했다.“원인은 먼저 따지지 말고, 바로 병원으로 가!”하연은 재빨리 밖으로 뛰어나와 귀급차를 따라 곧장 차를 몰았다. 하연은 보지 못했다. 부랴부랴하는 몸짓이 뒤에 있는 한 쌍의 창백한 눈에 들어갔다.“환자는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혈액 공급이 부족해요. 수혈이 필요해요. RH 음성 혈액형인 분이 있어요?”병원에 들어서자마자 하영은 한 간호사자 소리를 지르는 걸 보았다. 하연은 달려갔다.“어느 환자예요?”간호사는 가리켰다.“저분이요, 방금 들어온 환자!”에릭이었다. 하연은 손을 꽉 쥐었다. 우연인 건 하연이 RH 음성 혈액형이었다.“저, 저요. 저를 데려가서 피를 뽑아요!”기태는 가장 먼저 말렸다.“안 돼요, 사장님. 몸이 제일 중요해요!”하연은 기태의 손을 풀었다.“사람 목숨이 위태로워, 사람 구하는 게 중요해!”“하지만.”“피 좀 뽑는 건데, 죽지 않아!”하연은 간호사의 손을 잡았다.“저를 데려가요!”간호사는 급히 채혈 장소로 데려갔다.‘정말 착하네.’하연의 몸이 허약하여 피를 뽑자 얼굴이 창백해졌다. JJ 직원들 보기에도 마음이 아팠다.“사장님,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거예요.”하연은 거즈를 누르고 복도 의자에 앉았다. 얼마 지났는지 모르지만 드디어 수술이 끝났다. 의사는 마스크를 벋고 가족들에게 말했다.“무사해요.”가족들뿐만 아니라 하연도 숨을 돌렸다. 에릭은 수술실에서 밀려나와 병실로 갔다. 가족들은 몰려들었지만 아무도 하연을 보지 못했다. 묻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자 기태는 화가 나서 달려들었지만 하연이 막았다.“뭐하는 거야!”“그들이...”“네가 말하면 사람들이 우리가 호의로 협박할 거라고 생각할 뿐이야!”“그럼 아무말도 안 해요? 사장님, 사장님의 피는 소중해요.”하연은 침묵했다.“그래도 사람을 살렸으니, 그만한 가치가 있어.”“정말이야?”성숙하고 든든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하연은 의하해 하며 돌아서자, 재킷을 들고 사람들 사이
10분 후 병실에서 보호자가 나왔다.“최하연 씨, 들어오세요.”하연은 자료를 잊지 않고 챙겼다. 에릭은 이미 깨어났다. 병상에 누워 반쯤 눈을 뜨고 보았다. 부동건은 말했다.“하연아, 인사해.”하연은 허리를 굽혔다.“안녕하세요, 아저씨. 최하연이라고 합니다.”“당신을 알아요. 회의가 끝나면 만나보고 싶었어요.”“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아저씨만 무사하면 되요.”“중요하지 않아요?”“제 일에는 F 국 국민들의 주요 인물이 무사한 것이 가장 중요해요.”에릭의 엄숙한 얼굴에 웃음이 띄었고 부동건을 바라보았다.“동건아, 네 수양딸이 말을 참 잘하네!”부동건은 자랑스러워했다.“당연한 거예요.”“난 보답할 줄 아는 사람이에요. 저를 구했으니, 원하는 게 있엉?”단도직입적으로 하연은 자료를 잡았다.“원하는 걸 다 줄 수 있어요?”“전혀 숨기지 않네요.”“솔직히 말하면, 살려준 건 제 사심이 있었어요.”하연은 가볍게 말했다.“우리 속담에 호의를 베풀면 수없이 갚아야 한다는 말이 있어요. 제가 원하는 게 없으면 오히려 마음이 불편하실 거예요.”에릭은 말을 기다렸다.“그럼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고 서로를 안심시키는 게 좋아요.”인정이 거래에 있으면 모든 것이 잘 풀린다. 에릭은 고개를 끄덕였다.“원하는 게 뭐예요?”하연은 자료를 드렸다.“JJ 그룹의 해외 전자상거래의 계약이요.”에릭은 눈을 부릅뜨며 받지 않았다.“JJ 그룹이 포기를 하지 않네! 원하는 걸 줄 수가 없어요!”이건 국가 차원의 협상이었고, 여자가 이걸 바꾸고 싶어하는 건 꿈이었다. 하연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성공과 실패는 단 몇 분만에 이루어졌다.“알아요, JJ 그룹의 제일 큰 문제는 해외 대중의 정보 보안을 위협한다는 것이에요. 하지만 이 위험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떨까요?”“무슨 방법이 있어요?”“제가 해결하면 동의하실 건가요?”에릭은 하연을 노려보며 말을 하지 않았다.“은혜를 봐서 저에게 기회를 주세요. 곤란하게 하지 않을게요.”부동건은
