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흔은 저한테로 날아오는 몽둥이를 보자 일순 굳어버렸다.그러다 몽둥이가 점점 가까워져 가흔에게 닿으려 할 때 어디서 누군가 튀어나와 두식의 등을 발로 걷어찼다. 그 힘이 어찌나 셌는지 두식은 비틀거리다 결국 중심을 잃고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다.“하성 오빠.”가흔은 놀랍고도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그때 하성이 빠른 걸음으로 가흔에게 달려와 손을 꼭 잡으며 물었다.“괜찮아?”가흔은 어눌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나마 무사한 가흔을 보자 하성 역시 가슴에 막힌 돌멩이가 내려가는 기분이었다.“무사하다니 다행이야.”하지만 하성은 등 돌린 터라 뒤에서 두식이 살금살금 기어 일어나 몽둥이를 들고 다가오고 있다는 걸 꿈에도 몰랐다.“조심해요!”그때 가흔이 하성을 밀쳐버리고 몸으로 몽둥이를 막았다. 곧이어 퍽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몽둥이에 머리를 맞은 가흔은 눈앞이 캄캄해져 앞으로 넘어졌다.“가흔아!”하성은 가흔의 이름을 불리며 앞으로 달려가 부축하고는 두식을 인정사정없이 발로 걷어찼다.하성은 두식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기에 온 발에 힘을 싫은 채 쉴 새 없이 두식을 차댔다.결국 고통을 이기지 못한 두식은 비명소리를 꽥꽥 내질렀지만 하성은 듣지 못한 것처럼 온 힘을 다해 두식을 혼냈다.그러다 한참 뒤, 두식은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고, 하성은 그제야 동작을 멈추었다.“가흔아, 어때?”하성은 걱정 가득한 말투로 물었지만 손에는 점차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그리고 손을 확인한 그는 그게 모두 가흔의 머리에서 난 피라는 걸 발견했다.가흔은 눈앞에 뭇별이 돌아다니는 것처럼 정신이 점점 아득했고, 하성의 얼굴도 두개로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손에 힘이 빠져 툭 늘어지더니 의식이 점멸 되었다.“두식 형님!”소문을 듣고 헐레벌떡 달려온 똘마니들은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보고는 하나둘 하성에게 달려들었다.“감히 우리 두식 형님을 다치게 해? 오늘 네놈을 죽이고 말 거야.”항성은 두 눈은 이미 새빨갛게 충혈된 채로 쉴 새 없이 가
병원에 도착한 가흔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깨어났다.가흔 머리의 상처는 꽤 심각했다. 뇌진탕인 데다 상처가 찢겨 몇 바늘 꿰매기까지 했다.하연이 문을 열고 병실로 들어서더니 걱정스럽게 물었다.“가흔아. 어때? 괜찮아?”가흔은 입을 꾹 다물며 미안한 기색을 드러냈다.“미안해, 너한테 폐 끼쳤네.”평소 가흔이 이토록 내외하고 소외감 느껴지게 구는 걸 제일 싫어하는 하연은 얼른 가흔의 손을 잡았다.“너 나한테까지 그럴 거야?”가흔은 그제야 표정을 가다듬고 눈을 내리깔았다. 가흔도 하연이 저를 진심으로 대하고 항상 자매 같은 친구로 대한다는 걸 알고 있다.가흔 역시 그렇고. 하지만 출생과 신분 대문에 가흔은 늘 민감하다.그도 그럴 게, 하연과의 차이가 어마어마하니까.“하연아, 저기 그... 괜찮아?”가흔이 말한 사람은 다름 아닌 하성이다. 그동안 가흔이 항상 마음에 담고 있는 사람은 하성 말고는 없었으니.“걱정하지 마. 오빠는 튼튼해서 아무 문제 없어. 그런데... 그렇게 걱정되면 왜 병실로 들이지 않아? 하성 오빠가 널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가흔은 말없이 이불을 꽉 움켜쥐더니 한참 동안 머뭇거리다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난 괜찮아, 돌아가라고 해.”하연은 여전히 고집부리는 가흔을 어쩔 수 없어 마지못해 동의햇다.“그래, 오늘 밤은 예나 불러 너 돌봐주라고 할 테니 그동암 몸조리 잘해. 그리고 널 이렇게 만든 사람은 이미 잡아들였어, 나머지는 나한테 맡겨.”“그래... 혹시 누가 시켰는지는 알아냈어?”“응, 그런데 이 일은 상관하지 마. 지금은 네 건강이 우선이니까.”“그래.”가흔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조금 홀가분해진 듯했다. 이윽고 하연과 눈을 마주치더니 싱긋 웃으며 말했다.“고마워, 하연아.”“됐어. 나한테 예의 차릴 필요 없어.”그 뒤로도 한참 동안 수다를 떤 뒤 하연은 병실을 나섰다. 하연이 나와 문을 닫기 바쁘게 하성이 달려와 하연의 팔을 잡아당겼다.“가흔은 어때? 나 들어가도 돼?”하연은 고개를 돌려 가흔의 병
