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내가 찾아봤는데 너랑 오승범의 열애설은 누군가 빨리 퍼지도록 돈을 썼대.”“누군지 알아냈어?”“아직. 그런데 언젠간 알아낼 거야. 대체 어떤 놈이 감히 그런 비겁한 짓을 했는지 내가 똑똑히 알아낼 거야.”여은은 진지하게 말하더니 곧바로 농담했다.“그런데 네티즌들 진짜 눈썰미 좋지 않아? 바로 핵심을 잡잖아. 참, 아니면 저녁에 상혁 오빠랑 같이 우리 다 모일래?”“그래, 내가 오빠한테 문자 보내 볼게.”하연은 여은의 제안이 괜찮다면서 바로 상혁의 카톡을 눌렀다.두 사람의 대화는 어젯밤을 끝으로 끊겨 있었다. 그걸 보니 하연의 누에는 의아함이 언뜻 스쳐 지났다.최근 하연은 상혁과 시간 날 때마다 대화했으며 거의 끊긴 적이 없다.길어야 몇 시간이 지나면 또 바로 연락했는데, 오늘은 너무 이상했다.하루가 꼬박 지났는데 상혁에게서 한 통의 문자도 없었으니.하연은 빠른 속도로 타자해 상혁에게 문자를 보냈다.하지만 1분, 5분, 10분, 30분이 지나도 상혁에게서 여전히 답변이 돌아오지 않았다.“여은아, 혹시 평소에 칼답하던 사람이 갑자기 연락이 안 되는 건 왜일까?”여은은 어리둥절해서 하연의 핸드폰을 흘긋거리더니 장난기 섞인 말투로 말했다.“헐! 상혁 오빠가 아직도 답장 안 해?”“응.”하연은 이 상황이 너무 이상해 점점 불안해졌다.“괜찮아, 전화해 볼게.”말을 마친 하연은 곧바로 상혁에게 전화했다. 하지만 긴 연결음 끝에 차가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꺼져 있어?”여은은 얼른 하연을 위로했다.“괜찮아. 급한 볼일이 있나 보지. 너무 걱정하지 마.”“응.”하연도 여은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그럼 이따 늦게 또 전화해 보지 뭐.”여은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연애 중의 여자는 역시 다르네. 걱정하지 마, 상혁 오빠 어디 도망 안 가... 문자 보면 바로 답장할 거야.”“그러길 바라야지.”하연이 풀 죽은 모습에 여은은 또 위로의 말을 건넸다.“오늘 밤 상혁 오빠가
때문에 경비원 아저씨는 사무적인 말투로 말했다.“부 대표님의 사생활을 저희는 몰라요. 하지만 젊은 아가씨한테 충고 하나 할게요. 부 대표님은 보통 사람이 넘볼 수 있는 분이 아니니 아가씨도 포기해요.”“...”하연이 뭐라 말하려고 할 때, 뒤에서 경적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확인하니 서준의 차가 언제부터였는지 길가에 세워져 있었다.곧이어 서준은 차에서 내려 하연에게 걸어왔다.“최하연, 이렇게 늦은 시간에 왜 여기 있어?”“그 질문은 내가 해야 할 것 같은데? 왜 여기 있어?”서준은 사실 지나가다가 하연이 보여 바로 핸들을 꺾은 거였다. 하지만 눈을 들자 바로 보이는 FL 그룹 로고가 이 순간 너무나도 눈에 거슬렸다.“부상혁 만나러 왔어?”서준은 질투가 난 듯한 말투로 물었다. 심지어 마치 하연에게서 뭔가를 읽어낼 것처럼 빤히 바라봤다.그때 하연이 덤덤하게 대답했다.“이건 내 일이니 상관하지 마.”선을 긋는 하연의 말에도 서준은 포기하지 않았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여자 혼자 밖에 있는 건 위험해. 내가 바래다줄게.”“나도 차 챙겨왔으니 필요 없어.”하연은 무의식적으로 거절하고는 손에 든 차키를 흔들었다.이윽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자기 차가 세워진 쪽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몇 걸음 가지 못해 서준에게 따라 잡혔다.“최하연, 내가 그렇게 싫어?”하연은 싱긋 웃었다.“쓸데없는 생각하지 마. 난 신세 지기 싫은 것뿐이야.”말을 마친 하연은 다시 뒤돌아 서준에게 등을 보였다.서준은 선 자리에서 시동을 걸고 떠나가는 하연의 차를 멍하니 바라봤다.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서준의 호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 전화를 받고 상대방의 말을 듣고 있던 서준은 상대가 뭐라 말했는지 당장이라도 비바람이 휘몰아칠 듯한 표정을 지었다.“나도 알아, 이 일은 나한테 맡겨...”전화를 끊은 서준은 제 차에 올라 홀연히 떠났다. 그리고 20여 분이나 되는 거리를 서준은 8분 만에 도착했다.서준이 한씨 저택 마당에 차를 세우자 가
서준은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엄마, 해명할 거 없어요?”이수애는 몸을 비틀거리며 넘어지려 하다가 겨우 난간을 잡은 채 중심을 유지했다.“아들, 그게 무슨 말이야? 난 네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어.”서준은 성큼성큼 걸어 이수애를 벽 쪽으로 밀어붙였다.“본인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발뺌할 거예요?”“다 알았어?”이수애는 확신하지 못화는 듯 되물어 보다가 천천히 눈을 감으며 두려움에 떨었다.“아들, 나도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최하연 고년이 너무 날뛰는 게 꼴 보기 싫어서 교훈 좀 시키려고 한 것뿐이야.그 말을 끝나자마자 서준은 이수애의 팔을 덥석 잡았다.