[왜 좋은 일이 아니야, JJ는 DS의 프로젝트예요. DS는 우리 최씨 가문의 그룹이고. 날 도와주는 건 최씨 가문을 돕는 거예요. 설마 최씨 가문의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요?]음성 메시지를 보내자 하경은 한참동안 답장이 없었다. 부동건은 웃으며 말했다.“네 둘째 오빠의 표정이 상상이 돼.”하연은 핸드폰을 들고 웃음을 터뜨렸다. 차안에서 이 각도로 부동건을 보니 상력의 엄숙함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아저씨, DL 그룹을 상혁 오빠에게 맡기지 않았어요? 왜 직접 오셨어요?”“왜인지는 네가 제일 잘 알잖아.”하연은 놀림을 당하며 민망했다. 상혁은 모든 신경을 FL그룹에 있어 DL 그룹을 경영할 틈이 없었다. 하연은 상혁대신 변명했다.“아저씨 때문에 상혁 오빠는 18살부터 DL를 맡았어요. 이제 쉬어야죠.”부동건은 웃으며 한숨을 쉬었다.“그 자식을 너무 오래 고생시켰어. 너무 미안해.”하연은 가슴이 두근거렸다.“상혁 오빠는 능력이 있어요.”“물질적으로 상혁 엄마와 단 한번도 미안한 적이 없어. 하지만 감정적으로 많은 빚을 졌어. 그 자식이 내성적이어서 진정한 감정을 보여주지 않아. 때로는 나도 잘모르겠어.”부동건은 이 말을 하며 우울해했다.“18살 때부터 우리에게 속마음을 얘기하지 않아. 비즈니스에서 카리스마가 넘쳐 만나는 사람마다 부 도련님이라고 해. 그후부터 부 사장님, 그리고 부 대표님까지 왔어. 도련님이라는 호칭은 친한 사람들만 불러.”하연은 넔을 잃고 들었다. 그동안의 고생이 느껴졌다.“하연아, 상혁에게 너무 미안해.”부동건이 갑자기 이 말을 하자 10살 늙은 것 같다. 하연은 왜 미안한지 묻지 않고 어른의 속마음을 존중했다. 조진숙의 집에 도착했다. 하연을 보자마자 조진숙은 신이났다.“하연아! 날 잊어버리지 않았네!”하연은 조진숙의 품에 안겼다.“제가 어떻게 이모를 잊겠어요. 너무 보고 싶어요.”조진숙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러나 뒤에 있는 부동건을 보자 표정이 변했다.“꺼져.”“진숙아.”“꺼져! 안
“상혁아, 너...”조진숙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하연을 보았다. 하연은 계단 위에 서 있는 남자와 눈을 맞추며 놀란 표정으로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상혁 오빠, 언제 왔어요?”상혁은 피곤했지만 지저분하지는 않았다. 방금 F 국에 도착한 건 아니었다. 상혁은 어이가 없어 손잡이에 기대어 웃었다.“하연아, 정말 인연이 있네. 이렇게 만날 수 있어?”“그런 말 하지 마세요.”하연은 화를 내며 다가갔다.“피터에게 전화할 때 이미 F 국에 있었죠?”상혁은 부인하지 않았다.“일이 있었어.”“제 차는요?”“우리 집에 있어.”“출국해도 몰고 오지 않았네요.”상혁은 하연의 살을 바라보며 눈빛이 깊어졌다.“다음 만남의 기회를 만들려고 했어.”순간 하연의 목이 빨개지며 뜨거웠다. 똑똑한 조진숙은 이 상황을 보자 물러서며 말을 하지 않았다.“몸은 나았어요?”하연은 나지막하게 물었다.“거의 나았어.”“안색이 안 좋아요.”상혁은 갑자기 손을 뻗어 하연의 목욕 타월를 잡았다. 하연은 굳어졌다.“상혁 오빠.”상혁의 소리는 매우 가까웠다.“옷깃이 헐렁하니 내가 묶어줄게.”남자 모델의 유혹을 당하니 하연은 피가 끓는 것이 느껴졌고 감히 움직일 수 없었다.“됐, 됐어요?”상혁은 동작을 멈추었다. 하연의 머리카락에서 떨어진 물이 상혁의 손등에 떨어져 용암보다 더 뜨거웠다.“최하연.”상혁의 목소리는 쉬었다. 하연도 부들부들 떨었다. 상혁은 나지막하게 말했다.“옷을 갈아입어. 이러는 건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 거야.”하연도 참지 못하고 돌아서서 문을 닫고 벽에 기대어 숨을 쉬었다.‘누구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거야!’하마터면 통제하지 못했다. 하연이 침착해지자 평범한 잠옷을 갈아입었다. 나갈 때 상혁은 이미 계단에 없었다. 가정부가 말했다.“부 도련님과 사모님이 서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하연은 손에 든 죽을 받았다.“제가 가져다줄게요.”서재 문은 반쯤 닫혀 있었다. 하연은 손을 들고 문을 밀려고 하는 순간 안에서 소리가 들렸다. 조
부씨 가문의 일에 하연은 외부인의 자세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나쁜 놈’부터 들었어요.”상혁은 웃었다.“솔직하네.”하연은 죽을 내려놓았다.“상혁 오빠. 야식이에요.”“네가 한 거야?”“이모님은 했어요.”확실히 솔직했다. 상혁은 두 입을 먹고 입맛이 없어 곁에 두었다.“뭐가 궁금해?”하연은 상혁의 뒤에 가서 어깨를 주물렀다.“이모와 아저씨가 우리를 키웠어요. 최씨 가문의 사람외에 아이는 오빠밖에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장남은 무슨 얘기예요.”힘이 딱 좋아서 상혁은 눈을 감았다.“그 당시 우리 아버지와 엄마가 왜 이혼했는지 기억나?”“이모와 아저씨는 늘 미운 정 고운 정 다 있잖아요. 