하성은 설명을 길게 늘어놓았다.“하연아, 그렇게 위험한 상황에서 여자애가 용기를 내어 나 대신 공격을 막아줬는데, 신경 쓰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아니, 가흔이 왜 오빠를 구해줬는지 모르겠어요?”그 말에 하성은 더 어리둥절해졌다. 그 표정을 본 하연은 한숨을 푹 내쉬며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그럼 오늘 왜 그곳에 나타났어요?”“문자를 받았거든. 가흔이 위험하다고 해서 문자에서 요구한 대로 현금 인출해서 구하러 간 거였어.”“그럼 그때 기분은 어땠어요?”“기분? 하연아, 그런 긴급상황에서 기분이 어땠겠어. 당연히 속이 타들어 가고 급하지.”하성은 그제야 그때 자신이 급박했던 것 외에 머릿속에 오로지 가흔에 대한 걱정뿐이었다는 게 떠 올랐다.하성은 가흔이 다칠까 봐 걱정했고, 가장 먼저 가흔이 무사한 모습을 보고 싶었다.게다가 소식을 접한 순간 전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불안함과 당황함을 느꼈다.“오빠, 그동안 가흔도 우리랑 오랫동안 함께 있었잖아요. 그런데 가흔한테 정말 특별한 감정을 못 느꼈어요?”하성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순간 머릿속에는 가흔과 함께했던 매 순간이 떠 올랐다. 게다가 무엇 때문인지 분명 아주 오래전 일들인데 머릿속에 너무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오빠, 설마 가흔이 오빠 좋아하는 거 모르는 건 아니죠?”하연의 말은 마치 나른 하늘의 날벼락처럼 하성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충격적인 소식에 하성은 몸이 뻣뻣하게 굳어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린 것처럼 되물었다.“뭐라고? 가흔이 나를 좋아한다고?”그 말을 하는 순간 하성은 왠지 심장이 두근거렸고 저도 모르게 기쁘고 설렜다.하연은 하성의 반응에 답답한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사실 하연은 가흔 대신 답변을 받아내고 싶었다. 만약 하성이 정말 가흔에게 마음이 있다면 하연은 제대로 두 사람을 이어줄 생각이고, 반대로 마음이 없다면 가흔을 설득해 자기 오빠를 잊고 더 좋은 남자를 만나게 할 생각이었으니.“오빠, 제대로 답변해 줘요. 대체 가흔한테 마음이 있는
“네?”상혁은 고개를 돌려 하연을 바라보더니 사뭇 진지한 얼굴로 분석했다.“가흔이 그렇게 오랫동안 네 오빠를 좋아하면서 왜 고백하지 않은 줄 알아?”하연은 흠칫 놀라 고개를 마구 저었다.사실 하연도 그 부분이 늘 이상했다. 하연이 아는 가흔은 목표가 명확하고 한 가지 일을 확정하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게다가 주얼리 디자인을 좋아해서 열심히 연구한 끝에 이제는 세계 패션계에서 유명한 주얼리 디자이너의 위치까지 올라왔고, 혼자 자기만의 브랜드도 만들었다.이것만 봐도 가흔이 얼마나 우수한지, 또 얼마나 집요한지 알 수 있고, 한 가지 일을 확정 지으면 끝까지 견지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가흔이 하성에 대한 감정 역시 그렇다.그동안 일편단심 하성만 좋아하고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하지만 남녀 사이의 감정을 아는 건 당사자뿐이다.“이유가 뭐예요? 상혁 오빠는 알아요?”상혁은 하연의 손을 잡고 나란히 밖으로 나가더니 천천히 설명했다.“가흔을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가흔이 독립적이고 사업심이 강하고, 능력 있고 재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사실은 아주 섬세하고 예민한 사람이야, 우리가 아는 것처럼 강하지도, 자신감 넘치지도 않아.”그러고 보니 하연은 저도 가흔의 생각을 읽지 못할 때가 많았다는 걸 느꼈다.‘그동안 절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렇게 말할 자격 없네.’“상혁 오빠, 오빠는 어떻게 발견했어요? 가흔은 절대 우리 앞에서 말한 적 없는데.”상혁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다가 하연이 조금 실망하자 이내 위로했다.“감정은 당사자들끼리 해결해야 하는 거야. 우리는 더 중요한 일이 남아 있어.”그 말에 상혁과 눈빛을 교환한 하연은 곧바로 이해했다는 듯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확실히 그 인간 말종 쓰레기들 좀 만나 봐야겠어요.”상혁은 하연을 데리고 곧장 교외로 향했다. 그러다가 마지막 목적지인 FL 그룹 소유의 폐기 창고에 도착했다.이 창고의 위치는 매우 은밀해 아는 거의 사람이 없고 오가는 사람도 없어