“지금 뭐라고 했어요? 하연을 어떻게 했어요?”수애는 어리둥절했다.“이 얘기가 아니었어?”서준은 콧방귀를 뀌며 이수애의 손을 뿌리쳤다.“내가 아는 것 외에도 또 숨기는 게 있나 보네요...”“아니야, 내 말 좀 들어봐. 이건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됐어요!”서준은 아예 이수애의 말을 잘라버렸다.“엄마, 저 엄마한테 기회를 줬어요. 게다가 전에도 최하연 괴롭히지 말라고 경고했었죠?”이수애는 너무 겁이 나 다급히 서준의 손을 잡았다.“아들, 엄마가 잘못했어.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서준은 손을 뻗어 저를 잡고 있는 이수애의 손가락을 하나 둘 떼어내며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말투로 말했다.“오늘부터 은행카드 모두 정지할 거예요. 생활비 외에 일전한 푼도 못 받을 줄 아세요.”“안돼. 카드를 끊으면 난 어떡하라고?”이수애는 평소 쇼핑 중독이다. 심지어 오래 전부터 금액에 연연하지 않고 사고 싶은 대로 사는 걸 습관 해온 터라 이렇게 갑자기 카드를 정시하면 앞으로 어떻게 살지 막막했다.“넌 내가 배 아파 난 아들이야. 그런데 어떻게 엄마한테 이럴 수 있어? 최하연은 남이잖아, 네 가족은 나야.”이수애는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서준을 꽉 잡았다. 하지만 이수애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수애는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었다.“아직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오히려 그 정도가 더 심해지다니. 서준과 하연이 다시 만날 희망조차 네가 다 짓밟아 버리는 구나.”강영숙은 허탈하다는 듯 말하며 서준을 바라봤다.“서준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할머니는 항상 널 지지한다. 이 일은 네 엄마가 잘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네 엄마이니 너무 심하게는 하지 마...”이윽고 한숨을 푹 쉬었다.“할머니...”강영숙은 손을 휘휘 저으며 아무 말도 없이 자리를 떠났다.“서준아, 엄마가 잘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서준은 아무 대답도 없이 차가운 눈빛으로 제 어머니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끝내 물었다.“임모연의 그 땅, 엄마가 우리 집 명의로 대신 구해준 거예요?”이수애는 흠칫 놀라더니 그제야 모든 걸 알아챈 듯 말했다.“그러니까 너 아까 그 일을 물어보려던 거였어?”서준은 승인하지도 부인하지도 않고 계속 질문했다.“임모연이 누구인지 알아요?”이수애는 어안이 벙벙해 멍하니 서준을 바라봤다.그러다 서준이 허리를 숙여 낮은 소리로 뭔가를 말하자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그걸 본 서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뒤돌아 백지장처럼 질려버린 이수애를 혼자 남겨두고 떠나갔다.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하니 앉아 있던 이수애가 갑자기 마구 소리 지르며 정신줄을 놓은 듯 중얼거렸다.“그럴 리 없어... 이게 진짜일 리 없어...”그때 최향숙이 다가왔다.“사모님, 도련님께서 사모님 짐 챙기는 걸 도와드리라고 했습니다. 아가씨가 계신 A국에 나가 계시라고 하네요.”그 말에 이수애는 연신 뒷걸음치며 거절했다.“싫어. 난 절대 A국에 안 가. 그런 곳에 누가 가? 싫어... 안 가...”이수애의 비명에 서준의 표정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그저 조용히 서서 고요한 정원에 쓸쓸함만 더해 주었다.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서준은 핸드폰을 꺼내 동후에게 전화했다.“한 가지 조사 좀 해줘.”“네, 대표님, 말씀하세요.”“임모
서준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민혜주, 지금 부동산 경기가 안 좋아. 위에서 정책을 바꾸고 있는 지금 무턱대고 부동산에 이렇게 투자하면 네 수중에 있는 걸 모두 잃을 수 있어.”그 말을 들은 모연의 얼굴에 웃음기가 더욱 짙어졌다.하지만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대답했다.“한서준, 내가 최하연을 어떻게 할까 봐 일부러 이렇게 말하는 거야? LS 그룹이 잘 돼서 최하연과 경쟁할까 봐 두려워?”서준은 고개를 저으며 냉담하고도 시큰둥한 말투로 말했다.“넌 최하연 상대할 자격도 없어.”그 말에 모연의 표정은 싸늘해졌다. 하지만 모연이 입을 열기 전에 서준이 미리 준비했던 증거를 건넸다.“최하연은 너처럼 비겁한 수단 안 쓰거든.”말을 마친 서준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모연에게 힘껏 던져버렸다.“인터넷에 사진 유포한 거 너지? 댓글 알바 고용한 것도 너고? 내가 틀린 말 했어?”