그땐 홧김에 이혼했다고 했어요.”“그들의 지위로 쉽게 이혼할 수 없었어. 원칙적인 문제가 없었으면 이미 재혼했을 거야.”하연은 바로 깨달았다.‘그래, 몇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재혼하지 않았어.’“아저씨가 밖에서...”“술먹고 당했다고 했어. 진심은 아니라고 했어.”하연은 심호흡을 했다.“이모는 믿어요?”“네 생각에는?”조진숙의 성격으로 당연히 믿지 않았을 것이다.“둘째 아들은 나보다 둘살 어려. 하지만 엄청 악독해. 요몇년 이미 DL의 실권을 잡았어.”그래서 찾아오자 조진숙이 화를 낸 것이었다. 그래서 부동건이 미안하다고 한 것이었다. 하연은 몸을 숙여 상혁을 바라보았다.“오빠의 상처도...”하연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안쓰럽고 순진함이 가득했다. 상혁은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하연의 얼굴을 만졌다.“네가 걱정할까 봐 알려주지 않았어. 지금 네게 들켰는데, 일부러 숨기기 싫어.”“일찍 알려줬어야죠. 혼자 버티지말고.”하연은 화를 냈다.“이모는 제 친엄마와 같아요. 오빠는 제 친오빠에요. 오빠를 다치게 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상혁은 웃음이 터졌다.“네가 나설 차례가 아니야. 내가 해결할게.”“상혁 오빠.”하연은 상혁의 손을 꼭 잡았다.“수년 동안 많이 힘들었죠?”“힘들었었
조진숙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듯이 매우 당당했다.“M.E의 메인을 골라. 오후에 계약서를 작성해줄게.”하영은 깜짝 놀랐다.“DS의 위 미디어 진풀은 아직 확실하지 않아서 걱정이에요.”“안정되지 않아서 널 도와주려는 거야.”조진숙은 흐뭇해했다.“이모는 널 제일 믿어. 마음놓고 해. 크리스마스에 다른 플랫폼과 협력하지 않을 거야. 너한테만 해줄게. 자신감을 가져.”물론 너무 좋았다. DS에게 쓸 카드가 더 생겼다. 하연은 감동 받았다.“고마워요, 이모!”조진숙은 관리를 잘했다. 비록 50세이지만 30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눈가의 주름에서만 세월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하연은 조진숙을 보며 머뭇거렸다.“왜?”하연은 궁금한 것이 많았다. 밖의 여자도 궁금했다. 하지만 수년 동안 조진숙은 흔적을 낸 적이 없어 다른 사람에게 알리기 싫어하는 것 같아 묻지 않았다. 때로는 침묵이 위안이 되기도 했다.“이모, 이모가 우리 엄마예요. 어욱함을 당하게 하지 않을 거예요.”조진숙은 웃음을 터뜨리며 하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바보야.”하연은 늦으 오후가 되어서야 JJ에서 보낸 정보 보안 인증서의 팩스를 받았다.[하연아, 내가 이렇게 도와줬는데 어떻게 보답할 거야?]“돌아가서 밥 사드릴게요.”하연은 팩스를 보며 기뻐했다. 해빛이 쨍쨍한 마당에서 빙글빙글 돌았다.[밥만? 너무 부족하잖아. 다음엔 도와주지 않을 거야.]“도련님, 뭘 더 원해요? 절이라도 할까요?”[아니! 할아버지와 큰형이 알면 날 죽일 수도 있어.]하경은 살아남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하연은 다른 고민이 있었다.“오빠. 이 증명으로 에릭의 동의를 받을 수 있을까요?”하경은 그제야 정색했다.[밑에 법령을 봐. 국제보안정보부에만 해당되는 것이야. 이 도장이 있는데, 몰래 기뻐할 거야.]“그래요? 이렇게 간단하면 JJ도 이렇게 오래 머물지 않았겠죠.”하경은 전화 넘어 웃었다.[JJ는 할 수 없어. 증명을 받지 못해서야. 하지만 넌 해결할 수 있어. 왜인지
“이 한 잔을 사과의 의미로 받아 주세요.” 다영은 그렇게 말하며 먼저 잔을 비웠다. “아주버님, 형님.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세요.” 여자의 말은 매끄러웠고, 태도 역시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하연은 깊게 생각하지 않고,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두 사람이 자리를 떠난 후. 다영은 더 이상 긴장을 숨길 수 없었다. ‘끝까지 침착해야 해. 실수는 절대 용납되지 않아.’ 손의 떨림을 억지로 참아내며 조용히 다시 자리에 앉은 후, 급하게 잔을 채우고 나서 단숨에 목구멍으로 넘겼다. 그녀는 자신의 이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고 있었다.그리고, 이 한 걸음을 내디딘 이상, 이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도. ...