하연은 일순 눈빛이 어두워졌다. 이 일의 자초지종은 하연도 진작 알아봤다. 하지만 고작 60억을 배상하라고 한 것도 이미 많이 봐준 처사다.그런데 그 일을 계기로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안에 있는 강두식은 안여정의 외삼촌이야. 저 사람 말로는 안여정이 너무 억울한 일을 당해 이런 계획을 세웠다더라고.”하연은 그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이런 상황이었어?’“그럼 이 일 안여정과는 상관있어요?”하연의 말이 떨어지자 상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핸드폰을 꺼내 하연에게 건넸다.그리고 영상 하나를 재생했다.영상 속 여정은 눈물범벅이 되어 흐느끼며 말하고 있었다.“최 사장님, 이번 일은 저와 상관없어요. 저는 모르는 일이라고요. 그냥 외삼촌한테 하소연 좀 한 건데, 삼촌이 그런 짓을 벌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하연은 더 이상 들어줄 수 없어 그대로 핸드폰을 꺼버렸다.“본인은 아예 깨끗하게 발 빼겠다는 거네?”이번 일이 아무리 여정이 지시한 게 아니라고 해도 절대로 책임을 벗을 수 없다.“정말 네 말 대로 아무 상관 없어야 할 거야. 안 그러면 남에게 납치를 지시하는 건 콩밥 신세를 져야 할 테니까.”하연의 어두운 눈빛으로 핸드폰을 내려놓더니 상혁과 시선을 교환했다.“들어가서 뭐라 하는지 들어봐요.”이윽고 말을 마친 뒤 성큼성큼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강두식은 누군가 들어오자 무척 흥분하는 모습이었다.“나 풀어주러 온 거지? 당신들 이렇게 나를 감금하는 거 불법이야. 그런데 나 풀어주기만 하면 과거 일을 묻어둘 수 있어. 아무 일 없었던 거로 할 수 있다고.”하연은 너무 어이없어 피식 웃었지만 미소가 눈까지 닿지는 않았다. 하연은 한 걸음 한 걸음 두식에게 걸어갔다.“아무 일도 없었던 거로 하자고? 그건 당신한테만 너무 좋은 처사 아닌가?”하연의 목소리는 마치 12월의 서리처럼 뼈를 에는 듯한 고통을 주었다. 심지어 두식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당신 누구야? 뭐 하자는 거야?”하연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며 두식의
하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두식은 하연이 곽대철의 이름에 겁먹었다고 생각해 더 보충했다.“왜? 무서워? 무서우면 당장 풀어줘. 늦어서 대철 형님이 오기라도 하면 너희들 제명에 못 죽어.”“풀어달라고? 꿈 깨. 감옥에 처넣으면 모를까.”두식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나를 감옥에 넣는다고? 그럴 능력은 있고? 우리 대철 형님은 비즈니스계와 조폭계에 모두 발 담고 있는 분이셔.”“그래? 그럼 오늘 그 곽대철 형님이 너 구하러 오나 보자고.”하연은 말하면서 핸드폰을 꺼내 들더니 곧바로 곽대철한테 전화했다.그걸 본 두식은 당연히 하연이 허세 부린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여자인 하연이 조폭계를 주름잡는 거물 곽대철과 알고 지내는 사이라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하지만 웬걸? 연결음은 약 두 번 정도 울리더니 곧바로 곽대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흑흑, 보스. 처음으로 저한테 먼저 연락한 거 아시죠? 내가 이렇게 귀한 경험을 하다니...”하연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볼 일 있어서 전화했어요.”“무슨 일인데요? 보스 명령이라면 뭐든 따를게요.”“혹시 강두식이라고 알아요?”대철은 머릿속으로 한참 동안 이름을 검색하다가 겨우 뭐가 생각난 듯 대답했다.“알죠. 제 부하 중 한 명이에요.”하연은 눈을 들어 두식을 바라봤다. 그 눈빛은 어찌나 날카로운지 두식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이윽고 확신 없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너 정말 대철 형님을 안다고?”두식은 저절로 말하고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대철 형님이 어떤 인물인데. 조폭계에서 명성을 널리 알린 분인데, 고작 명문가 아가씨가 그런 거물과 알고 지낼 리 없어.’‘분명 나를 겁주는 걸 거야.’“허세 좀 그만 부려. 대철 형님이 어떤 분인데. 네까짓 게 알고 지낸다고?”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하연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핸드폰을 두식에게 던져주었다. 이윽고 두식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대철의 분노 가득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흘러나왔다.“강두식! 너 이 자식 무