모연은 서준이 이렇게 빨리 여기까지 조사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서준이 저한테 아무것도 못 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으니까.“한서준, 아침 댓바람부터 내 앞길을 막은 게 고작 그것 때문이야? 맞아, 모두 내가 한 짓이야 하지만... 네 엄마도 끼어들었어. 설마 여자 하나 때문에 가족을 벼랑 끝으로 내몰 거야?”서준의 눈은 점차 차가워지더니 긴 침묵이 이어졌다.그때 모연이 눈살을 찌푸리며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말했다.“역시 한 대표님은 너그러워 날 어떻게 못하지? 그렇다면 미안하지만 비켜줄래? 나 급하거든. 정부 쪽 사람과 계약 체결하러 가야 해서...”모연은 당장이라도 떠날 것처럼 말했고, 서준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표정이 수시로 변했다.심지어 모연조차 서준의 속내를 판단할 수 없었다.“한서준, 무슨 생각해?”서준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미소를 짓더니 느긋하게 말했다.“우리 엄마가 너를 도와 그 땅 얻어줬지만, 나도 그 계약쯤 간단히 파기해 버릴 수 있는 능력은 있어. 그건 너도 알겠지? 민혜주.”모연은 일순 당황함을 숨기
하연은 멍하니 핸드폰만 바라보며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잊어버렸다.“아가씨, 생강차예요. 따뜻할 때 드세요.”김애령의 목소리는 깊은 생각에 빠진 하연을 현실로 끌어냈다. 그제야 하연은 마음을 가다듬으며 대답했다.“여기 놔줘요.”“네, 아가씨.”김애령이 테이블 위에 생강차를 내려놓고 떠나려던 그때, 하연은 갑자기 불러세웠다.“이모님, 누군가 갑자기 연락이 안 닿는 거 혹시 뭔 사고라도 난 걸까요?”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하연을 보자 김애령은 그제야 상황을 대충 짐작했다.“혹시 부 대표님 때문에 그러세요?”“아니, 그게...”자기 속마음을 들킨 하연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그때 김애령이 웃으며 설명했다.“아가씨가 요즘 매일 부 대표님 얘기를 입에 달고 사셨잖아요. 그러니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 있어야죠.”하연의 얼굴은 순간 더 빨개졌다.“무, 무슨 소리예요!”“아가씨, 걱정하지 마세요. 부 대표님은 아마 일 때문에 당분간 연락이 안 되는 걸 거예요. 아마 그 일이 해결되면 맨 처음 아가씨께 연락할걸요?”“정말 그럴까요?”하연은 살짝 확신이 없는 말투로 되물었다.그것도 자기가 상혁을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 눈치채지 못한 채로.“당연하죠.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차 드세요. 이따가 기사님 오면 바로 출근해야 하잖아요.”“네.”덕분에 하연의 마음도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다.“알겠어요, 고마워요 이모님.”김애령이 웃으며 방을 떠나자 하연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연락처를 뒤져봤다.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상혁의 소식을 물어 볼만한 사람이 없었다.‘내가 상혁 오빠에 대해 너무 아는 게 없나?’그 뒤로, 하연은 오전 내내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심지어 태훈이 똑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최 사장님, 이 프로젝트 어때요? 승인할까요?”몇 번의 질문 끝에 하연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뭐라고?”태훈은 난감한 듯 안경을 밀어 올리더니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하연에게 건넸다.“사장님, 오늘 상태가 좀 이상한데요?”“
하연은 그제야 하성의 의도를 파악했다.“그러니까 여정 씨를 우리 DS 엔터에 합류시키겠다는 거예요?”“응. 맞아.”“아...”하연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사실 이제 막 설립된 신생 그룹이 안여정처럼 이미 데뷔하고 인기까지 얻은 연예인과 계약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도 그럴 게,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원래 인기로 돈 벌어 먹고사는 직업이니까...때문에 여정이 DS 그룹에 기꺼이 합류한다는 게 놀라운 일이다.“혹시 저 안 반겨 주시나요?”여정이 농담조로 말했다.“아니요. 그럴 리가요. 여정 씨가 우리 엔터에 합류하면 저희야 영광이죠.”“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여정은 눈을 들어 하성을 흘긋거렸다. 그 눈빛은 하연에게 너무나도 익숙했다.때문에 하연은 단번에 여정의 속내를 알아버렸다.‘목적이 따로 있었군.’