한편, 상혁은 한쪽 팔로 하연을 살며시 감싸 안았다. 하연은 의아한 눈길로 상혁을 올려다보았다. “왜 그래요?” 그러자, 상혁은 하연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 순간, 하연의 얼굴이 단숨에 굳어졌다. “정말이에요?” 상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여 여자의 시선을 가리며,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하연의 잔과 자신의 잔을 교체했다. “괜찮아. 내가 있잖아.” 그 한마디에, 하연은 비로소 안도한 듯 숨을 고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미 어디선가 강렬한 시선이 자신들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둘은 자연스럽게 눈빛을 교환하며 평온한 표정을 유지했다. ...다영은 정신을 가다듬고, 조용히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두 눈으로 목격했다. 즉, 하연이 아무런 의심 없이 잔을 들어, 그 안의 음료를 마시는 순간을. 그 순간, 다영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됐다...!’ 이제, 하연의 뱃속 아이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니까. ‘길어야 3일... 그 안에 반드시 아이를 잃게 될 거야.’ ‘하지만
“그러고 보니, 연지 씨가 부상혁 대표 곁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사실상 부 대표의 오른팔 역할을 했다던데... 그런데 지금은 부남준 상무를 위해 일하고 있네.”“내가 좀 궁금해서 그러는데, 어떻게 그렇게 부씨 가문의 두 형제 사이를 능숙하게 오갈 수 있는 거지?” 세븐이 입을 열자, 연지는 본능적으로 미간을 좁혔다. 그 말투와 어조가 거슬려 저도 모르게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떠올랐다. “부상혁 대표는 원래 이런 말투로 말하지 않아.” “그리고 쓸데없는 일에는 관심 끄시지.” 그리고 이어서 단호하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일이나 제대로 신경 쓰는 게 좋을 거야. 괜히 약점 보였다가 후회하지 말고.”그러나 세븐은 개의치 않는 듯 옅은 미소를 지었다. “연지 씨, 정말 부상혁 대표에 대해 꽤 잘 아는 것 같단 말이야?” “그건 당신이 궁금해할 필요 없고.” 연지는 냉랭하게 받아쳤다. 오늘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면, 세븐은커녕 이 공간에 발 들이는 것조차 끔찍했을 것이다.“그리고 부남준 상무님이 하신 말씀 잊지 마. 본인이 할 일이나 제대로 해.” 세븐은 의미심장하게 눈썹을 살짝 올렸을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연지는 손목시계를 올려다보며 시간을 확인했다. “곧 예식이 시작돼. 모든 건 계획대로 진행하면 돼.” “걱정 마. 발목 잡을 일은 없을 테니까.” 그 대답은 나쁘지 않았다. “차 안에서 얌전히 있어. 내 연락 기다려.” 마지막으로 단단히 일러둔 후, 연지는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렸다. 호텔 안. 비록 약혼식이지만, 최씨 가문과 부씨 가문 이들 모두 이를 굉장히 중시했다. 사소한 부분까지 허투루 하는 법이 없었다. 로비의 장식만 봐도, 백 명이 넘는 직원들이 작년부터 준비해 온 결과물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홀 중앙에는 은하수처럼 쏟아지는 샹들리에가 빛을 발하고 있었고, 대리석 바닥에 비친 금빛 패턴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장관을 이루었다. 하객들은 이미 자리를