하연이 비웃으며 두식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왔다.“무슨 헛된 꿈을 꾸는 거야? 당신한테는 콩밥 먹게 하는 게 오히려 과분한데?”두식이 두려움에 떨며 말했다.“하연 아가씨는 그럼 제가 어떻게 하길 원하는 건데요?”“이렇게 납치하는 걸 좋아하니 여기서 실컷 머무시는 게 어때? 어차피 외진 곳인데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거야.”아까 여러 번 좌회전과 우회전을 해서 도착한 것을 보아하니 확실히 여기는 평일엔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이 틀림없다.두식이 갑자기 눈을 번쩍 뜨며 말했다. “하연 씨! 제발 살려줘요! 우리를 여기에 남겨두면 우리는 죽게 될 거예요.”외진 곳에 방치되어 있다간 배고파 죽을 게 뻔하다.“이제야 무서운 줄 아네. 가흔을 납치할 때는 배짱이 아주 두둑한 줄 알았는데?”하연이 상혁을 바라보며 말했다.“상혁 오빠, 제 아이디어 어떤 것 같아요?”상혁은 하연을 사랑스럽게 쳐다보며 싱긋 웃었다.“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아주 좋은 것 같아.”그 말에 하연이 웃음을 터뜨렸다.“저 사람들을 기둥에 묶어, 기억해, 매듭을 지어.”수하는 곧바로 명령에 복종했다.“이제는 당신들의 운명에 달려 있어. 사람이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면 기껏해야 7일까지 버틸 수 있다고 들었는데 당신들이 나를 대신해서 실험 좀 해봐.”하연은 놈들의 겁에 질린 시선을 바라보며 웃음을 점점 거두었다.“이...”“상혁 오빠, 가요.”“응.”상혁은 하연과 함께 나란히 창고를 떠나 차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차에 오를 때 손을 뻗어 하연의 머리를 막아줬다.차가 움직이자, 소리는 점점 멀어졌고 강두식 등 사람들의 비명소리만 외진 창고에 울려 퍼졌다.“누구 없어요! 살려주세요!”“...”차에 오른 하연은 물티슈로 손가락을 깨끗이 닦았다.“상혁 오빠, 도와줘서 감사해요. 오빠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빨리 이 사람들을 찾을 수 없었을 거예요.”상혁이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다듬어 주며 말했다.“나한테 무슨 고맙다는 인사를 다 하는 거야? 너무 내외하는
가흔의 집 안은 이미 청소가 된 상태라 예전의 어수선하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하연아, 왜 또 이렇게 직접 왔어?”가흔이 머리에 거즈를 둘러싼 채 주방에서 나오며 말했다.“뭐라는 거야, 우리는 친구잖아. 친구 보러 오는 거 당연한 거 아니야?”최하연은 사진 한 묶음을 탁자 위에 던져놓고는 꽃을 꽃병에 꽂으며 말했다.“우리 셋째 오빠가 다 말했지? 너를 납치한 사람들은 내가 다 처리했어. 안여정은 연예 활동을 못하도록 금지해 놨고, 앞으로의 인생은 끝난 셈이야.”하연이 전진 사진 속에는 두식 등 몇몇이 숨이 간들간들한 모습이 담겨 있었다.그걸 본 가흔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감사 인사를 했다.“하성 오빠가 말해줬어. 고마워, 며칠 동안 신세를 많이 졌어.”‘쯧, 나하고 내외하지 말라니까.’하연은 가흔이 저와 내외하는 걸 무척 싫어한다.“굳이 그렇게 말한다면 나도 묻고 싶은 거 묻는다?”하연은 가흔에게 가까이 다가가 두 검지 끝을 한데 붙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너랑 하성 오빠, 어떻게 된거야?”가흔의 얼굴은 순간 화끈 달아올랐다.“뭐라는 거야?”“왜, 부끄러워? 너 일 터지기 전에 오빠가 너를 챙겨줬는데, 두 사람 안 이루어진 거야?”가흔은 그 말에 오히려 갈피를 잡지 못했다.“그게 뭘 의미하는데?”하연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정말 안 된 거야? 설마! 그날 병원에 네가 오빠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엄청 기뻐했는데? 상 받을 때도 그렇게까지 기뻐하지 않았어.”가흔이 그 말을 듣고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오빠가 내가 오빠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단 말이야?”이 말을 듣은 하연은 순간 아차 싶었다. ‘오빠가 티를 안 냈나 보네.’“설마 그동안 하성 오빠가 너한테 고백 안 했어?”가흔이 고개를 저었다.“잘 챙겨주고 잘 돌봐주긴 했어. 하지만... 그런 말은 안 했어.”하연의 표정이 조마조마해졌다.‘망했네.’‘상혁 오빠 말이 딱 들어 맞잖아.’“미안해. 그날 내가 참지 못하고 말해버렸어. 난 네가 더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