하연이 뭐라 말하려던 그때,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 이에 하연은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내 바로 확인했다. 하지만 액정에 뜬 전화번호를 본 순간 기대에 찬 눈빛은 다시 실망감으로 뒤덮였다.약 몇 초 지난 뒤에야 하연은 수신 버튼을 눌렀다.“하연아, 지금 회사야?”전화 건너편에서 가흔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신 디자이너님이 웬일로 나한테 다 전화를 했을까?”하연은 말하면서 하성과 여정을 흘긋거렸다.“너희 회사에서 DS 엔터를 설립했다며? 연예인들 많이 끌어들였을 테니 스폰서가 필요하지 않아?”“뭐야? 평소에 연락도 잘 안되더니 우리 회사 일에 빠삭하네?”“VERE가 마침 최근에 협찬을 고려해 보고 있거든. 여은과 얘기하다가 마침 네 소식 들어서 전화해 봤어. 우리 만나서 얘기할까?”“응, 좋지. 나 회사에 있어. 정 실장더러 너 데리러 가라고 할게.”“필요 없어. 다 큰 어른이 길 하나 못 찾을까 봐? 나 주차장에 차만 세워놓고 바로 올라갈게.”전화를 끊은 하연은 하성을 흘긋거렸다.“오빠, 가흔이 여기로 온대요.”가은의 이름을 듣고도 하성의 표정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그럼 너희끼리 얘기 나눠.
“너 대체 무슨 생각 하는 거야?”“오빠, 혹시 여정 씨한테 다른 마음은 없어?”하성은 그제야 하연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아채고는 입꼬리를 올렸다.“최하연, 너 이제 오빠 사생활도 다 캐네?”하성이 제 질문을 교묘하게 피하자 하연은 조급한 듯 따져 물었다.“오빠 설마 여정 씨 좋아하는 거예요?”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하성이 손가락으로 하연의 이마를 튕겼다.“너도 참, 무슨 생각 하는 거야? 여정은 그냥 후배야. 그 이상은 절대 아니야.”“그러면서 성 빼고 불렀잖아. 오빠가 거짓말하는지 알 게 뭐야.”하연은 아픈 듯 제 이마를 감싸 쥐며 투덜댔다.“최하연! 내가 어떻게 말해야 믿을 건데?”“저야 당근 오빠 믿죠. 하지만 여정 씨는 아닐걸요.”여정이 제 오빠를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지 이미 똑똑히 봤으니까. 그 눈빛은 분명 좋아하는 사람을 보는 눈빛이다.“오빠...”“그만,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하연은 눈알을 데구루루 글리며 한참을 생각하다가 끝내 마음속에 묻고 있던 말을 꺼냈다.“오빠 혹시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그 말을 꺼낸 순간 공기 속에 침묵이 흘렀고, 하성의 얼굴에도 부자연스러운 기색이 스쳐 잠깐 스쳐 지났다. 하지만 하성은 이내 그 감정을 숨긴 채 덤덤하게 대답했다.“없어.”너무나도 단호한 두 글자였다.하연은 그 순간 속으로 가흔을 대신해 한숨을 쉬었다. 그동안 제삼자로서 하연과 친구들 모두 가흔의 마음을 지켜봐 왔다.하지만 하필 당사자인 하성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으니...“하연아, 다른 일 없으면 난 갈게.”“네. 가요.”그 말을 끝으로 하성은 곧바로 사무실을 나섰다. 그러다 마침 가흔과 맞닥뜨리고 말았다.하성은 눈을 가늘게 접으며 걸음을 멈추더니 가흔을 빤히 바라봤다.그때 가흔이 먼저 하성에게 인사했다.“오빠도 여기 있었네요?”“하연이 찾으러 왔어?”“네.”가흔은 대답하면서 무의식적으로 가방끈을 꽉 움켜쥐었다.“그럼 전 들어가 볼게요.”이윽고 짤막한 한마디를 남긴
상혁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살짝 웃음을 지었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검진을 마친 뒤, 하연은 선명한 초음파 사진을 손에 들고 있었다. 사진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손끝으로 사진 속 동그란 그림을 가리켰다. “여기 봐봐요. 이게 우리 아기래요.” 목소리엔 설렘과 떨림이 그대로 묻어났다. 상혁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하연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눈엔 이미 감동이 차올라 있었다. 상혁은 조심스레 하연의 아랫배에 손을 얹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이 순간... 난 정말 너무 행복해.” ‘네가 내 옆에 있고, 우리 아이가 이렇게 자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야.’ 하연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남자아기일까요, 여자아기일까요?” 그녀의 눈빛에는 이미 사랑스러운 미래가 그려지고 있었다. 상혁은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상관없어.” 하연은 고개를 살짝 돌려 상혁을 바라봤다. 그 눈동자엔 별빛이 머물러 있는 듯 반짝였다. “그래요... 건강하게만 태어나면... 그걸로 충분해요.”