“네 아버지를 구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네가 얼마나 잘하느냐에 달려 있어.” 다영은 원래 조금 망설였지만, 그 말을 듣자 마음속에서 은근히 결심이 섰다. ‘반드시 아버지를 구해야 해.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어.’ “어머님, 걱정 마세요.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습니다.” 송혜선은 다영의 대답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거면 충분해. 나를 실망시키지 않길 바랄게.” ...대기실 밖. 상혁은 잘 맞춘 정장을 입고 서 있었다. 훤칠한 체격에 비율까지 완벽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하성은 장난스럽게 상혁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자, 한번 말해 봐. 지금 기분이 어때?” 상혁은 거울을 가볍게 흘깃 쳐다보았다. 비록 자신은 전날 밤 한숨도 못 잤지만, 지금은 이상할 정도로 들떠 있었다. 오히려 얼굴엔 생기가 돌았고, 눈빛도 반짝였다. 그는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음, 좋아.” “이렇게 오랜 시간 기다렸는데, 고작 ‘좋아’ 한마디? 너무 성의 없는 거 아니야?” 하성은 못마땅한 듯 고개를 저었지만, 이내 진지한 얼굴로 덧붙였다. “어쨌든, 우리 하연이한테 잘해. 만약 조금이라도 속상하게 하면, 우리 집안에서 널 가만 안 둘 거야.” 상혁은 가볍게 주먹을 쥐어 친구의 가슴팍을 툭 쳤다. “그 말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몰라. 이제 외울 지경이라고.” 그러다 갑자기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걱정 마. 그런 일은 없을 거니까.” 하성은 만족스럽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았어, 그럼 됐다.” ...대기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고, 서여은과 정예나는 상혁을 보자마자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물러나, 둘만의 시간을 남겨 주었다. 하연은 거울 앞에 앉아 조심스럽게 눈썹을 그리며 메이크업을 손보고 있었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진숙아,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니? 이제 아무나 이런 자리에 낄 수 있는 거야?”서해정은 앞을 손으로 휘저으며, 노골적으로 불쾌함을 드러냈다.“누군가 했더니. 요즘은 첩들도 이런 곳을 이렇게 당당하게 오나 보네?”그 말이 떨어지자, 주변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소리 없이 속삭이는 중에도, 누구나 비웃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했다.송혜선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그러나 기어코 분노를 삼켰다.‘이 여자, 서해정...’조진숙의 절친이자, 상류층 사모 모임에서도 영향력이 큰 인물.그리고 서해정의 시댁을 건드렸다간 큰일 나는 상대였다.송혜선은 감히 덤빌 수 없었다.서해정은 코웃음을 치며, 조진숙의 손에 들린 붉은 봉투를 단숨에 낚아챈 후, 아무렇지도 않게 송혜선의 품에 던져버렸다.“우리도 선물을 받을 때, 가리는 건 가려야지. 네 손에서 나온 건, 왠지 더러워서 받기가 싫네?”“당신...!”송혜선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분노가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더는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그녀는 손으로 배를 감싸며 한 걸음 물러났다.그러자 서해정은 일부러 한 발짝 뒤로 물러나며 의도적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어머, 뭐야. 설마 지금 나한테 시비 걸려고? 이런 짓 나한테는 안 통해.”송혜선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입술을 깨물며 억지로 분노를 삼켰다.“서 여사님, 아무리 그래도 제게 어느 정도 예의는 좀 지켜 주시죠.”그러나 서해정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진숙의 팔짱을 끼고 돌아섰다.“진숙아, 우리 가자. 오늘은 상혁이의 중요한 날인데, 괜히 재수 없게 만들 필요 없잖아.”두 사람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조진숙의 눈에는 어딘가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이렇게까지 망신을 줘도 괜찮을까...?’‘만약 이대로 가버린다면, 송혜선이 부동건에게 이를 고하면 오히려 내가 나쁜 사람처럼 보일 것 같은데...’친구의 망설임을 읽은 듯, 서해정이 조용히 속삭였다.“그 인간도 네 체면은 안중에도 없이 저 여자를 여기에 데리고
호텔 로비에는 이미 많은 하객들이 모여 축하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분위기는 화기애애했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그러나 그때, 송혜선이 부동건의 팔짱을 끼고 등장하자, 순간적으로 홀 전체가 술렁였다.“저거... 부 회장의 정부 아니야? 어떻게 저 여자가 여기가 어디라고 저렇게 당당히 나타난 거지?”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리자, 그 말이 그대로 서해정의 귀에 들어왔다. 그리고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서해정은 코웃음을 치며 가시 돋힌 말을 내뱉었다.“이런 자리에까지 기어들어올 정도로 정말 뻔뻔하네. 부동건도 정말 갈수록 가관이야.”조진숙과 오랜 친분을 쌓아온 찬구인 서해정은 부동건의 이런 행동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몰랐어?”옆에 있던 하객 하나가 서해정의 소매를 살짝 잡으며 조용히 속삭였다.“부 회장이 이번에 송혜선을 정식 부인으로 올릴 생각이라던데?”서해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뭐라고? 진심이야?”“처음엔 그냥 뜬소문인 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까 꽤 가능성이 있어 보여.”서해정은 입술을 삐죽이며 불쾌함을 감추지 못했다.‘우리 진숙이 불쌍해서 어쩌나...’이어서 송혜선을 향한 시선이 더욱 싸늘해졌다.“결국 첩은 첩일 뿐이야. 설령 정식 부인이 된다고 해도, 그 꼬리표는 절대 떼지 못할걸?”...사실, 부동건은 애초에 송혜선을 이 자리에 데려올 생각이 없었다.그러나 출발 직전, 그녀가 다가와 어리광을 부렸다.그 순간부터, 부동건의 얼굴에는 미묘한 불쾌감이 감돌았다.“오늘은 상혁이의 약혼식이야. 네가 따라올 이유가 없잖아.”그러나 송혜선은 환하게 웃으며 태연하게 말했다.“상혁이의 경사스러운 날인데, 당연히 축하하러 가야죠. 저도 기분 좋은 일에 함께하고 싶어요.”부동건은 눈살을 찌푸렸다.“네 상태가 점점 무거워지고 있어. 집에서 푹 쉬어야 할 때야. 괜히 사람들 많은 곳에서 불편하게 굴지 마.”하지만 그녀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걱정 마세요, 회장님. 다영이가 저랑 같이 있을 거예요. 문제될 거 없어
‘정말... 부 대표님을 대신할 수 있을까?’연지는 눈에 의심과 불안이 섞인 채 남준을 바라봤다.“상무님, 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계신 겁니까?”여자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남준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그 웃음은 마치 어두운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불길한 유성처럼 섬뜩했다.그 순간, 연지의 등줄기를 싸늘한 한기가 훑고 지나갔다.조명이 비친 남자의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속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듯했다.남준은 천천히 몸을 돌려, 테이블 위에 놓인 술병을 집어 들었다. 유려한 손길로 술을 술잔에 가득 따라낸 후, 한 잔을 연지 앞으로 내밀었다.“내일이 무슨 날인지는 알지?”‘내일?’연지는 본능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잠시 생각하더니, 곧 깨달았다.“내일은 약혼식... 부 대표님과 하연 씨의 약혼식 날입니다.”남준은 손목을 살짝 돌리며, 술잔 속 액체를 천천히 흔들었다.술이 잔 속에서 부드럽게 회전했다.그는 반쯤 눈을 가늘게 뜨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모든 것이 남준의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듯이.“오래 기다렸지. 드디어 그날이 왔군.”연지는 흐름을 감지하며 조심스레 물었다.“설마... 상무님, 약혼식을 망치시려는 건가요?”남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가볍게 술잔을 기울이며 잔을 비웠다.남자의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너무도 명확했다.연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만약 이 약혼식이 깨진다면... 나도 손해 볼 건 없지.’