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손을 맞잡았고, 서로의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따뜻함을 느꼈다. 그 순간, 상혁의 주머니 속 핸드폰이 진동했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하곤 순간 눈빛이 깊어졌다. 화면엔 낯익은 이름이 선명히 떠 있었다. [부동건.]‘이 타이밍에...?’ ‘설마 무슨 일 생긴 건가?’ 지난 연회 이후, 부동건과는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의 파장이 얼마나 컸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송혜선과 조봉규. 그 두 사람 때문에 무너진 자존심. 그리고 결국, 부동건은 송혜선을 아이와 함께 본가에서 내쫓았다는 소문까지 들려왔다. 하연이 조용히 말했다. “받아봐요. 무슨 일일 수도 있으니까.” 상혁은 하연의 손등을 가볍게 토닥이고, 그녀를 옆에 있는 의자에 앉힌 후
부동건은 갑작스레 거칠게 기침을 터뜨렸다. “컥”‘피 맛...?’ 목 안에서 치밀어 오르는 피비린내를 억지로 삼켰다. 손등에 핏줄이 선명히 드러나고, 이성의 끈은 이미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부동건의 시선이 천천히 송혜선과 조봉규를 향했다. ‘죽여버리고 싶다.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너희들... 너희들...” 부동건의 입술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송혜선은 극도의 공포에 휩싸였다. ‘이건 아니야... 이렇게 끝나면 안 돼...’ 그녀는 급히 앞으로 다가가 부동건의 팔을 붙잡았다. “회장님... 우리, 조 선생님이랑 그냥 산후 회복 얘기하던 중이었어요. 진짜예요, 저희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 부동건의 손이 송혜선의 뺨을 후려쳤다. 짝! 순간 정적. 강하게 내리친 손바닥 소리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숨을 멈춘 듯 조용해졌다. 송혜선의 얼굴 한쪽이 순식간에 붉게 부어올랐다. 눈가가 덜덜 떨리며, 눈물도 같이 맺혔다. “이 천하의... 배은망덕 같은 것. 내가 너를 어떻게 믿었는데... 감히 날 기만해?” 뒤에 서 있던 하객들 사이에서도 탄식이 흘러나왔다. “저 정도였어?” “저게 진짜였네... 소문이 아니고...” “...”송혜선은 뺨의 통증을 애써 무시한 채, 다시 붙잡았다. “회장님, 제발... 오해예요. 저희 그런 사이 아니에요. 저는... 당신뿐이었어요.” 그러나 부동건은 그 손마저 거칠게 뿌리쳤다. 그리고는 힘껏 송혜선의 복부를 발로 찼다. 퍽!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송혜선은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조봉규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아니야... 지금 나섰다간 나도 끝장이야.’ 한 걸음 다가가려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회... 회장님... 저희...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정말이에요...” 하지만 그 한마디가 기름을 붓는 꼴이 됐다. 부동건은 그대로 조
일 순간 충격의 정점이었다.부동건은 들고 있던 와인잔을 그대로 바닥에 내던졌다. 쨍그랑! 깨지는 소리와 동시에 모든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저... 저런 미친...!” 그는 화면을 가리키며, 얼굴을 붉힌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숨이 거칠게 턱 끝까지 차올랐다. ‘송혜선... 네가 감히!’ 주변 하객들도 이미 술렁이기 시작했다. “저게 진짜야?” “부 회장님 딸이... 아니라고?” “와... 이건 완전히 생각지도 못한 미친 패륜이야, 상상도 못 했어.” 오늘의 연회는 더없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이제 와선 최악의 스캔들 파티가 되어버렸다. ‘이 연회가... 전부 거짓된 일 때문에 생긴 일이란 말이야?’ ‘우리, 사기당한 거네. 다 같이.’ 그때 스크린이 멈췄고, 연회장 전체의 조명이 다시 환히 켜졌다. 하객들은 본능적으로 두리번거리며 부동건을 찾았다.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하지만 부동건은 아무런 대답 없이 어금니를 꽉 물고, 몸을 떨며 계단 쪽으로 향했다. 하객들은 그 뒤를 따라붙었다. ‘뭔가 일어나겠군...’ ‘이번엔 진짜 끝장이다.’ ...같은 시각, 2층 방 안. 송혜선은 조봉규의 손등을 다독이며 조용히 말했다. “조금만 참아. 며칠만 지나면 내가 다시 올게.” 조봉규는 싱긋 웃으며, 그녀의 허벅지를 장난스럽게 움켜쥐었다. “응. 기다릴게, 자기.”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 문이 거칠게 흔들렸고,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쾅!! “송혜선! 당장 안 나와?!” 송혜선의 온몸이 순간 얼어붙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조봉규의 팔을 꽉 잡았다. ‘망했다.’ “어떡해, 부동건이 올라왔어.” 두 사람은 당황하며 방 안을 둘러봤지만, 창문 하나 없는 좁은 방엔 도망칠 곳조차 없었다. ‘안 돼... 이렇게 들키면, 끝장이야. 정말 끝이야.’ 송혜선은 급하게 숨을 고르며 애써 이성을 붙잡으려 했다. ‘진정해. 침착해야 돼.