남준은 조용히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최씨 가문과 부씨 가문의 결합은 단순한 약혼이 아니다. 이 약혼식에는 양가의 주요 인물들이 총출동해. 사람이 많다는 건, 우리에게 기회가 많다는 뜻이겠지.”연지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입을 열었다.“제가 무엇을 하면 됩니까?”남준은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가볍게 던졌다. 유리가 바닥에 부딪히며,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녀와 시선을 맞추었다.
눈앞의 남자는 상혁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거의 판박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닮은 눈매, 흡사한 이목구비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얼굴에 자리하고 있었다.순간적으로 하연은 착각할 뻔했다.‘세상에 이렇게까지 닮은 사람이 있을 수가 있나?’그때, 남자의 시선이 하연에게 닿았다. 그리고 눈빛에는 짧은 순간 놀라움과 흥미가 스쳤고, 곧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이렇게 예쁜 분이 밤에 혼자 노시는 건가요? 연락처라도 하나 주고 가는 게 어때요?”이 남자는 상혁과 외모만 닮았을 뿐, 막상 입을 여는 순간 그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단순한 생김새를 넘어, 풍기는 분위기 자체가 완전히 달랐다.그 차이는 너무도 확연했다.“죄송하지만, 관심 없어요.”하연은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단 한 치의 여지도 남기지 않았다.남자는 눈썹을 살짝 올렸지만, 전혀 불쾌한 기색 없이 태연하게 지갑에서 금빛 명함을 꺼내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그럼 그냥 친구로라도. 이 정도도 안되나요?”고급스러운 금박이 감도는 종이 위에 큼직하게 적힌 영문 이름.[세븐]하연은 그 명함을 받지 않았다. 그 대신 자연스럽게 머리를 쓸어 넘겼고, 그 순간 그녀의 약지에 빛나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선명하게 드러났다.“미안하지만, 안 돼요.”남자의 반응을 기다릴 것도 없이, 하연은 가볍게 몸을 틀어 걸음을 옮겼다.남자는 하연이 멀어지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며, 여유롭게 입꼬리를 올렸다....VIP룸 안.남준은 가죽 소파에 느긋하게 몸을 기댄 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연기가 폐 깊숙이 들어갔다가 천천히 뿜어져 나오는 동안, 눈빛은 어딘지 모르게 공허했다.그때, 문이 열리며 황연지가 들어왔다.그녀는 성큼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했다.“오셨습니까?”남준은 담배를 비벼 끄고, 재떨이에 던졌다.“왔군.”연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상무님, 절 찾으셨다면서요.”남준은 얕게 웃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새해를 맞아 너한테 특별한 선물을 하나 주
하연은 파티 장소를 한 고급 프라이빗 클럽으로 정했다. 회원제로 운영되는 곳이라,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재력가나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대부분이었다.밤이 깊어지자, 화려한 조명이 반짝이는 공간에서 단순한 싱글파티라기보다는 절친들끼리의 조촐한 모임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었다.고급스러운 좌석에 앉아 몇 잔 가볍게 마시던 중, 하연은 임신 중이라 과일 주스를 마시고 있었다.그때, 예나가 다가와 감탄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너도 결국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됐구나. 네 상혁 오빠랑 드디어 정식으로 부부가 되다니, 정말 부럽다.”그녀는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덧붙였다.“반면에 나는 아직도 싱글이야.