연회장 안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부동건은 손에 잔을 들고, 연신 들어오는 축하 인사에 밝은 표정으로 답하고 있었다. “회장님, 따님이 너무 예뻐요. 축하드립니다!” “아이고, 이런 경사는 자주 있어야죠!” ‘그래, 이 정도면 완벽하지. 오늘은 그 누구도 나를 흔들 수 없어.’ 그렇게 술이 한 잔, 두 잔 더해지며 연회장의 분위기도 점점 무르익고 있었다. 그때, 갑작스레 모든 조명이 꺼졌다. 탁! “어, 뭐야?” “불 꺼졌어! 왜 이래?” “아야, 누가 내 발 밟았어!” “...”순식간에 어둠이 덮친 연회장. 사람들의 놀란 목소리와 웅성거림이 퍼졌다. 잔을 들고 있던 부동건은 순간 정지된 듯 멈췄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당장 가서 확인해봐!” “네, 회장님!” 직원들이 급히 움직였고, 부동건은 진정시키려는 듯 손을 들고 말했다. “여러분, 당황하지 마시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전기 쪽 문제인 것 같습니다. 금방 복구됩니다.” 사람들은 잠시 멈춰 서서 어둠 속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그 순간, 연회장 한쪽 벽면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이 조용히 켜졌다. “위이잉...” 어둠 속에서 갑작스레 터진 화면의 빛에 모두가 눈을 찌푸리며 반사적으로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 빛이 익숙해질 무렵, 누군가가 터트린 외마디 감탄에, 시선이 일제히 스크린으로 향했다. “어... 저거 뭐야? 헉, 저게... 말이 돼?” 그리고, 그 스크린 안에 있는 건... 분명 두 남녀의 은밀한 장면이었다. 화면 속, 분명히 누군가를 알아본 듯한 목소리가 터졌다. “저 여자... 그분 아니야?” “옆에 있는 남자는...?” “헐, 이건 진짜 레전드다.” “아, 눈 버렸어. 이게 뭐야, 이게...”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순식간에 연회장은 도저히 되돌릴 수 없는 혼돈의 도가니로 빠져들고 있었다.사람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송혜선이 복도 입구에 막 다다랐을 때였다. 갑작스레 어디선가 튀어나온 그림자가 그녀를 뒤에서 껴안았다. “꺄악!” 놀란 송혜선은 반사적으로 비명을 질렀고, 누군가 재빨리 그녀의 입을 막았다. “나야! 나야, 혜선아.” 익숙한 목소리에 송혜선은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남자의 손을 떼어내며 차갑게 말했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이 사람, 지금 제정신인 거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어서 급히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송혜선은 그제야 숨을 돌리며, 낮은 목소리로 흘기듯 말했다.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미쳤어, 사람들 눈에 띄면 어쩌려고!!” 그 말엔 명백한 불만과 경계심이 섞여 있었다. 조봉규는 잠시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안 되는데...’ 그 순간의 긴장, 그리고 복잡한 감정이 두 사람 사이에 감돌았다.조봉규의 시선이 송혜선의 얼굴에서 천천히 내려앉았다. 송혜선은 산후라 그런가, 몸매는 훨씬 더 부드럽고 풍성해져 있었다. ‘이러니까, 잊으려고 해도... 더 생각이 나잖아.’ 그는 순간 충동적으로 송혜선의 팔을 붙잡았다. “잠깐만.” 당황한 송혜선이 눈을 부릅떴다. “뭐 하는 거야!! 지금...” 그러나 조봉규는 말없이 송혜선을 옆방으로 이끌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작게 ‘탁’ 하고 울렸다. 좁은 공간, 차오르는 침묵. 송혜선은 남자를 노려보며 벽에 등을 댔다. “정신 차려!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조봉규는 그녀를 바라보며 낮게 숨을 내쉬었다. “다들 홀에 있잖아. 아무도 몰라.” 남자의 말투엔 간절함과 조급함이 섞여 있었다. 이건 단순한 욕망이 아니었다. 그리움, 억눌림, 그리고 못다 한 말들. 그는 조심스럽게 송혜선의 턱선을 손끝으로 만지며 말했다. “혜선아... 나, 정말 많이 참았어.” ‘이 사람 또 이러네...’ 