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혼자라니, 가끔은 나도 좀 서글프다.”여은은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으며 장난스럽게 받아쳤다.“네가 서글픈 게 아니라, 애초에 연애할 마음이 없는 거겠지.”“내가 들었는데, 요즘 너네 가게에 어떤 남자가 매일같이 찾아온다며? 혹시 마음이 좀 움직인 거 아냐?”예나는 당황하며 급히 말을 잘랐다.“그럴 리가! 그냥 친한 친구일 뿐이야.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가 절대 아니야.”여은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며 키득거렸다.“진짜? 근데 왜 이렇게 부정하는데?”예나는 반박하려다 결국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 애 나보다 어리잖아. 그리고... 나 연하남이 별로야.”절친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하연은 흥미가 동했다.‘뭔가 재미있는 얘기가 나올 것 같은데?’“연하남? 이거 뭔가 숨겨진 이야기 있는 거 아니야?”여은은 재빠르게 하연에게 몸을 기울이며 속삭였다.“너 F국에 있어서 몰랐지? 이 둘, B시에서 꽤 핫했어.”그리고는 짧게 요점을 정리해서 들려주었다.“03년생 남자야. 올해 딱 스물두 살! 나이에 비해 성숙하더라구. 우리 예나, 아주 귀여운 연하남한테 꽂혔나 봐.”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예나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헛소리하지 마!”하지만 그 순간 그녀의 눈빛에
다영은 온몸이 떨렸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저으며 간절하게 답했다.“정말 아무것도 듣지 않았어요...”“정말이요?”남준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다영은 당장이라도 눈물이 터질 듯했지만, 입술을 꽉 악물고 끝까지 버텼다.“정말이에요.”남준은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 아까의 위압적인 분위기가 사라지며,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리고는 큰 손으로 여자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마치 겁에 질린 새끼 고양이를 달래듯 말했다.“긴장할 필요 없어요. 그냥 가볍게 물어본 거예요.”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영은 몸은 여전히 뻣뻣하게 긴장한 채로 있었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남준을 살폈다.남자가 예전과 다를 바 없이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자, 그녀는 간신히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큰일 날 뻔했어...’“그리고 남준 씨, 원래라면 설날연휴에는 나랑 같이 어머님께 인사드리러 가야 하는데...”그러자 남준은 흔쾌히 수락했다.“네... 당연히 그래야죠. 우리는 곧 부부가 될 사이잖아요. 원래 부부는 한몸이잖아요.”남준은 자연스럽게 말하며 그녀를 바라봤다.다영이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남준의 대답에 다영은 순간 놀란 듯 그를 다시 바라봤다.“남준 씨... 아직도 저랑 결혼할 생각이세요?”남준은 그녀를 당연하다는 듯 품에 끌어안았다.그리고는 여자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나지막이 말했다.“당연하죠. 제가 당신을 두고 다른 사람을 선택할 것 같아요?”그 확고한 대답에 정다영은 가슴이 벅차올랐다.“난 그냥...”“그냥 뭐요?”남준이 여자의 말을 끊었다.“혹시 파혼이라도 할까 봐요?”“네.”다영은 작게 하고 끄덕였다.그러자 남준은 단호하게 말했다.“그럴 일 없어요.”그 말에 다영의 눈가가 붉어졌고, 그녀는 본능적으로 남자의 품에 파고들었다.그리고 남준을 꼭 끌어안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역시... 남준 씨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아요.”남준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부드럽게 웃었다.남자의 손이 다영의 귀 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