송혜선의 심장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분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정문 쪽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부동건이 고개를 돌리자, 최하연이 부상혁의 팔을 자연스럽게 끼고 등장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순간, 많은 이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쏠렸다. 잘생긴 남자와 우아한 여자의 조합. 누가 봐도 완벽한 한 쌍이었다. ‘딱 봐도 좋은 그림이야. 저 둘은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눈길을 끌어...’ “회장님, 부상혁 대표님은 정말 복도 많으십니다. 최씨 가문의 따님과 이렇게 잘 어울리는 커플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누군가의 말에 부동건의 표정이 확 풀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미묘하던 분위기가 사라지고, 부동건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피어났다. 부동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젊은 사람들이 서로 마음이 맞아 좋아하는 걸, 우리 어른들은 그저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줘야 하는 일일 뿐이지요.” “게다가 상대가 최씨 가문의 따님이라니, 정말 금상첨화가 아닙니까.” 부동건은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역시 상혁이다. 내 아들이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 상혁은 오늘 이 자리에서 당당히 아버지의 체면을 세워주고 있었다. 한편, 송혜선도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방금 전까지 얼굴에 띄웠던 미소는 점점 사라져 갔고, 그녀의 시선은 어느새 하연에게 향했다. 오늘의 하연은, 나무나 예쁘고... 아니, 그냥 눈이 부실 만큼 찬란했다. 그리고 또렷한 이목구비에 윤기 흐르는 머릿결, 화사하게 피어난 얼굴빛까지. 하연의 행복함이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듯했다. 송혜선의 눈빛이 서서히 차가워졌다. ‘정다영... 그년, 나를 속였어.’ 그동안 하연 쪽에서 뭔가 반응이 있을 줄 알고 기다려 왔다. 하지만 소식은커녕, 정다영조차 자취를 감췄다. ‘다영이 걔가 하연이에게 약 먹이는 계획이 분명 실패한 거야. 그렇지 않고 선 지금 저렇게 멀쩡한 얼굴로 서 있을 수는 없어.’ 이대로 배가 불러오면, 섣불리 손도 쓸 수 없게 된다. ‘
이 질문에 송혜선은 눈을 반짝이며 부동건을 바라봤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젠 나를 당당히 소개해 줄 때가 됐겠지.’ 오늘 이 자리에서, 그녀는 부동건의 정식 아내로서 인정받기를 바라고 있었다. “회장님, 말씀 좀 해보세요?” 조금은 성급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자, 주변의 시선도 하나둘 송혜선과 부동건을 향했다. 모두 속으로는 뻔히 알고 있었다. 부동건이 과연 예전 애인을 진짜로 정실로 앉혔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했다. 부동건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숨기거나 피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담백하게 말했다. “오 회장님, 이 사람은 제 딸의 어머니입니다.” 순간, 송혜선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딸의... 어머니?’ 손에 들고 있던 와인 잔이 살짝 흔들렸다. 금세 넘칠 듯한 와인, 애써 잡고 있는 감정. ‘지금... 이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억울함이 툭 하고 솟구쳤다. 심지어 손에 힘이 들어가며 하얗게 질린 손등이 떨렸다. 오병지는 단번에 눈치챘고, 싱긋 웃으며 더는 묻지 않았고, 대신 가볍게 말을 건넸다. “축하드립니다. 부 회장님, 여전히 복이 많으시네요.” 부동건은 공손하게 웃으며 송혜선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 손길엔 무언의 위로가 담겨 있었다. “아닙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나중에 저와 이 사람의 결혼식엔 꼭 오셔서 축배 들어주세요.” 그 말에 송혜선의 눈이 번쩍 뜨였다. ‘결혼식...?’ 순간, 가슴이 쿵 하고 울렸다. 이어서 고개를 들며 수줍게 웃었다. “회장님...” 부동건은 말없이 그녀를 더 가까이 끌어안았다. 더 이상의 말은 없었지만, 그 행동으로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주변의 사람들 시선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송혜선을 무시하거나 조롱하던 눈빛이, 지금은 선망과 부러움으로 가득했다. 결국, ‘부동건의 아내’라는 타이틀은 그 자체로 막대한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이름이었다.송혜선은 온
부지윤의 ‘한 달 잔치’는 그야말로 성대한 수준의 파티였다. 초대받은 인사들만 봐도, 그 위세가 느껴졌다. F국 재계의 실력자들, 정재계의 핵심 인물, 이름만 대면 아는 명문가 자제들이 대거 초청됐고, 심지어 부씨 가문 어른들에게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직접 청첩장을 보냈다. 이 정도면, 사실상 이 아이를 공식적으로 가문에 편입시키겠다는 의지나 다름없었다. 부동건이 이 아이에게 얼마나 애정을 집착하듯 쏟고 있는지, 이날 행사 하나로 증명되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동건은 스스로의 체면과 명예를 걸고, 딸을 세상에 내보이고 있었다. ...잔치 당일, 연회장은 유난히 붐볐다. 샹들리에의 조명이 화사하게 반짝였고, 고급스러움이 풍겨 나는 악단의 선율이 분위기를 감싸고 있었다. 송혜선은 산후조리를 마친 직후였지만, 여전히 그만의 풍채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예전보다 조금 살이 오른 듯했지만, 그 덕에 오히려 분위기가 더 너그러워 보였다. 그녀가 행사장에 들어서자, 평소 자주 어울리던 재벌가 부인들이 앞다투어 다가왔다. “혜선씨는 진짜 복이 많은 사람이에요. 그 고생 끝에 드디어 볕뜰날이 왔네요.” “부 회장님이 이렇게까지 챙기시는 거 보니까, 이제 정말 한 자리 하시겠어요.” “정말 이러다 조만간 ‘겹경사’ 나는 거 아니예요? 우리라도 미리 축하해줘야 하는 거야?” 송혜선은 그 소리에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얄미울 정도로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역시 사람은 자리가 높아야 대접 받는 거야.’ “지윤이는 회장님의 첫 딸이잖아요. 그러니까 귀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회장님이 우리 모녀를 절대 가볍게 보지 않으신다는 건, 여기 있는 분들도 느끼셨을 테고요.” 그 말에 다들 박수까지 치며 웃었다. “이제 우리도 호칭 바꿔야지, 사모님!” 누군가 먼저 그렇게 불렀고, 뒤이어 몇몇이 장난처럼 따라 불렀다. 송혜선은 그 말에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턱을 살짝 들며, 그 호칭이 제법 익숙
진윤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마침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부남준은 법을 무시하고, 사람을 죽였어요. 부씨 가문이 이 일에 개입한다면... 여론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감싸려 들면 들수록, 결국은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겠죠.” ‘이건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가문의 존망이 걸린 문제야.’ 맞은편 소파에 앉은 상혁은 다리를 꼬고, 한쪽 손으로 턱을 괸 채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의 눈빛엔 어떤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세속의 먼지 따윈 전혀 묻지 않은 사람처럼. 진윤의 말이 끝났지만, 상혁의 표정엔 미동 하나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부씨 가문은 항상 법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여왔습니다. 그건 변하지 않습니다, 여사님.” 그는 손짓으로 테이블 위를 가리켰다. 거기엔 작은 검은색 USB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 안에... 고나희 씨가 남긴 게 있습니다. 여사님께 드리라고 하더군요.” 순간, 진윤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숨이 턱 막히는 듯한 표정으로, USB를 바라봤다. “지금... 뭐라고 하셨죠?” 그녀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나희가... 뭔가를 남겼다고...?’ 사고는 너무도 갑작스러웠다. 딸의 마지막을 함께할 시간조차 없이, 그녀는 세상을 떠났고, 어떤 유언도, 한마디 말도 남기지 못한 줄 알았다. “나희... 그 애가... 무슨 말을 남겼다는 거예요...” 진윤은 입을 틀어막았다. 눈물은 이미 참을 수 없다는 듯 쏟아지려 하고 있었다. 상혁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다. “사람이 떠난 건 바꿀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남겨진 마음은, 누군가가 반드시 전해야죠.” 그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거운 공기를 뒤로한 채, 조용히 방을 나섰다. 잠시 후.룸 안에서 낮고, 억눌렀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희야...” 진윤은 USB를 손에 쥐고,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으로 울고 있